그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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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5:31 조회 463회 댓글 0건본문
어쩌면, 그 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내지 못한 겨울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아니었다면,
이 글을 적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래전, 원치않았던 대학에 대한 회의감에 일찌감치 휴학계를 내고,
학교를 나서던 그 날,
매서운 바람에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급히 날아가는 모자를 뒤따르던 나를 알아보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였다.
아?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
하지만, 난 분명 낯설지 않기는 했지만, 좀처럼 기억을 해낼 수가 없었다.
누구였더라?
그녀는 당황해하는 나를 손으로 살짝 밀치면서,
김민정이라는 이름을 연거푸 중얼거렸다.
아... XX 국민학교?
이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녀는 근 7년만에 보는 국민학교 동창이었다.
"이제 기억나? 기억 하지 못했다면 나 서운했을 거야."
그녀의 웃는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분명 같은 반이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비교적 가까웠던 이웃동네에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랑 친했던가?
습자지처럼 얇은 기억 속에서는 그녀와의 십원짜리만한 추억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작고 말랐으며,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없었다.
"우리 4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같은 반이었잖아? 이제 기억 나지?"
해맑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난 약간의 충격과 약간의 당황감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랬던가? 무려 3년 연속 같은반이었던가?
들어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20살의 나이에 3년이나 같은 곳에서 자랐던 사이라니.... 그런데 갑자기 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정말 반갑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었다.
이유가 어찌됐든, 나를 반가워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 어색한 표정은 보일 수 없었다.
"너도 이 학교 다니나 봐?"
학교에 소속이 되어 있지만, 5분 여 전에 휴학계를 제출을 했으니,
학교에 다닌다고 해야 하나? 다니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저 귀찮음에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우와... 앞으로 종종 볼 수 있겠네. 정말 반가워."
이런 캐릭터였던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말 수 없이 조용했던 친구였던 것 같은데... 아무렴 어떠랴?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그런데 약간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녀의 명랑한 반응에 입맛이 썼다.
"아... 연락처. 번호 좀 찍어줄래?"
그녀가 나에게 자연스레 휴대폰을 건넸고,
의도치 않게 난 그것을 받아들였다.
방금 전까지 다시 한 번 수능을 보기 위해서 휴학계를 냈는데,
그녀에게 내 연락처를 남겨도 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고민은 결코 오래가지는 못했다.
미소를 보이는 얼굴을 두고 거절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내 성격조차 단호하지는 않았다.
"고마워... 이제 우리 자주 연락하자."
고마운 일이 아님에도 고맙다고 말하던 그녀,
세월의 흐름이라는 게 그 조용하고 존재감 없던 그녀를 이렇게
명랑하고 활발하게 바꾸었고,
그것을 겪은 나는 놀라운 그녀와의 우연이 훗날 기가막힌 인연으로
이어질 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을 무렵부터,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문자 몇 건으로 무미건조한 대화를 하던 나는
이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점심을 함께 할 수 없다니?"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녀의 어지러운 머리를 명쾌한 단어로 정리를 해주었다.
"재수를 한다고? 휴학을 한 거야?"
이미 나는 재수 학원에 등록해서 다시 수능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이 아닌, 재수생이라는 신분을 밝히면,
반갑지 않은 그녀의 관심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네가 결정한 것이니... 이왕 다시 시작한 거... 화이팅!"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더 이상 문자, 아니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더 고마울 거 같은데...
그 당시의 내 심정이 그랬고,
그녀는 그 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했을 뿐이고.
아마, 첫 모의고사를 본 날이었을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지만, 고3 수능이 끝나고 몇 개월간 책을 잡지 않아서
생각보다 공부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당연히 여러 번 경험이 있던 모의고사였다지만,
감각이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저 연습이라고 넘어가면 될 문제였지만,
그때의 나는 무언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렵게 재수를 선택했던 것이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 날,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시험 직후,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 날 저녁,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재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족이 아니면 거의 연락도 오지 않았던 휴대폰이 울렸는데,
공교롭게도 그녀였다.
"나 학원 근처인데... 저녁 사줄 게. 나올래?"
딱히 그녀가 반갑지는 않았다.
그런데 연락은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고3 시절과 다른 재수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 지금 나갈게.
별 생각없이 답장을 하고 책을 덮고 학원을 나섰다.
마치 처음부터 나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녀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 시험 봤다면서?"
굉장한 친구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냐고? 이 주변에 재수생들 천지야. 시험 봤다고 떠드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던걸?"
생각해보면, 학원에 남아 공부를 하는 재수생들이 평소보다
훨씬 적었던 것 같다.
"시험 봤으니까, 오늘 같은 날은 즐겨야지. 그래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런건가? 아무리 재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매일같이 공부만 할 수 있는 건 아닌건가?
가끔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건가?
"내가 밥 사줄게. 따라와."
기억에는 그녀와 나는 고추장 불고기로 저녁을 함께했다.
더불어 이슬과 함께...그때는 23도였던가? 22도였던가?
"걱정하지 마. 주위를 둘러 봐...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소주 한 잔이 몸에 들어가니, 그제야 주위 환경이 눈에들어왔다.
나와 같은 처지를 가진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한 잔, 한 잔 비워내고 있었다.
모의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며, 스타같은 게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재수는 외로울 것 같아. 넌 외롭지 않니?"
이슬 한 병이, 두 병으로 늘어났을 무렵, 그녀가 물었다.
그 당시에는 술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어느정도 취기가 올라와
그녀의 물음에 대꾸를 잘해줬던 기억이 난다.
"힘들겠다..."
그래... 분명 힘든 시기였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만큼 편한 시기도 했지만.
"우리 노래 부르러 갈래?"
이슬 세 병에 난 반쯤 정신이 나갔다.
그에 비하여 작은 체구에도 그녀는 멀쩡했다.
화장실을 갈 때 비교적 굽이 있는 구두를 신었던 그녀의 발걸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으니.
"너 기억나지? 내가 노래 좀 했잖아."
그녀를 만나면서 놀라웠던 점은 분명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함께한 생활이 있는데, 난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그녀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나... 합창부였잖아... 기억 안 나?"
아, 이번에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말 수 없던 그녀가 남들 앞에서 노래를 했을 때, 주위 친구들이 전부 놀라워 하던 모습을...
그래, 분명 노래를 꽤 잘했었다.
"노래를 못 불러도.. 소리를 지르면... 속이 시원해져."
노래방에서 제대로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게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름 낯도 가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노래 실력이 결코 좋지 않았다.
"일어나. 가자."
그녀를 따라 나섰을 것이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내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노래방 안이었고,
그것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다.
거의 난생 처음으로 블랙아웃을 겪었던 날이었는데,
반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광란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되도 않는 춤까지 추고 있었으니.
"자... 이번에는 내가 섹시함에 대해서 알려줄게."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이 섹시하게 보이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더불어 춤도 추면서...
춤마저 완벽에 가까웠다.
박지윤의 성인식을 부르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속에 박혀 있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게,
그녀를 굉장히 매력적인 여자로 보이게 만들었다.
더불어 춤을 추면서 보일듯 말듯 하던 치맛속도...
고작 몇 분이었지만, 넋을 놓고 봤던 기억이 있다.
술 기운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노래방에서 기립 박수를 쳤다.
그리고 연신 대단하다는 말을 했다.
입 안에서는 너 정말 섹시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그 후 한 동안 우리는 노래방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녀 말대로 그 순간만큼은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진이 빠질만큼 노래방에서 즐겼고,
어느정도 술도 많이 깬 상황에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꽤나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길거리에는 수많은 재수생이
방황하고 있었다.
토하는 놈, 취해서 뻗은 년, 괜히 소리 지르는 놈,
별놈, 별년들이 넘쳐났다.
저 들의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일까?
별 시덥잖은 생각에 잠겼을 때, 그녀가 말을 했다.
"한 잔 더 할래? 내가 오늘 확실히 서비스 해줄게. 3차까지 쏜다."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술에 취해, 정신을 놓고, 토하고 쓰러지면 어떠랴.
그저 하루 뿐인 걸.
난 그녀의 뒤를 따라 방황하는 젊은이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조금은 비틀비틀 거렸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느 작은 술 집에 들어갔고,
우리는 탁자에 마주 앉았다.
국물에 소주 하나를 시켰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만큼은 나도 말이 많아졌다.
뭐, 술이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만.
한 병을 다 비울 때였던 것 같다.
"너 여자 사귀어 본 적 없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성인식 부르면... 남자들 눈빛이 변하던데...."
묘한 미소를 보이며 그녀가 말을 했다.
그래, 그것 역시 인정해야겠다. 분명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으니까.
"눈빛만 변하는게 아니야... 어떻게 해보려고..."
대화 분위기도 묘해졌다.
이런 대화를 여자랑 해 본적이 없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당황하는 표정을 그녀에게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헤헤... 놀라는 가봐. 장난이야 장난..."
그녀가 박장대소를 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한참이나 웃었다.
"음... 너 키스해 본 적 있어?"
웃음을 멈춘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여자를 만난적도 없는데, 갑자기 키스라니.
그런데 그녀에게 질문을 들었던 그 순간 내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