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터미널의 그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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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6:15 조회 864회 댓글 0건본문
[-누구시죠??-]
누구인지는 알지만 일단 미끼를 던져보는 나.
[-ㅋㅋ재밌는 분이시네, 댁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예요.-]
[-아까 혜진이 데리고 무슨짓을 하신거죠?, 혜진이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긴말 안할게요. 그쪽 혜진이 좋아하죠?-]
"이런 미친새끼가"
입밖으로 욕지기가 튀어나오는걸 억누르며 답장대신 `통화` 버튼을 누르는 나.
수화기 너머로 카펜터스의 close to you가 컬러링으로 흘러나왔다. 마치 음악을 다 들으라는 식으로 그렇게 한참 노래가 이어진 뒤, 겨우 전화가 연결 되었다.
"여보세.."
"야 이 미친새꺄!!"
수화기 너머로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나는 반사적으로 준비했던 분노를 표출해주었다.
"........거 인사성 참 밝으시네."
"너 혜진이한테 무슨짓을 하고 있는거야!"
"자꾸 반말하기 있나? 이럼 통화하기 곤란한데? 전화 끊을까요??"
"아오..."
"뭐..이런식으로 전화로 첫인사 하기 싫었는데, 나 이승재라고 해요. 나이는 스물 여섯이고..뭐 내 얘긴 혜진이한테 많이 들었죠?"
그 소름 끼치도록 냉정하고 정돈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대로는 질까 싶어서 나도 화를 가라앉혀야 겠다는 생각에 호흡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그쪽도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는거 같은데."
"아유, 요즘엔 얘가 틈나면 그쪽 얘기만 해요. 근데 자꾸 말이 짧네요? 나도 편하게-"
"편하게 놓고 얘기해. 나도 편하게 할테니."
"하하..일단 내가 형이니까 그쪽은 편하게 하지 말아줘으면 하는데..."
능글맞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은 톤의 목소리와 말투.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늘 얘기로만 들어오던 그녀의 남자는
이야기 그대로 차갑고 냉정한 성격인 듯 했다.
"궁금한거 부터 물읍시다. 당신 지금 혜진이랑 있어?"
"알면서 물어요....ㅋ"
"아까 혜진이한테 무슨짓을 한건데?"
"에이...그게 중요한가?"
"뭐?"
"`무슨 짓`을 하는게 중요한거야? `왜` 가 중요하지. 내가 도대체 왜 그녀한테 그런 걸까가 궁금하지 않아? "
".....아우 진짜 짜증날라고 하네"
신경질 적으로 소매의 단추를 매만지며 녀석에게 따져 물었다.
"저기, 당신이 혜진이한테 평소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대충 알거든? 근데 걔가 불쌍하지 않아? 당신 좋아하는 한창 때 예쁜 처녀한테 말야."
"호오.."
"아까도 혜진이랑 섹스하면서 나한테 전화하도록 시킨거잖아 당신이!!"
"정답.. 근데 그렇게 티났나? 섹스중인거?"
"...인두껍을 쓰고, 사람 마음을 그렇게 갖고 놀아도 되는거냐? 아무리 걔가 사리 분별이 어둡고 그래도 그렇지 장난감 처럼 쓰다 버릴거잖아 이새꺄!!"
"오! 멋져!!훌륭해!! 자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청년!! 내 말을 들어보라고"
"이 개새끼가.."
"그쪽 말야..혜진이 좋아하지? , 같이 자고싶지?"
어느새 내 호흡은 거칠어져 있었고, 한창 흥분한 상태였는지 만지작 거리던 소매의 단추도 나가 떨어졌다.
"뭐 임마?!"
"자, 청년 한번만 말해줄테니까 잘 들어."
잠시 뭔가를 마시는듯한 소리가 들리고 그 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난 말야, 누구를 좋아해본적도 없고, 좋아해볼려고 해도 그런 마음이 들지가 않아. 여자든 남자든 말야. 근데 또 섹스는 좋아해요. 섹스 판타지는 엄청 많은데 그걸 도무지 풀데가 없어. 근데 내가 이 기지배를 (꺄악!) 만났다는거 아냐.."
통화 도중 그녀를 건드린 듯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작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이코패스 새끼.."
"오 딱 그표현 정확한데? 맞아, 실은 고2 때 병원에 갔더니 정신과에서도 그러더라고.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ASPD라고 알어?"
"몰라 그딴거."
"암튼, 그런 사막에 단비같은 여자를 만나서 내 섹스판타지가 하나씩 다 구현되고 있는거지. 교회나 야외같이 은밀한 장소에서 해보고, 모르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몰래 해보고..오늘은 통화중에 섹스도 시켜봤고...하하.."
"이런 미친노무..."
"에이에이!! 들어봐!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는데 말야."
이녀석의 호기심은 결코 내게 있어서 좋은 일은아니리라..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그 놈의 대사가 굉장히 불길한 전조처럼 느껴졌다.
"과연 전후사정을 다 알려줬는데 과연 그 쪽이 얘랑 잘 수 있을까?"
"뭐...임마?"
부들부들 어깨가 떨려왔다. 아아..패주고 싶다. 지금 눈앞에서 이런소릴 들었다면 주먹이 수차례 날아갔을법 한 상황이었다. 분노에 치달아서였는지 신기하게도.
"다시..다시 말해봐...뭐라고?"
내 아랫도리가 딱딱하게 발기해 있었다.
"내가 판을 깔아줄게. 오늘 퇴근하면 남부터미널 건너편 모텔촌에 XX모텔로 와. 오늘 숙박 잡아놨으니까 10시까진 괜찮을꺼야. 아, 여기 208호인데, 혜진이 잘 벗겨놓고 나가 있어줄테니 알아서 벗겨 먹으라고."
"미...친...놈아.."
"일단 나한텐 얘가 내 애인이나 여자친구라는 감각은 없어 , 그쪽이 그렇게 말했다며? 섹스파트너라고..그거 딱 좋은 표현이던데? "
"넌 진짜 잡히면 죽여버린다.."
"이햐하하..무섭네에?! 나랑 몇살 차이도 안나는데 되게 저돌적이네? 근데 진짜 궁금해. 이런 상황에서 진짜 니가 얘랑 잘까? 잔다면 무슨기분으로 이 여자를 안을까? 캬~ 진짜 궁금하단 말이지?"
"야 이새꺄 당장 혜진이 바꿔.........."
"에이 , 얘 지금 내말듣고 씻으러 갔어. 손님맞을 준비해야지."
"...진짜 잡히면 죽여버린다."
"알았지? 나 여기서 한시간 뒤에 나가는데 10시 전까지 입실하면 될거야. 오든 안오든 그쪽 선택이긴한데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문자정도라도 알려줬음 좋겠네."
전화는 그렇게 자기 할말만 늘어 놓는 그 짐승같은놈의 통보를 끝으로 끊겼다.
심야의 편의점은 여전히 적막에 쌓여있었고 한물간 옛날 히트가요와 냉장실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폭풍같았던 통화가 끝나고 혜진이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답답하게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몇시간 뒤 내 행동에 대해 선택이 강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놈의 잔꾀에 놀아나서 그녀를 안아야 할지.
아니면 그녀와 보낸 이 몇달간을 똥밟은셈 치고 더러운 인연이라
치부하며 무시해 넘겨야 할지.
대체 염혜진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그딴 또라이 곁에서 복종하고 있는건지.
"시발..."
나는 세번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