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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터미널의 그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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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6:24 조회 9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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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어볼거라고 생각은 했는데..막상 대답하자니..막막하네.."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정리할거지?"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눈망울을 응시하며 입을 뗀다.


"....그래야겠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너와 내가 만나려면. 그게 정상적인 연애가 아닌가, 마음 한켠에 누구를 담아두고 시작되는 연애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결국 한 사람은 크게 상처받고 무너지게 될 테니까, 그녀는 당연히 그 놈을 마음속에서도, 생활속에서도 정리해야한다. 그런 말들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알아줄거라 믿으며. 무엇보다 그래야만

내가 너를 만지고, 너를 안고, 서로를 나눠 가짐에 있어서 


"응. 그래야겠지."


서로에게 떳떳할 수 있으니까.


" 우리 되게 바보같다...당연히...오빠는 이제 정리해야겠지 바보팅아."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이 심까지 얼어붙는듯 차갑게 느껴졌다.


"믿을께..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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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의 울퉁불퉁한 연애가 시작되었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 

그녀를 만난지 3개월이 지나갈때 즈음, 나는 룸메이트에게 작별을 고하고 이수역 근처에 원룸을 얻었다. 그리고 그녀와 거의 반 동거에 가까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와의 반 동거 생활은 예상만큼 평탄할리는 없었지만 함께 있는 내내 행복했다.

하지만 보다 비싼동네의 원룸 월세를 혼자서 부담하게 된 나는 학기가 끝나감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두개 늘렸다.


"이번주 토요일은?"


"호프집 알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울상 가득한 표정으로 매달리는 그녀.


"일요이일으은??"


"야 그런데 만지지 맛!! , 저리 좀!! 일요일은 밤에 편의점 알바야"


내 젖꼭지는 이미 매일같이 그녀가 전세를 내고 있는 신세였고

그녀는 유독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갖고 놀기 좋아했다.


"야 사람이 좀 쉴때도 있고 그래야지이.."


문제는 젖꼭지가 내 성감대라는 것이다.


"아아..."


본격적으로 양손가락을 사용해서 내 젖꼭지를 공략하기 시작하는 그녀,  그녀는 곧잘 이렇게 장난 반으로 시작한 젖꼭지 애무로 나를 유혹하여 흥분시키는 것이었다.


"혜진아, 아니 자기야, 아니 여친느님..제발.."


"히히...왜애?"


"그,그만...나 쫌있다 나가봐야돼..말했잖아..전단지 알바 간다고옷"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러가며 그녀가 입맛을 다신다.


"30분밖에 안남은건데..헐..."


츄리닝 바지를 능숙하게 내리고 내물건을 꺼내는 그녀.

젖꼭지를 능욕하던 두 손가락은 이미 내 골반을 훑고 엉덩이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젊은 혈기에 몸을 맡기고 본능에 충실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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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내가 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알바로 꽉꽉 채운 한달이었다.

배로 높아진 원룸월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그녀를 위해

몰래 세워둔 계획때문에 바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주 7일을 거의 꽉꽉 채워 빠듯하게 노동에 몸을 맡겼고 그녀역시 투정부리기 일쑤였지만 우리는 함께 있는 시간동안 거의 매일같이 빠짐없이 몸을 섞었다.



그렇게 익숙해진 새벽이 가까운 저녁 귀갓길.


[먹든지말든지!!흥흥!!]


귀여운 곰돌이 메모지에 씌어있는 예쁜 손글씨,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저녁을 만들어놓고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녀.


(마치 가난한 신혼부부같구만..)


식어있는 김밥을 입속으로 밀어넣으면서도 잠든 그녀얼굴을 바라보면

묘하게 사랑스러워 참을수가 없는 것이었다.


12월은 우리에게 그런 소박하고 빠듯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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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다음주 금요일은 죽어도 시간 비워야돼? 알았지?"


"알았어."


"진짜 진심이야..정말 비워야돼??"


"알았어..너 벌써 4번째 물어보는거야..알았다고요. 꼭 비워둘게"


"치...돈이 부족하면 내가 좀 낸다니깐...그러게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


퉁명스럽게 설겆이 거리를 모아 싱크대로 향하는 그녀.

나는 후식으로 귤을 까먹다가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훑으며 그 탐스러운 엉덩이와 육덕진 허벅지살의 탄력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진청색 핫팬츠 차림에 꽉끼는 흰색 게스 반팔티를 걸친 그녀의 등에 튀어나온 브라끈이 묘하게 섹시해보였다.



"하하...나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알바할줄은 몰랐네."


"등록금이 없어서 그래??"


"아,아니 등록금은 있지..니가 걱정할 수준은 아니야"


내 시선이 한참 브래지어의 후크를 향해 있을 때 뒤돌아보며 등록금 얘기를 꺼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암튼 금요일은 무조건 비워야돼...거기 힘들게 예약했단 말야."


"야 그런건 남자가 하는거지..너는 나랑 상의도 없이 그러냐...."


그녀는 나 몰래 다가오는 금요일 -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추어 종로쪽의

풀장이 있는 호텔을 1박 예약한 것이었다. 극성수기에 과연 저 방은 얼마나할까 싶을 만큼 호화패키지의 구성이었고, 예약한 호텔 방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펴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마냥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패딩 주머니를 더듬어 다시한번 체크해보았다.


그날을 위해 힘들게 모으고 모아 마련한 티파니제 핑크골드 반지..

손바닥에 쥐어보며 그 가벼운 금속쪼가리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힘들게 노동으로 채웠던 지난날을 곱씹어 본다.


아직 세트로 주문한 귀걸이가 도착하지 않았지만 시간은 충분했다.

내일 모레, 결전의 날 그녀에게 이걸 건네주면 그녀가 얼마나 좋아할까.


기뻐할 혜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한없이 뿌듯해졌다.


"너 모해? 왜 집에서 패딩을 입고 있어?"


"응??..하핫 패딩입고 땀내서 살이라도 빼볼까하는데..요즘 뱃살이 어이쿠.."


설겆이를 마친 그녀가 물기를 털어내며 요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역시 바보팅이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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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의 날 아침이 밝았다.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였음에도 첫눈조차 내리지 않은 커플에게는 잔인한 겨울이었다.


전날 한껏 기대에 부푸느라 늦게 잠든 나를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깨워댔다.


[전화 왔습니다 : 수전노총각]


알바하던 편의점의 사장님이었다.

편돌이들 사이에서 일명 `대머리노총각`이라고 불리우던 

아버지 건물에 편의점을 운영하던 마흔 두살의 대머리 사장님의

전화가 나를 깨웠다.


"아, 형.."


"어어, 태영쓰!! 다행이다. 좀 일찍이긴 한데 지금 전화 괜찮지??"


(시벌 지금이몇시인거야..)


눈을 부비적거리며 휴대전화 속 시간을 확인한다..7시 12분..정말 이른 아침이었다.


"아..네..말씀하세요."


"저기 태영쓰 정말 미안한데 오늘 편의점 땜빵알바좀 부탁하자!!!"


"땜빵이요???"


"어, 니가 좀 고생좀 해줘야겠다. 알다시피 오늘이 극성수기잖냐. 근데 상진이 이 새끼가 말도 없이 알바를 째네..나혼자 어떻게 하루종일 할수도 없고 말야."


전화기 너머로 간절한 호소가 들려온다.


나는 잠이 덜깨 멍멍한 머리를 흔들며 텅빈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 맞다..혜진이 어제 집에 갔지..)


어제 반쯤 남겨둔 보리차를 입속에 털어넣으며 정신을 수습하는 나.


"근데 저도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잠깐만해주라, 응? 오후까지 잠깐만 근무해주면 돼. 꼭좀 부탁하자."


24일 알바를 맡기로한 상진이형이 알바를 무단으로 짼 덕분에 새벽부터 교대없이 풀로 근무중인 사장님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호소해오기 시작했다.


"증말 죄송한데 오늘이 여친이랑 디데이라..."


"아씨, 알았어 시급 2배 줄게. 특근 수당으로다가.."


"아주 좋은데 호텔을 잡았거든요..거기가 하루에 얼마냐면.."


"3배!! 3배줄게!! 제발 좀 부탁하자 임마."


".............3시까진 보내주셔야 돼요?"


"점심만 먹고 교대해준다니깐!! 하하하"


그녀는 친구들과 오전 약속을 보내고 오후에 예약한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은 4시..3시 체크인을 앞두고 그녀가 먼저 호텔로가 방을 치장(?)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때문에 3시..3시에 알바를 마칠 수 있다면 충분히 약속에 맞게 갈 수 있으리라..그렇게 생각한 나는 서둘러 땜빵 알바할 채비를 챙겼다.


"3배면 이게 시간당 얼마라는거냐..가만있자..내 시급이 한시간에 얼마더라.."


손가락을 쥐었다 펴면서 머릿속으로 시급을 계산해본다..그 시급이면 잔액 부족으로 포기해뒀던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꽃다발 정도는 사갈 수 있겠다 싶어 내심 만족하며 점퍼를 챙겨입었다. 



그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거절했더라면, 아니 그 전날 그녀를 내방에 잡아두었더라면.


그날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날 점심만 먹고 돌아오겠다던 사장님은 1시는 커녕 약속했던 3시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문제의 편의점은 신림역 모텔가 사거리에 위치했던 관계로  정말이지 손님이 끊이지 않고 유독 많았던 날이었다. 


".......그래서?"


"혜진아 정말 미안해..정말..사장님이 안와서 그래.."


"그냥 가게문 걸어잠그고 와 ..."


수화기 너머로 경고인지, 협박인지..무거운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야 그게 되냐..편의점이.."


"아 몰라!!"


짜증내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그녀. 내가 생각해도 화가 날만한 상황이었다.


"아놔...미치겠구만...."


흡연욕구가 엄청나게 치밀어오르지만 마른침을 삼키며 억지로 카운터를 지킨다.

시간은 벌써 3시반..사장님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거 진짜 위험한데...)


땀으로 흥건히 젖어가는 손바닥을 바지춤에 닦아가며 사장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사장님, 저 진짜 오늘 약속 빼면 안되는데 약속하신 시간을 훨씬 오버하셔서 진짜 이러면 저도 가게문 걸어잠그고 나가야되요.-]


반쯤 진심으로 가게 열쇠를 찾고 있자니 드디어 사장에게서 답장이 왔다.



[태영쓰 정말 미안!! 사실 지난번 소개팅에서 까였던 여자가 점심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분위기가 너무좋아서!! 밥먹고 커피마시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니 이아저씨가 남은 여친한테 살해당하게 생겼는데.."


짜증을 가득담아 서둘러 답문을 적는다.


[-사장님!! 저도 여친이랑 약속있는데 오늘 못지키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태영쓰 , 증말 미안!! 형님도 장가좀 가보자 제발 ㅠㅠㅠㅠ-]


[-됐고, 전화주세요-]


[-ㅇㅇ 지금 영화관이라 전화 못해. 진짜 쏘리~-]


[-영화요?? 아예 데이트를 풀코스로 하시네요??-]


[-어 나 여자랑 처음으로 영화관와봄..ㅎㅎ암튼 끝나면 바로 갈게-]


"시발...."


문자를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바빠진다.


[-아니 뭔영화를 보시는데요? 언제끝나는데요??-]


[-응 , 반지의 제왕. 이분이 레골라스를 좋아한대서-]


"이런 썅노무세끼!!!"


욕지기를 내뱉으며 반사적으로 시계를 훑는다. 시간은 벌써 3시 50분..다섯시를 향해간다.


내가 알기론 반지의제왕은 3시간 가까운 서사판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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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태영이 증말 고생많았쓰!! 이건 특근 수당이고!! 이건 여친이랑 먹으라고 사왔어!! 별거 아닌데 받그라잉"


세상을 다가진듯 행복한 표정으로 오전 데이트를 즐기고 온 대머리 사장은 돈봉투와 샴페인, 크리스마스 케잌과 별도로 택시비까지 내게 쥐어주었다.


"하...하...."


누군가의 불행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오늘 행복했을 것이다. 충분히.


"진짜 고마워잉, 이야~ 덕분에 아가씨랑 분위기 좋았거던..영화가 좀 쓸데없이 길긴 했는데 재밌더라야"


"네에....암튼 그만 가보겠습니다."


 이미 몸은 격무로 녹초가 되어 있었던지라 화날 기운도 없었던 나는 사장이 주는대로 돈과 선물을 챙긴 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새 7시 35분..지금 출발하면 한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저녁을 먹기에도 , 연인간에 이벤트를 하기에도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혜진아!! 나 지금가!!! 금방 갈께!!-]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문자를 보내고 입김을 내뱉으며 택시를 찾기 시작했다


"시발....택시!!!! 거기!! 따블!!!!"



그냥 지하철을 탔어야 하는데 나의 판단미스가 여기서 또 이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의 서울을 그야말로 커플들로 불야성을 이뤘고 도로는 어디든 꽉꽉 마비된 상태였다. 


"아우..시간 없는데.."


마포대교 근처를 넘어 오면서 보이는 정체행렬에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아직 그녀로부터 답장은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여기서 내려서 종로로 어떻게 가야하는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그려보았다..아무래도 지금 이시간 택시로는 답이 없는 듯 했다. 손에 든 무거운 케잌과 샴페인을 이유로 택시를 선택한 자신을 책망할 뿐이었다. 



`띠링`


기다리고 기다리던 문자음. 그녀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바로 휴대전화를 확인해보았지만. 



[-오지마.-]


단답형으로 적혀있는 내용, 발신자는 틀림없이 그녀였다.


[-왜 그래. 화 많이났어?? 나 이제 거의 다왔어-]


필사적으로 그녀를 달래보려는 나.


[-미안한데, 진심이야. 오지마. 오면 안돼. 알았지? 부탁이야-]


[-에이, 혜진아 왜그래 삐진거야? 오늘은 내가 진짜 미안해. 금방 갈께-]


이런 밀당은 이제 좀 졸업할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던 그 때,


[-태영아, 나 지금 오빠랑 있어-]



그녀에게서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

문자 속에 보이는 `오빠`라는 단어에 몸이 얼어붙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향해 통화버튼을 눌러 본다. 

오빠라는 단어만 들었을 뿐이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온갖 추잡한 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뚜르르르르....`


신호음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는 그녀. 그런 와중에 차창밖의 정체행렬을 보면서

더욱 내맘은 조급해지고 있었다. 


"왜 안받는거야..."


어느새 나의 세번째 통화시도도 무시해버리는 그녀.

하는 수 없이 나는 지워버리려다가 저장해뒀던 `그 놈`에게 전화를 건다.



"Why do birds suddenly appear every time you are near...."


이노래..카펜터스의 close to you였다..익숙한 그 컬러링이 또다시 귓가에 울려펴지며 그날의 기억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너무나도 듣기 싫은 그 목소리.

그러나 지금은 들어야만 하는 그 놈의 목소리.


"저기, 이태영입니다."



"...."



"혜진이 남자친구요"


나는 일부러 `남자친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혜진이 바꿔줄게."


그놈은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엔 순순한 태도로 혜진이를 바꿔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야..오지 말라고.."

"혜진아!!"


갑자기 언성이 높아진 탓인지 택시 기사가 이쪽을 흘끔 쳐다본다.


"오지말랬잖아...부탁이야. 오늘은 연락하지말아.."


"너,...너...지금 뭐하는거야 거기서.."


"........나중에 얘기하자."


"야!!! 너 그놈이랑 거기서 뭐하는거냐고!! 그놈이 왜 거기있어!!어??!! 왜 그놈이 거기 너랑 같이 있냐고!!!"


나는 휴대폰을 상대로 이미 이성이 반쯤 나가버린 것 마냥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중에 다 얘기해줄게...미안해..오늘은 만나지말자."



"야!!! 염혜진!!!!!"



"미안, 끊을게. 오늘은 찾지마. 연락할게."


그렇게 전화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너무나도 허무하게 끊어졌다.


"하.........."


할말을 찾지못하고 머릿속이 새햐얗게 변해버린 나.


"학생...저기..계속 갈까??"


택시기사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계속 가야할지.

돌아가야 할지.


이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택시안에는 주파수가 어긋나 노이즈가 간간히 섞인 라디오의 채널에서 구닥다리 캐럴이 흘러나오며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아......."


나는 차창을 열고 한숨을 뱉어본다.


아직도 가득 정체된 창밖의 차량행렬속으로 캐럴소리와 함께 내뱉은 내 입김이 녹아 부서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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