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인 친오빠에게 성폭행 당한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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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7:24 조회 856회 댓글 0건본문
도와주세요.너무나도 억울하여 이렇듯 글을 올립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친오빠로부터 수십년간 성폭력을 당했습니다.제 위로 오빠 세명이 있는데, 그중 첫째인 큰오빠입니다. 그 오빠와는 5살 차이가 납니다.ㅈ학교 2학년때는 실제 성기삽입이 있었으며, 그 후로는 부부관계보다 더한 횟수로 성폭행을 일삼았습니다.엄마는 일찍부터 교편생활을 하셨던 터였고, 그것도 집이 있는 곳이 아닌, 시외 지역으로 직장을 다니셨습니다.그래서 엄마는 직장생활과 가사에 항상 바쁘셨고, 제일 어린 막내인 저를 거의 큰오빠에게 맡기셨습니다.유치원 데려다주기, 학교 등하교 챙기기, 씻기기, 먹이기....등 오빠가 제 팬티를 갈아입히고 숙제 도와주고..., 저에 관한 거의 모든 일을 다 도맡아 했던 기억이 납니다.어렸을 적부터 큰오빠는 저를 항상 많이 만졌습니다.그때는 제가 아직 어린 아이였고, 큰아이는 막내인 저를 가장 예뻐하고 챙겨주는 그런 거라 생각했습니다.그리고 그 때는 지금과는 달리 성에 대해 개방적인 시대가 아니였던 터라 성에 대해 무지하였으므로, ㅊㄷ학교 시절에는 그러한 부분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었습니다.하지만, 제가 남녀공학이 아닌 여학교인 ㅈ학생이 되면서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어렸을 적부터 내내 이루어졌던 행위들이라, 어떻게 할수가 없었습니다.오빠는 집안에서 아빠보다 더한 지위를 가진 부모님보다 더 무섭고 어려운 존재였습니다.무엇이던지 오빠가 맞다고 하면, 그건 맞는 사실이 되는 거였고, 아무리 명백한 흰색도 오빠가 검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검은 색이었습니다.오빠에 대한 엄마의 신임과 기대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였었습니다.학교 성적이 전교 1, 2등을 놓지 않는 우등생이었고, 오빠가 심기가 불편하여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날은 온집안이 먹구름이었습니다.공부하다가 짜증이 난 오빠가, 부엌에 들어와 유리컵을 내던져 산산조각이 나도, 엄마가 담고 있던 김치통을 바닥에 내동이쳐도...엄마는 아빠에게 쉬쉬하며 그저 눈물만 훔치며 말없이 치울뿐, 되려 오빠를 달래며 오빠에게 전전긍긍하였습니다.나중에는 엄마에게 미친X...이라는 말또한 서슴지 않고 나올 정도였습니다.집안에서 이러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큰오빠였습니다.이런 분위기에서 막내인 제가 오빠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제가 ㅈ학교 2학년 때, 오빠는 ㄱ 3 수험생이었고 집에서는 오빠에 대해 더욱더 전전긍긍하였습니다.부모님의 기대대로 오빠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였고, 시간이 많아진 오빠는 부부관계보다 더한 횟수로 저를 성폭행하였습니다.제가 ㅈ학교 1학년 때, 수학시험에서 두개를 틀려, 오빠에게서 테니스채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백대도 넘게 맞아 걷지도 못하는 일도 있었지만, 오빠편만 드는 엄마로부터 듣는 건, 되려 야단이었었습니다.이렇듯 모진 일을 당하여도 저는 아무런 얘기도 못하였고, 무섭고 두려운 오빠에게 저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그렇게 성장기를 보냈습니다.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상실한 저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저의 삶은 없었습니다.철이 들면서부터 여성의 몸이 되가는 그러한 성장기를 보내면서 저는 수없이 자살 시도를 하였던 기억밖에 나지 않습니다.미래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한창 꿈 많은 소녀로 자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끊임없는 자살시도와 제 자신을 학대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습니다.고등학교 2학년때는 담임선생님이 아무 얘기나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쓰라고 해서 필명을 호랑나비로 하여, 담임께 저 임신한것 같아요...라는 글을 무기명으로 써서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깜짝 놀란 선생님이 당사자인 저를 찾았으나, 그저 장난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어느 누구에도 말하지 못하였고, 어느 누구에서도 도움 받지 못한 저는 그렇게 성장했고...지옥보다 더한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대학 진학이라고 생각하여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진학을 하였습니다.그렇지만, 집에서 한시간 반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 어김없이 주말이나 방학때는 집에 왔어야 했습니다.대학생이 된 저는 오빠에게 반항하였으나, 개나리X, 미친X, 잡X...이라는 욕지거리와 함께 쏟아지는 폭행속에서 어쩔수 없이 또다시 성폭행은 이루어졌습니다.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는 오빠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너무나도 두려운 저는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하게 아무 연고도 없는 마리아 성모원, 이라는 미혼모보호시설로 도망을 갔습니다.하지만 어떻게 찾아내셨는지 엄마는 저를 찾아 오셨고, 엄마 뜻에 따라 강제로 임신중절수술을 하게 되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그 이후로는 방학 때마다, 친척집, 친구 자취방, 독서실을 전전하며 그렇게 방학을 보냈습니다.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제 나이 26살이 되어 저는 엄마 뜻에 의해 중매를 통해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오빠 손아귀에서 벗어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성폭행에 노출이 되었었고, 임신중절까지 한 저는 쉽사리 임신이 되지를 않았고 시험관아기를 수없이 시도하여 결혼 6년만에 2002년 쌍둥이를 낳았습니다.그러던 어느날, 2006년 가을.... 저의 애들이 5살이 되던 했였습니다.오빠는 저의 집으로 찾아와 애들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는 저를 수없이 때리고 짓이기며 또다시 성폭행을 하였습니다.저도 강하게 반항을 하였으나, 아이들이 깰까봐 몹시도 두려웠던 저는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습니다.그 당시 오빠는 병원을 짓고 있었는데, 제 애들 아빠에게 같이 일하자며 계속 애들 아빠를 설득하는 중이었습니다.외과의사였던 애들 아빠가 필요했던 것입니다.지분 없이 무상으로 들어올 것이며, 외과에서 나오는 수익은 전부 다 고스란히 줄것이고, 집도 사주겠다.다만 오빠가 바라는 것은 오빠 전공인 내과만으로는 규모를 키울 수 없으니, 시너지 효과만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오빠는 전문의 시험에 연거푸 낙방하여 삼수만에 내과 전문의가 되었던 이력이 있습니다.지금으로부터 수년전이지만, 수십억 의료보험사기건으로 구속되어 9시 뉴스 1면에 나왔었고... 그러한 오빠를 그닥 좋아하지 않던, 애들 아빠는 동업에 한사코 마다하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강간하고 난 후, 오빠가 제게 말하기를 네 신랑이 오게끔 설득해라. 안그러면 계속 오겠다. 너 이러면 결혼생활 잘 유지될것 같냐...그렇게 협박의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그리고 며칠 후, 오빠는 정말로 또 찾아왔고...그 때는 애들이 자지 않고 놀고 있어서 그저 부엌에서 제 아랫부분를 만지는 성추행하는 것으로만 끝났습니다.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아빠가 모든걸 알게 될까봐 정말 두려워 애들 아빠를 무턱대로 졸라댔고., 계속 설득하게 되었습니다.결국 우리는 이사하게 되었고 병원은 얼마후 2007년초 오픈하게 되었습니다.하지만 모든 것은 사람을 이용하기 위한 악랄한 오빠의 거짓이었습니다.약속과 달리, 수익이 아닌 월급만 주었고, 서류철 밑에 살짝 끼어놓는 수법으로 5억여원에 이르는 보증을 세우는 등, 중노동과 인격모독...과다한 스트레스로 애들 아빠는 심장 부정맥이 왔고 4개월도 안되서 그만 두었습니다.저는 너무도 분노가 일어서... 이게 사람이란 말인가....제게 한 짓도 모잘라, 애들아빠에게까지....오빠에게 따지고자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그런데 그곳에서 저는 오빠가 제 치마를 들추고 아랫부분를 만지는 등, 성추행만 당하고, 내 알맹이를 왜 너한테 주겠냐는 뻔뻔한 말밖에 못듣고 왔습니다.이 와중에도 엄마는 그저 오빠편이었고, 병원 개원이 얼마 안되었는데 그만 뒀다며...되려 애들아빠가 나쁜X이라는 것이었습니다.그렇게 이용만 당하고 우리 가족은 광주로 다시 이사를 오게 되었고...저의 정신적인 충격은 너무나도 커서 제대로 살수가 없었습니다.제 자신을 잊고자 계속 게임중독에 빠져 제 자신과 애들마저 돌보지 못하게 되었고, 자살충동이 계속 심하게 일어 정신과를 찾아가게 됐습니다.결국엔 황폐해진 제 자신으로 인해 애들아빠와의 결혼생활은 불가능했고 애들아빠와는 이혼하였습니다.현재는 재혼하였습니다.이게 사건화 된 계기는...저의 이상한 행동들, 밤마다 꾸는 악몽, 자살시도 등...이 모든걸 이상히 여긴 현남편이 자꾸 추궁하게 되었고 결국 현남편이 알게 된 것입니다.너무도 분노한 남편은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그럴수가 있느냐,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짓을 하느냐, 딸 있었으면 딸한테도 그런 짓 할 인간이다,암이라는 병에 걸린건 하늘이 내린 형벌이다...이런내용의 문자메세지를 보냈습니다.그리고 며칠후 오빠와 남편은 첫 통화를 하게 됩니다.오빠와 현남편은 통성명은 물론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그런데 남편더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선생님만이 저를 살릴수 있는 거 아닙니까...살려주십시오 미국이라도 찾아가서 할복하겠습니다...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큰일납니다...살려주십시요...이러한 본인의 말만 잔뜩 늘어놓고는 그럼, 된걸로 알고 그만 끊겠습니다...감사합니다....하는게 오빠의 전화였습니다.오랜 시간동안 끊긴 제 안부 한마디 묻지 않았고, 제게 잘못을 빌으라는 데도 답도 없이 그저 살려달라는 본인의 말로만 일관하였습니다.남편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왜 동생이 잘 있냐는 말도 안물어보냐...당신이 사람이냐...3일의 시간을 줄테니, 와서 무릅꿇고 사죄하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3일 후, 오빠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저는 광주학동 아남 아파트, 부모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하지만, 부모님은 제게 문전박대를 하셨습니다.현관문도 안열어주신 부모님은 나중에 나오셔서 집 앞에 있는 마트, 주차장에서 저보고 소리치셨습니다.미친X, 혀깨물로 죽어버려라... 오빠가 조금 한거가지고 오빠 등쳐먹을려고 하냐...시종 욕하시고 소리 지르시는게 전부였습니다.저는 부모님 집에는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했구요.제가 부모님 집에 가기 바로 전에 오빠는 부모님한테 가서 미리 연막을 뿌려 놓았더군요.부모님마저 외면해버리고...너무도 처참한 심정. 사실, 엄마는 오빠가 수없이 저를 성폭행했다는 걸, 엄마는 알고 계셨습니다.옛날 언젠가 엄마에게 얘기한적 있습니다.그래서 임신한 아이도 오빠 아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계실거구요,집도 아닌 타지에서 성년이 넘은 딸을 오랜시간동안 친구집이며, 독서실이며에 머물게 한것이며, 친척집 등을 전전하며 저를 도피시키신 게 엄마이니까요.제가 예전에 엄마에게 얘기 했을 때, 그때도 엄마는 별반응이 없으셨습니다.그랬구나.... 미안하다...엄마가 못 지켜줬구나... 어쩐지 네 방에서 나올때마다 고.추.가 벌떡벌떡 서있더라...미안하다....이뿐이었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오빠를 야단친다던가, 저를 위로한다던가, 저를 치료시키고자 하는 이련의 행동들은 아무런 것도 없었습니다.차라리 그 때, 엄마가 어떠한 조치라도 취해주셨다면 결혼후에 애들 옆에서 성폭행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제가 제손으로 애들까지 못 키우게 되는 이러한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겁니다.오빠와 엄마에 대한 원망, 처절함, 분노...부모님 집에는 발도 못 들여놓고 돌아서는 제 발길이...너무도 안떨어지더군요.그저 내 속이라도 알게, 엄마가 말만이라도 들어주세요... 라는 것이었는데. 남들도 이런 얘기가 나오면 무슨 말이냐고 붙잡고 들어보는 것인데, 이렇게나 저를 처참히 뭉개버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