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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 2명 따먹은 썰 16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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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1:37 조회 62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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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 http://www.ttking.me.com/230816

나는 제대 후 모든 사정을 알게 된 다음  순희에게 썼던 편지를 서류 봉투에 챙겼다. 

순희가 결혼을 했던 안했던... 그건 순희에게 돌려 줄  언어들이다.


깡철이가 알려준 순희의 주소는 서울 XX구○○ 동 이었다. 

나는 그랜저를 한적한공터에 세워놓고 물어 물어 길을 찾아 헤맸다.


그 옛날 윤지영과 관계를 끊고 사랑하던 순희의 시골집을 찾아 물어 물어 헤매던 기억이 떠 올랐다.

주소를 가보니 주택가가 밀집한 대로변의 한 화장품가게로 되어 있었다.


여기 맞는데..난 화장품 가게 앞을 기웃 거렸다.


갑자기 딸랑딸랑 화장품 문이 열리더니 소리가 났다.


"또 오세요..."


어떤 중년부인이 나가고 배웅을 하는 앳된 여자 주인이 보였다.

키 160센티의 늘씬한 체격 약간 도톰한 입술.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그래, 순희였다. 


난 한동안 몰래 지켜보며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군시절 어머니의 부탁으로 외삼촌은 보안대를 시켜 나와 순희의 면회를 막았다.

위병소에서 내가 면회를 거부한다고 내 아이를 임신한 배를 붙잡고 쭈그리고 앉아서

서럽게 울다가 돌아섰다는...순희였다.


세월은 앳된 20대 초반의 순희를 원숙한 30대로 바꿔놓았지만..순희는 별로 변하게 없었다.

변한게 있다면 긴 생머리 쌍둥 자르고 단벌머리에 핀을 꽂은 머리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생활인처럼 보였다는 것?


난 담벼락에 기대 꺼이꺼이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용기를 냈다.


"계세요?"


난 문을 열고 화장품 가게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가게 안에는 순희 밖에 없었다.

난 벽을 보고 뿜을 뻔 했다. 철 지난 가수 이용의 대형브로마이드가 붙어있었다.


맞아, 순희가 가수 이용 좋아했지. 저거...우리 집에서 일할 때도 자기방  벽에 붙어 있던 건데...


순희는 한창 화장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


나한테 인사하려다가 나를 알아보더니 말을 멈췄다.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순희야....잘 지냈어?"


그 옛날 순희와 헤어지고 시골집을 찾아 다시 재회할 때처럼 난  어색하게 순희와 인사를 했다.

그때와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순희는 나를 보더니 한참 말이 없었다.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화장품을 정리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태연하게 말한다. 마치..마치....아무일 없었던 것 처럼..


"지훈씨, 참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응..그냥..너는?"


"나야 뭐 보시다시피.."


다시 순희는 묵묵부답으로 한쪽 옆에 작은 TV를 켰다.


"요즘 <엄마의 바다>라는 드라마 재밌던데 재방송 안하나..."


헐.. 순희도 .나도 별 말이 없었다. 사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서서 쭈삣거렸다. 한쪽 구석에 보니 작은 방이 있었고 살림살이가 보인다.

순희는 여기서 아마 먹고 자고 하는것 같았다.


"지훈씨, 그렇게 서있지 말고 앉아. 커피 한잔 줄까?"

"응.."


난 한쪽 작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그 긴 세월을 헤어졌었건만 순희와 나는 마치 몇 달 못본 것 같았다.


"아버지와 동생은?"

"응,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셔. 동생은 지금 중동에 기술자로 나가 있는데 올해말에  들어와".


"아, 그래도 다행이네...."

"지훈씨, 부모님도 건강하시지?"


"응...."


나는 잠깐 창문 밖을 봤다. 내리는 봄 햇살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봄 햇살이 나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순희야...옛날에 나 군대 있을 때 말야...."

"옛날에 뭐?"


"그..그 때...."


시발...난 목이 매었다.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걸..그 아픔을. 어떻게 말로 설명하랴.


"...그냥 이거 읽어봐" 


난 눈물로 썼던 편지를 가만히 내밀었다.


"거기다가 내려놔."

순희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린 참 한 때 다정했던 연인이었는데...


할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먼저...또 그때 그 시절 처럼 아주 유치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순희야..혹시....혹시...만나는 사람 있니?"

"응, 나 곧 결혼할 사람 있어."


순희에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저 미소는 행복한 미소다. 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햐....신은 참 야속하고 가혹하네요.

내..내가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는데....꼭 꼭 이래야만 하는지... 눈앞이  파래졌다.  


"추...축하한다. 순희야..."

"고마워..."


난 다시 고개를 떨궜다. 그 누가 알으랴... 터질 것 같은 내 가슴을..

아니, 이미 무너져버린  내 마음을...


난 순희 발만 말없이 뚫어지게 바라봤다.

휴...다시 힐끗 살림방을 돌아봤다.


어, 좁은 방에는 장난감도 보이고 한글 배우기 그림도 벽에 붙어 있다. 아이의 흔적이 보였다.

아..순희는 어쩌면 남자랑 동거를 하고 애낳고 사는지도 모른다. 

하긴 지금도 형편 어려우면 결혼 안하고 그렇게 사는 동거하는 사람 많다..


딸랑딸랑

손님인듯 아주머니 한분이 오셨다.


"어서오세요. 아, 사모님 오랜만이네요."


난 잠깐 나가서 담배를 한대 태우고 마음을 추스렸다.

아주머니가 한참 고르더니 화장품 세트를 사고 나갔다. 난 다시 가게로 들어왔다.


"순희야."

"응..."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지?"

".........."


"결혼할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제 좀 나아지겠지."


순희는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갑자기 순희의 눈이 눈물로 충혈되었다.


"지훈씨도 힘...힘들었잖아."


어, 순희도 내 마음을 아나....그 말 한마디에 난 갑자기 눈물이 쭉 흘렀다. 쪽팔리게..

1살 연상이라서 어딘가 늘 누나같던 순희였다.


그렇지만..그렇지만...이번에는 내가 한발 늦었다. 할 수 없다. 이것도 운명인가 보다. 


"순희야..우리 그때 그 시절 군대에서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다 지난 일이니 이제 됐고..."

"............."


"너도 지금 잘 지내니... 그것도 됐고..."

"..............."


"결혼할 사람 있다고 하니...."


이 말을 할 때 난 갑자기 목이 더 메였다.


"자... 그것도 됐다."


순희 눈에도 눈물이 함께 흘러 내렸다.


"그럼 다 됐다. 다 좋다...자, 순희야, 잘지내. 잘 살고. 내가 결혼식에는 꼭 가도록 노력할게."

".........."


"편지는 꼭 읽어봐, 난 그럼 간다.."


난 화장품 가게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 때였다.


"야! 강지훈!"


울음섞인 순희의 목소리였다.


난 잠깐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순희가 내쪽으로 걸어온다.


"지훈씨.. 그래서..이번에도 또 그냥 가는거야?"

"응?"


"되긴 뭐가 돼..."

"순희야..."


순희가 다가 오더니 내 옷을 잡는다.


"지훈씨 내가 예전에 우리 시골집에서 한 말 기억나?" 

순희의 큰 눈에는 이미 아까보더 더 많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뭐... 뭐?"


"내가 3년이고 10년이고 지훈씨 기다릴수 있다고 했지?"

"순희야. 너..결혼할사람 있다고 했잖아?"


"지훈씨는 예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철이 없어. 이 목걸이 안보여? 안보이냐고...엉엉...."


어어어......

순희 하얀 목에는 그 옛날 내가 군대가기전에 사준 18K 목걸이 걸려있었다. 아아..순희야..


뭐야? 그럼 그 곧 결혼할 사람이란게 ....그러니까..나...나였던거야?.. 아아..시발...


"으엉헝....강지훈, 이 나쁜 자식아...나보고 언제까지 또 기다리라고.. 

이번에도 그냥 가니....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순희야..."


"지훈씨 나 버린 줄 알고 나 정말 죽으려고 했었어..으헝헝....그래도 뱃속의 애기 때문에 살려고 하니 살아지더라.

"뭐?"


"내 학력으로 뭐 할 수 있는게 있어야지. 식당에서 접시도 닦고... 남의 집애기도 봐주고...으엉헝"

나..난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엉엉.. 그래도..작년까지 너무 힘들어서.. 나 지훈씨 찾아서 집앞에 애 버리고 올라고 그랬다구.진짜.." 


애라니...애?  순희의 애...

뭐..뭐야...너 지금 무슨소리 하는거야?


난 의아한 눈으로 순희 얼굴만 바라봤다.


"강지훈, 그런데 넌 어떻게 네 자식도 몰라보니......"


난 망치, 아니군대에서 쓰는 해머로 머리를 그대로 가격당한 기분이었다.


"지훈씨가 우리 재철이한테 말 걸때...난 혹시나... 혹시나 했다..."


아아아...

생각난다.  작년에  집 앞에서 동네 꼬마에게 둘러싸인 길 잃은  어린아이. 

우리 동네는 길 잃을 장소가 아니라서 의아해 했던....


아..맙소사!


"그래, 지훈씨...지훈씨...나 버리더니..이젠 우리 재철이도 아빠없는 애 만들려고...지금  그냥 가는거야?"


재철이라고..그럼 강재철이라고....?


맞아. 내 아들이 생긴다면  돌림자가 '재'자 항렬이다..그랬구나...아아..그랬구나..

언젠가 내가 순희에게 그거 말한 적있는데...우린 양반가문이라서 애낳으면 반드시 가운데 돌림자 넣어야 한다고...

순희는 그거 기억하고 있었구나..그래서 이름도 그렇게 지었구나.


아, 시발...순희야...순희야...엉엉엉엉....


그 때 내가 자꾸 지훈씨 찾으면 지훈씨 더 힘들어진다고 깡철씨가 얘기했어....휴전선 전방으로 가야할지 모른다고. 

거긴 더 위험하다고. 그리고 나보고 빨리 서울로 이사가라고 했어. 지훈씨 부모가 애 낙태시키려 할지 모른다고. 

그 사람들은 이 5공 하늘 아래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깡철씨가 나 서울로 이삿짐 날라주더니 그 뒤로 안보이더라. 


지훈씬 편지도... 안오고 면회도 안되고...


난 지훈씨 변심한걸로만 알고... 몇 번이나 죽으려고 한강대교에 올라갔어....아빠는 아프고..내 동생은 어리고... 

나혼자게 어떻게 해..그럼..

그런데 내가 막 한강에  뛰어드려고 하는데 우리 재철이가 뱃속에서 막 발을 구르는거야....

엄마..죽지말라고...제발 죽지말라고... 어떻게 알고.... 애기가 내 뱃속에서 요동치는거야. 

그러니..내...내가 어..어떻게..죽어..으헝헝헝...

그래서 지금까지 악착같이 살아냈어. 


살다보니 별 신기한일이 있더라.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지훈씨 가까이 있고 싶어서... 

신촌에서 재철이 업고 식당일 하는데 어떤 여자 손님이 들어왔어.  낯이 익더라. 

아니, 내가 평생 그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어.


깡철씨가 보여준 그 사진 속의 그 여자....그런데  다른 남자와 손잡고 오더라. 난 기가 막혔어.

내 신세 망친 그 여자가... 내가 혹시 먼저 'H대 다니시지 않았나요?' 라고 물었더니 맞대. 


'그럼 강지훈씨 아세요?' 라고 했더니... 오히려 나 빤히 쳐다보더니... 

내 이름을 묻더라 정순희라고 했지. 놀라면서 나한테 이러는거야. 


'강지훈씨는 그래도 전역하고도 당신 못잊어서 혼자 살고 있는데...당신은 벌써 결혼해서 애까지 있네요.

야, 대단하다.  같은 여자지만 참 순희씨도 그러는거 아니네요. 

그래도 당신 혹시나 돌아올줄 알고 지훈이는 기다리고 있는데...

지훈이가 알면....햐....난 오늘 당신 못본거에요.'


그러더니 식사도 안하고 나가버리더라.


나 그 때 엄청 충격받았어. 그 때부터 난 우리 사이가 어딘가 잘못었다고 생각했어. 

내가 왜 지훈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그때부터 지훈씨가 나 반드시 찾을거라고 생각했어.


나 애 데리고 혼자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내가 이렇게 버틴 것은 지훈씨가..어헝헝...

지훈씨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어서 그래..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이겨냈는줄 알아. 


그런데 그런데...왜 그렇게 늦었어. 순희는 대성통곡을 했다.


"미안해.....흑흑흑"


"깡철씨 며칠 전에 여기 왔엇어. 몇 년 감옥갔다  왔다더라. 그리고 갑자가 나한테 무릎꿇더니 용서 구했어. 

깡철씨가 다 말해줬어.."


"까..깡철이가?"


"엉...자기가 한 때 빨갱이 이념에 미쳤었다고..그래서 나도 모든 거 다 알았어. 내가 그동안 잘 견뎠더니..

복이 오는 구나..이젠...이젠 우리 지훈씨 올 때가 되었구나 싶었어"


"흑흑흑...."


금방 딸랑딸랑 출입구의 방울 소리가 난다. 

노란 유치원 봉고차가 막 지나간다. 


"엄마!" 

한 아이가 들어왔다. 어, 진짜... 그때 그 아이다. 저, 이목구비.. 아이고...맙소사....


그때 진짜 난 신이 존재한다는 것 깨달았다.


내 친구 박형우 전도사가 얼마전 나한테

"기도 중에 네가 이상하게 가족과 행복하게 지낼 것 같다는 느낌이 난다"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을 때 

엉겹결에 따라했는데 진짜 현실이 되었다.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순희가 다정하게 아이 가방을 들어주고 손을 잡는다.


"재철아,  오늘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

"엉...엄마?  그런데 이 아저씨 누구야?


"응, 아빠 왔어. 엄마가 아빠 외국에서 돈 벌고 금방 올 때 되었다고 그랬지? 엄마 말이 맞지?"


"아빠? 그럼 나 재철이 아빠야?"


재철이는 낯선 내모습에 나한테 선뜻 못다가오고 슬그머니 엄마 옆으로 숨는다.


"뭐해, 지훈씨.  얼른 안아주지 않고. 얘가 얼마나 아빠 찾았는데..

유치원 친구들은 다 아빠 있는데 왜 자긴 아빠 없냐고 나한테 맨날 물었는데...어엉헝.."


나는 재철이 앞에 가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엉. 재철아. 아빠야, 아빠가 돈 버느라 우리 재철이 보러 지금에서야 왔네. 

흑흑...아빠가..아빠가 너무 미안하다...아빠가...아빠가 참 너무했네..아빠가 죄가 많다..으헝헝..."


순희도 옆에서 울고 있었다.  순희가 우니 재철이도 따라서  운다.

"엄마 왜 울어? 엄마 울면 재철이도 슬프잖아."


우리 세식구 참 너무 멀리 돌아왔구나. 이제..이제 다시는 뿔뿔이 흩어지지 말자.....

그 날 난 순희와 재철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5월의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봄날이었다.



<에필로그>


아버지는 지영이의 죽음 이후 많이  달라지셨다.

내동생 지영이 그렇게 보내고 화장터를 나올 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한마디 하셨다.


"지영이가..요 앞에 사는 석호라는 애를 그렇게 사랑했답디다..."

석호가 누구냐는 듯 아버지는 어머니를 쳐다봤다.


"군대 갔다가 죽은 연탄가게집 둘째 아들 석호요, 당신이 전라도 사람이라고 절대 어울리지 말라고 했던.. 

그 집 둘째아들이요..흑흑"


충격을 받은 듯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그저 먼 서녘 하늘을 바라 보았다. 


어머니는 나와 순희의 모든 일을 병상의 아버지에게 귀뜸했을 때 아버지는 다짜고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셨다.


"뭐라고...당신 뭐해,  당장 ... 우리 손주 데려오지 않고 뭐해..당장...."


줄곧 누워만 계시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재철이 손을 잡았다.


"얘...얘가..재철이....내...내....손 .손주라고...얘..얘가.... 우리집 장손이라고.."


아버지는 재철이를 안고 꺼이꺼이 우셨다.

지영이 죽었을 때 말고는... 평생 가족앞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던 그 아버지가...


조상  뵐 면목있다고 어린 애 처럼 좋아하시며 재철이랑 놀아주시던 아버지는 이듬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긴 전에 순희 손을 꼭 잡고 유언처럼 남겼다.


"며늘아, 참 고맙다......"

나는 그 순간  유교적 가부장제로 내 안에 쌓였던 아버지와 모든 애증이 순식간에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가 허락하시고 바로 순희와 결혼식을 올렸다.  내나이 29살, 순희 나이 30살 때다 


우리 부부는  그 뒤로 재희와 재경이 두 딸을  더 낳았다. 

어머니는 순희에게 미안한지 잘해주셨다.  

어머니는 몇년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순희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와 우리집에서 함께 모셨다

어머니도 동의하셨다. 장인어른도 돌아가실 때도 우리아버지가 순희에게 했던 것 처럼 

내 손을 잡고  "참 고맙다. 사위.."라고 하셨다.


외삼촌과 함께  경영하던 회사는 승승장구 하고 모범납세자로 표창까지  받았는데  IMF 때 직격탄을 맞았다.


김영상 정부는 군사정권을 몰아세우고 하나회 척결하고 5.18 법 제정하는 등 과거사 청산에는  열을 올렸지만.. 

정작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등한시하고  단군이래 최대 재앙이라는 IMF를 불렀다.


군사정권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 보다 몇배..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자살했다.


국가는 개인에게 과연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난 직원들의 반을 내보내고... 

내 지분을 정리해 외삼촌에게 매각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 부동산 사업을 했는데 재미를 좀 봤다. 그러다 투자한 회사에 이사로 들어가 여기까지 왔다.


에쿠스 타고 콩나물 사러 다니던 검소한 아내 순희는 2년 동안 암으로 투병하다가 작년에 세상을 등졌다.


아내가 그렇게 걱정하던 하나밖에 없는 처남에게  아내를 위해 살아생전 아꼈던 용인땅을 증여한 것은 잘 한일이다. 

아내 앞으로 나온 보험료도 처남네 애 대학학비로 줄 계획이다.


아내는 평소에 '중학교 밖에 못나온 가정부'인 자기랑 결혼해줘서 고맙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내장례는 내 친구 박형우 목사가 집도했다.  형우는 아내가 요단강 저편 밤 하늘의 별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


착하기만 했던 우리 아내 순희...

살아 생전 그렇게 나를 기다리더니...이제는 죽어서도 별이 되어 나를 기다리는구나...


순희가 오래 기다리면 안되니까...나도 빨리 순희에게 가야지 하면서도 ...


철없는 우리 아들 재철이,두 딸  재희, 재경이 시집 장가는 다 보내고가 가야 아내에게 볼 면목이 있을 것 같아서 

난 더 오늘도 열심히 묵묵히 살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날들이 한바탕 소극같다 . 

지금도 아내 생각나면 애들 들을까봐 몰래 화장실 가서 수돗물 틀어놓고 크게 소리내어 운다.


나는 우리들의 젊은 날을  둘러쌌던  80년대와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내 삶을 

아내 순희와의 사랑과 함께 야설의 형식을 빌어 언젠가 한번은 정리하고 싶었다. 

다른 분들에 비해 한참 모자란 재미의 졸필을 마친다. 


오는 주말에는 아내가 좋아하던 장미꽃 사들고... 애들이랑 아내 무덤에 다녀와야 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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