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상간을 꿈꾸며.. 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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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7:35 조회 2,131회 댓글 0건본문
그렇게 몇년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30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
엄마랑 성관계를 맺었던게 갓 스물세살되던 연초였으니깐 6년이나 흘렀다는 얘기지.
전편에서도 다뤘지만 필름 끊기고 엄마 가게에서 나도 기억 안나는 사고를 친후 조용히 지냈다.
물론 속으로는 항상 모자상간의 욕망을 품고 엄마를 따먹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위로했지만.
그렇다고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만 있었던건 아니고 공익소집해제후에 잠시 놀긴 했었지만
곧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지.
처음엔 평범한 사람들 처럼 동네의 피시방 알바부터 시작해서 만화방에서도 일을 하고 기타 잡다한
일들을 하며 지냈어.
그리고 월급받은걸로 엄마 용돈도 드리고 외식도 시켜드렸지.
그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던거 같애. 좋아하시던 엄마 얼굴이 눈에 선했으니까.
이때쯤해서 피시방 알바사이로 만난, 내가 많이 좋아했었던 년과 헤어지고 난후 잠시 방황하고 있었어.
2년여 넘게 사귀고 그년집에 가서 여친 어머님께도 인사드릴 정도로 뭐랄까.. 좀 진지하게 만난 여자였지.
이전까지 몇번 여자경험이 있긴했지만 오로지 상대 여자에게만 집중했지 가족들의 시덥잖은 일상까지
꿸 정도로 깊게 만남을 가진건 이때가 처음이었어.
솔직히 말하면 결혼까지도 생각을 했었으니까.
현실이 가로막더라.
까놓고, 중졸에다가 스펙도 전혀없고 아버지가 죽진 않았지만 홀어머니 모시고 넉넉치 않게
살아가며 일은 또 알바 전전하면서 100정도 받는 형편이었으니..
서로 좋아해서 만나는거 까지는 여친 부모님쪽에서 터치하지도 않고, 집에 한번씩 찾아갈때마다
맛난것도 많이 내오고 살갑게 맞아주셨었거든.
이게 좀 깊게 만남이 이어지다보니 여친이 결혼얘기를 꺼내니깐 그때부터 반대가 격렬해지셨다.
한번은 여친 어머님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말씀하시더라구 이쯤에서 그만해달라고.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어.
나도 많이 힘들었거든.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여자하나 책임질수있는 형편은
절대 아니었으니깐.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고.
바로 헤어지진 않고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 한동안은 우울해하는 여친을 달래가며 만났어.
생각만 해뒀다가 실행을 못해본 당일여행도 둘이서 갔다오며 추억을 쌓았고.
그리곤 헤어지자고 먼저 통보를 하고 그렇게 끝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참 기분이 씁쓸하더라구. 그때서야 지난일들이 후회도 되고
철이 없었구나하는 자책도 들고 말야.
노력이란걸 좀 해서 스펙도 좀 쌓고 대학도 다니고 버젓한 직장을 가졌으면 충분히 행복하게
해줬을텐데.
일하던 피방도 그만뒀고 바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집에서 좀 쉴까라고도 생각했었는데 며칠 있다보니깐 잡생각만 들고 나도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더라구. 몸이 축 쳐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서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지.
한도 끝도 없을거 같아서 몸을 혹사 시키면 좀 낫지않을까 싶어 아침일찍 인력사무소를 나갔어.
이것도 사무실을 잘 만나야 좀 편하고 집에서 가까운곳으로 배정받는데 쌍팔년도 주먹구구식,
일감주는 대가리새끼가 융통성이 전혀없어서 매일 집에서 1~2시간 거리의 소도시로 뺑이쳐가며
일을 했어. 것도 매일 다른곳으로 말야.
키가 큰 편이어서 일나갈때마다 폼곰방이나 철거같은, 노가다중에서도 노가다쟁이들이 기피하는
빡센일을 했는데 일 마치고 집에올때쯤엔 온몸이 근육통으로 욱씬 거리고 몸 대충 씻고 자기 바빳지.
그렇게 한달쯤 몸고생을 시키니깐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더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게 말야.
그리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
인연이 안되서 그년은 놓쳤지만 아직 젊디 젊은 나이였고, 아직 인생의 절반도 못 온거 같은데
나중에라도 맘에 드는 여자가 생긴다면 그땐 돈이 넉넉하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지.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구한일은 공장이었어.
쇼핑백만드는 공장이었는데 일하는시간도 적고 돈도 제법 주는것 같아서 (180정도)
시작했는데 열흘인가 하고 관뒀다.
일은 별로 안힘들었는데 반장이라는 사수새끼가 지가 가르쳐줘놓고 그딴식으로 하냐고
매일같이 질러대서 말야.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처녀 하나가 첫날부터 관심을 주고, 때려치던날에도 문자를
보냈었는데 씹었다. 따먹고 버릴걸 그랬어 ㅎㅎ
여튼 돈 벌어야겠다 마음을 먹고 첫 시작부터 삐걱거리니 세상 되는일 하나도 없구나
싶기도하고 신세 한탄하며 다른일자리를 알아봤지.
그러다 우연찮게 시내의 대딸방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
첨부터 알고 들어간건 아니었고 구인구직공고보고 찾아갔는데 가게 들어서는 순간부터
촉이 오더라구. 성매매 하는곳이구나 하고 말야.
뭐 그렇다고 떡을 치는곳은 아니었고 유사성행위 하는곳이었어.
규모도 제법 컷고, 물빼는 방도 7개정도되는 큰 사업장이었지.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원래 안마방을 하던 곳이었고 리모델링 좀 해서 업종변경
한거였더라구.
그렇게 엄마에 이어 아들인 나도 화류계로 발을 내 딛었어.
어찌보면 야속한 운명의 장난이었지.
엄마는 창녀인데 아들은 포주라... 뭐 정확히 이당시 내가 한일은 손님안내해주는
시다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야.
대딸방에서 일한 기간은 8개월정도로 짧았지만 매순간 자극적이고 강렬했어.
아무래도 홀복입고 돌아다니는, 자지빠는 여자들과 부대껴가며 하는 일이었으니까.
단속의 위험도 있어서 항상 긴장을 탔어야했고.
대딸방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에서 일하는 년과 사귀게 되었어.
먹자하는 년이었는데 (대기실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년) 내가 들어간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서 일마치고 야식 시켜놓고 술마시고 하다보니깐 자연스럽게 떡치고 얼떨결에 그리 되었지.
결혼까지 생각하던 피방알바년과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때였는데 말야.
참 발정난 새끼야 내가봐도 ㅎㅎ
어느새 피방알바년이 자리하던 대가리속의 자리는 대딸방년이 차지하게 되었고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올수 있었어.
대딸방년과 사귀기 시작하면서 나도 가게에서 먹자를 하게되었는데 자의로 그렇게
된건 아니었고 주간,야간 9시간씩 교대하며 보다가 주간실장이 빠지면서 바로 사람이
안구해지니 내가 주야 뺑이칠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잘 시간은 부족한데
대딸방년도 가게에서 먹자를 하고해서 겸사겸사 그렇게 되었다.
엄마랑 단둘이 지낸지도 15년가량 흘렀는데 이때 처음으로 떨어져서 지내게 됐지.
아예 집에 안들어간건 아니고 며칠에 한번씩 잠깐 얼굴만 비추고 다시 가게로 돌아오고
그렇게 했어.
대딸방년과 사귀면서도 가게의 다른 아가씨들과 염문이 항상 끊이질 않았다.
원나잇도 했었고, 자의반 타의반 대딸방 특성상 삽입없이 유사성행위로만 물을 빼는
시스템이다보니 서비스가 중요했는데 뒷판,앞판,오랄,69,하비욧,청룡열차등등..
기존에 일을 해본 아가씨면 상관없었지만 생초짜 신입일 경우 서비스 교육을 진행했는데
말이 서비스지 알몸상태로 젊은남녀 둘이서 밀실에서 부비적대야 하는거다 보니
내가 교육하다 못참아서 따먹은적도 있고, 그걸 계기로 친해져서 연락주고 받으며
대딸방여친몰래 만나서 떡친적도 있고 뭐 그랬어.
근데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가게내에서도 소문이 돌고 그러다 아가씨들끼리 싸우기도하고
실장들끼리도 맘에 두고 있는 아가씨가 하나쯤 있다보니 알게모르게 서로 견제도 하고
일 자체가 좀 많이 지저분했다. ㅎㅎ
무튼 대딸방에서 일하니깐 항상 옆에 쌔끈한 여자들이 무더기로 있고, 분위기에 몰입해서
나도 은근 즐기다보니깐 엄마하고는 몸도 마음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지.
8개월쯤 대딸방에서 일하다 그만뒀는데 상황이 되게 좃같았어.
지방에서도 오피붐이 막 일어나던 시기여서 사장이 대딸방에서 멀지않은곳에 오피를
차렸었거든.. 내가 파견을 가게 됐는데 당연히 오픈가게에 아가씨가 있을리 만무했으니까
대딸방 아가씨들 의견 구해서 떡치는게 맞는애들 몇명도 오피로 출근을 시켰는데 하필이면
대딸방년도 거기에 포함이 되어있었던거야.
내가 하는일이 손님 예약전화받고 손님오면 돈받은후에 아가씨있는 호실로 안내해주는거였는데
대딸방에서도 물론 똑같이 했었지만 입으로 물빼주는거하고 보지로 물빼주는거하고 차원이
틀리잖아? 근데 그 대딸방년은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더라구.
그거가지고 싸우다가 결국은 내가 두손두발 들고 이해하고 넘어갔어.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
아슬아슬한 하루가 계속되다가 어느날 사장이 술먹고 지인들 델고온적이 있었는데
오기전부터 뭔가 쎄하긴 했었어.
한타임 비워놓으라고 전화를 했었으니까 말야.
아니나 다를까 아가씨들 방으로 들어가더라구 시간 빼놓았냐라고 확인하면서.
난 사장지인들만 방보게 해주는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어.
사귀던 대딸방년 예명 부르면서 방보고 나온다고 씨부리는거야 사장새끼가.
아.. 시발 좃같더라 진짜 ㅎㅎ
대가리가 띵하면서 망치로 얻어맞은거 같았어.
비어있다고 말을 하긴 했는데 내 기분 아는지 모르는지 좋다고 들어가더라구.
안절부절 못하면서 사귀던년 호실앞에 가니 떡치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하게 나던지..
신축원룸 건물이었는데 방음이 전혀 안되서 층 두개를 통째로 쓰고 있었거든?
아가씨들 방이 4층이고 실장사무실이 3층이었는데 들어가서 문을 닫았는데도
위층에서 떡치는 소리가 존나게 들리는거야.
이거는 못 참겠더라 솔직히.
창녀인줄 알고 사귄건 맞는데 생판 안면없이 돈주고 받는 손님들하고 매일 몇번씩
이나 마주하는 사장새끼하고는 경우가 달랐으니깐.
때려친다고 사장한테 말하니깐 사장은 영문도 모르니 달래본다고 원래 일하던
대딸방으로 원상복귀 시켜줬는데 며칠있다가 결국 그만뒀어.
기분이 더럽더라구.
그년하고는 그뒤로 상종도 안했다. 딱히 미련도 없어보였어.
그리고 난 느닷없이 서울로 상경해버렸지.
집으로 돌아간게 아니라 아예 타지방으로 가버린거야.
이때의 난 뭐랄까. 내 적성을 찾은 느낌? 내가 잘하는것도 있구나 그런 자신감이
있어서 어딜가던 잘할수 있다 생각해서 큰물에서 놀아보자 그랬던거 같애.
대딸방에서 8개월쯤 일했는데 일 잘한다고 칭찬도 많이 받고 월급도 다달이
쭉쭉 올랐었거든.
첨에는 120인가 받았어. 쥐꼬리만하네? 생각할수 있겠지만 이때는 뭐 피방같은데
시급이 2500원 받고 그럴때였으니깐..
120도 작은돈은 아니었는데 한달쯤후에 주간에 보던 실장 그만두고 내가 가게통으로
다 보기 시작하면서 200받고, 그 다음달에 250받고...
그만두던 달에는 400을 받았었어.
직급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실장이라고 부르고 시다라고 생각하는거부터 시작해서
사장 바로밑에 총실장까지 올라갔으니깐.
아가씨나 사장들도 총실장 총실장 불러주니 가오도 좀 살긴했고.
뭐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뭐 저런새끼가 다 있나 생각하겠지만 내 딴엔 자랑스러웠다.
사장이 오피를 오픈하고 나를 그쪽으로 보낸것도 나한테 맡겨놀 생각으로 보낸거였었거든.
엄마한테는 서울로 간다고도 말 안하고 일 구한뒤에야 전화해서 말해줬는데 목소리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참으로 섭섭한듯 보였어.
나도 30줄을 바라보는 나이다보니 건강하게 지내라 자주 집에와라 격려의 말씀만 해주셨지
꾸중은 하지 않으셨고.
올라간건 서울이었는데 일자리를 구한건 분당이었어. 경기도 성남.
먹고자며 일을 했는데 벌이도 괜찮았고 물론 여기서도 일하는 아가씨들 한번씩 건드려가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지.
엄마에게도 다달이 100만원씩 용돈 쓰라면서 꼬박꼬박 부쳐드렸고 두어달에 한번씩
이틀,삼일 일정으로 집에 다녀갔었다.
분당에서 몇달 지내고 어느날엔가 집에 잠시 내려갔는데 엄마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시더라구.
다음에 올때도 조금 주름이 더 생기신거 같아 보였고.
그담에 내려갔을때도.
사고만 치는 아들이긴 해도 내려갈때마다 엄마는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어.
상다리 휘어지도록 음식 장만해놓고 기다리고 계셨었지.
따로 용돈이라도 드리면 (매달 부쳐드리는돈 말고) 함박웃음을 띄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그런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비록 불법이고 성매매라는 더러운 일에 몸담긴
했지만 돈을 많이 벌기위해 열심히 노력했어.
사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데가 많은데 내 나름대로 시스템 갖춰서 체계적으로
운영할려고도 부단히 애썻고 말야.
분당서 1년정도 오피실장으로 일을 하다가 같은 사장의 강남가게로 갔는데 운영악화로
내가 인수하게 되었어.
모아놓은 돈이 제법 있었고 다달이 들어오는 벌이가 괜찮았긴 했지만 내 가게를 가지고픈
꿈도 있어서 사장이 제안했을때 주저없이 인수 받았지.
벌이가 괜찮아도 월급쟁이는 월급쟁이일뿐, 이때쯤에는 방5개 굴리는 잘나가는 가게
순수익이 2000정도 나올때였으니 욕심을 부릴만도 했어.
가게를 인수받고 얼마지나지 않은 어느날엔가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었다.
뭔 상황이지 싶다가 보호자 어쩌구하길래 병원인걸 알았지.
차근차근 설명해주는데 정밀검사 해봐야한다고 보호자동의랑 비용을 결제해야 한다더라구.
바로 엄마가 전화를 낚아채서는 그럴필요없다고 괜찮다면서 만류했는데 병원에서 전화 올
정도면 심각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비용결제 해줬다.
그리고 입원을 하셨는데 부모자식된 도리로 당연히 내려가서 돌봐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가게 비워두고 나갈 상황도 아니었고.
병원비만 부쳐주고 엄마는 홀로 병원신세를 지셨지.
곧 퇴원하셨는데 난 신경을 못썻다.
엄마 보지에는 그렇게 관심이 지대하면서 엄마의 건강에는 저런 호로새끼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무신경 했어.
뭐랄까.
그냥 돈버는데에 몰두한거 같애. 정확하게는 돈+여자였지만.
이때쯤해서는 주머니 사정도 여유로워지고 인프라 구축이 잘된 강남에서 거주겸 일하다보니깐
좋은데도 많이 돌아다니면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으니깐.
근데 좋은시절도 한순간이더라.
가게 인수한지 몇달 안되서 단속 크게 맞고 장사를 접으면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집으로 기어들어가게 되었어.
사실 강남에서 일하던 썰 풀어볼까하다가 줄거리상 방해안될정도로 간략하게 줄였다.
모자상간 스토리인데 옆길로 새는거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기억에 남는일을 한가지만 꼽아보자면 강남 가게에서 걸어서 15분거리의 집에서
출퇴근하던 오피년이 있었는데 나보다 연상이었거든?
몸매가 죽여줬었어. 수영복모델이라 해도 믿을정도로.
나이가 조금 있어서 액면가는 좀 들어보였었는데 내 가게에서 일하게 된후로 마감치러
갈때마다 이야기 나눠보니 말도 잘 통하고 괜찮더라구.
그러다 내가 대시해서 사귀게 되었고 30여년 살아오면서 그렇게 떡 잘치고 즐기는 년은 처음 봤어.
우스갯소리로 옹녀라고들 하던데 딱 그런애였지.
나하고 떡칠땐 가터벨트까지 준비해가지고서는 가면쓰고 떡친적도 있고 한번만나면
말그대로 자짓살이 빗겨질때까지 떡치다가 잠이 든거 같아.
이년말고도 단속맞을때 아가씨방도 터니까 같이 경찰서 간 오피년이 하나 있었는데 조서쓰고
나와서 술빨다가 거기서 또 눈이 맞아서 떡치고 그담날인가 그년이 바다보고 싶다구 렌트카까지
빌려와가지고서는 나 델고 속초까지가서 떡치고 강릉가서 떡치고 항구가서 갓잡아올린 생선회
쳐먹고 오는길에 휴게소에서 떡치고 뭐 그런 좋은 추억들이 있어.
무튼 단속을 계기로 타지생활을 접고 대구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사실 고민을 좀 했었어.
가게오픈하는거야 돈도 있겠다 방만 몇개구해서 하면 되는건데 엄마랑 떨어져 지낸지도
오래되었고 건강도 안좋아지셔서 병원신세를 혼자서 감당케 한게 이때서야 맘에 걸리더라구.
이 일을 계속하더라도 (성매매업종) 대구에서 하면된다고 생각하니깐 미련없이 발걸음이
떼지더라.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고 엄마의 얼굴을 마주했을때 솔직히 좀 놀랬다.
병원신세를 지고 난 이후에는 나도 가게일 보느라 바쁘기도 해서 못뵙고 처음보는거였거든.
얼굴 살도 좀 빠지신거 같고, 대체적으로 몸이 수척해지신거 같았어.
아들이라고 기어들어오니까 그런 기색 안내비치실려고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3년여만에 집에 들어간후 몇달간은 집에서 쉬었다.
쉴려고 해서 쉰건 아니고 단속건땜에 서울까지 재판받느라 왔다갔다 거리고 판결이후에는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기위해 요양원에서 한달간 뺑이를 쳐야했거든.
그리고 이때 엄마가 내가 하는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셨어.
사실 엄마한테는 그냥 숙식노가다 뛴다고 구라를 쳐놨었다.
법원출석요구서가 집에 왔는데 성매매알선이라고 적혀 있으니까 금새 알아채신거지 ㅎㅎ
이땐 나 앉혀놓고 많이 우셨어.
자기 탓이라면서 말야.
절대 그런거 아니라면서 우는 엄마 달래가며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도 아니었지.
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피부살에 흥분되어 호로새끼답게 발기를 시켰지만.
쉬는동안에 엄마랑 같이 동네 마실도 자주나가고 , 장도 같이 보고, 공원이나 연못에
놀러가서 맛있는것도 먹고 엄마랑 뭔가를 하는 시간이 많았어.
내 마음 한켠에 엄마 건강이 안좋아 혼자 병실에서 지내던게 내심 짐이기도 했고.
덜어내고 싶었지.
엄마는 그동안 원래 하시던 방석집을 접고 외곽지역으로 가셔서 다시 오픈을 했어.
들어보니까 내가 집에서 나간 이후론 주로 가게에서 지내신거 같더라구..
내려온다는 연락을 하면 집에 가 계셨고.
물론 내가 완전히 다시 집으로 온 이후에는 출퇴근을 하셨지.
집에서 엄마 가게까지 제법 먼거리였는데 피곤하면 가게에서 주무시라고해도
굳이 출퇴근을 하시더라. 어쩌다 가게에서 주무실때도 있긴 했지만.
요양원 들락거리며 사회봉사를 때우던 어느날이었어.
160시간 선고받고 주5일 한달채우면 되는거라 주말에 시간이 비게 되었는데 이날 엄마랑
외식약속을 잡아놔서 엄마 가게가 있는 동네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녁에 엄마가 일을 해야하니깐)
이당시에 운전면허를 따놨었는데 강남에서 일할때 생애 첨으로 첫차까지 일시불로 뽑아놨으나
단속맞은 여파가 꽤 커서 정리하게 되었어.
다른건 아니고 추징금이 꽤나 크게 나와서 내 재산이 압류될 지경이라 어쩔수없었지.
그래서 버스를 타고 엄마 가게가 있는 동네로 갔어.
꽤 멀더라구.. 한 40~50분 타고 간거 같아.
집에서 일찍 나오는 바람에 시간이 좀 남아서 엄마 가게로 갔다.
위치는 대충 알고 있었거든..
그래도 첨가는 동네라 길을 잘 몰라서 헤매다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미용실에 계시더랬어.
밖에서 기다린다했더니 설명해주시면서 다시 가게위치를 차근차근 알려주시더라구.
가게에 사람 있으니깐 연락 해놓을테니 가서 기다리라고 말야.
엄마가 알려준대로 찾아가니 가게를 곧 찾을수 있었고 문은 열려 있었어.
들어가보니 인테리어는 예전에 하던 가게나 지금 가게나 별 다를게 없더라구.
여기가 새 가게구나 하고 두리번 거리는데 인기척이 들리더라.
곧 어떤 여인의 실루엣이 내 눈에 들어왔어.
첨보는 여자인데 되게 반갑게 맞아주더라구.. 왔냐면서 말이야.
엄마하고 비슷하거나 좀 더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되게 살갑게 맞아주셨다.
오렌지쥬스 마시라고 주면서 빈 테이블에 앉으라고 하더니 자기도 맞은편에 앉더라구.
대뜸 얘기 많이 들었다면서 혼자서 주절주절 거리는데 뭐.. 싫지는 않더라 ㅎㅎ
아는 사람 아들이긴 해도 젊은 남자니깐 떡에 환장한년이면 군침이 돌았겠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얘기 들으며 쉬고 있는데 여자가 그러더라구.
엄마가 날 굉~장히 많~이 사랑한다고 말야.
첨엔 응? 이랬다가 뭐지 싶었어.
그러더니 바로 아들이 자길 너~무 사랑한다면서 엄마 속 썩이지 말고 잘해드리라는 거야.
갑자기 뜬금없게 그런 얘길 하니까 잘 이해가 안가더라.
무슨 뜻으로 그런얘기를 하는건지도 모르겠고.
곧이어 엄마가 가게안으로 들어왔고 난 엄마와 밖에 나가 외식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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