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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성 쌍둥이 근친 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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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6:40 조회 1,6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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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4분차이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 우리 친 할머니 께서는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아시자 남여 쌍둥이는 커서 서로 붙어 먹는다며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지우라고 주장하셨고 그 일로 인해 아버지와 의절하셨다 우린 할머니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근친상간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닥 평범하진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건달이였으며 우리 어머니는 밤무대 트로트 가수 셨다 어렴풋하게 우리집에 일도 안하는 삼촌들이 살았던 시기가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사람들이 나이먹은 분들은 다들 알만한 꾀 큰 사건을 저지른 수배범이였다거나 어머니와 우리가 탄 차가 열댓명의 괴한 들에게 납치 당할뻔 했으나 빨리 달려와준 경찰 덕에 목숨을 건진일이나 꾀나 다이나믹한 유년기 였다 그래도 내 인생은 아직 까진 평온한 편이였다 
나와 내동생의 인생이 꼬이게 된 결정적 사건은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2학년 쯤 때 벌어졌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머니는 남자가 있었고 아버지는 여자가 있었다 아버지의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돈을 잔뜩 빼았아 이혼했다 
이혼 과정에서 나는 아들이므로 아버지와 살게 되었고 동생은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쌍둥이들이 대부분 그럴꺼라고 생각하는데 서로에 대한 애착이 다른 형제 들에 비해 좀 강한 편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떨어져 살아서 인지 나도 내동생도 상당히 서로를 그리워해 매일 밤 서로 전화를 하며 서로를 그리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건 전화를 어머니가 받고는 같이 살지 않으니 더 이상 전화하지말라고 소리치고는 끊었다. 나는 몇번인가 더 전화했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짜증섞인 욕설만 들려올 뿐이였다 침울해 있는 나를 인자한 새엄마는 어머니도 보고싶고 동생과나를 만나게 하고 싶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 시기 라는 식으로 나를 설득했고 그렇게 동생과 나는 멀어 졌다 
동생과 헤어져 산지 3년 어느새 새엄마나 새로 태어난 남동생과의 생활도 적응 되었고 여동생이 내인생에서 서서히 잊혀질때 쯤 이였다 내가 살면서 딱 기억나는 뉴스가 세가지인데 하나는 라이브로 지켜본 9.11 테러 사건 뉴스였고 두번째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뉴스였고 세번째는 이날본 씨랜드 화재 사건 의 뒷수습에 관한 뉴스였다
새어머니는 동네 학원의 미술교사 출신으로 (아버지와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짤렸지만)교육에 꾀나 민간한 분이셨고 저녁시간엔 항상 뉴스를 틀어놓고는 하셨다 아주 오래간만에 아버지도 함께한 저녁시간에 씨랜드 화제사건에 관해 뉴스앵커가 발표하고 아버지가 거기에 호응하며 혀를끌끌 차던 그때에 우리집 초인종이 울렸고 새어머니가 누군지 궁금해 하며 현관으로 향했고 나머지 세사람이 전부 다시 티비에 집중했을때 
현관에서 새어머니의 비명같은 소리가 들렸가 아버지와 나는 깜짝놀라 
현관으로 달려갔고 우리가 마주 한건 내 기억속에 잊혀져 있던 내 쌍둥이 여동생 이였다 3년만에 만난 동생의 몰골은 끔찍했다 
온몸엔 멍자국이였고 머리털은 듬성듬성 빠져있었으며 친엄마의 집에서 맨발로 이곳까지 온듯발은 온통 피 투성이였다 나중에 아버지가 술에취해 울며 내동생을 부여잡고 울때 들은 이야기지만 어금니 세게가 빠져있었다고 했다 
내동생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모든 상황을 이해한 아버지는 골프채를 겨눠잡고 귀신같은 얼굴로 뛰쳐 나가려고 했으나 새어머니는 일단 병원이 먼저라며 여동생을 들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어린나이였지만 대충의 상황을 파악한 나는 동생과 떨어져 즐겁게 지낸 지난 3년이 몸서리치게 죄스럽게 느껴졌다 
친어머니와 친어머니의 남편은 아버지에게 뜯어낸 위자료로 큰 술집을 차렸고 처음엔 꾀 잘나갔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며 상당히 궁지에 몰렸다고 했다 사업이 잘 되지 않자 어머니와 그남자의 화살은 내 여동생에게 돌아왔고 꾀오랜기간 심각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여동생은 이때의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고 나도 절대 물어보지 않지만술에 취해 조금 이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틀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너무 배고파 책을 뜯어 먹은적도 있다고 하는데 동생을 부여잡고 3시간은 운거 같다 
어쨌든 아버지는 친엄마의 가게에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부수고 친 엄마 남자의 코뼈와 광대 그리고 갈비를 작살내고 내 여동생을 다시 데려왔다 
다시 돌아온 후 여동생은 한동안 내가 알던 여동생이 아니였다 원래부터 숟기가 많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런일을 겪고 나니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죄책감에서 였을까 여동생에 대한 애착이였을까 내 여름방학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동생 의 마음을 여는대 썼다 매일 매일 광대 짓을 하고 여동생을 웃기려고 별의 별 짓을 다했다 3주 정도 지나자 여동생의 상태는 예전만 하진 못하지만 꾀 돌아왔고 새엄마나 남동생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할 정도 까지 호전 되었다 
여름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동생은 우리학교로 전학 했다 동생은 여전히 새아빠가 자기를 잡으러 올꺼라며 두려워 했고 나는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주머니에 작은 면도칼을 가지고 다녔다지금도 그때 면도칼을 이야기하며 서로 민망하게 웃곤 한다 
다행히 그 후 아무 사건도 잃어 나지 않고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우리둘은 중학교에 진한하게 되었는데 평준화로 인해 여동생은 동네에 유일한 여중으로 진학하고 나는 동네에서 꾀나 떨어져있는 공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걱정은 좀 됬지만 동생의 상태가 2년간 꾀 호전된 상황이였으므로 우리가족은 안심했던거 같다 
중학교 시절 초반에 꾀나 평탄했다 동생도 그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었는지 나에대한 의존증이 많이 없어졌고 나름의 취미도 생겨 애기 오타쿠로서 자신의 길을 찾은 듯했고 나또한 2002년 월드컵 열기로 인해 밥쳐먹고 축구하기에 바빳으며 아버지는 완전 어두운일에서 은퇴해 고깃집에서 소일거리 하며 새어머니와 바쁘게 살았고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고 생각하는 남동생은 혼자 두어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게 2년이 또 지나고 우린 3학년이 되었다.(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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