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동안 짝사랑한 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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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8:45 조회 419회 댓글 0건본문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관악구 봉천동 산동네에 이사갔어. 나와 여동생을 키워주기로 한 할머니가 거기 살았거든 지금은 관악구도 재개발도 많이 되고 옛날 집도 많이 없어진거 같은데, 당시 내가 살던곳은 대다수가 옛날집이었어. 하지만 다행히도 나와 내 여동생이 살게 된집은 그나마 최신집이었어. 화장실도 공용화장실이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도 꽤 좋은 곳이었지. 근처에 남서울유치원이라고 3층자리 크고 좋은 유치원이 있었고, 서울대입구역이 근처에 있어서 나름 편했지. 차츰 나도 여동생도 안정을 찾아갈때, 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로 결심했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컴퓨터가 없었어.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보면 가정집마다 컴퓨터가 있던데 그건 걔네집 부자여서고. 서민, 아니 나같은 정부보조금 받기 직전인 우리 가족한테 해당이 안 되는 일이야.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같이 근처에 잘사는 집사람한테 자존심 구겨가면서 컴퓨터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대다수가 없었고, 드물게 몇몇 컴퓨터 있는 사람들은 안된다고 하더라. 그날부터 컴퓨터를 살려고, 신문알바를 했어. 산동네쪽은 오토바이가 못 돌아다녀서 보통 일주일만에 다들 그만두는데, 난 한달을 버티니까 사장님이 날 되게 좋아했어. 그러던 어느날 신문할배가 나한테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도 힘들텐데 왜 이 일을 계속 하냐고 물어보더라. 난 컴퓨터 살라고 한다고 하니까, 신문할배가 근처에 카페 열었다고 급한거면 거기가서 하라고 했어. 나는 답답해서 이렇게 말했어. 카페는 커피파는 곳이고 내가 사려는 건 컴퓨터라고. 신문할배가 내 말을 듣고 말했어. pc카페라고 하던디, pc가 컴퓨더 아닌가? 아님말고 그 말들고 사장이 알려준 곳으로 뛰어갔는데, 정말 사장님이 알려준 곳에는 pc방이 있었어. 내 기억으로는 당시 스타크래프트랑 바람의나라(당시 인기게임)의 인기로 전국적으로 pc방 창업붐이 있었거든.난 그걸 몰랐던거고 그렇게해서 겨우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었어. 그 날부터 거의 매일 이메일을 보냈지. 거의 매일 pc방에 와서 사장형이랑 친해질 정도 였어. 난 그녀에게 메일보내는 시간을 빼면 거의 하루종일 공부를하고, 그녀는 하루종일 병원에 있다보니 메일의 내용은 쓰잘데기없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난 그게 좋았어. 매일 10시간 가까이 공부하는게 힘들어도 그녀의 메일 한통 보면 피로가 사라졌지. 시간이 지나고, 난 근처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어.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관악구긴 하지만, 동작구에 가까웠고, 근처에 아파트가 많아서 면학분위기가 조성됬는데, 고등학교는 난장판이더라. 수업시간에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어.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날 이상한놈으로 취급할 정도였으니까 처음에는 또 왕따시키는거 아닌가?하면서 불안했는데, 다들 고등학생이다보니 그런일은 없었어. 그렇게까지 내가 공부를 한 이유는 성공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그녀를 위해서였어. 지금생각하면 어리서운 생각이지만, 그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대를 가고 의사가 되고 싶었거든. 그냥 의대에 가서 그녀를 고쳐주고 싶었어. 하지만 그녀에게 말은 하지는 않았어. 왠지 쪽팔렸거든. 그렇게 3년간 고등학교에 들어간후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공부를 했어. 지금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버텼는지 참 3년 후 수능점수 발표날. 2002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었는데, 전부 1등급이 나온 수능성적표를 받고, 그녀에게 자랑을 하려고 pc방에 갔어. 형동생 사이가된 pc방 사장형과 여러 친한 게임폐인아저씨들한테 축하를 받았지. 수능점수를 기다리느라 애간장이 타서 한동안 메일을 못쓰다가 메일을 쓰려고 사이트에 들어가니까 먼저 메일이 와있더라. 메일을 확인하니까 그녀가 이식수술하게될 장기를 찾았다는 메일이었어. 그녀의 병이 있는 장기는 이식하지 않으면 생존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그런 장기였거든. 난 그날만큼 행복했던 날이 없었던 것같아. 또 그 메일에는 그래서 앞으로 수술날까지 메일을 못하니까 전화번호 알려달라는 내용이 있었어. 난 노파심에 3번이나 같은 메일을 보냈어. 그 다음날 전화가 왔어. 그녀였지. 그녀의 목소리를 3년만에 듣는 거였는데, 진짜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서 그녀의 말이 안들릴 정도였어. 그녀는 여전히 밝고, 명량하더라. 전화기밖에서 그녀의 웃는얼굴을 보는것 같을정도로 그녀가 끊을려고 할때 나는 말했어. 수술날 곁에 있고 싶은데 가도 되냐고. 그녀는 안된다고 대학교에서 공부하라고 하더라. 사실 그녀가 반대해도 갈려고 했는데 그녀가 있는병원을 모르니까 속만탔지. 끝까지 안된다고 한 그녀는 끊기전에 말했어. 건강한 몸으로 여름에 갈테니까 6월1일 점심에 시간 비워두라고. 한국에서 같이 밥먹자고 그리고 자기는 이제 이메일 삭제한다고, 이제 나랑 이메일안하고 같이 있을거라고 했어. 난 휴학을 해서라도 시간을 비운다고 했지. 그녀가 만나자고 한날은 2002년 여름. 한일월드컵이 개최하는 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