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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기념) 할머니 6.25 겪은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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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11:38 조회 60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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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할머니 초등학교(국민학교) 졸업사진.

할머니가 졸업하실 당시라 1953년이라고 보면 된다.

 

외할머니가 얼마전에 고향인 부산에 가셨다가 다리를 다치셔서 입원하셨었는데 얼마전에 퇴원하셔서 댁에 갔다왔다.

사람이 늙으면 금방 나을 병도 완치되는게 젊은 사람보다 배로 걸리더라. 

인대가 부었는데 젊은이면 한달이면 나을 걸 의사가 세달 네달 걸릴거라 하셨다하네.

 

제대로 걷질 못하셔서 그 보행기? 같은거 짚고 끌면서 다니시는데 평소에 밝고 힘차신 분인데 아프셔서 움직이질 못하고 

계속 누워있느라 많이 기운이 빠지신걸 보니까 너무나 마음이 아프더라. 

내가 말주변이 없는 성격이라 할머니 말동무를 해드려야하는데 무슨 얘길 할까 하다가 6.25라 할머니한테 일부러 

할머니 세대가 겪었던 6.25 경험담좀 들려달라고 해서 들었던 썰 몇개만 풀려고 한다. 


 

1.동란 당시 국제시장 썰

 

할머니는 어릴적에 부산에서 줄곧 사시다가 남해로 잠시 이사가셨다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서 결혼전까지 사셨다.  

동란 때 국제시장을 가면 전국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들끓어서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것 처럼 

아주 거리가 난리가 난리가 아니었다.  온갖 거지에 병신(신체적으로)에 온 시장이 난리였다. 

할머니가 기억에 남으시는 게 그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이 부산 사람들을 참 원망들을 했던게 

동포끼리 이 힘든 상황에 먹을걸 좀 달라고 구걸을 하면 그렇게 부산사람들이 야박하게 군다고 했다.  

근데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라. 낙동강 전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한 덕분에 부산이 전화를 입지 않았을 뿐 

국가 자체가 가난하던 시절인데 할머니 집을 포함 대다수의 국민은 당장 하루 먹고사는게 고민이었던 시대였다. 

대부분의 부산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당장 자기 가족들도 하루에 한끼 먹고 사는 인생들인데 

내 가족이 먼저지 어디 남까지 챙길 형편이 안되는데 외지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네들을 참으로 야박하다 했다고 한다. 


 

 2.신혼때 창원에서 시집살이 했을때 썰

 

할아버지랑 결혼을 하시고 잠시 창원에서 시집살이를 하셨다. 

근데 창원으로 처음 정착했던 날(전쟁 종료 후) 동네에 갔는데 온 동네가 총알구멍(당시는 집 벽이고 담이고 죄다 흙이었음.)으로 가득해서 놀랐다. 왜냐면 부산은 전화를 입지 않았으니까. 옆집에는 애비가 없이 어미와 어린 딸만 사는 가정이 하나 있었는데 알아보니 동란(6.25) 당시에 인민군이 동네에 쳐들어와서 온갖 가축은 다 잡아먹고 국군과 계속 전투를 벌이는 마당에 낮에는 동네 주민들이 전부 산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슬금슬금 내려와서 이불이고 감자고 옥수수고 먹을거리들을 몰래 가지고 올라가는 상황이었는데.  이 어미가 임신중이었는데 하필 그 산속에서 산통이 왔고 애를 낳았다.  

대낮에 애가 춥다고 배고프다고 울어대는데 차마 아비가 그걸 두고 볼 수 가 없어 낮에 마을로 내려갔다가 

북괴가 쏜 총에 맞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북괴 개새끼


 

3.할머니 외삼촌 썰

 

할머니 외삼촌은 동란 당시에 대학생이셨는데 전쟁이 터지자 소대장으로 차출되셨다. 

워낙 정신이 없던 시기라 제대로 된 군사훈련도 못 받고 소대장이 되고 한 소대(아마 학도병 추정)를 맡으셨는데 

얼마나 가난하던 시대냐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학생들이 밥이 없어서 수도꼭지에 입대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배고파서 정신이 나갈 정도로 굶었던 시대였다고 하네. 너무 먹을게 없어서 소금을 씹어먹기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태반이 그런 놈들이었던 소대가 그 뭐지 탑 나온 영화 포화속으로? 그런 영화처럼 정의감에 불타고 북괴랑 맞서 싸우고 그럴 형편이 될 리가 만무했지. 배가 고파서 제대로 눈도 못뜨고 걸을 힘도 없는 놈들로 이루어진 소대였는데.  

그분(할머니의 외삼촌)이 그걸 보고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위에서 소대 데리고 올라오라고 시키는데 

명령불복종을 할 수는 없으니 강제로 끌고 올라갔다. 

근데 강원도에 들어서셨을 때 전부 산에 숨어있던 주민들이 밤이 되면 여자들이 한 소쿠리 두 소쿠리 감자를 담아와서 몰래 주고 가는데 그게 정말 너무나도 고마웠다고 한다. 굶주린 병사들은 그거 한개라도 더 먹고 싶다고 싸워대고.  

그분이 나중에 할머니한테 우리나라 최고로 인심이 좋은 곳은 강원도라고 하셨다고.


 

5. 월남전 상이군인 썰

 

이건 6.25 썰은 아니고. 번외.  할머니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월남전이 터졌고 많은 사람들이 파병을 갔다. 

할머니가 20대이실 시절에 월남전이 끝나고 그들이 돌아왔는데 국제시장에서 황정민처럼 병신이 되어서 돌아온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팔이 없고 다리가 없고 한쪽눈이 없고 뭐 그런??

근데 당시 얼마나 없던 시절이고 후지던 시절이야 전쟁가서 병신이 되어서 돌아와서 이제 취직해서 먹고살기는 더 힘들어졌는데 제대로 된 복지나 혜택이 제공될 리 만무하니 그 사람들은 당장 앞길이 막막했지. 그래서 그런 상이군인들이 모여서 하루가 멀다하고 데모를 했다. 우리 책임지라고. 할머니 기억에  배만 타면 그 상이군인들이 팔이 없으니 갈고리같은걸  끼고 연필이고 뭐 잡동사니를  협박하면서 강제로 판다. 근데 돈이 있으면 사주는데 없는 사람들은그런걸 어떻게 사주나? 돈 없다고 하면 거기서 연필 다 집어던지고 갈고리로 발로 다 부숴버리고 돈 내놓으라고 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다하고 돌아와서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서 공격적인 그들이 할머니가 참으로 무서우셨다 한다.


 

6.원조가카 썰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왔던 그 힘든 젊은날들 얘기하시면서 마지막엔 우리가 이렇게 먹고사는게 다 박정희 대통령 덕이라고 하심.

이승만은 힘들어본적 없고 미국에서 줄곧 공부하고 살아온 엘리트 출신이라 굶주리고 힘든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잘 몰랐다. 그에 반해 원조가카는 사람들의 고초를 참 잘 알아 주었다고 옛날엔 뭐 최신 비료도 없고 그냥 퇴비로 농사짓던 시절이라 쌀이 10가마니 나올 땅에서 2가마니 3가마니밖에 못 뽑아내던 시절인데 그마저도 안나오니까 보릿고개가 오고 굶어죽고 하는거지 근데 원조가카가 외국에서 무슨 통일벼?인가 외래품종을 들여왔는데 그게 우리 쌀보다 맛은 없는데 심으면 그렇게 잘자란다고 하네. 뭐 그런거 밖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새마을운동. 당시엔 불을 장작을 패서 땔감을 썼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산에가서 나무를 패면 산은 민둥산이 되겠지. 그런 민둥산들을 원조가카가 다 파서 서해안에 간척사업을 한 덕분에 거기에 밭을 일구고 농작물도 심고 그런 덕분에 우리가 다 먹고사는 것이며 광부고 간호사고 보내고 뭐 내가 굳이 언급안해도 다들 아는 내용들. 얘기해주심.

 


마무리가 좀 이상하긴 한데 오늘 부모님 얘기하시는거 듣다가 치매 병원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우리 외가 조부모님들은 연세에 비해 굉장히 건강하신 분들이라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치매 걸리는건 남의 얘긴줄 알았는데 

현실이 될까바 두렵다. 아직 제대로 못 여쭤봤는데 제발 걍 검사였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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