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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썰 (씹스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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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18:57 조회 82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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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다. 속마음은 시커멓고 더러운데.표현하지 않고 웃고만 있으니까. 화내는 법도 모르니까.다른 사람들은 나 보고 부모님 없는데도 번듯하게 자랐다거나, 착하다고 하는데.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당신들이 나에대해 뭘 아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나같은 쓰레기를, 날 알지도 못하면서 뭔데 나를 재단하냐고.그렇게 속으로 소리치면서 겉으로는 멀쩡한척... 아닌 척...
그러니까. 점점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 되고.숨쉬듯 자연스럽게, 내가 거짓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거짓말을 해버리고.계속 연기하다보니까 어느게 진짜 나인지도 모르겠고 답답하고.내가 느끼는 감정이 전부 거짓말처럼 느껴져서. 이불속에서 흐느껴 울다가.가슴이 답답해서 헐떡이고 주먹으로 퍽퍽 치다가.내가 나한테 하는 말들 조차도 전부 달콤한 거짓말 처럼 느껴지고너무 답답하고 화가나고 서럽고 억울하고 짜증나고 내가 싫어져서.나를 좋아할 만한 이유도 모르겠고 내가 살아야할 이유도 모르겠어서...
그래서 이글을 쓰기로 했다.
내가 죽고 싶은데, 살고 싶지 않은데, 살아봐야 고통만 가득할 뿐인데 왜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그런데도 죽긴 무서워서, 살아야할 이유를 찾고 싶어서.누구라도 좋으니까 내 인생을 살펴보고 나를 설득해서.내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설명해서 납득 시켜줄 수 있다면 살겠다고.그렇게 결정했다.
먼저 경고해둘 것은 이 글은 내 인생에서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기억나는 순서대로 아무렇게나 쓴거라서 굉장히 길며,가독성 같은건 당나귀 좆빠는 느낌이니 그냥 읽지 않을 것도 추천한다.사실 내가 살아있어봐야 너희한테 좋을거 하나 없으니까.그냥 적당히 욕하고 넘어가도 좋다.
뭐 이런 앰창새끼도 있구나 하고 낄낄 거리는 것도 좋을 거다.
나같은 놈이 있다는 걸 보고 위안삼고 즐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
나는 1990년 4월 2일, 수원의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다.편부가정에서 자랐고 위로는 세 살 터울인 형이 하나 있다.주민등록번호는 900127-1로 시작한다.왜 태어난 날짜와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냐면 학교에 일찍 보내려고 출생일을 다르게 신고했기 때문이다. 난 이 사실을 중학교 때에야 알았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가지고 있던 기억은 다섯살때 이름을 적지 못한다는 이유로 큰삼촌에게 맞던 때인데 그때 이미 우리집은 이혼해서 엄마가 없었다.이것이 첫 기억이 아닐 수도 있다. 똑같이 다섯살이던 해에 김해시 한림면 무슨 마을에 있던 이북초등학교라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에서 종이로 만들어진 장난감 벽돌 블록을 가지고 놀던 기억도 있다.둘 중 어느것이 먼저인진 알 수 없지만 이름을 적지 못해서 맞던 것이 더 강하게 기억되고 있으므로 그걸 첫번째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은 여섯살때이다. 나는 그때 큰이모집에서 살고 있었다.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얼마 안지나서 외가쪽에서 형과 나, 둘 중 하나는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하였고, 내가 선택되었다.이모네는 친자식도 아닌 나를 정말 사랑해주었고, 그 때가 내 인생에서 얼마 없는, 행복한 시간들 이었다.어느정도 나이 먹고서야 알았지만 그 때 큰이모는 나를 호적에 올리려고 까지 했었다고 한다. 왜 안되었는지도 들었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즐거웠었다.학원에서 구구단을 배우고 간식으로 머핀(그 당시에는 그냥 빵으로 기억하고 있던)을 먹었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웠었다.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큰이모가 만들어둔 샌드위치를 먹고 학원에서 구구단을 4단까지 배웠다는 둥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큰이모에게 했었다.
그 당시에 이모네 집에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지희라는 이름의 세살배기 아기였었다. 나는 지희가 너무 귀여워서 정말 좋아했었다.또 이모집엔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항상 가지고 놀던 팬더인형도 있었고, 인어공주 등의 아이들이 읽을 법한 동화책들도 정말 많았다.이 당시부터 나는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기에 동화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는 장면을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그랑죠 로봇 장난감도 있었다. 언제 사주셨는진 기억 안나지만.막내이모와 별이 빛나는 밤길을 걸으면서, 밤이 무섭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랑죠가 지켜줄거라고 하던 것이 기억난다.
큰이모부는 솔직히 말해서 잘 기억이 안난다.하지만 좋은 분이었었다.큰이모부와 함께 밤 늦게 수박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그리고 크리스마스날 나를 위해 산타로 분장하시고 과자상자를 가지고 오셨던 적도 있다.어린 시절의 나는 진짜 산타였다고 생각하고 겨울날 집 밖에서 루돌프는 왜 안왔느냐, 아파서 못왓다. 내년에 같이 오겠다는 둥의 대화를 나눈 기억도 있다.
그 일년간은 정말 행복했었다.
그리고 일곱살이 되던 해.
어느날 밤 나는 자동차 뒷자석에 타고 있었고 자고 일어났을땐 어딘지 모를 곳에 와있었다.처음보는 사람들이 있었다.할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형.친가쪽 사람들이었다.이 당시 아빠는 경기도 쪽에 있던 회사에 다니고 있던 것 같다. 그래서 같이 살지 않았다.나한테 형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사실 그 전에도 형이랑 같이 산적은 있었고 같이 놀기도 했었으니까 기억이 없던 것일 뿐이겠지만.
그렇게 경상도 김해시 한림면 두레마을에서의 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
큰삼촌은 다혈질이었다.별거 아닌 일로도 주먹을 휘두르고 회초리를 휘둘렀었다.가장 기억에 남는건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방학때 약 1년만에 얼굴을 보았는데.식사 도중에 할머니가 해준 불고기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려고 했더니 아빠가 내 밥에 물을 부어주었던 적이 있었다.아마 내가 물을 부어먹으려고 했다고 생각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그것 때문에 울었다.그러자 밥상머리에 운다며 크게 짜증을 낸 큰삼촌은 젓가락으로 내 머리를 찍어버리고 밖으로 나갔다.아직도 기억에 선하다.애새끼가 반찬 투정좀 할 수도 있는 거지.씨팔...
작은삼촌은 큰삼촌보단 낫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릴 안때렸던 것은 아니다.초등학교 1학년 때 구몬 학습지를 하지 않았던 날, 울고불고 하는 내 다리를 붙잡고 계속 옷걸이를 휘두르던 모습이 기억난다.그 집에선 형과 함께 삼촌들에게 맞았던 기억만이 가득하다.
그래도 형이 함께 있으니 견딜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형 또한 나를 때렸었다.무엇을 잘못했는지도 기억이 안나지만 형은 자주 내게 수건을 물에 적셔 냉동실에 넣어두게 하고 회초리로 때린 뒤에 수건으로 찜질을 해서 그것을 숨기곤 했었다.아마 집안 어른들을 보고 따라하던게 아닐까 싶다.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니까.형은 심심하면 나를 괴롭혔다.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시키고 때렸다.
예를 들면 아래쪽에 하수구가 드러난 커다란 구멍을 뛰어넘게 시킨다거나...떨어지면 크게 다칠 것이 분명해보였고 나는 어릴적부터 겁쟁이였기에 뛰지 못했었다.그 당시에 은하, 정은하라는 이름의 나보다 한살 연하인 동네 여자애랑 친하게 지냈었는데.그 애도 곁에 있으면서 점프해서 뛰어넘었었지만 나는 결국 하지 못했었다.형이 시키는 대로 나는 할 수 있다를 수십번 외치면서도 부들부들 떨면서 담을 붙들고 있었을 뿐이다.그날 집에가서 형한테 맞았었다.
그리고 형이 라면을 끓이기 위해 물을 올려두고 나한테 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물론 어린 아이가 그거에만 신경을 쓸 수 있을리 있나. 아마 딴짓을 한 모양이고 물을 올려두었던 냄비는 완전히 타고 말았다.나중에 돌아온 형이 그걸 보고 화를 내며, 부엌에 있던 뜨거운 것을 집는 집게를 휘둘러 내 날개뼈 부근을 내리쳤었다.물론 냄비가 탄 것을 보고 삼촌들한테 회초리로 맞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심심하면 레슬링을 하자며 목을 조르고 팔 다리를 꺾어댔었다.나는 정말 싫어서 울면서 하기 싫다고 했었지만 소용 없었다.
분명히 삼촌들한테 더 많이 맞았겠지만 형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은 건, 아마 형이 나랑 가장 자주 붙어있었고 유일하게 서로 지지해주었어야 할 형이 날 괴롭혔기 때문에 더 서러워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당시의 나는 학교 생활도 원만치 않았다. 위의 학원에 다닐 시절의 기억을 얘기한 걸 보면 친구에 대한 얘기는 없다.아마 어릴 때부터 나는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다.매일 책만 읽고 말도 잘 못하니까. 당연한 것일 것이다.그 때 같은 반에 나를 괴롭히던 놈도 있었다.
하루는 나한테 물을 마시라며 주길래 마셨더니 낄낄거리며 웃으면서 코딱지를 넣은 물이라고 비웃고 다른 애들에게 얘기하며 놀려대었다.지렁이를 나에게 가까이 가져다대며 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다니는 것을 즐기기도 했었다.
그런 내게도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위에 말한 한 살 연하의 여자애 은하랑 같은 반 친구인 현진이었다.
김현진.내가 기억하는 한 내 첫친구이다.아마 은하랑 더 먼저 알았겠지만 아무래도 현진이가 내 기억에서는 되게 크게 남아있다.서로의 집에 자주 놀러가고 매일 붙어다녔었다.
그런데 현진이를 집에 데려오면 형이 항상 둘이 싸우라며, 싸움을 시켜놓고 구경을 하곤 했었다.싸우기 싫다고 하면 두들겨 맞았으니 어쩔 수 없이 둘이서 싸우는 수밖에 없었었다.형은 그걸 '싸움놀이'라고 불렀었다.싸움놀이를 하던 어느 날. 나는 현진이를 울리고 말았다.현진이는 울다말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내 팔을 붙잡고 냉장고에 쾅쾅 두 어번 쳐박은 뒤에 옆에 있던 문으로 밀어붙였다.그 당시 우리집 문에는 유리창이 달려있었는데 유리창이 깨지면서 내 손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당황한 형이 현진이는 집에 돌려보내고 수건으로 내 손을 감쌋었는데 피가 멈추질 않았다.나중에 마당으로 나가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니까 주인집 할머니가 놀라더니 날 병원으로 데려갔었다.
왼손 약지에 유리창 조각이 박혔고 그걸 빼내고 꾀매었었다.간호사 누나가 보지 말라며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있었는데도 어린 나는 어떻게든 끙끙 거리다가 꾀매는 걸 봤었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내 기억으론 굉장히 커다랗고 살색으로 번들거리는 핏빛 구슬 같은걸 주사기에 꾀어서 꺼내고 있었는데 어린나이 였기 때문에 피라던가 그런게 무서워서 이상하게 기억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왔을때 형은 이미 큰삼촌한테 죽어라 맞고 반성문을 쓰고 있었고, 잠시 후 나도 죽어라 맞고 반성문을 쓰게 되었다.지금 생각해도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내가 혼날 이유가 없을텐데.억지로 싸움을 시킨 형이 나쁜 건데...
여담이지만 군대에 다녀온 뒤에 형에게 직접 들었던 건데.어릴때부터 형이 계속 날 괴롭혔던 이유가 있었다.아빠 엄마가 이혼하고 그러던 시절에 외갓댁에서 날 데려간다고 하니까.그 전에도 계속 삼촌들한테 맞고 있던 형은 같이 혼나던 내가 사라진다는게 무서웠고 밤에 나한테 가지 말라고 했었다고 한다.근데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없었고, 내가 1년동안 이모댁에서 즐겁게 지낼 동안 혼자서 삼촌들의 폭력을 감당해왔던 거다.웃으면서 이 얘기를 하면서 그땐 철이 없었지. 라고 했는데.나도 웃으면서 괜찮은 체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었다.말하는게 답답하다고 화내면서 때리던 사람이 큰삼촌이 이었으니 어린 맘에 그럴만도 하지 라고 이해는 해도 용서는 할 수 없다.
뭐 그 사건 뒤로도 현진이랑은 뒤로도 잘 놀았었지만 1학년이 끝나고 현진인 마산으로 전학가버렸고 그 뒤로는 2학년때 잠깐 놀러와서 얼굴을 비친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그 뒤로는 형과 은하, 그리고 이름은 기억 안나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의 동네 남자애밖에 기억나지 않는 걸로 봐선, 학교에서 다른 친구를 사귀진 못한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유일하게 좋았던 기억은 여름방학인 겨울방학 동안에는 우리가 수원에 있는 아빠 집에 올라가서 지냈었는데.그 때 10층?이었나 9층에 있던 아빠의 아파트에서 매일 비디오를 빌려와 드래곤볼을 보았던 기억 밖에 없다.그게 그 시절 유일하게 즐거운 기억이었다.
아, 하나 더 있다.전학가기 전에 은하가 나한테 꼭 놀러오라면서 준 알록달록한 지우개가 들어있는 필통모양의 문구.은하네 집에서 그걸 받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물론 그 뒤로 은하를 만난 적은 없다.그 다음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나는 시골에 다시 내려갔지만
그리고 3학년 2학기가 되며 우리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다.부천 남부쪽에 있는 심곡동? 어딘지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 조그만 월세집에서 살게 되었다.갑자기 같이 살게 된 이유는 모른다.어느정도 컸으니 이제 형이 키워라, 뭐 이런 얘기를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빠가 우릴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했을 수도 있고.그도 아니면 아빠가 보증을 서주었던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아파트에 살고 있던 우리 아빠가 왜 부천에서 월세를 살게 되었는 지는 그 시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데.나는 학교를 빨리 보내려고 생일을 바꾸었으니 3학년 때엔 10살이 아니라 9살이었었다.9살. 1998년. IMF 시기다.뭐 우리나라 전부 난리도 아니었던 시기였지.나라가 정말 망하네 뭐네, 솔직히 어릴때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금모으기 운동 같은걸 하던건 기억이 난다.
그 때 아빠는 친구의 보증을 서주었고 사업에 실패하거나 혹은 뭐 다른 이유로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아빠의 친구가 도망가버렸기에 아파트도 잃고 빚더미에 오른 것이다.
어린 나는 그런 사정같은건 전혀 몰랐지만 어쨌든 아빠랑 같이 살면서 굉장히 좋았었다.일단 아빠는 우릴 때리지 않았다.물론 아주 가끔씩은 매를 들긴 했지만,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던가 정말 크게 혼나야 할.
예를 들면 내가 창문에 있던 부탄가스 통을 망치로 두들겨서 우그려놨던 적이 있었는데.그때 아빠가 진짜 귀신처럼 화냈었었다.막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터졌으면 내가 위험하고 다쳤을테니까 하는 걱정에 화냈던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거 말고도 이유 없이 어쩐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삐삐번호가 있길래.그 삐삐로 욕을 마구 보냈었다.씨발놈 죽어라 라던가 막... 정말 아무 이유가 없었다.
근데 그게 아빠 삐삐번호였었다...모르는 삐삐번호를 떠올린게 아니라 그냥 아빠 번호를 맨날 적어놓고 다니다보니까 외운건데 그게 떠오른거라고 생각했던 거다.그날 진짜 아빠가 나 엎드려 뻗쳐 시켜놓고 내가 아빠를 그렇게 생각할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막 서러워하시는데.그때나 지금이나 감정표현 잘 못하고 말 잘못하는 나는 그냥 병신마냥 마음속으로 미안하다고 빌면서 울기만 했었다.
좋은 아빠였다. 매일 밤 10시,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오고서도 우리랑 같이 게임을 하면서 웃어주시던.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고 내 학교 생활은 당연하게도 순탄치 않았다.단순히 시골에서 전학온 것만으로도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나는 책만 읽는 조용한 성격인데다. 결정적으로 가난하기까지 했다.그 당시 성주초등학교라는 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급식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먹을 수 있었고 1학년에서 3학년까진 도시락을 싸와야 했었다.왜인진 묻지 마라. 그냥 그랬다.
근데 아빠가 바쁘고 시간도 없고 가난하니까 도시락을 챙겨다니질 못했다.그래서 매일 점심을 못먹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급식 지원을 신청해주어서 3학년 이하 학생중에선 유일하게 급식을 먹고 다녔었다.그게 애들 눈엔 아니꼬웠던 모양이다.아니면 매일 소매가 다 떨어지고 늘어난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게 마음에 안들었던가.그냥 성격이 찐따라서 싫었던가.
어찌됐던 괴롭힘을 당했다.청소하다가 뒤에서 맞기도 했고, 여자애들이나 남자애들 여럿이 둘러싸고서 꼬집고 할퀴고 때리거나 하기도 했었고.거지새끼라고 비아냥대고 놀리거나, 같은 학년에 동성동명의 최영준이 또 있었는데, 걔랑 비교하며 가짜 최영준이라고 부르거나.체육시간에 갑자기 바지를 내려서 팬티까지 벗겨져서 여자애들 앞에서 엉덩이를 보이거나 하기도 했었다.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내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꾸준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다.
이때부터 도벽이 조금 생겼다.학교 도서관에서 몰래 책을 훔쳐나오거나, 만화 책방에서 빌린 책에서 일부 페이지를 찢어서 가지거나 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들이 어느새 집에 한가득 쌓였을 무렵.아빠는 따로 화내지 않고 가져가서 사과하라고 했었다.비오던 날이었다.나는 그 책들을 집 근처 교회의 담벼락 너머로 다 버려버렸다.
참고로 형은 이때는 날 꾸준히 괴롭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간간히 괴롭혔다.형은 나랑 비교하면 성격도 밝고, 친구도 많고, 여자친구도 여러번 바꿔가며 사귀던, 나랑은 완전 다른 인종이었다.같이 게임을 하거나 하긴 했지만 그건 집에 있을땐 나밖에 없으니까 그랬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모르겠다. 형이 날 어떻게 생각했는진. 일단 친구들에게 날 부끄러워 했던건 분명하다.
뭐 각설하고 난 초등학교 5학년이 됐고, 어느 날 게임기가 계속 고장나서 아빠한테 고쳐달라고 부탁하던 때의 일이다.갑자기 아빠가 쓰러졌다.이때의 일은 잘 기억이 안난다.아빠랑 내가 같이 있을때 아빠가 쓰러졌다고 하는데 신고는 나중에 집에 들어온 형이 했다고 한다.형의 말에 의하면 난 아빠가 쓰러졌는데도 아무것도 안했다고 하던데 아마 패닉에 빠졌던게 아닐까?
쓰러진 이유는 뇌출혈이었고 아빠는 중풍에 걸렸다.오른쪽 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그 뒤로 약 한달? 두달? 동안은 아빠를 보지 못했다.할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와서 우릴 돌봐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빠의 병원에 병문안을 갔을땐 아빠는 그래도 걷거나 말하거나 하는 데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증상이 호전된 상황이었다.기적이라고 해야할까? 오른쪽 반신이 완전히 마비돼서 꿈쩍도 못했었는데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병문안을 자주가곤 했다.병원에 놀러가면 아빠가 빵을 사주거나 만화책을 빌려다주거나 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때부터 우리집은 점점 더 안좋은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아빠가 직장을 잃었고, 이상한 사이비 서적들을 읽기 시작한 게 그것이다.기공수련이라던가 영적인 내용이 적힌 천기누설야화 시리즈라던가 무슨 흑삼이 어쩌고 하는 신빙성 없는 한약 관련 서적들 같은 것들.
아빠는 돈은 벌지도 않고 산삼을 캐겠다며 산을 돌아다니거나 했었다.장애인이 되었으니 국가에서 기초생활 수급자로 돈을 지원해줬던 걸까?
그리고 우리에게 천기누설야화에 나오는 그림공부를 시키거나 했었다.책에 부록으로 끼워져 있는 것인데 동그라미를 여러 도형으로 나누어서 각각 다른 색으로 칠해져있는 그림을 하루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가량 쳐다보는 거였다.그걸 하기만 해도 뇌가 영적으로 발달되고 똑똑해지고 삶이 풍요롭게 된다는...당연히 개잡소리다.안중선인지 씨발놈인지 그 책 저자를 만나면 진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는 그 일과를 싫어했었다.
예전에 비하면 화를 내거나 때리는 일도 많아졌다.그동안 쌓여온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 때문일지, 아니면 뇌출혈이 터지며 뇌의 일부 부분이 망가져서 더 화를 잘내게 된건지 모르겠다.나는 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옛날에 읽었던 앗! 이렇게 재미있는 과학이 시리즈에서 철근에 뇌를 관통당한 사람이 멀쩡하게 살다가 죽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화를 굉장히 잘내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에 나는 게임에 푹 빠졌다.5학년이 끝나갈 무렵 국가에서 못사는 집에 지원해준 컴퓨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디아블로2를 싱글 플레이로 할 수 있었다.정말 재미있었다.
한창 유행하던 버디버디를 시작해보기도 했었지만 현실에서 친구가 없던 나는 버디버디 친구도 없었다.같은 반 애들을 몇 명 등록했지만 그네들이랑 대화를 한 기억은 거의 없다. 아예 없을 지도 모른다...
책, 게임, 책, 게임, 책, 게임.내 남은 초등학생 시절의 전부다.
형이랑 같이 미르의 전설2를 하기도 했다.그 당시 형의 캐릭터는 형의 이름에 1004를 붙인, OO1004 라는 이름이었는데.형은 그 술사 캐릭터로 여자인척을 하고 다녔었다.형은 나한테도 그 캐릭터로 접속하면 여자인척을 하고 다니라고 했었다.심지어 나는 사촌 여동생이라는 설정까지 붙여줬었다.
초6때였나? 이것땜에 되게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어느날 오랜만에 미르의전설2를 키고 하는데 같은 문파인 아는 사람들이 보이길래.OO어빠, OO어빠 하면서 부르는데 개무시를 했다.뭐지? 하고 계속 부르고 나 누구라고 하면서 해도 무시당했었다.캐릭터 창을 열어보니까 문파가 달라져 있었다.그날 집에 돌아온 형한테 물어보니까 여자인척 하던걸 들켰다고 한다.
그 뒤로 미르의 전설은 다신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나는 성주초 6학년 3반이었고 담임은 이신우라는 사람으로 날렵하게 생겼고 다혈질이었었다.왜 기억하고 있느냐면 이 사람이 단순히 회초리로 때리는게 아니라 발로 걷어차고 그랬었기 때문이다.나랑 같은반 애가 싸워서, 정확히는 내가 맞고 있다가 들켜서 왜 싸웠느냐고 할때 나는 자석이랑 철가루 실험을 할때 철가루가 이상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손가락으로 눌렀다고 했다.그 다음에 선생님이 걔한테 물어보니까 걔는 거짓말이라고 내가 철가루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했다.너무 억울해서 아니라고 하면서 말을 끊고 끼어들었더니. 그 선생은 바로 발로 내 명치를 걷어차버렸다.켁켁거리는 나를 보면서 뭐 순서를 지켜라? 그런 얘기를 했던거 같다. 그때 너무 아파서 잘 기억이 안난다.아마 각자 얘기를 듣고 있는데 내가 끼어들어서 그랬다는 것 같다.
내가 중학생때 집에 돌아가다가 우연히 같은 반이었던 애를 만났는데 이신우 선생님이 날 만나고 싶어했다고 했다고 한 번 찾아가보라고 했었다.나는 콧방귀도 안뀌었다.지랄하고 있네.만약 지금 만난다면 묻고 싶다. 어린애 가슴을 그렇게 발로 까야했었냐고.
2002년 난 중학생이 되었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산 바로 옆에 있는 동네의 3층 월셋방으로 이사했다.정명고 바로 옆에 있는 곳이다.굉장히 높은 언덕길에 있는, 정말 최하위 계층이 살아가는 동네.방은 더 작아졌다.
그래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사실 그때 나는 우리집이 가난하다거나 내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그런 자각 같은게 전혀 없었다.물론 갖고 싶은건 많았지만 매일 온갖 책이랑 게임속 세계에서 살아가다보니 현실 감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에선 그래도 친구가 두 명? 정도는 생겼었다.
한 명은 친구라고 불러도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가까운 사이였고.다른 하나는 지금 생각해도 친구가 맞는거 같다.정도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친구는 나하고 포켓몬스터 골드버전을 같이 하거나 자기가 플레이 했던 게임의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나도 그런 얘기들을 좋아했기에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인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는 친구는 장준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인상이 참 좋은 친구였었다.어쩌면 친했을지도 모르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에는 여전히 시궁창이었다.
나는 여전히 왕따를 당하고 있었고 항상 괴롭힘을 당했다.
날 자주 괴롭히던 놈은 장효진이라는 이름이었었는데.
언제나 내 뒤통수를 치거나 돼지새끼, 거지새끼, 엄마도 없대요. 라는 식으로 놀려대곤 도망가곤 했다.
난 먹을 것도 없는 주제에 대체 뭘 먹고 살이 찐건지 키는 140센티에 몸무게는 80KG가 넘는 돼지가 되어 있었다.오래달리기 운동장 11바퀴를 하면 항상 9~10바퀴쯤에 선생님이 그만 뛰어도 된다며 끝내고, 50M 달리기를 36초에 끊던 내가 쫓아갈 수 있을리 없었다.언제나 씩씩거리면서 쫓아가다 결국 포기하고 뒤돌아서면 다시 쪼르르 달려와선 팍 치고 도망가는 그런 일을 자주 당했었다.중학교 3년 내내. 다른반이 되어서도 계속...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이때의 나는 라크나로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딸딸이라는 것의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아무도 없을때 그 당시 다음 카페 등에 올려져 있던 무수히 많은 미번역 코난 동인지라던가 라그나로크 동인지 등을 보면서 딸딸이를 치곤 했다.그러다가 형한테 걸렸던 적이 있었는데, 형이 자기 여자친구는 물론, 친구들한테 전부 얘기해서 그 형들이 집에 놀러올 때마다 그 얘기를 하며 놀려댔고 나는 부끄러워서 울었었다.
좀 병신같은 썰도 있는데.중2때 기술가정 선생님이었나? 도덕 선생님이었나?
어느 날 수업 끝나고 좀 시간이 남아서 자기 얘기를 해주는데 사람이 하루에 12번 이상은 딸딸이를 못친다는 내용이었었다.자기가 직접 해본 결과 그 이상은 서지 않는다고.그 날 바로 실험해봤었다.정말로 12번이 한계였었다.12번째엔 뭔가 나왔다는 느낌? 감각? 만 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정말로 지쳐서 쭈그러 들었었다.그 선생님을 존경하기로 했다.이름조차 기억 안나지만.
라그나로크는 캐릭터가 정말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서 좋아했었다.비록 유료게임이라 프리서버만을 찾아다니며 했었지만, 그 안에서 알게된 사람들과 채팅하는게 즐거웠다.현실의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웅얼거리는 성격이지만 채팅으로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정말로 좋았다. 그래서 더 게임에 빠져들었다.매일 4~6시간씩은 라그나로크를 했다.
처음으로 밤을 새가며 했던 게임도 라그나로크 였었다.아빠는 항상 내가 밤 10시 이후에는 게임을 못하게 했었는데.갑자기 시골에 볼일이 생겼다며 3일간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3일 내내 밤을 새가며 일탈의 즐거움에 빠졌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때 할머니가 위독하셨었다.
얼마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계속 울었다.
죽는다는게 뭔지도 모르면서 계속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뭘 잘못 깔았는지 컴퓨터가 부팅이 되지 않았다.가난했던 우리집은 컴퓨터를 고치지 못했고, 그 뒤로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또 국가에서 새로운 컴퓨터를 지원해줄 때까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물론 항상 게임만 했던 건 아니다. 시험기간에는 공부를 하긴 했었다.시험기간엔 아빠가 게임을 못하게 했었다. 작은 방에 가둬두고 밥먹을 때를 제외하면 나오지 못하게 했었다.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거기서 그대로 자곤 했다.그래도 성적이 그리 좋진 않았다.
평균 60~70점 사이로 반에서 중간정도.사실 공부하러 들어가서 공부보단 낙서를 그리면서 노는 일이 더 많았으니까.수업시간에도 전날에 읽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나, 자작 무협 설정을 생각하면서 탄허강기 같은 무공 이름을 만들고 있었으니 성적이 잘나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다.
건빵에다가 눈이랑 입을 그리고 친구라고 적어두고 대화하면서 놀기도 했었고.나중에 그 건빵을 아빠한테 들켰을때 뭐하는 짓이냐며 추궁당하고 맞았었다.
이때쯔음 형은 집에 잘 안들어오고 매일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거나 친구의 집에서 자곤 했었다.아마 나랑은 다르게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집에 대해 자각하고 있고 그게 싫었던 것 같다.중학생이 되며 용돈이 끊겨서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나와 다르게 형은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가 노는 곳에 쓰곤 했다.역시 나랑은 다른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
아빠는 여전히 일은 안하고 산으로 약초를 캐러 다녔다.
주말이면 아빠를 따라서 장애인 무료 전철권으로 같이 전철을 타고 이산 저산을 돌아다니며 뭔지도 모를 약초를 캐는걸 돕기도 했었다.신기하게도 살은 하나도 안빠졌지만...
그 시절에 아빠는 매일 술을 마셨고, 고량주를 여러개 사와서 음양곽이라는 한약재에 술을 담그곤 했었다.대체 어디서 그럴 돈이 난건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고모나 삼촌들이 어려운 살림에도 조금씩 나눠서 도와주었었다고 한다.
중3때엔 어쩌다보니 도연이랑 멀어지고 박상규와 김... 뭐시기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상규도 왕따의 피해자였었다. 학교에서 바지에 똥을 싸서 발밑으로 떨어졋다던가 말도 안되는 헛소문이 돌았다.
김 뭐시기는 중3 2학기때 전학온 친구였다. 고작 반년 정도 사귀었던 거라 이름이와 기억났다 씨발. 김주성이다. 주성인 무당집 아들내미였다.우리 셋은 계속 같이 다녔는데 나는 가끔은 상규네 집에가서 게임기로 드래곤볼 격투겜을 하기도 했었고 가끔은 주성이네 집에가서 주성이 여동생이랑 같이 피치피치 프린세스를 보기도 했었다.이때 주성이는 자기가 원래 죽은 채로 세계를 떠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자아를 얻고나니까 지금의 상태로 태어났다던가 특이한 얘기들을 많이 했었다.
우리 셋이 사실 천사고, 나는 대지의 천사. 상규는 바람? 불?의 천사. 자기는 물의 천사가 다시 태어난거라고 했었다.최근에 와서 가끔 떠올려보면 얘 중이병이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근데 그 당시의 나는 그걸 진짜로 믿었다.정신을 집중해서 지진을 일으켜보려고 하거나 하는 수련을 하기도 했었고 말이지...여하간 그렇게 나름 즐겁게 지냈다.
중3땐 학교 도서관에 이드라는 이름의 판타지소설이 들어왔는데 이때 처음으로 판타지소설이란 것의 존재를 알았다.그동안 내 안에서 소설 = 무협소설 밖에 없었는데. 정말 신기했었다.마법이라는 것이, 정령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그래서 더 주성이가 했던 천사가 어쩌고 하는 말에 빠져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또 기억에 남는 거중에 내가 걸어다니면서 책 읽는 버릇이 있었거든.길거리에서도 계속 소설읽고.
그게 딱 표적같아보였는지 왠 키큰놈이 자기 따라오라길래 따라갔었는데별 시답잖은 소리 하면서 로우킥으로 내 정강이 까고 그랬었다.억울했지만 찐따였던 나는 진짜 한 마디도 못하고 걍 쳐맞고 있는데 내가 억 억 하고 소리내니까 바로 옆에 있던 집 문이 열리면서 아저씨 한 명이 나와서 뭐하는 거냐고 했는데그새끼 도망가서 구원받았던 적이 있었다.
2005년, 고등학생이 되었다.나는 부천공업 고등학교 컴퓨터 응용 화학공업과에 입학했다.딱히 여기 가고 싶었던건 아니었다.상규랑 주성이가 거기에 간다길래 나도 같이가려고 했을 뿐이었다.
아빠가 형은 고등학교를 나중에는 남자 미용사도 잘될거라며 미용과로 가라고 강제했었지만 나한테는 따로 뭔가를 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쓰면서 생각해보니 형같은 리얼충과는 달리 혼모노 쓰레기인 나에 대해선 그냥 포기해버렸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당시 내 내신은 137/200이었다.200점 만점에 137.절대 좋지 않았다.근데... 화공과에 입학한 애들중엔 제일 높았다...
선생님들은 근 몇년간 화공과에 들어온 애들중엔 가장 높다고 칭찬했다.믿을 수 없게도...
더 믿을 수 없는건 이런 개꼴통 학교마저도 상규와 주성인 떨어졌다는 것이다.친구들이랑 같이 가려고 들어온 학교에 나는 홀로 남고 말았다.
시간은 흘러 입학식날.난 앞자리에 앉아있던 같은 과 학생인 권OO란 애랑 친해졌다.그 친구를 통해 알게된 김OO랑 김XX도 있었다.
이렇게 넷이 친구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변하지 않았다.난 여전히 찐따였다.
집이 가난한건 그대로였고, 교복도 산 게 아니었다.기존 졸업생들이 기증하고 간 것을 세탁해둔 게 있었는데 세탁비만 내고 받아올 수 있었다.바지 통이 너무 넓어서 항아리 바지라고 불리곤 했다.
아, 달라진게 있긴 했었다.
중3 겨울방학때만 해도 142CM였던 키가 몇개월 사이에 무지막지하게 자라서 입학할 때엔 172CM가 되었다.키가 훅 자라니까 씹돼지였던 나도 정상체중이 되어버렸다.근데 그거 빼면 속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판타지 세계속에 빠져서 현실을 볼줄 모르는 인간.참고로 초등학교 4학년때 쯤에 내가 개발한 놀이가 있었는데 상상놀이라는 것이었다.그 시절에 머릿속에서 내가 다크템플러가 되어 우주를 누비면서 오버로드들을 썰어내기도 했었고 무협지의 주인공이 되어 천하를 오시하고 온갖 미녀를 얻기도 했었다.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때 일을 중, 고등학생 때보다 더 잘 기억하고 있는 게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도피처도 없던 시절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도피하고 머릿속에서 계속 다른 일을 상상하고 그러니까, 도피할 곳이 생기니까 오히려 괴로운 기억들이 더 많아야할 중,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더 적은 것 같다.진짜 이런저런 일 많이 당했는데 말야...
고1인가 고2일때 방학식날 청소하면서 뒤통수 계속 후들겨 맞고 낄낄거리거나, 반회의 도중에 말대답했다고 반장이 복도로 불러내서 명치를 주먹으로 줘패거나화장실에서 똥싸고 있을때 물뿌리거나, 실내화 다 떨어져서 걸어다니면 떨어진 밑바닥이 계속 복도랑 부딪혀서 철썩철썩 소리 내면서 걸어다닌 거라던가.
쓰다보니 초등학교때 화장실 청소하는데 내 실내화에 침뱉으면서 거지새끼라고 욕했던 놈도 생각나네. 걔땜에 2일간 학교 안갔었는데 그 덕에 선생님한테 뒤지게 맞았었어.
아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수십, 수백배 더 많겠지.
여튼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면 첫 시험에서 평균 87점인가로 과1등이 되었었다.나는 여전히 공부를 지독히 싫어했기 때문에 안했었는데 공고 자체가 시험이 쉽게 나오니까 그냥 수업시간에 필기했던 것들만 쭉 외우고 있어도 점수가 나오는 거였었지.그 뒤로도 딱히 공부 안하고 시험기간에 걍 피시방가서 던파하고 카오스 하고 해도 3년 내내 평균 90점 정도 받으면서 과1등, 가끔 2등 했었는데...그게 내가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잘했던 거였었다.운동도 못해, 춤도 못추는 심각한 몸치에, 노래만 부르면 분위기가 얼어버리는 씹음치, 그렇다고 그림을 그릴줄 아나 음악을 잘하나.
병신같은 일들로 가득한 내 인생에서 유일한 자랑거리라는게 고작 저런거라니 또 우습네.
고3때 담임이 나한테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실업계 특별 전형으로 고려대 지원해볼 수 있다고 할 맘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취업할거라고 하면서 거절했던 기억도 있다.만약 그때 대학간다고 했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물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애초에 돈이 없어서 갈 수도 없었겠지.성적이 좋아봐야 공고수준에서 좋으거니까 가서 강의를 따라가지도 못할테고.내가 또 노력해서 장학금 탈만한 인간도 아니니까.
휴...
여튼 뭐 고등학생 때 일들은 던파란 게임에 빠졌었다.당시 3차 클베때 플레이하던 같은반에 조OO라는 애가 나한테 추천해줬던 게임인데.
컴퓨터실에서 하는게 재밌어보이더라고.그래서 시작했다가 고3 내내 즐겼다.피시방가면 항상 던파하고... 가끔 카오스 하고.
그렇게 시작한 던파를 군대갈 때까지 할줄은 몰랐었지만...
이때쯤 형은 진짜 집에 잘 안들어왔다.한 달에 몇 번 겨우 얼굴 볼까말까?아빠가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하니까 주먹으로 거울 두들겨서 깨부수고 나갔던거 생각나네.
이 집에 뭐라도 남기고 가야지요. 하고 막 아빠 노려보면서 그러고 나갔었는데.얼마 뒤에 어쩌다보니까 또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살고 있었음.
아빠는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이상한 서적은 계속 읽고 돈도 없으면서 한약재는 계속 사오고 약초 캐와서 술담그고 먹고.
이때쯤의 아빠는 거의 완전히 정신이 나갔던게 아닐까 싶다.
어느 날은 내가 아빠 술마시는 동안 옆에서 소설 읽고 있는데 뜬금없이 나한테 민족의 정기와 얼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했는데.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몰라? 왜몰라! 하고 격분하면서 내 목을 졸랐었다.
눈에 눈물 고이고 켁켁 거리고... 솔직히 그때 진짜 죽는줄 알았었다.나중에 좀 지나니까 풀어줬었지만.
노무현 관련해서도 얘기했던거 같다.노무현이 정치는 백년 뒤에나 사람들이 알아줄 정치라고, 지금 시대 사람들은 못알아본다고.
솔직히 정치에 좆도 관심 없어서 지금도 모르겠다.
고3때 쯤엔 같은집 3층에서 1층으로 이사갔다.당연히 돈이 없어져서 인데.
여긴 방을 하나 빌린게 아니라.
1층에 있는 방 하나짜리 방을 하나 빌려서 아빠가 쓰는 큰 방.그리고 대문 나온담에 옆으로 돌아서 쪽문으로 들어가서 가운데에 있는 반지하방 조그마한거 하나를 빌려서 형이랑 내가 쓰는 작은 방으로 썼었다.
우리 방엔 벌레가 진짜 많았었는데.순두부 찌개를 끓이면, 뭐 찌개래봐야 자유시장에서 천원에 파는 순두부랑 순두부 사는 뭔지 모를 빨간 기름? 같은거 넣어서 끓일 뿐이었지만. 그 당시에 나한텐 그거라도 없으면 진짜 밥 못먹는 정도였었는데.
여튼 그렇게 끓여서 먹고나서 다음날 아침에 양은냄비 뚜껑 열어보면 바퀴벌레들이 막 드글드글하게 뒤져있는 거야.근데 그런 꼴을 하도 많이 보니까 걍 그대로 버려버리고 설거지하고 또 끓여먹고 그랬었지.
하루는 자다가 얼굴이 근질거려서 뭐지 하고 탁 건드렸더니 냉장고로 날아가길래 파리채 휘둘러서 때렸거든?그랬더니 뭔지도 모를 거의 주먹 반만한 크기의 벌레새끼가 냉장고에 짜부돼서 뒤져있었어.
그리고 이때쯤돼서 아빠는 진짜 매일매일 슈퍼앞에서 동네 아재들이랑 같이 소주를 까먹었었어.난 그게 진짜 싫었어.
그래서 일부러 집앞으로 안가고 빙빙 돌아서 아빠 안보이는 루트로 해서 우리 방 들어가서 나라에서 새로 지급받은 컴퓨터로 게임했었어.그땐 서든을 잠깐 했었는데. 그 당시엔 진짜 잘했었어. 헤드샷 진짜 잘노리고.
대충 쏘면 이긴다면서 맨날 점수 상위권 먹고.근데 한 두달쯤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더럽게 안되는 거야.분명히 서든 시작하고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실력이 말도 안되게 급감해버려서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푱푱 쏘면 죽을땐 재밌게 했었는데 금새 시들해져서 접어버렸지.
그리고 다시 던파하고 소설읽고... 반복하다가.
하루는 밥먹으면서 소설 읽는데 아빠가 옆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서. 밥 한 입먹고 콜록이고 문장 읽고 다시 한 입 먹고 콜록이고 문장 읽고 그러고 있었거든.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화내면서 주먹으로 때리고 내가 왜 화내는지 아냐고. 니가 담배땜에 기침해서 그런줄 아냐고.밥먹을땐 밥만 먹으라고.
솔직히 어처구니 없었다?밥먹을때 책 읽는거, 걸어다니면서 책 읽는거. 다 아빠가 하던 거였거든.난 그냥 아빠를 보면서 배운거였어.그래놓고 나한테 그러니까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았었는데.그 뒤론 아빠 있을땐 밥먹으면서 책 읽은 적이 없다.
또 중간고사 때였던가?내가 고3되면서 게임 다시 할 수 있게 되고 완전히 공부에 흥미를 잃어서중간고사 성적이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이후 처음으로 80점대로 내려왔었거든.
근데 어차피 고3 성적은 내신에도 영향 안가잖아.그래서 좆도 신경 안쓰고 던파하고 있는데.
아빠가 성적표를 본 날 뒤집어진 거야.막 개쌍욕을 다하면서 빨래 건조대 그 뭐라 그래야하지? 스테인리스 같은걸로 된거.
그거 완전히 개박살 날때까지 나한테 후려쳐서 잡고 있는 부분만 남고.나중에 의자 들어서 나한테 내려찍으려고 하는데 형이 그만하라고 말려서. 자기 화 못참고 냉장고에 내려찍어서 냉장고 크게 패이고.
그 외엔 한쪽 벽면에 곰팡이가 엄청 심하게 피어 있었는데.어느 날은 형이 게임하던 나 일으켜세우고 화내면서 주먹으로 계속 때리고 벽으로 몰아붙이면서 넌 쓰레기새끼라고 막 욕했던 것도 기억남.
여튼 그러다가 내가 취업하기로 맘먹고. 담임이랑 얘기하고.
여름방학부터 취업 특기 교육을 받게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책 읽으면서 휘이익 돌아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어.그때 읽던 판타지 소설이 월야환담 채월야 4권인가? 5권인가? 그랬을 거야.
읽으면서 쭉 걷고 있는데 집 근처에서 왠 할머니가 부르는 거야.그리고 야 니 아버지 죽었어. 이러길래. 하도 어이가 없어서.
우리 아빠 안죽었어요.저기 아들 둘이랑 사는 최씨댁 둘째 아냐?맞는데요.이상하네. 죽었는데...
뭐 이런 대화 나누고. 할머니 계속 이상하네 이러고 있길래.재수없다고 생각하고 집에 들어왔다가 혹시나 싶어서 아빠방으로 가봤거든.방엔 아무도 없고 화장실 문 열어보니까 화장실 바닥에 똥이랑 핏자국이 있었어.
부들부들 떨면서 형한테 전화하니까. 형은 나한테 어딨었냐고.학교에 전화하니까 전화 받은 사람이 방학때 수업 나오는 애들이 어딨냐고 했다고 하길래.막 횡설수설 하고 있으니까 일단 오라면서 위치 설명해줬고.
장례식장에서 형이 어디 갔다온다면서 나한테 아빠 휴대폰을 주면서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한테 아빠 죽은거 전하라고 했었거든.
그래서 연락처 맨 이에 있는 사람한테 전화 걸었더니 왠 여자가 받았었어.
그 여자가 여보세요? 라고 하는데 내가 내뱉은건 밑도 끝도 없이 우리 아빠 죽었어요. 라는 말이었었다.여보세요? 누구? 너희 아빠가 누군데?최OO이요. 우리아빠. 죽었어요.하면서 막 횡설수설하면서 연락처에 있길래 걸었다고 하니까. 그게 누군지 모르겠다고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냐고 하길래 눈물이 터져나왔었다.
우리아빠가 생전에 인맥 관리를 잘한건지 사람이 굉장히 많이 왔었고, 나는 계속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울기만 했다.큰삼촌이 너희 아버지 아침에 죽었다는데 왜 몰랐냐고. 니들은 아침에 학교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안하냐고 얘기했던 것도 기억난다.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매일 술만 마시는 아빠가 싫어서 학교 갈 때랑 올 때랑 계속 빙 돌아서 다니고 학교 안갈땐 집에 있기 싫어서 걍 밖에 나가서 책읽거나 막 싸돌아다니곤 했었거든.그래서 내가 착한 아들이어서 매일 아침 인사를 했다면 아빠가 살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염할때 눈가에 눈물 고인거 보고 죽어가면서 우리 찾으면서 울었던게 아닐까 하고 울었었고 화장할때도 계속 울었다.화장할때 형은 주먹으로 벽을 하도 두들겨서 뼈가 나가서 한동안 깁스 하고 다녔었고.그리고 해병대였던 우리 형 친구가 우리 아빠 죽었다니까 휴가 신청했는데 휴가를 안내줘서 그냥 탈영해서 장례식 참여하고, 그 형 찾으러 온 간부들이 영창은 안보낼 테니까 일단 돌아가자고 얘기하던 것정도.
그 외엔 계속 울고 먹고 자고 울기만 해서 기억이 잘 안난다.사실 위에 말한 것들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뿐인데.
그런데울면서 마냥 우리아빠 죽었어요. 하고 계속 중얼중얼 거리던 나한테 그 여자가 계속 자기번호 어떻게 알았냐고 추궁하던건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 아빤 죽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슬픈데. 앙앙 울고 있는데. 자기 연락처가 왜 우리 아빠 휴대폰에 있는지. 그게 그렇게 궁금했던 걸까?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냥 다른 사람 연락하라고 해도 됐을텐데 말이야...
여튼 그 뒤에 형이 부천에서 상속 포기라던가 뭐 그런거 정리하고 있을 동안 나는 시골에 있는 큰고모 댁에서 요양하고 있었다.그때 고모랑 고모부가 나한테 부천 올라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살면서 일하는건 어떻겠냐고 했었는데.나는 곧 학교 졸업하고 취업할거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고.
대충 한 달? 그쯤 지나서 다시 부천 올라왔다. 여름 방학도 끝났고.형은 원미동에 새로 구한 집으로 이사해있었어.그 뒤에 뭔가 요상한 책임감이 생긴거 같더라고. 자기가 장남이니까. 날 책임져야 한다거나.우리가 가난하게 살았으니까 잘살아야 한다는 보상 심리? 이건 형이랑 연락 끊을 때까지 계속 들은거 같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개학식날 되게 어처구니 없던 일도 하나 있었다.
갑자기 담임이 반장, 일어나 봐라 이러길래.아, 이때 내가 반장이었다.고3 되면서 일찐중에 하나가 장난으로 나 후보로 내세웠는데 병신마냥 안하겟다고 거절도 못해서 반장으로 활동함.그 당시에 수업시간에 애들 떠들면 조용히 해! 라고 소리지르고 개무시 당하고 그랬던 기억 난다.
여튼 갑자기 불러서 뭐지 씨발... 하면서 일어났더니.방학동안에 반장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라고 말하는 거야.진짜 개 뜬금없었다 씨팔...
아니 그걸 왜 다 까발리지 하고 속으로 욕하고. 그 뒤에 담임이 뭐라뭐라 쏼라쏼라 했는데 대충 잘 지내주고 막 그런 얘기였던거 같다.
그리고 10월달이 되고 유니온 페인트라는 페인트 공장에서 월 70만을 받으면서 일했는데.이때 내 친구중 하나인 김XX도 같은 공장으로 갔었음.근데 나는 연구부라 안쪽에서 따듯하게 일하는데 걔는 페인트 직접 생산하는 쪽 가서 되게 고생했었다.
뭐 현장 사람들은 나 말귀 못알아듣고 답답하다고너 이쪽에 왔으면 줘패 죽였을 거다.이런 얘기 하던거 보면 다행인거지만 ㅎ.
여기 그래도 병역 특례 업체라서 꾸준히 일하면 병역 뺄 수 있었는데.거기서 나름 열심히 일하다가 약품들 때문에 피부 점점 상태 안좋아지고 몸상태도 안좋아져서 졸업식날 그냥 그만뒀다.근데 얘기하고 관둔게 아니라 그냥 김XX한테 말해달라고 하고 걔는 졸업식 끝나자마자 밥만 같이 먹고 일하러 가고 나는 그대로 집에가서 쉬었었다.이게 내 도피인생의 첫 시작이 아니었을까.
김XX는 여기서 계속 일해서 군대 뺐고.
여튼 이후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시급 3500원 받으면서 11시간씩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되게 열심히 일했었는데... 형이랑은 항상 부딪혔다.
내가 게임만 하고 형이랑 말 잘안하고 감정 표현도 안한다고.그래서 원래 못하는걸 어떻게 하라고 하면서 막 숨막혀가면서 겨우 얘기하고.알바할때 어서오세요라던가 그런건 잘하지 않느냐고 막 윽박지르고.나는 또 그건 연기 같은 거라고 나도 하고 싶은데 안되는걸 어떻게 하냐고 막 그러고...
참고로 이때도 형은 나한테 이런저런 일로 계속 시비 걸었었다.
페인트 공장에서 처음 일해서 벌었던 돈으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라는 라이트노벨을 샀었거든.근데 형이 하루는 그거 들고와서 이런건 왜사냐고 여자가 만나고 싶으면 현실의 여자를 만나라면서 또 뭐라고 하고...여자가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가 추천해주니까, 재밌어보여서, 읽어 보고 싶어서였을 뿐이었는데...그 뒤로 책 산적이 없다.
아, 책얘기 하니까 생각난건데 나 책은 진짜 많이 읽었었다.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동네 책방에서 원미동으로 이사갈 때까지 다녔었는데.고2인가? 고3때 대여 기록을 보니까 8000권을 넘어서 거의 9000권이더라고.아빠가 빌린 것도 있긴 하지만 아빠가 빌려온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들은 나도 다 읽었었으니까.
그리고 중학생때 3년간 도서부였었는데 학교 도서실에서 대여 기록 대충 1500권쯤 됐고...이땐 내가 라그나로크에 미쳐있던 시기가 있어서 좀 적음.
고등학생땐 3년간 학교 도서실 대출기록 3000권 좀 넘고.이땐 게임에 미쳐있었어도 컴퓨터 생긴게 고3 될때라서 피시방 갈때 아니면 계속 책 읽는 수밖에 없으니까 많았음.책방에서 빌린게 다 만화, 판무소설들이니까 그렇다 쳐도. 학교 도서실에선 이런저런 상식이나 자기계발서들 진짜 많이 읽었었다.
변하는 건 없었지만, 대화의 기술이고 지랄이고. 면접에서 성공하는 법, 자신감을 가지는 법.뭔 다 개지랄이었었어.
여튼 편의점 알바를 3개월쯤 하고 그만뒀어.
이때 당시의 나는 사회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3개월씩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었거든.사장 아주머니가 그 얘기 듣고 되게 황당한 눈으로 보다가 시급 3800원으로 올려줄테니까 계속 하라고 했던거 기억난다.그래도 그만뒀지만.
그리고나선 리니지 작업장 아르바이트를 했어.근데 여긴 오래 못했다.한달 하고 조금 더 하다가 그만뒀어.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하는 거라곤 오토 프로그램이 컴퓨터 하나당 캐릭 8개씩 돌리고 있는데.
그거 보다가 누가 말걸면 오토 아닌척 대답하고, 이상한 일 생기면 보고 체크하고.그 당시 리니지에서 오토 잡는 방식이 그 지역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몬스터를 갑자기 소환한다던가.
예를 들어서 용암지대인데 아이스골렘 이런게 나오면 누가봐도 이상하잖아?그래서 그걸로 오토 판별했는데 오토 프로그램들은 그런거 다 체크했었다...
지역별로 체크하면 어떤 몬스터 나타났을때 알람 울릴지 그런거 다 나오고.GM이 채팅하거나 하면 삐비비비비비비 비비비비빕 ㅣ비비비 하면서 존나게 알람 울리고 경고음 터졌었음.
처음엔 좀 재밌었어.형들 리니지 하면서 정모에서 누가 술병으로 같이 나왔던 사람 모가지 찔러서 경찰들 오고 난리도 아니었다던가 뭐 그런썰 듣거나.죽으면 템 떨구던 시절에 1렙 캐릭 만들어서 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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