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 후 인생살아온 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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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19:29 조회 518회 댓글 0건본문
군대
이미 조질대로 조진 인생 허송세월 보내다가 연초에 입대했다.훈련소는 딱히 나쁜 추억이 없었다.다만 육군일반병으로 지원해서 수료식날 보직을 알게되었는데운전경력이 길다고 구라쳐서인지 운전병이 되었다.
근데 그냥 운전병이 아니라 트레일러 운전병이 되었다.장롱면허인데 좆됬다 생각했는데 역시 좆됬다.트레일러 운전은 진짜 존나게 어렵다. 병장쯤 달 때는 고수가 되었지만
어쨋든 후반기교육에서도 운전못하는 운전병이었고자대와서도 운전 못하는걸로 찍혔다.아버지 군번뻘 운전병 선임이 3명 있었는데 모두 무서웠다.
이등병때 주차연습 시키다가 사고쳐서 벽하나 부신거 있는데 그때 진짜 좆털려서 울었다. 그래도 내동기 1명과 그 선임만 알고 있는데 끝까지 묻어줬던거 보면 고마웠던 사람들이다.
수송간부중에 정비관이라고 있다.그 분이 내 인생 멘토인데, 정말 무서웠다.그 분한테 운전교육 받게 되면 영혼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는데 내가 운전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 분한테 두 달 내내 집중마크를 당했다.역시나 좆털렸는데 나중에 전역하고도 꾸준히 만나게 되는 인연이 될 줄은 그 때는 상상도 못했다.
선임중에 키크고 잘생기고 말잘하는 선임이 있었다.그 선임이 제일 무서웠는데 같이 초소근무를 나가게 되었는데 먼저 마음 잡고 있으라 했다. 혼날 준비하라고
역시나 존나 갈굼먹었다 그따구로 할거면 운전병 왜했냐 이런소리 들었다. 그래도 의욕은 넘치던 때여서솔직히 잘 하고 싶은데 마인드컨트롤도 잘 안되고 왜 이게 안되는지, 몸이 안따라주는지 전혀 모르겠다. 저도 잘하고 싶은데 답답해 하는거 이해된다. 이런얘기하면서 1대1로 진실하게 말해보니까 그 이후로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다른 운전병 선임이랑 근무스는건 여전히 지옥이었지만
그런 선임들도 다 가고 맞선임과 내가 남았다. 내 맞선임이 존나 개새끼인게 지잘못은 무조건 남한테 떠맡기는 버릇이 심했다. 그래서 이유없이 좆갈굼먹었는데 짬먹고나서 그새끼 없으니까 일 잘돌아가기 시작해서 너무 좋았다.
내 맞선임과 작업하다가 서로 대가리가 존나컸고 내 동기라인이 주축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새끼가 와서 또 작업 망쳐놔서 그렇게 하는거 아닙니다 하다가 영창갈 각오로 싸울 뻔했다.
선임 한 명이 말려서 번지지는 않았는데 그 때 이후로 나는 개찍혔는데 또 밑에 애들 사이에선 용기있는 사람이 됬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건 맞는거 같아서 전역하고 페메로 사과했다.
내 맞후임은 나보다 나이 많고 사회생활을 하다온 애여서 그런지 에이스였다. 몰론 후임 존나 갈궈서 영창갔다왔다.
그 밑에 후임들은 솔직히 우리 예전모습 보는거 같아서욕 안하고 부드럽게 설명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설명해보다가 한놈이 사고쳤다.사이드브레이크 안내리고 운전하더라 미친넘이그 때는 씨바 도저히 못참았는데 군생활하면서 딱 세 번 쌍욕했다.
결국에 나에게도 말년이 왔다.내가 사고친거도 많은데 열심히 한거도 많아서 출타일수 639일중에 100일 가까이 밖에 있었다. 내 군대생활 유일한 자랑이다.
말년에 정비관님이 운전 시켜보고 지켜보는데 짬이 차서인지 많이 는 거 보니까 봐왔던 선임들 전역할 때까지 칭찬 절대 안하는 사람인데 운전 많이늘었네... 하면서 말했는데 제일 기뻤던 거 같다.
전역날이왔는데 아직 공부할 마음이 없는데 학교갈 생각에 너무 착잡하고 그 동안 내 군생활에 관련된 스토리들이 떠오르면서 복잡한 마음이 심해 잠이 안들었다. 결국에 당직책상에서 그 날 당직서는 간부님이랑 당직병이랑 밤새 인생얘기했다.결론은 없었지만
군생활과 별개로 정비관님을 존경하게된 계기는 그 분야에 장인이 되기위해서 꾸준히 연구하시는 분이었다. 굴러다니지 않는 차도 그 분 손을 거치면 재생하는 기적을 보았고, 주위 부대에서 못고치는차 물어보려고 정비관님을 찾아오는 간부도 많았다.
또 그 분이 운전을 엄하게 가르치는 이유가 부하 병사가 사고로 죽은 소식을 들어서 그 때부터 일부로 무서워 보이게해서 경각심을 키워주려고 했다 한다.
전역 후
근데 사람이 쉽게 안변하더라. 6개월 휴학을 더 신청했다.남들 휴학 때 여러가지 스펙 쌓는데 나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그냥 복학이 두려웠던 것 이다.
이미 조질대로 조진 인생 허송세월 보내다가 연초에 입대했다.훈련소는 딱히 나쁜 추억이 없었다.다만 육군일반병으로 지원해서 수료식날 보직을 알게되었는데운전경력이 길다고 구라쳐서인지 운전병이 되었다.
근데 그냥 운전병이 아니라 트레일러 운전병이 되었다.장롱면허인데 좆됬다 생각했는데 역시 좆됬다.트레일러 운전은 진짜 존나게 어렵다. 병장쯤 달 때는 고수가 되었지만
어쨋든 후반기교육에서도 운전못하는 운전병이었고자대와서도 운전 못하는걸로 찍혔다.아버지 군번뻘 운전병 선임이 3명 있었는데 모두 무서웠다.
이등병때 주차연습 시키다가 사고쳐서 벽하나 부신거 있는데 그때 진짜 좆털려서 울었다. 그래도 내동기 1명과 그 선임만 알고 있는데 끝까지 묻어줬던거 보면 고마웠던 사람들이다.
수송간부중에 정비관이라고 있다.그 분이 내 인생 멘토인데, 정말 무서웠다.그 분한테 운전교육 받게 되면 영혼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는데 내가 운전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 분한테 두 달 내내 집중마크를 당했다.역시나 좆털렸는데 나중에 전역하고도 꾸준히 만나게 되는 인연이 될 줄은 그 때는 상상도 못했다.
선임중에 키크고 잘생기고 말잘하는 선임이 있었다.그 선임이 제일 무서웠는데 같이 초소근무를 나가게 되었는데 먼저 마음 잡고 있으라 했다. 혼날 준비하라고
역시나 존나 갈굼먹었다 그따구로 할거면 운전병 왜했냐 이런소리 들었다. 그래도 의욕은 넘치던 때여서솔직히 잘 하고 싶은데 마인드컨트롤도 잘 안되고 왜 이게 안되는지, 몸이 안따라주는지 전혀 모르겠다. 저도 잘하고 싶은데 답답해 하는거 이해된다. 이런얘기하면서 1대1로 진실하게 말해보니까 그 이후로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다른 운전병 선임이랑 근무스는건 여전히 지옥이었지만
그런 선임들도 다 가고 맞선임과 내가 남았다. 내 맞선임이 존나 개새끼인게 지잘못은 무조건 남한테 떠맡기는 버릇이 심했다. 그래서 이유없이 좆갈굼먹었는데 짬먹고나서 그새끼 없으니까 일 잘돌아가기 시작해서 너무 좋았다.
내 맞선임과 작업하다가 서로 대가리가 존나컸고 내 동기라인이 주축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새끼가 와서 또 작업 망쳐놔서 그렇게 하는거 아닙니다 하다가 영창갈 각오로 싸울 뻔했다.
선임 한 명이 말려서 번지지는 않았는데 그 때 이후로 나는 개찍혔는데 또 밑에 애들 사이에선 용기있는 사람이 됬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건 맞는거 같아서 전역하고 페메로 사과했다.
내 맞후임은 나보다 나이 많고 사회생활을 하다온 애여서 그런지 에이스였다. 몰론 후임 존나 갈궈서 영창갔다왔다.
그 밑에 후임들은 솔직히 우리 예전모습 보는거 같아서욕 안하고 부드럽게 설명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설명해보다가 한놈이 사고쳤다.사이드브레이크 안내리고 운전하더라 미친넘이그 때는 씨바 도저히 못참았는데 군생활하면서 딱 세 번 쌍욕했다.
결국에 나에게도 말년이 왔다.내가 사고친거도 많은데 열심히 한거도 많아서 출타일수 639일중에 100일 가까이 밖에 있었다. 내 군대생활 유일한 자랑이다.
말년에 정비관님이 운전 시켜보고 지켜보는데 짬이 차서인지 많이 는 거 보니까 봐왔던 선임들 전역할 때까지 칭찬 절대 안하는 사람인데 운전 많이늘었네... 하면서 말했는데 제일 기뻤던 거 같다.
전역날이왔는데 아직 공부할 마음이 없는데 학교갈 생각에 너무 착잡하고 그 동안 내 군생활에 관련된 스토리들이 떠오르면서 복잡한 마음이 심해 잠이 안들었다. 결국에 당직책상에서 그 날 당직서는 간부님이랑 당직병이랑 밤새 인생얘기했다.결론은 없었지만
군생활과 별개로 정비관님을 존경하게된 계기는 그 분야에 장인이 되기위해서 꾸준히 연구하시는 분이었다. 굴러다니지 않는 차도 그 분 손을 거치면 재생하는 기적을 보았고, 주위 부대에서 못고치는차 물어보려고 정비관님을 찾아오는 간부도 많았다.
또 그 분이 운전을 엄하게 가르치는 이유가 부하 병사가 사고로 죽은 소식을 들어서 그 때부터 일부로 무서워 보이게해서 경각심을 키워주려고 했다 한다.
전역 후
근데 사람이 쉽게 안변하더라. 6개월 휴학을 더 신청했다.남들 휴학 때 여러가지 스펙 쌓는데 나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그냥 복학이 두려웠던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