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당한 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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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21:57 조회 540회 댓글 0건본문
키도 작고 왜소한 탓인지 중1부터 따돌림 받았다.
그 뒤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왕따 당했지만, 그 중 가장 억울하면서도 슬펐던 때는 3학년 때였다.
중3 초기, 학교 학원 장소를 불문하고 이어진 따돌림 때문에 성적이 급락했고 그걸 빌미로 다른 학원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학원을 옮긴지 2달 정도 지났을까 다시 왕따를 당했다.
주동자는 나보다 왜소하지만 주변 일진여자들과 친한 남자애.
따돌림의 이유는 단지 ‘내가 걔보다 성적이 높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 새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트집을 잡으며 내 자존감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하나하나 서술해보자면 ‘정수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주변 애들에게 소문을 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루에 무조건 1~2번 목욕하고, 더운 날엔 그 이상 몸에 물을 끼얹는다.
냄새가 날 리 만무하지만 억지명분을 만들어 내 입지를 깎아내려갔던 것이었고 주변 애들은 나보다 힘이 있는 걔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또 입고 있는 옷이 형편없다며 마주치는 곳곳에서 망신을 줬다.
따돌림의 하이라이트는 한 벌의 옷가지로 인해 일어났다.
중3에 올라간 직후 왕따 타이틀을 벗어보고자 외투 하나를 산 적이 있다.
당시 소위 잘 나가는 애들만 입고 다니는 옷 중 하나로 어머니를 보채 비싼 돈 주고 겨우 마련한 것이었다.
가격은 약 8만원. 노스페이스 패딩 같은 고가의 옷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비싼 옷이었다.
고가의 옷이었지만 그걸 입은 때는 수학여행 가는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휴게소에 도착해 잠시 음료수나 사러 버스 밖에 나갔다. 걔를 마주쳤다.
전화를 하며 낄낄 거리던 그 놈 표정이 싹 굳더니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삼삼오오 모여든 그 새끼 친구들이 나를 동그랗게 에워쌌다.
쌍욕을 퍼부어댔다. 너 따위가 뭔데 그 옷을 입냐, 니 주제를 알아야지 적당히 깝쳐라 등 온갖 폭언이 쏟아졌다.
휴게소를 떠나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남몰래 울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문제의 그 옷은 가방 맨 아래에 넣어두고 다신 꺼내지 않았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2주일 지났을 무렵이었다. 학원이 끝난 뒤 그 새끼가 나를 불렀다.
자기 집 앞 놀이터로 날 끌고 가더니 무작정 그네에 앉혔다.
설득 아닌 설득을 시작했다.
“수학여행 때 입고 온 옷 얼마였어? 아 8만원? 나한테 3만원에 팔래?”
당연히 안 된다고 답했다.
“왜 안 돼? 너 그 옷 입고 돌아다녔잖아. 그럼 중고지. 중고 옷 3만원에 사면 비싸게 주고 사는 거야. 우리 아빠가 공무원이거든? 집에 문화상품권 되게 많아. 문상으로 3만원 줄게. 그럼 되지?”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변명했다.
“부모님이 왜 반대해. 너 부모님한테 잡혀 살아?”
쓸 데 없는 말이 이어졌다. 다행히 그 날은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이 시작이었다. 그 이후 매일 학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그 놀이터로 끌려갔다.
무분별한 욕설과 협박 그리고 달램이 이어졌다.
“그 옷은 특별한 옷이라 특별한 보관 용액이 필요해. 야 넌 그것도 몰랐어? 그 옷 다 상해가겠네. 얼른 나한테 팔아.”
“넌 내가 우습냐? 내 좆 빨면 용서해줄게. 좆 빨던지 그 옷 나한테 팔던지. 꼽냐? 나랑 맞짱 뜰래?”
나보다 왜소했기에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한 번 붙어볼 수 있겠지만, 그 뒤를 봐주는 일진들과 맞설 순 없었기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협박은 기말고사까지 이어졌다. 수많은 말이 이어졌고 버려진 말들은 놀이터에 쌓였다.
놀이터로 가는 날이 이어질수록 그나마 남아있던 애들도 내 곁을 떠나갔다.
어느 날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애들과 함께 분식집에 갔다. 걔가 그곳에 있었기에 나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기 싫다며 맞은 편 테이블로 쫓아냈다.
주문을 했다. 돈을 갖고 다니지 않았던 나는 주문하지 못했다.
돈을 뺏길까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만 원이라는 큰 돈을 나 같은 놈이 쓸 수는 없다는 마음이 커 돈을 안 가지고 다녔던 때였다.
돈이 없으면 굶으면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을 굽혀가면서 밥을 구걸하고 싶진 않았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 분식집에 마련된 오뎅국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아무도 내게 음식을 나눠주지 않았다. 섭섭하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갑자기 그 놈이 날 불렀다.
와서 좀 먹으란다.
가보니 돈까스 튀김가루가 빈 접시에 담겨 있었다.
허기질테니 그거라도 먹으라는 말이었다. 화가 났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며칠 뒤, 역시나 놀이터로 끌려갔다.
점심에 무엇을 먹었냐는 질문에 국수를 먹었다고 답했다.
갑자기 뜬금없는 패드립이 날아왔다.
“너네 엄마 베트남 사람이냐? 국수 먹게? 너네 집 수준 나온다.”
어이가 없었다. 국수를 먹었다는 이유로 가족을 걸고 들어가는 터무니없는 언변에 말문이 막혔다.
그날 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앉아 서글프게 울었다.
원체 잘 울지 않는 사람인데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 가족까지 욕을 먹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집에 가 현관문을 여니 엄마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엄마를 끌어안고 또 울었다.
그 날 나는 엄마에게 이 얘기를 털어놨고 가족이 이 일의 진상을 알게 됐다.
다음 날 엄마가 그 새끼 엄마에게 전화해 당신 자식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고 따지셨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 되가는 듯 보였다.
그 뒤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왕따 당했지만, 그 중 가장 억울하면서도 슬펐던 때는 3학년 때였다.
중3 초기, 학교 학원 장소를 불문하고 이어진 따돌림 때문에 성적이 급락했고 그걸 빌미로 다른 학원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학원을 옮긴지 2달 정도 지났을까 다시 왕따를 당했다.
주동자는 나보다 왜소하지만 주변 일진여자들과 친한 남자애.
따돌림의 이유는 단지 ‘내가 걔보다 성적이 높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 새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트집을 잡으며 내 자존감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하나하나 서술해보자면 ‘정수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주변 애들에게 소문을 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루에 무조건 1~2번 목욕하고, 더운 날엔 그 이상 몸에 물을 끼얹는다.
냄새가 날 리 만무하지만 억지명분을 만들어 내 입지를 깎아내려갔던 것이었고 주변 애들은 나보다 힘이 있는 걔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또 입고 있는 옷이 형편없다며 마주치는 곳곳에서 망신을 줬다.
따돌림의 하이라이트는 한 벌의 옷가지로 인해 일어났다.
중3에 올라간 직후 왕따 타이틀을 벗어보고자 외투 하나를 산 적이 있다.
당시 소위 잘 나가는 애들만 입고 다니는 옷 중 하나로 어머니를 보채 비싼 돈 주고 겨우 마련한 것이었다.
가격은 약 8만원. 노스페이스 패딩 같은 고가의 옷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비싼 옷이었다.
고가의 옷이었지만 그걸 입은 때는 수학여행 가는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휴게소에 도착해 잠시 음료수나 사러 버스 밖에 나갔다. 걔를 마주쳤다.
전화를 하며 낄낄 거리던 그 놈 표정이 싹 굳더니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삼삼오오 모여든 그 새끼 친구들이 나를 동그랗게 에워쌌다.
쌍욕을 퍼부어댔다. 너 따위가 뭔데 그 옷을 입냐, 니 주제를 알아야지 적당히 깝쳐라 등 온갖 폭언이 쏟아졌다.
휴게소를 떠나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남몰래 울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문제의 그 옷은 가방 맨 아래에 넣어두고 다신 꺼내지 않았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2주일 지났을 무렵이었다. 학원이 끝난 뒤 그 새끼가 나를 불렀다.
자기 집 앞 놀이터로 날 끌고 가더니 무작정 그네에 앉혔다.
설득 아닌 설득을 시작했다.
“수학여행 때 입고 온 옷 얼마였어? 아 8만원? 나한테 3만원에 팔래?”
당연히 안 된다고 답했다.
“왜 안 돼? 너 그 옷 입고 돌아다녔잖아. 그럼 중고지. 중고 옷 3만원에 사면 비싸게 주고 사는 거야. 우리 아빠가 공무원이거든? 집에 문화상품권 되게 많아. 문상으로 3만원 줄게. 그럼 되지?”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변명했다.
“부모님이 왜 반대해. 너 부모님한테 잡혀 살아?”
쓸 데 없는 말이 이어졌다. 다행히 그 날은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이 시작이었다. 그 이후 매일 학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그 놀이터로 끌려갔다.
무분별한 욕설과 협박 그리고 달램이 이어졌다.
“그 옷은 특별한 옷이라 특별한 보관 용액이 필요해. 야 넌 그것도 몰랐어? 그 옷 다 상해가겠네. 얼른 나한테 팔아.”
“넌 내가 우습냐? 내 좆 빨면 용서해줄게. 좆 빨던지 그 옷 나한테 팔던지. 꼽냐? 나랑 맞짱 뜰래?”
나보다 왜소했기에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한 번 붙어볼 수 있겠지만, 그 뒤를 봐주는 일진들과 맞설 순 없었기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협박은 기말고사까지 이어졌다. 수많은 말이 이어졌고 버려진 말들은 놀이터에 쌓였다.
놀이터로 가는 날이 이어질수록 그나마 남아있던 애들도 내 곁을 떠나갔다.
어느 날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애들과 함께 분식집에 갔다. 걔가 그곳에 있었기에 나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기 싫다며 맞은 편 테이블로 쫓아냈다.
주문을 했다. 돈을 갖고 다니지 않았던 나는 주문하지 못했다.
돈을 뺏길까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만 원이라는 큰 돈을 나 같은 놈이 쓸 수는 없다는 마음이 커 돈을 안 가지고 다녔던 때였다.
돈이 없으면 굶으면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을 굽혀가면서 밥을 구걸하고 싶진 않았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 분식집에 마련된 오뎅국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아무도 내게 음식을 나눠주지 않았다. 섭섭하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갑자기 그 놈이 날 불렀다.
와서 좀 먹으란다.
가보니 돈까스 튀김가루가 빈 접시에 담겨 있었다.
허기질테니 그거라도 먹으라는 말이었다. 화가 났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며칠 뒤, 역시나 놀이터로 끌려갔다.
점심에 무엇을 먹었냐는 질문에 국수를 먹었다고 답했다.
갑자기 뜬금없는 패드립이 날아왔다.
“너네 엄마 베트남 사람이냐? 국수 먹게? 너네 집 수준 나온다.”
어이가 없었다. 국수를 먹었다는 이유로 가족을 걸고 들어가는 터무니없는 언변에 말문이 막혔다.
그날 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앉아 서글프게 울었다.
원체 잘 울지 않는 사람인데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 가족까지 욕을 먹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집에 가 현관문을 여니 엄마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엄마를 끌어안고 또 울었다.
그 날 나는 엄마에게 이 얘기를 털어놨고 가족이 이 일의 진상을 알게 됐다.
다음 날 엄마가 그 새끼 엄마에게 전화해 당신 자식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고 따지셨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 되가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