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따먹은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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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23:01 조회 624회 댓글 0건본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올해 34세 된 ㄲㅊ 잘서는 기혼아재다
나는 경남의 한 촌동네에서 자랐다.
깡촌인만큼 초등학교 친구들이 그대로 중학교 친구가 되었고
초4때 시작된 나의 첫사랑은 역시 중3때까지 나의 첫사랑이었다
친가, 외가 모두 같은 고향에 있어서 나는 가끔 친척분들 뵈러 갈때를 제외하곤
고향을 벗어나질 못했다. 그정도로 촌놈이었다
첫사랑 아이를 소개하자면 나랑 동갑인, 그 당시 우리 고향 촌에서는
독보적인 외모를 가진 아이였다.
다들 논매고 밭매던 친구 엄마들과는 달리 도시에서 살다 지방 발령 받아온 아저씨와
그 남편을 따라온 아줌마는 티비에서 보던 서울 사람 같았다.
얘도 촌에서 학교 다니는 애 답지 않게 피아노와 무용을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키는 적당했고, 얼굴도 작았고, 연예인으로 보자면 슈가 박수진? 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여튼, 초등학교 동창들이 곧 중학교 동창이었던 우리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부 갈리기 시작했다.
우리 동창이 100명 정도 되었는데, 그 중 30명은 고향 실업계 학교로 진학했고
남은 40명은 창원, 마산 실업계로, 나머지 30명 정도는 창원, 마산 인문계로 진학을 했다.
초딩때부터 전교 1등을 휩쓸던 친구 1명이 고향에 있는 명문고(촌인데 나름 유명)로 진학했다.
성적이 어쩡쩡했던 나는 그나마 배운 삼촌의 주장으로 일반고 보다는 특수고가 낫다고 해서
경남의 모 외고에 입학했다. 요새는 성적이 좀 오른거 같던데 우리땐 이름만 외고지
꼴통 학교였다.
여튼 성격이 활발하지 못했던 나였는데, 고등학교도 홀로 진학하여 아싸 생활을 즐겼고,
그렇게 중학교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매주마다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집에오면 공부가 안된다는 삼촌의 주장을
덜 배운 아버지가 받아들여 방학때 말곤 집에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뭐 그런다고 공부하냐... 기숙사에 짱박하셔 딸만치지...
여튼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생활도 지나가고
나는 집 근처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 소재의 4년제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아싸, 밖에서도 샌다고 씹아싸 생활을 즐기던 나는
학교생활 적응에 실패하고 군에 입대한다.
그렇게 씹아싸 생활 후 입대한 군대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씹아싸가 뭘 할 줄 알겠냐? 함정 근무하면서 처음 일이병 생활은 몹시 힘들었다
멀미와 파도, 그 좆 같이 추운날씨에 견시... 하...
여튼 매일매일 시간 때우듯 살았는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생겼다
우리 부서장이 새로 왔는데 학사출신 대위였다.
나를 친형제 이상으로 잘 대해줬고 인생상담도 해주고, 같이 운동도 했다
그때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여튼 부서장이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성격도 ㅆㅅㅌㅊ인데
생긴것도 강타 비슷하게 닮아서 잘생겼다.
그런 씹인싸 새끼가 왜 나를 그렇게 챙겨줬는지 몰랐는데 나랑 같은 학교더라 ㅋㅋㅋ
지잡새끼도 장교 하는거 보고 놀랬다
여튼 전역하고 쉬는 동안 운동도 하면서 몸도 키웠다
키는 원래 큰 편(188)이었지만 씹 멸치(73) 였는데 1년 정도 집안 일 돕고
운동하면서 90까지 몸을 불렸다.
그리고, 대망의 복학...
안에서 새던 아싸... 복학 후 그래도 반인싸 생활했다 ㅎㅎㅎ
동아리도 새로 가입하고 지내던 어느날.
교양 수업에 들어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여자애가 있는거다...
그렇다. 내 인생 6년을 가슴뛰게 했던 그 아이었다.
예뻤다. 여전히 예뻤다. 옆에 친구와 함께 앉아있었는데 그 친구도 예뻤지만
그 년 빰후릴정도로 예뻤다
학창시절 좆씹아싸였던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말 걸까. 말까... 2시간 내내 고민했다.
하지만 찐따새끼 어디가냐? 다음에도 기회가 있겠지 하고 오늘은 그만 물러나기로 한다 ㅋㅋ
걔가 같은 학교인걸 안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리고 다음주가 되었고 수업날이 다가왔다. 나는 한껏 차려입었다.
우연을 가장해 만난것처럼 다가가기로 했다.
상상속으론 벌써 수십번 따먹고 질싸해서 열쌍둥이는 낳은거 같다
그런데, 시발... 없다... 그 아이가 없다.. 뭐지.. 하고 계속 수업시간 내내
강의실을 둘러본다.
있다. 친구는 있다. 같이 있던 친구는 있다. 근데 그녀만 없다.
일이 있어서 빠진 걸거야 라고 혼자 자위한 나는 곧 상심에 빠진다
출석체크를 정말 가끔 하는 수업인데 그날따라 출석체크를 한것이다
그런데.. 없다. 그녀 이름이 없다
나는 좌절에 빠졌다. 우리학교 학생이 아닌가? 친구한테 가서 무슨사이인지 물어볼까?
우연히 만난 첫사랑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 어이가 없었다 ㅎㅎ
그렇게 좌절한채로 강의실을 나서는데 누가 부른다
"야 ㅇㅇㅇ!!"
누구지?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자세히 보니 그 친구다. 첫사랑의 친구
쟤가 나를 어떻게 알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보니
고향 친구다...ㅎㅎ
친하진 않았지만 같은 동네 사는 친구였다.
이 아이도 부모님이 도시에서 회사때문에 온 경우였는데
엄마가 깐깐했던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 후 홀로 읍내 여중으로 전학을 했던 아이였다.
반가웠다. 그 아이가 반가운게 아니라 첫사랑을 볼 수 있을거 같아서 ㅎㅎ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수업 후 저녁에 밥을 먹기로 했다.
나는 다음 수업이 없어서 기숙사에서 계속 조마조마 기다렸다.
그리고 5시 45분..
전화왔다~ 속았지?
문자가 왔다..
"ㅇㅇ야, 나 수업 끝났어, ㅇㅇ서 보자"
그렇게 우리는 학교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원래 친했던 양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2차로 간단히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씩 했다
그러면서 물어보았다.
처음부터 첫사랑 물어보면 그러니 여러 친구들 물으면서
수진(박수진 닮은 첫사랑)이는 잘지내냐 물어봤다(앞에서 빠뜨렸는데 얘는 쥬얼리 박정아 닮음)
그러니 하는 말
"아, 수진이? 걔 미국으로 이민 갔잖아. 이번에 한국와서 저번주 학교 왔었는데? ㅋㅋㅋ"
라고 하는게 아닌가...
다행인건 다음주까지 한국에 있을 것이고 학교에 또 놀러온다고 하는 거다..
그렇게 정보를 얻고 우린 헤어졌고 학교에 놀러오면 같이 보기로 했다.
당시엔 씹찐따였으나 운동하고 나름 꾸미고 다녔기에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모르고 약속날이 되었다.
수업이 늦게 끝나 헐레벌떡 약속장소로 간 나는 심장이 터질뻔했다.
그녀다... 수진이가 내 앞에 있다 ㅎㅎㅎ
우리는 그렇게 1차 삼겹살, 2차 소주, 3차 맥주로 달렸다.
그러다 12시 정도 되니 정아(첫사랑 친구이자 고향 친구)가 이제 가야한단다...
기회였다. 같이 있어서 아무 말도 못했는데
시발 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정아는 친척언니가 산다는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이제 나와 남은건 첫사랑
나는 기숙사라 여자 출입은 안되었기에 모텔을 잡아서 마시기로 했다.
존나 떨렸다. 몇년만에 만난 고향친구인데 모텔로 가자는데 간다?
나에게 관심이 있나?
혼자서 오만 생각을 하면서 모텔로 진입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쏘맥을 말아마셨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녀가 저항할 틈도 없이 넣어버렸다.
첫 사랑과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아다는 아니었지만 정복감이 장난 아니었다
처음엔 거부하던 수진이도 점점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살아서 인지 계속 영어로 뭐라뭐라 하더라
그래서, 내가 말했다
"너 왜 자꾸 영어로 그래? 영어 잘한다고 자랑하는거야?"
그러자 수진이가 그러더라
"너도 뇌새김 해봐. 하루 30분이면 너도 원어민처럼 할 수 잇어"
그렇게 나는
그 날 생긴 우리 아들과 함께 매일 30분씩 영어 공부중이다.
너희들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해라!!
나는 경남의 한 촌동네에서 자랐다.
깡촌인만큼 초등학교 친구들이 그대로 중학교 친구가 되었고
초4때 시작된 나의 첫사랑은 역시 중3때까지 나의 첫사랑이었다
친가, 외가 모두 같은 고향에 있어서 나는 가끔 친척분들 뵈러 갈때를 제외하곤
고향을 벗어나질 못했다. 그정도로 촌놈이었다
첫사랑 아이를 소개하자면 나랑 동갑인, 그 당시 우리 고향 촌에서는
독보적인 외모를 가진 아이였다.
다들 논매고 밭매던 친구 엄마들과는 달리 도시에서 살다 지방 발령 받아온 아저씨와
그 남편을 따라온 아줌마는 티비에서 보던 서울 사람 같았다.
얘도 촌에서 학교 다니는 애 답지 않게 피아노와 무용을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키는 적당했고, 얼굴도 작았고, 연예인으로 보자면 슈가 박수진? 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여튼, 초등학교 동창들이 곧 중학교 동창이었던 우리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부 갈리기 시작했다.
우리 동창이 100명 정도 되었는데, 그 중 30명은 고향 실업계 학교로 진학했고
남은 40명은 창원, 마산 실업계로, 나머지 30명 정도는 창원, 마산 인문계로 진학을 했다.
초딩때부터 전교 1등을 휩쓸던 친구 1명이 고향에 있는 명문고(촌인데 나름 유명)로 진학했다.
성적이 어쩡쩡했던 나는 그나마 배운 삼촌의 주장으로 일반고 보다는 특수고가 낫다고 해서
경남의 모 외고에 입학했다. 요새는 성적이 좀 오른거 같던데 우리땐 이름만 외고지
꼴통 학교였다.
여튼 성격이 활발하지 못했던 나였는데, 고등학교도 홀로 진학하여 아싸 생활을 즐겼고,
그렇게 중학교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매주마다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집에오면 공부가 안된다는 삼촌의 주장을
덜 배운 아버지가 받아들여 방학때 말곤 집에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뭐 그런다고 공부하냐... 기숙사에 짱박하셔 딸만치지...
여튼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생활도 지나가고
나는 집 근처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 소재의 4년제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아싸, 밖에서도 샌다고 씹아싸 생활을 즐기던 나는
학교생활 적응에 실패하고 군에 입대한다.
그렇게 씹아싸 생활 후 입대한 군대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씹아싸가 뭘 할 줄 알겠냐? 함정 근무하면서 처음 일이병 생활은 몹시 힘들었다
멀미와 파도, 그 좆 같이 추운날씨에 견시... 하...
여튼 매일매일 시간 때우듯 살았는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생겼다
우리 부서장이 새로 왔는데 학사출신 대위였다.
나를 친형제 이상으로 잘 대해줬고 인생상담도 해주고, 같이 운동도 했다
그때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여튼 부서장이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성격도 ㅆㅅㅌㅊ인데
생긴것도 강타 비슷하게 닮아서 잘생겼다.
그런 씹인싸 새끼가 왜 나를 그렇게 챙겨줬는지 몰랐는데 나랑 같은 학교더라 ㅋㅋㅋ
지잡새끼도 장교 하는거 보고 놀랬다
여튼 전역하고 쉬는 동안 운동도 하면서 몸도 키웠다
키는 원래 큰 편(188)이었지만 씹 멸치(73) 였는데 1년 정도 집안 일 돕고
운동하면서 90까지 몸을 불렸다.
그리고, 대망의 복학...
안에서 새던 아싸... 복학 후 그래도 반인싸 생활했다 ㅎㅎㅎ
동아리도 새로 가입하고 지내던 어느날.
교양 수업에 들어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여자애가 있는거다...
그렇다. 내 인생 6년을 가슴뛰게 했던 그 아이었다.
예뻤다. 여전히 예뻤다. 옆에 친구와 함께 앉아있었는데 그 친구도 예뻤지만
그 년 빰후릴정도로 예뻤다
학창시절 좆씹아싸였던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말 걸까. 말까... 2시간 내내 고민했다.
하지만 찐따새끼 어디가냐? 다음에도 기회가 있겠지 하고 오늘은 그만 물러나기로 한다 ㅋㅋ
걔가 같은 학교인걸 안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리고 다음주가 되었고 수업날이 다가왔다. 나는 한껏 차려입었다.
우연을 가장해 만난것처럼 다가가기로 했다.
상상속으론 벌써 수십번 따먹고 질싸해서 열쌍둥이는 낳은거 같다
그런데, 시발... 없다... 그 아이가 없다.. 뭐지.. 하고 계속 수업시간 내내
강의실을 둘러본다.
있다. 친구는 있다. 같이 있던 친구는 있다. 근데 그녀만 없다.
일이 있어서 빠진 걸거야 라고 혼자 자위한 나는 곧 상심에 빠진다
출석체크를 정말 가끔 하는 수업인데 그날따라 출석체크를 한것이다
그런데.. 없다. 그녀 이름이 없다
나는 좌절에 빠졌다. 우리학교 학생이 아닌가? 친구한테 가서 무슨사이인지 물어볼까?
우연히 만난 첫사랑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 어이가 없었다 ㅎㅎ
그렇게 좌절한채로 강의실을 나서는데 누가 부른다
"야 ㅇㅇㅇ!!"
누구지?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자세히 보니 그 친구다. 첫사랑의 친구
쟤가 나를 어떻게 알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보니
고향 친구다...ㅎㅎ
친하진 않았지만 같은 동네 사는 친구였다.
이 아이도 부모님이 도시에서 회사때문에 온 경우였는데
엄마가 깐깐했던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 후 홀로 읍내 여중으로 전학을 했던 아이였다.
반가웠다. 그 아이가 반가운게 아니라 첫사랑을 볼 수 있을거 같아서 ㅎㅎ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수업 후 저녁에 밥을 먹기로 했다.
나는 다음 수업이 없어서 기숙사에서 계속 조마조마 기다렸다.
그리고 5시 45분..
전화왔다~ 속았지?
문자가 왔다..
"ㅇㅇ야, 나 수업 끝났어, ㅇㅇ서 보자"
그렇게 우리는 학교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원래 친했던 양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2차로 간단히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씩 했다
그러면서 물어보았다.
처음부터 첫사랑 물어보면 그러니 여러 친구들 물으면서
수진(박수진 닮은 첫사랑)이는 잘지내냐 물어봤다(앞에서 빠뜨렸는데 얘는 쥬얼리 박정아 닮음)
그러니 하는 말
"아, 수진이? 걔 미국으로 이민 갔잖아. 이번에 한국와서 저번주 학교 왔었는데? ㅋㅋㅋ"
라고 하는게 아닌가...
다행인건 다음주까지 한국에 있을 것이고 학교에 또 놀러온다고 하는 거다..
그렇게 정보를 얻고 우린 헤어졌고 학교에 놀러오면 같이 보기로 했다.
당시엔 씹찐따였으나 운동하고 나름 꾸미고 다녔기에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모르고 약속날이 되었다.
수업이 늦게 끝나 헐레벌떡 약속장소로 간 나는 심장이 터질뻔했다.
그녀다... 수진이가 내 앞에 있다 ㅎㅎㅎ
우리는 그렇게 1차 삼겹살, 2차 소주, 3차 맥주로 달렸다.
그러다 12시 정도 되니 정아(첫사랑 친구이자 고향 친구)가 이제 가야한단다...
기회였다. 같이 있어서 아무 말도 못했는데
시발 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정아는 친척언니가 산다는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이제 나와 남은건 첫사랑
나는 기숙사라 여자 출입은 안되었기에 모텔을 잡아서 마시기로 했다.
존나 떨렸다. 몇년만에 만난 고향친구인데 모텔로 가자는데 간다?
나에게 관심이 있나?
혼자서 오만 생각을 하면서 모텔로 진입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쏘맥을 말아마셨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녀가 저항할 틈도 없이 넣어버렸다.
첫 사랑과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아다는 아니었지만 정복감이 장난 아니었다
처음엔 거부하던 수진이도 점점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살아서 인지 계속 영어로 뭐라뭐라 하더라
그래서, 내가 말했다
"너 왜 자꾸 영어로 그래? 영어 잘한다고 자랑하는거야?"
그러자 수진이가 그러더라
"너도 뇌새김 해봐. 하루 30분이면 너도 원어민처럼 할 수 잇어"
그렇게 나는
그 날 생긴 우리 아들과 함께 매일 30분씩 영어 공부중이다.
너희들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