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자의 훈련소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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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2:31 조회 404회 댓글 0건본문
안녕
심심해서 내 훈련소 이야기를 써보려해
난 2016년 3월에 입대해서 17년 12월말에 전역했어
난 16년 3월달에 연고지복무병으로 화성에 살아서 화성의 51사단으로 입영하게 되는데
입대 3일전부터 집에 누워서 폰만하면서 시한부 인생인것처럼 무기력하게 있었던것같아
그렇게 있다가 입영 당일날 새벽녘에 겨우 잠들고 되게 피곤한 상태로 입영일을 맞았어
그날 점심은 자주가던 맛집쭈꾸미를 먹었는데 내 인생최악의 맛이더라
아무맛이 안나더라 그 매운 양념에서
하여튼 당시는 응답하라 1988의 이적 '걱정말아요 그대여'가 히트곡이었어
입영장 강당에서 군악대 보컬이 저걸 불러주는데 정말 울음참기 대회였다
강당행사가 끝나고 부모님과 나는 이별했어
우리는 인조잔디가 깔린 연병장으로 이동했고 부모님들은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저 멀리 스탠드 주변에서 우릴 지켜보시더라
거기서 내 부모님이 식별이 안되니 더 서럽더라
그렇게 생이별을 하고 생활관 배정받고 몇자리 사람이랑 통성명하고 첫날밤 자는데 잠에 쉽사리 들수가없더라
내가 왜 여기있어야하지? 별생각을 다했던것같에, 근데 그렇게 슬프거나 그립진 않았어. 실감이 안낫겟지
그다음의 몇일은 기억이 잘안난다. 되게 바쁘게 지나갔던것같아
체력고자인 나도 꽤 수월하게 4주차 사격주 까지 마치고나니 꽤 베테랑 군인이 된것같았어
3월이 정말 좋았던게 3월~4월로 넘어가면서 버티기 힘들만큼 춥치도 덥지도 않은게 참 훈련받기 좋았다.
중간에 국회의원 총선이있었나 해서 면사무소로 버스타고 외출아닌 외출을 하는데 라디오도 듣고 바깥공기도 마시니
더 괴롭더라.. 집생각많이났어 이때.
5주차에는 행군과 숙영, 각개전투가 편성됬었는데
일은 이때 터졌다.
행군 전날 조교의 철저한 감시아래 우리는 모두 풀군장을 싸고 다음날 등에 짊어졌다.
나는 1km도 안가서 나의 컨디션이 오늘 최악임을 알아차렸어. 등 가운데가 심하게 땡기고 몸이 정말 무겁더라
숙영지까지는 12km였는데 아무도 포기 안하길래 나도 앞사람 등만보고 정말 사활을걸고 걸어서 숙영지에 도착했어.
가서 잠깐의 휴식후 시가지 교장에서 시가지 전술훈련을 하는데 사실 그냥 장애물 끼고하는 뜀박질이야
이때부터 나의 오른부랄이 아리기 시작하더라.
겨우 시가지 훈련을 마치고 수류탄 던지는 연습을 하는데 정말 비효율적인 훈련이라고 생각해
수류탄이든 야구공이든 시발 농구공이든 자기 편한자세로 던지는게 맞는데 4가진가 5가지 동작으로 나눠서 던지는 연습하는게
정말 비효율적이더라 이때 내 부랄이 심상치 않았어.
비닐씌운 철판에 밥을 퍼주기 시작하는 저녁이었어.
나는 밥을 먹기가 힘들정도로 컨디션이 안좋았어. 조교한테 말했지. '고환이 아픈것같습니다.' 이랫던것같에
조교도 고환아픈건 생소하니깐 바로 소대장한테 보고되고 소대장은 바로 날 앰뷸런스로 데리고갔어
앰뷸런스에는 부사관 한분이 계셨는데 내 부랄을 만져보고(수치플) 날 바로 사단 의무대로 태워갔다.
당직군의관도 자세한 검사가 어려워서 다음날 바로 수도병원에 가기로하고 난 의무대에서 자게됬는데
침대구경에 옆사람(모부대 상병)도 되게 착해서 날 많이 도와줬어. 이 사람 부대 썰도 들었는데 자대배치받고 보니 우리부대더라
우리는 같은 부대에서 재회했지.
의무대는 꿈 같았다. 동기들은 모기있는 숙영지에서 텐트펴고 좁은데서 불침번 스고 지랄병을 할텐데
나는 에어컨 켜진 의무대 침실에서 너무도 편안히 잠이들었다.
다음날 간호장교 인솔하에 사단 정기외진 차량을 타고갔다.
현역병들하고 처음 타본 버스였다.
나는 봄날씨와 어우러진 분당의 높은 건물들과 밖의 여자들을 구경하니 참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많은 대학병원같은 곳은 갑자기가면 응급상황이 아닌이상 검사가 어려운데
나 역시 푹자고 일어나니 부랄이 멀쩡한것이 이상이 없었다.
다만 눈치보여서 살짝 아픈척을 계속했다. " 어제보다 나은것 같습니다."라고 계속 말했던것같다.
하여튼 응급상황이 아니다보니 초음파 검사예약만 하고 발걸음을 돌리게됬는데
그 날짜는 수료식 전날이었다.
예약잡고 tv나보면서 앉아있다가 복귀했는데 사단의무대에서도 내 상태가 멀쩡해보이니
신병교육대로 복귀시켰다. 돌아가면서 의무대를 몇번이나 힐끔거렸다.
신교대로 돌아가니 조교가 날 신교대 의무실로 보냈고 거기서 지내게됬다.
각개전투는 열외란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의무실로 갓는데
같은 생활관 3명이 이미 와서 숙소를 차려놔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숙영지에서 복귀 행군 20km를 하는데 도무지 할 용기가 안나서
현기증 및 복통등 다수의 증상을 어필하며 차량복귀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노가리를 까며 시간을 죽이는데 후에 복귀한 동기들에게 눈치가 좀 보이더라.
그렇게 검사날이 오고 나는 다시 의무대에서 차량을타고 수도병원으로 갔다.
젤을 바르고 초음파를 찍고 나오니 바로 영상 찍은 사람이 탈장이란다.
정확히는 복막의 지방?이 고환쪽으로 내려가서 고환의 신경을 건든것이었다.
수술이 필요하나 급한건 아니라고 하여 일단 소견서만 받아 귀대했는데
이건 일종의 휴가증같은 것이었다 나에게는.
병원생활이 얼마나 좋은지는 익히 의무병들에게 들어 알고있었기에 기분이 너무좋았다.
난 귀대후 동기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멧돼지 부랄이라는 별명을 얻게됬다
고환에 뭐가 들어갔으니 그게 크다고 생각해서 붙인 별명이다.
심심해서 내 훈련소 이야기를 써보려해
난 2016년 3월에 입대해서 17년 12월말에 전역했어
난 16년 3월달에 연고지복무병으로 화성에 살아서 화성의 51사단으로 입영하게 되는데
입대 3일전부터 집에 누워서 폰만하면서 시한부 인생인것처럼 무기력하게 있었던것같아
그렇게 있다가 입영 당일날 새벽녘에 겨우 잠들고 되게 피곤한 상태로 입영일을 맞았어
그날 점심은 자주가던 맛집쭈꾸미를 먹었는데 내 인생최악의 맛이더라
아무맛이 안나더라 그 매운 양념에서
하여튼 당시는 응답하라 1988의 이적 '걱정말아요 그대여'가 히트곡이었어
입영장 강당에서 군악대 보컬이 저걸 불러주는데 정말 울음참기 대회였다
강당행사가 끝나고 부모님과 나는 이별했어
우리는 인조잔디가 깔린 연병장으로 이동했고 부모님들은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저 멀리 스탠드 주변에서 우릴 지켜보시더라
거기서 내 부모님이 식별이 안되니 더 서럽더라
그렇게 생이별을 하고 생활관 배정받고 몇자리 사람이랑 통성명하고 첫날밤 자는데 잠에 쉽사리 들수가없더라
내가 왜 여기있어야하지? 별생각을 다했던것같에, 근데 그렇게 슬프거나 그립진 않았어. 실감이 안낫겟지
그다음의 몇일은 기억이 잘안난다. 되게 바쁘게 지나갔던것같아
체력고자인 나도 꽤 수월하게 4주차 사격주 까지 마치고나니 꽤 베테랑 군인이 된것같았어
3월이 정말 좋았던게 3월~4월로 넘어가면서 버티기 힘들만큼 춥치도 덥지도 않은게 참 훈련받기 좋았다.
중간에 국회의원 총선이있었나 해서 면사무소로 버스타고 외출아닌 외출을 하는데 라디오도 듣고 바깥공기도 마시니
더 괴롭더라.. 집생각많이났어 이때.
5주차에는 행군과 숙영, 각개전투가 편성됬었는데
일은 이때 터졌다.
행군 전날 조교의 철저한 감시아래 우리는 모두 풀군장을 싸고 다음날 등에 짊어졌다.
나는 1km도 안가서 나의 컨디션이 오늘 최악임을 알아차렸어. 등 가운데가 심하게 땡기고 몸이 정말 무겁더라
숙영지까지는 12km였는데 아무도 포기 안하길래 나도 앞사람 등만보고 정말 사활을걸고 걸어서 숙영지에 도착했어.
가서 잠깐의 휴식후 시가지 교장에서 시가지 전술훈련을 하는데 사실 그냥 장애물 끼고하는 뜀박질이야
이때부터 나의 오른부랄이 아리기 시작하더라.
겨우 시가지 훈련을 마치고 수류탄 던지는 연습을 하는데 정말 비효율적인 훈련이라고 생각해
수류탄이든 야구공이든 시발 농구공이든 자기 편한자세로 던지는게 맞는데 4가진가 5가지 동작으로 나눠서 던지는 연습하는게
정말 비효율적이더라 이때 내 부랄이 심상치 않았어.
비닐씌운 철판에 밥을 퍼주기 시작하는 저녁이었어.
나는 밥을 먹기가 힘들정도로 컨디션이 안좋았어. 조교한테 말했지. '고환이 아픈것같습니다.' 이랫던것같에
조교도 고환아픈건 생소하니깐 바로 소대장한테 보고되고 소대장은 바로 날 앰뷸런스로 데리고갔어
앰뷸런스에는 부사관 한분이 계셨는데 내 부랄을 만져보고(수치플) 날 바로 사단 의무대로 태워갔다.
당직군의관도 자세한 검사가 어려워서 다음날 바로 수도병원에 가기로하고 난 의무대에서 자게됬는데
침대구경에 옆사람(모부대 상병)도 되게 착해서 날 많이 도와줬어. 이 사람 부대 썰도 들었는데 자대배치받고 보니 우리부대더라
우리는 같은 부대에서 재회했지.
의무대는 꿈 같았다. 동기들은 모기있는 숙영지에서 텐트펴고 좁은데서 불침번 스고 지랄병을 할텐데
나는 에어컨 켜진 의무대 침실에서 너무도 편안히 잠이들었다.
다음날 간호장교 인솔하에 사단 정기외진 차량을 타고갔다.
현역병들하고 처음 타본 버스였다.
나는 봄날씨와 어우러진 분당의 높은 건물들과 밖의 여자들을 구경하니 참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많은 대학병원같은 곳은 갑자기가면 응급상황이 아닌이상 검사가 어려운데
나 역시 푹자고 일어나니 부랄이 멀쩡한것이 이상이 없었다.
다만 눈치보여서 살짝 아픈척을 계속했다. " 어제보다 나은것 같습니다."라고 계속 말했던것같다.
하여튼 응급상황이 아니다보니 초음파 검사예약만 하고 발걸음을 돌리게됬는데
그 날짜는 수료식 전날이었다.
예약잡고 tv나보면서 앉아있다가 복귀했는데 사단의무대에서도 내 상태가 멀쩡해보이니
신병교육대로 복귀시켰다. 돌아가면서 의무대를 몇번이나 힐끔거렸다.
신교대로 돌아가니 조교가 날 신교대 의무실로 보냈고 거기서 지내게됬다.
각개전투는 열외란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의무실로 갓는데
같은 생활관 3명이 이미 와서 숙소를 차려놔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숙영지에서 복귀 행군 20km를 하는데 도무지 할 용기가 안나서
현기증 및 복통등 다수의 증상을 어필하며 차량복귀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노가리를 까며 시간을 죽이는데 후에 복귀한 동기들에게 눈치가 좀 보이더라.
그렇게 검사날이 오고 나는 다시 의무대에서 차량을타고 수도병원으로 갔다.
젤을 바르고 초음파를 찍고 나오니 바로 영상 찍은 사람이 탈장이란다.
정확히는 복막의 지방?이 고환쪽으로 내려가서 고환의 신경을 건든것이었다.
수술이 필요하나 급한건 아니라고 하여 일단 소견서만 받아 귀대했는데
이건 일종의 휴가증같은 것이었다 나에게는.
병원생활이 얼마나 좋은지는 익히 의무병들에게 들어 알고있었기에 기분이 너무좋았다.
난 귀대후 동기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멧돼지 부랄이라는 별명을 얻게됬다
고환에 뭐가 들어갔으니 그게 크다고 생각해서 붙인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