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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지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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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4 03:53 조회 78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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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기도 하고 누구한테도 하지 못할말들이라 여기에 글을 좀 남겨볼까 해

 

아마 내가하려는 말들? 썰들은 충격적일수도 있고 더러울수도 있을거야

 

근친이란 카테고리를 피할 수는 없겠네..

 

내가 사랑하는 족하 지수를 처음 만나게된 건 대학교1학년 20살 여름이였어

 

지잡대에 가깟으로 입학한 나에겐 8살차이나는 누나와 60을바라보고 계신 어머니 둘이 가족이였지 근데 어처구니 없게도 누나가 갑자기 나 고3때 수능치고 바로 결혼식.. 응 속도위반 남편이지 매형될사람은 건실한 사업가거나 직장인도아닌 아직 취업준비생? 뭐 적당히 알바하고 한량같이 사는 동네 양아치가튼넘이여서 기억이 분명히난다.

 

여튼 나 20살에 족하가 태어났다는건 그닥 유복하고 화목할꺼까지 없던 집안분위기에 뭔가 윤활제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러다가 1학년을 마치고 군대갈때쯤 매형이 정신차리고 어디 조선소에 용접인지 전기인지 하는 험한일이지만 돈은 좀 되는 곳으로 취업이되면서 가까운거리에 살던 누나와도 떨어져살게 되었지

 

군대 제대하고 25살인가 26살되던 추석명절에 한번 매형-누나-지수 이렇게 셋이 하루정도 우리집에 왔었던거같아 나야 그때 친구들이랑 신나게 술쳐마시고 청춘을 그야말로 낭비하고있을때라

 

', 매형이랑 누나왔네 용돈주려나 애는 안시끄럽나?' 정도 기억이였는데 아장아장 돌아다니는 족하녀석이 싫지는 않았어

 

이제부터 조금 디테일한 내용을 말할차례인거 같은데

 

27살이 되던해에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 평소에 병약하지 않으셨는데 이유인즉 혈액암-백혈병-골수암 이런걸로 이야기하는 몹쓸병에 걸리셔서 취업준비고 뭐고 다때려치고 병수발만 1년을 꼬박했지만 가세는 꾀나 기울었고 나 28살되던 그해 설을 못지나고 본인이 그리워하던 남편찾아 하늘로 가버리셨어

 

두분이 남겨둔 재산이 조금있긴했어 누나 시집갈때 누나분은 다 떼어줬다라고만 들어서 금액이나 정확한 내용은 몰랐었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에

 

어머니가 안방 서랍장 어디에 서류있으니 그거보면 나 장가보낼것 까진 준비해두셨다 라고 하셔서 그대로 진행은 되었다. 이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장례식을 어찌 치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아버지가 나 고1때 돌아가셨을때는 그냥 뭔가.. 실감도 안났고 집안에 가장이 나라는 그런 생각때문에 어찌 지나갔긴한데

 

'천애고아' 이말만 생각나더라고..

 

다행이 외가집 삼촌이며 이모분들이 신경많이 써주긴 했지만 뭐랄까 발아래가 없는 기분이랄까..

 

어머니와 같이살던집도 결국 그해 가을에 처분해버리고 적당한 취업처가 정해져서 나혼자 서울로 올라와버렸어

 

아 어머니가 남겨주신거 별로 대단한건 아니야

 

아버지가 모아두신 적금을 어머니명의 통장으로 옮긴 돈약간과 어머니명의로된 아파트를 아들인 나에게 준다는 유언장같은거였어 무슨 공증사무실 도장까지 찍혀있었고

 

누나 시집갈때 혼수며 전셋집 보태준거며 일목요연하게 정리메모된 A4용지 두어장과 입금증? 이체증?같은것도 있었어

 

다행이 누나나 매형도 어머니재산에대해 일절말이 없고 너가 알아서 정리해 라고만해서 그냥 그렇게 정리가 끝났어

 

28살 장례가 끝나고 5월 처음으로 서울 강남모처에 취업을한 나는 정신없는 한해를 보내기 시작했어

 

혼자사는 즐거움과

혼자된 외로움을 함께 즐겼다고 해야할까..

 

여튼 그해 추석은 거제도에 있는 누나에서 두밤을 잣던거 같아

 

그냥 누나도 혼자되어버린 내가 신경많이쓰인거 같았고 매형이나 족하도 명절이니 함께보내는거에 눈치를 주거나 하지 않았어 나도 눈칫껏 명절내내 붙어있지 않고 2일정도만 적당히 명절을 즐겼지..

 

그때 좀 이상했던게

 

분명 조선쪽이 일은 힘들어도 돈은된다고 알고있었는데 생각보다 집안이 가난하게 느껴졌어.. 어떤부분이냐 콕찝어 말할 순 없는데 느낌이란게 있잖아

 

헤프다, 풍족하다, 아껴쓴다, 궁핍하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에 좀 궁핍한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내가 해줄수 있는게 많지도 않고 즐거운명절에 분위기 잡치기도 그렇고 이때 지수는 초등학교 2학년인가 한참 똥꼬 발랄한 말괄량이숙녀같았어 꼭 레이스달린치마나 양말을 고집했었고..

 

여튼 첫명절이후 나 29살되던해 설날은 못갔어 못갔다기보다 그당시 연애하던 여친과 스키장을 갔었나? 여튼 그랬다.

 

추석에 다시 누나집에 갔는데 여전히 집안에 알수 없는 기운은 궁핍한 느낌이였고 매형은 하루저녁만 같이먹고 일이 바쁘다며 다음날 아침일찍 나섯던거 같아..

 

아마 이때 처음으로 지수한테 조금큰 용돈을 준거같아 그리고 친구들은 스마트폰쓰는데 자기만 똥폰쓴다고 투덜투덜대며

 

"외삼촌에게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하고싶지만 그런건 직접말할수 없고 아몰라 용돈따위보다 스마트폰"을 요구하는듯했었어

 

누난 요금제도 비싸고 그거해봐야 스마트폰게임이나 할꺼 뻔하니 안사줄꺼란 이야길 했었고

 

여튼 그해 추석은 뭔가 많이 찝찝한 채로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

 

이때쯤 내가 다니던회사에서 주임에서 대리승진이 확정되면서 얼마지나지 않고 마침 회사에서 핸드폰을 바꿔준다고해서 퇴근길에 누나한테 나 쓰던거 공폰만들어서 보낼테니 주소보내달라했고 한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지수에게 직접연락이 왔어

 

"삼촌 핸드폰 주시면 게임도 많이 않하고 공부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며 엄청 또박또박 말하더라고.. 진짜 아빠미소가 절로 지어졌지..

 

여튼 요금제도 신경쓰는거 같아서 내가쓰던번호만 회사껄로 교체해서 개통하고 그때 내가쓰던폰이 할부가 1년정도 남아있던상태라 그냥 "내 명의, 내 통장에서 요금이 빠져나가는 상태"로 번호만 지수가 쓰겠다는 번호로 바꿔서 지수한테 건내줬어

 

이게.. 잘한일인지 잘못한일인지 지금와서 생각하면 참 여러생각이 든다.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시작한건 바로 이 이후부터였으니까..

 

 

 

내가쓰던 폰을 보내주고 주말에 지수한테 처음으로 카톡이왔어

 

핸드폰 잘받았고 잘쓸께요 이렇게왔었고 필요한거 있으면 용돈대신 사줄께라고하니까 자긴 돈이 필요하다고 용돈많이 달라고 하더라고

 

그땐 그냥 어린것들도 돈이 최고긴한가부다 하고 넘겼었어

 

근데 나중에 알게되니 억장이 무너질만큼 맘이 안좋았지..

 

한참뒤에나 알게됬어 애가 왜 용돈을 달라한지는

 

"아빠가 빚이 많아서 돈을 갚으려면 자기도 용돈을 보태야할거 같았다" 이게 10살짜리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애가 생각할 단어조합인가.. 지금 생각해봐도 기도 안찬다..

 

그래 그 명절때마다 느꼇던 궁핍함은 매형이란 양아치 가튼놈이 사업하다 진빚도아니고 도박빚이였어..

 

여튼 내가 30살이되던 설명절에 다시금 누나네에서 하루를 보냈어 그게 누나와 매형을 살아서보는 마지막인지 그땐 몰랐었다..

 

4월말이였어 밤11시쫌넘어서 침대에 누워서 tv로 박지성경기를 보고있는데 지수한테 전화가 왔어

 

막울면서 "엄마아빠가 병원에서 삼촌한테 연락하라고" 두서없이 울면서 전화하더라고 일단 애 안심시키고 있는데 모르는 지역번호로 찍힌 전화가 왔어

 

순간 "크게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깊은 심호흡을하고 전화를 받았어

 

역시나 안좋은 예감은 틀리지가 않았지

 

빗길에 교통사고가 크게났다는거야 남편분은 병원도착하시고 사망하셨고 부인분은 현재위독하시다고..

 

그시간에 회사 팀장님한테 전화해서 이자저차해서 급히내려가야겠다. 회사차 빌려달라말씀드리고[아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무대뽀긴해.. 고작 대리놈이 지급하다고 팀장한테 전화해서 회사차까지 빼간다는게..] 결국은 팀장님이 개인차를 빌려주시긴 했지만..여튼 차 받아서 바로 내려갔지 가면서 전화를 병원에서 두통받았던거 같아 위독하시다 빨리오셔라.. ㅅㅂ.. 나도 빨리가고있는데 진짜 한 150~60으로 풀악셀하면서 갔었다..

 

병원응급실에 도착하니 피떡이된 누나가 저승길 못가고 나기다리고있었다는듯 '지수 부탁한다'는 말만 힘없이 남기고 내손잡고있다 심정지가 오더라..

 

정말 싫었다.

 

가족을 계속해서 잃는다는게

 

이때 상주만 3번째였다. 지수는 옆에서 계속 엄마아빠만 부르고 울고있지..

 

문제는 장례도 장례였지만 이후였어

 

매형쪽 양아치같은 집에서 장례비용도 정산이 안되더라.. 매형쪽이 부모님에 12녀였는데 아버지 치메 어머니 당뇨/큰딸 파산(여기도 도박크리 )/작은딸 집안과 인연끊음..

 

여튼 장례비용도 자기손님이라며 방명록이랑 부주봉투갖고 밤마다 쳐싸우더라고..

 

어찌어찌 장례가 끝나고 회사에 사정 이야기해서 일주일정도 더 쉰다고 했어.. 남았던 집이며 뭐며 정리를 했어야하니까..

 

역시나 전세고 뭐고 도박빚으로 퉁쳐도 모자르더라고.. 돈이야 정안됨 한정승인인지 상속포기인지 변호사 공증받고 진행하면 되는 일이라 큰 걱정은 안됐는데

 

지수가 문제더라..

 

11살짜리 여자애가 갈데가 없어

 

법적으로 보호자는 직계만되는데다 무슨 후견인인가 먼가 될려면 조건이 나밖에 없었어.. 그리고 이기간에 또 알게된 충격적인게..

 

.. 진짜 또 욕나온다 이부분은

 

양아치 매형이 집안에 돈갖고 애먹인거도 모자라 밤마다 술쳐마시고 마누라패고 애패고.. 지수말로는 엄마(누나)가 그럴때마다 몰래 동영상촬영하라고 시켯더라고 그리고 더더욱 골때리는건 매형쪽 누나 지수한테는 고모라는 년도 두번 등장했는데 도박하는게 아니고 무슨 사업투자금이 어쩌고하면서 우리누나한테 그때 준다해놓고 안줘서 망했다고 지랄지랄 발광을 하더라고..

 

그때 결심이 섯어 지수를 데려와겠다고

 

여튼 이래저래 집안 살림들 싹다 정리하고 집은 집주인한테 전세나가면 빚쟁이 계좌로 넣어주라하고 일주일갖고는 애학교도 전학절차 신청하고

 

꼬박 일주일간 산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정리했던거 같아

 

월요일저녁에서야 전세집 짐들이 전부다 재활용센터며 어디 기부센터며 겆혀나가고 밤늦게 지수책가방이며 옷가지며 짐챙겨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

 

서울로 올라와보니 웃기더라..

 

서른살 남자혼자사는 원룸에 11살짜리 꼬맹이 데리고와서 산다는게 일단 첫날은 그간 피로도있고 짐싸서 올라온게 힘들기도 했고 지수도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고 다음날 지수를 집에 혼자두고 출근을 했어

 

출근해서 그간 상황 간략하게 말씀드리고 배려해주셔서 감사하다한다음 한 열흘동안 비워둔 일들을 쳐나가기 시작했지

 

일끝나고 집에왔더니 지수가 거이 반 넋이나간상태로 tv를 보고있더라고.. 정말 맘이 아파서 처음으로 아무말도 안하고 지수안고 울었어..

 

여튼 새로전학갈학교와 얘를 데리고 살 집을 동시에 해결해야 했으니까 낮엔 회사일로 바쁜데 이것저것 신경쓸게 많았었어

 

집은 OO쪽 빌라를 구했어 18평이라고 중개사가 눈탱이를 치긴했는데 지하철도 멀지 않고 햇빛도 잘드는 넓은 방2칸짜리 빌라였어 전세는 어머님이 물려주신 집정리한 예금이랑 해서 빚없이 들어가긴 했는데 비싸긴 비쌋어.. 2억좀 넘게 주고 방2칸짜리 얻었으니..

 

여튼 OO쪽에 학교를 보내고 가족관계증명서에 후견인인지 먼지 찍어서 얘보호자니 어쩌니 해서 담임선생님하고도 연락을 자주했어.. 딱한 사정도 잘 들어주셨고 정말 큰도움이 돼어주셨어

 

초보보호자인 나에게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주신 "OODD초등학교 최DD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폭풍같던 5월이 지나고 조금씩 지수와 나의 생활도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사실 지수가 짐을 싸긴했는데 이해가 안될만큼 옷가지도 적었고 거의 쉬는날이면 애 옷가지며 생필품이며 장보러다니기도 바빳고 아.. 그때 만나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져버렸어

 

여친입장도 이해가 가지.. 결혼각재고있었는데 족하가 갑툭튀해버리지 전세집을 구했는데 지하곤 상의도 없었지.. ㅅㅂ.. 사랑했다!! XX!! 헤어지고 간간히 카톡에 알람뜨는거보니까 몇해 안지나고 남자만나 결혼하고 애놓고 잘살더만..

 

그해는 장마가 심했던거 같아 안방은 내가 쓰고 작은방은 지수가 쓰고 밥은 주로내가 설걷이는 지수가 집근처 밥집 몇군데도 알아두고해서 나 퇴근늦거나 회식있는 날은 따로 식당에서 먹이고 했어

 

문제는 지수가 비가오면 무섭다고 울고 내방엘 자꾸 찾아왔다는거야.. 아직 같이산지 수년이 지났지만 이버릇이 고쳐지지 않았어..

 

손톱물어뜻고 불안해하고 하던것들은 거의다 고쳐졌는데 비만오면 이아이 꼭 안겨서 자야 잠을자더라고..

 

여튼 큰 구김없이 건강하게 잘 지냈어 지수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기 일주일전에 저녁에 퇴근했더니 애가 화장실에서 울고있는거야 이때 초경이 시작됐고 어찌할바를 몰라서 울음을 터트린거지 자기죽는거냐며... 일단 담임선생님한테 들은것도있고해서 대처를 하긴했는데 어찌나 애가 울었던지 개구리처럼 눈이 부어서는 무섭다고 같이자자는거 만류하지 못하고 옆에 재웠어

 

다음날 피나는건 어쩌고저쩌고 지수가 어른이되는과정이고 어쩌고저쩌고 애기도 만들수있고 어쩌고저쩌고 한참을 설명했지 그리고나서 돌아온 답에 난 순간 얼어버렸어

 

"그럼 삼촌이랑 결혼해서 애기도 만들수 있는거야?"

 

이게.. 정상적인 가정에서 아빠랑 결혼해서 애기도 만들수 있는거냐는 질문이였다면 참 행복한 순간일거란 생각이들지만

 

난 삼촌이라고.. 것도 장가도 못간..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고 아무래도 심리상담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확신이 들었어

 

비오는날 무섭다며 같이자는것들부터 이런말을 하는게 정상적인 "보호자", "삼촌"으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어떤 "절대자", "남자"로 인식하게되면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될수 없다는걸 알기에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심리치료를 시작했어..(시발 이건 보험적용도 안돼고 오지게비싸더라..)

 

1주일에 2번씩 2주동안 4번을 다녀보고 상담사가 이야기하더라고

 

"지수가 아무래도 삼촌을 남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래 애들보다 부모사랑을 못받은걸 삼촌에게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관심을 가져줘라/ 안돼는걸 안됀다해라/ 자꾸 같이자자 안아달라 보채는거 들어주지마라"

 

뻔하지.. ㅅㅂ돌팔이야..

 

여튼 큰 공산도 없고 애가 더 나빠지지도 나아지지도 않는 비싼 심리치료? 상담을 이어가기도 부담스러워서 그만두고 애 관심을 딴데로 돌릴만한걸 알아봤다

 

다행이 얘다니는 초등학교에 체육부(종목은 안알려주겠다 저격맞기 싫다)가 있어서 거기에 잘 설득해서 넣었어 일단 학원도 한군데 다니게했어 성장기에 모든 애너지가 부모사랑결핍으로 나한테 채워지길 바라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걸지도 몰라..

 

학교나 학원은 잘다니고있었다 문제는 바로터지지 않고 그해 추석명절에 터졌어 천애고아 둘이서 할께 뭐있겠냐 고향동네 투어를 갔지 남들 귀향하는 시간대 피해서 살던 가서 밥먹고 얘니집 근처에 바닷가 펜션빌려서 회먹고 난소주먹고 먹고싶다는거 안됀다고하고 재웠지

 

많이 힘들더라

 

신경쓰고 뭐하고 하는 힘듦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하는 힘듦이랄까 같이 살면서 내 인생적으로 포기해야되는 것들..

 

새벽녘에 자는모습을 보니 너무 사랑스럽더라 이불꼭쥐고 웅쿠리고자는데 한참을 애 얼굴만 바라보다 나도 잠들었다

 

다음날 좀 늦잠을자고 누나와 매형이 있는 수목장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데 지수가 이런말을 했다

 

"삼촌하고 계속살고 싶은데 삼촌이 싫어하고 피하는거 같아서 고향동네에 나 버리는줄 알았다"

 

"어제 자는척했는데 삼촌이 나 쳐다보고있을때 진짜 버리는줄 알고 울려고했는데 그냥 옆에 이불피고 잠들어서 안심했다"

 

순간 너무 울컥했다. 버스에 앉아서 내어깨에 머리기대면서 11살짜리 애가 하는말이다..

 

일단 집에 돌아가서 지하한테 있는 그대로 말했다

 

'너와 사는게 싫지 않다.'

 

'나는 아빠도 엄마도 아니고 삼촌이다.'

 

'자꾸 이핑계 저핑계대면서 같이자는거 나쁜거다'

 

여기까진 잘 알아 듣는듯 했다.

 

'삼촌은 남자가 아니라 삼촌이다 삼촌이랑 결혼한다 애놓는다 그런말 하고 자꾸 안방에 들어와서 자면 안된다'

 

여기에서 뭐가 잘못된건지 대성통곡을하고 그날로 식음을 전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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