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바다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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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7:23 조회 1,441회 댓글 0건본문
엄마의 바다
바다는 늘 고요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래야만 했을 지도 모르겠다. 남편이라는 배를 띄어놓고, 그 곁에 자식이라는 배를 띄워놓아야 했기에 바다는 언제나 고요해야만 했을 것이다. 바다의 신은, 그래서 엄마여야 했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엄마의 삼지창이어야 했다.
세 개의 창날. 그것이 움직이는 날, 바다에는 격랑이 일어난다. 띄어놓은 모든 배를 침몰시키고도 남을 거대한 폭풍이 불어 닥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엄마는 좀처럼 자신의 창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창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려는 엄마들인 것이다. 그렇게 무뎌가는 엄마들인 것이다. 바다는, 그래서 엄마들의 고향이다.
엄마들의 첫 바다는 그녀들의 남편들이 결정했다. 그때 바다는 변덕쟁이가 되었다. 고요했다가도 어느새 폭풍이 몰아치는, 잔잔한 파도였다가도 어느새 거대한 해일이 되어버리는 그런 바다였다. 남편이 젓는 노의 움직임에 따라 그 바다는 갈라지거나, 아니면 그 노를 삼켜버리거나 항상 그랬었다. 그렇게 엄마들의 첫 바다는 지쳐갈 따름이었다.
엄마들의 두 번째 바다는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 바다 역시 언제나 요동치고 있었다. 욕망하는 모든 것에 대한 스스로의 부정과, 그런 부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또 다른 욕망의 태동이 한데 어울려 격랑을 몰고 오는 그런 바다였다. 가여운, 한없이 가여운 그런 바다였다.
엄마들의 세 번째 바다는 자신이 아닌 자신의 분신에 의해 만들어진 바다였다. 어느 날 품게 된 조그만 생명이 맘껏 호흡할 수 있게 하는 양수였다. 그 양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엄마의 세 번째 바다 또한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 세 번째 바다는 자식들의 고향이었다. 특히 ‘아들’이라는 자식들은 언제나 그런 고향을 갈망했다. 마치 본능처럼 그런 고향에로의 환향에 집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환향은 쉽게 이루어지지도,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금기였다. 그런 금기가 아들과 엄마 사이의 일어나는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이젠 알 수 있다.
남편이라는 이름의 배가 사라져버린 엄마의 바다에서는 좀처럼 폭풍을 만날 수가 없었다. 엄마의 바다는 남은 아들의 배를 지키기 위해 언제나 고요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고요만이 아들의 배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결코 알지 못했다.
작은 풍랑조차 겪어보지 못한 배는 언젠가 다가올 폭풍을 뚫을 수 없는 법이다. 영원히 다가오지 않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언제고 폭풍은 다가서는 법이다. 그리고 한 번쯤 떠올리는 상상, 혹은 고민은 그런 폭풍의 시발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바다에 일어나는 폭풍은 결코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그 폭풍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자신의 바다를 갉아먹었던 남편의 바람이요, 그 바람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폭풍이 아들의 배로 향하는 것은 일종의 섭리였다.
아들에게서 보상받고자 하는 엄마의 심리였다. 그런 심리를 누군들 부정할 수 있으랴. 하지만, 사람들은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만 그런 심리를 인정할 뿐이었다.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심리만 허용할 뿐, 그 밖의 심리는 철저히 응징하려 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래서 엄마의 바다는 항상 고요하려 몸부림쳤다. 수시로 솟구치는 본능적인 욕구마저 수면 아래 숨긴 채 그렇게 고요하려 몸부림쳤다. 죽을 때까지 그러리라 수없이 다짐하며 밤마다 몸부림쳐 왔던 것이다. 그런 몸부림이 오히려 엄마의 바다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상상하고 있었다. 마치 실제로 일어나기를 소망한다는 듯 그렇게 절절히 상상하고 있었다. 배는 아무 바다에나 갈 수 있었지만, 바다는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바다에서 품은 배 이외의 다른 배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 배가 자신의 바다를 죽여가고 있을 때조차 그 배를 품으려 했다. 그것이 엄마였다.
엄마의 바다는 남은 아들의 배를 의식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단지 자신의 바다를 고요하게 만들어 아들의 배가 항상 수월하게 움직이기만 바랐을 뿐이었다. 그 수면 아래 부글거리는 욕망의 창을 애써 억누르며 그렇게 고요한 바다를 만들어가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경우, 배에서도 충분히 바다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가끔 잔잔한 파도 아래 숨어 일렁이는 조그만 파고를 볼 수 있다. 그건 엄마의 욕망이었고, 욕망의 바다였다.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을 만큼만 되면 어느 누구든 한 번쯤은 그런 바다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런 엄마의 바다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던져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아들이라면. 그런 엄마의 욕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엄마의 욕망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욕망이 감춰진 엄마의 바다는, 그래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아들이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욕망까지도 포용하는 바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욕망은 언제나 거칠었다. 언제고 엄마의 바다를 떠나고 싶어 했지만, 그 한 켠에선 또 언제고 그 바다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아니 그 바다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그런 소유의 욕망까지도 엄마의 바다는 능히 포용하려 했었다.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였다.
엄마의 욕망은 아들의 욕망이 충족된 이후, 그 이후에야 비로소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그들만의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이 충족된 이후, 아들의 배는 언제나 엄마의 바다를 다시 떠나곤 했었다. 그때 엄마의 바다는 다시 고요해졌다, 아니 죽음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간혹,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주체하지 못할 욕구에 사로잡혀 밤마다 베개를 끌어안기도 했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보았었다. 처음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 줄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 몸에서 하얀 액체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 그리고 그 액체가 사람이라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어떤 동굴로 삽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이해가 아니었다, 단지 그것은 호기심이었을 뿐.
그때부터 아들은 바다를 동경했다. 그리고 그 바다로 안내하는 동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룻밤에도 무수하게 엄마를 불렀고, 엄마를 그렸다. 그리고 그 흔적은 고스란히 휴지에 쌓여 침대 밑으로, 휴지통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들은 엄마를 쳐다보지 않았다. 애써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고, 말을 더듬었다. 제 방에 문을 잠그는 일이 많아졌고, 간혹 엄마의 속옷을 책상 서랍에 숨겨두는 일도 벌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엄마의 방에 흔적을 남기는 일도 잦아졌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성장을 반겼다.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때는 내심 다 큰 아들에 대한 든든함이 더 커지기도 했다. 아들의 방에서 처음으로 휴지뭉치를 보았던 날, 쿵쾅거리던 심장의 박동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아들 앞에서 벌써 몇 년을 편하게 입었던 옷들이, 이젠 헐어 그 안이 훤히 내비치는 그런 옷들이 아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그것이 아들의 욕망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속옷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무심했었다. 하지만 한 개, 두 개 사라지다가 그것들이 아들의 침대 밑에서, 책상 서랍에서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이상스레 마음은 되려 편했다. 그냥 모르는 척 그런 행동을 엄마는 용인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엄마의 욕망도 점차 거칠어져 갔다.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가는 오후가 잦아지고 있었고, 홀로 침대 시트를 붙잡는 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욕망을 아들은 점점 눈치 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들은 또 다른 욕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부끄럽다고 느꼈던 것은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사타구니 사이에서 베개가 흔들리고 있을 무렵, 갑자기 어두컴컴한 안방에 한 줄기 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흔들리는 검은 물체가 보였고, 한참을 흔들리던 그 물체가 사라지고 난 다음, 엄마는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욕망에 흔들려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몸부림이 우선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몸부림을 바라보게 만들었던 그 상황이 부끄러웠다. 함께 흔들렸던 그 검은 물체는 아들이었다. 그날 아들의 사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들의 흔적은 볼 수 있었다. 그 흔적에 또 한 번 부끄러웠지만, 그때의 부끄러움은 조금 달랐다.
그 날 이후, 여전히 엄마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 역시 여전히 제 방에서 나올 줄 몰랐다. 엄마가 잠든 뒤에야 비로소 나와 제 할 일을 하는 그런 아들이었다. 그리나 그 아들은 엄마가 잠든 것이 아니라 잠든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렇게 아들은 안방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문만 열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침대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움직임을 엄마는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단지 모르는 척 할 뿐, 그러나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받을 지도 모를 아들의 상처를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들은 아는 지 모르는 지 자신의 행동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범해지고 있었다. 가져간 속옷에 자신의 정액을 잔뜩 묻혀 빨래통에 내놓는다든지, 엄마의 침대 한 가운데 제 흔적을 남겨놓는다든지 그렇게 대범해지고 있었다.
그런 대범함은 엄마를 변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엄마의 바다가 출렁이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자신의 바다를 내어줄 것인지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미 자신의 자위를 엄마가 알고 있으리라 확신한 듯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의 답이 결코 있을 수는 없었다. 얼핏 보면 ‘하자, 말자’ 둘 중에 하나의 답만 존재할 것 같았던 고민이었지만, 그 두 개의 답이 모두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엄마의 바다는 그런 바다였다. 도저히 알 수도 없고, 답도 없는 그런 바다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 고민은 평생을 안고 갈 수도 있는 그런 문제였다.
엄마의 고민은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한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먼저 강제로 침범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엄마의 바다는 그런 낯선 침입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엄마와 아들은 서로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엄마는 그런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런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때부터 아들의 욕망보다 더 큰 엄마의 욕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욕망을 현실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엄마의 시작은 대화였다. 엄마는 아들에게 솔직한 대화를 요구했고, 그러기 위해 자신부터 말을 풀어나갔다. ‘이미 다 알고 있어.’라는 말 한 마디부터였지만, 그것으로 대화는 이미 그들 사이의 한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다. 아들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정당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리고 서로에게도 정당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섹스를 의미한다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각자의 행위에 대한 정당함만을 말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자신에 대한 아들의 상상을 허용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이 아들은 아니라고 말해버렸다. 그 순간 그렇게 나와 버린 말이었다. 한순간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찌 아들이 아닐 수 있었겠는가. 갑자기 서러워지는 엄마였다.
불 꺼진 안방에서 엄마는 홀로 무릎을 싸매고 얼굴을 묻은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세상에는 자신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외로웠다. 그리고 슬펐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에게는 다행이리라 싶어 일말의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가 엄마의 어깨 위로 살포시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아들이었다. 고개를 들어 아들을 올려다보는 엄마의 눈가엔 얼룩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엄마의 입술에 아들은 말없이 자신의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엄마는 아들의 입맞춤을, 그런 갑작스런 입맞춤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눈을 질끈 감아버린 엄마였다. 그때부터 왠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고 느꼈던 엄마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아들을 끌어안고 자신의 혀를 내밀고 있는 엄마였다.
아들의 갈망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의 갈망을 아들은 얼마쯤이나 알고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엄마는 자신의 갈망이 아닌 아들의 갈망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갈망을 자신의 힘으로 풀어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게 상상해 왔었다.
자신을 향한 아들의 손길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그 순간 그런 아들의 손길을 제지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감싸고 있던,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세상의 껍데기들을 조심스레 떨쳐내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이지, 껍데기였다. 자신을 세상의 잣대로 옭아매려는 그런 껍데기들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의 껍데기까지 모조리 자신의 손으로 떨쳐버렸다.
두 개의 나신이 방안에 드러난 순간,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세상이 열렸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리고 그 누구의 잣대로도 재단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열렸다. 그런 세상은 열려지길 바란다고 해서 절로 열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는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열린 세상에서 그들은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충분히 행복한 듯 그렇게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행동 하나하나에 서로의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섹스였지만, 결코 섹스가 아니었다. 과장된 어떤 기교도 없었고, 요구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단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할 뿐이었다. 그런 마음들이 몸짓으로 표현될 뿐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아들의 노는 엄마의 바다를 힘차게 저어가고 있었고, 그런 아들의 배가 좌초되지 않도록 엄마의 바다는 최대한 잔잔한 물결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두 개의 나신이 부르르 떨려오기 시작했을 때, 세상도 함께 떨리고 있었다. 아들의 배는 엄마의 바다가 내어놓은 항구에 무사히 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항구는 아들의 정박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흘려보내지도 않았다.
나란히 누워 함께 천장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였다. 그 눈물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적어도 그때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알 필요조차 없었다. 엄마의 눈물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 또한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바다는 그렇게 아들의 바다가 되어가고 있었다.
바다는 늘 고요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래야만 했을 지도 모르겠다. 남편이라는 배를 띄어놓고, 그 곁에 자식이라는 배를 띄워놓아야 했기에 바다는 언제나 고요해야만 했을 것이다. 바다의 신은, 그래서 엄마여야 했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엄마의 삼지창이어야 했다.
세 개의 창날. 그것이 움직이는 날, 바다에는 격랑이 일어난다. 띄어놓은 모든 배를 침몰시키고도 남을 거대한 폭풍이 불어 닥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엄마는 좀처럼 자신의 창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창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려는 엄마들인 것이다. 그렇게 무뎌가는 엄마들인 것이다. 바다는, 그래서 엄마들의 고향이다.
엄마들의 첫 바다는 그녀들의 남편들이 결정했다. 그때 바다는 변덕쟁이가 되었다. 고요했다가도 어느새 폭풍이 몰아치는, 잔잔한 파도였다가도 어느새 거대한 해일이 되어버리는 그런 바다였다. 남편이 젓는 노의 움직임에 따라 그 바다는 갈라지거나, 아니면 그 노를 삼켜버리거나 항상 그랬었다. 그렇게 엄마들의 첫 바다는 지쳐갈 따름이었다.
엄마들의 두 번째 바다는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 바다 역시 언제나 요동치고 있었다. 욕망하는 모든 것에 대한 스스로의 부정과, 그런 부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또 다른 욕망의 태동이 한데 어울려 격랑을 몰고 오는 그런 바다였다. 가여운, 한없이 가여운 그런 바다였다.
엄마들의 세 번째 바다는 자신이 아닌 자신의 분신에 의해 만들어진 바다였다. 어느 날 품게 된 조그만 생명이 맘껏 호흡할 수 있게 하는 양수였다. 그 양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엄마의 세 번째 바다 또한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 세 번째 바다는 자식들의 고향이었다. 특히 ‘아들’이라는 자식들은 언제나 그런 고향을 갈망했다. 마치 본능처럼 그런 고향에로의 환향에 집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환향은 쉽게 이루어지지도,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금기였다. 그런 금기가 아들과 엄마 사이의 일어나는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이젠 알 수 있다.
남편이라는 이름의 배가 사라져버린 엄마의 바다에서는 좀처럼 폭풍을 만날 수가 없었다. 엄마의 바다는 남은 아들의 배를 지키기 위해 언제나 고요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고요만이 아들의 배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결코 알지 못했다.
작은 풍랑조차 겪어보지 못한 배는 언젠가 다가올 폭풍을 뚫을 수 없는 법이다. 영원히 다가오지 않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언제고 폭풍은 다가서는 법이다. 그리고 한 번쯤 떠올리는 상상, 혹은 고민은 그런 폭풍의 시발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바다에 일어나는 폭풍은 결코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그 폭풍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자신의 바다를 갉아먹었던 남편의 바람이요, 그 바람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폭풍이 아들의 배로 향하는 것은 일종의 섭리였다.
아들에게서 보상받고자 하는 엄마의 심리였다. 그런 심리를 누군들 부정할 수 있으랴. 하지만, 사람들은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만 그런 심리를 인정할 뿐이었다.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심리만 허용할 뿐, 그 밖의 심리는 철저히 응징하려 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래서 엄마의 바다는 항상 고요하려 몸부림쳤다. 수시로 솟구치는 본능적인 욕구마저 수면 아래 숨긴 채 그렇게 고요하려 몸부림쳤다. 죽을 때까지 그러리라 수없이 다짐하며 밤마다 몸부림쳐 왔던 것이다. 그런 몸부림이 오히려 엄마의 바다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상상하고 있었다. 마치 실제로 일어나기를 소망한다는 듯 그렇게 절절히 상상하고 있었다. 배는 아무 바다에나 갈 수 있었지만, 바다는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바다에서 품은 배 이외의 다른 배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 배가 자신의 바다를 죽여가고 있을 때조차 그 배를 품으려 했다. 그것이 엄마였다.
엄마의 바다는 남은 아들의 배를 의식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단지 자신의 바다를 고요하게 만들어 아들의 배가 항상 수월하게 움직이기만 바랐을 뿐이었다. 그 수면 아래 부글거리는 욕망의 창을 애써 억누르며 그렇게 고요한 바다를 만들어가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경우, 배에서도 충분히 바다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가끔 잔잔한 파도 아래 숨어 일렁이는 조그만 파고를 볼 수 있다. 그건 엄마의 욕망이었고, 욕망의 바다였다.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을 만큼만 되면 어느 누구든 한 번쯤은 그런 바다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런 엄마의 바다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던져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아들이라면. 그런 엄마의 욕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엄마의 욕망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욕망이 감춰진 엄마의 바다는, 그래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아들이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욕망까지도 포용하는 바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욕망은 언제나 거칠었다. 언제고 엄마의 바다를 떠나고 싶어 했지만, 그 한 켠에선 또 언제고 그 바다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아니 그 바다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그런 소유의 욕망까지도 엄마의 바다는 능히 포용하려 했었다.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였다.
엄마의 욕망은 아들의 욕망이 충족된 이후, 그 이후에야 비로소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그들만의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이 충족된 이후, 아들의 배는 언제나 엄마의 바다를 다시 떠나곤 했었다. 그때 엄마의 바다는 다시 고요해졌다, 아니 죽음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간혹,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주체하지 못할 욕구에 사로잡혀 밤마다 베개를 끌어안기도 했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보았었다. 처음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 줄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 몸에서 하얀 액체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 그리고 그 액체가 사람이라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어떤 동굴로 삽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이해가 아니었다, 단지 그것은 호기심이었을 뿐.
그때부터 아들은 바다를 동경했다. 그리고 그 바다로 안내하는 동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룻밤에도 무수하게 엄마를 불렀고, 엄마를 그렸다. 그리고 그 흔적은 고스란히 휴지에 쌓여 침대 밑으로, 휴지통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들은 엄마를 쳐다보지 않았다. 애써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고, 말을 더듬었다. 제 방에 문을 잠그는 일이 많아졌고, 간혹 엄마의 속옷을 책상 서랍에 숨겨두는 일도 벌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엄마의 방에 흔적을 남기는 일도 잦아졌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성장을 반겼다.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때는 내심 다 큰 아들에 대한 든든함이 더 커지기도 했다. 아들의 방에서 처음으로 휴지뭉치를 보았던 날, 쿵쾅거리던 심장의 박동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아들 앞에서 벌써 몇 년을 편하게 입었던 옷들이, 이젠 헐어 그 안이 훤히 내비치는 그런 옷들이 아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그것이 아들의 욕망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속옷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무심했었다. 하지만 한 개, 두 개 사라지다가 그것들이 아들의 침대 밑에서, 책상 서랍에서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이상스레 마음은 되려 편했다. 그냥 모르는 척 그런 행동을 엄마는 용인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엄마의 욕망도 점차 거칠어져 갔다.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가는 오후가 잦아지고 있었고, 홀로 침대 시트를 붙잡는 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욕망을 아들은 점점 눈치 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들은 또 다른 욕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부끄럽다고 느꼈던 것은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사타구니 사이에서 베개가 흔들리고 있을 무렵, 갑자기 어두컴컴한 안방에 한 줄기 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흔들리는 검은 물체가 보였고, 한참을 흔들리던 그 물체가 사라지고 난 다음, 엄마는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욕망에 흔들려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몸부림이 우선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몸부림을 바라보게 만들었던 그 상황이 부끄러웠다. 함께 흔들렸던 그 검은 물체는 아들이었다. 그날 아들의 사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들의 흔적은 볼 수 있었다. 그 흔적에 또 한 번 부끄러웠지만, 그때의 부끄러움은 조금 달랐다.
그 날 이후, 여전히 엄마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 역시 여전히 제 방에서 나올 줄 몰랐다. 엄마가 잠든 뒤에야 비로소 나와 제 할 일을 하는 그런 아들이었다. 그리나 그 아들은 엄마가 잠든 것이 아니라 잠든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렇게 아들은 안방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문만 열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침대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움직임을 엄마는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단지 모르는 척 할 뿐, 그러나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받을 지도 모를 아들의 상처를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들은 아는 지 모르는 지 자신의 행동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범해지고 있었다. 가져간 속옷에 자신의 정액을 잔뜩 묻혀 빨래통에 내놓는다든지, 엄마의 침대 한 가운데 제 흔적을 남겨놓는다든지 그렇게 대범해지고 있었다.
그런 대범함은 엄마를 변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엄마의 바다가 출렁이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자신의 바다를 내어줄 것인지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미 자신의 자위를 엄마가 알고 있으리라 확신한 듯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의 답이 결코 있을 수는 없었다. 얼핏 보면 ‘하자, 말자’ 둘 중에 하나의 답만 존재할 것 같았던 고민이었지만, 그 두 개의 답이 모두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엄마의 바다는 그런 바다였다. 도저히 알 수도 없고, 답도 없는 그런 바다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 고민은 평생을 안고 갈 수도 있는 그런 문제였다.
엄마의 고민은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한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먼저 강제로 침범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엄마의 바다는 그런 낯선 침입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엄마와 아들은 서로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엄마는 그런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런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때부터 아들의 욕망보다 더 큰 엄마의 욕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욕망을 현실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엄마의 시작은 대화였다. 엄마는 아들에게 솔직한 대화를 요구했고, 그러기 위해 자신부터 말을 풀어나갔다. ‘이미 다 알고 있어.’라는 말 한 마디부터였지만, 그것으로 대화는 이미 그들 사이의 한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다. 아들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정당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리고 서로에게도 정당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섹스를 의미한다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각자의 행위에 대한 정당함만을 말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자신에 대한 아들의 상상을 허용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이 아들은 아니라고 말해버렸다. 그 순간 그렇게 나와 버린 말이었다. 한순간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찌 아들이 아닐 수 있었겠는가. 갑자기 서러워지는 엄마였다.
불 꺼진 안방에서 엄마는 홀로 무릎을 싸매고 얼굴을 묻은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세상에는 자신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외로웠다. 그리고 슬펐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에게는 다행이리라 싶어 일말의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가 엄마의 어깨 위로 살포시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아들이었다. 고개를 들어 아들을 올려다보는 엄마의 눈가엔 얼룩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엄마의 입술에 아들은 말없이 자신의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엄마는 아들의 입맞춤을, 그런 갑작스런 입맞춤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눈을 질끈 감아버린 엄마였다. 그때부터 왠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고 느꼈던 엄마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아들을 끌어안고 자신의 혀를 내밀고 있는 엄마였다.
아들의 갈망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의 갈망을 아들은 얼마쯤이나 알고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엄마는 자신의 갈망이 아닌 아들의 갈망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갈망을 자신의 힘으로 풀어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게 상상해 왔었다.
자신을 향한 아들의 손길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그 순간 그런 아들의 손길을 제지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감싸고 있던,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세상의 껍데기들을 조심스레 떨쳐내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이지, 껍데기였다. 자신을 세상의 잣대로 옭아매려는 그런 껍데기들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의 껍데기까지 모조리 자신의 손으로 떨쳐버렸다.
두 개의 나신이 방안에 드러난 순간,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세상이 열렸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리고 그 누구의 잣대로도 재단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열렸다. 그런 세상은 열려지길 바란다고 해서 절로 열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는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열린 세상에서 그들은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충분히 행복한 듯 그렇게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행동 하나하나에 서로의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섹스였지만, 결코 섹스가 아니었다. 과장된 어떤 기교도 없었고, 요구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단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할 뿐이었다. 그런 마음들이 몸짓으로 표현될 뿐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아들의 노는 엄마의 바다를 힘차게 저어가고 있었고, 그런 아들의 배가 좌초되지 않도록 엄마의 바다는 최대한 잔잔한 물결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두 개의 나신이 부르르 떨려오기 시작했을 때, 세상도 함께 떨리고 있었다. 아들의 배는 엄마의 바다가 내어놓은 항구에 무사히 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항구는 아들의 정박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흘려보내지도 않았다.
나란히 누워 함께 천장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였다. 그 눈물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적어도 그때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알 필요조차 없었다. 엄마의 눈물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 또한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바다는 그렇게 아들의 바다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