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씨는 건축사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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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7:39 조회 831회 댓글 0건본문
제수씨는 건축사
이름에서 혹시 느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오입질을 해서 그런지...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내 물건이 좀 실하다. 거기에 의학적인 약간의 도움이 있었다. 길이와 굵기 그리고 강도가 딱 여자들 질질 싸게 만드는 사이즈라고 어떤 년이 말하더라.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3류 대학도 겨우 들어갔다. 하지만 영어 하나는 무지하게 잘한다. 플레이보이 잡지와 포르노 영화 등 외설적인 목적으로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백마를 따먹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가졌다. 말이 안 통해도 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빠구리 하면서 한마디도 안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혹(不惑)의 나이...
보통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을 나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빠져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시간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 일이다.
내일 모레면 내 나이 마흔이다.
따뜻한 봄...
봄 처녀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듯 내 가슴에도 큰 파동이 생겼다.
SM...
그 놈은 우연히 나를 찾아왔다.
불혹의 나이에 근접할 때까지 여자경험은 적지 않다. 다양한 여성들을 만났다. 젊은 시절 원나잇스탠드(one night stand)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 사업상 접대로 만난 접대부들, 대학시절 헌팅(hunting)해서 따먹은 여대생들까지 손에 꼽기 힘들다.
고난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런 내가 성적으로 좀 시들해진 시기가 찾아왔다. 섹시한 여자들을 만나고 그녀들이 유혹해도 별로 끌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발기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왕좆은 아침마다 내게 인사한다. 하지만 젊고 예쁜 여자를 보면 음심(淫心)이 동하고 꼴려야 정상인데...왕좆이 시들하다.
독신주의는 거창한 얘기다.
자유섹스주의자...
뻥이다. 그렇게 나를 포장했을 뿐이다. “내 아내” 혹은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혼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한 번 먹어보고 좋으면 두 번 먹고...싫으면 다시 안 만났다. 내 유년기의 가질 수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첫사랑은 외사촌 누나였다.
가질 수 없었다.
그 때도 지금도 가질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친족 간 섹스를 금기시 한다. 언제부터 생긴 관습인지 모르겠다. 나는 종교가 없다. 성경을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성경은 성스러운 말씀들의 모음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중학교 시절 보던 음란소설보다 더 음탕한 내용들이다.
그곳에는 근친상간이 난무한다.
근친상간(近親相姦)...
관습과 사회통념이 내게 너무 지독하다.
누나가 내 첫사랑이라는 것은 그 후에 만난 여자들을 통해 느꼈다. 내 두 번째 사랑이자 섹스상대도 가질 수 없는 여자였다. 그녀의 얘기를 이제 편하게 할 수 있다. 사춘기 시절 내 사랑들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다른 남자의 여자를 탐하게 된 것은 어쩌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지루하고 싱겁다.
입맛을 잃었는지 밥맛도 없다. 오랜만에 몸보신을 할 생각으로 보신탕집을 찾았다. 흔히 말하는 멍멍이 탕은 아니다. 한약제를 먹인 흑염소와 오골계를 요리해서 파는 식당이다. 사장과 10년 넘게 알아온 단골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사장을 찾는다.
“장사장! 따끈따끈한 놈으로 하나...”
“왕사장! 오랜만이네. 통 안보이더니...어디 아픈가? 얼굴이...”
덩치 좋은 50대 아저씨가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하하...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안 보이면 잘 살아있는 줄 알지...”
“아픈 것은 아닌가 보네...다행이야. 잠시만 기다리게...”
가게는 한약 향으로 가득하다.
“흐음...언제 맡아도 좋은데...”
장사장은 주방에 주문을 하러 간다.
나는 자주 앉는 카운터 옆자리에 앉는다. 군데군데 손님들이 보인다. 세 테이블이 찼다. 평범한 일상적인 모습이다. 늙은 아저씨 두 사람이 대낮부터 소주에 오골계 전골을 먹는 모습이 보인다. 동네 어르신들 같다. 택시기사님으로 보이는 세 사람은 오골계인지 흑염소인지 모르겠지만, 식사 중이다.
마지막 테이블로 시선이 간다.
의외다. 미모의 여인이 앉아있다. 나를 향해 등지고 앉은 남자와 그녀 옆자리에 작은 아이가 보인다. 가족이다. 보기 드문 구성이다. 가끔 노부부나 아줌마들도 볼 수 있지만...저렇게 매력적인 여자를 이곳에 보기는 힘들다. 최근 시들했던 왕좆도 느꼈는지 살짝 신호를 보낸다.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녀석이다.
흑진주(Black Pearl)...
그녀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피부가 검은 빛을 띠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눈동자다. 태초에 있었다는 “혼돈의 어둠” 같이 깊고 검다. 검은 머리카락은 너무 찐해서 더 이상 검을 수 없다. 오뚝한 콧날을 지나 붉게 타오르는 입술을 달려가 빨고 싶을 정도다. 잡티 없는 백옥 같은 살결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녀가 웃는다.
하얀 치아가 살짝 보인다. 그녀에게 눈을 땔 수가 없다. 손을 들어 살짝 입술을 가린다. 가늘고 긴 손가락도 하얗다. 옆에 앉은 아이의 몸짓을 보며 웃었던 것일까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왜 내 가슴이 뛰지?’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이런 미인의 조건이 있었다.
살결과 치아와 손이 새하얀 삼백(三白), 눈동자 눈썹 머리카락이 검은 삼흑(三黑), 입술 볼 손톱이 붉은 삼홍(三紅)은 기본이다. 입과 허리, 발목이 가늘어야 하는 삼협(三狹)과 젖꼭지와 코, 머리가 작야야 하는 삼소(三小)에 이르기까지 그 조건은 까다로웠다.
삼장(三長)이라 하여 키와 머리카락과 손가락은 길어야 하고, 삼광(三廣)으로 가슴과 이마와 미간은 넓어야 한다. 삼협(三狹)이라 하여 입과 허리와 발꿈치는 좁아야 하며, 삼비(三肥)는 팔과 허벅지와 가슴이 통통해야함을 뜻한다. 또 삼세(三細)는 손가락과 머리카락 입술은 가늘어야 하며, 삼소(三小)라 하여 머리와 코와 턱은 작아야 한다.
그런 여자가 있었을까?
하지만 며느리로는 엉덩이가 크고 좀 통통하고, 보름달 같은 둥근 얼굴에 허리가 굵은 여자를 원하기도 했다. 다산을 원했던 조상들의 소망이 닮긴 여성상이다. 나는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동양적인 미인도 좋지만, 역시 나는 서양적인 미녀에게 더 끌린다.
삼백(三白):세 곳이 희다...속살, 이, 손
삼흑(三黑):세 곳이 검다...눈썹, 머리카락, 음모
삼적(三赤):세 곳이 붉다...입술, 유두, 음부
삼홍(三弘):세 곳이 넓다...가슴, 이마, 귀볼
삼대(三大):세 곳이 크다...입, 유방, 엉덩이
삼소(三小):세 곳이 작다...허리, 발, 음부
그녀를 보고 싶다.
옷에 가려진 그녀의 알몸이 보고 싶다.
내 기준에서 맞는지 그녀의 다른 곳들도 보고 싶다. 하얀 피부로 볼 때, 그녀의 속살도 뽀얗게 숨어있을 것 같다. 검은 눈썹과 머리카락으로 추측할 때, 그녀의 음모도 무성한 검은 숲임에 틀림없다.
붉은 입술이 내 상상력에 힘을 싣는다.
그녀의 유두(乳頭)와 음부가 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선홍색의 작고 앙증맞은 유두와 도톰하면서 붉은 속살을 간직한 음부(陰部)다.
앉아 있어서 그녀의 엉덩이와 발 그리고 허리는 보이지 않는다.
내 음심(淫心)이 살아난다.
“왕사장!”
내 야릇하고 행복한 상상을 깨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식기 전에 드셔...엉?”
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장사장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본다.
“아...씨팔...”
나는 작게 중얼거린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장사장이 얄밉다. 다시 그녀의 테이블로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테이블도 음식이 나왔다. 나와 비슷하게 들어온 모양이다. 돌아 앉아있는 남자는 남편일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수저도 챙겨주며 환하게 웃는다. 아무런 죄도 없는 그가 밉다.
그녀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싫다.
‘내 마음을 뺏어가는 여자들은 왜 모두 임자가 있을까?’
그랬다.
내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녀도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다. 두 번째 사랑은 처음부터 누군가의 아내로 내 앞에 나타났다. 세 번째도 관습적 장벽을 넘을 수 없는 상대였다. 세 여자들은 지금 다른 사람의 마누라다.
‘불가능한 사랑들만 내게 오는 것은 우연일까?’
‘어쩌면 평생 혼자 살아야할 지도 모를 운명인가?’
‘외롭게 죽기는 싫지만...’
‘하하...즐겁게 살다 가면 그뿐 아닌가?’
장사장이 내가 숟가락을 들지 않자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안 먹어? 응? 뭘 그렇게 봐?”
“흠흠...아무것도 아니야. 맛있게 먹을게...”
“여기 소주...”
나는 헛기침을 하고 급히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갑니다...맛있게 먹어.”
택시 기사들은 바쁘게 식사하고 일어난다. 60대로 보이는 늙은 아저씨들은 소주 세병을 벌써 비우고 또 술을 시킨다. 장사장은 부리나케 달려가며 대답한다.
나는 탕을 먹으면서도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녀를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오골계 탕 같은 그릇에서 살을 발라 남편의 밥에 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정숙한 아내의 모습이다.
천사 같은 여자다.
흑(黑)백(白)적(赤)의 천사...
그녀를 보며 숟가락질을 하다 국물을 쏟았다. 허벅지에 뜨거운 국물이 떨어진다.
“앗...으음...젠장...”
짧은 비명과 낮은 욕설이 튀어나온다.
물수건을 들어서 바지를 닦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와 내 테이블은 꽤 멀다. 그녀는 가장 안쪽 자리였고, 나는 입구에서 가까운 카운터 옆이었다. 물 잔을 들어 물을 마시며, 그녀 테이블로 고개를 돌린다. 입천장이 데였는지 약간 쓰리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친다.
“캑...컥...윽...”
그녀의 눈웃음과 살인 미소에 사래가 걸렸다.
나를 향해 찰나의 웃음을 보여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더 보고 싶다. 저 웃음을 계속 볼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겠다. 지금 심정이 그렇다. 이것이 첫눈에 반하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도 내 가슴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의 속살은 어떤 느낌일까?’
‘입술은 어떤 맛일까?’
‘키스를 하고 싶다.’
‘저 하얀 이를 내 혀로 두드리고 싶다.’
‘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왕좆을 감아쥐어 준다면...’
‘짙은 눈썹이 저렇게 예쁠 수가...’
‘검은 머리카락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그녀의 깊은 보지계곡의 숲은 어떤 모양일까?’
‘붉은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
‘브래지어를 벗기고 유두를 빨아주면 어떤 소리를 낼까?’
‘저 소녀가 태어난 음부는 염화지옥의 불구덩이처럼 뜨겁겠지...’
‘그녀의 풍만한 유방에 얼굴을 묻고 싶다.’
‘보이지 않지만 엉덩이도 탐스러운 하트모양임에 틀림없다.’
‘잘록한 허리와 쭉 뻗은 종아리 그리고 발을 빨면....’
‘그녀의 음부에서는 걸쭉하고 달콤한 애액이 흐르겠지.’
‘목소리가 듣고 싶다.’
‘그녀의 신음이 듣고 싶다.’
‘아름다운 천사의 소리가 듣고 싶다.’
‘사랑일까?’
‘욕정일까?’
그녀의 손이 움직인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젓가락질을 한다. 붉은 김치를 더 붉은 입술로 가져간다. 그녀의 입이 벌어진다. 하얀 이가 살짝 보인다. 깊은 입 구멍 안으로 김치는 사라진다. 입술을 다물면서 젓가락을 빨며 꺼낸다.
‘저 붉은 입술이 왕좆을 빨면....’
‘왕좆에 키스하면 짜릿하겠지.’
그녀가 남편에게 작게 속삭인다.
나를 힐끔거리며 보면서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내 얼굴이 붉어졌다. 눈으로 상상으로 그녀를 벌써 열 번도 넘게 강간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식사하는 척한다. 잠시 후 고개를 살짝 드는 척하며 다시 훔쳐봤다.
이번에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젠장...쪽 팔리게...내가 왜 이러지?’
남편이 일어나 내게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저...혹시...와이프 아시는 분인가요?”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를 올려다본다. 앉아있을 때는 그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 안경을 쓴 30대 중후반의 사내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다. 약간 허약하고 여성스러워 보인다. 사내는 나를 기억하려는 듯 얼굴을 뚫어져라 보며 말한다.
“그럼...저를 아시나요? 혹시 대한 고등학교 나오셨나요?”
내가 대답 없이 침묵을 지키는데도 남자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아닌가? 대한 중학교 졸업하셨어요?”
넉살이 좋은 것인지...사내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미워할 수 없는 얼굴이다. 그러나 이놈은 주는 것도 없이 밉다. 그녀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송합니다. 초면인거 같네요.”
“......저 혹시....성함이...”
“별 뜻 없이 본 것이니 그만 돌아가서 식사하세요.”
더 이상 그녀의 남편과 말을 섞다가는 실수할 것 같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김경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왕대근입니다.”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인사하는데 물러설 수는 없다. 그의 인상이 마음에 든 것도 있지만, 어쩌면 그녀와 안면을 틀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왕대근...왕...대...근...혹시 성남초등학교?”
“어...네! 어떻게?”
남자의 물음에 나는 약간 놀라고 당황스럽다.
‘우연인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에 초등학교가 몇 개인데...찍어서 맞출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나는 주관식 문제를 무지하게 싫어한다. 객관식은 찍어서 맞출 확률이라도 있는데...이 남자는 어떻게 내 초등학교를 맞췄을까? 궁금하다.
나는 “김경수”라는 이름이 낯설다.
“혹시 69년생 아닌가요?”
“맞습니다.”
“김말자라고 아시나요?”
“김말자...음...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저를 아시나요?”
여자 이름과 얼굴을 잊지 않는다.
어쩌면 초등학교 시절 나와 관계있는 여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또래들보다 더 연상의 여인들에게 관심을 가졌었다. 넘볼 수 없는 넘기 힘든 장벽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미숙누나가 그랬고, 그 후에 사랑하게 된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형님은 절 잘 모르시지만...저는 잘 알죠. 6학년 때 짝꿍 기억나세요?”
“그게....잘....”
당연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년도 지난 과거에 여자다. 아니 그때는 여자가 아닌 그냥 반 친구일 뿐인 사람을 기억할 수가 없다. 나를 아는 것 같아 남자를 난처함에서 구하고자 아는 체한다. 아니다. 천사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다.
“아...김말자...말자말자 김말자...얼굴은 흐릿하지만...”
“말자말자 김말자...크큭...기억하시는군요. 제 누님이에요.”
“그럼 당신이 말자 동생? 그런데...어떻게 나를?”
솔직하게 의외의 만남이다.
처음부터 그에게 관심은 없었다. 내 관심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단지 그녀의 앞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일 뿐이었다. 분위기상 그가 그녀의 남편임은 의심할 여지가 별로 없다. 나를 아는 남자의 아내라는 것이 더 나를 슬프고 화나게 만든다.
‘젠장...또 제수씨인가?’
그녀를 알고 싶다.
더 솔직하게 그녀를 느끼고 싶다.
“직접 뵙는 것은 처음입니다. 어릴 때 누나일기장과 편지를 훔쳐봤다가...”
“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 한다.
“사실은...아마도...누나의 첫사랑이...형님이었을 겁니다.”
“네?”
황당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랑이 중요하다. 첫사랑이든...짝사랑이든...상대가 누구든...자신에게는 그 사랑들이 가장 소중하다. 과거 내 첫사랑과 내 짝사랑에만 관심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짝사랑하거나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관심 밖이었다.
내가 첫사랑이라는 이 남자의 누나가 조금 궁금하다.
“결혼하기 전에도 잠시 형님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맞을 겁니다.”
“그랬군요. 기쁘네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이...반가워요.”
“형님! 말씀 낮추세요. 저보다 나이도 위고 누님의 친구 분인데...”
“그래도 초면에...그럼 그럴까?”
“여보...뭐 해요? 탕 식어요.”
그녀가 남편을 부른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나와 경수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는 낯선 남자가 자신을 계속 훔쳐보는 것이 신경 쓰여 남편에게 말한 것뿐이다. 그런데 남편이 내게 와서 긴 대화를 이어가자 좀 이상하게 생각이 든 것 같다.
경수가 그녀를 돌아본 후 내게 말한다.
“형님! 혼자 오신 것 같은데...합석하시죠?”
“제수씨하고 단란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다음에 연락해.”
나는 일부러 슬쩍 거절해본다.
내 진심은 벌써 저 테이블, 정확하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경수에게 내 명함을 주며 다음에 만나자고 말한다. 그는 내 명함을 받아 읽으며 웃음을 짓는다.
“형님...밥은 혼자 먹으면 더 맛없어요. 저희랑 함께 들어요.”
“제수씨가 싫어할지도 모르잖아. 다음에 내가 정식으로 초대할게.”
“저 사람은 걱정 마시고...사장님! 여기 음식 좀 옮겨주세요.”
“허허...이 사람...”
나는 거절하는 척하며 벌써 엉덩이를 들고 있었다.
장사장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내게 양해를 구하는 눈빛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내 음식을 저쪽 테이블로 옮길 것을 승낙한다. 나는 경수와 함께 그녀가 앉은 테이블로 향한다. 그녀는 남편과 내 대화들을 잘 듣지 못했지만, 마지막 남편의 합석을 위해 사장을 부른 것을 들었다.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것이 꿈같다.
“여보...인사해. 말자누님...수잔 누나 초등학교 동창...왕대근 형님이야.”
“아...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어요. 진수애라고 해요.”
“안...녕...하세요...왕..대근입니다. 수애씨!”
내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진수애...
그녀의 이름이다. 이름도 예쁘다.
“하하...형님도...수애씨가 뭐에요? 그냥 제수씨라고 하세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는데, 경수가 웃으며 “제수씨”라고 부르라 한다.
“그래도 초면인데...제수씨라고 불러도 될지...”
“괜찮아요. 당신도 괜찮지?”
그녀가 나를 보고 다시 남편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반가워요. 제수씨!”
“네...아주버님!”
그녀가 나를 “아주버님”이라 부른다. 목소리도 참 곱다.
“저기...탕이 많이 식었는데...어쩌죠?”
“장사장! 여기 탕 살짝 데워줄래.”
내 탕 그릇을 옮기던 장사장에게 부탁을 한다.
다시 그녀에게로 내 시선이 옮겨간다. 검고 긴 머리카락은 말아 올려 나무젓가락 같은 것으로 고정시켜 목선이 드러났다. 가까이서 본 검은 눈동자는 흑진주처럼 빛난다. 붉은 입술과 뽀얀 피부가 정말 고운 동양미인이다. 목선을 지나 그녀의 가슴을 살짝 훔쳐본다. 시선을 더 아래로 내린다.
정말 보고 싶은 곳은 테이블에 가려 볼 수 없다.
대신 테이블 위 음식 그릇들이 보인다. 그녀는 절반 이상 먹은 듯하다. 경수도 반 이상은 먹고 남겨진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제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짓에 따라 내 시선도 움직인다.
그녀와 경수의 딸이 보인다.
“호오...호오...”
그녀가 오골계의 살점을 잘게 뜯어 아이에게 먹인다.
“경수야! 몇 살이야?”
“아...우리 귀염둥이를 소개하지 않았군요. 36개월 좀 넘었어요. 김지은...예쁘죠? 지은아! 인사해야지...큰아빠...해 봐...하하...아...형님 결혼은?”
“뭐...아직...지은이는 제수씨 닮아서 정말 예쁘네. 너 복 받았다.”
“하하...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형님 차 가져오셨나요?”
뜬금없이 차를 가져왔는지 묻는 경수가 의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
“한국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을 만났는데...술이 빠지면 안 되겠죠?”
이 녀석 넉살 진짜로 좋다.
나는 친동생이 없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동생이 잠시 생겼던 적은 있다. 성인이 된 후에 생긴 동생에게 정은 없었다.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니어서 더 그랬다. 정말 동생으로 삼고 싶을 정도로 경수는 좋은 녀석이다. 그녀 때문에 잠시 그를 미워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하다.
그녀에게 음심(淫心)을 품은 내가 갑자기 초라한 느낌이다.
“동생은 차 안 가져왔어?”
“괜찮아요. 저는 대리 기사님이 계시잖아요. 앞에...쿠쿡...”
“흥! 여보...집에 가서 봐요.”
그녀가 남편을 비껴보며 눈을 흘긴다.
‘아...’
그 모습도 예쁘다.
“이런...나 때문에 부부싸움 나겠는데...”
“하하...걱정 마세요. 저 사람 심술부리는 척하는데 장난이에요.”
“응? 심술?”
“자신은 못 먹으니까...큭!”
제수씨가 경수를 팔을 살짝 꼬집는다.
“소주는 힘들던데...맥주도 괜찮으세요?”
“어...그럴까? 오늘은 간단하게 먹고...다음에 내 가게로 초대할게. 제수씨 일식 좋아하세요?”
“어머...아주버님! 일식 가게하세요? 어디에요?”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묻는다.
향기가 난다.
특정 향수냄새인지 샴푸냄새인지는 모르겠다. 찐한 한약 냄새들 사이로 분명히 그녀의 향기가 맡아졌다. 그녀는 처음에 어색해서 말을 아꼈던 것일까? 말문이 열리면서 표정도 변했다.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장사장이 가져온 맥주를 경수와 서로 잔에 따르며 시선은 그녀에게 향한다.
그녀는 일식을 좋아하는 듯하다.
“작은 가게에요. 서초동에 있는데...혹시 들어보셨는지? 우리일식이라고...”
“어...저 거기 아는데...두 번 정도 갔었어요. 아주버님이 거기 사장님이라니...세상 참 좁네요.”
“그랬어요. 괜찮았나요?”
“맛도 좋고...서비스도 좋았어요. 가격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제가 계산하는 자리가 아니라서...호호...잘 먹었죠.”
그녀의 목소리까지 나를 흥분시킨다.
“오늘 저녁 초대할까요?”
“정말이요?”
즉흥적인 초대를 제안한다.
“경수하고 제수씨만 괜찮으시면 저녁 대접하고 싶네요.”
“여보...괜찮...”
“형님! 오케이...일단 건배하죠. 우연한 만남과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경수가 나와 그녀의 대화를 끊고 건배를 청한다.
맥주의 맛이 이렇게 달콤하고 시원하기는 오랜만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먹어서 그런 것 같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술잔을 주고받는 우리를 본다. 탕은 데워져서 다시 나왔지만, 별로 먹지 않았다. 맥주와 반가운 마음 때문에 오골계 탕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딸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빠빠...”
귀여운 아이다. 많은 아이들을 보았지만, 정말 예쁜 아이다. 결혼에 관심 없는 독신주의자였고, 아이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 굳어진 마음이다.
혼자가 편하고 좋다.
“아주버님! 저 사람 술 적당히 주세요. 저러다가 저녁 약속에 못 나가요.”
“하하...걱정 마. 이 정도는 괜찮아. 자...한 잔 더 받으세요.”
벌써 두 병째 마시는 중이다.
“이 잔까지만 하자. 저녁에 오면 좋은 와인으로 내가 대접할게.”
“하하..저녁은 저녁이고...점심은 점심이죠...입 찢어지겠어요. 아줌마!”
경수의 말처럼 제수씨의 입술이 활짝 벌어지며 환하게 웃는다.
“아주버님! 약속했어요. 저 까다로운 미식가에요. 특히 와인에 대해서는...호호호!”
“이런...경수야! 내가 실수했냐?”
“크큭...아마도...저 사람 와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죠. 캬...시원하다.”
“호호호...여보...내가 언제 그랬다고...”
경수 식구들과의 점심 식사는 즐거웠다.
식당을 나서기 전 내가 계산을 했다. 경수는 자신이 계산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남편에게 차키를 넘겨받은 제수씨가 주차장으로 향한다. 나는 대리운전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식사는 특제 오골계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런데 맥주까지 마셔서 포만감이 장난 아니다.
그녀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이 또 다른 포만감을 준다.
일어선 제수씨의 키가 경수와 비슷하다. 굽이 낮은 구두를 씻었지만 적어도 170cm는 될 듯하다. 검은색 정장 바지가 잘 어울린다. 그녀에 대해 많이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는 아닌 듯하다. 처음 만남에 세세한 것까지 묻기 쉽지 않다. 경수와 경수누나 말자에 대한 얘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경수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어 물었다.
“넌 무슨 일 하냐?”
MAS 펀드 매니저...
경수에게 명함을 받았다.
자산관리와 펀드 운영을 자문하는 회사라고 한다. 외국계회사인데 한국지사에 부서장으로 온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 쭉 미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넌지시 그녀에 대해 물었다. 그녀를 만난 것도 미국이라 한다. 그녀는 유학생이었는데, 대학원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했다고 경수가 너스레를 떤다.
그녀는 캐리어 우먼처럼 보인다.
예상대로 그녀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캐리어 우먼, 아니 슈퍼 우먼이었다. 꽤 명성 있는 설계사무소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자신의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일주일에 하루 강의도 나간다고 했다. 집에 오면 주부와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도 척척 일하는 진정한 슈퍼우먼이다.
경수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며 그녀의 뒤태를 본다.
‘오...’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탱탱하고 풍만하다.
‘라인이 살아 숨 쉬는군!’
식사를 위해 틀어 올렸던 긴 머리카락을 풀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환상이다. 유방도 적당하게 크고 예쁜 모양이다. 정장 상의에 가려 볼 수 없지만,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지은이를 낳고도 저런 몸매를 유지하려면 꾸준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정말 슈퍼우먼일지도....’
제수씨가 하얀색 승용차를 몰고 나온다.
“아주버님! 점심 잘 먹었어요. 저희 먼저 갈게요. 저녁에 뵈어요.”
“아...제수씨! 반가웠어요. 운전 조심하고...경수야! 저녁에 전화해.”
“형님...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지은아! 큰아빠 인사해야지...뽀뽀...”
경수가 지은이를 내게 안기며 인사를 시킨다.
“지은이...뽀뽀...뽀뽀...”
“여보...타요. 빨리...”
그녀가 너스레를 떠는 남편을 재촉한다.
헤어지기 전 그녀의 딸 지은에게 뽀뽀를 받았다. 경수가 취기가 살짝 올라 기분이 좋은지 인사시킨다고 딸을 내게 안겼다. 무방비인 내 뺨에 지은이 뽀뽀했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경수가 “뽀뽀”라고 자꾸 외치니까 반사적으로 한 것 같다.
그녀의 입술은 아니지만 황홀한 기분이다.
“조심해서 들어가고...저녁에 보자. 지은이 안녕!”
못 다한 얘기들은 저녁에 나누기로 하고, 경수 가족들과 헤어졌다.
대리운전 기사가 도착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우리일식에 전화해서 저녁 VIP룸을 하나 예약 잡는다. 귀한 손님이니까 특별히 신경 쓰고, 특급 와인까지 지배인에게 지시한다.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대고 상상에 빠진다.
진(眞)...수(秀)...애(愛)...
나이는 경수보다 한살 어리다고 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네 살이다. 대한대학 건축학과를 다니다 중도에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교환학생이었는데, 그냥 그곳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미국에서 건축사 시험에 합격해 LA 건축사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박사까지 수료한 수재였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 친구 대신 소개팅에 나가 경수를 만났다.
경수의 말에 따르면 열렬하게 구애해서 어렵게 결혼에 골인했다. 경수의 말에 그녀가 웃음으로 대답했다. 긍정의 웃음이 아닌 묘한 뉘앙스의 웃음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는 1년도 되지 않아 아직 좀 낯설어했다. 경수는 15년 만에, 그녀도 10년 만에 귀국한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한국도, 서울도 많이 변한 모습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 경수의 누나 말자는 “수잔”이라는 미국 이름으로 바꿔서 대학에서 교수를 하며, 일찍 결혼해서 딸과 아들이 꽤 장성했다. 경수네 가족은 모두 LA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누나 말자가 대학교 다닐 때에 가족 모두 이민을 갔다.
제수씨의 가족들은 한국에 있다.
후에 알게 된 그녀의 가족은 단출하다. 아버지는 몇 년 전 그녀의 결혼식을 본 후 돌아가셨다. 폐암이었다. 평생을 건설현장에서 소장으로 일하신 분이다. 담배를 입에서 때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담배 냄새가 가장 강렬하고 크다고 했다.
“아주버님 처음 보고 조금 당황했어요.”
내가 그녀의 아버지를 무척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후에 그녀가 보여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나도 놀랬다. 얼굴과 체격이 아주 흡사했다. 건설현장에 근무하셔서 그런지 나보다 좀 더 구리 빛 피부를 가진 것만 달랐다. 그녀가 이상하게 느낀 점이 또 있었다.
냄새...
시각적 기억보다 더 오래 남는 후각적 기억이 그녀를 자극했다. 내게서 아빠의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담배 냄새일지도 몰랐다. 그녀의 남편 경수는 비(非)흡연자였다. 보신탕 가게에서 처음 그녀를 만나던 그쯤에 내 흡연양은 상당히 많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면 “그리운 냄새”라고 한다.
‘담배를 못 끊을 것 같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식 요리연구가”라고 한다.
조선정...
그녀의 어머니 이름이다. 강북 한옥마을에 혼자 살고 계신다. 식품조리학과를 졸업해 궁중 한식 대가에게 사사 받은 몇 안 되는 전수인 중 한 사람이다. 지금도 요리학원을 운영하고, 가끔 방송국 요리자문을 하시며 왕성한 활동을 한다. 어머니의 친가 외가 모두 이북에 있어서 남한에 친척이 없다.
그래서...
제수씨에게도 외가(外家)는 없다.
제수씨의 어머니가 무남독녀였기 때문이다. 경수의 장모님 조선정 여사는 일찍 결혼했다. 대학 신입생 때 제수씨의 아버지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했다. 19살에 제수씨를 임신하고 곧 결혼했다. 부른 배를 이끌고 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대학에서 임산부를 보기 힘들었다.
보통은 휴학하니까...
그녀의 어머니는 출산 후 1년을 휴학하고 곧 바로 학업에 매진했다. 제수씨는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그녀의 여동생도 마찬가지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도 할머니가 키웠다. 어쩌면 그녀의 슈퍼우먼 기질은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신이 받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을 그녀의 딸에게는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의 딸이었다. 캐리어 우먼으로서 일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딸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유사직종에 일하는 것과 어머니의 뜨거운 열정을 골고루 물려받았다.
진수희...
그녀의 동생이다. 그녀의 어머니에 제자이자 전수자이다. 요리학원의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하다. 외모적으로 수애가 어머니를 닮아 동양 미인이라면, 여동생 수희는 아버지를 많이 닮아 서구적인 미녀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골격도 언니보다 더 컸다.
경수와 제수씨의 소개로 수희를 만났었다.
제수씨에게 내 마음을 모두 빼앗겨버려 그녀의 동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더 목말라하는 불쌍한 하이에나였다. 내 시큰둥한 반응에 수희가 더 애가 달았었다. 제수씨의 가족에 대한 스토리는 그녀와 더 친해진 후에 들었다.
무미건조했던 내 일상에 봄바람이 불었다.
봄바람은 처녀의 마음만 설레게 하지 않았다.
그 봄바람은 특이한 향기를 사방으로 뿜었다.
진수애...
제수씨의 이름이다.
이름에서 혹시 느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오입질을 해서 그런지...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내 물건이 좀 실하다. 거기에 의학적인 약간의 도움이 있었다. 길이와 굵기 그리고 강도가 딱 여자들 질질 싸게 만드는 사이즈라고 어떤 년이 말하더라.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3류 대학도 겨우 들어갔다. 하지만 영어 하나는 무지하게 잘한다. 플레이보이 잡지와 포르노 영화 등 외설적인 목적으로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백마를 따먹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가졌다. 말이 안 통해도 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빠구리 하면서 한마디도 안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혹(不惑)의 나이...
보통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을 나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빠져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시간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 일이다.
내일 모레면 내 나이 마흔이다.
따뜻한 봄...
봄 처녀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듯 내 가슴에도 큰 파동이 생겼다.
SM...
그 놈은 우연히 나를 찾아왔다.
불혹의 나이에 근접할 때까지 여자경험은 적지 않다. 다양한 여성들을 만났다. 젊은 시절 원나잇스탠드(one night stand)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 사업상 접대로 만난 접대부들, 대학시절 헌팅(hunting)해서 따먹은 여대생들까지 손에 꼽기 힘들다.
고난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런 내가 성적으로 좀 시들해진 시기가 찾아왔다. 섹시한 여자들을 만나고 그녀들이 유혹해도 별로 끌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발기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왕좆은 아침마다 내게 인사한다. 하지만 젊고 예쁜 여자를 보면 음심(淫心)이 동하고 꼴려야 정상인데...왕좆이 시들하다.
독신주의는 거창한 얘기다.
자유섹스주의자...
뻥이다. 그렇게 나를 포장했을 뿐이다. “내 아내” 혹은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혼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한 번 먹어보고 좋으면 두 번 먹고...싫으면 다시 안 만났다. 내 유년기의 가질 수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첫사랑은 외사촌 누나였다.
가질 수 없었다.
그 때도 지금도 가질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친족 간 섹스를 금기시 한다. 언제부터 생긴 관습인지 모르겠다. 나는 종교가 없다. 성경을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성경은 성스러운 말씀들의 모음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중학교 시절 보던 음란소설보다 더 음탕한 내용들이다.
그곳에는 근친상간이 난무한다.
근친상간(近親相姦)...
관습과 사회통념이 내게 너무 지독하다.
누나가 내 첫사랑이라는 것은 그 후에 만난 여자들을 통해 느꼈다. 내 두 번째 사랑이자 섹스상대도 가질 수 없는 여자였다. 그녀의 얘기를 이제 편하게 할 수 있다. 사춘기 시절 내 사랑들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다른 남자의 여자를 탐하게 된 것은 어쩌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지루하고 싱겁다.
입맛을 잃었는지 밥맛도 없다. 오랜만에 몸보신을 할 생각으로 보신탕집을 찾았다. 흔히 말하는 멍멍이 탕은 아니다. 한약제를 먹인 흑염소와 오골계를 요리해서 파는 식당이다. 사장과 10년 넘게 알아온 단골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사장을 찾는다.
“장사장! 따끈따끈한 놈으로 하나...”
“왕사장! 오랜만이네. 통 안보이더니...어디 아픈가? 얼굴이...”
덩치 좋은 50대 아저씨가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하하...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안 보이면 잘 살아있는 줄 알지...”
“아픈 것은 아닌가 보네...다행이야. 잠시만 기다리게...”
가게는 한약 향으로 가득하다.
“흐음...언제 맡아도 좋은데...”
장사장은 주방에 주문을 하러 간다.
나는 자주 앉는 카운터 옆자리에 앉는다. 군데군데 손님들이 보인다. 세 테이블이 찼다. 평범한 일상적인 모습이다. 늙은 아저씨 두 사람이 대낮부터 소주에 오골계 전골을 먹는 모습이 보인다. 동네 어르신들 같다. 택시기사님으로 보이는 세 사람은 오골계인지 흑염소인지 모르겠지만, 식사 중이다.
마지막 테이블로 시선이 간다.
의외다. 미모의 여인이 앉아있다. 나를 향해 등지고 앉은 남자와 그녀 옆자리에 작은 아이가 보인다. 가족이다. 보기 드문 구성이다. 가끔 노부부나 아줌마들도 볼 수 있지만...저렇게 매력적인 여자를 이곳에 보기는 힘들다. 최근 시들했던 왕좆도 느꼈는지 살짝 신호를 보낸다.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녀석이다.
흑진주(Black Pearl)...
그녀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피부가 검은 빛을 띠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눈동자다. 태초에 있었다는 “혼돈의 어둠” 같이 깊고 검다. 검은 머리카락은 너무 찐해서 더 이상 검을 수 없다. 오뚝한 콧날을 지나 붉게 타오르는 입술을 달려가 빨고 싶을 정도다. 잡티 없는 백옥 같은 살결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녀가 웃는다.
하얀 치아가 살짝 보인다. 그녀에게 눈을 땔 수가 없다. 손을 들어 살짝 입술을 가린다. 가늘고 긴 손가락도 하얗다. 옆에 앉은 아이의 몸짓을 보며 웃었던 것일까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왜 내 가슴이 뛰지?’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이런 미인의 조건이 있었다.
살결과 치아와 손이 새하얀 삼백(三白), 눈동자 눈썹 머리카락이 검은 삼흑(三黑), 입술 볼 손톱이 붉은 삼홍(三紅)은 기본이다. 입과 허리, 발목이 가늘어야 하는 삼협(三狹)과 젖꼭지와 코, 머리가 작야야 하는 삼소(三小)에 이르기까지 그 조건은 까다로웠다.
삼장(三長)이라 하여 키와 머리카락과 손가락은 길어야 하고, 삼광(三廣)으로 가슴과 이마와 미간은 넓어야 한다. 삼협(三狹)이라 하여 입과 허리와 발꿈치는 좁아야 하며, 삼비(三肥)는 팔과 허벅지와 가슴이 통통해야함을 뜻한다. 또 삼세(三細)는 손가락과 머리카락 입술은 가늘어야 하며, 삼소(三小)라 하여 머리와 코와 턱은 작아야 한다.
그런 여자가 있었을까?
하지만 며느리로는 엉덩이가 크고 좀 통통하고, 보름달 같은 둥근 얼굴에 허리가 굵은 여자를 원하기도 했다. 다산을 원했던 조상들의 소망이 닮긴 여성상이다. 나는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동양적인 미인도 좋지만, 역시 나는 서양적인 미녀에게 더 끌린다.
삼백(三白):세 곳이 희다...속살, 이, 손
삼흑(三黑):세 곳이 검다...눈썹, 머리카락, 음모
삼적(三赤):세 곳이 붉다...입술, 유두, 음부
삼홍(三弘):세 곳이 넓다...가슴, 이마, 귀볼
삼대(三大):세 곳이 크다...입, 유방, 엉덩이
삼소(三小):세 곳이 작다...허리, 발, 음부
그녀를 보고 싶다.
옷에 가려진 그녀의 알몸이 보고 싶다.
내 기준에서 맞는지 그녀의 다른 곳들도 보고 싶다. 하얀 피부로 볼 때, 그녀의 속살도 뽀얗게 숨어있을 것 같다. 검은 눈썹과 머리카락으로 추측할 때, 그녀의 음모도 무성한 검은 숲임에 틀림없다.
붉은 입술이 내 상상력에 힘을 싣는다.
그녀의 유두(乳頭)와 음부가 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선홍색의 작고 앙증맞은 유두와 도톰하면서 붉은 속살을 간직한 음부(陰部)다.
앉아 있어서 그녀의 엉덩이와 발 그리고 허리는 보이지 않는다.
내 음심(淫心)이 살아난다.
“왕사장!”
내 야릇하고 행복한 상상을 깨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식기 전에 드셔...엉?”
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장사장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본다.
“아...씨팔...”
나는 작게 중얼거린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장사장이 얄밉다. 다시 그녀의 테이블로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테이블도 음식이 나왔다. 나와 비슷하게 들어온 모양이다. 돌아 앉아있는 남자는 남편일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수저도 챙겨주며 환하게 웃는다. 아무런 죄도 없는 그가 밉다.
그녀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싫다.
‘내 마음을 뺏어가는 여자들은 왜 모두 임자가 있을까?’
그랬다.
내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녀도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다. 두 번째 사랑은 처음부터 누군가의 아내로 내 앞에 나타났다. 세 번째도 관습적 장벽을 넘을 수 없는 상대였다. 세 여자들은 지금 다른 사람의 마누라다.
‘불가능한 사랑들만 내게 오는 것은 우연일까?’
‘어쩌면 평생 혼자 살아야할 지도 모를 운명인가?’
‘외롭게 죽기는 싫지만...’
‘하하...즐겁게 살다 가면 그뿐 아닌가?’
장사장이 내가 숟가락을 들지 않자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안 먹어? 응? 뭘 그렇게 봐?”
“흠흠...아무것도 아니야. 맛있게 먹을게...”
“여기 소주...”
나는 헛기침을 하고 급히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갑니다...맛있게 먹어.”
택시 기사들은 바쁘게 식사하고 일어난다. 60대로 보이는 늙은 아저씨들은 소주 세병을 벌써 비우고 또 술을 시킨다. 장사장은 부리나케 달려가며 대답한다.
나는 탕을 먹으면서도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녀를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오골계 탕 같은 그릇에서 살을 발라 남편의 밥에 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정숙한 아내의 모습이다.
천사 같은 여자다.
흑(黑)백(白)적(赤)의 천사...
그녀를 보며 숟가락질을 하다 국물을 쏟았다. 허벅지에 뜨거운 국물이 떨어진다.
“앗...으음...젠장...”
짧은 비명과 낮은 욕설이 튀어나온다.
물수건을 들어서 바지를 닦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와 내 테이블은 꽤 멀다. 그녀는 가장 안쪽 자리였고, 나는 입구에서 가까운 카운터 옆이었다. 물 잔을 들어 물을 마시며, 그녀 테이블로 고개를 돌린다. 입천장이 데였는지 약간 쓰리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친다.
“캑...컥...윽...”
그녀의 눈웃음과 살인 미소에 사래가 걸렸다.
나를 향해 찰나의 웃음을 보여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더 보고 싶다. 저 웃음을 계속 볼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겠다. 지금 심정이 그렇다. 이것이 첫눈에 반하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도 내 가슴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의 속살은 어떤 느낌일까?’
‘입술은 어떤 맛일까?’
‘키스를 하고 싶다.’
‘저 하얀 이를 내 혀로 두드리고 싶다.’
‘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왕좆을 감아쥐어 준다면...’
‘짙은 눈썹이 저렇게 예쁠 수가...’
‘검은 머리카락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그녀의 깊은 보지계곡의 숲은 어떤 모양일까?’
‘붉은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
‘브래지어를 벗기고 유두를 빨아주면 어떤 소리를 낼까?’
‘저 소녀가 태어난 음부는 염화지옥의 불구덩이처럼 뜨겁겠지...’
‘그녀의 풍만한 유방에 얼굴을 묻고 싶다.’
‘보이지 않지만 엉덩이도 탐스러운 하트모양임에 틀림없다.’
‘잘록한 허리와 쭉 뻗은 종아리 그리고 발을 빨면....’
‘그녀의 음부에서는 걸쭉하고 달콤한 애액이 흐르겠지.’
‘목소리가 듣고 싶다.’
‘그녀의 신음이 듣고 싶다.’
‘아름다운 천사의 소리가 듣고 싶다.’
‘사랑일까?’
‘욕정일까?’
그녀의 손이 움직인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젓가락질을 한다. 붉은 김치를 더 붉은 입술로 가져간다. 그녀의 입이 벌어진다. 하얀 이가 살짝 보인다. 깊은 입 구멍 안으로 김치는 사라진다. 입술을 다물면서 젓가락을 빨며 꺼낸다.
‘저 붉은 입술이 왕좆을 빨면....’
‘왕좆에 키스하면 짜릿하겠지.’
그녀가 남편에게 작게 속삭인다.
나를 힐끔거리며 보면서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내 얼굴이 붉어졌다. 눈으로 상상으로 그녀를 벌써 열 번도 넘게 강간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식사하는 척한다. 잠시 후 고개를 살짝 드는 척하며 다시 훔쳐봤다.
이번에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젠장...쪽 팔리게...내가 왜 이러지?’
남편이 일어나 내게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저...혹시...와이프 아시는 분인가요?”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를 올려다본다. 앉아있을 때는 그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 안경을 쓴 30대 중후반의 사내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다. 약간 허약하고 여성스러워 보인다. 사내는 나를 기억하려는 듯 얼굴을 뚫어져라 보며 말한다.
“그럼...저를 아시나요? 혹시 대한 고등학교 나오셨나요?”
내가 대답 없이 침묵을 지키는데도 남자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아닌가? 대한 중학교 졸업하셨어요?”
넉살이 좋은 것인지...사내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미워할 수 없는 얼굴이다. 그러나 이놈은 주는 것도 없이 밉다. 그녀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송합니다. 초면인거 같네요.”
“......저 혹시....성함이...”
“별 뜻 없이 본 것이니 그만 돌아가서 식사하세요.”
더 이상 그녀의 남편과 말을 섞다가는 실수할 것 같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김경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왕대근입니다.”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인사하는데 물러설 수는 없다. 그의 인상이 마음에 든 것도 있지만, 어쩌면 그녀와 안면을 틀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왕대근...왕...대...근...혹시 성남초등학교?”
“어...네! 어떻게?”
남자의 물음에 나는 약간 놀라고 당황스럽다.
‘우연인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에 초등학교가 몇 개인데...찍어서 맞출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나는 주관식 문제를 무지하게 싫어한다. 객관식은 찍어서 맞출 확률이라도 있는데...이 남자는 어떻게 내 초등학교를 맞췄을까? 궁금하다.
나는 “김경수”라는 이름이 낯설다.
“혹시 69년생 아닌가요?”
“맞습니다.”
“김말자라고 아시나요?”
“김말자...음...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저를 아시나요?”
여자 이름과 얼굴을 잊지 않는다.
어쩌면 초등학교 시절 나와 관계있는 여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또래들보다 더 연상의 여인들에게 관심을 가졌었다. 넘볼 수 없는 넘기 힘든 장벽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미숙누나가 그랬고, 그 후에 사랑하게 된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형님은 절 잘 모르시지만...저는 잘 알죠. 6학년 때 짝꿍 기억나세요?”
“그게....잘....”
당연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년도 지난 과거에 여자다. 아니 그때는 여자가 아닌 그냥 반 친구일 뿐인 사람을 기억할 수가 없다. 나를 아는 것 같아 남자를 난처함에서 구하고자 아는 체한다. 아니다. 천사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다.
“아...김말자...말자말자 김말자...얼굴은 흐릿하지만...”
“말자말자 김말자...크큭...기억하시는군요. 제 누님이에요.”
“그럼 당신이 말자 동생? 그런데...어떻게 나를?”
솔직하게 의외의 만남이다.
처음부터 그에게 관심은 없었다. 내 관심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단지 그녀의 앞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일 뿐이었다. 분위기상 그가 그녀의 남편임은 의심할 여지가 별로 없다. 나를 아는 남자의 아내라는 것이 더 나를 슬프고 화나게 만든다.
‘젠장...또 제수씨인가?’
그녀를 알고 싶다.
더 솔직하게 그녀를 느끼고 싶다.
“직접 뵙는 것은 처음입니다. 어릴 때 누나일기장과 편지를 훔쳐봤다가...”
“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 한다.
“사실은...아마도...누나의 첫사랑이...형님이었을 겁니다.”
“네?”
황당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랑이 중요하다. 첫사랑이든...짝사랑이든...상대가 누구든...자신에게는 그 사랑들이 가장 소중하다. 과거 내 첫사랑과 내 짝사랑에만 관심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짝사랑하거나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관심 밖이었다.
내가 첫사랑이라는 이 남자의 누나가 조금 궁금하다.
“결혼하기 전에도 잠시 형님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맞을 겁니다.”
“그랬군요. 기쁘네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이...반가워요.”
“형님! 말씀 낮추세요. 저보다 나이도 위고 누님의 친구 분인데...”
“그래도 초면에...그럼 그럴까?”
“여보...뭐 해요? 탕 식어요.”
그녀가 남편을 부른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나와 경수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는 낯선 남자가 자신을 계속 훔쳐보는 것이 신경 쓰여 남편에게 말한 것뿐이다. 그런데 남편이 내게 와서 긴 대화를 이어가자 좀 이상하게 생각이 든 것 같다.
경수가 그녀를 돌아본 후 내게 말한다.
“형님! 혼자 오신 것 같은데...합석하시죠?”
“제수씨하고 단란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다음에 연락해.”
나는 일부러 슬쩍 거절해본다.
내 진심은 벌써 저 테이블, 정확하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경수에게 내 명함을 주며 다음에 만나자고 말한다. 그는 내 명함을 받아 읽으며 웃음을 짓는다.
“형님...밥은 혼자 먹으면 더 맛없어요. 저희랑 함께 들어요.”
“제수씨가 싫어할지도 모르잖아. 다음에 내가 정식으로 초대할게.”
“저 사람은 걱정 마시고...사장님! 여기 음식 좀 옮겨주세요.”
“허허...이 사람...”
나는 거절하는 척하며 벌써 엉덩이를 들고 있었다.
장사장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내게 양해를 구하는 눈빛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내 음식을 저쪽 테이블로 옮길 것을 승낙한다. 나는 경수와 함께 그녀가 앉은 테이블로 향한다. 그녀는 남편과 내 대화들을 잘 듣지 못했지만, 마지막 남편의 합석을 위해 사장을 부른 것을 들었다.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것이 꿈같다.
“여보...인사해. 말자누님...수잔 누나 초등학교 동창...왕대근 형님이야.”
“아...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어요. 진수애라고 해요.”
“안...녕...하세요...왕..대근입니다. 수애씨!”
내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진수애...
그녀의 이름이다. 이름도 예쁘다.
“하하...형님도...수애씨가 뭐에요? 그냥 제수씨라고 하세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는데, 경수가 웃으며 “제수씨”라고 부르라 한다.
“그래도 초면인데...제수씨라고 불러도 될지...”
“괜찮아요. 당신도 괜찮지?”
그녀가 나를 보고 다시 남편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반가워요. 제수씨!”
“네...아주버님!”
그녀가 나를 “아주버님”이라 부른다. 목소리도 참 곱다.
“저기...탕이 많이 식었는데...어쩌죠?”
“장사장! 여기 탕 살짝 데워줄래.”
내 탕 그릇을 옮기던 장사장에게 부탁을 한다.
다시 그녀에게로 내 시선이 옮겨간다. 검고 긴 머리카락은 말아 올려 나무젓가락 같은 것으로 고정시켜 목선이 드러났다. 가까이서 본 검은 눈동자는 흑진주처럼 빛난다. 붉은 입술과 뽀얀 피부가 정말 고운 동양미인이다. 목선을 지나 그녀의 가슴을 살짝 훔쳐본다. 시선을 더 아래로 내린다.
정말 보고 싶은 곳은 테이블에 가려 볼 수 없다.
대신 테이블 위 음식 그릇들이 보인다. 그녀는 절반 이상 먹은 듯하다. 경수도 반 이상은 먹고 남겨진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제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짓에 따라 내 시선도 움직인다.
그녀와 경수의 딸이 보인다.
“호오...호오...”
그녀가 오골계의 살점을 잘게 뜯어 아이에게 먹인다.
“경수야! 몇 살이야?”
“아...우리 귀염둥이를 소개하지 않았군요. 36개월 좀 넘었어요. 김지은...예쁘죠? 지은아! 인사해야지...큰아빠...해 봐...하하...아...형님 결혼은?”
“뭐...아직...지은이는 제수씨 닮아서 정말 예쁘네. 너 복 받았다.”
“하하...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형님 차 가져오셨나요?”
뜬금없이 차를 가져왔는지 묻는 경수가 의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
“한국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을 만났는데...술이 빠지면 안 되겠죠?”
이 녀석 넉살 진짜로 좋다.
나는 친동생이 없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동생이 잠시 생겼던 적은 있다. 성인이 된 후에 생긴 동생에게 정은 없었다.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니어서 더 그랬다. 정말 동생으로 삼고 싶을 정도로 경수는 좋은 녀석이다. 그녀 때문에 잠시 그를 미워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하다.
그녀에게 음심(淫心)을 품은 내가 갑자기 초라한 느낌이다.
“동생은 차 안 가져왔어?”
“괜찮아요. 저는 대리 기사님이 계시잖아요. 앞에...쿠쿡...”
“흥! 여보...집에 가서 봐요.”
그녀가 남편을 비껴보며 눈을 흘긴다.
‘아...’
그 모습도 예쁘다.
“이런...나 때문에 부부싸움 나겠는데...”
“하하...걱정 마세요. 저 사람 심술부리는 척하는데 장난이에요.”
“응? 심술?”
“자신은 못 먹으니까...큭!”
제수씨가 경수를 팔을 살짝 꼬집는다.
“소주는 힘들던데...맥주도 괜찮으세요?”
“어...그럴까? 오늘은 간단하게 먹고...다음에 내 가게로 초대할게. 제수씨 일식 좋아하세요?”
“어머...아주버님! 일식 가게하세요? 어디에요?”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묻는다.
향기가 난다.
특정 향수냄새인지 샴푸냄새인지는 모르겠다. 찐한 한약 냄새들 사이로 분명히 그녀의 향기가 맡아졌다. 그녀는 처음에 어색해서 말을 아꼈던 것일까? 말문이 열리면서 표정도 변했다.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장사장이 가져온 맥주를 경수와 서로 잔에 따르며 시선은 그녀에게 향한다.
그녀는 일식을 좋아하는 듯하다.
“작은 가게에요. 서초동에 있는데...혹시 들어보셨는지? 우리일식이라고...”
“어...저 거기 아는데...두 번 정도 갔었어요. 아주버님이 거기 사장님이라니...세상 참 좁네요.”
“그랬어요. 괜찮았나요?”
“맛도 좋고...서비스도 좋았어요. 가격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제가 계산하는 자리가 아니라서...호호...잘 먹었죠.”
그녀의 목소리까지 나를 흥분시킨다.
“오늘 저녁 초대할까요?”
“정말이요?”
즉흥적인 초대를 제안한다.
“경수하고 제수씨만 괜찮으시면 저녁 대접하고 싶네요.”
“여보...괜찮...”
“형님! 오케이...일단 건배하죠. 우연한 만남과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경수가 나와 그녀의 대화를 끊고 건배를 청한다.
맥주의 맛이 이렇게 달콤하고 시원하기는 오랜만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먹어서 그런 것 같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술잔을 주고받는 우리를 본다. 탕은 데워져서 다시 나왔지만, 별로 먹지 않았다. 맥주와 반가운 마음 때문에 오골계 탕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딸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빠빠...”
귀여운 아이다. 많은 아이들을 보았지만, 정말 예쁜 아이다. 결혼에 관심 없는 독신주의자였고, 아이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 굳어진 마음이다.
혼자가 편하고 좋다.
“아주버님! 저 사람 술 적당히 주세요. 저러다가 저녁 약속에 못 나가요.”
“하하...걱정 마. 이 정도는 괜찮아. 자...한 잔 더 받으세요.”
벌써 두 병째 마시는 중이다.
“이 잔까지만 하자. 저녁에 오면 좋은 와인으로 내가 대접할게.”
“하하..저녁은 저녁이고...점심은 점심이죠...입 찢어지겠어요. 아줌마!”
경수의 말처럼 제수씨의 입술이 활짝 벌어지며 환하게 웃는다.
“아주버님! 약속했어요. 저 까다로운 미식가에요. 특히 와인에 대해서는...호호호!”
“이런...경수야! 내가 실수했냐?”
“크큭...아마도...저 사람 와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죠. 캬...시원하다.”
“호호호...여보...내가 언제 그랬다고...”
경수 식구들과의 점심 식사는 즐거웠다.
식당을 나서기 전 내가 계산을 했다. 경수는 자신이 계산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남편에게 차키를 넘겨받은 제수씨가 주차장으로 향한다. 나는 대리운전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식사는 특제 오골계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런데 맥주까지 마셔서 포만감이 장난 아니다.
그녀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이 또 다른 포만감을 준다.
일어선 제수씨의 키가 경수와 비슷하다. 굽이 낮은 구두를 씻었지만 적어도 170cm는 될 듯하다. 검은색 정장 바지가 잘 어울린다. 그녀에 대해 많이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는 아닌 듯하다. 처음 만남에 세세한 것까지 묻기 쉽지 않다. 경수와 경수누나 말자에 대한 얘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경수가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어 물었다.
“넌 무슨 일 하냐?”
MAS 펀드 매니저...
경수에게 명함을 받았다.
자산관리와 펀드 운영을 자문하는 회사라고 한다. 외국계회사인데 한국지사에 부서장으로 온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 쭉 미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넌지시 그녀에 대해 물었다. 그녀를 만난 것도 미국이라 한다. 그녀는 유학생이었는데, 대학원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했다고 경수가 너스레를 떤다.
그녀는 캐리어 우먼처럼 보인다.
예상대로 그녀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캐리어 우먼, 아니 슈퍼 우먼이었다. 꽤 명성 있는 설계사무소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자신의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일주일에 하루 강의도 나간다고 했다. 집에 오면 주부와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도 척척 일하는 진정한 슈퍼우먼이다.
경수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며 그녀의 뒤태를 본다.
‘오...’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탱탱하고 풍만하다.
‘라인이 살아 숨 쉬는군!’
식사를 위해 틀어 올렸던 긴 머리카락을 풀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환상이다. 유방도 적당하게 크고 예쁜 모양이다. 정장 상의에 가려 볼 수 없지만,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지은이를 낳고도 저런 몸매를 유지하려면 꾸준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정말 슈퍼우먼일지도....’
제수씨가 하얀색 승용차를 몰고 나온다.
“아주버님! 점심 잘 먹었어요. 저희 먼저 갈게요. 저녁에 뵈어요.”
“아...제수씨! 반가웠어요. 운전 조심하고...경수야! 저녁에 전화해.”
“형님...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지은아! 큰아빠 인사해야지...뽀뽀...”
경수가 지은이를 내게 안기며 인사를 시킨다.
“지은이...뽀뽀...뽀뽀...”
“여보...타요. 빨리...”
그녀가 너스레를 떠는 남편을 재촉한다.
헤어지기 전 그녀의 딸 지은에게 뽀뽀를 받았다. 경수가 취기가 살짝 올라 기분이 좋은지 인사시킨다고 딸을 내게 안겼다. 무방비인 내 뺨에 지은이 뽀뽀했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경수가 “뽀뽀”라고 자꾸 외치니까 반사적으로 한 것 같다.
그녀의 입술은 아니지만 황홀한 기분이다.
“조심해서 들어가고...저녁에 보자. 지은이 안녕!”
못 다한 얘기들은 저녁에 나누기로 하고, 경수 가족들과 헤어졌다.
대리운전 기사가 도착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우리일식에 전화해서 저녁 VIP룸을 하나 예약 잡는다. 귀한 손님이니까 특별히 신경 쓰고, 특급 와인까지 지배인에게 지시한다.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대고 상상에 빠진다.
진(眞)...수(秀)...애(愛)...
나이는 경수보다 한살 어리다고 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네 살이다. 대한대학 건축학과를 다니다 중도에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교환학생이었는데, 그냥 그곳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미국에서 건축사 시험에 합격해 LA 건축사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박사까지 수료한 수재였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 친구 대신 소개팅에 나가 경수를 만났다.
경수의 말에 따르면 열렬하게 구애해서 어렵게 결혼에 골인했다. 경수의 말에 그녀가 웃음으로 대답했다. 긍정의 웃음이 아닌 묘한 뉘앙스의 웃음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는 1년도 되지 않아 아직 좀 낯설어했다. 경수는 15년 만에, 그녀도 10년 만에 귀국한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한국도, 서울도 많이 변한 모습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 경수의 누나 말자는 “수잔”이라는 미국 이름으로 바꿔서 대학에서 교수를 하며, 일찍 결혼해서 딸과 아들이 꽤 장성했다. 경수네 가족은 모두 LA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누나 말자가 대학교 다닐 때에 가족 모두 이민을 갔다.
제수씨의 가족들은 한국에 있다.
후에 알게 된 그녀의 가족은 단출하다. 아버지는 몇 년 전 그녀의 결혼식을 본 후 돌아가셨다. 폐암이었다. 평생을 건설현장에서 소장으로 일하신 분이다. 담배를 입에서 때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담배 냄새가 가장 강렬하고 크다고 했다.
“아주버님 처음 보고 조금 당황했어요.”
내가 그녀의 아버지를 무척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후에 그녀가 보여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나도 놀랬다. 얼굴과 체격이 아주 흡사했다. 건설현장에 근무하셔서 그런지 나보다 좀 더 구리 빛 피부를 가진 것만 달랐다. 그녀가 이상하게 느낀 점이 또 있었다.
냄새...
시각적 기억보다 더 오래 남는 후각적 기억이 그녀를 자극했다. 내게서 아빠의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담배 냄새일지도 몰랐다. 그녀의 남편 경수는 비(非)흡연자였다. 보신탕 가게에서 처음 그녀를 만나던 그쯤에 내 흡연양은 상당히 많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면 “그리운 냄새”라고 한다.
‘담배를 못 끊을 것 같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식 요리연구가”라고 한다.
조선정...
그녀의 어머니 이름이다. 강북 한옥마을에 혼자 살고 계신다. 식품조리학과를 졸업해 궁중 한식 대가에게 사사 받은 몇 안 되는 전수인 중 한 사람이다. 지금도 요리학원을 운영하고, 가끔 방송국 요리자문을 하시며 왕성한 활동을 한다. 어머니의 친가 외가 모두 이북에 있어서 남한에 친척이 없다.
그래서...
제수씨에게도 외가(外家)는 없다.
제수씨의 어머니가 무남독녀였기 때문이다. 경수의 장모님 조선정 여사는 일찍 결혼했다. 대학 신입생 때 제수씨의 아버지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했다. 19살에 제수씨를 임신하고 곧 결혼했다. 부른 배를 이끌고 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대학에서 임산부를 보기 힘들었다.
보통은 휴학하니까...
그녀의 어머니는 출산 후 1년을 휴학하고 곧 바로 학업에 매진했다. 제수씨는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그녀의 여동생도 마찬가지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도 할머니가 키웠다. 어쩌면 그녀의 슈퍼우먼 기질은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신이 받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을 그녀의 딸에게는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의 딸이었다. 캐리어 우먼으로서 일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딸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유사직종에 일하는 것과 어머니의 뜨거운 열정을 골고루 물려받았다.
진수희...
그녀의 동생이다. 그녀의 어머니에 제자이자 전수자이다. 요리학원의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하다. 외모적으로 수애가 어머니를 닮아 동양 미인이라면, 여동생 수희는 아버지를 많이 닮아 서구적인 미녀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골격도 언니보다 더 컸다.
경수와 제수씨의 소개로 수희를 만났었다.
제수씨에게 내 마음을 모두 빼앗겨버려 그녀의 동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더 목말라하는 불쌍한 하이에나였다. 내 시큰둥한 반응에 수희가 더 애가 달았었다. 제수씨의 가족에 대한 스토리는 그녀와 더 친해진 후에 들었다.
무미건조했던 내 일상에 봄바람이 불었다.
봄바람은 처녀의 마음만 설레게 하지 않았다.
그 봄바람은 특이한 향기를 사방으로 뿜었다.
진수애...
제수씨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