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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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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8:47 조회 75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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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장의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간 미나가 상민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매달렸다. 그리고 그녀는 반가움에 상민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엉겁결에 입맞춤을 한 상민은 잠시 당황을 했다. 평소에 활달하면서도 스킨십조차 두려워했던 그녀였다. 그만큼 도도한 면이 있었던 그녀이기에 상민은 빙긋이 웃음을 흘렸다.

“미나! 많이 발전 했는데.”
“피 잇~! 뭐, 어때! 무사히 돌아오면 뽀뽀해준다고 했잖아.”

얼굴을 붉히는 미나가 눈을 흘겼다. 주위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누군가를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상민의 얼굴에 실망스런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다시 밝은 표정을 지은 상민은 미나와 시선을 주고받으며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대합실을 나와 택시를 타려고 승차장으로 걸어가는 상민을 미나가 붙잡았다.

“어디가려고.......!?”
“일단 택시타고 나가야지.”
“나, 차 가지고 왔어.”

“누구 차인데?”
“아빠가 생일 선물로 사준거야.”

미나가 생글거리며 상민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방향을 바꿔 주차장으로 향해 갔다. 주차장에서 미나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승용차로 상민을 안내했다. 미나는 조금은 서툰 운전 솜씨로 승용차를 몰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퇴근시간이라서 도로가 혼잡하였다. 운전을 하는 미나는 상민을 곁눈질해서 보며 배시시 미소를 흘렸다.
더욱 윤곽이 뚜렷해지고 눈매가 서글서글한 상민의 모습에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미나의 시선을 의식한 상민이 눈동자를 치뜨며 물었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아니, 다른 여자에게 상민 씨를 뺐길 것 같아서.”

“하하~! 그럴 여자도 없지만, 내가 무슨 물건인가.”
“큭~! 엉큼한 남자 속을 알 수 있나?”

“그럼 여자 속은 앙큼한가!? 미나야 말로 애인 생겼나봐. 예뻐졌는데.”
“난, 애인 같은 건, 귀찮아.”

미나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정색을 했다. 그리고 이내 눈웃음이 가득한 미소를 흘렸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상민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미나가 잡고 있는 핸들의 클랙숀을 장난스럽게 여러 번 두들겼다. 신호등을 대기 중이던 주변 차량의 사람들이 경적 소리에 놀라 모두 쳐다봤다. 화들짝 놀란 미나가 뽀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못됐어! 사람들이 욕한단 말이야.”
“거짓말 하니까, 그렇지.”
“거짓말은 무슨.......!? 상민씨 오늘 어디 갈 건데?”
“고향에 내려갔다 와야지.”

“내가 오늘 저녁 살게. 먹고 가면 안 돼?”
“뭐 사주려고? 여자 입술이 제일 좋던데.”

“어 머!?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것만 배웠나봐. 사람이 이상해졌어.”
“하하하........”

얼굴을 붉힌 미나가 상민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그래도 웃고 있는 상민은 윙크를 하며 짓궂은 표정을 했다. 신호등이 바뀌고 눈을 흘기던 미나가 승용차를 출발 시켰다.
그들은 서울 외곽 도로를 달려 하남시 인근의 한옥으로 된 음식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미나는 상민의 팔에 팔짱을 끼며 즐거워했다.

“아빠하고 같이 왔었던 곳인데, 조용하고 맛있어.”
“경치도 좋고 아담하네.”

“단골손님이 많은 곳이야.”

한옥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복을 걸친 종업원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석가래 지붕의 마루를 걸쳐 들어간 곳은 구들이 따뜻한 방이었다. 음식을 주문하니 전부 한식 음식으로 정결한 시골밥상이었다. 그러나 반찬도 맛깔스럽고 주인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다.
상민은 연수생활동안의 얘기들을 미나에게 전해주며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먹고 나오면서 미나가 물었다.

“지금 내려 갈 거야? 내일가면 안 돼나.”
“술이라도 사주려고?”

“남자들은 술밖에 몰라. 그냥 같이 드라이브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부모님이 기다리니 다녀와야지.”

“그럼. 내가 기차역까지 데려다 줄게.”
“내가 운전할까?”
“그래!”

고개를 끄덕인 미나가 승용차 키를 상민에게 넘겨주었다. 차 열쇠를 받은 상민이 운전석에 앉았다. 조수석에 미나가 올라타고 상민이 승용차를 몰고 나갔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도로의 양쪽으로 가로수와 코스모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콧노래를 하던 미나가 불쑥 물었다.

“다음에 또 오자. 맛있었지?”
“글쎄........, 여자 입술이 더 맛있다고 그랬잖아.”

“또, 그런다. 징그러 죽겠어.”
“하하하........”

상민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눈을 흘기는 미나의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변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민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좋아! 소원이라면 한 번 더 해줄게.”
“.........!?”

배시시 미소를 흘린 미나가 불쑥 상민의 뺨을 붙잡고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그녀는 얼른 얼굴을 둘렸다. 하지만 상민의 행동이 더 빨랐다. 기다렸던 것처럼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긴 상민이 동시에 그녀의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갑작스러운 상민의 행동에 미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민의 입술에 막혀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읍........”
“..........”

입술을 뺐긴 그녀는 급히 숨을 들이키면서 주먹으로 상민의 등을 두들겼다. 그러나 상민이 팔에 어깨를 감싸인 그녀는 좌석에 깊이 묻혔다. 그리고 입술이 상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녀는 숨 막히는 열기에 빠져 들었다. 진한 키스를 하던 상민이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빨아 당겼다. 미나는 간단한 입맞춤의 경험은 있으나 남자와 농도 깊은 키스를 해본 적이 없었다.

“시, 싫어........”

그녀의 거부하는 목소리는 상민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미나는 온몸의 돌기들이 모두 상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상민의 등을 두드리던 그녀의 손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그녀는 단지 상민의 스킨십에 황홀함에 젖을 뿐이었다. 혀를 유린하던 상민의 혀가 그녀의 목덜미에 뜨거운 열기를 불러 일으켰다.

현기증을 느끼는 미나는 몽롱한 상태에서 파르르 떨고만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가녀린 목덜미를 타액으로 적시는 상민의 손이 블라우스 앞가슴을 벌렸다. 브래지어를 밀고 내려간 그는 손끝에 젖가슴의 촉감을 느꼈다. 솜처럼 부드럽고 탄력 넘치는 아담한 젖가슴을 보듬어 쥐고 상민은 부르르 떨었다.

우유 빛의 투명한 피부와 봉긋한 젖가슴이 그대로 들어나 보였다. 순간 남자의 손길을 의식하는 미나는 짜릿함과 함께 거부감이 들었다. 아직까지 어느 남자의 손길뿐만 아니라, 밝은 대낮에 남자에게 젖가슴을 보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상민의 손을 잡고 뿌리치려 했다.

“아, 안 돼........”
“자, 잠간만.......”

거칠어지는 숨을 몰아쉬는 상민의 머리가 어느새 그녀의 젖가슴을 파고들었다. 상민은 젖가슴을 움켜쥐고 입속으로 젖꼭지를 빨아 당겼다. 젖꼭지가 빨리는 순간 미나는 온몸에 곤두선 신경이 하복부까지 전달되는 짜릿함을 느꼈다.
상민의 손을 잡고 밀쳐내려던 그녀의 손이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팔이 상민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른함과 동시에 희열을 느끼는 미나는 정지된 시간 속에 멈추어 있었다.

“사, 상민씨.......”
“미나는 아름다워.......”

미나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워지는 숨결을 흘리고 있었다. 젖가슴을 타액으로 적시는 상민은 그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오랜 외국생활동안 참았던 욕구의 불길인지 상민의 하복부에는 페니스가 발기하여 용솟음쳤다. 그는 미나의 스커트를 밀어 올리고 팬티 속을 더듬었다.

음부가 촉촉하게 젖어있는 여자의 생리적인 현상을 느끼는 상민은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도톰한 둔덕에 보드라운 음모를 쓰다듬고 내려간 상민의 손바닥에 이슬이 맺힌 꽃잎 같은 살갗이 마찰 되었다. 그리고 젖꼭지처럼 돋아난 음순이 거치적거렸다. 순간 미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상민을 와락 밀쳐 내었다.

“아, 안 돼. 싫어........”
“미, 미안해. 너무 미나가 좋아서.......”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미나는 마치 뺨이라도 후려칠 듯이 상민을 노려보았다. 그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거부반응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느 남자의 손길도 닿지 않은 비역과 젖꼭지를 상민에게 애무당한 것이었다. 비록 화를 냈지만 처음 경험하는 애무에 감당할 수 없는 희열에 빠져 들었던 그녀였다.
무안해하는 상민의 표정을 보고 돌아앉은 그녀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멋쩍은 미소를 흘린 상민이 승용차를 천천히 출발 시켰다.

“미안해. 미나 생각을 이해 못해서.......”
“.........!”

미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달리는 차창으로 어둠이 깔리는 들판이 획획 지나갔다. 그녀는 상민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너무 심하게 한 것은 아닌지 후회도 되었지만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운전석에서 내린 상민이 싱긋 웃으며 미나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들겼다.

“화났으면 풀어! 미나를 괴롭히려고 그랬던 것은 아냐.”
“잘 다녀와........”

미나는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상민은 손을 흔들고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상민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미나는 왠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아서 허전했다. 아직도 그녀는 상민의 손길이 닿았던 곳마다 짜릿한 희열의 여운을 느꼈다. 어쩌면 언젠가 그의 깊은 애무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미나는 공연한 오기를 부렸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한 상민이 고향에 도착한 시간은 밤이 늦어서였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그는 미나에게 너무 단순하게 감정을 들어낸 것 같아서 후회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자존심도 상했지만 상민은 공항에서 그녀가 먼저 입맞춤으로 관심과 애정을 표시하기에 스스럼없이 감정을 들어냈던 것이었다.

공항 입국장에서 그는 사실 무의식적으로 대합실을 두리번거린 것은 외숙모 지선의 모습을 찾았던 것이었다. 독일 연수중에도 그는 지선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았었다. 가능성 없는 기대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실망을 했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상민의 부모가 기차역에 지프차를 타고 마중 나와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부모님은 매우 반갑게 그를 맞이 해주었다. 더욱이나 다른 형제들보다 그에게 애착심을 갖고 있는 부모님들의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님은 집에 미리 음식을 준비해 놓았었다.

모든 식구들이 모인 자리는 잔칫집처럼 시끌벅적하였다. 그의 어머님은 외국생활을 하느라 고생하지 않았느냐고 걱정을 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식구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외국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상민은 가족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들었다.
상민은 외숙모의 소식이 궁금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으나 물어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안 식구들 얘기 끝에 그의 어머니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상민이는 외삼촌 죽은 거 모르지?”
“네........!?”

전혀 뜻밖의 소식에 상민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를 못했다. 그는 외삼촌의 죽음을 받아 드릴 수가 없었다. 공항에서 상민이 두리번거린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만, 혹시나 외숙모를 볼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미련 때문이었다. 상민의 어머니가 혀를 차며 한 숨을 내쉬었다.

“조선소의 배에서 떨어져 죽었어. 불쌍한 놈.......”
“사, 삼촌이 죽었다고요........!?”

“그렇단다. 몇 번이나 사업한다고 빚더미에 시달리더니. 결국은........”

온 몸의 피가 얼어붙은 것처럼 상민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외숙모는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식구들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마른 침을 삼키며 상민이 식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럼....... 외숙모는요?”
“외숙모는 아직 젊었으니 어떻게든 살겠지.”

“포항에서 살고 있나요?”
“아니! 한 달인가, 지나서 서울로 이사 했다고 하는데, 그 후 소식은 모르겠다. 어린 것들이 불쌍하지........”

소리 없이 신음을 흘린 상민은 더욱 외숙모의 자세한 소식이 궁금했다. 어린 것들이라면 송이 말고 또 외삼촌의 아기를 낳은 것인가, 다른 소식이 없다면 재혼을 했는지, 아니면 혼자 살고 있다면 어디서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 상민은 묻고 싶었으나 소식을 모르겠다는 어머니 말에 더 이상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상민은 자격지심에 식구들의 눈치가 보여서 외숙모 지선에 대한 것을 자꾸 캐물어 볼 수도 없었다. 외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에 상민은 고향에서 떠날 때까지 지선에 대한 생각을 지워 버릴 수 없었다. 인연이란 존재하는 동안에 떠나 버릴 수 없는 것인데, 마음속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그냥 묻어 버려야 하는지 상민은 번민했다.

서울로 돌아온 상민은 대학 이학년에 편입을 하였다. 다니던 대학이지만 유학 생활동안 바뀐 분위기에 적응하느라고 상민은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오피스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그는 독일에 갈 때 팔았던 승용차를 다시 구입했다. 공휴일을 맞이하여 상민은 모처럼만에 재용과 프로 야구 게임을 보러가자고 약속했다. 재용은 상민이 없는 동안 사귄 여자를 데리고 온다고 했다. 물론 미나도 같이 만나기로 했다.

대학 주차장에서 만난 재용은 상민과 미나에게 여자친구 승희를 소개했다. 친구라기보다는 애인사이인 승희는 같은 대학의 일학년이었고 약간 통통한 편이었다. 상민의 승용차를 이용해서 잠실에 있는 야구장으로 갔다. 그가 운전을 하는 동안 장난을 하는 재용과 승희는 무척 다정해 보였다. 그렇지만 조수석에 앉은 미나와 상민은 스킨십에 관한 일로 조금은 서먹한 분위기였다. 야구장에 입장하고 미나가 상민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귓속말을 했다.

“저번에 미안했어.”
“미안하긴, 내가 경솔했지.”

말은 그렇게 했으나 상민은 미나에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상민의 표정을 살핀 미나가 팔짱을 끼면서 친밀감을 표시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그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점수를 내면 환호성을 지르고 실점을 하면 탄식을 했다. 미나와 상민은 서먹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웃고 떠들며 응원을 하며 흥겨웠던 그들은 경기가 끝나고, 재용이 맛있다고 하는 근처의 음식점으로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음식점과 멀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상민은 그들과 함께 걸어갔다. 도로주변의 상가들을 기웃거리며 걸어가던 상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작은 화원 안을 유심히 살폈다. 화원 안에는 두 여자가 있었는데 화분을 옮기고 있는 여자와 돌아서서 꽃바구니를 만들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상민의 심장이 덜렁거렸다. 날씬한 체구에 가녀린 허리, 아담한 엉덩이의 굴곡은 여지없이 외숙모 지선의 뒷모습이었다. 잊을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 같아서 상민은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꽃바구니를 만들던 여자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그 여자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 미나가 상민의 손을 잡아 당겼다.

“상민씨! 뭐하는 거야. 꽃 사려고.......?”
“아니........”

상민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렸다. 미나와 함께 재용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상민은 몇 번인가 화원을 뒤돌아보았다.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면서도 상민의 머릿속에서는 화원에 있던 여자의 뒷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나온 상민은 주차장으로 가면서 다시 화원 안을 살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랑은 시간의 위력을 무력화 시키고 미래와 과거를 영원히 결합시킨다고 한다. 친구들과 헤어져 자신의 오피스로 돌아온 상민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그 여자의 뒷모습에 지선의 얼굴이 겹쳐져 떠올랐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상민은 오전강의만 듣고 잠실로 갔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원을 향해 가는 상민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런데 화원 안에는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여자만 보였다. 한 시간 가량을 서성거리며 기다려도 상민은 그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상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는 들어가서 물어 볼 수도 없었다. 실수였다면 그만큼 실망이 크기 때문이었다.

상민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상민은 다음날 하루 강의를 모두 마치고 오후에 화원으로 갔다. 역시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른 아르바이트생만이 있었다. 상민은 건너편의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문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나 한 시간가량 지나도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상민은 다시 커피숍을 나왔다. 망설이던 상민이 화원으로 들어가니 아르바이트생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저기.......! 뭐 좀 물어 보려고 하는데요.”

“뭔데요?”
“여기 주인이신가요?”
“아뇨! 저는 점원예요.”
“그럼 주인 되시는 분이 여자 분이신가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데, 혹시 주인 성함이 송지선씨 아닌가요?”

“아! 우리 사장님 요. 요즘 며칠 자격증 따느라고 바쁘셔요. 조금 있으면 나오실 거예요. 여기 앉아서 기다리실래요.”

아르바이트생이 작은 철제 탁자 앞의 의자를 가르쳤다. 일단 그녀의 이름을 확인한 상민은 몹시 흥분이 되었다. 철제 의자에 걸터앉은 상민은 화원 안을 둘러보았다. 상민은 묘한 조각품들과 어우러지게 꾸며있는 깔끔한 실내 분위기에서 외숙모 지선의 성격이 들어나 보이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생이 힐끔거리며 상민을 바라보았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고맙습니다. 무슨 자격증인데요?”
“인테리어에 관한 것인데 저는 잘 몰라요.”
“.........”

궁금함에 물어보았지만 상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찾고 있는 그녀가 확실한지, 만약 만나면 그녀가 어떤 표정을 할 것인지,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상민은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그녀를 기다리는 상민의 마음은 시간이 너무 지루하기만 했다. 그는 일어섰다가 앉기를 반복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화원 안을 정리하던 아르바이트생이 화원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사장님 오시네요.”
“네.......!?”

놀란 사람처럼 일어선 상민은 화원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시야는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기만 했다. 마치 망각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두 어린아이와 한 여인이 그림처럼 나타났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인은 눈웃음이 가득했다. 어린 남자 아이를 안은 여인이 뒤따라 걸어 들어오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송이야! 넘어지겠다.”

송이! 상민은 언제인가 익숙했던 송이라는 이름을 읊조렸다. 매화 향기로 가득한 여자! 송이를 부르는 여인은 상민이 찾던 외숙모 지선이 확실했다. 화원 안으로 들어온 지선은 무심코 상민을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그녀와 상민은 동시에 숨을 멈추었다. 한순간에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지선이 안고 있는 남자아기를 보고 상민은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 말이 문득 떠올랐다.

‘서울로 이사 했다고 하는데, 그 후 소식은 모르겠다. 어린 것들이 불쌍하지.........’

상민은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지선 또한 너무 뜻밖의 상황에 몹시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잊지 못하던 감정이 폭발하려는 상민, 감정을 들어내려 하지 않으려는 지선, 그들은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르바이트생 희경이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번갈아 봤다. 한 숨을 길게 들이마신 지선이 차분한 목소리로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했다.

“희경아! 오늘은 일찍 들어갈래?”
“네.....!”

지선의 말에 아르바이트생 희경은 밝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상민을 흘깃거리며 손가방을 챙겨들었다. 꾸벅 인사를 한 희경이 퇴근을 하고 나서 지선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지선의 스커트 자락을 붙들고 있는 송이는 안면이 있다고 느꼈는지 반짝이는 눈동자로 상민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지선은 안고 있는 남자아기를 소파 의자에 안락의자에 소파에 앉히고 상민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하려는지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찾았다든지,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려고 했지요?”

지선의 말보다 상민이 빨랐다. 상민은 감정을 들어내지 않으려 그녀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잊고 있었든지, 잊으려 했다고 상민은 생각한 것이다. 지선이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아니, 세상은 넓고도 좁으니 어디서든 볼 수 있겠지. 다만.......”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를 거야.......! 몇 일전에 지나가다가 뒷모습을 봤어. 뒷모습이지만 난 알 수 있었고, 오늘이 세 번째이지만 다행히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상민의 진심으로 가득한 눈동자에 습기가 어렸다. 마주보고 있는 지선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고 해도 왈칵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아니 가슴이 북받쳐 그녀의 눈동자에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지선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섰다. 결코 약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 지선은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구나! 그러나, 다시는 찾아오지 마! 나는 널 잊은 지 오래됐어. 우리 이제는 성인답게 살아가야 되잖아. 난 외숙모도 아니고 두 아이의 엄마 일뿐이야.”
“그건 이율배반이고 자신을 속이는 위선이야. 난 그냥 사랑했던 지선이라 부르고 싶어.”

상민은 돌아서 있는 지선의 어깨를 붙잡아 둘려 세웠다. 상민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는 지선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로 감정을 추스르는 지선은 상민의 손을 야멸치게 뿌리쳤다.

“왜 이래!? 가게 문 닫을 시간이니 돌아가 줘.”
“지선이......!?”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마. 사람 잘못 봤어.”
“왜 자신을 속이려고 그래?”

지선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민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찬바람이 일어났다. 그녀는 상민을 무시하고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지선은 쇼윈도의 블라인드를 내리며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남자아기를 안은 그녀는 송이의 손목을 잡고 가게문밖으로 나갔다. 상민은 절벽에 서 있는 감정이었다. 지선이 문을 닫을 테니 나오라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할 수 없이 상민은 가게 밖으로 나섰다.

가게 문의 자물쇠를 잠근 지선은 뒤도 안돌아보고 걸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인파 속으로 송이의 손목을 잡은 지선의 뒷모습이 멀어져 갔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지선은 도저히 뒤를 돌아 볼 수 없었다. 상민은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은 허전함에 젖어 지선이 사라진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에도 상민은 회원으로 갔다. 유아원에 맡긴 아기들을 찾으러 가려던 지선은 상민이 길을 건너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손님이 찾으면 오늘은 일찍 들어갔다고 말하게 해놓고 얼른 뒷문을 이용해 화원을 나갔다. 그녀는 주, 야간으로 나누어 두 명의 아르바이트를 두고 있었다. 화원으로 들어온 상민이 지선을 찾으면 아르바이트생은 지선이 시킨 데로 변명을 했다.

몇 일간 상민이 찾아가도 지선은 모습을 들어 내지 않았다.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확인하기도 지쳐가면서도 상민은 좌절하지 않았다. 결코 다시는 그녀를 놓고 싶지 않은 그는 그녀도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점에 관련된 리포트를 작성하느라고 상민은 삼 일간 화원에 가지 못했다. 리포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감추고 있는 그녀에 대한 야속함을 떨쳐 버리려고 상민은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지선은 거의 매일같이 찾아오던 상민이 보이지 않아 궁금하기도 했다. 상민이 나타나고 그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상민을 다시 처음 만나던 날, 지선은 심장이 얼어붙는 충격을 받았다. 예전보다 더 이목구비가 뚜렷해진 상민은 완전한 남성의 모습이었다. 어딘가 서구적으로 변한 외모뿐만 아니라, 지적인 인품까지 들어나는 상민을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남자로 보였다.
이미 상민이 다른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더 아픈 상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냉정해지려고 해도 그녀는 상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도리어 허전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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