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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색 단검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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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9:14 조회 54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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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색 단검 - 9



여자 엘프는 여느 때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전혀 나를 거부하지 않았고, 그녀의 살결들은 나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것처럼 내게 부드러움을 제공했다. 언젠가 느꼈던 익숙하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포근함. 유피를 향한 사랑마저도 꺾이게 만들었던 육욕. 그리고 종족을 뛰어넘는 사랑과 결혼.

사랑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사랑이란 감정을 표현한다. 이성간의 사랑, 자식에게로의 사랑, 부모에게로의 사랑, 특정 생물에게로의 사랑, 인류 전체를 향한 사랑,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의 사랑…. 우리는 이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사랑’이란 단어로 표현하지만 그 내부에서도 느끼는 감정은 분명 차이점이 있다. 단지 사랑이란 단어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대처 수단이 될 뿐.

“으응… 음… 아…….”

“헉… 흐윽… 학….”

그러나 내가 지금 이 여자 엘프의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댈 때,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는 미묘했다. 나는 그녀의 감촉이 좋았다. 상황이 어찌 됐든 간에 그녀는 최고의 육욕을 제공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녀의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고, 그녀 또한 내 자지를 느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며칠인진 확실치 않으나 육욕을 채울 수 없었던 공백기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우리 둘은 필사적으로 서로를 탐닉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옆에 있는 유피에 대한 생각마저도 잠시간 망각할 정도로 강렬했다.

여자 엘프는 내리깐 눈 속의 눈동자를 빛내며 내 자지를 아래위로 문질렀고, 나는 그녀의 손가락으로부터 전해지는 힘을 느끼며 그녀의 머리를 부여잡고 사정을 했다. 찌익거리며 정액이 여자 엘프 머리 위까지 튀었고, 그녀는 좆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더 많은 정액을 뽑겠다는 듯 내 자지를 쥐고 끊임없이 흔들어댔다.

사랑인가? 욕정인가? 아니면 욕정을 사랑하는 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탐닉하고 싶은 건 욕정에 근거한 것인가, 사랑에 근거한 것인가? 둘 다라고? 그럼 사랑 없이 상대의 몸을 탐닉하는 건 그저 싸구려 욕정에 지나지 않나? 그 자체를 사랑할 순 없나?

“허억… 허억… 허억…….”

“하아… 하아…….”

정액투성이가 된 채 축 늘어진 자지를 쥐고 행복한 미소로 올려다보는 여자 엘프.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찌 됐든 미치도록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몸을 굽혀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나와 그녀의 혀는 서로의 입 속으로 건너가 그 안에 안주하겠다는 듯 한껏 헤집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자지는 다시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고, 여자 엘프는 그런 자지를 또다시 열심히 문질렀다.

자지가 만족할 만큼 꼿꼿하게 다시 서자 여자 엘프는 돌아서서 벽에 손을 뻗고 허리를 굽혀 두 다리를 벌리어 섰다. 기다란 여자 엘프 다리 위로 통통한 엉덩이 한가운데 보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보짓물을 질질 흘리는 모습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지를 한 손으로 붙잡아 그곳에 갖다 댔다.

“흐응… 으음…….”

자지 끝 귀두가 보짓살을 비집고 들어갈 찰나였다. 여자 엘프는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다가 정액으로 날카롭게 뭉쳐 달라붙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당신의 그녀도 느끼는 것 같은데요.”

나는 그녀의 말이 제어기라도 되는 양 무심코 유피를 바라보았고 곧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유피는 여전히 밧줄에 지탱해 서있었으나 그녀의 찢어진 치마 사이의 흰 팬티자락에서 주륵 하고 물기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유피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여버렸다. 여자 엘프가 재밌다는 듯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 아이, 아직 처녀죠?”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도 자위는 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흐음… 귀엽네.”

여자 엘프는 무엇이 그리 동하는지 자신의 손가락을 쪽 빨았고, 나는 그런 그녀의 보지 속에 자지를 힘껏 밀어 넣었다. 기다란 자지가 여자 엘프의 질 내부를 자극하며 밀려들어간다.

“흣….”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면서도 여자 엘프의 눈은 유피에게로 고정돼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관심을 돌리기라도 하려는 양 힘껏 피스톤 운동을 했다. 철퍽, 철퍽, 철퍽, 부직, 부직……. 그녀는 내 피스톤 운동에 맞춰 엉덩이를 들였다 내밀었다 했고, 그럴 때마다 자지는 여자 엘프의 보지 속으로 깊숙이 밀려들어갔다. 그녀의 보지가 꼬옥 오므려져 내 자지를 한껏 감싸왔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엎어져 허리와 가슴을 끌어안고 미친듯이 자지를 보지 속에 처박아대었다. 퍼억-! 퍼억-!

“으으으으윽…… 큿….”

“흐응…… 아앙…….”

여자 엘프는 눈을 내리깐 채 내 자지를 한껏 느끼면서도 갈색 눈동자만이 여전히 유피를 향하고 있었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입술 주변을 핥아가며 유피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유피는 그런 여자 엘프의 시선에 질려버렸는지 몸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여전히 이쪽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키스… 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돌아보곤 생긋 웃었고, 나는 곧바로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쳤다. 보지에서 울꺽거리며 보짓물이 흘러나와 내 자지를 적시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점점 사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허벅지와 내 허벅지가 피스톤 운동에 따라 서로 맞부딪히며 퍼억퍼억 소리를 냈다.

“음… 으음…… 아아아아…….”

“하악, 하악… 아…… 아으으읏.”

우리 둘은 거의 절정에 달했다. 자지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 엘프 보지 속 깊숙이 처박아졌다 나왔다 했고, 그녀 또한 느낌이 오는지 한쪽 팔을 뒤로 뻗어 내 엉덩이를 붙잡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좀 더, 좀 더’를 외치고 있었고, 나는 온몸의 기운이 쏠려 올라가 분출됨을 느낌과 동시에 그녀를 있는 힘껏 꽉 끌어안았다. 순간, 자지에서 좆물이 쭈우우욱 솟아나왔다.

“으으으읏! 아, 앗!”

비명과 함께 다량의 정액이 또 한번 쏟아져나왔고, 그것은 여자 엘프의 질구멍 내부 깊숙한 곳으로 밀려들어갔다. 여자 엘프의 왕성한 점막들로부터 한껏 자극을 받은 자지가 그칠 줄 모르고 몇 번이나 벌떡거리며 정액을 토해내었으며 그것은 그녀의 몸 속 깊은 곳으로 차례차례 계속해서 흘러 들어갔다.

“으음…♡”

뜨뜻한 정액이 자신의 몸 안에 쏟아지는 것을 느끼자 여자 엘프는 몸을 움찔거리며 한껏 그 기분 좋음을 느껴가고 있었다. 벽을 향해 뻗은 그녀의 두 팔이 부들부들 귀엽게 떨리었다. 양쪽으로 뻗어 서있는 여자 엘프의 긴 다리도 사정에 따른 환희로 조금씩 떨려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사정에 집중하다가 고개를 젖히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거의 사정이 끝나갈 때쯤 그녀의 미끈한 엉덩이에서 간신히 자지를 빼어들었다. 그러자 여자 엘프는 몸을 돌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내 자지를 핥아댔다.

자지가 또 한번 꿈틀거리며 남은 정액을 쏟아내었고 질질거리며 흘러나온 좆물이 여자 엘프의 예쁜 얼굴을 질펀하게 물들였다. 자지의 허연 정액이 길게 늘어져 그녀의 뺨으로 이어졌고, 입가를 타고 내려온 정액 또한 그녀의 턱 밑으로 끊어질 듯 말 듯 흘러내려 온통 질척거리는 정액과 좆물 투성이었다. 여자 엘프는 혀를 내밀어 그것들을 모두 하나하나 핥아 먹으며 맛을 음미해갔다. 정액이 그녀의 입을 거쳐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을 발하는 듯이 보였다.

유피는 멍청하게 그런 여자 엘프의 행위를 보다가 문득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또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 또한 어색하다 못해 가슴을 답답하게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그것을 타파하기라도 하듯, 몰려오는 탈진감에도 쓰러지지 않으려 버티어서며 간신히 한마디씩 말했다.

“허억… 허억… 이…… 이제… 돌려보내 주세요.”

“잠시만요. 이것들 좀 더 맛보고요.”

여자 엘프는 무릎을 꿇어 앉은 채로 몸 곳곳에 붙어 있는 정액들과 보짓살에 붙어 있는 정액들을 손가락으로 훑어 빨아먹고 있었다. 나는 조금 그것을 기다리다가 옆에 주저앉고는 숨을 골라갔다. 축 늘어진 자지가 유피의 눈에도 똑똑히 보일 것이었지만 쉽사리 옷을 입거나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자 엘프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 엘프는 옆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더니 자신의 치마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뒷허리춤에 달려 있는 단검집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나는 흠칫했지만 유피의 손에 묶인 밧줄을 끊어주려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여전히 바라만 봤다. 여자 엘프는 벗은 몸 그대로 관능적인 자태를 선보이며 유피에게 걸어갔다. 가죽 끈으로 종아리를 감싼 신발은 여전히 신고 있었기 때문에 또각거리는 소리가 적막하게 울려퍼졌다.

유피에게 다가간 여자 엘프는 평온한 미소를 띠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키도 유피보다 크거니와 유피는 지금 다리를 살짝 굽힌 채 천장에서 내려온 밧줄에 의지하고 있어서, 여자 엘프는 마치 한 명의 딸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유피는 여자 엘프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한참동안 내려다보던 여자 엘프는 쿡 하고 웃고는 단검을 스윽 들어올렸다.

“…잠깐, 뭐 하는 겁니까?”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듯 일어섰고, 여자 엘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단검은 유피의 목 근처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다급해져 뭐라고 더 말하려 했지만 여자 엘프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는 그녀가 어떠한 잔혹한 상황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 확신이 들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마치 녹아들 듯한….

“고마워요. 로키 씨. 전 이날을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네들에 비해 긴 삶인 엘프라 해도… 간직할만한 추억은 반드시 잊지 않아요.”

“저 또한 즐거웠습니다…. 그러니…….”

유피는 섬뜩하고 차가운 단검날을 느끼고는 얼굴이 새하얘져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나는 최대한 여자 엘프의 마음을 달래며 그녀를 구할 방법으로 얘길 하려 했으나 뭐라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그녀는 위태로워 보였고, 그것은 경련하듯 온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떠는 모습에게서 아찔함이 전달되고 있었다. 이게 뭐지? 잠깐, 그녀가 지금 죽기 직전이란 건가?

절망의 끄트머리에 선 나와 유피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여자 엘프는 평온한 자세 그대로를 유지하며 단검 자루 윗쪽에 갖다 댄 검지손가락에 살며시 힘을 주었다. 그 짧은 찰나를 포착한 나는 절규하듯 외쳤다.

“거짓말이었습니까!”

유피의 목 언저리에 붉은 선혈이 주륵 흘러내렸고, 유피는 눈의 초점을 잃은 채 사시나무 떨 듯 몸을 파들거렸다. 여자 엘프는 순간 멈칫한 채, 하지만 여전히 동요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해주었다.

“모든 인간이라고 해서 낮에 깨어있고 밤에 잠자는 것은 아니죠.”

나는 잠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 했다가, 곧 반갑지 않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모든 엘프라고 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반쯤 몸을 일으켰다가 털썩 하고 무릎을 바닥에 대었고, 여자 엘프는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녀의 손에 쥔 단검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애원하듯 말했다.

“이러지 마요…. 전 당신을 좋아했어요….”

“저도예요.”

“아니, 사랑했어요….”

“저도 사랑해요. 로키 씨. 전에도, 지금도 결혼하고 싶을 만큼….”

“그런데 왜!”

차라리 인간이었으면 이해할지도 모른다. 간혹 질투심에 정신이 나가버릴 때도 있으니까. 그러나 엘프는 질투심이 없다 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낮에 깨어있고 밤에 잠자는 인간’인가? 그렇진 않다. 저 한결 같은 평온한 미소를 보면…….

나는 눈물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건 바깥으로 순식간에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째서 울고 있지? 억울해서? 분해서? 원망스러워서? 아니다. 눈물이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유피, 유피를 살리고 싶은 필사적인 마음. 그러한 명령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그러나 여자 엘프는 전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어서다. 엘프여서다. 나는 갑자기 그녀와 하나가 되고 싶다고 갈망하던 과거와는 달리, 그녀와 나는 너무도 다른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여자 엘프는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그리고 매력적인 미소를 잃지 않으며 감정을 주체 못하는 ‘무례한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

“하지만 그렇기에,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재미가 있죠.”

스극.

유피의 눈망울이 커졌다가 곧 힘없이 하늘로 향하며,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흩뿌리며, 주인의 의지를 잃은 팔다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여자 엘프의 단검이 진홍색으로 물든 모습을 보며.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너무도 짧은 순간에 밀어닥치는 것을 느끼며 여자 엘프의 말을 이해했다. 재미……. 여자 엘프의 중심축이 돼서 도는 그 알 수 없는 행동은 잔인한 재미에 의거한 것이었다. 좋아하는 감정도, 사랑하는 감정도, 설레이는 감정도, 그리고 그칠 줄 모르고 끓어오르던 성욕까지도. 모두 그녀의 재미있는 순간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포석들….

“어머, 정말 피가 많이 나오네.”

여자 엘프는 옆에서 쏟아지는 유피의 피를 맞으며 손으로 입을 가리곤 웃었다. ‘인간을 많이 안 죽여봐서요. 인간의 목은 요 부분으로 그으면 피가 이렇게 많이 나오나 봐요.’라고 그녀가 뒤이어서 말한 것은 얼핏 인지는 했으나 들렸는지 말았는지 모른다. 내 귀는 무언가에 휩싸이듯 공황 상태였으니까.

나는 밧줄에 묶여 쓰러지지도 못하는 유피의 다리 아래쪽으로 기어가서 그녀를 안았다. 완전히 일어서지도 못한 채 무릎을 굽히고는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감쌌다. 찢어진 치맛자락이 내 뺨을 간지럽혔다. 나는 마치 떠나가는 그 무언가를 잡듯 유피의 허리를 붙잡다가 배 부분으로 올라가서 더듬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잡히지 않았다. 바로 내가 옆에서 끌어안고 있었으나 그녀는 여기에 없었다. 아이러니했지만 그것이 정답이었다. 절대적으로 인정하기 싫은…….

목이 깊숙하게 베인 채 조금 옆으로 휘어져 있는 유피의 얼굴에서 마지막인 듯 입술이 살짝 달싹였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유피의 몸을 아래에서 마구 끌어안고 이쪽저쪽을 붙잡았다. 조금…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온기를 느껴봐야 했기에…….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초점을 두기 어려워하는 눈동자로 나는 그 그림자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나체의 상태로 몸의 상당 부분을 피로 적신……

여신이었다.

이 순간에서조차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자태. 여자 엘프의 모습.

나는 유피의 시체를 끌어안고 그런 여신에게 소원이라도 비는 것처럼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녀를 살려줘요….”

생긋 웃는.

“그녀를 살려줘요….”

여전히 말없이 미소 짓는.

“그녀를 살려줘요….”

여자 엘프.

정적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그녀는 친절하게 언제까지고 기다려주듯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고, 머릿속을 칼로 헤집는 듯한 아스트랄한 지옥 속에서 현실로 회귀한 사람마냥 감각이 돌아옴을 느꼈다. 그러나 사실 표면적으로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나는 속이 빈 껍데기 같은 인형처럼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나 롱 소드를 어렵게 뽑아들었다. 그리곤 비틀비틀 일어섰다.

여자 엘프는 고개를 갸웃하곤 또각또각 걸어왔다. 그리곤 내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스윽 들이대었다. 꿈결같이 들리는 목소리.

“저항하시려구요?”

나는 그녀의 미려한 갈색 눈동자의 조직들을 관찰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정신을 어디다가 두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기도 한데, 문득 나도 왜 검을 뽑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어서? 그랬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는 무언의 명령. 부질없는 것.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무너질 것이었기에 부질없는 것에라도 기대야 한다.

여자 엘프는 자신이 해놓고도 안쓰럽다는 듯 그런 나의 뺨을 손가락으로 주욱 훑어 내려갔다. 눈물로 젖어있는 뺨을.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나는 또다시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녀의 속삭임을 듣게 되었다.

“제가 당신의 안식을 도와드릴게요.”

내게서 검을 앗아가는 그녀. 그리고 곧바로 전해지는 난생 처음의 감각.

서걱-.

나는 검을 들었던 오른팔이 허전함과 동시에 불길 속에 던져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나마 유피에 대한 생각을 망각할 정도로 지옥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목에서 차오르는 피끓는 비명. 그러나 그걸 내뱉을 힘조차 없었기에 게걸스럽게 신음을 토해야 했다.

“꺼… 꺼헉……. 끅…….”

나는 잘린 팔 부분에 본능적으로 손을 갖다댄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여자 엘프는 콸콸거리며 흘러나오는 내 어깨의 피와 바닥에 떨어진 팔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발로 내 가슴을 밀었다. 나는 그녀의 발에 의해 억지로 상체가 들리었고 그녀는 한 손엔 단검을, 한 손엔 롱 소드를 쥔 채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출혈은 심각했고 나는 금방 몸에 경련이 일고 있었다. 벌거벗은 남자가 벌거벗은 여자에 의해 이런 꼴을 당하는 건 희대의 마조히스트를 연상케 할 테지만 어디까지나 잔인한 유린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곧 편해질 거예요. 로키 씨. 사랑해요.”

온몸에 경련이 일며 입만 뻐끔거리는 나를 밟은 채 내려다보며 한마디한마디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으리라. 물론 짜릿한 재미를 위한 진심.

퍼억-. 파악-.

단검부터 내 심장을 찌르고, 그 다음에 바로 옆에 롱 소드가 박혔다는 것 정도는 기억한다. 여자 엘프는 일부러 의식이 흐려지는 내 기억 속에 남기게 하기 위해 사이를 잠깐 두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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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 또각….

한쪽 팔이 없어진 채 알몸을 비틀고 보기 흉하게 널부러져 있는 남자와, 목이 끊어질 듯 베인 상태로 천장에 두 팔이 묶여 올라가 있는 여자. 그리고 피투성이와 정액투성이. 그 기괴하고 어두침침한 방 안에 조용히 여자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나갔다.

건강함을 과시하듯 그녀의 젖가슴과 살결들은 탄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미려한 조각상 같은 놀랄만한 몸매에 뾰족한 귀의 여자 엘프는 한쪽 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로키에게서 다시 뽑아든 단검을 위로 들어서 길게 가로로 그었다. 좌아악-.

어두운 방 안에서 잘 살피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을 법한 두꺼운 종이가 벽이란 배역을 그만두고 잘려져 내려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의 형체. 조금 움푹 파여져 들어간 그 공간에는 한 사람이 입에 재갈을 물린 채 팔을 양 옆으로 벌려서 벽에 묶여 고정돼있었다. 어쩐지 십자가에 묶여있는 자세를 연상케 한다.

얼마나 그렇게 오랫동안 묶여있었는지는 모른다. 그 사람, 즉 정확히 말하면 피부가 짙은 회색에 가까운 남자는 탈진하기 직전의 상태로 기운 없이 늘어져 서있었다. 하지만 기다란 흰 머리칼 밑으로 날카롭게 떠진 눈은 어둠에 강한 종족, 다크엘프라는 면모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비록 힘겹게 떠져있긴 했으나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여자 엘프를 노려보는 그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여자 엘프는 매혹적인 동작으로 다크엘프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몸을 밀착하듯이 접근하고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크엘프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여자 엘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여자 엘프는 살짝 미소를 띠고는 그의 입에서 재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 남자를 계속 보았으니, 아니 보지 않아도 듣긴 했을 테니 이름은 알겠죠?”

“…….”

여자 엘프가 가리키는 ‘저 남자’가 그녀가 죽인 인간을 말하고 있음을 인지했으나 다크엘프는 여전히 그녀만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여자 엘프는 한가롭기까지 한 음성으로 느릿느릿 말을 이어나갔다.

“재미있는 우연 아녜요? 저 남자 이름이 로키였다니… 당신이랑 똑같잖아요. 당신도 로키, 저 남자 이름도 로키.”

“……미친년.”

질끈거리듯 입 밖으로 내뱉은 다크엘프 로키의 말을 들은 여자 엘프는 물끄러미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로키는 그치지 않고 연이어 독설을 쏟아내었다.

“외모를 이용해 사람 감정을 갖고 장난치는 년만큼 썩어빠진 생물도 없지. 쓰레기 같은 년. 종족간의 증오를 떠나서 네년은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최악의 여자다. 그것만은 알아둬라.”

그러나 여자 엘프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생긋 웃었고, 다크엘프는 그런 그녀의 매력적인 웃음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가슴 한 구석의 양심이라곤 철저하게 닫아둔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로키 씨, 당신은 절 좋아했잖아요?”

“본능을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색녀 엘프다운 단순한 사고방식이군.”

“좋아하는 감정이 본능에 의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무엇을 좋아하는 감정이라 생각하시는 거죠?”

다크엘프는 뭐라고 반박하려 하다 입을 다물고는, 조금 있다 다시 내뱉었다.

“성욕에 따른 일시적인 감정이었을 뿐이다.”

여자 엘프는 다시 그런 로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짝 뒤로 물러서면서 몸을 숙이곤 깔깔대며 웃었다. 피로 물든 나체의 여자가 컴컴한 집안 내부에서 그렇게 웃는 모습은 기묘한 느낌을 낳게 했다. 한참 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그녀는 고개를 들곤 안쓰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아니에요. 로키 씨. 당신은 거부하고 있지만 전제부터가 틀렸어요. 당신은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좋아하게 된 것을 당한 거예요.”

말의 의미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다크엘프는 시선을 다시 여자 엘프에게로 맞추었고, 그녀는 여느 때처럼 부가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었다.

“저 인간 로키가 자신의 애인이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조차 저를 사랑스럽게 여겼던 것을 보면 이해가 쉽겠죠. 사랑스럽다… 라는 감정은 하나가 아니에요. 놓치기 싫은 수많은 감정들로 이루어져있지만, 그것들은 내부에서 제각각 별개로 나뉘어져 있어요.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를 갖고도 각종 즐길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죠.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놓치기 싫은 여러 감정들을 서로 얽히게 만든다…. 그리고 저는 그런 놓치기 싫어하는 감정 중 하나를 붙잡아서 제게로 이끈 것이죠. 다른 ‘사랑하는’ 감정을 부숴버릴 정도로 강력한 감정을 심어주는 것.”

가만히 듣고 있던 로키는 흠칫 놀랐다. 여자 엘프가 어느 새 미끄러지는 듯한 동작으로 자신에게 다시 밀착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키스라도 하려는 듯 다가와서 속삭였다.

“뭐 저야 궁극의 목적은 그런 데서 파생되는 재미를 위한 것이지만.”

파악-!

로키의 발이 그녀의 턱을 노리고 윗쪽으로 차올려졌으나 본래의 다크엘프다운 날카로움은 많이 죽어있는 상태였다. 여자 엘프는 미소 띤 얼굴 그대로 여유롭게 그것을 피했고, 오히려 그 한쪽 다리를 붙잡아 위로 차올리는 자세로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손이 다크엘프의 아랫도리로 이동해 자지를 꽈악 붙잡았다.

“허억….”

신음을 흘리는 다크엘프를 보며 킥 하고 웃던 여자 엘프는 옷 위로 그의 자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을 캐시아란 서큐버스가 복수심에 불타게 되는 게 귀찮아서라도 일단은 살려두겠지만… 뭐 그래도 당신 자지는 질릴 만큼 맛본다는 목적 하나는 달성했으니 나름대로 만족하죠. 저 인간과 정사를 진행할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3자가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도 나름 제 흥분을 돋구었으니까.”

자지에서 손을 뗐지만 여전히 키득거리는 여자 엘프. 그리고 그런 그녀를 노려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다크엘프의 모습이 서로 묘하게 대치되고 있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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