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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 가정부 2명 따먹은 이야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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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7:45 조회 1,68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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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고 일어나면 가슴이 먹먹해 질 때가 있다. 모닝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창문을 열어 제끼고

먼하늘을 바라보면 미칠듯이 누군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었다.

 

눈이 부시게 그리운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잊어버려야 하는데... 순희 얼굴이 떠 올랐다.

순희는 늘 자고 일어나면 아침 햇살과 함께 나에게 다가 왔다.

내게 떠오른 순희 얼굴은 늘 지쳐 보였지만 선하게 웃고 있었다.

 

"지훈아, 잘 잤니?" 내게 말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20대라는 감각적인 젊은 나이는 청순한 들꽃보다 요염한 장미에 마음이 빼앗길 때 일지 모른다.

 

순희에게 나는 등불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당장 내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순희와 나와의 장벽은 너무 많았다. 학력도 그렇고 집안도 그렇고 만약 부모님에게 순희와 사귄다는 말을 하면 난

등뼈가 부러질지도 모른다.

더구나 순희 집과의 원거리도 작지 않은 장애물이다.

 

어떨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순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당장 차를 몰고 순희 고향으로 달려가서 모든 걸 돌이키고 싶었다.

 

"늦지 않았다. 순희에게 가자. 강지훈. 너 그런 새끼 아니잖아..."

그렇지만 그렇게 다짐하고도 막상 학교에 가서 늘씬한 햇살 속의 윤지영 자태를 보노라면 그런 마음이 싹 없어졌다.

 

주갤럼들이 아우성을 치며 날 욕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시발, 핸드폰에 뇌가 섹시한 남자들만 한다던 하스스톤 모바일 하나 안 깔린자, 나를 돌로 쳐라!

 

"그 예쁘장한 여학생 지영이는 요즘 안 놀러오니? 걔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네..."

어머니의 그런 말씀 또한 순희보다는 점점 윤지영에게 끌리는 모멘텀이  되었다.

 

가끔씩 내 방  전화가 울려서 받아보면 수화기 저편에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딸칵..끊겼다. 그런 경우가 가끔 있었다.  당연히 발신자 표시가 없던 시절이었다.

 

가수 이문세 4집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난 이문세 4집에서 <굿바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인사도..다른 어떤 말도..못하고서...그대 먼저 끊기만 기다려요...♪"

 

어떨 때는 잠시 말이 없다가 약간 가느다랗게 흐느끼는 듯한 울음 소리가 나면서 끊겼다.

상대방은 주저하는 것 같았다.

 

그게 순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순희야..미안해...정말 미안해...그래도 그러지마...

 

그런 전화는 점점 뜸해졌다. 그렇게 순희는 내게 조금씩 멀어지며 잊혀져갔다. 대딩의 첫 여름 방학이 왔다.

 

"지훈아, 우리 언제 놀러갈꺼야?"

윤지영이 방학에 바닷가를 보고 싶다고 나를 보챘다. 단 둘이 가자는 계획은 무산되었고 친구들끼리 함께 놀러가기로 했다.

 

그 시절 보수적인 분위기는 여친과 단둘이 바닷가 간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친과 단둘이 놀러간 애들은 민박집 주인에게 계면쩍었다.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여친을 "제 사촌 동생이에요"라고 택도 없는사실을 둘러대는 것이 그나마 일반적인 에티켓이었다.

 

아무리 우리 부모님도 지영이를 좋아한다지만 결혼을 앞둔 약혼녀도 아니고 나도 걸리면 진짜 맞아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난 내 주변에서 고교동창을 비롯해서 친한 친구들을 모았다.  그래도 조금 경제적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도 놀러갈 수 있는 여친이 있어야 했다.

 

일단 1순위 깡철이에게는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넌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지 알아? 정의로워할 청년학생이 지금 바닷가 놀러 갈 생각이 나냐?"

 

"청년학생이 바닷에도 놀러간다고 정의롭지 않다는 법은 육법전서 어디에 있다더냐?"

 

미친새끼.... 깡철이도 서울 북쪽에 당시에도 우리 학교 보다 더 따라지 대학 취급받던  모대학에 입학했는데 탈춤반인가?

뭔가 하는 이상한 써클에 가입하더니완전 애가 달라졌다.

 

80년대의 내 기억에는 매년 봄이면 신촌 일대에 봄꽃 향기 대신에 최루탄 냄새가 풍겼다.

 

"광주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이 울면서 지금 너에게 묻고 있다.."

 

"됐어. 새꺄...너 무당이냐? 아, 시발 그놈의 광주타령...뭐야? 너 고향 광주였냐?"

 

안가겠다는 친구들 경비까지 보태는 조건으로 억지로 세 쌍을 꿰맞춰 우린 해운대로 놀러갔다.

남자 셋,  여자셋 각각 따로 숙소를 정했으므로 지영이와 떡을 칠수는없었다.

 

나말고 다른 두 커플은 진짜 순둥이 같은 애들 이기도 했다. 회비가 있었지만 지영이 경비도 내가 전액 보탰다.

 

바닷가에서 지영이는 약간 과감한 노출의 흰색 비키니를 입었다. 적당한 빨통과 가느다란 허리와 히프라인,

허리에 군살이 많던 다른 여친들은 부끄러워 하고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영에게 쏠림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흐뭇했다.

 

붉게 물든 노을 지는 저녁 바닷가에 우리는 쌍쌍으로 헤어져 손잡고 걸었다.

바닷가에는 이것 저것 물건을 팔러 온 행상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해운대에서 본 아가씨 중 이 아가씨가 제일 예쁘네..."

어느 아주머니가 그렇게 칭찬했다. 난 그 아주머니에게 고동소라 기념품을 2천원 어치나 샀다.

 

바닷가 암석 구석에 둘이 앉아서 우린 혀를 낼름거리면서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지영아. 사랑해....우리 영원히 변치 말자..."

"지훈아...나도  사랑해.."

 

내 곁에 기대서 쌔끈쌔근 잠드는 지영의 뺨을 쓰다듬어주면서 우린 그렇게 서울로 돌아왔다.

 

방학은 저물고 먼하늘 저편에서 가을 내음이 찾아들던  2학기가 되었다.

그즈음 나는 지영이에게 약간 의아한 구석이 생겼다.  아무리 남성 우위의 보수적 시대지라만 지영이는 나를 만나면서

이상하게 천원 한장 쓰지 않았다

 

하다 못해 그 가난했던 순희도 나랑 눈 밟으면 겨울 길을 걷다가 군고구마라도 샀는데 지영이는 도무지 그런게 전혀 없었다.

 

심지어 나에게 이런 저런 명목으로 용돈까지 받아 챙겼다.

 

"엄마가 이번에 오디오 너무 비싼 거 사줬다고 용돈 안준대."

 

난 속으로 "그럼 영문과 학생이 초등 영어과외라도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과외가 금지되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할 애들은 몰래 몰래 다 했다.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바지런하던 순희와는 지영이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의아한 것은 또 있었다. 그시절은 지금 처럼 명품은 유행 안했지만 조금 윤택한 가정의 젊은이들은 그래도 옷입는게 차이가 꽤 났다.

 

3만원 짜리 대리점 가죽 나이키 운동화 신을 만한 집안에서... 절대로 4천원짜리 신발가게 월드컵 운동화를  신는 경우는 없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서민들은 전영록이 선전하던 뱅뱅 청바지를 입었지만...우리 같이 좀 있는 집들은 리바이스를 입었다.

게스나 저보 같은 고급 청바지가 유행한 것은 그 몇년 뒤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영이는 옷은 참 예쁘게 입긴 했는데.... 대부분 어딘가 싼티가 났다.

쉽게 말하면 동대문 표의 향기가 풍겼다. 동대문 시장 옷도 예쁘고 단아한 옷은 많지만 재질은 속일 수  없었다.

 

지영이의 양말을 봤는데.... 내 양말은 프로스펙스 흰 양말인데..... 지영은 딱 봐도  시장에서 1000원에 5개 팔던 

싸구려 분홍양말이었다. 주로 그런 식이었다.

 

물론 있는 집 애들도 검소하게 다니는 경우는 많았다.

그런데 쩌렁쩌렁한 국영기업체 이사의 외동딸 치고는 검소해도 너무 검소했다.

 

당시 회사임원은 지금 보다 더 대우가 훨씬 좋았다. 난 그냥 검소한 집안의 독특한 가풍이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한번은 지영이랑 신촌에서 늦게까지 술 마셨다. 그날 따라 지영이는 이상하게 술을 많이 마셨다.

나랑 있으면 행복해 해야 하는데 "지훈아. 나 오늘 조금 취하고 싶네." 하더니 자꾸 술마시다가 거의 꽐라가 되었다.

 

중간 중간 울기도 했다. 무언가 나에게 숨기는 것도 많고...도무지  알 수 없는 애였다.

 

어느 날 우리 둘은 음침한 카페 구석에 앉았다. 내 손은 지영이의 허벅지로 가슴으로 쉴새 없이 움직였다.

 

내가 손가락으로 지영이 부풀어 오른 젖꼭지를 비틀었을 때

술취한 지영이가 나한테 기대 약간 신음소리를 토하며 말했다.

 

"지훈아, 나 더 취하면 여관에 데려다줘..집에서 술취해서 들어가면 쫓겨나...깨고 가야돼"

"얘가...그냥 여기서 좀 쉬다가..."

 

보통 여자애라면 나도 이게 왠떡이냐 하고 데꾸가서 신나게 떡을 칠 것이다.

그렇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지영이와의 첫날 밤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지영이 생일은 가을이었다. 난 생일 선물로 지영에게 장미꽃과 향수 그리고 조금 싸구려라도 호텔에 데리고 가서

이벤트 처럼 떡을 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날이 점점 오고 있었다.

 

지영이 생일 며칠 전 이었다.  난 지영이의 애액으로 흥건한 보지를 쓰담으면서 지영에게 속삭였다.

 

"지영아..나 너랑 자고 싶다...넌?"

"지훈아...나도 사실 그래...."

 

"네 생일날 어떨까?"

"좋아..그런데 나 진짜 해본 적 없는데.."

 

"나도 사실 그래.."

"지훈아. 진짜야? 남자들은 한번씩 경험한다는데..."

 

"그건 놀기 좋아하거나 밝히는 애들이지..여자의 순결만큼 남자의 동정도 중요하지.."

"와.. 지훈이 너 정말 멋있어."

 

그렇게 말하는 지영이의 얼굴에 약간 긴장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지영이의 생일날이 되었다.

 

먼저 샤워를 하고 나온 긴 생머리의 지영이가 침대에 누웠다. 눈이 뜨기 겁날정도로 지영이의 늘씬한 나신은 눈이 부셨다.

달아오른 나는 뜨거운 키스를 하고 귓바퀴와 목덜이를 애무해나갔다

지영이가 거친 숨소리를 토해냈다.

 

"지..지훈아..나 무서워..."

"너무 걱정하지마...내가 살살 할께..."

 

차근차근 빨통을 빨고 배꼽을 핥고 봊이를 날름거렸다. 지영이가 알아서 서서히 다리를 벌려줬다.

 

내가 순희의 순결을 차지할 때는... 난 순희가 처음인 것도 모르고 무작정 세게 쑤셔서 순희가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때 기억 때문에 난 조심해야 했다. 난  좆을 지영이 봇이에 천천히 진입시켰다.

 

응? 순희 봊이에 넣을 때는 구멍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영 봊이에 넣을 때는 그냥 말로 벤츠가 고속도로 달리듯..

그냥 미끄러지듯 쑤욱... 들어갔다.

 

어, 지영이도 처음이라는데 조금 이상하다?

 

순희 봊이는 아무도 찾지 않은 물좋은 계곡이었다면.....지영 봊이는 이미 관광객이 들락거려 진입로 잘 닦여진 유원지라는 느낌이 피뜩 들었다.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

“하악! 아, 하, 으응, 하앗!”

 

지훈아..아파..아파.....

 

살살 쑤시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야 말로 쑥쑥 들어갔다.

지영은 말로는 아프다고 하는데 전혀 아픈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내 좆이 정신없이 지영이 봇이를 쑤실 때.... 지영이 봇이는 이미 헐거워진 30대 후반 가정부 아줌마 봊이와 유사한 느낌이 났다.

그래도 그때는 그냥 봊이 구멍이 좀 넒은 애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시발 갑자가 이런 저런 생각이 겹쳐서 그런지 기운이 빠지더니 갑자기 잦이가 풀이 죽었다.

 

"아앗..아하핡...하핫...으...응? 지훈아. 왜 그래?"

한참 흥분해서 눈을 희번덕 거리던 지영이가 투덜하듯 물었다.

 

"아..미안해..갑자기 이상하네..."

"지훈이 넌 처음이라서 그럴거야.."

 

응?

 

본인도 모르는 말실수를 지영이가 했다. 나보고 넌 처음이라니...그 얘기는 본인은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지훈아..내가 도와줄게..."

 

지영이가 손으로 내 잦이를 살살 주무르더니 손가락으로 귀두를 자극했다.

잦이가 약간 고개를 들자 지영이가 손으로 내 잦이를 쥐고 딸딸이를 쳐주기 시작했다.

 

난 입으로 지영이의 젖꼭지를 물고 빨았다.

 

빨통을 물린 지영이도...지영 손에 딸딸이를 당하는 나도..... 둘다 신음소리가 났다.

 

"킥.. 하윽..흑."

"하윽.. 하악..."

 

좆이 다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영이가 내 잦이의 발기상태를 점검하더니 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내 좆을 잡더니 슬그머니 자기 봊이 구멍에 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능숙하게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핥...아핫....아하하핥........

아핫..으응..핡..하핫...하하하학...핫!!!!

 

밑에서 지영이의 빨통이 출렁거리고 허리가 리듬감을 타면서 움직였다.

나 보다 더 흥분한 것은 지영이었다. 도무지 처음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 순간 죽었던 내 좆은 마치 대공미사일 발사 직전 처럼 솟았다.

 

아아아아앗!!!!!!!! 찍찍...찌찌찍~

몇 번 하스스톤질 아니 피스톤 질 후 난 사정을 했다.

 

지영이는 헉헉 거리는  내가 귀엽다는 듯 내 이마의 땀을 손으로 닦아주더니 다시 내품으로 부비고 들어왔다.

 

난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영이에게는 순희에게 처럼 보여지는 순진함과 청순함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단순한 섹파가 아니라면 남자로서 과히 기분 좋지는 않았다.

난 지영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대충  티슈로 닦고 팬티를 입고 침대에 걸터 앉아 담배를 물었다.

 

지영이도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누워서 아무 말이 없었다.

 

담배 한개비를 다 태우고 내가 먼저 말했다.

 

"지영이. 너 처음이라더니 처음은 아닌 것 같네."

 

지영이는 나에게 성경험이 없다고 했다. 대학교 와서 남자를 사귄 적 조차도 없다고 했다. 

1학년때 남자들과 잠깐 교제한 적은 있지만 금방 헤어졌다고 했다. 게다가 그 당시 특별한 일없으면

아무리 그래도 1,2학년 저학년 여대생은 처녀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지영이가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훈아..거짓말 해서 미안해..."

지영이가 갑자기 소리내어 흐느꼈다.

 

"너 사랑해서 일부러 말을 안했어...."

"얘기해봐..."

 

지영이 말로는 1학년 여름 때 선후배 친구들끼리 원산도에 놀러갔다가 술취해 자고 있는데 갑자기 선배 한명이 돌변해 강간당했다고 했다.

차마 같은 과라서 말을 못하고 쉬쉬하다가 뒤늦게 고소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 선배가 무릎꿇고 용서를 빌고 죄책감을 느끼며

군대를 가는 바람에 용서했다고 했다.

 

"그 개새끼가 누군데..."

"지훈아..다 지난 일이고 용서해줘...."

 

나도 섹스가 처음은 아니었고.... 여자 과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난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에 기대했고 결과가 그렇지 않아서

실망한 것 뿐이다. 난 앞뒤가 막힌 사람이 아니다.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지금도 하스스톤 모바일을 할 때 난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난 지영이의 벗은 몸을 다시 안아줬다. 우린 또 질펀하게 섹스를 했다.

 

그 후 캠퍼스에서 함께 다니는 지영이는 가을햇살에 여전히 아름다웠고 내 맘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난 그 날 이후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조금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쪽이 뻥 뚫린 기분이랄까

그 때마다 난 왜 자꾸 순희 생각이 났을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허전했던 나의 마음을 들꽃같은 순희라면 그래도 좀 채워줄 것 같았다.

 

그 즈음 순희의 전화도 서서히 끊겼고 편지도 이제 오지 않았다. 아, 순희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80년대 중반 대학가는 연일 투쟁분위기였다.

섬뜩한 내용의 대자보가 도처에 나붙었다.  특히 광주 얘기기 많았다.

 

어떤 날은 스프레이로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 라는 낙서가 학교 담벼락에 발견되서 학생과 직원이 범인 찾는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우리 과내에서 공공의 적이었다.

 

난 일체의 학내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념적인 냄새가 풍기는 써클이나 모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여름 방학에 농활이니 그런데는 당연히 가지 않았다.

 

게다가 승용차를 바꿔서 당시로서는 중산층 이상 가장이 끌고 다니던 현대 스텔라를 타고 다녔으니 눈에 띄는 것도 당연.

사장 아들이라는 이유 또한 나를 별종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무개념으로 통했다.

 

알게 뭐람...난 개의치 않았다. 니들은 니들대로 난 나대로 열심히 살지만... 단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 이었다.

 

우리 과에 "민족문화연구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줄여서 "민문연"이라고도 했다. 말이 연구회지 내가 보기에는 데모를 주도하고

배후조종하며 밤에는 술처마시러 다니는 이념써클이었다. 난 그넘들이 공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모임에는 선동을 특히 잘하는 3인방이 있었다.

 

걔들은 주로 신입생들을  위주로 술한잔 하자고 접근하며서 시국 토론을 하는데  걔들한테 걸리면 누구나 다 설득당해 넘어 간다는 소문이었다.

걔들은 오히려 여학생들에게 정의로운 대학생의 표상이라고 인기가 많았다.

 

그 리더가 3학년 방종현이라는 선배였다.  80년대 중반은 총선 이후 살살 엄혹했던 80년대 초반의 분위기가 풀리던 시기였다.

그래도 당시 대학 분위기는 자꾸 평범한 대학생을 투사로 내몰고 있었다.

 

어느 날 나에게도 그 빨간 좀비같은 3인방이 찾아왔다.

"올 것이 왔구나..." 나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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