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받은 내 보지 내가 달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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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3:41 조회 2,151회 댓글 0건본문
저는 46세의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결혼을 일찍 하여 벌써 사위를 보았고 남편이라는 작자는 사업이라고 한답시고 허구한날 술에
절여서 밤늦게 집이라고 찾아오다 보니 허구한날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세우기 일수입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직업소개소인데 주로 술집에 일하는 여자들을 소개하는
그다지 제 마음에 안 드는 직업인데 제 느낌으로는 자기가 소개시켜주는 여자들과 섹스도
하는 것 같은데 증거는 없고 심증만 가지고 있습니다.
남방에 묻은 립스틱 자국이나 긴 머리카락을 남편이라는 작자의 옷에서 수 십 번 보았으니까요.
자기 말로는 거래상 하는 수 없이 그런 여자들과 술자리를 하기는 하지만 단 한번도 저 이외에의
여자에게 한눈을 판 적이 없다고 큰소리를 치는데는 할 말이 없답니다.
제가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를 만난 것도 당시에 남편이 근무하던 직업소개소였습니다.
19살 나이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를 하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야 하였습니다.
처음에 급사 비슷한 일을 하였으나 월급을 잘 안 주어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직업소개소로 갔습니다.
당시에 남편은 직업소개소에서 상담을 하거나 일자리에 여자들을 데리고 가서 인도를 시키는
자질구레한 일을 하며 직업소개소의 일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김 은숙 나이는 19살 희망 직업은 사무실 심부름이라, 맞아?"하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자
"혹시 술집은 생각 없어?"하기에
"그런 곳은 안 가요"하고 힘주어 말하자
"그 정도 미모면 최상급 대우받겠는데...."하며 말을 흐리기에
"죽어도 술집은 안 가요"하자
"아직 처녀야?"하기에
"무슨 말씀을..."하고 말을 흐리자
"법적으로 말고 육체적으로 처녀냐고?"하기에 얼굴을 붉히며
"네"하고 대답을 하자
"그 처녀 가지고 다니려면 안 성가셔?"하고 묻기에
"그런 말 그만 하시고 일자리나 알아 봐 주세요"하자
"좋아, 좋은 일자리 내가 책임지고 주선하는 조건으로 나랑 안 사귈래?"하기에
"아저씨 아니 예요?"하고 물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보기에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는 30이 훨씬 넘게 보였습니다.
"야~이 아가씨 누구 혼사 줄 망치려나, 내가 몇 살로 보여?"하기에
"30살 넘겠는데...."하고 말을 흐리자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여?"하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자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었는데 1948년 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27살 인 샘이죠.
그러나 겨우 19살의 저에게는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와 저는 8살이라는 나이 차이가나
"생각 해 보고요"하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생각하고 말고 없이 바로 대답해"하기에 좋은 직장 얻을 욕심으로
"알았어요"하자
"그럼 오늘 오후 6시에 이 앞에 금잔디 다방으로 나와"하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고 그 직업소개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와의 교제는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는 무척 자상하게 저를 대하여 주었습니다.
일자리도 아주 편하고 쉬운 용달차 사무실에 취직을 시켜주었는데 기사들의 건 입담에 하루가
쉽게 지나가고 일도 전화만 받다보니 무척 편하고 틈틈이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좋았습니다.
일과가 끝이 나면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인 윤 도식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행복감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지금의 남편인 도식씨는 저에게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또 영화도 보여주며 환심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도 자주 만나다 보니 그이가 점점 마음에 들었습니다.
용달차 사무실은 한 달에 두 번의 노는 날이 있었는데 첫 째 일요일과 셋 째 일요일 놀았습니다.
그 날이 아마 가을의 첫 째 토요일이었을 것입니다.
"은숙아 우리 다대포 몰운대 구경가자"하기에 저는 그이를 따라갔습니다.
여러분들은 밤에는 불야성을 이루는 다대포를 생각하시겠지만 당시에 다대포는 교통이 무척 불편하였습니다.
장림을 지나 다대포까지 단 한 채의 집도 없었습니다.
몰운대에 올라가더니 밤바다를 보며 그이는 처음으로 키스를 하였습니다.
아니 얼떨결에 당하였습니다.
그이는 미리 준비한 과자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 저에게 억지로 한잔을 먹이고 키스를 한 것입니다.
술이라고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먹은 적이 없었던 저의 정신이 몽롱하여지자 그이의 어깨에 기대었는데
그이는 찬스다 하는 생각을 하고 제 입술을 훔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이는 천천히 나머지 술을 다 마셨습니다.
그 것이 그이의 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저로서는 그이가 천천히 마시던 말던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바다를 항해하는 밤배만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이는 다 마시자 시계를 보더니 가자고 하며 저를 부축하고 버스 종점으로 갔습니다.
버스 종점으로 가자 버스를 정비하고 있던 아저씨에게 언제 차가 가는가 그이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정비기사 아저씨는 막차가 끊긴지 오래 되었다 하였습니다.
당시에 다대포에서 시내로 나가는 차는 저녁 9시면 끊어졌습니다.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그이의 팔을 잡고 시계를 보니 9시가 절반도 넘은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뭐요?
택시라도 잡아타면 안 되느냐 구요?
그 시간에 당시에 택시는 안 들어왔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의 다대포는 부산의 외딴 섬 아닌 외딴 섬이었습니다.
그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여인숙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그이를 따라 여인숙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식씨는 이 선을 넘으면 안 되"하고 방에 들어서자 방 가운데에 금을 긋고 말하자
"알았어"하고 웃기에 안도의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아니 도식씨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다녀오니 도식씨가 제 이부자리를 깔아 놓았기에 제가 상의만 벗고 눕자
"은숙이 이 금 침범하였으니 나도 침범한다"하자
"내가 뭐?"하자
"화장실 가며 이 금 넘었지?"하더니 저를 덮쳤습니다.
"그건그건 화장실 악! 하지마 도식씨"하고 소리쳤으나 힘좋은 남자 그도 소주 한 병을 마신
사람의 힘은 저를 맥을 못 치게 만들었고 오히려 그이의 성적인 욕구를 부채질하는 꼴이었습니다.
"도식씨 살려줘요"하고 애원을 하는 제 입은 어느 틈에 도식씨의 입술로 덮쳐져있었고 또
도식씨의 손은 제 상의 안으로 들어와 제 가슴을 마구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이러 지 마, 응~!도식씨"하고 얼굴을 돌리며 말하자 그이는 빙그레 웃으며
"은숙이 그 걸치장스러운 처녀 오늘 때자"하기에
"나중에 도식씨와 결혼하면 초야에 바칠게"하며 눈물을 흘리자 도식씨는 눈물을 닦아주며
"오늘이 초야라고 생각해"하고는 제 치마 안으로 손을 넣고는 팬티를 찢어져라 당겼습니다.
손바닥 보다 작은 제 팬티는 힘없이 제 엉덩이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하지마 응, 도식씨"하고 애원을 하였지만 그 말은 이미 불이 당겨진 도식씨의 성적인 욕구에 부채질을 한 꼴이었습니다.
"가만있어"하더니 도식씨는 제 몸에 몸을 포개고 키스를 하면서 하체를 들고 부스럭거리더니
치마를 조금위로 들어올리고 자신의 하체를 제 하체에 밀착을 하자 제 보지에 딱딱 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19년을 고이 간직한 제 보지 둔덕에 생애 최초로 남자의 좆이 닿은 것입니다.
"앙~!"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 역시도 도식씨의 성욕을 부채질하는 꼴이었습니다.
한참을 좆으로 제 보지 둔덕을 비비던 그이는 어느 틈에 바지와 팬티를 벗더니 제 보지의
갈라진 틈을 벌리고는 좆을 조금 넣더니 제 입술에 입술을 포개고는 하체에 힘을 주었습니다.
"읍!"하는 아픔의 신음이 그이의 입에 가려져 밖으로 분출을 못하고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하복부가 찢어지는 엄청난 통증은 하염없는 눈물을 만들어내었고 그 눈물은 하염없이 귀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이는 저의 아픔은 생각도 안 하고 자기 할 짓만 열심히 하였습니다.
아픔과 믿음을 잊어버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이는 한마디 상의의 말도 없이 좆물을 제 보지 안에 뿌려 넣었습니다.
또 다시 밀려오는 아픔은 처음 박을 때의 그 아픔만큼이나 아팠습니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이는 저에게 깊은 키스를 하여주고는 무엇으로 제 보지를 닦아주곤 저를 끌어안고
팔 베개를 하여주기에 그이의 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고 눈을 뜨니 그이가 또 제 몸 위에 올라가 막 좆을 박으려 하였습니다.
"무서워요"하고 말하자
"이미 질 난 것 한번만 더할게"하고는 좆을 제 보지에 다시 박았습니다.
어제 밤만큼은 아프지는 않았지만 통증은 역시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저 죽은 시체처럼 누워서 이를 앙 다물고 빨리 끝이 나기만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그이는 또 한번의 좆물을 제 보지 안에 싸고서야 저를 해방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다시 몰운대에 올라가 해맞이를 구경하였는데 몰운대에 오르고 내려오는데
가랑이가 얼마나 쓰리고 아팠는지 지금 생각만 하여도 끔찍합니다.
그러나 그이는 제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하였습니다.
그 날밤 저는 아빠에게 죽도록 맞았고 엄마에게 별의별 잔소리를 들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후로는 그이는 틈만 나면 저를 여관이나 여인숙으로 끌고 가 빠구리를 하였습니다.
한달 두 달 생리가 없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이에게나 엄마에게도 말을 못하고 지냈습니다.
생리가 없어진지 다섯 달이 지나자 더 이상 무서움을 참지 못하고 그이에게 사실을 말하자
그이도 놀라며 저를 산부인과에 데리고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틀림없는 임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절수술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이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여 일찍 이야기 안 하였다고 힐난을 하며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리고는 수소문을 하여 돌팔이 의사에게 가서 중절을 하자고 꼬았습니다.
절대로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고 집을 뛰쳐나와 그이가 자취하는 자취방에서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배는 점점 불러오자 용달차 사무실에도 그만두고 그이의 자취방에 박혀 출산 일만 기다렸습니다.
20살이 된 8월에 지금 사위와 잘 살고있는 유나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를 낳고서야 친정 부모님에게 찾아가 승낙을 받고(?) 24살에 결혼식을 조촐하게 올렸습니다.
그러다 그이는 유나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독립을 하여 지금의 직업소개소를 개업을 하였습니다.
직업소개소 문을 열자 그이가 제 몸 위에 오르는 것이 눈에 띄게 적어졌습니다.
그이의 말로는 일이 힘이 들어 그렇다고 하였으나 앞에도 말씀 드렸듯이 그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젊고 싱싱한 아가씨들과 살을 섞다보니 늙어 가는 아내는 안중에 없어진 것이죠.
여자로서 최후의 몸부림을 칠 40대입니다.
여자는 잘 아시겠지만 폐경기만 지나면 마음만 여자이지 육신은 여자가 아닌 썩은 육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여자입니다.
마지막 몸부림을 쳐야할 폐경기를 눈앞에 둔 여자란 말입니다.
그러나 소심한 저는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삭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니 은숙이 아니야?"하는 남자의 음성에 돌아보니 그 옛날 용달차 사무실에 근무를 할 때에
용달기사를 하던 한 기사였습니다.
당시에 3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 한 기사 아저씨는 머리가 히끗히끗한 중년의 신사로 변하여 있었습니다.
"어~머! 한 기사 아저씨"하고 놀라자
"야~그 곱던 은숙이가 이제 중년의 아줌마가 다 되었네"하며 웃었습니다.
"아~이! 아저씨 두"하며 얼굴을 붉히자
"이렇게 만났는데 식사라도 한 끼 하지"하기에
"지금 시장보고 오는 길이라 곤란하니 다음에 해요"하자 웃으며
"그러지"하고는 자기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었습니다.
다음날 남편이라는 작자가 지방에 여자를 구하러 간다며 몇 일 집을 비운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별로 할 일도 없어서 한 기사 아저씨가 생각이나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기사 아저씨는 술이나 한잔하자며 나오라고 하자 저는 생각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이
오케이를 하고 한 기사 아저씨와 약속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을 하자 한 기사 아저씨는 먼저 나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칸막이가 둘러 친 그런 주점이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구석진 자리로 가 마주 앉더니 술과 안주를 시켰습니다.
"전에 직업소개소 하던 친구와 살아?"하고 묻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자
"부부사이는 좋고?"하고 묻기에
"휴~!그러면 얼마나 좋게요"하고 웃자
"왜? 잘 안 해주나 보지?"하고 또 묻기에
"그런 이야기 그만 하고 술이나 마셔요"하고는 술이 들어오기에 한 기사 아저씨의 잔을 채워주자
한 기사 아저씨도 제 잔을 채워주기에 단숨에 마시고 안주를 집어먹자
"나 그 친구 아니었으면 내가 은숙이 손대려고 했지"하며 웃기에
"한 기사 아저씨는 그 때 결혼 했었잖아요"하고 웃자
"결혼하고 안하고가 중요한가"하며 웃더니 제 옆으로 와 앉더니 제 손을 잡으며
"지금도 은숙이 안고싶어"하며 제 어깨를 잡아당겨 끌어안았습니다.
"아~흑 이러 지 마요"하는 저는 그 말을 한 제가 미웠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힘주어 끌어당기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제 입을 덮쳤습니다.
그러며 제 가슴을 사정없이 주물렀습니다.
제 보지에는 둑 터진 강처럼 보지에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의 목을 끌어안은 제 팔에 힘이 들어가 있음도 느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는 팬티를 옆으로 하고 손을 넣더니
"은숙이 많이 젖었네"입술에서 입술을 때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가 그러는데 안 젖을 여자가 어디 있어요"하며 눈을 흘기자
"여기서 나가지"하기에 고개를 숙이고
"술 아까워요"하자
"그럼 마시자"하며 손가락으로 보지 구멍을 쑤시며 마시자 저도 질세라 한 기사 아저씨의
바지지퍼를 지퍼를 내리고 그 안에 손을 넣고 한 기사 아저씨의 좆을 주무르며 술을 마셨습니다.
남편이라는 작자의 좆 보다 크고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듬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멋진 좆이 열 받은 내 보지 달래어 주겠지>하는 마음으로 나머지 술을 다 비우고 한 기사 아저씨는
저의 손을 잡고 나가서는 두리번거리더니 길 건너의 여관 간판을 가리키고는 길을 건너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계산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한 기사 아저씨와 저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재빨리 옷을 벗어 던지고는
침대 아래부터 끌어안고 서로의 좆과 보지로 서로를 자극하고 키스를 하며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제 침이 한 기사 아저씨의 목구멍으로 한 번 넘어가면 곳 이어서 한 기사 아저씨의 침이 제
목구멍으로 들어오기를 수 차례 거듭하자 저는 손을 아래로 내려 한 기사 아저씨의 좆을 잡아
제 보지 구멍에 끼우자 한 기사 아저씨는 힘을 주어 깊숙이 박아 넣었습니다.
"아~!들어와요"저는 한 기사 아저씨의 입술에서 입술을 때고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은숙이 보지 남편 있는 여자 보지인가?"하고 묻기에
"왜요?"하고 묻자
"구멍이 너무 적어"하기에 저는 한 기사 아저씨의 등을 끌어안으며
"애 아버지 한 달에 한 두 번 와요"하자
"아~많이 굶었군"하며 제 팔을 풀고 저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청 많이"하며 따라 웃자 천천히 힘주어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으~~~~~~~"하고 신음을 하자 속도를 천천히 올리며
"앞으로 이 멋진 보지 안 외롭게 해 주지"하는 말에 저는 다시 한 기사 아저씨의 등을 끌어안았습니다.
"고마워요, 한 기사 아저씨"하고 말하자 한 기사 아저씨는 제 입술에 키스를 하며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그다지 다른 기술을 쓰지 않고 그저 묵묵히 좆으로 보지를 쑤시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씹물이 마치 봇물 터지듯이 제 보지에서는 흘러나왔습니다.
또 연속적으로 오르는 오르가즘은 제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아우토반을 무한 질주하는 듯하게 힘차게 펌프질하는 한 기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 한 목숨 바쳐서라도 한 기사 아저씨가 좋아하는 일 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의 그 음탕한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좋게 들리던지......
만약 남편이라는 작자가 그런 말을 하였으면 당장에 내려오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은숙이 보지 물 많네"하는 말에
"많으면 안 좋아요?"하고 놀라 묻자
"아니야 좋아"하며 웃었습니다.
"자주 만나줘요"하자
"그럼 은숙이가 싫다고 하면 몰라도"하기에
"건 일을 없을 거예요"하자
"고마워"하더니
"안에 싸도 되?"하기에 미친 듯이 엉덩이를 흔들어 최고의 절정을 같이 느끼려고 하며
"그래요, 안에 싸 주세요"하자 한 기사 아저씨는 제 마음을 아시는지 더 펌프질을 하시더니
"아~악! 올라요 올라"하고 소리치자
"으~싼다"하고는 제 보지 안으로 뜨거운 좆물을 쏟아 붓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들어와요, 아~좋아"하며 웃자
"나도"하고는 다 쌀 때까지 긴 입맞춤을 하여 주었습니다.
다 싸고 빼려하기에 저는 양다리로 한 기사 아저씨의 엉덩이를 감으며
"조금만 더"하고 끌어안았습니다.
꽉 찬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대로 있다 한 기사 아저씨를 풀어주자 한 기사 아저씨가 일어나기에 저도
따라 일어나 한 기사아저씨의 좆을 빨아주었습니다.
비릿하였지만 남편이라는 작자의 좆물 보다는 맛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샤워를 하고 우리는 다시 술집으로가 술을 마셨습니다.
이 것이 제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첫 섹스였습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닌 다른 남자 그도 한 기사 아저씨의 좆 맛을 본 후에는 남편이라는 작자가
제 몸에 올라오던 말던 신경이 안 쓰였으나 단 하나 한 기사 아저씨가 자기 아내의 몸 위에
올라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리며 강한 질투 감이 생겼으나 참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기사 아저씨는 틈만 나면 저를 찾았고 저 역시 틈만 나면 한 기사 아저씨를 찾습니다.
열 받은 내 보지 내가 달래려고......
결혼을 일찍 하여 벌써 사위를 보았고 남편이라는 작자는 사업이라고 한답시고 허구한날 술에
절여서 밤늦게 집이라고 찾아오다 보니 허구한날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세우기 일수입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직업소개소인데 주로 술집에 일하는 여자들을 소개하는
그다지 제 마음에 안 드는 직업인데 제 느낌으로는 자기가 소개시켜주는 여자들과 섹스도
하는 것 같은데 증거는 없고 심증만 가지고 있습니다.
남방에 묻은 립스틱 자국이나 긴 머리카락을 남편이라는 작자의 옷에서 수 십 번 보았으니까요.
자기 말로는 거래상 하는 수 없이 그런 여자들과 술자리를 하기는 하지만 단 한번도 저 이외에의
여자에게 한눈을 판 적이 없다고 큰소리를 치는데는 할 말이 없답니다.
제가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를 만난 것도 당시에 남편이 근무하던 직업소개소였습니다.
19살 나이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를 하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야 하였습니다.
처음에 급사 비슷한 일을 하였으나 월급을 잘 안 주어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직업소개소로 갔습니다.
당시에 남편은 직업소개소에서 상담을 하거나 일자리에 여자들을 데리고 가서 인도를 시키는
자질구레한 일을 하며 직업소개소의 일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김 은숙 나이는 19살 희망 직업은 사무실 심부름이라, 맞아?"하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자
"혹시 술집은 생각 없어?"하기에
"그런 곳은 안 가요"하고 힘주어 말하자
"그 정도 미모면 최상급 대우받겠는데...."하며 말을 흐리기에
"죽어도 술집은 안 가요"하자
"아직 처녀야?"하기에
"무슨 말씀을..."하고 말을 흐리자
"법적으로 말고 육체적으로 처녀냐고?"하기에 얼굴을 붉히며
"네"하고 대답을 하자
"그 처녀 가지고 다니려면 안 성가셔?"하고 묻기에
"그런 말 그만 하시고 일자리나 알아 봐 주세요"하자
"좋아, 좋은 일자리 내가 책임지고 주선하는 조건으로 나랑 안 사귈래?"하기에
"아저씨 아니 예요?"하고 물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보기에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는 30이 훨씬 넘게 보였습니다.
"야~이 아가씨 누구 혼사 줄 망치려나, 내가 몇 살로 보여?"하기에
"30살 넘겠는데...."하고 말을 흐리자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여?"하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자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었는데 1948년 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27살 인 샘이죠.
그러나 겨우 19살의 저에게는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와 저는 8살이라는 나이 차이가나
"생각 해 보고요"하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생각하고 말고 없이 바로 대답해"하기에 좋은 직장 얻을 욕심으로
"알았어요"하자
"그럼 오늘 오후 6시에 이 앞에 금잔디 다방으로 나와"하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고 그 직업소개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와의 교제는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는 무척 자상하게 저를 대하여 주었습니다.
일자리도 아주 편하고 쉬운 용달차 사무실에 취직을 시켜주었는데 기사들의 건 입담에 하루가
쉽게 지나가고 일도 전화만 받다보니 무척 편하고 틈틈이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좋았습니다.
일과가 끝이 나면 지금의 남편이라는 작자인 윤 도식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행복감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지금의 남편인 도식씨는 저에게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또 영화도 보여주며 환심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도 자주 만나다 보니 그이가 점점 마음에 들었습니다.
용달차 사무실은 한 달에 두 번의 노는 날이 있었는데 첫 째 일요일과 셋 째 일요일 놀았습니다.
그 날이 아마 가을의 첫 째 토요일이었을 것입니다.
"은숙아 우리 다대포 몰운대 구경가자"하기에 저는 그이를 따라갔습니다.
여러분들은 밤에는 불야성을 이루는 다대포를 생각하시겠지만 당시에 다대포는 교통이 무척 불편하였습니다.
장림을 지나 다대포까지 단 한 채의 집도 없었습니다.
몰운대에 올라가더니 밤바다를 보며 그이는 처음으로 키스를 하였습니다.
아니 얼떨결에 당하였습니다.
그이는 미리 준비한 과자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 저에게 억지로 한잔을 먹이고 키스를 한 것입니다.
술이라고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먹은 적이 없었던 저의 정신이 몽롱하여지자 그이의 어깨에 기대었는데
그이는 찬스다 하는 생각을 하고 제 입술을 훔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이는 천천히 나머지 술을 다 마셨습니다.
그 것이 그이의 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저로서는 그이가 천천히 마시던 말던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바다를 항해하는 밤배만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이는 다 마시자 시계를 보더니 가자고 하며 저를 부축하고 버스 종점으로 갔습니다.
버스 종점으로 가자 버스를 정비하고 있던 아저씨에게 언제 차가 가는가 그이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정비기사 아저씨는 막차가 끊긴지 오래 되었다 하였습니다.
당시에 다대포에서 시내로 나가는 차는 저녁 9시면 끊어졌습니다.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그이의 팔을 잡고 시계를 보니 9시가 절반도 넘은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뭐요?
택시라도 잡아타면 안 되느냐 구요?
그 시간에 당시에 택시는 안 들어왔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의 다대포는 부산의 외딴 섬 아닌 외딴 섬이었습니다.
그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여인숙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그이를 따라 여인숙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식씨는 이 선을 넘으면 안 되"하고 방에 들어서자 방 가운데에 금을 긋고 말하자
"알았어"하고 웃기에 안도의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아니 도식씨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다녀오니 도식씨가 제 이부자리를 깔아 놓았기에 제가 상의만 벗고 눕자
"은숙이 이 금 침범하였으니 나도 침범한다"하자
"내가 뭐?"하자
"화장실 가며 이 금 넘었지?"하더니 저를 덮쳤습니다.
"그건그건 화장실 악! 하지마 도식씨"하고 소리쳤으나 힘좋은 남자 그도 소주 한 병을 마신
사람의 힘은 저를 맥을 못 치게 만들었고 오히려 그이의 성적인 욕구를 부채질하는 꼴이었습니다.
"도식씨 살려줘요"하고 애원을 하는 제 입은 어느 틈에 도식씨의 입술로 덮쳐져있었고 또
도식씨의 손은 제 상의 안으로 들어와 제 가슴을 마구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이러 지 마, 응~!도식씨"하고 얼굴을 돌리며 말하자 그이는 빙그레 웃으며
"은숙이 그 걸치장스러운 처녀 오늘 때자"하기에
"나중에 도식씨와 결혼하면 초야에 바칠게"하며 눈물을 흘리자 도식씨는 눈물을 닦아주며
"오늘이 초야라고 생각해"하고는 제 치마 안으로 손을 넣고는 팬티를 찢어져라 당겼습니다.
손바닥 보다 작은 제 팬티는 힘없이 제 엉덩이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하지마 응, 도식씨"하고 애원을 하였지만 그 말은 이미 불이 당겨진 도식씨의 성적인 욕구에 부채질을 한 꼴이었습니다.
"가만있어"하더니 도식씨는 제 몸에 몸을 포개고 키스를 하면서 하체를 들고 부스럭거리더니
치마를 조금위로 들어올리고 자신의 하체를 제 하체에 밀착을 하자 제 보지에 딱딱 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19년을 고이 간직한 제 보지 둔덕에 생애 최초로 남자의 좆이 닿은 것입니다.
"앙~!"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 역시도 도식씨의 성욕을 부채질하는 꼴이었습니다.
한참을 좆으로 제 보지 둔덕을 비비던 그이는 어느 틈에 바지와 팬티를 벗더니 제 보지의
갈라진 틈을 벌리고는 좆을 조금 넣더니 제 입술에 입술을 포개고는 하체에 힘을 주었습니다.
"읍!"하는 아픔의 신음이 그이의 입에 가려져 밖으로 분출을 못하고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하복부가 찢어지는 엄청난 통증은 하염없는 눈물을 만들어내었고 그 눈물은 하염없이 귀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이는 저의 아픔은 생각도 안 하고 자기 할 짓만 열심히 하였습니다.
아픔과 믿음을 잊어버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이는 한마디 상의의 말도 없이 좆물을 제 보지 안에 뿌려 넣었습니다.
또 다시 밀려오는 아픔은 처음 박을 때의 그 아픔만큼이나 아팠습니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이는 저에게 깊은 키스를 하여주고는 무엇으로 제 보지를 닦아주곤 저를 끌어안고
팔 베개를 하여주기에 그이의 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고 눈을 뜨니 그이가 또 제 몸 위에 올라가 막 좆을 박으려 하였습니다.
"무서워요"하고 말하자
"이미 질 난 것 한번만 더할게"하고는 좆을 제 보지에 다시 박았습니다.
어제 밤만큼은 아프지는 않았지만 통증은 역시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저 죽은 시체처럼 누워서 이를 앙 다물고 빨리 끝이 나기만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그이는 또 한번의 좆물을 제 보지 안에 싸고서야 저를 해방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다시 몰운대에 올라가 해맞이를 구경하였는데 몰운대에 오르고 내려오는데
가랑이가 얼마나 쓰리고 아팠는지 지금 생각만 하여도 끔찍합니다.
그러나 그이는 제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하였습니다.
그 날밤 저는 아빠에게 죽도록 맞았고 엄마에게 별의별 잔소리를 들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후로는 그이는 틈만 나면 저를 여관이나 여인숙으로 끌고 가 빠구리를 하였습니다.
한달 두 달 생리가 없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이에게나 엄마에게도 말을 못하고 지냈습니다.
생리가 없어진지 다섯 달이 지나자 더 이상 무서움을 참지 못하고 그이에게 사실을 말하자
그이도 놀라며 저를 산부인과에 데리고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틀림없는 임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절수술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이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여 일찍 이야기 안 하였다고 힐난을 하며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리고는 수소문을 하여 돌팔이 의사에게 가서 중절을 하자고 꼬았습니다.
절대로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고 집을 뛰쳐나와 그이가 자취하는 자취방에서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배는 점점 불러오자 용달차 사무실에도 그만두고 그이의 자취방에 박혀 출산 일만 기다렸습니다.
20살이 된 8월에 지금 사위와 잘 살고있는 유나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를 낳고서야 친정 부모님에게 찾아가 승낙을 받고(?) 24살에 결혼식을 조촐하게 올렸습니다.
그러다 그이는 유나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독립을 하여 지금의 직업소개소를 개업을 하였습니다.
직업소개소 문을 열자 그이가 제 몸 위에 오르는 것이 눈에 띄게 적어졌습니다.
그이의 말로는 일이 힘이 들어 그렇다고 하였으나 앞에도 말씀 드렸듯이 그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젊고 싱싱한 아가씨들과 살을 섞다보니 늙어 가는 아내는 안중에 없어진 것이죠.
여자로서 최후의 몸부림을 칠 40대입니다.
여자는 잘 아시겠지만 폐경기만 지나면 마음만 여자이지 육신은 여자가 아닌 썩은 육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여자입니다.
마지막 몸부림을 쳐야할 폐경기를 눈앞에 둔 여자란 말입니다.
그러나 소심한 저는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삭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니 은숙이 아니야?"하는 남자의 음성에 돌아보니 그 옛날 용달차 사무실에 근무를 할 때에
용달기사를 하던 한 기사였습니다.
당시에 3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 한 기사 아저씨는 머리가 히끗히끗한 중년의 신사로 변하여 있었습니다.
"어~머! 한 기사 아저씨"하고 놀라자
"야~그 곱던 은숙이가 이제 중년의 아줌마가 다 되었네"하며 웃었습니다.
"아~이! 아저씨 두"하며 얼굴을 붉히자
"이렇게 만났는데 식사라도 한 끼 하지"하기에
"지금 시장보고 오는 길이라 곤란하니 다음에 해요"하자 웃으며
"그러지"하고는 자기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었습니다.
다음날 남편이라는 작자가 지방에 여자를 구하러 간다며 몇 일 집을 비운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별로 할 일도 없어서 한 기사 아저씨가 생각이나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기사 아저씨는 술이나 한잔하자며 나오라고 하자 저는 생각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이
오케이를 하고 한 기사 아저씨와 약속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을 하자 한 기사 아저씨는 먼저 나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칸막이가 둘러 친 그런 주점이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구석진 자리로 가 마주 앉더니 술과 안주를 시켰습니다.
"전에 직업소개소 하던 친구와 살아?"하고 묻기에
"네"하고 대답을 하자
"부부사이는 좋고?"하고 묻기에
"휴~!그러면 얼마나 좋게요"하고 웃자
"왜? 잘 안 해주나 보지?"하고 또 묻기에
"그런 이야기 그만 하고 술이나 마셔요"하고는 술이 들어오기에 한 기사 아저씨의 잔을 채워주자
한 기사 아저씨도 제 잔을 채워주기에 단숨에 마시고 안주를 집어먹자
"나 그 친구 아니었으면 내가 은숙이 손대려고 했지"하며 웃기에
"한 기사 아저씨는 그 때 결혼 했었잖아요"하고 웃자
"결혼하고 안하고가 중요한가"하며 웃더니 제 옆으로 와 앉더니 제 손을 잡으며
"지금도 은숙이 안고싶어"하며 제 어깨를 잡아당겨 끌어안았습니다.
"아~흑 이러 지 마요"하는 저는 그 말을 한 제가 미웠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힘주어 끌어당기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제 입을 덮쳤습니다.
그러며 제 가슴을 사정없이 주물렀습니다.
제 보지에는 둑 터진 강처럼 보지에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의 목을 끌어안은 제 팔에 힘이 들어가 있음도 느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는 팬티를 옆으로 하고 손을 넣더니
"은숙이 많이 젖었네"입술에서 입술을 때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가 그러는데 안 젖을 여자가 어디 있어요"하며 눈을 흘기자
"여기서 나가지"하기에 고개를 숙이고
"술 아까워요"하자
"그럼 마시자"하며 손가락으로 보지 구멍을 쑤시며 마시자 저도 질세라 한 기사 아저씨의
바지지퍼를 지퍼를 내리고 그 안에 손을 넣고 한 기사 아저씨의 좆을 주무르며 술을 마셨습니다.
남편이라는 작자의 좆 보다 크고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듬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멋진 좆이 열 받은 내 보지 달래어 주겠지>하는 마음으로 나머지 술을 다 비우고 한 기사 아저씨는
저의 손을 잡고 나가서는 두리번거리더니 길 건너의 여관 간판을 가리키고는 길을 건너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계산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한 기사 아저씨와 저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재빨리 옷을 벗어 던지고는
침대 아래부터 끌어안고 서로의 좆과 보지로 서로를 자극하고 키스를 하며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제 침이 한 기사 아저씨의 목구멍으로 한 번 넘어가면 곳 이어서 한 기사 아저씨의 침이 제
목구멍으로 들어오기를 수 차례 거듭하자 저는 손을 아래로 내려 한 기사 아저씨의 좆을 잡아
제 보지 구멍에 끼우자 한 기사 아저씨는 힘을 주어 깊숙이 박아 넣었습니다.
"아~!들어와요"저는 한 기사 아저씨의 입술에서 입술을 때고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은숙이 보지 남편 있는 여자 보지인가?"하고 묻기에
"왜요?"하고 묻자
"구멍이 너무 적어"하기에 저는 한 기사 아저씨의 등을 끌어안으며
"애 아버지 한 달에 한 두 번 와요"하자
"아~많이 굶었군"하며 제 팔을 풀고 저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청 많이"하며 따라 웃자 천천히 힘주어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으~~~~~~~"하고 신음을 하자 속도를 천천히 올리며
"앞으로 이 멋진 보지 안 외롭게 해 주지"하는 말에 저는 다시 한 기사 아저씨의 등을 끌어안았습니다.
"고마워요, 한 기사 아저씨"하고 말하자 한 기사 아저씨는 제 입술에 키스를 하며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는 그다지 다른 기술을 쓰지 않고 그저 묵묵히 좆으로 보지를 쑤시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씹물이 마치 봇물 터지듯이 제 보지에서는 흘러나왔습니다.
또 연속적으로 오르는 오르가즘은 제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아우토반을 무한 질주하는 듯하게 힘차게 펌프질하는 한 기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 한 목숨 바쳐서라도 한 기사 아저씨가 좋아하는 일 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한 기사 아저씨의 그 음탕한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좋게 들리던지......
만약 남편이라는 작자가 그런 말을 하였으면 당장에 내려오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은숙이 보지 물 많네"하는 말에
"많으면 안 좋아요?"하고 놀라 묻자
"아니야 좋아"하며 웃었습니다.
"자주 만나줘요"하자
"그럼 은숙이가 싫다고 하면 몰라도"하기에
"건 일을 없을 거예요"하자
"고마워"하더니
"안에 싸도 되?"하기에 미친 듯이 엉덩이를 흔들어 최고의 절정을 같이 느끼려고 하며
"그래요, 안에 싸 주세요"하자 한 기사 아저씨는 제 마음을 아시는지 더 펌프질을 하시더니
"아~악! 올라요 올라"하고 소리치자
"으~싼다"하고는 제 보지 안으로 뜨거운 좆물을 쏟아 붓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들어와요, 아~좋아"하며 웃자
"나도"하고는 다 쌀 때까지 긴 입맞춤을 하여 주었습니다.
다 싸고 빼려하기에 저는 양다리로 한 기사 아저씨의 엉덩이를 감으며
"조금만 더"하고 끌어안았습니다.
꽉 찬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대로 있다 한 기사 아저씨를 풀어주자 한 기사 아저씨가 일어나기에 저도
따라 일어나 한 기사아저씨의 좆을 빨아주었습니다.
비릿하였지만 남편이라는 작자의 좆물 보다는 맛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샤워를 하고 우리는 다시 술집으로가 술을 마셨습니다.
이 것이 제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첫 섹스였습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닌 다른 남자 그도 한 기사 아저씨의 좆 맛을 본 후에는 남편이라는 작자가
제 몸에 올라오던 말던 신경이 안 쓰였으나 단 하나 한 기사 아저씨가 자기 아내의 몸 위에
올라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리며 강한 질투 감이 생겼으나 참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기사 아저씨는 틈만 나면 저를 찾았고 저 역시 틈만 나면 한 기사 아저씨를 찾습니다.
열 받은 내 보지 내가 달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