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흔한일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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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5:09 조회 874회 댓글 0건본문
인터넷 포탈사이트가 발전하면서 인쇄물로 된 신문을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가끔은 지하철을 타면서 지루한 시간을 떼우려고 일부러 사는 경우도 있지만 선반위에 쓰레기처럼 쌓여있는 무까지(공짜신문)들이 널려있어서 그냥 집어 읽기만 하면 그날의 하루는 시작된다. 출근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란 것이 컴퓨터 파워를 켜고 모니터에 나타나는 많은 아이콘 중에서 익스플러로를 쿡 누르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다 보니 시작페이지에 나타난 뉴스란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훤히 알 수 있는 정말 편한 세상이다.
"경수아빠, 일 났어요." 무척 떨리는 목소리로 마누라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일단 회사에 출근하면 도통 전화를 안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전화를 했을까, 궁금증 보다 두려움을 느꼈다.
"무슨일인데?" 떨리는 목소리에 대고 물었다.
"일산에 어젯밤 강도가 들어 사람이 죽었데요."
"흔한 일 아냐? 일산이 손바닥 만한 곳도 아닌데..."
"그게 아니고, 경미가 죽었다니까요."
순간 눈 앞이 깜깜했다. 경미라면 얼마전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핏덩이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학교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래? 잡았데?"
"신랑이 밤 늦게 들어와서 발견하자마자 신고했는데 아직도 수사가 시작되지 않았데요."
"엄청 놀랐겠네. 가 볼꺼야?"
"살 떨려서 못가겠어요. 너무 무서워!."
아내는 사고소식만 전한 채 전화를 끊었다. 참으로 허망한 세상이다. 오천만명이 살고 있는 이 땅엔 하루에도 수백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몇명은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도로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서 알고있다. 전광판 숫자에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쓰릴까만은 바쁜 일상 속에서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일에 신경쓸 여가도 없었지만 인터넷 사건란을 빼곡 채우며 올라오는 기사들 조차 건성으로 읽으며 사람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구나 혀만 끌끌 차면 그뿐이었다.
경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민규의 절망하는 모습이 떠 올랐다. 복덩이를 낳자마자 집도 사게됐다며 이젠 가족을 위해서 뼈가 부서지더라도 열심히 일해야 할 명분이 생길만 하지 않냐며 함지박만하게 웃음을 참지 못하며 좋아하던 모습. 아내의 동창이면서 내 동창이기도 했던 경미와 불꽃튀는 삼각관계에 빠져들었을 때 슬며시 나를 대신할 멋진 민규를 소개시킴으로써 오히려 네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되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했던 지난 날. 나는 민규의 핸드폰 번호를 쿡쿡 누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 민규는 곡소리 같이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 얼마나 놀랐겠나. 형사들이 수사는 착수했어?"
"아침나절에 형사 한 사람이 집안을 흝어보기만 하고 갔어요."
"아이는 어떻고?"
"애 엄마 시신에 눌려서 질식사 했어요."
"참으로 딱한 일이 벌어졌네. 내가 도와줄게 뭐 있을까?"
"형님요, 억울합니다. 애 엄말 죽인 범인을 잡아야죠."
"형사는 뭐라하던데?"
"강도가 사람까지 죽였네라며 혀만 끌끌 차던데요."
"영화에서 보면 과학수사대가 출동해서 감식하고 난리던데..."
"벌써 몇시간이나 지났는데, 아무 소식도 없어요."
"경찰서루 전활 또 해보지 그러나?"
"사건이 어디 한두군데라야 사람을 빼든지 그런다네요."
"알았어, 나라도 전활 해보지."
"너무 흔한일이래요. 강도가 들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너무 억울해요."
"인터넷 사건란엔 자네 집 소식이 전혀 실리지 않았던데..."
"형님, 신문에도 내 주세요.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죽겠어요."
나는 전화통화를 마치고 사건내용을 요약하여 각 신문사의 기사제보란에 글을 올렸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죽은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없으련만 한 참을 기다려도 신문사 기자가 공식적으로 다룬 기사는 올라오질 않고 시시콜콜한 사건들만 계속 인터넷에 새롭게 뜰 뿐이다. 세상의 가치기준이 바뀐 걸까? 몰라도 될만한 연애인들의 뜬소문엔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한 가정이 풍지박살난 이번일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일상 업무를 하면서 잠시 그 사건을 잊고 있었지만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인터넷창을 열었다. 아직 사건을 다룬 신문은 없다. 도대체 신문에서 다룰 만한 사건의 가치기준은 뭐란말인가 싶어 은근히 화가나서 민규도 위로할 겸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밥은 먹었어?"
"아이고, 밥이 뭡니까?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고 그냥 멍하니 있죠."
"감식반은 왔다갔구?"
"형식적으로 쓱 둘러보곤 가버렸어요."
"감식이 끝났으면 병원에라도 안치시켜야지."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채 수습하기엔 너무 억울해요."
"두 사람이나 죽었다면 수사본부라도 설치해야 하는것 아닌가?"
"본부는 냅두더라도 뭔가 성의만이라도 보여줬으면 하는데..."
"나도 자네말 듣고 신문사에 사건 제보를 했는데, 신경쓰는 사람이 없네."
"형님, 억울한 우리 집사람 범인좀 잡게 도와주세요."
책상 속에서 명함철을 꺼냈다. 오지랍이 넓다고 자랑하던 나였지만 사건사고가 내 주변에서 터질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흔한 수사형사니 검찰이니 하는 쪽엔 특별한 인맥이 없다. 발등에 떨어진 화급한 일을 당하기 전엔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일인데 너무 그 쪽엘 소홀했구나 싶은 후회가 들었다. 한참 명함철을 넘기던 중에 언젠가 사무실엘 찾아왔던 초등학교 친구의 명함이 눈에 띄었다. 그 친군 군인신분이라 명함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내 명함 뒷면에 볼펜으로 연락처 몇자를 적어 둔 것이다. 마침 사건이 난 근처 군부대니까 경찰 계통에 줄이라도 달 수 있을까 싶어 전화번호를 누르며 작은 기대를 해 본다.
"어, 영철아, 웬일이야?"
"응, 부대근처에 있는 경찰서에 힘좀 써 줄수 있냐?"
"힘? 글쎄...협조는 될꺼야."
"니네 부대근처에 사는 후배집에 강도가 들었었어. 사람도 두명이나 죽고, 그런데 수사에 성의가 없는 것 같아서 말야."
"그런일이 있었니?"
"응, 신문에두 사건 보도가 안나서 모르는구나?"
"그렇게 큰 사고인데 아직 안났어?"
"사건제보는 오전에 했는데 신문에 아무도 내 주질않네."
"험한 세상이라 그런 일이 워낙 많다보니..."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시시콜콜한 사건들은 돈주고 내는거야??"
"그렇지 않지만 워낙 사건들이 많잖아. 신문에 기사로 다루는 것도 원칙이 있을꺼야."
"원칙이라니? 사건사고는 넓은 사회면 귀퉁이에라면 얼마든지 내 줄수 있는것 아냐?"
"내가 신문사냐? 핏대 올리지 말고 우선 주소랑 전화번호랑 이름을 얘기해봐."
"이름은 김민규고 전화번호는 핸드폰인데 9999-9999-9999, 주소는 일산 xxx아파트 xxxx호야, 신경 좀 써줘."
군수사를 담당하는 친구 덕에 살인범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좋아봤자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민규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결과가 나올것이라고 알려줬다. 직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걸로 봐선 조심스럽게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가끔씩 격하게 튀어나온 말 조각들을 주워모아 나름대로 직장 상사인 내 심사가 편치않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들중엔 경찰이나 검찰쪽에 가까운 친인척이 있어서 경미 사건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은 희망을 가져본다.
"자네들 중에, 혹시 수사기관에 손 닿는 사람 있나?"
"무슨 일인데요?"
"어젯밤에 강도 손에 아는 사람이 죽었어. 죽은 사람의 심경을 헤아릴겸 범인 잡는 노력을 해야 할텐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남편이 여간 힘든게 아닌가봐."
"누가 신고했는데요?"
"밤 늦게 남편이 귀가해서 발견했데."
"그래요? 용의자 선상에 제일 먼저 오르겠네요."
"뭐? 용의자?"
"그럼요. 경찰이 수사에 벽을 느끼면 제일 괴롭히는 사람이 목격자나 신고자라잖아요."
"설마, 상심한 남편에게 힘들게 하겠어?"
"흔한 일이에요."
흔한일이라고 말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강도를 당해 재물을 몽땅 잃고 사람 목숨마져 허무하게 단절된 사건 조차도 흔한일일 뿐이라면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흔하지 않은 일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면 거들떠 보려고도 않는 이들로 부터 보호되야할 소중한 일들을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김대리, 자네 말을 너무 심하게 한것 같지 않나?"
"제가 뭘요?"
"흔한 일이라니."
"아, 그거요? 맨날 사건이 터지잖아요. 어느 한 날이라도 자살이니 살인이니 방화니 하는 것들이 없는 날이 있었나요?"
"그래도 사람이 이유없이 죽었다는데 할 말은 아니지."
"죄송합니다. 요즘은 사기니 절도니 하는 것은 아얘 신문에도 안나는 세상에 살다보니."
"알았네. 자네가 무슨 도움이 되겠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일부턴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왜죠?"
"어차피 자네 일 일뿐일세."
김대리는 농담으로 받아 들이고 싶었겠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 친구가 가장 소중하게 아둥바둥 지키려고 하던 직장생활을 단절시킴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흔한일로 치부해 버리는 짤리는 아픔을 맞보게 하고 싶다. 그렇다고 경미의 사건에 도움이 될리는 없지만 아파하는 사람앞에서 이빨을 내 보이며 웃어재끼는 실없는 놈을 위해 월급을 챙겨줄 생각은 없다.
오늘 밤은 민규와 함께 있어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를 주차시키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일산엘 도착하니 민규는 엊저녁 부터 한술도 뜨지 않은 채 황망한 모습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짬뽕 두 그릇을 시켜놓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서 역시 죽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산사람은 살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후엔 누가 다녀갔니?"
"경찰서에서 내일부터 수사본부를 설치하겠다네요."
"왜 오늘은 안되고?"
"사람이 없데요. 형사들이 너무 바빠서 팀 구성이 안된다네요."
"몇일 출근도 못하겠구나?"
"회사에선 몇일이든 일을 마치라고 하더군요."
"다행이다. 회사에서 시간을 내줘서."
"기어보지도 못한 핏덩이가 불쌍해요."
"생각하지마, 자꾸 생각하면 애 엄마도 힘들어할테니까."
"형님, 어떻게 이런일이 생길 수 있어요?"
"직원들이랑 자네일을 상의하다가 한 놈이 흔한일이라고 하는 바람에 그 놈을 짤라 버렸어."
"아이고, 저 때문에 애궃은 직원하나가 날라갔군요."
"아니야, 남의 일엘랑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지 밥그릇만 챙기는 놈들이 너무 많은 세상일 뿐이야.
어차피 그 놈 사표를 평소부터 받을 생각이었거든."
김대리는 어차피 짤릴 운명이었다. 다만 민규의 일과 연관되어 억울하다 싶은 감정을 갖고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 일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맥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침 출근시간에 유독 지각을 많이했다. 한 두번은 늦은 이유를 물었는데 그때마다 지하철이 연착했느니 철도에 누가 뛰어내리는 통에 불통됐느니 하면서 여러가지 사변을 털어놓기만 했다. 그런 횟차가 늘어날 수록 이유를 묻는 것 조차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의례이 제일 늦게 오거나 지각할걸로 알고 신경을 끊어 버렸다. 어젯밤 과음하여 늦잠을 잤느니, 배가아파서 병원엘 다녀왔느니 하면서 적어도 한번쯤은 자기 잘못에 의해 지각했노라고 말하기만 했더라도 그 놈에 대한 감정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른다. 평일에 있는 직원경조사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석하면서도 휴일이 낀 날엔 오만가지 핑게를 대며 참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휴일날 가끔은 내 통솔권안에 든 직원들과 근교 산이라도 오를라 치면 그 놈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장님이 참석하는 저녁 회식자리라면 언제나 그 친구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동료들에겐 배신감이라는 공분을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 친구의 머리속에는 자기만을 위한 독특한 물질이 또아리틀고 있어서 지금은 남의 밑에서 일하더라도 조금씩 남을 통제하는 위치로 올라가면 직원들을 못살게 굴고도 남을 놈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런 놈의 입에서 흔한일이라고 튀어 나온 것은 오래 전부터 형성된 밑바닥 의식세계로 부터 우러나온 비겁함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경수아빠, 일 났어요." 무척 떨리는 목소리로 마누라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일단 회사에 출근하면 도통 전화를 안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전화를 했을까, 궁금증 보다 두려움을 느꼈다.
"무슨일인데?" 떨리는 목소리에 대고 물었다.
"일산에 어젯밤 강도가 들어 사람이 죽었데요."
"흔한 일 아냐? 일산이 손바닥 만한 곳도 아닌데..."
"그게 아니고, 경미가 죽었다니까요."
순간 눈 앞이 깜깜했다. 경미라면 얼마전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핏덩이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학교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래? 잡았데?"
"신랑이 밤 늦게 들어와서 발견하자마자 신고했는데 아직도 수사가 시작되지 않았데요."
"엄청 놀랐겠네. 가 볼꺼야?"
"살 떨려서 못가겠어요. 너무 무서워!."
아내는 사고소식만 전한 채 전화를 끊었다. 참으로 허망한 세상이다. 오천만명이 살고 있는 이 땅엔 하루에도 수백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몇명은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도로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서 알고있다. 전광판 숫자에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쓰릴까만은 바쁜 일상 속에서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일에 신경쓸 여가도 없었지만 인터넷 사건란을 빼곡 채우며 올라오는 기사들 조차 건성으로 읽으며 사람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구나 혀만 끌끌 차면 그뿐이었다.
경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민규의 절망하는 모습이 떠 올랐다. 복덩이를 낳자마자 집도 사게됐다며 이젠 가족을 위해서 뼈가 부서지더라도 열심히 일해야 할 명분이 생길만 하지 않냐며 함지박만하게 웃음을 참지 못하며 좋아하던 모습. 아내의 동창이면서 내 동창이기도 했던 경미와 불꽃튀는 삼각관계에 빠져들었을 때 슬며시 나를 대신할 멋진 민규를 소개시킴으로써 오히려 네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되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했던 지난 날. 나는 민규의 핸드폰 번호를 쿡쿡 누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 민규는 곡소리 같이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 얼마나 놀랐겠나. 형사들이 수사는 착수했어?"
"아침나절에 형사 한 사람이 집안을 흝어보기만 하고 갔어요."
"아이는 어떻고?"
"애 엄마 시신에 눌려서 질식사 했어요."
"참으로 딱한 일이 벌어졌네. 내가 도와줄게 뭐 있을까?"
"형님요, 억울합니다. 애 엄말 죽인 범인을 잡아야죠."
"형사는 뭐라하던데?"
"강도가 사람까지 죽였네라며 혀만 끌끌 차던데요."
"영화에서 보면 과학수사대가 출동해서 감식하고 난리던데..."
"벌써 몇시간이나 지났는데, 아무 소식도 없어요."
"경찰서루 전활 또 해보지 그러나?"
"사건이 어디 한두군데라야 사람을 빼든지 그런다네요."
"알았어, 나라도 전활 해보지."
"너무 흔한일이래요. 강도가 들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너무 억울해요."
"인터넷 사건란엔 자네 집 소식이 전혀 실리지 않았던데..."
"형님, 신문에도 내 주세요.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죽겠어요."
나는 전화통화를 마치고 사건내용을 요약하여 각 신문사의 기사제보란에 글을 올렸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죽은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없으련만 한 참을 기다려도 신문사 기자가 공식적으로 다룬 기사는 올라오질 않고 시시콜콜한 사건들만 계속 인터넷에 새롭게 뜰 뿐이다. 세상의 가치기준이 바뀐 걸까? 몰라도 될만한 연애인들의 뜬소문엔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한 가정이 풍지박살난 이번일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일상 업무를 하면서 잠시 그 사건을 잊고 있었지만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인터넷창을 열었다. 아직 사건을 다룬 신문은 없다. 도대체 신문에서 다룰 만한 사건의 가치기준은 뭐란말인가 싶어 은근히 화가나서 민규도 위로할 겸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밥은 먹었어?"
"아이고, 밥이 뭡니까?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고 그냥 멍하니 있죠."
"감식반은 왔다갔구?"
"형식적으로 쓱 둘러보곤 가버렸어요."
"감식이 끝났으면 병원에라도 안치시켜야지."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채 수습하기엔 너무 억울해요."
"두 사람이나 죽었다면 수사본부라도 설치해야 하는것 아닌가?"
"본부는 냅두더라도 뭔가 성의만이라도 보여줬으면 하는데..."
"나도 자네말 듣고 신문사에 사건 제보를 했는데, 신경쓰는 사람이 없네."
"형님, 억울한 우리 집사람 범인좀 잡게 도와주세요."
책상 속에서 명함철을 꺼냈다. 오지랍이 넓다고 자랑하던 나였지만 사건사고가 내 주변에서 터질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흔한 수사형사니 검찰이니 하는 쪽엔 특별한 인맥이 없다. 발등에 떨어진 화급한 일을 당하기 전엔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일인데 너무 그 쪽엘 소홀했구나 싶은 후회가 들었다. 한참 명함철을 넘기던 중에 언젠가 사무실엘 찾아왔던 초등학교 친구의 명함이 눈에 띄었다. 그 친군 군인신분이라 명함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내 명함 뒷면에 볼펜으로 연락처 몇자를 적어 둔 것이다. 마침 사건이 난 근처 군부대니까 경찰 계통에 줄이라도 달 수 있을까 싶어 전화번호를 누르며 작은 기대를 해 본다.
"어, 영철아, 웬일이야?"
"응, 부대근처에 있는 경찰서에 힘좀 써 줄수 있냐?"
"힘? 글쎄...협조는 될꺼야."
"니네 부대근처에 사는 후배집에 강도가 들었었어. 사람도 두명이나 죽고, 그런데 수사에 성의가 없는 것 같아서 말야."
"그런일이 있었니?"
"응, 신문에두 사건 보도가 안나서 모르는구나?"
"그렇게 큰 사고인데 아직 안났어?"
"사건제보는 오전에 했는데 신문에 아무도 내 주질않네."
"험한 세상이라 그런 일이 워낙 많다보니..."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시시콜콜한 사건들은 돈주고 내는거야??"
"그렇지 않지만 워낙 사건들이 많잖아. 신문에 기사로 다루는 것도 원칙이 있을꺼야."
"원칙이라니? 사건사고는 넓은 사회면 귀퉁이에라면 얼마든지 내 줄수 있는것 아냐?"
"내가 신문사냐? 핏대 올리지 말고 우선 주소랑 전화번호랑 이름을 얘기해봐."
"이름은 김민규고 전화번호는 핸드폰인데 9999-9999-9999, 주소는 일산 xxx아파트 xxxx호야, 신경 좀 써줘."
군수사를 담당하는 친구 덕에 살인범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좋아봤자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민규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결과가 나올것이라고 알려줬다. 직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걸로 봐선 조심스럽게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가끔씩 격하게 튀어나온 말 조각들을 주워모아 나름대로 직장 상사인 내 심사가 편치않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들중엔 경찰이나 검찰쪽에 가까운 친인척이 있어서 경미 사건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은 희망을 가져본다.
"자네들 중에, 혹시 수사기관에 손 닿는 사람 있나?"
"무슨 일인데요?"
"어젯밤에 강도 손에 아는 사람이 죽었어. 죽은 사람의 심경을 헤아릴겸 범인 잡는 노력을 해야 할텐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남편이 여간 힘든게 아닌가봐."
"누가 신고했는데요?"
"밤 늦게 남편이 귀가해서 발견했데."
"그래요? 용의자 선상에 제일 먼저 오르겠네요."
"뭐? 용의자?"
"그럼요. 경찰이 수사에 벽을 느끼면 제일 괴롭히는 사람이 목격자나 신고자라잖아요."
"설마, 상심한 남편에게 힘들게 하겠어?"
"흔한 일이에요."
흔한일이라고 말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강도를 당해 재물을 몽땅 잃고 사람 목숨마져 허무하게 단절된 사건 조차도 흔한일일 뿐이라면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흔하지 않은 일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면 거들떠 보려고도 않는 이들로 부터 보호되야할 소중한 일들을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김대리, 자네 말을 너무 심하게 한것 같지 않나?"
"제가 뭘요?"
"흔한 일이라니."
"아, 그거요? 맨날 사건이 터지잖아요. 어느 한 날이라도 자살이니 살인이니 방화니 하는 것들이 없는 날이 있었나요?"
"그래도 사람이 이유없이 죽었다는데 할 말은 아니지."
"죄송합니다. 요즘은 사기니 절도니 하는 것은 아얘 신문에도 안나는 세상에 살다보니."
"알았네. 자네가 무슨 도움이 되겠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일부턴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왜죠?"
"어차피 자네 일 일뿐일세."
김대리는 농담으로 받아 들이고 싶었겠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 친구가 가장 소중하게 아둥바둥 지키려고 하던 직장생활을 단절시킴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흔한일로 치부해 버리는 짤리는 아픔을 맞보게 하고 싶다. 그렇다고 경미의 사건에 도움이 될리는 없지만 아파하는 사람앞에서 이빨을 내 보이며 웃어재끼는 실없는 놈을 위해 월급을 챙겨줄 생각은 없다.
오늘 밤은 민규와 함께 있어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를 주차시키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일산엘 도착하니 민규는 엊저녁 부터 한술도 뜨지 않은 채 황망한 모습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짬뽕 두 그릇을 시켜놓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서 역시 죽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산사람은 살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후엔 누가 다녀갔니?"
"경찰서에서 내일부터 수사본부를 설치하겠다네요."
"왜 오늘은 안되고?"
"사람이 없데요. 형사들이 너무 바빠서 팀 구성이 안된다네요."
"몇일 출근도 못하겠구나?"
"회사에선 몇일이든 일을 마치라고 하더군요."
"다행이다. 회사에서 시간을 내줘서."
"기어보지도 못한 핏덩이가 불쌍해요."
"생각하지마, 자꾸 생각하면 애 엄마도 힘들어할테니까."
"형님, 어떻게 이런일이 생길 수 있어요?"
"직원들이랑 자네일을 상의하다가 한 놈이 흔한일이라고 하는 바람에 그 놈을 짤라 버렸어."
"아이고, 저 때문에 애궃은 직원하나가 날라갔군요."
"아니야, 남의 일엘랑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지 밥그릇만 챙기는 놈들이 너무 많은 세상일 뿐이야.
어차피 그 놈 사표를 평소부터 받을 생각이었거든."
김대리는 어차피 짤릴 운명이었다. 다만 민규의 일과 연관되어 억울하다 싶은 감정을 갖고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 일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맥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침 출근시간에 유독 지각을 많이했다. 한 두번은 늦은 이유를 물었는데 그때마다 지하철이 연착했느니 철도에 누가 뛰어내리는 통에 불통됐느니 하면서 여러가지 사변을 털어놓기만 했다. 그런 횟차가 늘어날 수록 이유를 묻는 것 조차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의례이 제일 늦게 오거나 지각할걸로 알고 신경을 끊어 버렸다. 어젯밤 과음하여 늦잠을 잤느니, 배가아파서 병원엘 다녀왔느니 하면서 적어도 한번쯤은 자기 잘못에 의해 지각했노라고 말하기만 했더라도 그 놈에 대한 감정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른다. 평일에 있는 직원경조사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석하면서도 휴일이 낀 날엔 오만가지 핑게를 대며 참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휴일날 가끔은 내 통솔권안에 든 직원들과 근교 산이라도 오를라 치면 그 놈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장님이 참석하는 저녁 회식자리라면 언제나 그 친구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동료들에겐 배신감이라는 공분을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 친구의 머리속에는 자기만을 위한 독특한 물질이 또아리틀고 있어서 지금은 남의 밑에서 일하더라도 조금씩 남을 통제하는 위치로 올라가면 직원들을 못살게 굴고도 남을 놈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런 놈의 입에서 흔한일이라고 튀어 나온 것은 오래 전부터 형성된 밑바닥 의식세계로 부터 우러나온 비겁함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