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보살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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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6:43 조회 847회 댓글 0건본문
아기 보살
사람들은 저를 보고 처녀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아기 보살
즉 제가 무당이라는 말입니다.
무속인의 길 정말이지 험준하기만 합니다.
저를 지시하시는 신의 계시라면 천 길 낭떠러지 밑에 있을 불길 속이라도 뛰어들어야만 하는 운명이니 말입니다.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이나 박수무당의 경우 어떤 한 신의 계시를 받게 되는데 저의 경우 최영장군이 저를 돌보아주고 계시를 하며 지시를 하십니다.
그럼 제가 신을 받게 된 경위부터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9살초부터 머리가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신과는 물론 용하다는 병원을 물론 한의원까지 아마 백 여 곳 이상을 다녔을 것입니다.
주변의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신이 든 것이라고 하였지만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할머니까지도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기에 그 말을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저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10살이 되고 11살이 되어서도 말입니다.
하지만 아파지는 주기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9살 때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아프다가 10살이 되면서는 하루에 한 번 그리고 11살에 접어들면서는 그 빈도가 하루에도 3~4번으로 심각한 상태까지 갔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딸인 저를 저렇게 내버려두었다가는 죽을 줄도 모른다는 심각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할머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를 데리고 무당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년아 이렇게 올 것 빨리 안 오고 웬 늦장을 그리도 부렸냐?”탱화가 붙은 단상에 불상이 모셔진 신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불상 앞에서 부채를 들고 있던 무당이 저에게 부채로 가리키면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보살님 우리 애 어떻게 하면 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엄마가 무당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하자
“이제 늦었어, 넌 신을 받아들여야 살지 그렇지 않고는 네 명을 다 하지 못 해”무당이 저를 향하여 그렇게 말 하고는 차가운 시선을 한 번 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돌아 앉아버렸습니다.
“보살님 그럼 애 아버지와 시부모님들과 상의를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엄마가 보살에게 말을 하고는 저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집으로 온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에게 무당이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였고 그길로 저는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엄마아빠와 함께 목사 일을 하다가 퇴마사가 된 사람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퇴마사가 어두운 방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주술을 부르며 제 몸에 붙은 귀신을 쫒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퇴마사는 두 시간 이상을 땀을 뻘뻘 흘리며 제 몸에 붙은 귀신하고 승강이를 버리는 것 같더니 갑자기 쓰러졌고 저의 머리는 더 아파왔습니다.
제 고함 소리에 할아버지할머니 엄마아빠 그리고 퇴마사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고 퇴마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퇴마사에게 물을 먹이고 흔들어대자 퇴마사가 정신을 차리더니 할아버지할머니 엄마아빠에게 자기 힘으로 물리치지 못 할 강력한 신이 제 몸에 붙어 있다며 나가라는 듯이 겁먹을 얼굴로 저를 보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아빠도 저에게 신을 받게 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처음 갔던 무당을 신어머니로 모셔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내림굿을 하였고 제 몸에 강림을 하신 최영장군을 모시기 시작하였고 신어머니를 신어머니가 굿을 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의식 무가 굿상 차리는 법 굿 음식을 만드는 법 등 굿을 하는데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기예를 익혀야 하였습니다.
보통 내림굿을 하고 신어머니 밑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굿을 하거나 점을 보는데 필요로 하는 기예를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완전한 무당이라는 존재가 된다고들 하였지만 신어머니는 저에게 붙은 신이 자신의 몸에 붙은 신에 비하여 함이 월등하다며 1년 만에 저에게 아기 보살이란 이름을 주면서 독립을 시켰습니다.
일반인들은 무당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법당 안에서만 점을 치고 굿을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철따라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수양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의 몸에 붙어 계시는 최영장군께서 저에게 신통력을 주지 않습니다.
독립을 하고 두 달 동안 하루에 5분의 손님을 받아 점을 쳤습니다.
두 달이 다 되어가자 저의 신통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열두 살이 된 일 년 이 개월 동안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교회에 다니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못 하고 개종을 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할아버지 엄마아빠가 교회에 가면 교인들이 무당 손녀 무당 딸을 둔 것들이 신성한 교회 출입을 한다고 비아냥거린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엄마는 연로하신 할머니할아버지를 공양하셔야 하였기에 제 뒷바라지를 할 여유가 없었고 그러자 아빠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 뒷바라지에 전념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통력이 떨어지자 저는 최영장군님께서 일러준 산에서 산 공부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최영장군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무당이 됐지만 14살의 어린 계집애가 혼자서 산 공부를 하러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무리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12살의 초여름 아빠가 제 산 공부에 뒷바라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엄마가 뒷바라지를 해 줘도 좋겠지만 연약한 여자 둘이 야산에서 기간도 정하지 않고 오로지 저에게 신통력이 되살아나는 날까지 같이 있는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일정도 정하지 않고 막연하게 산 공부를 하기 위하여 아빠 차에 필요한 초와 향 과일 떡 등등의 음식들과 잠을 자기 위하여 덮음 모포 등을 준비하고 최영장군님께서 일러준 산으로 갔습니다.
최영장군님께서 일러준 그 산의 그 위치에는 아주 거대한 바위가 마치 동굴처럼 있었습니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 최영장군님의 조촐한 신당을 만들고 음식들을 올리고 촛불과 향을 피우고 예를 올렸습니다.
아빠는 신당에 음식을 차리는 일만 거들어주고 산 밑에 있는 차에서 숙식을 하며 조석으로 제가 산 공부를 하는 곳을 들러보기로 하였습니다.
거의 11시 넘게까지 기도에 산 공부로 용맹정진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꿈속에서 최영장군님께서 현몽을 하셨습니다.
최영장군님께서는 내일 처음으로 보는 남자에게 저의 정조를 바치라고 지엄하게 분부를 하셨습니다.
저는 최영장군님 전에 엎드려 겨우 12살인데 조금 나이가 들면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최영장군님께서는 제가 정조를 지키고 있는 한은 신통력을 발휘를 하지 못 할 것이며 또 제일 먼저 마주친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정조를 주거나 아니면 처음으로 마주친 남자에게 정조를 주지 않으면 그 남자에게 사고나 봉변을 당할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제일 처음으로 보는 남자도 저를 어린애로 보지 않을 것이고 성숙하고 매력적인 여자로 보여 끌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저에게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임시로 만든 신당에 정화수를 올리고 백팔 배 절을 올리라고 하시고는 사라졌습니다.
꿈에서 깬 저는 신당에 정화수를 올리고 백팔 배 기도를 함으로서 최영장군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아~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남이란 말입니까.
새벽 예불을 올리고 엎드려 쉬는데 멀리서 나타난 남자는 다른 남자가 아니라 바로 아빠였습니다.
멀리서 올라오실 때는 아주 인자한 얼굴이더니 저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꿈속에서 현몽을 하셨던 최영장군님 말씀대로 저를 보는 눈은 아주 끈적끈적한 눈으로 변하여 갔습니다.
저에게 온 아빠는 아무 말도 하자 않고 저를 바로 눕혔고 그리고 포개고 올라탔습니다.
이게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지그시 눈을 감고 외면을 하여버렸습니다.
아빠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복의 옷고름을 풀어헤쳤습니다.
치마에 고쟁이까지 벗겨 알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랫도리만 벗더니 아빠의 몸을 제 몸에 박았습니다.
아빠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린 한 마리의 늑대 그 자체였습니다.
예전에 TV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의 눈빛을 한 아빠의 모습은 너무나도 끔찍하게 생겨서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목덜미를 물어서 피를 빨아 먹은 흡혈귀로 변 할 것 같은 그런 무서운 느낌이라 비명은커녕 말이나 가슴을 미리는 것 까지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아파하는 저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분탕질을 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였습니다.
제가 무당이 되어서 무당 수업을 받으면서도 여자인지라 성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많이 접하였는데 첫 경험의 경우 통증을 동반하고 경험 후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그 통증이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저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10여분 정도 아픔이 있었으나 그 후로는 통증은 사라지고 야릇한 기분이 나기 시작하면서 신음과 야릇한 흥분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딸이 제 몸에 올라와 분탕질을 치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눈은 아빠의 평소 눈이 아닌 음흉한 동물의 눈으로 초점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제 몸에 올라와 자신이 낳은 저의 몸을 유린하면서도 아빠는 그 유린 상대가 딸이란 사실을 알지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가 갑자기 분탕질을 멈추더니 제 몸 안에 들어온 아빠의 그것이 마치 아빠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움직이는 것 같더니 뜨거운 무언가를 제 몸 안에 뿌렸습니다.
“아니 네가 어찌 너를 세상에 이런 일이...........”그 뜨거운 무언가가 더 이상 안 나오자 아빠가 예전의 아빠 눈빛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제 몸에서 아빠의 몸을 빼고 넔 나간 사람처럼 저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아빠, 아빠의 잘 못이 아니라 제가 모시는 최영장군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니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마세요.”당한 것은 저이지만 저는 되레 아빠를 다독거리는 말을 하며 휴지로 거기에서 흐르는 아빠의 분신과 제 처녀막이 터져 나온 검붉은 피가 섞인 것을 닦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빠와 생각도 하지 못 한 섹스를 한 저는 인근의 계곡으로 가서 몸을 정갈하게 씻은 후 다시 산 공부에 매진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에도 최영장군님이 현몽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산 공부를 하는 동안에만은 저와 관계를 한 사람을 낭군으로 모시고 하루에 한 번 이상 낭군의 정기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꿈속이지만 저는 최영장군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아빠와 한 번이라도 한 것 자체가 죄악인데 산 공부 하면서 내내 하루에 한 번씩 죄업을 더하기는 싫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최영장군께서는 저에게 업이니 그 업을 물리치지 말라고 하시고는 업을 물리치면 또 다른 업이 생기고 업을 물리치지 않으면 현세에서 업을 씻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고는 연기처럼 사라지셨습니다.
최영장군의 말씀처럼 아빠는 저와 관계를 계속 하도록 TV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의 눈빛을 한 아빠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리고 저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것을 제 몸에 뿌리고서야 전날처럼 후회를 하기에 저는 꿈속에서 현몽하셨던 최영장군의 말씀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자 알았다는 듯이 그대로 다시 시작을 하여 한 번 더 뜨거운 것을 제 몸에 뿌렸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날 밤에는 최영장군님께서 현몽을 하지 않으셨고 그다음 날부터는 아빠의 눈빛이 TV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의 눈빛을 한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평소의 아빠 모습 그대로였고 대신 저와의 관계는 부담 없이 하셨고 딸인 저를 상대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산을 하여 차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진짜 낭군이 된 것처럼 제 옆에서 저를 끌어안고 잤습니다.
그렇게 저는 산 공부를 보름을 하였고 보름 동안 저는 아빠를 낭군처럼 모시고 가랑이를 벌려야 하였습니다.
대신 신통력은 대단하였습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그름처럼 몰려들어 저에게 점을 보러 왔고 굿도 일주일에 거의 한 번꼴로 들어왔습니다.
대신 아빠는 아빠의 자리를 지키기만 하였지 산 공부 도중에 저의 낭군으로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만지려 들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반년 후 다시 신통력에 문제가 생길 조짐이 보였습니다.
앞에 산 공부는 신통력에 문제가 터지고 나서 산 공부를 간 바람에 몇 몇 중요한 손님이 제 곁은 떠났기에 이번에는 신통력에 문제가 생길 조짐을 보이자 산 공부를 하러 앞에 갔던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그리고 가져간 제물로 신당을 차렸습니다.
신당이 차려지자 저는 백팔 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백팔 배가 끝나기 무섭게 아빠가 저를 번쩍 안아들었습니다.
앞에 산 공부를 시작하며 겪은 일이 있기에 놀래지도 않았습니다.
아빠는 신당 옆에 펴 놓은 모포 위에 저를 눕히고 무복의 옷고름을 풀고 치마에 고쟁이까지 벗겨 알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전 번 산 공부를 시작한 다음 날 분명하게 저의 처녀는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무참하게 뚫렸고 뚫린 탓에 산 공부 후반에는 통증까지 사라진 것을 분명하게 느꼈는데 제 거기에 아빠의 그것이 다시 들어오자 처음 저의 처녀가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뚫렸을 때의 그 통증이 다시 느껴진 것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변고지?”아빠고 놀라며 제 젖가슴을 짚고 밑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도 고개를 들고 밑을 봤습니다.
얼마 전에 생리를 하였기에 분명하게 생리 혈은 아니었습니다.
신기하였습니다.
분명하게 산부인과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기에 소위 처녀막재생수술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저는 신기하게 다시 처녀가 되어 있었고 이번에도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처녀막이 뚫려버린 것입니다.
아빠가 신음을 하며 분탕질을 치자 분명하게 앞 번 신 공부 중의 마지막에 가서는 아빠의 그것이 아주 빡빡하다는 느낌이 사라져서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으나 분명하게 아빠의 그것이 전번보다 굵어진 것도 아닌데 전번 산 공부를 시작한 다음 날 아빠의 그것이 저의 거기에 박혔을 때의 그 뿌듯함이 그대로 느껴진 것입니다.
다만 전번 산 공부 때와 다른 것을 첫 번째 관계를 가졌을 때는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고 피도 이틀 이상 흘렸던 것과는 달리 한 번만 통증과 피가 나왔지만 그 다음부터는 예전에 느꼈던 그 느낌에 그 기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저녁 아빠가 다시 올라타고 분탕질을 시작하자마자 느끼기 시작 한 것입니다.
사실 어린 것이 그 장면을 뵤사를 하려고 하니 얼굴이 절로 붉어지지만 잠시만 하셌습니다.
“퍽.. 퍽.. 질퍽... 질. 퍽.. 아!.. 으~.. 퍽. 퍽..”아빠의 그것이 제 거기에 박히자마자 저의 거기에서는 꿀물을 흘러 질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악...아...아...빠...거...기...너...무...해...아...악....아...장군님 저에게 신통력을 주시옵소서.”전 아빠의 등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벅...펍...첩....처..철벅....후우”신당을 차리기 무섭게 저에게 올라와 영문도 모르지만 다시 생겨난 처녀막을 깨트리고 나서 내가 신당에 백팔 배 절을 올리고 기도를 마치기 무섭게 다시 모포에 눕게 하고 올라타서 두 번째 물을 제 거기에 쏟아 붓고 점심을 신당에 올리고 기도를 한 후 신당에 올렸던 밥을 내려 아빠와 함께 공양을 하고 소화는커녕 위장에 매려가기도 전에 다시 제 몸에 올라타고 아빠의 분신을 뿌리고 저녁 공양을 들고 내 번째로 올라탔으니 힘들었던지 긴 숨을 들이키면서고 분탕질을 쳤습니다.
“왜..날...아......아...더..꽂..아...줘..”어린 제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제가 생각하여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벅….퍽퍽퍽…퍽. 퍼…벅…퍽. 타다닥!!!”아빠의 분탕질이 빨라졌습니다.
“아흑...아빠.....너무 좋아......아빠의 자지는 너무해...아.....장군님 고맙습니다.”어린 저였지만 이미 느끼고 있었습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주 빠른 분탕질을 쳤습니다.
“아빠 더 완전히 끝까지......네 몸 속에 깊이.....아빠의 자지가....”그랬습니다.
겨우 14살의 어린 저의 거기의 구멍 깊이에 비교하여 성인인 아빠의 그것은 제 그것으로 상대를 하기에 길이가 너무 길어 깊이 찌르면 자궁 입구를 강하게 찔렸고 그렇게 되면 아랫배는 상상 이상으로 더부룩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그 느낌은 제 거기로 하여금 물을 더 많이 만들어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느껴져 아빠가 움직이고 있어.....아흑 내 보지를 치고 있어....장군님 보고 계시나요?”그 느낌 지금 생각만하여도 몸서리를 치게 만듭니다.
“퍼……퍽…퍽퍽퍽…….퍼.. 벅.. 퍽!!! 후후후 너도 좋니?”아빠는 여유 있게 웃으며 분탕질을 쳤습니다.
“아흑...내보지를 찌르고 있어.....느껴 아흑...더 박아줘요....”14살 어린 나이의 제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말이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제 입에서 나왔습니다.
“퍽퍽퍽…퍼.. 퍽…퍽퍽퍽!!!!!!!!!!!!!”다시 빨라졌습니다.
“아...흑 엄마와 내 것 중에 어느 보지가 더 좋아요........”미쳐도 여간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빠하고 근친상간을 하는 자체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인데 그것도 부족하여 자신을 낳아준 엄마하고 비교를 하려 들었으니 말입니다.
“아...흑 아...헉...억...”아빠는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아빠 내걸 먹어요......그렇게요.....흐윽...더...세게.....박아줘요.....“저는 아빠의 목에 매달리며 애원을 하였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아빠는 질퍽이는 제 거기를 힘차게 박아주었습니다.
“아...흑...아...그렇게 어느 보지가 더 좋아? 장군님 우리 장군님”아빠의 솔직한 대답이 듣고 싶었습니다.
“하악......현...현주야 네 보지가 더 맛있어.....더 딴딴해.....너와 섹스를 아...헉...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빠가 대담을 하면서 더 흥분이 되었던지 더 빠르게 분탕질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아...빠 ...사...랑..해...줘...요...내...보...지....를...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아빠의 말에 감격을 한 저는 아빠 목에 매달려 아빠 볼에 봅을 대고 비비며 말하였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다시 분탕질이 느려졌습니다.
“날..마...음..대...로...가...지...고..놀...아...요.....뚫어줘요...아...악....아빠...난...언제나...아빠,...꺼.....“이미 저는 섹스에 중독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나...아...빠......아...빠......나...나...아빠...아빠.....더...세...게...“아빠에게 요구를 할 정도로 말입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빠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빠....아...아빠....더...더....왜...왜....나...나...보...지...보...지...하...악...장군님 미치겠습니다. 소녀를 거두어 주세요.”섹스를 하는 도중에도 장군님께 틈틈이 예를 올렸습니다.
최영장군님의 지엄한 분부에 의하여 아빠를 산 공부를 하는 중에 낭군님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야 하였기에 아빠와 관계를 하는 중에도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퍽..퍽..퍽...철퍽....퍽...벅....휴우....헉..헉...헉....허업.....흡....아흑....”아빠가 많이 힘들어 하였습니다.
“아흣, 하앗... 아, 아빠야... 하읏...”자궁을 찌르자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젖가슴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으~~~~~~”아빠가 마지막 분탕질을 빠르게 하고는 제 젖가슴 사이에 머리를 박고 엎드리더니 다시 뜨거운 것을 제 거니에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날 밤 다시 최영장군님께서 현몽을 하셨습니다.
최영장군님께서는 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심으로서 아빠와 제가 전생이 지은 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경우 전생에 처녀가 아닌 여자와 결혼을 하여 살다가 죽는 날까지 아내에게 처녀가 아니었던 것을 날마다 씹었고 심지어는 자식들에게도 자기 엄마가 처녀시절 걸레 중에 상 걸레라고 입에도 담지 못 할 말을 하여 상처를 주러 원 없이 처녀 맛을 보게 하는데 그 상대를 딸인 저에게서 산 공부를 올 때마다 처녀 맛을 보는 대신 죄책감을 가지도록 만들어 전생의 업을 다스리게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편 저의 경우는 전생에 걸레이면서도 남자들을 만나서 관계를 하게 되면 어떻게 둘러대어서라도 저 자신이 숫처녀임을 주장하였고 그래도 숫처녀가 아니라고 하는 남자의 남근을 잘라서 남자 구실을 하지 못 하게 한 죄로서 매 번 산 공부를 하러 오면 숫처녀가 되어서 아버지에게 숫처녀를 뚫리게 하는 벌을 줌으로서 저 역시 전생에 지은 업을 다스리게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또 전생의 업에 따라 남자를 알고 느끼게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으며 절대 최영장군 자신이 한 말을 아버지에게는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고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딸인 저와 근친상간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이유를 전혀 모르는 아빠는 할 때 마음하고 하고 나서의 마음은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할 때는 본능에 의하여 쾌락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하고 나서는 자신이 낳은 딸을 상대로 관계를 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자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유를 자세히 아는 저는 점점 쾌락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어 가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쾌락을 알아가게 되자 제가 먼저 아빠를 유혹하여 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심지어 아빠의 그것을 제 몸속에 넣고 제가 아빠 몸 위에 올라가 분탕질을 치며 신당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두 번째도 보름 만에 산 공부를 마치고 하산을 하였습니다.
신통 방통 한 것은 산에서 산 공부를 하면서는 아빠가 저를 탐하려고 관계를 하려고 하여 했고 또 제가 쾌락을 느끼기 위하여 아빠를 유혹하는 일이 많았지만 하산을 하여 집으로 돌아와 집의 신당에만 있으면 쾌락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고 아빠도 저를 예전처럼 딸로 생각하고 무당인 딸의 뒷바라지에만 신경을 쓸 뿐 저를 곁눈질로 보는 일도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더욱더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두 달 내지 세 달 간격으로 신통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산 공부를 하러 가는데 산에 올라가 신당만 차리면 진행하던 아님 시작하려던 생리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 공부 도중에는 12살이 되던 해 겨울에 처음으로 생리를 시작하였던 생리가 산 공부를 하러 산에 올라가 신당만 치라면 생리를 하지 않기에 언제라도 아빠 품에 안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특이한 일이 있으니 아빠의 뜨거운 물을 거기로 마구 받아들여도 절대 임신이 되지 않는 불가사이가 벌어진 것입니다.
금년으로 열다섯 살에 올라가며 열세 살 초반에 내림굿을 하여 신을 받아들였고 일 년 만에 처녀 보살이란 이름을 주시면서 신어머니께서 저를 독립을 시킨 후 얼마 안 가서 신통력이 줄어들자 산 공부를 가서 그 다음 날로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저의 처녀막이 뚫린 이후 산 공부를 시작하면 하루도 쉬기는커녕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아빠의 그것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 즉 정자를 양껏 받아들였건만 정말이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 한 번의 임신도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여 그 부분은 좋기도 하지만 불만이기도 합니다.
엄마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지금 저는 아빠를 딸의 입장이 아닌 한 여자의 입장으로 사랑을 합니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겠습니까?
물론 신을 받은 무당이기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최영장군님만 허락을 하신다며 마리라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였듯이 저도 엄마나 저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모시는 신이신 최영장군께서 저에게 아기를 점지하여 주었다고 들러댄다면 저의 신통력을 믿는 사람들은(특히 엄마와 할아버지할머니)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산 공부를 가면 최영장군님에게 기도를 올리면서 간절하게 애원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의 최영장군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최영장군님의 계시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의 신당에서도 저는 조석으로 공양을 올리며 빌어봅니다.
<최영장군님 저에게 아빠의 아기를 낳도록 허락을 하시고 그 아이가 최영장군님의 전지에 의한 아이임을 증명해 주시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최영장군님 신당에서 아기 보살이 비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처녀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아기 보살
즉 제가 무당이라는 말입니다.
무속인의 길 정말이지 험준하기만 합니다.
저를 지시하시는 신의 계시라면 천 길 낭떠러지 밑에 있을 불길 속이라도 뛰어들어야만 하는 운명이니 말입니다.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이나 박수무당의 경우 어떤 한 신의 계시를 받게 되는데 저의 경우 최영장군이 저를 돌보아주고 계시를 하며 지시를 하십니다.
그럼 제가 신을 받게 된 경위부터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9살초부터 머리가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신과는 물론 용하다는 병원을 물론 한의원까지 아마 백 여 곳 이상을 다녔을 것입니다.
주변의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신이 든 것이라고 하였지만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할머니까지도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기에 그 말을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저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10살이 되고 11살이 되어서도 말입니다.
하지만 아파지는 주기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9살 때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아프다가 10살이 되면서는 하루에 한 번 그리고 11살에 접어들면서는 그 빈도가 하루에도 3~4번으로 심각한 상태까지 갔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딸인 저를 저렇게 내버려두었다가는 죽을 줄도 모른다는 심각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할머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를 데리고 무당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년아 이렇게 올 것 빨리 안 오고 웬 늦장을 그리도 부렸냐?”탱화가 붙은 단상에 불상이 모셔진 신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불상 앞에서 부채를 들고 있던 무당이 저에게 부채로 가리키면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보살님 우리 애 어떻게 하면 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엄마가 무당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하자
“이제 늦었어, 넌 신을 받아들여야 살지 그렇지 않고는 네 명을 다 하지 못 해”무당이 저를 향하여 그렇게 말 하고는 차가운 시선을 한 번 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돌아 앉아버렸습니다.
“보살님 그럼 애 아버지와 시부모님들과 상의를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엄마가 보살에게 말을 하고는 저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집으로 온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에게 무당이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였고 그길로 저는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엄마아빠와 함께 목사 일을 하다가 퇴마사가 된 사람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퇴마사가 어두운 방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주술을 부르며 제 몸에 붙은 귀신을 쫒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퇴마사는 두 시간 이상을 땀을 뻘뻘 흘리며 제 몸에 붙은 귀신하고 승강이를 버리는 것 같더니 갑자기 쓰러졌고 저의 머리는 더 아파왔습니다.
제 고함 소리에 할아버지할머니 엄마아빠 그리고 퇴마사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고 퇴마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퇴마사에게 물을 먹이고 흔들어대자 퇴마사가 정신을 차리더니 할아버지할머니 엄마아빠에게 자기 힘으로 물리치지 못 할 강력한 신이 제 몸에 붙어 있다며 나가라는 듯이 겁먹을 얼굴로 저를 보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아빠도 저에게 신을 받게 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처음 갔던 무당을 신어머니로 모셔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내림굿을 하였고 제 몸에 강림을 하신 최영장군을 모시기 시작하였고 신어머니를 신어머니가 굿을 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의식 무가 굿상 차리는 법 굿 음식을 만드는 법 등 굿을 하는데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기예를 익혀야 하였습니다.
보통 내림굿을 하고 신어머니 밑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굿을 하거나 점을 보는데 필요로 하는 기예를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완전한 무당이라는 존재가 된다고들 하였지만 신어머니는 저에게 붙은 신이 자신의 몸에 붙은 신에 비하여 함이 월등하다며 1년 만에 저에게 아기 보살이란 이름을 주면서 독립을 시켰습니다.
일반인들은 무당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법당 안에서만 점을 치고 굿을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철따라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수양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의 몸에 붙어 계시는 최영장군께서 저에게 신통력을 주지 않습니다.
독립을 하고 두 달 동안 하루에 5분의 손님을 받아 점을 쳤습니다.
두 달이 다 되어가자 저의 신통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열두 살이 된 일 년 이 개월 동안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교회에 다니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못 하고 개종을 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할아버지 엄마아빠가 교회에 가면 교인들이 무당 손녀 무당 딸을 둔 것들이 신성한 교회 출입을 한다고 비아냥거린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엄마는 연로하신 할머니할아버지를 공양하셔야 하였기에 제 뒷바라지를 할 여유가 없었고 그러자 아빠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 뒷바라지에 전념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통력이 떨어지자 저는 최영장군님께서 일러준 산에서 산 공부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최영장군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무당이 됐지만 14살의 어린 계집애가 혼자서 산 공부를 하러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무리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12살의 초여름 아빠가 제 산 공부에 뒷바라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엄마가 뒷바라지를 해 줘도 좋겠지만 연약한 여자 둘이 야산에서 기간도 정하지 않고 오로지 저에게 신통력이 되살아나는 날까지 같이 있는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일정도 정하지 않고 막연하게 산 공부를 하기 위하여 아빠 차에 필요한 초와 향 과일 떡 등등의 음식들과 잠을 자기 위하여 덮음 모포 등을 준비하고 최영장군님께서 일러준 산으로 갔습니다.
최영장군님께서 일러준 그 산의 그 위치에는 아주 거대한 바위가 마치 동굴처럼 있었습니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 최영장군님의 조촐한 신당을 만들고 음식들을 올리고 촛불과 향을 피우고 예를 올렸습니다.
아빠는 신당에 음식을 차리는 일만 거들어주고 산 밑에 있는 차에서 숙식을 하며 조석으로 제가 산 공부를 하는 곳을 들러보기로 하였습니다.
거의 11시 넘게까지 기도에 산 공부로 용맹정진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꿈속에서 최영장군님께서 현몽을 하셨습니다.
최영장군님께서는 내일 처음으로 보는 남자에게 저의 정조를 바치라고 지엄하게 분부를 하셨습니다.
저는 최영장군님 전에 엎드려 겨우 12살인데 조금 나이가 들면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최영장군님께서는 제가 정조를 지키고 있는 한은 신통력을 발휘를 하지 못 할 것이며 또 제일 먼저 마주친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정조를 주거나 아니면 처음으로 마주친 남자에게 정조를 주지 않으면 그 남자에게 사고나 봉변을 당할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제일 처음으로 보는 남자도 저를 어린애로 보지 않을 것이고 성숙하고 매력적인 여자로 보여 끌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저에게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임시로 만든 신당에 정화수를 올리고 백팔 배 절을 올리라고 하시고는 사라졌습니다.
꿈에서 깬 저는 신당에 정화수를 올리고 백팔 배 기도를 함으로서 최영장군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아~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남이란 말입니까.
새벽 예불을 올리고 엎드려 쉬는데 멀리서 나타난 남자는 다른 남자가 아니라 바로 아빠였습니다.
멀리서 올라오실 때는 아주 인자한 얼굴이더니 저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꿈속에서 현몽을 하셨던 최영장군님 말씀대로 저를 보는 눈은 아주 끈적끈적한 눈으로 변하여 갔습니다.
저에게 온 아빠는 아무 말도 하자 않고 저를 바로 눕혔고 그리고 포개고 올라탔습니다.
이게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지그시 눈을 감고 외면을 하여버렸습니다.
아빠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복의 옷고름을 풀어헤쳤습니다.
치마에 고쟁이까지 벗겨 알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랫도리만 벗더니 아빠의 몸을 제 몸에 박았습니다.
아빠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린 한 마리의 늑대 그 자체였습니다.
예전에 TV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의 눈빛을 한 아빠의 모습은 너무나도 끔찍하게 생겨서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목덜미를 물어서 피를 빨아 먹은 흡혈귀로 변 할 것 같은 그런 무서운 느낌이라 비명은커녕 말이나 가슴을 미리는 것 까지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아파하는 저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분탕질을 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였습니다.
제가 무당이 되어서 무당 수업을 받으면서도 여자인지라 성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많이 접하였는데 첫 경험의 경우 통증을 동반하고 경험 후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그 통증이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저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10여분 정도 아픔이 있었으나 그 후로는 통증은 사라지고 야릇한 기분이 나기 시작하면서 신음과 야릇한 흥분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딸이 제 몸에 올라와 분탕질을 치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눈은 아빠의 평소 눈이 아닌 음흉한 동물의 눈으로 초점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제 몸에 올라와 자신이 낳은 저의 몸을 유린하면서도 아빠는 그 유린 상대가 딸이란 사실을 알지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가 갑자기 분탕질을 멈추더니 제 몸 안에 들어온 아빠의 그것이 마치 아빠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움직이는 것 같더니 뜨거운 무언가를 제 몸 안에 뿌렸습니다.
“아니 네가 어찌 너를 세상에 이런 일이...........”그 뜨거운 무언가가 더 이상 안 나오자 아빠가 예전의 아빠 눈빛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제 몸에서 아빠의 몸을 빼고 넔 나간 사람처럼 저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아빠, 아빠의 잘 못이 아니라 제가 모시는 최영장군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니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마세요.”당한 것은 저이지만 저는 되레 아빠를 다독거리는 말을 하며 휴지로 거기에서 흐르는 아빠의 분신과 제 처녀막이 터져 나온 검붉은 피가 섞인 것을 닦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빠와 생각도 하지 못 한 섹스를 한 저는 인근의 계곡으로 가서 몸을 정갈하게 씻은 후 다시 산 공부에 매진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에도 최영장군님이 현몽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산 공부를 하는 동안에만은 저와 관계를 한 사람을 낭군으로 모시고 하루에 한 번 이상 낭군의 정기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꿈속이지만 저는 최영장군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아빠와 한 번이라도 한 것 자체가 죄악인데 산 공부 하면서 내내 하루에 한 번씩 죄업을 더하기는 싫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최영장군께서는 저에게 업이니 그 업을 물리치지 말라고 하시고는 업을 물리치면 또 다른 업이 생기고 업을 물리치지 않으면 현세에서 업을 씻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고는 연기처럼 사라지셨습니다.
최영장군의 말씀처럼 아빠는 저와 관계를 계속 하도록 TV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의 눈빛을 한 아빠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리고 저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것을 제 몸에 뿌리고서야 전날처럼 후회를 하기에 저는 꿈속에서 현몽하셨던 최영장군의 말씀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자 알았다는 듯이 그대로 다시 시작을 하여 한 번 더 뜨거운 것을 제 몸에 뿌렸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날 밤에는 최영장군님께서 현몽을 하지 않으셨고 그다음 날부터는 아빠의 눈빛이 TV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의 눈빛을 한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평소의 아빠 모습 그대로였고 대신 저와의 관계는 부담 없이 하셨고 딸인 저를 상대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산을 하여 차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진짜 낭군이 된 것처럼 제 옆에서 저를 끌어안고 잤습니다.
그렇게 저는 산 공부를 보름을 하였고 보름 동안 저는 아빠를 낭군처럼 모시고 가랑이를 벌려야 하였습니다.
대신 신통력은 대단하였습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그름처럼 몰려들어 저에게 점을 보러 왔고 굿도 일주일에 거의 한 번꼴로 들어왔습니다.
대신 아빠는 아빠의 자리를 지키기만 하였지 산 공부 도중에 저의 낭군으로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만지려 들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반년 후 다시 신통력에 문제가 생길 조짐이 보였습니다.
앞에 산 공부는 신통력에 문제가 터지고 나서 산 공부를 간 바람에 몇 몇 중요한 손님이 제 곁은 떠났기에 이번에는 신통력에 문제가 생길 조짐을 보이자 산 공부를 하러 앞에 갔던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그리고 가져간 제물로 신당을 차렸습니다.
신당이 차려지자 저는 백팔 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백팔 배가 끝나기 무섭게 아빠가 저를 번쩍 안아들었습니다.
앞에 산 공부를 시작하며 겪은 일이 있기에 놀래지도 않았습니다.
아빠는 신당 옆에 펴 놓은 모포 위에 저를 눕히고 무복의 옷고름을 풀고 치마에 고쟁이까지 벗겨 알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전 번 산 공부를 시작한 다음 날 분명하게 저의 처녀는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무참하게 뚫렸고 뚫린 탓에 산 공부 후반에는 통증까지 사라진 것을 분명하게 느꼈는데 제 거기에 아빠의 그것이 다시 들어오자 처음 저의 처녀가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뚫렸을 때의 그 통증이 다시 느껴진 것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변고지?”아빠고 놀라며 제 젖가슴을 짚고 밑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도 고개를 들고 밑을 봤습니다.
얼마 전에 생리를 하였기에 분명하게 생리 혈은 아니었습니다.
신기하였습니다.
분명하게 산부인과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기에 소위 처녀막재생수술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저는 신기하게 다시 처녀가 되어 있었고 이번에도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처녀막이 뚫려버린 것입니다.
아빠가 신음을 하며 분탕질을 치자 분명하게 앞 번 신 공부 중의 마지막에 가서는 아빠의 그것이 아주 빡빡하다는 느낌이 사라져서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으나 분명하게 아빠의 그것이 전번보다 굵어진 것도 아닌데 전번 산 공부를 시작한 다음 날 아빠의 그것이 저의 거기에 박혔을 때의 그 뿌듯함이 그대로 느껴진 것입니다.
다만 전번 산 공부 때와 다른 것을 첫 번째 관계를 가졌을 때는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고 피도 이틀 이상 흘렸던 것과는 달리 한 번만 통증과 피가 나왔지만 그 다음부터는 예전에 느꼈던 그 느낌에 그 기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저녁 아빠가 다시 올라타고 분탕질을 시작하자마자 느끼기 시작 한 것입니다.
사실 어린 것이 그 장면을 뵤사를 하려고 하니 얼굴이 절로 붉어지지만 잠시만 하셌습니다.
“퍽.. 퍽.. 질퍽... 질. 퍽.. 아!.. 으~.. 퍽. 퍽..”아빠의 그것이 제 거기에 박히자마자 저의 거기에서는 꿀물을 흘러 질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악...아...아...빠...거...기...너...무...해...아...악....아...장군님 저에게 신통력을 주시옵소서.”전 아빠의 등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벅...펍...첩....처..철벅....후우”신당을 차리기 무섭게 저에게 올라와 영문도 모르지만 다시 생겨난 처녀막을 깨트리고 나서 내가 신당에 백팔 배 절을 올리고 기도를 마치기 무섭게 다시 모포에 눕게 하고 올라타서 두 번째 물을 제 거기에 쏟아 붓고 점심을 신당에 올리고 기도를 한 후 신당에 올렸던 밥을 내려 아빠와 함께 공양을 하고 소화는커녕 위장에 매려가기도 전에 다시 제 몸에 올라타고 아빠의 분신을 뿌리고 저녁 공양을 들고 내 번째로 올라탔으니 힘들었던지 긴 숨을 들이키면서고 분탕질을 쳤습니다.
“왜..날...아......아...더..꽂..아...줘..”어린 제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제가 생각하여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벅….퍽퍽퍽…퍽. 퍼…벅…퍽. 타다닥!!!”아빠의 분탕질이 빨라졌습니다.
“아흑...아빠.....너무 좋아......아빠의 자지는 너무해...아.....장군님 고맙습니다.”어린 저였지만 이미 느끼고 있었습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주 빠른 분탕질을 쳤습니다.
“아빠 더 완전히 끝까지......네 몸 속에 깊이.....아빠의 자지가....”그랬습니다.
겨우 14살의 어린 저의 거기의 구멍 깊이에 비교하여 성인인 아빠의 그것은 제 그것으로 상대를 하기에 길이가 너무 길어 깊이 찌르면 자궁 입구를 강하게 찔렸고 그렇게 되면 아랫배는 상상 이상으로 더부룩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그 느낌은 제 거기로 하여금 물을 더 많이 만들어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느껴져 아빠가 움직이고 있어.....아흑 내 보지를 치고 있어....장군님 보고 계시나요?”그 느낌 지금 생각만하여도 몸서리를 치게 만듭니다.
“퍼……퍽…퍽퍽퍽…….퍼.. 벅.. 퍽!!! 후후후 너도 좋니?”아빠는 여유 있게 웃으며 분탕질을 쳤습니다.
“아흑...내보지를 찌르고 있어.....느껴 아흑...더 박아줘요....”14살 어린 나이의 제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말이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제 입에서 나왔습니다.
“퍽퍽퍽…퍼.. 퍽…퍽퍽퍽!!!!!!!!!!!!!”다시 빨라졌습니다.
“아...흑 엄마와 내 것 중에 어느 보지가 더 좋아요........”미쳐도 여간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빠하고 근친상간을 하는 자체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인데 그것도 부족하여 자신을 낳아준 엄마하고 비교를 하려 들었으니 말입니다.
“아...흑 아...헉...억...”아빠는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아빠 내걸 먹어요......그렇게요.....흐윽...더...세게.....박아줘요.....“저는 아빠의 목에 매달리며 애원을 하였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아빠는 질퍽이는 제 거기를 힘차게 박아주었습니다.
“아...흑...아...그렇게 어느 보지가 더 좋아? 장군님 우리 장군님”아빠의 솔직한 대답이 듣고 싶었습니다.
“하악......현...현주야 네 보지가 더 맛있어.....더 딴딴해.....너와 섹스를 아...헉...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빠가 대담을 하면서 더 흥분이 되었던지 더 빠르게 분탕질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아...빠 ...사...랑..해...줘...요...내...보...지....를...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아빠의 말에 감격을 한 저는 아빠 목에 매달려 아빠 볼에 봅을 대고 비비며 말하였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다시 분탕질이 느려졌습니다.
“날..마...음..대...로...가...지...고..놀...아...요.....뚫어줘요...아...악....아빠...난...언제나...아빠,...꺼.....“이미 저는 섹스에 중독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나...아...빠......아...빠......나...나...아빠...아빠.....더...세...게...“아빠에게 요구를 할 정도로 말입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빠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빠....아...아빠....더...더....왜...왜....나...나...보...지...보...지...하...악...장군님 미치겠습니다. 소녀를 거두어 주세요.”섹스를 하는 도중에도 장군님께 틈틈이 예를 올렸습니다.
최영장군님의 지엄한 분부에 의하여 아빠를 산 공부를 하는 중에 낭군님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야 하였기에 아빠와 관계를 하는 중에도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퍽..퍽..퍽...철퍽....퍽...벅....휴우....헉..헉...헉....허업.....흡....아흑....”아빠가 많이 힘들어 하였습니다.
“아흣, 하앗... 아, 아빠야... 하읏...”자궁을 찌르자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젖가슴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으~~~~~~”아빠가 마지막 분탕질을 빠르게 하고는 제 젖가슴 사이에 머리를 박고 엎드리더니 다시 뜨거운 것을 제 거니에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날 밤 다시 최영장군님께서 현몽을 하셨습니다.
최영장군님께서는 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심으로서 아빠와 제가 전생이 지은 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경우 전생에 처녀가 아닌 여자와 결혼을 하여 살다가 죽는 날까지 아내에게 처녀가 아니었던 것을 날마다 씹었고 심지어는 자식들에게도 자기 엄마가 처녀시절 걸레 중에 상 걸레라고 입에도 담지 못 할 말을 하여 상처를 주러 원 없이 처녀 맛을 보게 하는데 그 상대를 딸인 저에게서 산 공부를 올 때마다 처녀 맛을 보는 대신 죄책감을 가지도록 만들어 전생의 업을 다스리게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편 저의 경우는 전생에 걸레이면서도 남자들을 만나서 관계를 하게 되면 어떻게 둘러대어서라도 저 자신이 숫처녀임을 주장하였고 그래도 숫처녀가 아니라고 하는 남자의 남근을 잘라서 남자 구실을 하지 못 하게 한 죄로서 매 번 산 공부를 하러 오면 숫처녀가 되어서 아버지에게 숫처녀를 뚫리게 하는 벌을 줌으로서 저 역시 전생에 지은 업을 다스리게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또 전생의 업에 따라 남자를 알고 느끼게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으며 절대 최영장군 자신이 한 말을 아버지에게는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고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딸인 저와 근친상간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이유를 전혀 모르는 아빠는 할 때 마음하고 하고 나서의 마음은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할 때는 본능에 의하여 쾌락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하고 나서는 자신이 낳은 딸을 상대로 관계를 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자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유를 자세히 아는 저는 점점 쾌락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어 가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쾌락을 알아가게 되자 제가 먼저 아빠를 유혹하여 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심지어 아빠의 그것을 제 몸속에 넣고 제가 아빠 몸 위에 올라가 분탕질을 치며 신당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두 번째도 보름 만에 산 공부를 마치고 하산을 하였습니다.
신통 방통 한 것은 산에서 산 공부를 하면서는 아빠가 저를 탐하려고 관계를 하려고 하여 했고 또 제가 쾌락을 느끼기 위하여 아빠를 유혹하는 일이 많았지만 하산을 하여 집으로 돌아와 집의 신당에만 있으면 쾌락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고 아빠도 저를 예전처럼 딸로 생각하고 무당인 딸의 뒷바라지에만 신경을 쓸 뿐 저를 곁눈질로 보는 일도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더욱더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두 달 내지 세 달 간격으로 신통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산 공부를 하러 가는데 산에 올라가 신당만 차리면 진행하던 아님 시작하려던 생리도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 공부 도중에는 12살이 되던 해 겨울에 처음으로 생리를 시작하였던 생리가 산 공부를 하러 산에 올라가 신당만 치라면 생리를 하지 않기에 언제라도 아빠 품에 안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특이한 일이 있으니 아빠의 뜨거운 물을 거기로 마구 받아들여도 절대 임신이 되지 않는 불가사이가 벌어진 것입니다.
금년으로 열다섯 살에 올라가며 열세 살 초반에 내림굿을 하여 신을 받아들였고 일 년 만에 처녀 보살이란 이름을 주시면서 신어머니께서 저를 독립을 시킨 후 얼마 안 가서 신통력이 줄어들자 산 공부를 가서 그 다음 날로 아빠의 그것에 의하여 저의 처녀막이 뚫린 이후 산 공부를 시작하면 하루도 쉬기는커녕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아빠의 그것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 즉 정자를 양껏 받아들였건만 정말이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 한 번의 임신도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여 그 부분은 좋기도 하지만 불만이기도 합니다.
엄마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지금 저는 아빠를 딸의 입장이 아닌 한 여자의 입장으로 사랑을 합니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겠습니까?
물론 신을 받은 무당이기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최영장군님만 허락을 하신다며 마리라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였듯이 저도 엄마나 저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모시는 신이신 최영장군께서 저에게 아기를 점지하여 주었다고 들러댄다면 저의 신통력을 믿는 사람들은(특히 엄마와 할아버지할머니)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산 공부를 가면 최영장군님에게 기도를 올리면서 간절하게 애원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의 최영장군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최영장군님의 계시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의 신당에서도 저는 조석으로 공양을 올리며 빌어봅니다.
<최영장군님 저에게 아빠의 아기를 낳도록 허락을 하시고 그 아이가 최영장군님의 전지에 의한 아이임을 증명해 주시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최영장군님 신당에서 아기 보살이 비나이다.>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