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경험담 편의점에서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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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6:05 조회 1,296회 댓글 1건본문
이런 상황에선 돈을 주지 않는 것은 내가 나쁜 놈이 되겠지만, 돈을 주는 것도 호정이에겐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될 것 같았다. 진짜로 그랬다. 돈은 그런 것이다. 꼭 필요하지만, 언제나 폭력적인 것이 돈이다. 착잡한 마음에 가게에서는 잘 먹지 않는 캔 콜라를 하나 따서 먹고나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금고에 계산을 마쳤다. 내 가게지만, 이러는 편이 제일 깔끔하다. 트림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트림조차 나오질 않았다. 야간 알바가 도착해서, 가게를 맡기면서 통닭이라도 한 마리 시켜먹으라고 만원을 주고 집으로 오면서도 난 내내 속이 불편했다.
집에 도착하니, 불이 켜져 있었다. 올 사람이라고는 세인이 뿐이어서 키를 꺼내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더니 세인이가 누구세요라는 인사도 없이 문을 열었다.
"너, 내가 아니면 어쩌려고 그렇게 문을 막 여냐?"
"오빤지 알았지. 창문에서 보고 있었거든. 기분이 별로로 보이네."
"어. 많이 울더라. 호정이."
"왜?"
"그냥 나한테 미안하다고. 스스로에게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더라. 갑자기 공돈 90만원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건가를 생각하다가, 그게 자기가 일해서 번 것도 아니고, 내 호의를 자기가 왜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돈은 받고 싶고, 그냥 공돈을 받고나면 나를 보기도 어색하고 할 거니까 우리 편의점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일해야지라고 결심을 했는데, 그러니까 자기가 너무 싸구려처럼 생각된 것 같아."
"그래도 양심은 있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뭘 어쩌냐. 그냥 일찍 퇴근 시켰지. 90만원은 모르겠다. 줘야 할 지, 주지 말아야 할 지. 처음에 우는 호정이 보면서 그냥 줘야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돈을 주는 것도 상처를 내는 일 같아서 말이야."
"그렇기도 하겠다. 진짜. 나도 아까 오빠더러 호정이 짜르라고 한 게 마음이 걸려서 왔어. 오빠가 그럴 사람은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내 생각해서 그만두라고 했을까 봐. 그런데, 오빠, 왜 세상은 이렇지. 호정이 착하잖아.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운이 없다. 그지."
"그래."
그렇다. 따지고 보면, 호정이는 그저 운이 없는 걸지도. 금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지역 유지의 딸로 태어나서 스물 아홉이 되는 동안, 자신의 힘으로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세인이와 호정이가 다른 건 그저 운이 없어서 부자 아빠를 가지지 못한 것 뿐일 거니까. 세인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양치질을 하는 동안 내내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나와 대화를 이어갔는데, 그런 걸 보고 있으려니 내가 이 아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심심할 일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머리를 감는 동안 전기 물주전자에 물을 끓인 세인이가 유자청을 듬뿍 넣어서 유자차를 타와서 침대 옆에서 머리를 터는 내게 가져왔다.
"오빠, 나 자고 갈까?"
"왜?"
"그냥. 그러고 싶네. 오빠 우울할 때 나라도 옆에 있으면 좋잖아. 그리고 오빠네는 커서 좋아. 우리 원룸은 조용하고 편하긴 한데, 좁아서 좀 답답할 때도 있거든."
"그러던가. 뭘 좀 먹으러 갈까? 달달한 거."
"그러자. 까페베네가서 허니브레드 먹을까? c대 정문 앞 까페베네 2시까지 하잖아."
"꽃에 가자. 칵테일 마시면 치즈케이크 공짜니까. 한 서너개 먹고 오자."
"그럴까."
사막의 하얀 꽃은 우리의 단골집 중 하나였는데, 새벽 네시까지 영업을 한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었다. 완벽하게 분리되지는 않았지만, 주렴을 내린 개인 공간이 있어서 조용하게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았다. 차를 가져가려다가 술을 마실 것 같아서 그냥 손을 잡고 겨울길을 걸었다. 바람이 좀 불어서 바람이 부는 쪽에 내가 서고 세인이를 싸안듯이 안고 걸었는데, 세인이가 내 주머니에 제 손을 집어넣고 손을 조물락거렸다.
"오빠, 나 말이야. 오빠가 이럴 때마다 진짜 오빠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늘 아무렇지도 않게 감동시킨다. 작년 여름쯤인가 우리 잠깐 안 봤을 때, 오빠가 나한테 그랬었어. 세인아 바람이 불면 보고 싶은 내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한 줄 알아?"
"어떻게 했는데?"
"자전거를 탔어. 지칠 때까지 바람을 맞았었어. 아! 오빠, 이러는 건 어떨까? 아니다. 내가 돈을 줘도 그것도 그렇겠다."
"그 문제는 좀 더 생각을 해보자. 날이 차네. 안 추워?"
"괜찮아."
겨울밤인데도 사람은 많았다. 여기저기에 연인인 듯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꽃에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치킨이 땡긴다는 세인이 때문에 다사랑 치킨에 들어갔다. 후라이드 치킨에 맥주를 시키고 벽에 걸린 tv에서 하고 있는 외국 축구 중계를 멍하니 잠깐 지켜봤는데, 문이 열리면서 상규와 상규의 여자친구인 진영씨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와 세인이를 발견한 상규가 우리 테이블로 와서 바로 합류했다.
"어쩐 일이냐? 이 시간에? 오늘 일하는 날 아니었어?"
"아, 요새 우리 파업중이거든. 며칠 놀고 있어. 연말이라 휴가 얻은 것 같고 좋네. 제수씨 오랜만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파업이라니요?"
"요새 신문에도 좀 나던데. 연말 물량이 폭주하다보니까 지선 기사들이랑 간선 기사들이 모두 나자빠져서요. 야, 이경민. 너도 준비하고 있어."
"내가 뭘?"
"작업 재개하면 물량 폭주할 것 같은데, 너도 하루 이틀은 도와줘야지. 우리 팀 놈들, 이번에 싹 나가버려서 쓸만한 일꾼들이 하나도 없다. 너는 그래도 일은 꽤 하니까, 내가 일당 8만원 쳐줄 테니까 말이야."
"됐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번에 우리 오빠가 상규 오빠 꼬임에 넘어가서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하하. 괜찮아요. 이 자식, 한 번씩 몸으로 일도 하고 해야 살도 빠지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우리 일 하는 사람들 중에 몸 좋지 않은 사람이 없거든요. 체력이 국력 아닙니까."
상규는 택배회사의 상차 팀장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빵꾸가 나거나, 밥 타임 이후에 사람이 도망을 가거나 하면 갑자기 내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하는 이상한 놈이었다. 닭이 나오자 재빠르게 서너 점을 먹어치운 상규는 내 앞에 놓인 맥주를 두어 모금 꿀꺽하더니, 제몫으로 나온 치킨세트를 들고, 진영씨와 나가버렸다.
"오빠, 나가지 마. 알았지."
"알았어. 정신이 없네. 그런데, 어머니 이가 아프셔?"
"아니야. 그냥 해 본 소리야. 엄마는 아빠가 챙기니까 오빠는 나나 챙겨. 참, 그런데 오빠 유인나 좋아해?"
"응?"
"유인나 좋아하냐고."
"갑자기 유인나는 왜?"
"검색 엄청 열심히 했던데? 그런 스타일 좋아하나봐?"
"그냥 가게에서 매일 라디오를 들으니까. 그건 좋더라. 라디오 시작할 때 늘 보고싶었어요라고 말하거든. 꼭 나한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이야기 했잖아. 오빠의 모든 일상은 내가 다 관리하고 있다고. 그렇다는 말이지. 그런데, 오빠, 왜 유인나가 오빠한테 보고싶다고 이야기하는데 오빠가 좋아?"
"세상에 무슨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예인을 질투하고 난리냐?"
"나랑 유인나랑 누가 더 예뻐?"
"음...너?"
"땡! 왜 고민은 하고 난리야. 일초도 생각하지 말고 오세인 이래야지. 가자. 오빠. 갑자기 피곤해."
"삐졌냐?"
"어. 빈정 상했어. 참 선정이 언니랑 통화했는데, 오빠가 또 옷 사서 보냈다며?"
"어. 패딩 예쁜 게 있길래."
"무슨 오빠가 아빠냐? 조카한테 그렇게 하는 외삼촌이 어디 있어? 그러다가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나중에 어쩌냐니?"
"나중에 우리 결혼해서 아기 생기고 그러면, 소윤이 한테 그렇게 못할 거잖아. 그 때가서 서운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해. 잘하는 것도 좋지만, 선은 지켜. 그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아."
"나중에도 잘하면 되지."
"진짜. 오빠랑 살 생각하면 내가 머리가 다 아프다. 나가자."
두번째 조카 별이가 태어났지만, 첫조카이자 나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큰 조카 소윤이에 대한 내 마음은 각별하기 그지없다. 언젠가 세인이는 자기랑 소윤이 중에서 누가 더 좋으냐는 질문을 던졌고 - 세인이의 주특기 질문중에 하나다. 내가 좋아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과 자기를 비교해서 자기가 더 비교우위에 있어야 하는데, 심지어는 내가 자주 시켜먹는 황궁쟁반짜장의 뚝배기 떡국과 자기 중 어떤 게 더 맛있냐는 대담한 질문을 하기도 했었다. - 거짓말을 하기 싫었던 나는 둘 다 똑같이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했었고, 그 이후로 세인이는 여섯 살 배기 내 조카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바뀌었는지, 제 집으로 가고 싶어해서, 세인이를 집에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그저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내 주위가 모두 행복했으면 했다.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어설프게 한 사회운동은 한 어린 아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는커녕 큰 상처를 줬을 뿐이었다. 그제야 난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인지 인식하게 되었다. 뭔가를 시도하기 전에 일단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고심하고 관찰해야 했다. 필요한 돈을 쥐어주는 것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난 하나의 방법을 떠올렸다. 돈을 주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내가 주고 싶었던 것은 돈이 아니라 호정이의 건강한 이였으니까.
치과를 찾아가서 미리 돈을 지불하기로 마음 먹었다. 난 호정이가 어느 치과에서 치료를 받는지 알고 있었다. 치과 코디네이터를 만나서 미리 치료비를 상담받고, 호정이의 이를 치료해주면 일단은 내 마음에 내린 한 어린 아이의 좌절에 관한 주박은 풀릴 것 같았다. 난 그 밤에 세인이에게 전화를 걸어, 내 결심을 전했고, 세인이는 이번 한 번뿐이라는 것을 전제로 내 생각을 이해해줬다.
좀은 개운한 기분으로 아침에 편의점으로 나갔더니 놀라운 일이 있었다. 늘 우리 파라솔 근처에 있었던 갈비집의 음식물 쓰레기 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닫혀있는 갈비집의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더니 거기엔 깨끗하게 닦여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한 켠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훗하고 웃음이 났다. 작은 일이었지만, 난 어쨌거나 두 가지 일을 겪었고, 하나의 실패와 보수, 하나의 성공을 얻어냈다. 더 웃긴 거라면, 실패는 피같은 내 돈을 들이려는 진심이 있었지만, 참담히 실패했다는 것이었고, 하나의 성공은 순전히 거짓을 통해서였다는 데에 있었다. 역시 사람에게 더 통하는 것은 달콤함과 거짓이다. 약발이 떨어질 때까지는 난 갈비집 최사장과 청소 아주머니에게 더는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난 진심도 오해를 받으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지를 배웠다. 청소 아주머니도, 갈비집 최사장도 모두 사랑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장난은 너무나 위험했다. 그저 한번쯤 저 사람이 내게 갖고 있는 호의를 오해해서 자기 쓰레기통을 닦는 정도면 충분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져서, 야간 알바에게 담배까지 하나 사주고, 주간 알바 미진이에게는 점심 때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뭘 먹을 지를 세 시간동안 생각해 놓으라는 말을 해 놓고는, 하루 매상을 정리하고 빠진 물건을 발주했다. 회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호정이부터 미진이까지 모두 먹을 것을 샀기 때문에, 돈을 꽤 쓴 셈이다. 어젠 매상도 그저 그랬는데, 상규 녀석이 만약 부탁을 하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알바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장사외적으로 들어간 돈이라서,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메꾸는 것은 왠지 기분이 나빴다. 이틀 일하면 16만원이니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점심이 다되어 미진이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자기는 크리스마스를 즐길 여유도 없고, 큰 케이크를 하나 사서 숟가락으로 퍼먹고 싶다는 거였다. 2만원을 줘서 보냈더니 파리바게트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사오더니 라면을 먹는 입식 테이블에 초까지 하나 켜더니 초를 불어끄고는 다시 포장해서 냉장고에 가져다 넣는 거였다.
"지금 먹지? 배 고프지 않아?"
"저녁 때 먹으려고요. 집에 가져가서 편하게요. 여기선 먹기도 좀 힘들고 하니까."
"그래. 그럼 수고해."
편의점이 좋은 이유는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면, 개인적인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컴퓨터를 켰다. 소라에 들어가서 글을 좀 쓸까 해서였는데, 막상 글을 쓰려니 대선에 집중하느라 한동안 연재하지 못했던 글들이 쌓여 뭔가 흐름이 끊기는 기분이 들었다. 야담소설가 유관필은 조금 써둔 게 있어서 한글 프로그램을 띄워서 좀 더 살을 붙여가는데, 전화가 와서 화면을 봤더니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윤주씨였다. 윤주씨와는 잠시 만나긴 했지만, 벌써 오래전에 헤어진 사이였다. 무슨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