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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경아.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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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4:49 조회 6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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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한 입 먹는다. 별 거 아닌 메뉴지만, 금요일 밤에 쌓인 한 가득의 피로와, 한 가득의 쓸쓸함과, 한 가득의 슬픔과, 한 가득의 추억을 함께 담아 후루룩, 후루룩.

“오빠, 우리 한 잔 할까?”
“맥주 한 잔 했잖아.”
“….여전히 농담은 잘하는데 예전처럼 센스는 없는 거 같네?”

그래. 상갓집은 적당히 떠들썩하게 머무르다 가는 게 오히려 예의라고나 하던가.. 그래도 적어도 운명한 사람을 잊는 게 예의는 아니었겠지만, 그 순간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P를 조금도 떠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떠들썩하게라도 마셨으면 서로 덜 권하고 덜 마시는 분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그녀가 권하는 대로 마시기로 했다. 그래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우리가 술을 좀 비운다고 해서 딱히 누군가 의식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빠 왜 이렇게 사람이 무거워졌어? 그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많이 변했어.”
“뭘 변해. 몇 년이나 됐다고.”
“그 때는 많이 달랐는데. 마시자면 막~~ 마셨는데”
“그냥 자리가 자리니까. 괜히 그러는 거야. 사람이 그렇게 변하겠어?”
“그래? 그런가아~? 그래도 좀 달라진 거 같은데? 나도 좀 달라졌나?”
“글쎄…”

경아 너도 여전히 그대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텀을 둬야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가 그대로라는 건지, 그대로라고 뱉는다면 그 말에 무슨 함의가 담겨있는 것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한 템포 쉬고 대답하려는 찰나,
“오빠 나 한 잔 더 줘.” 며 그녀가 말했다.
“장례식장에선 그냥 티 안 나게 적당히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라고 말하면서도 병뚜껑을 새로 따 그녀의 컵에 병을 기울였다. 오늘 그녀가 내 앞에 앉은 지 30분은 족히 넘었을 텐데.. 서로 어느 직장에서 뭘 하고 지내고 있는지 나름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 같은데… 컵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가 보인다. 그녀가 맞은 편에 앉은 지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왜 이제셔야 보였을까.

사실,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아무런 관계가 없기에 방금 딴 페트병 뚜껑 꼬다리를 배배 꼬며,
“연애하니?”
“아니.”
“아 그래? 난 반지 보고 혹시나 해서.”
“나 결혼했어, 오빠.”

그래. 결혼했구나. 축하해.
이 멘트를 특별히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기에 이 말은 내 성대를 통해 뱉어지지 못했다. 준비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대답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작년에.. 결혼했어. 미안해, 오빠.”
퉁명스럽게 다음 반응이 이어진다.
“뭐가 미안해?”
“아니.. 소식 못 전해서.”
이런 애매한 말은 뭔가. 아니, 애매할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결혼할 때 청첩장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거겠지. 하지만 내 내 뇌는 내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치닫는다. 나 아닌 사람이랑 결혼해서 미안하다는 걸까. 그렇게 미안할 짓이라면 물론 그러지도 않았겠지.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아아 전혀 몰랐네.” 쿨한 척. 실제로 전혀 모르기도 했고.
“P가 얘기 안 했어?”
“뭐 P도 그렇게 자주는 못 봤어.”
그리고 미묘하게 퉁명스런 어투로 덧붙인다. “P가 나한테 꼭 말할 이유도 없고.”

순간 뭔가 어색해졌다. 당장 일어나고 싶었지만, 숙소도 잡아야 하고 대리운전도 불러야 하고 자연스레 손 흔들며 헤어지긴 어렵겠다. 급격히 어색해진 이 자리가 충분히 불편하지만, 슬슬 깊어가는 금요일 밤이라 조금만 버티면 그녀 입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자는 말이 나오리라. 나는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꼭 어찌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 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묵묵히 허공에 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계속 목이 탔고, 침묵을 지우기에는 술을 홀짝이는 것보다 좋은 건 없었다. 그녀와도 이제 와서 편한 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차피 요새 삶이 온전히 불편했기에, 여기라고 딱히 불편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냥 별 말 없이 마주앉아 잔을 기우는 게 오히려 편한지도 몰랐다.

서로 얼마나 마셨을까. 서로 할 말이 없어서 쉴 새 없이 잔을 비워댔던 것 같긴 하다. 반지가 끼워진 그녀의 손가락이 잔을 거머쥐고 연거푸 잔을 비우는 걸 지켜보고 있다. 저 손가락 하나하나에 설레던 그 시절도 있었지. 의식적으로 그녀의 반지 대신 종이컵을 바라본다. 그 때 날아오는 그녀의 질문.

“오빠, 나 좋아했던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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