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삽입면허 - 3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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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0:26 조회 973회 댓글 0건본문
-34부-
“어머!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젠장.......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그냥 두 눈 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지. 지금 고 의원의 위세라면 국방부에 압력을 넣어서 내 수사관 면허마저도 정지시킬 수 있을 텐데......”
“어머머! 세상에...... 정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진짜 사기꾼에 도둑놈들은 그놈들이잖아요? 혹시 그 아들놈도 미친 척만 할 뿐, 애초부터 제 아비하고 한통속 아니었을까요?”
“글쎄다.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럴지도 모르지. 젠장......”
“어머머! 그럼 어떻게 해요? 두 눈 뜨고 당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일을 상의할 사람이라곤 레스토랑의 지영뿐이었으니, 기찬은 종로로 돌아와 지영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 당장 애경이 좀 나오라고 불러 봐.”
“애경 씨는 갑자기 왜요?”
“하여간 불러 봐. 예전에 붙어먹던 놈 중에 공무원이 하나 있다고 하는 것 같았거든.”
“공무원이요?”
“으응, 그 인간한테 비벼보면 뭔가 영진 사장을 물 먹일 만한 방법이 있을지 몰라.”
“어머! 영진 건은 이제 잊어 버려요. 괜히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데, 지금 사기 대출하는 것도 영진 명의로 하고 있는 거잖아요?”
“참 나...... 실제로 그 일 때문에 영진이 피해 볼 것은 하나도 없는 일이잖아? 조상환이라는 놈 아니면, 대출해 준 회사에서 피해를 보는 것이지, 명의를 도용당한 영진은 아무 책임이 없는 건데 피해를 볼 것은 전혀 없는 셈이지. 혹시 모르지. 그 일 때문에 잠깐 주식 가격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그것은 곧 회복될 거야.”
“아유 참, 나는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차라리 그 술집 포기해 버리면 안돼요?”
“어허 참! 누님, 오늘 이상하다. 나는 돈도 돈이지만, 그 인간들에게 밟혀 버린 기분이 들어서 더 그러는 거야. 이젠 누님도 내 부탁 안 들어 줄 거야?”
“어머머! 누가 그렇대? 나야 자기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인데 괜히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하하하, 알았어요. 어서 전화나 걸어 봐요. 나는 잠깐 나갔다가 올 테니까......”
레스토랑 밖으로 나온 기찬은 차에 올라 전화를 건다. 만에 하나 잘못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매사에 조심하려는 듯, 지영도 알지 못한 사이에 무언가 일을 벌이려는 모양이었다.
“유정이니?”
“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조 사장의 딸, 조유정이라면 이제는 자신의 유산 문제로 기찬에게 몸과 마음을 송두리 째 맡기고 있는 형편이니 함께 일을 풀어가기에는 적당한 상대일 수 있었다.
“너, 지난번 내가 살던 아파트가 네 친구가 살던 곳이라고 했었지? 그 왜 유학을 갔다던......”
“아! 네, 그래요. 은서......”
“그래, 그 은서라는 친구를 내가 좀 만나 봤으면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어머! 그건 왜요? 오빠, 혹시......”
“야! 그런 거 아니야. 내가 기막힌 일을 당해서 좀 복수를 해야 하겠는데, 그 친구라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기찬은 몇 가지 사실은 숨긴 채, 고 의원 부자와 얽힌 이야기를 유정에게 풀어 가고 있었다. 구구절절 고 의원 부자에게 피해 입은 사실만을 토해 내니, 유정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흥분을 하고 있었다.
“어머머! 그럼 그 돈도 그 위원장인가 하는 사람이 가로챈 셈이네요?”
“뭐, 겉으로야 내가 가지라고 준 돈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 인간 통장으로 바로 송금이 됐을 테니까, 내가 틀어버리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있는 셈이지.”
“알았어요. 오빠...... 일단 내가 전화 해 보고, 오빠에게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알아 봐야 한다.”
애경은 밤이 이슥한 시간이 되어서야 레스토랑으로 도착을 하고,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마주 앉는다.
“왜 집으로 안 들어오고, 이리 나오라고 하신 거예요?”
“집에는 연경이도 있고 해서 말을 하기가 신경 쓰여서 그랬어. 애경 씨, 요즘은 그 놈 만난 지 오래 됐지?”
“그 놈이라니......? 누구?”
“큭큭큭, 한 두 놈이라야 말을 하지.”
“어머머! 또 저런다. 말을 해야 알지. 누구...... 혹시 그 인간 말 하는 거야? 사법고시 준비한다는......”
“아니...... 병국이 말고, 애경 씨 처음에 만나던 공무원이라고 있었잖아? 아! 맞아. 그 날도 같이 있었잖아. 결국 경찰서에도 같이 끌려갔고......”
“아이 참, 자기가 일 마치면 집으로 바로 오라고 해서 아무도 못 만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 얘긴 왜 꺼내는 거야?”
“하하하, 그래, 그래...... 잘 알았어. 그 인간을 좀 만나야 되겠는데, 애경 씨가 다리를 좀 놓아 줘야 되겠어.”
“그 사람은 갑자기 왜?”
“으응, 건축허가를 좀 빨리 얻어내야 할 일이 있어서...... 애경 씨는 그런 줄만 알고 하여튼 빠른 시일 내에 만나게 해 주면 돼. 그 일만 잘 돼도 애경 씨 아파트는 바로 떨어지니까......”
“어머!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어차피 아파트는 영감이 만들어 줄 테고, 그 일이 잘 되면 네 앞으로 가게라도 하나 열어 줄 테니까 그 친구 좀 바짝 끌어당겨 봐.”
“호호호, 알았어요. 그건 나만 믿어요.”
고 의원과 영진 사장에게 양수 겹장으로 당한 꼴이었지만, 어느새 사기라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버린 기찬이 당하고 있을 리만은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나름의 방법이 떠올랐는지 이리저리 준비를 하는 사이 숨 가쁜 며칠이 흘러가고, 다시 방배동 요정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 기찬 씨, 왜 이리 오랜만이에요? 말도 없이 사라지고......”
“아! 금주 누님, 장사는 어때요?”
고 위원장의 아내 한금주를 만나러 온 모양인지 기찬은 예의 그 다정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호호호, 장사는 대박이에요.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아버님 손님들도 오시는 모양이던데요.”
“아! 누님은 몰랐던 모양이지? 고 의원님도 알고 계시던데......”
“어머! 그래요? 우리 그 이도 그런 말은 안 하던데......”
“뭐 그거야 어쨌든, 누님은 혹시라도 전면에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있죠?”
“어머!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하지. 강희 씨가 워낙 매끄럽게 손님맞이를 잘 하니까 나는 그저 낮에만 들러서 도와주는 거야. 세미 씨도 카이로에 가기 전에 꼭 여기를 들렀다가 가잖아.”
“자, 누님은 그만 나하고 함께 나갑시다.”
“어디 가려고?”
“어딘 어디야? 누님 살 냄새 맡은 지도 오래 됐잖아?”
“어머머! 안 돼, 나 지금 그날이란 말이야. 차암...... 진작 연락이나 줬으면 약을 먹어서라도 조절했을 건데......”
“아! 그래? 쳇...... 그럼 할 수 없지.”
“그럼 강희 씨나 은진 씨라도 데리고 가지?”
“아니야, 저 친구들이야 바쁜 사람들인데 그럴 수가 있나? 나도 곧 가볼 데도 있고...... 그리고 오늘 밤에는 누님 시아버지가 술을 마시러 온다고 연락이 왔더라고. 그러니까 괜히 어정거리다가 눈에 띄지 말고 일찌감치 들어가요.”
“어머! 그래? 그럼 나는 세미 씨 오는 대로 카이로에나 가 있어야겠다.”
기찬은 바로 등을 돌려 차에 오르고, 이내 출발해 버린다. 금주를 만나러 왔다고 하기 보다는 뭔가 냄새를 맡으러 온 것인지 분위기만 살피고 가는 모양이었다.
“흐음...... 금주가 제 남편과 한 통속인 것 같지는 않고...... 출세에 눈이 먼 고 위원장이 제 아비에게 알아서 기어 들어간 모양이로군. 망할 놈......”
기찬은 운전을 하면서 전화를 꺼내 든다.
“여보세요. 아! 규린 씨......”
“네, 기찬 씨......”
“계영 씨하고 의논은 해 봤어?”
“그거 정말 사진이 찍히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요?”
“아! 글쎄 그렇다니까......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영업장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냥 새로운 쇼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니까, 평소 너희들이 즐기는 행위를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돼.”
“알았어요. 그럼 이번 한 번 뿐이에요?”
“그래, 그 대신 혹시 잠자리를 요구하는 손님이 있거든 한 번은 응해 줘야 한다. 알았지?”
“칫, 그것도 이번 한 번 뿐이에요?”
“그래, 그 대신 너희들 빚은 완전히 탕감해 준다니까...... 그래도 나하곤 계속 친하게 지내야 되겠지? 하하하......”
“아유, 못됐어. 알았어요. 그럼 이따가 시간 맞춰 올라갈게요.”
“그래, 나중에 보자.”
결국 고 의원이 뭔가 변태적인 요구를 한 듯, 그에게 보이기 위한 쇼였을 테니, 일반인들, 그것도 멀쩡한 가정주부 둘이서 벌이는 레즈비언 쇼라면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필시 고 의원은 친절을 가장해서 데리고 잔 여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겸 집까지 데려다 줄 것이고, 기찬이 제공한 여자들이 과연 가정주부들인지 그것까지 확인하려 들 것이었다.
하지만, 규린과 계영 역시도 변태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기찬과는 한 축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니, 차마 정상적인 관계 안에서는 거론치 못할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다시 울리는 전화 벨, 찍혀 있는 전화번호에 기찬은 실소를 짓고 있었다.
“후훗, 그래...... 천생 내 편은 너희들이겠지. 여보세요.”
“으응, 기찬 씨...... 지금 오고 있는 거야?”
카이로의 여진이었다. 진작 함께 가자고 했던 대학 동창회 사무실에 혼자 보내두고는 미안해했었는데, 이제 다시 자신의 동창회 가입문제로 면담을 해야 한다니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지금 거의 다 왔다. 밑으로 내려와라.”
“으응, 알았어.”
여진을 픽업해 차를 몰아가는 곳은 예전에 갔었던 길이니 자연스럽게 회현동 방향으로 길을 튼다.
“아유, 그런데 그 인간 굉장히 끈적거리더라.”
“끈적거리다니......?”
“그런 거 있잖아? 내가 이런 일 하고 있다니까 괜히 한 번 따로 만나자는 식으로......”
“후훗! 너도 목적이 있어서 하는 일이니 적당한 타협은 필요악일 수도 있잖아. 네가 오히려 아쉬운 입장일 텐데......”
“뭐야! 그럼 그 치하고 같이 자라는 거야? 너, 정말 내 마스터 맞아?”
“나 원 참...... 왜 나한테 핏대를 부려? 계집애, 자기 때문에 지금 필요 없는 짓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아유, 그러니까 애써주는 김에 그 치 불러내서 나 말고 다른 계집애를 붙여 주면 되잖아? 나도 괜히 이런 일로 만난 사람하고는 잠자리 갖기 싫어서 그런단 말이야.”
“그래, 그래...... 알았다. 이 근처 어디였지?”
“으응, 바로 저기로 주차하면 돼. 사무실은 이층이야.”
“아! 또 이 인간이 얼마나 기부를 하라고 할 지 모르겠네...... 온통 돈 놓고 돈 먹는 세상이니......”
“호호호...... 미안해.”
단순히 대학 동창회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일견하기에도 규모가 큰 사무실이었다. 여직원들도 몇이 앉아있었으니, 무슨 업무가 그리 많은 것인지, 제법 분류하는 서류더미가 여느 회사와도 견줄 만한 일이었다.
“강기찬 씨, 들어오십시오.”
“네...... 여진이 너도 함께 들어갈래?”
“아아, 싫어. 난 그 사람 보기 싫어.”
“그래, 알았다. 그럼 여기서 차나 마시고 있어. 금방 나올 테니까......”
열린 문 사이로 머리를 내민 채 기다리고 있는 여직원에게 미안해 기찬은 잰 걸음으로 뛰어 들어간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기찬입니다.”
의자에 앉아 마주 하고 있는 사내는 들고 있는 파일을 안경 너머로 바라보면서 한번 씩 기찬을 곁눈질로 쳐다본다. 아마도 사진의 인물이 맞는지 확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저...... 여보, 이쪽 졸업생 명단에는 연락처가 안 나와 있는데요?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끌어들이겠어요?”
그 때, 파티션 뒤에서 파일을 들고 나오는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기찬은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그녀도 기찬을 바라보고는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 이 상황에 오히려 의아한 사람은 마주앉은 사내였을 것이다.
“어, 어떻게 아시는 사이십니까?”
“아! 네...... 조금....... 하하하, 이거야 원...... 김명희 씨가 부인이십니까?”
여자는 바로 **의 사기 결혼을 주도했던 김명희였다. 그러고 보니 그럴듯한 인물들을 추려내 혼담을 이끌어내는 웨딩플래너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편이 대학 동창회의 일을 보고 있으니 그 대상들을 추려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터, 부부간의 합작품은 아니었을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강기찬 씨가 우리 집사람을......”
“여, 여보! 왜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유라 때문에 저를 빼내준 수사관님이 있었다고......”
“아! 아, 그러십니까? 이거 제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런데 듣기에는 카이로에서 일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사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찬에게 손을 내밀지만, 이제 상황이 자연스레 변했으니, 기찬은 느물거리며 손을 내밀 뿐이었다. 순식간에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한 기찬은 사내에게 말을 건넨다.
“하하하, 겸사겸사 찾아왔습니다. 우선 단 둘이서 말씀을 좀 나누실까요?”
“아! 네, 그러시죠. 다, 당신은 좀 나가있어요.”
김명희는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조아린 뒤 문을 나서고, 그것은 무심결에 뱉은 소리를 기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부인에게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번 그 사건 조사가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김명희 씨를 추적하다보니까 이곳이 떠올랐는데, 설마 두 사람이 부부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입니다.”
“아! 그, 그게 사실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말을 했을 뿐이지만, 기찬이 수사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의 태도는 돌변하고 있었다. 지은 죄가 있는 것이었는지, 말까지 더듬는 그의 표정을 놓칠 기찬이 아니었으니 여지없이 그물로 뛰어 든 먹이를 어르는 표정으로 마주 할 뿐이었다.
“그래, 말씀해 보시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전혀 무관하지는 않던데, 선생 태도를 보고 난 후, 마음을 결정하겠습니다. 나도 동생처럼 아끼는 유라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선생 부인을 빼내준 것인 만큼, 선생이 솔직히 고백을 해 온다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 드리지요.”
“아! 네, 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 드릴 테니 제발 집사람에게는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후후, 말씀 해 보시오.”
“뭐, 이미 모두 알고 오셨겠지만, 제 마누라를 겁탈시킨 것은......”
사내에게서는 놀랄 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짐짓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딴전을 부려가며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있었지만, 머리칼이 곤두설 만큼 생경스런 내용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기부금을 내지 않고 유리한 지위에서 동창회 가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에서 뜻밖의 수확을 올리고 있는 셈이었다.
우연히 웹 서핑을 하던 중 떠돌아다니는 누드사진의 주인이 자신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내는 배신감에 몸서리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자식들은 커 가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선뜻 이혼을 결심하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신이 하는 일과 부인이 하는 일의 성격을 보아 절묘한 화합이 가능할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대학 동창회 사무장과 웨딩 플래너라는 절묘한 조합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이들 부부는 각자가 서로의 비밀을 간직한 채, 남편은 암중에 숨어있는 조직의 두목으로서 자기 부인을 내돌리고 있었고, 그 부인은 애인과의 누드 촬영 탓에 불량배들에게 몸을 버린 사실을 숨겨가면서 그에 협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부부간에 자식들을 위한다는 의무감으로 살아 온 세월이 짧지 않음에도 그것을 반감해 줄만큼 돈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기찬이 나타나 하부조직을 쓸어버린 탓에 사내는 마치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 떠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제 부인에게 같은 일을 제안했던 모양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부인은 마치 그 일을 처음 해 보는 양, 어수룩한 모습으로 서로가 시치미를 떼면서 암암리에 그 일을 추진하던 중, 기찬의 방문을 맞은 것이었다.
“흐음...... 당신 그동안 빼돌려 둔 돈은 모두 어떻게 보관하고 있소?”
“네, 그, 그게......”
“내가 이미 상당 부분을 알고 왔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 바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체일 수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 선생의 입으로 거론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길게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네, 네....... 소,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내 몰래 차명계좌를 몇 개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꺼내 보시오.”
“네, 네......”
사내는 몸을 구부려 책상 밑의 금고에서 통장들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고 있었다. 금고는 바닥에 징을 박아 용접까지 해 둔 것으로 보아 평소에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 통장 안에는 놀라운 금액이 적립되어 있었지만, 기찬이 그 돈의 액수에 매료될 입장은 아니었다.
“자, 도로 넣어 두시오.”
“네, 네......?”
“도로 넣어 두라고 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 돈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 그러니 제발......”
“후훗! 그럽시다. 나도 돈이 싫은 사람은 아니니...... 그러나 돈도 돈이지만, 나는 지금 김명희 씨가 필요한 사람인데, 이렇게 합시다.”
“제, 제 아내를 말씀이십니까?”
“당신, 이미 내 앞에서 당신 아내라고 주장하기에는 부끄러움이 있지 않은가?”
“아! 네......”
“당신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해 온 수사도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고 지워주겠어. 그리고 당신 부부 두 사람이 앞으로 벌일 일들에 대해서도 함구를 해 주겠어. 어때? 이만 하면 괜찮은 합의가 아니겠는가?”
“아! 좋습니다. 그, 그러면 돈은......”
“후훗! 돈이 필요하다면 가끔 부탁은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은 하지마시고, 부디 그 좋은 돈 많이 벌도록 하쇼. 이제 김명희는 당신과 일을 함께 하는 동료일 뿐, 내 여자요. 아! 물론 당신 자식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니 떨어져 지내라고는 하지 않겠소. 그 대신 다시 손찌검을 한다든지 낯모르는 놈들에게 몸뚱이를 내돌리게 한다면 내가 당신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 그 점은 명심하시오. 알겠소?”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앞으로는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하지. 당신에 대한 수사기록은 모두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조금이라도 내게 밉보일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네, 네...... 물론입니다.”
“자, 그럼 앞으로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김명희 씨를 불러 낼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이건 우리끼리의 신사협정이오. 당신이 죽고 사는 문제일 수 있는 일이니 잘 판단해야 할 겁니다. 그 좋은 돈 벌어두느라 고생만 하고 써 보지도 못하고 가는 수도 있습니다.”
“네, 네...... 절대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수고하시오. 내 명단은 동창회 명부에 잘 처리해 두시오. 그것도 수사상 필요한 일이니......”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명희 씨는 지금 내가 데리고 갈 테니 그리 아시오.”
“아! 네...... 저...... 애들을 봐서라도 비밀은 꼭 좀......”
“허허허, 거 참, 까짓 것 그럽시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던 김명희는 기찬이 나오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선뜻 남편의 사무실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의아한 것은 여진이었으니 기찬은 눈짓으로 여진에게 나가있으라고 지시를 한다.
“자, 김명희 씨도 나 좀 봅시다. 남편에게는 이야기를 해 뒀으니 그냥 가도 될 거요.”
“네, 네......”
허둥지둥 따라 나서는 김명희와 여진을 차에 태우고, 야릇한 분위기에 세 사람 모두는 아무 말 없이 차창 밖 풍경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여진아.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우선 내려라.”
“으응, 알았어. 전화 해 줘.”
여진을 카이로에 내려두고 기찬은 다시 차를 몰아간다. 여전히 김명희는 기찬을 수사관으로만 알고 있으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매만지고 있었다. 기실 기찬은 뜻하지 않은 복병, 고 의원을 만난 셈이니 당분간은 그의 컬렉션을 채워 주어야 할 일, 할 수 없이 보통의 주부들을 상납 대상으로 물색해 두는 모양으로 김명희를 삼각지 여관으로 데려가는 중이었다.
“명희 씨......”
“네, 네......”
“잘 들어 봐.”
“네......?”
“잘 들어 보라고...... 남편과 나눈 대화 내용이니까......”
기찬은 즉시 휴대폰을 열어 녹음기능을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 중차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녹음을 해 두지 않을 기찬이 아니었으니, 사내의 통사정을 뒤로 하고 그녀에게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기존의 동지를 완전히 떠나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으니 구태여 힘든 길을 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어머머......!”
녹음 내용을 듣는 김명희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가고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미 자신이 처한 환경을 알게 되었으니 갈 길을 정하기는 의외로 쉬운 일, 다부진 표정으로 기찬을 바라본다.
“흐윽! 흐음......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아직도 다소 흐느낌을 멈출 수는 없었는지, 감정을 조절해 가면서 룸미러로 기찬을 바라본다.
“정한 이치 아니겠어? 이제 명희 씨는 내 여자야. 다 들었다시피 명희 씨도 자식들과 떨어져 지내기는 싫을 거 아냐? 다만 개인적으로 재산을 형성하고 싶다면 그것은 내가 당신 남편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어요.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도와주세요.”
“후훗! 그래, 그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지. 하지만, 당신이 먼저 피운 바람이잖아. 지금 당장은 기가 막히겠지만, 그 문제는 조금 두고 보자고...... 나중에 가서 당신 남편을 알거지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니까 당분간은 당신도 모른 척하고 연기를 해야 할 거야.”
“으흠......”
“당신은 모르게 해 준다는 게 조건이었으니까, 당신은 끝내 모른 척 하고 있어. 이제껏 서로 연기를 하고 지냈으니까 그 부분은 자신 있을 거 아니겠어? 알겠지?”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하지요.”
이윽고 차는 삼각지에 도착하고, 여관 주차장의 천막이 차창을 쓸고 올라갈 무렵 김명희도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 기찬에게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걸어오는 그녀를 흘끗 바라보며 기찬은 미소를 짓는다.
“이제 완전히 마음 정한 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이제부터 당신 여자로 살 거예요.”
“후훗! 나는 당신 남편보다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한 사람이 아니야. 당장 오늘 밤에라도 다른 놈에게 사타구니를 벌리라고 할지도 몰라.”
“뭐든지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그 대신 제 복수는 꼭 해 주셔야 돼요. 그리고 저를 버리지만 않으신다면......”
“그야 물론이지. 이렇게 어여쁜 여자를 버리면 그게 사내가 아니지. 하하하......”
현관을 열고 들어선 두 사람은 그렇게 얽혀 버린다. 지나온 세월이 몰상식이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변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는 일, 마치 십 년을 함께 살아 온 이들처럼 자연스럽게 몸을 부딪쳐 간다.
“하악......”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 따위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세상을 알 만큼 알아왔고, 단지 필요한 것은 허무하게 느껴지는 그 빈자리를 채워 줄 상대였으니 지금의 이 섹스만큼 달콤하게 그들을 끌어주는 것은 없었다.
“하악...... 여, 여보......”
단지 한 번 보았을 뿐인 낯선 이에게 몸을 열어주는 것은 그 당위성에 있어 놀라운 흥분을 이끌어주는 것이었으니, 격하게 치고 들어오는 기찬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 째 내어 준다.
“어머!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젠장.......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그냥 두 눈 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지. 지금 고 의원의 위세라면 국방부에 압력을 넣어서 내 수사관 면허마저도 정지시킬 수 있을 텐데......”
“어머머! 세상에...... 정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진짜 사기꾼에 도둑놈들은 그놈들이잖아요? 혹시 그 아들놈도 미친 척만 할 뿐, 애초부터 제 아비하고 한통속 아니었을까요?”
“글쎄다.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럴지도 모르지. 젠장......”
“어머머! 그럼 어떻게 해요? 두 눈 뜨고 당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일을 상의할 사람이라곤 레스토랑의 지영뿐이었으니, 기찬은 종로로 돌아와 지영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 당장 애경이 좀 나오라고 불러 봐.”
“애경 씨는 갑자기 왜요?”
“하여간 불러 봐. 예전에 붙어먹던 놈 중에 공무원이 하나 있다고 하는 것 같았거든.”
“공무원이요?”
“으응, 그 인간한테 비벼보면 뭔가 영진 사장을 물 먹일 만한 방법이 있을지 몰라.”
“어머! 영진 건은 이제 잊어 버려요. 괜히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데, 지금 사기 대출하는 것도 영진 명의로 하고 있는 거잖아요?”
“참 나...... 실제로 그 일 때문에 영진이 피해 볼 것은 하나도 없는 일이잖아? 조상환이라는 놈 아니면, 대출해 준 회사에서 피해를 보는 것이지, 명의를 도용당한 영진은 아무 책임이 없는 건데 피해를 볼 것은 전혀 없는 셈이지. 혹시 모르지. 그 일 때문에 잠깐 주식 가격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그것은 곧 회복될 거야.”
“아유 참, 나는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차라리 그 술집 포기해 버리면 안돼요?”
“어허 참! 누님, 오늘 이상하다. 나는 돈도 돈이지만, 그 인간들에게 밟혀 버린 기분이 들어서 더 그러는 거야. 이젠 누님도 내 부탁 안 들어 줄 거야?”
“어머머! 누가 그렇대? 나야 자기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인데 괜히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하하하, 알았어요. 어서 전화나 걸어 봐요. 나는 잠깐 나갔다가 올 테니까......”
레스토랑 밖으로 나온 기찬은 차에 올라 전화를 건다. 만에 하나 잘못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매사에 조심하려는 듯, 지영도 알지 못한 사이에 무언가 일을 벌이려는 모양이었다.
“유정이니?”
“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조 사장의 딸, 조유정이라면 이제는 자신의 유산 문제로 기찬에게 몸과 마음을 송두리 째 맡기고 있는 형편이니 함께 일을 풀어가기에는 적당한 상대일 수 있었다.
“너, 지난번 내가 살던 아파트가 네 친구가 살던 곳이라고 했었지? 그 왜 유학을 갔다던......”
“아! 네, 그래요. 은서......”
“그래, 그 은서라는 친구를 내가 좀 만나 봤으면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어머! 그건 왜요? 오빠, 혹시......”
“야! 그런 거 아니야. 내가 기막힌 일을 당해서 좀 복수를 해야 하겠는데, 그 친구라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기찬은 몇 가지 사실은 숨긴 채, 고 의원 부자와 얽힌 이야기를 유정에게 풀어 가고 있었다. 구구절절 고 의원 부자에게 피해 입은 사실만을 토해 내니, 유정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흥분을 하고 있었다.
“어머머! 그럼 그 돈도 그 위원장인가 하는 사람이 가로챈 셈이네요?”
“뭐, 겉으로야 내가 가지라고 준 돈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 인간 통장으로 바로 송금이 됐을 테니까, 내가 틀어버리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있는 셈이지.”
“알았어요. 오빠...... 일단 내가 전화 해 보고, 오빠에게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알아 봐야 한다.”
애경은 밤이 이슥한 시간이 되어서야 레스토랑으로 도착을 하고,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마주 앉는다.
“왜 집으로 안 들어오고, 이리 나오라고 하신 거예요?”
“집에는 연경이도 있고 해서 말을 하기가 신경 쓰여서 그랬어. 애경 씨, 요즘은 그 놈 만난 지 오래 됐지?”
“그 놈이라니......? 누구?”
“큭큭큭, 한 두 놈이라야 말을 하지.”
“어머머! 또 저런다. 말을 해야 알지. 누구...... 혹시 그 인간 말 하는 거야? 사법고시 준비한다는......”
“아니...... 병국이 말고, 애경 씨 처음에 만나던 공무원이라고 있었잖아? 아! 맞아. 그 날도 같이 있었잖아. 결국 경찰서에도 같이 끌려갔고......”
“아이 참, 자기가 일 마치면 집으로 바로 오라고 해서 아무도 못 만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 얘긴 왜 꺼내는 거야?”
“하하하, 그래, 그래...... 잘 알았어. 그 인간을 좀 만나야 되겠는데, 애경 씨가 다리를 좀 놓아 줘야 되겠어.”
“그 사람은 갑자기 왜?”
“으응, 건축허가를 좀 빨리 얻어내야 할 일이 있어서...... 애경 씨는 그런 줄만 알고 하여튼 빠른 시일 내에 만나게 해 주면 돼. 그 일만 잘 돼도 애경 씨 아파트는 바로 떨어지니까......”
“어머!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어차피 아파트는 영감이 만들어 줄 테고, 그 일이 잘 되면 네 앞으로 가게라도 하나 열어 줄 테니까 그 친구 좀 바짝 끌어당겨 봐.”
“호호호, 알았어요. 그건 나만 믿어요.”
고 의원과 영진 사장에게 양수 겹장으로 당한 꼴이었지만, 어느새 사기라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버린 기찬이 당하고 있을 리만은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나름의 방법이 떠올랐는지 이리저리 준비를 하는 사이 숨 가쁜 며칠이 흘러가고, 다시 방배동 요정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 기찬 씨, 왜 이리 오랜만이에요? 말도 없이 사라지고......”
“아! 금주 누님, 장사는 어때요?”
고 위원장의 아내 한금주를 만나러 온 모양인지 기찬은 예의 그 다정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호호호, 장사는 대박이에요.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아버님 손님들도 오시는 모양이던데요.”
“아! 누님은 몰랐던 모양이지? 고 의원님도 알고 계시던데......”
“어머! 그래요? 우리 그 이도 그런 말은 안 하던데......”
“뭐 그거야 어쨌든, 누님은 혹시라도 전면에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있죠?”
“어머!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하지. 강희 씨가 워낙 매끄럽게 손님맞이를 잘 하니까 나는 그저 낮에만 들러서 도와주는 거야. 세미 씨도 카이로에 가기 전에 꼭 여기를 들렀다가 가잖아.”
“자, 누님은 그만 나하고 함께 나갑시다.”
“어디 가려고?”
“어딘 어디야? 누님 살 냄새 맡은 지도 오래 됐잖아?”
“어머머! 안 돼, 나 지금 그날이란 말이야. 차암...... 진작 연락이나 줬으면 약을 먹어서라도 조절했을 건데......”
“아! 그래? 쳇...... 그럼 할 수 없지.”
“그럼 강희 씨나 은진 씨라도 데리고 가지?”
“아니야, 저 친구들이야 바쁜 사람들인데 그럴 수가 있나? 나도 곧 가볼 데도 있고...... 그리고 오늘 밤에는 누님 시아버지가 술을 마시러 온다고 연락이 왔더라고. 그러니까 괜히 어정거리다가 눈에 띄지 말고 일찌감치 들어가요.”
“어머! 그래? 그럼 나는 세미 씨 오는 대로 카이로에나 가 있어야겠다.”
기찬은 바로 등을 돌려 차에 오르고, 이내 출발해 버린다. 금주를 만나러 왔다고 하기 보다는 뭔가 냄새를 맡으러 온 것인지 분위기만 살피고 가는 모양이었다.
“흐음...... 금주가 제 남편과 한 통속인 것 같지는 않고...... 출세에 눈이 먼 고 위원장이 제 아비에게 알아서 기어 들어간 모양이로군. 망할 놈......”
기찬은 운전을 하면서 전화를 꺼내 든다.
“여보세요. 아! 규린 씨......”
“네, 기찬 씨......”
“계영 씨하고 의논은 해 봤어?”
“그거 정말 사진이 찍히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요?”
“아! 글쎄 그렇다니까......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영업장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냥 새로운 쇼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니까, 평소 너희들이 즐기는 행위를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돼.”
“알았어요. 그럼 이번 한 번 뿐이에요?”
“그래, 그 대신 혹시 잠자리를 요구하는 손님이 있거든 한 번은 응해 줘야 한다. 알았지?”
“칫, 그것도 이번 한 번 뿐이에요?”
“그래, 그 대신 너희들 빚은 완전히 탕감해 준다니까...... 그래도 나하곤 계속 친하게 지내야 되겠지? 하하하......”
“아유, 못됐어. 알았어요. 그럼 이따가 시간 맞춰 올라갈게요.”
“그래, 나중에 보자.”
결국 고 의원이 뭔가 변태적인 요구를 한 듯, 그에게 보이기 위한 쇼였을 테니, 일반인들, 그것도 멀쩡한 가정주부 둘이서 벌이는 레즈비언 쇼라면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필시 고 의원은 친절을 가장해서 데리고 잔 여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겸 집까지 데려다 줄 것이고, 기찬이 제공한 여자들이 과연 가정주부들인지 그것까지 확인하려 들 것이었다.
하지만, 규린과 계영 역시도 변태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기찬과는 한 축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니, 차마 정상적인 관계 안에서는 거론치 못할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다시 울리는 전화 벨, 찍혀 있는 전화번호에 기찬은 실소를 짓고 있었다.
“후훗, 그래...... 천생 내 편은 너희들이겠지. 여보세요.”
“으응, 기찬 씨...... 지금 오고 있는 거야?”
카이로의 여진이었다. 진작 함께 가자고 했던 대학 동창회 사무실에 혼자 보내두고는 미안해했었는데, 이제 다시 자신의 동창회 가입문제로 면담을 해야 한다니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지금 거의 다 왔다. 밑으로 내려와라.”
“으응, 알았어.”
여진을 픽업해 차를 몰아가는 곳은 예전에 갔었던 길이니 자연스럽게 회현동 방향으로 길을 튼다.
“아유, 그런데 그 인간 굉장히 끈적거리더라.”
“끈적거리다니......?”
“그런 거 있잖아? 내가 이런 일 하고 있다니까 괜히 한 번 따로 만나자는 식으로......”
“후훗! 너도 목적이 있어서 하는 일이니 적당한 타협은 필요악일 수도 있잖아. 네가 오히려 아쉬운 입장일 텐데......”
“뭐야! 그럼 그 치하고 같이 자라는 거야? 너, 정말 내 마스터 맞아?”
“나 원 참...... 왜 나한테 핏대를 부려? 계집애, 자기 때문에 지금 필요 없는 짓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아유, 그러니까 애써주는 김에 그 치 불러내서 나 말고 다른 계집애를 붙여 주면 되잖아? 나도 괜히 이런 일로 만난 사람하고는 잠자리 갖기 싫어서 그런단 말이야.”
“그래, 그래...... 알았다. 이 근처 어디였지?”
“으응, 바로 저기로 주차하면 돼. 사무실은 이층이야.”
“아! 또 이 인간이 얼마나 기부를 하라고 할 지 모르겠네...... 온통 돈 놓고 돈 먹는 세상이니......”
“호호호...... 미안해.”
단순히 대학 동창회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일견하기에도 규모가 큰 사무실이었다. 여직원들도 몇이 앉아있었으니, 무슨 업무가 그리 많은 것인지, 제법 분류하는 서류더미가 여느 회사와도 견줄 만한 일이었다.
“강기찬 씨, 들어오십시오.”
“네...... 여진이 너도 함께 들어갈래?”
“아아, 싫어. 난 그 사람 보기 싫어.”
“그래, 알았다. 그럼 여기서 차나 마시고 있어. 금방 나올 테니까......”
열린 문 사이로 머리를 내민 채 기다리고 있는 여직원에게 미안해 기찬은 잰 걸음으로 뛰어 들어간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기찬입니다.”
의자에 앉아 마주 하고 있는 사내는 들고 있는 파일을 안경 너머로 바라보면서 한번 씩 기찬을 곁눈질로 쳐다본다. 아마도 사진의 인물이 맞는지 확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저...... 여보, 이쪽 졸업생 명단에는 연락처가 안 나와 있는데요?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끌어들이겠어요?”
그 때, 파티션 뒤에서 파일을 들고 나오는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기찬은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그녀도 기찬을 바라보고는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 이 상황에 오히려 의아한 사람은 마주앉은 사내였을 것이다.
“어, 어떻게 아시는 사이십니까?”
“아! 네...... 조금....... 하하하, 이거야 원...... 김명희 씨가 부인이십니까?”
여자는 바로 **의 사기 결혼을 주도했던 김명희였다. 그러고 보니 그럴듯한 인물들을 추려내 혼담을 이끌어내는 웨딩플래너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편이 대학 동창회의 일을 보고 있으니 그 대상들을 추려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터, 부부간의 합작품은 아니었을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강기찬 씨가 우리 집사람을......”
“여, 여보! 왜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유라 때문에 저를 빼내준 수사관님이 있었다고......”
“아! 아, 그러십니까? 이거 제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런데 듣기에는 카이로에서 일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사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찬에게 손을 내밀지만, 이제 상황이 자연스레 변했으니, 기찬은 느물거리며 손을 내밀 뿐이었다. 순식간에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한 기찬은 사내에게 말을 건넨다.
“하하하, 겸사겸사 찾아왔습니다. 우선 단 둘이서 말씀을 좀 나누실까요?”
“아! 네, 그러시죠. 다, 당신은 좀 나가있어요.”
김명희는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조아린 뒤 문을 나서고, 그것은 무심결에 뱉은 소리를 기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부인에게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번 그 사건 조사가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김명희 씨를 추적하다보니까 이곳이 떠올랐는데, 설마 두 사람이 부부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입니다.”
“아! 그, 그게 사실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말을 했을 뿐이지만, 기찬이 수사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의 태도는 돌변하고 있었다. 지은 죄가 있는 것이었는지, 말까지 더듬는 그의 표정을 놓칠 기찬이 아니었으니 여지없이 그물로 뛰어 든 먹이를 어르는 표정으로 마주 할 뿐이었다.
“그래, 말씀해 보시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전혀 무관하지는 않던데, 선생 태도를 보고 난 후, 마음을 결정하겠습니다. 나도 동생처럼 아끼는 유라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선생 부인을 빼내준 것인 만큼, 선생이 솔직히 고백을 해 온다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 드리지요.”
“아! 네, 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 드릴 테니 제발 집사람에게는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후후, 말씀 해 보시오.”
“뭐, 이미 모두 알고 오셨겠지만, 제 마누라를 겁탈시킨 것은......”
사내에게서는 놀랄 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짐짓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딴전을 부려가며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있었지만, 머리칼이 곤두설 만큼 생경스런 내용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기부금을 내지 않고 유리한 지위에서 동창회 가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에서 뜻밖의 수확을 올리고 있는 셈이었다.
우연히 웹 서핑을 하던 중 떠돌아다니는 누드사진의 주인이 자신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내는 배신감에 몸서리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자식들은 커 가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선뜻 이혼을 결심하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신이 하는 일과 부인이 하는 일의 성격을 보아 절묘한 화합이 가능할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대학 동창회 사무장과 웨딩 플래너라는 절묘한 조합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이들 부부는 각자가 서로의 비밀을 간직한 채, 남편은 암중에 숨어있는 조직의 두목으로서 자기 부인을 내돌리고 있었고, 그 부인은 애인과의 누드 촬영 탓에 불량배들에게 몸을 버린 사실을 숨겨가면서 그에 협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부부간에 자식들을 위한다는 의무감으로 살아 온 세월이 짧지 않음에도 그것을 반감해 줄만큼 돈의 유혹은 대단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기찬이 나타나 하부조직을 쓸어버린 탓에 사내는 마치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 떠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제 부인에게 같은 일을 제안했던 모양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부인은 마치 그 일을 처음 해 보는 양, 어수룩한 모습으로 서로가 시치미를 떼면서 암암리에 그 일을 추진하던 중, 기찬의 방문을 맞은 것이었다.
“흐음...... 당신 그동안 빼돌려 둔 돈은 모두 어떻게 보관하고 있소?”
“네, 그, 그게......”
“내가 이미 상당 부분을 알고 왔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 바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체일 수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 선생의 입으로 거론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길게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네, 네....... 소,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내 몰래 차명계좌를 몇 개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꺼내 보시오.”
“네, 네......”
사내는 몸을 구부려 책상 밑의 금고에서 통장들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고 있었다. 금고는 바닥에 징을 박아 용접까지 해 둔 것으로 보아 평소에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 통장 안에는 놀라운 금액이 적립되어 있었지만, 기찬이 그 돈의 액수에 매료될 입장은 아니었다.
“자, 도로 넣어 두시오.”
“네, 네......?”
“도로 넣어 두라고 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 돈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 그러니 제발......”
“후훗! 그럽시다. 나도 돈이 싫은 사람은 아니니...... 그러나 돈도 돈이지만, 나는 지금 김명희 씨가 필요한 사람인데, 이렇게 합시다.”
“제, 제 아내를 말씀이십니까?”
“당신, 이미 내 앞에서 당신 아내라고 주장하기에는 부끄러움이 있지 않은가?”
“아! 네......”
“당신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해 온 수사도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고 지워주겠어. 그리고 당신 부부 두 사람이 앞으로 벌일 일들에 대해서도 함구를 해 주겠어. 어때? 이만 하면 괜찮은 합의가 아니겠는가?”
“아! 좋습니다. 그, 그러면 돈은......”
“후훗! 돈이 필요하다면 가끔 부탁은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은 하지마시고, 부디 그 좋은 돈 많이 벌도록 하쇼. 이제 김명희는 당신과 일을 함께 하는 동료일 뿐, 내 여자요. 아! 물론 당신 자식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니 떨어져 지내라고는 하지 않겠소. 그 대신 다시 손찌검을 한다든지 낯모르는 놈들에게 몸뚱이를 내돌리게 한다면 내가 당신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 그 점은 명심하시오. 알겠소?”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앞으로는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하지. 당신에 대한 수사기록은 모두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조금이라도 내게 밉보일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네, 네...... 물론입니다.”
“자, 그럼 앞으로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김명희 씨를 불러 낼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이건 우리끼리의 신사협정이오. 당신이 죽고 사는 문제일 수 있는 일이니 잘 판단해야 할 겁니다. 그 좋은 돈 벌어두느라 고생만 하고 써 보지도 못하고 가는 수도 있습니다.”
“네, 네...... 절대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수고하시오. 내 명단은 동창회 명부에 잘 처리해 두시오. 그것도 수사상 필요한 일이니......”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명희 씨는 지금 내가 데리고 갈 테니 그리 아시오.”
“아! 네...... 저...... 애들을 봐서라도 비밀은 꼭 좀......”
“허허허, 거 참, 까짓 것 그럽시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던 김명희는 기찬이 나오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선뜻 남편의 사무실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의아한 것은 여진이었으니 기찬은 눈짓으로 여진에게 나가있으라고 지시를 한다.
“자, 김명희 씨도 나 좀 봅시다. 남편에게는 이야기를 해 뒀으니 그냥 가도 될 거요.”
“네, 네......”
허둥지둥 따라 나서는 김명희와 여진을 차에 태우고, 야릇한 분위기에 세 사람 모두는 아무 말 없이 차창 밖 풍경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여진아.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우선 내려라.”
“으응, 알았어. 전화 해 줘.”
여진을 카이로에 내려두고 기찬은 다시 차를 몰아간다. 여전히 김명희는 기찬을 수사관으로만 알고 있으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매만지고 있었다. 기실 기찬은 뜻하지 않은 복병, 고 의원을 만난 셈이니 당분간은 그의 컬렉션을 채워 주어야 할 일, 할 수 없이 보통의 주부들을 상납 대상으로 물색해 두는 모양으로 김명희를 삼각지 여관으로 데려가는 중이었다.
“명희 씨......”
“네, 네......”
“잘 들어 봐.”
“네......?”
“잘 들어 보라고...... 남편과 나눈 대화 내용이니까......”
기찬은 즉시 휴대폰을 열어 녹음기능을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 중차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녹음을 해 두지 않을 기찬이 아니었으니, 사내의 통사정을 뒤로 하고 그녀에게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기존의 동지를 완전히 떠나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으니 구태여 힘든 길을 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어머머......!”
녹음 내용을 듣는 김명희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가고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미 자신이 처한 환경을 알게 되었으니 갈 길을 정하기는 의외로 쉬운 일, 다부진 표정으로 기찬을 바라본다.
“흐윽! 흐음......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아직도 다소 흐느낌을 멈출 수는 없었는지, 감정을 조절해 가면서 룸미러로 기찬을 바라본다.
“정한 이치 아니겠어? 이제 명희 씨는 내 여자야. 다 들었다시피 명희 씨도 자식들과 떨어져 지내기는 싫을 거 아냐? 다만 개인적으로 재산을 형성하고 싶다면 그것은 내가 당신 남편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어요.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도와주세요.”
“후훗! 그래, 그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지. 하지만, 당신이 먼저 피운 바람이잖아. 지금 당장은 기가 막히겠지만, 그 문제는 조금 두고 보자고...... 나중에 가서 당신 남편을 알거지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니까 당분간은 당신도 모른 척하고 연기를 해야 할 거야.”
“으흠......”
“당신은 모르게 해 준다는 게 조건이었으니까, 당신은 끝내 모른 척 하고 있어. 이제껏 서로 연기를 하고 지냈으니까 그 부분은 자신 있을 거 아니겠어? 알겠지?”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하지요.”
이윽고 차는 삼각지에 도착하고, 여관 주차장의 천막이 차창을 쓸고 올라갈 무렵 김명희도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 기찬에게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걸어오는 그녀를 흘끗 바라보며 기찬은 미소를 짓는다.
“이제 완전히 마음 정한 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이제부터 당신 여자로 살 거예요.”
“후훗! 나는 당신 남편보다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한 사람이 아니야. 당장 오늘 밤에라도 다른 놈에게 사타구니를 벌리라고 할지도 몰라.”
“뭐든지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그 대신 제 복수는 꼭 해 주셔야 돼요. 그리고 저를 버리지만 않으신다면......”
“그야 물론이지. 이렇게 어여쁜 여자를 버리면 그게 사내가 아니지. 하하하......”
현관을 열고 들어선 두 사람은 그렇게 얽혀 버린다. 지나온 세월이 몰상식이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변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는 일, 마치 십 년을 함께 살아 온 이들처럼 자연스럽게 몸을 부딪쳐 간다.
“하악......”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 따위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세상을 알 만큼 알아왔고, 단지 필요한 것은 허무하게 느껴지는 그 빈자리를 채워 줄 상대였으니 지금의 이 섹스만큼 달콤하게 그들을 끌어주는 것은 없었다.
“하악...... 여, 여보......”
단지 한 번 보았을 뿐인 낯선 이에게 몸을 열어주는 것은 그 당위성에 있어 놀라운 흥분을 이끌어주는 것이었으니, 격하게 치고 들어오는 기찬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 째 내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