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을 해치우다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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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2:56 조회 444회 댓글 0건본문
그녀들을 해치우다자신의 차를 사랑하는 테리우스가 왠일로 자기 차를 내 차 옆에다 세우더니, 자기 가방을 내 차 뒷좌석에 던져놓은 후, 조수석에 타자마자 의자를 제끼고 드러누웠다.
"니 찬?"
"지금 이 상태로 운전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나 혈중 알콜농도도 재보면 면허 취소 나올거야. 아마."
"두고 간다고?"
"어, 그래서 일부러 차도 cctv앞에 세워 놨지. 형이 운전 좀 해라. 속초 도착하면 나 좀 깨워줘."
"알았다. 그런데, 속초 어디냐?"
"형, 대명콘도 알지? 그 근처니까. 대명에서 뭐 좀 사가자. 맥주 같은 거."
"또 술이냐? 네가 무슨 알콜릭도 아니고."
"지금 상처입은 내 영혼엔 술이 필요해. 소주 들이부어서 소독이라도 해 줘야 하거든. 아니면 곪을 거야."
"좀 자라. 술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담요줄까? 무릎담요는 있는데."
"아니. 좀 덥네. 에어컨 약하게 틀어줘요. 나 잔다."
내내 시내 운전만 하다가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탔더니, 속도감에 정신이 매몰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엔 우울할 땐, 고속으로 차를 운전하면서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그것을 마구 따라부른 적이 있었다. 빗길에 그러다가 살짝 미끄러져서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이후로는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깊이 잠든 커다란 덩치의 녀석을 옆에 태우고 혼자 가는 고속도로는 적막해서, 나는 외로운 마음이 싫어서 며칠 전에 산 오렌지 캬라멜의 cd를 넣고는 립스틱을 따라불렀다. 소녀시대가 한참 지를 부를 때는 공부하듯 아이돌을 연구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저 노래를 듣는 수준이다.
대명콘도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리면서 속이 편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자고 있는 테리우스를 두고 콘도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을 해결하고 나니, 목이 말라서 물을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꿀차를 발견하고, 생수 하나와 꿀차를 사서 로비로 나왔다. 편의점 문앞에 있는 신문게시대에 큰 글씨로 "승미의 첫남자는 무협소설가?"라는 스포츠 신문의 일면이 보였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려다가 부질없는 짓같아서 그냥 로비로 나와 천천히 진하게 탄 꿀차를 마셨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일단 별장에 가서 한 잠을 잘 생각이었다. 진한 꿀차를 마시면 깊이 잠들 수 있다. 불면증에 시달려 온 내가 터득한 비법이지만,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쓰지 않는 방법이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열어봤는데, 메세지가 들어와 있었다. 카드구매내역 문자였는데, 이번에는 김밥천국에서 3천원을 긁은 것이 떴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가 궁금해졌다. 새벽에 혼자서 쓸쓸하게 해장국을 먹고, 또 느지막히 일어나서, 점심 나절 김밥 두 줄을 씹는 이 사람에 대해서 좀 상상을 했다. 글을 쓰는 건 결국 두 가지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어 쓰거나, 자기가 겪지 않은 일을 상상을 하거나.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선 결국 얼마나 더 많은 생각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처음에 떠올린 건 기러기아빠였다. 마흔 줄의 배가 약간 나온 후줄근한 남자가 새벽에 해장국을 먹고, 점심 때 가게를 열기 전 김밥을 사는 모습이 떠올랐다. 조기유학이나 유학생들에 대해 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잘 적응을 하건, 잘 하지 못해 힘들어하건, 사람은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게 된다.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의 고생같은 것보다는 파티의 즐거움에 빠지거나, 혼자만의 고독에 힘들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유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서 난 한 사람의 희생을 건성으로 느끼면서 결국 잘되면 내 탓, 못되면 혼자 있는 나를 위해 뭘 해줬느냐고 묻게 되는 유학을 왜 부모가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공부가 필요하다면 자기가 벌어야 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테리우스가 궁금해졌다. 돈이 많은 집안의 아들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꽤 친하게 지낸 나조차도, 그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물어본 적이 없다. 처음 미팅을 했을 때부터 남달랐던 과한 자신감과 가벼운 언행, 녀석에게도 비밀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자고 있던 녀석을 깨우고, 편의점에서 사간 숙취해소 음료를 건냈다.
"형, 형이나 마셔라. 나 이런 거 잘 못 먹거든. 맛이 이상하지 않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자고 일어났더니 오줌 마렵네. 아침에 포카리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나?"
화장실을 다녀온 녀석의 손에 들린 건 또 다시 포카리였다. 아예, 큰 병을 사온 녀석이 같이 사온 종이컵에 포카리를 따르더니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역시, 숙취엔 포카리라니까. 형, 여기서 10분도 안 걸려. 나가서, 바로 좌회전해서 똑바로 가면 돼."
"알았다."
"뭐, 기분 나쁜 일 있어. 표정이 어둡네. 고속도로 탈 때는 립스틱 어쩌고 하면서 계속 노래 따라부르더니."
"아니. 그런 건 없는데. 맥주 사간다더니."
"생각해보니까 아마 있을 것 같아서. 관리인 할아버지가 사놨을 거야. 아마."
작은 강이 있었고, 강을 경계로 별장들이 듬성듬성 지어져 있었다. 저기야 저기를 외치는 테리우스의 손가락을 따라 들어간 별장은 출입구부터가 멋있었다. 종류를 알수없는 침엽수가 쭉 늘어선 출입구를 지나자 정원석과 잔디가 우리를 맞았다. 별장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심지어 안에 들어가자 에어컨이라도 가동중이었는지, 시원한 공기가 가득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거야?"
"아, 내가 아침에 전화를 했거든. 형, 배고프면 주방에 뭐라도 있을 거니까 먹어. 난 좀 잔다. 진짜 피곤해."
테리우스가 침실로 들어가버리자, 남의 집에 주인 없이 혼자 남겨진 사람이 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배가 출출해져서 테리우스가 말한대로 주방으로 가서 가스렌지에 올려진 냄비를 열었다. 바닷가니까 매운탕 같은 게 들어있을 것 같아서 열었는데, 갈비찜이 들어있었다. 불을 올리고, 냉장고에 있던 젓갈이랑 김치를 꺼내놓고 밥을 퍼서 혼자서 밥을 먹었다. 갈비는 맛있었다. 먹고 났더니 한꺼번에 노곤함이 밀려들었다. 손님방에 들어가서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목이 말라 깼을 땐,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테리우스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예, 예를 계속해서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고는 몹시 기분이 상한 얼굴을 했는데, 남의 전화를 엿듣게 된 것 같아 나 역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큼큼하고 헛기침을 하자 얼굴을 완전 회복한 테리우스가 tv를 껐다.
"잘 잤어?"
"어, 너도 이제 얼굴이 좋다."
"오래 잤으니까. 형, 우리 좀 놀까?"
"응?"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좀 놀자. 지저분하게. 오늘은 좀 그러고 싶어서. 괜찮지. 아마 좀 놀랄 걸. 내가 소개하는 거니까, 돈은 형이 내."
"아까부터 왜 그러냐. 부잣집 아들래미가."
"좀 고민을 하게 됐거든. 내가 이래도 되나 싶어서 말이야. 아! 또 우울해지려고 한다. 형 잠깐만."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처방약봉투를 꺼내서 물을 찾아 먹고 오더니, 곧 정신을 회복했다.
"별 거 아니고, 나 마음이 많이 아픈 아이거든. 그냥 그런 약있잖아. 마음 조절해 주는 약."
"응. 그래도 노는 건 좀 쉬다 놀자. 어제 그렇게 달렸는데. 몸을 회복하자마자 또 달리는 것도 웃기잖아. 무슨 니가 밤문화 대표선수도 아니고."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밖은 나가자. 바람 맞고 싶어.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거든. 자전거 타러가자."
"그러자."
바람이 많이 부는 해안도로는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기에 좋았다. 한 20분을 달렸는데, 좀 몸이 지치고 있을 때, 바다가 보였다. 해안에 앉아서 테리우스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기다리는데는 도사다. 사람이란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바람이 부는 비린내가 조금 나는 해안에서 테리우스는 쭈볏거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도, 우리 아버지가 궁금해?"
"어. 그런데, 네가 싫으면 그냥 괜찮을 것 같아. 네 아버지랑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난 아버지가 싫거든. 그런데, 아버지 돈을 쓰고 살고 있으니까 부끄럽긴 한데 말이야..."
어쩌면 이 말을 하려고, 나를 이 곳에 데려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테리우스는 결국 말을 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더니 소리를 마구 지르며 별장쪽으로 이동했다. 별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에 비가 내려서, 난 화장실에서, 테리우스는 안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각자 씻고 나왔다. 이틀 정도 면도를 하지 않았더니 코 밑이 거뭇거뭇해졌다. 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과 속옷, 양말을 주방의 드럼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테리우스를 기다리려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서 화장실 앞으로 부르러 갔다.
"뭐하냐?"
"씻어요."
"빨래 돌릴건데, 니것도 같이 돌려줄까?"
"와. 무슨 살림꾼도 아니고. 형, 제건 괜찮아요. 형 것도 그냥 세탁기에 넣어두세요. 내일 관리인 할머니가 와서 해주실 거에요."
"알았다. 빨리 나와. 사내자식이 씻는데 뭘 그렇게 오래 걸리냐?"
안방을 나와 거실로 나오다가 안방 tv아래에서 앨범을 발견했다. 가족들의 사진인가 그냥 무심코 들고 나와서 소파에 펼쳐두고 보는데, 그건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앨범이 아니었다. 두면에 한 명씩 프로필과 사진이 찍혀 있었다. 사진은 각각 다섯장이었는데, 얼굴사진과 옷을 입은 전신 사진. 그리고 옷을 벗은 전신이 앞과 뒤 이렇게 두장이 찍혀 있었고, 마지막은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자기 손으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프로필엔 개개인의 신상이 적혀 있었는데, 처음엔 난 비디오를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테리우스가 제가 먹은 여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그런 것을 적었나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맞질 않았다. 그리고 쭉 넘기다가 난 열 네살이라고 적어놓은 신상의 정말 앳된 여자애가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것을 발견했다. 이건 아니었다. 테리우스가 아무리 쓰레기였어도 이건 아니었다. 테리우스가 욕실에서 휘파람으로 무슨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이 들었다. 내가 이것을 봤다는 것을 테리우스는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앨범을 가져다 놓으려고 앨범을 덮다가 겉표지에 견출지로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LCY 영생교회 논현지부 여신도 파일 1"
2-3년 전쯤 영생교회라는 사교집단이 크게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리고 tv에서 본 교주, 이찬용씨는 테리우스와 많이 닮았다. 테리우스가 감추고 있는 것이 이것이었나 싶었다.
"니 찬?"
"지금 이 상태로 운전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나 혈중 알콜농도도 재보면 면허 취소 나올거야. 아마."
"두고 간다고?"
"어, 그래서 일부러 차도 cctv앞에 세워 놨지. 형이 운전 좀 해라. 속초 도착하면 나 좀 깨워줘."
"알았다. 그런데, 속초 어디냐?"
"형, 대명콘도 알지? 그 근처니까. 대명에서 뭐 좀 사가자. 맥주 같은 거."
"또 술이냐? 네가 무슨 알콜릭도 아니고."
"지금 상처입은 내 영혼엔 술이 필요해. 소주 들이부어서 소독이라도 해 줘야 하거든. 아니면 곪을 거야."
"좀 자라. 술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담요줄까? 무릎담요는 있는데."
"아니. 좀 덥네. 에어컨 약하게 틀어줘요. 나 잔다."
내내 시내 운전만 하다가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탔더니, 속도감에 정신이 매몰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엔 우울할 땐, 고속으로 차를 운전하면서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그것을 마구 따라부른 적이 있었다. 빗길에 그러다가 살짝 미끄러져서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이후로는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깊이 잠든 커다란 덩치의 녀석을 옆에 태우고 혼자 가는 고속도로는 적막해서, 나는 외로운 마음이 싫어서 며칠 전에 산 오렌지 캬라멜의 cd를 넣고는 립스틱을 따라불렀다. 소녀시대가 한참 지를 부를 때는 공부하듯 아이돌을 연구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저 노래를 듣는 수준이다.
대명콘도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리면서 속이 편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자고 있는 테리우스를 두고 콘도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을 해결하고 나니, 목이 말라서 물을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꿀차를 발견하고, 생수 하나와 꿀차를 사서 로비로 나왔다. 편의점 문앞에 있는 신문게시대에 큰 글씨로 "승미의 첫남자는 무협소설가?"라는 스포츠 신문의 일면이 보였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려다가 부질없는 짓같아서 그냥 로비로 나와 천천히 진하게 탄 꿀차를 마셨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일단 별장에 가서 한 잠을 잘 생각이었다. 진한 꿀차를 마시면 깊이 잠들 수 있다. 불면증에 시달려 온 내가 터득한 비법이지만,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쓰지 않는 방법이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열어봤는데, 메세지가 들어와 있었다. 카드구매내역 문자였는데, 이번에는 김밥천국에서 3천원을 긁은 것이 떴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가 궁금해졌다. 새벽에 혼자서 쓸쓸하게 해장국을 먹고, 또 느지막히 일어나서, 점심 나절 김밥 두 줄을 씹는 이 사람에 대해서 좀 상상을 했다. 글을 쓰는 건 결국 두 가지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어 쓰거나, 자기가 겪지 않은 일을 상상을 하거나.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선 결국 얼마나 더 많은 생각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처음에 떠올린 건 기러기아빠였다. 마흔 줄의 배가 약간 나온 후줄근한 남자가 새벽에 해장국을 먹고, 점심 때 가게를 열기 전 김밥을 사는 모습이 떠올랐다. 조기유학이나 유학생들에 대해 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잘 적응을 하건, 잘 하지 못해 힘들어하건, 사람은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게 된다.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의 고생같은 것보다는 파티의 즐거움에 빠지거나, 혼자만의 고독에 힘들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유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서 난 한 사람의 희생을 건성으로 느끼면서 결국 잘되면 내 탓, 못되면 혼자 있는 나를 위해 뭘 해줬느냐고 묻게 되는 유학을 왜 부모가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공부가 필요하다면 자기가 벌어야 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테리우스가 궁금해졌다. 돈이 많은 집안의 아들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꽤 친하게 지낸 나조차도, 그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물어본 적이 없다. 처음 미팅을 했을 때부터 남달랐던 과한 자신감과 가벼운 언행, 녀석에게도 비밀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자고 있던 녀석을 깨우고, 편의점에서 사간 숙취해소 음료를 건냈다.
"형, 형이나 마셔라. 나 이런 거 잘 못 먹거든. 맛이 이상하지 않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자고 일어났더니 오줌 마렵네. 아침에 포카리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나?"
화장실을 다녀온 녀석의 손에 들린 건 또 다시 포카리였다. 아예, 큰 병을 사온 녀석이 같이 사온 종이컵에 포카리를 따르더니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역시, 숙취엔 포카리라니까. 형, 여기서 10분도 안 걸려. 나가서, 바로 좌회전해서 똑바로 가면 돼."
"알았다."
"뭐, 기분 나쁜 일 있어. 표정이 어둡네. 고속도로 탈 때는 립스틱 어쩌고 하면서 계속 노래 따라부르더니."
"아니. 그런 건 없는데. 맥주 사간다더니."
"생각해보니까 아마 있을 것 같아서. 관리인 할아버지가 사놨을 거야. 아마."
작은 강이 있었고, 강을 경계로 별장들이 듬성듬성 지어져 있었다. 저기야 저기를 외치는 테리우스의 손가락을 따라 들어간 별장은 출입구부터가 멋있었다. 종류를 알수없는 침엽수가 쭉 늘어선 출입구를 지나자 정원석과 잔디가 우리를 맞았다. 별장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심지어 안에 들어가자 에어컨이라도 가동중이었는지, 시원한 공기가 가득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거야?"
"아, 내가 아침에 전화를 했거든. 형, 배고프면 주방에 뭐라도 있을 거니까 먹어. 난 좀 잔다. 진짜 피곤해."
테리우스가 침실로 들어가버리자, 남의 집에 주인 없이 혼자 남겨진 사람이 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배가 출출해져서 테리우스가 말한대로 주방으로 가서 가스렌지에 올려진 냄비를 열었다. 바닷가니까 매운탕 같은 게 들어있을 것 같아서 열었는데, 갈비찜이 들어있었다. 불을 올리고, 냉장고에 있던 젓갈이랑 김치를 꺼내놓고 밥을 퍼서 혼자서 밥을 먹었다. 갈비는 맛있었다. 먹고 났더니 한꺼번에 노곤함이 밀려들었다. 손님방에 들어가서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목이 말라 깼을 땐,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테리우스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예, 예를 계속해서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고는 몹시 기분이 상한 얼굴을 했는데, 남의 전화를 엿듣게 된 것 같아 나 역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큼큼하고 헛기침을 하자 얼굴을 완전 회복한 테리우스가 tv를 껐다.
"잘 잤어?"
"어, 너도 이제 얼굴이 좋다."
"오래 잤으니까. 형, 우리 좀 놀까?"
"응?"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좀 놀자. 지저분하게. 오늘은 좀 그러고 싶어서. 괜찮지. 아마 좀 놀랄 걸. 내가 소개하는 거니까, 돈은 형이 내."
"아까부터 왜 그러냐. 부잣집 아들래미가."
"좀 고민을 하게 됐거든. 내가 이래도 되나 싶어서 말이야. 아! 또 우울해지려고 한다. 형 잠깐만."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처방약봉투를 꺼내서 물을 찾아 먹고 오더니, 곧 정신을 회복했다.
"별 거 아니고, 나 마음이 많이 아픈 아이거든. 그냥 그런 약있잖아. 마음 조절해 주는 약."
"응. 그래도 노는 건 좀 쉬다 놀자. 어제 그렇게 달렸는데. 몸을 회복하자마자 또 달리는 것도 웃기잖아. 무슨 니가 밤문화 대표선수도 아니고."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밖은 나가자. 바람 맞고 싶어.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거든. 자전거 타러가자."
"그러자."
바람이 많이 부는 해안도로는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기에 좋았다. 한 20분을 달렸는데, 좀 몸이 지치고 있을 때, 바다가 보였다. 해안에 앉아서 테리우스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기다리는데는 도사다. 사람이란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바람이 부는 비린내가 조금 나는 해안에서 테리우스는 쭈볏거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도, 우리 아버지가 궁금해?"
"어. 그런데, 네가 싫으면 그냥 괜찮을 것 같아. 네 아버지랑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난 아버지가 싫거든. 그런데, 아버지 돈을 쓰고 살고 있으니까 부끄럽긴 한데 말이야..."
어쩌면 이 말을 하려고, 나를 이 곳에 데려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테리우스는 결국 말을 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더니 소리를 마구 지르며 별장쪽으로 이동했다. 별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에 비가 내려서, 난 화장실에서, 테리우스는 안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각자 씻고 나왔다. 이틀 정도 면도를 하지 않았더니 코 밑이 거뭇거뭇해졌다. 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과 속옷, 양말을 주방의 드럼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테리우스를 기다리려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서 화장실 앞으로 부르러 갔다.
"뭐하냐?"
"씻어요."
"빨래 돌릴건데, 니것도 같이 돌려줄까?"
"와. 무슨 살림꾼도 아니고. 형, 제건 괜찮아요. 형 것도 그냥 세탁기에 넣어두세요. 내일 관리인 할머니가 와서 해주실 거에요."
"알았다. 빨리 나와. 사내자식이 씻는데 뭘 그렇게 오래 걸리냐?"
안방을 나와 거실로 나오다가 안방 tv아래에서 앨범을 발견했다. 가족들의 사진인가 그냥 무심코 들고 나와서 소파에 펼쳐두고 보는데, 그건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앨범이 아니었다. 두면에 한 명씩 프로필과 사진이 찍혀 있었다. 사진은 각각 다섯장이었는데, 얼굴사진과 옷을 입은 전신 사진. 그리고 옷을 벗은 전신이 앞과 뒤 이렇게 두장이 찍혀 있었고, 마지막은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자기 손으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프로필엔 개개인의 신상이 적혀 있었는데, 처음엔 난 비디오를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테리우스가 제가 먹은 여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그런 것을 적었나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맞질 않았다. 그리고 쭉 넘기다가 난 열 네살이라고 적어놓은 신상의 정말 앳된 여자애가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것을 발견했다. 이건 아니었다. 테리우스가 아무리 쓰레기였어도 이건 아니었다. 테리우스가 욕실에서 휘파람으로 무슨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이 들었다. 내가 이것을 봤다는 것을 테리우스는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앨범을 가져다 놓으려고 앨범을 덮다가 겉표지에 견출지로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LCY 영생교회 논현지부 여신도 파일 1"
2-3년 전쯤 영생교회라는 사교집단이 크게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리고 tv에서 본 교주, 이찬용씨는 테리우스와 많이 닮았다. 테리우스가 감추고 있는 것이 이것이었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