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을 해치우다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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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2:55 조회 404회 댓글 0건본문
그녀들을 해치우다LCY 영생교가 사교라고 비난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난행에 있었다. 물론, 그들의 주장으로 재림예수이자, 교단의 교주인 이찬용씨가 검찰에 구속을 당한 건, 외화밀반출을 통해서 중국과 미국에 대학교를 짓고, 재단을 만들어 교단의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했기 때문이지만, 정작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교주인 자신을 정점으로 피라미드 꼴로 만들어진 일인 지배의 교단의 구조와 윗 계급이 섹스를 통해 아랫등급의 사람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다는 교리 때문이었다.
교주인 이찬용은 신의 대리자로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해해서는 안되는 일이었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면서도, 자신의 사람이 되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했던지 용서를 받고, 다음 세상에서의 지위를 보장하는 영생교의 교리는 단순하지만 명쾌해서 어렵지 않게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음 생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었다. 한 때 전국의 지부가 이백개에 이를 정도로 성세를 자랑했었고, 지금도 교단의 재산이 몇 백억대가 아닌 수천억원 대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기사를 본 적도 있었다.
테리우스와 관계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난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피라미드 왕 조희팔이었고, 또 하나는 교주 이찬용이었다. 이 두 사람을 연구한 것은 명백하게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어서, 그 규칙의 대상자들이 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경쟁심을 동시에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력을 하지 않는 일급 사기꾼은 없다. 난 그다지 종교를 신뢰하지 않지만, 종교가 가지는 압도적인 신뢰감을 다른 쪽에도 쓸 수 있다면 좋은 일이 될거라고 생각해 왔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앨범을 가져다 놓고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영생교의 교주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1년 반쯤 징역 6년 정도가 확정판결이 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자세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정말이지 오랜 시간동안 샤워를 한 테리우스가 개운한 얼굴로 나오더니, 냉장고에서 맥주 2캔과 마른 안주를 꺼내왔다.
"형, 한잔 해야지."
"그러자. 나도 목이 마르네. 그런데, 비가 꽤 온다."
"나야. 날짜도 잘 안보고 지내는 사람이니까 큰 사오간은 없는데, 형은 좀 그렇겠다. 휴간데, 피서지에 와서 비나 오고 말이지. 그래도 비 오는 바람에 잘 됐어. 좀 있다가 바다에 내리는 비나 보러가자. 진짜 비는 바다에 내리는 비거든."
테리우스가 구워온 쥐포도 오징어도 엄청 맛있었다.
"와, 역시 부자집은 다르긴 다르구나. 이거 뭐냐? 되게 맛있네."
"형, 내가 아까 전에 우리 아버지 이야기 하다가 왜 그만 뒀는 지 알아?"
"아니."
"난 용기가 없거든. 보통 사람들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으니까, 그걸 포기할 용기가 없거든. 우리 아버진 그냥 보통 사람이거든.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뻥을 치면서 살고 있지. 그런데, 그 것도 오래 하다보니까 진짜로 믿어버리더라고. 자기가 진짜 신인줄 아는 사람이야. 난 아닌 걸 알면서도 이게 좋아서, 내가 누리고 사는 게 좋아서, 포기가 안되더라고."
"내가 니 입장이라도 포기못했을거다. 나도 그런 주의거든."
"알고 있었어?"
"조금전에 파일을 봤다. 니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더라."
"닮았지. 나도 내가 이렇게 닮아갈 줄은 몰랐거든. 이 오징어 말이야. 삼척에 있는 신도가 보내준거야. 우리 집 냉장고에는 저런 게 늘 있거든. 더러워 진짜."
"아버지를 골라서 태어날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지금 아버님은 어디에 계시냐? 혹시 수감 중이시냐?"
"아니. 병원에 계시지. 무슨 재벌 총수도 아니고. 하긴 더러운 짓 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딱히 더럽다고 이야기할 건 아니지 않냐? 속더라도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만 아니겠냐?"
"형, 쉽게 말하지마. 우리 교단에서 일년에 몇 명이나 죽는 줄 알아? 그것도 자살로. 서른 다섯이야. 서른 다섯. 열흘이면 하나씩 가득한 공허감을 안고 죽는 거야. 아버진 죽는 사람들을 가지고도 장사를 하시지."
"때려치우자. 마시고 먹고 일단 책 이야기를 좀 하자. 어차피, 네가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문제가 없잖아. 니가 묵향 같은 걸 썼다고 쳐봐. 그럼 모두 해결나는 거잖아. 살다보면 말이야.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기고,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하는 일도 생겨.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을 땐 말이야. 멈추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기어서라도 손으로 자기 앞 땅을 만지면서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사람만이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는 거야."
시원스레 맥주 캔 하나를 통째로 비워버린 테리우스가 겉으로 보기에도 두꺼워 보이는 자른 쥐포를 집어들더니 질겅질겅 씹었다.
"형, 형은 말이야. 진짜 형같아. 나도 형이 하나 있거든. 아버지 꼬봉이지. 아버지는 자기 세계에 갇혀서, 자기가 진짜로 재림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형은 너무 어릴 때부터 아버질 따라다녀서 그런지, 조금도 이성적인 판단을 못해. 집에서 떨어져 있는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지."
"임마. 식구들은 다 그런거야. 우리 엄마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공부를 더해서 판사라도 되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다니까. 온전하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나이는 다섯 살까지야. 우리 소윤이는 나를 엄청 좋아하지만, 걔도 초등학생만 되도 이런 저런 자기 생각을 할 걸."
"그것도 그렇다. 형, 책 말이야. 형이랑 나랑 공동작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무슨 소리야?"
"같이 책을 내자고. 쓰기는 내가 쓸테니까. 형이 아이디어나 방향을 제시하는 걸 맡아. 형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문장도 좋고, 아이디어도 좋은데,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좀 어렵거든. 알게 모르게 교훈적이고. 그런 건 잘 안먹히잖아. 난 형 책이 빅히트를 못 하는 건, 그 탓이라고 생각하거든. 고리타분하다는 것. 내가 언제나 반절만 성공하는 것은 깊이가 부족해서고. 그러니까, 내가 쉽게 쓰고, 형이 아이디어를 맡으면 뭔가 작품이 하나 나올 것 같지 않아?"
"그럴까?"
"형은 평소랑 같이 기획회의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어차피 하는 일이니까, 인세는 오대오로 하자."
"그래, 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 거야? 여자와 복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형이 예전에 내게 해준 말이 있었잖아. 무협은 호쾌하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길게 쓸 수가 없다고."
"어, 그랬었지. 갇혀 지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형 말을 듣고 생각한 건데, 진짜 심심할 거 같았거든. 그 시대에 뭐가 있었겠어. tv가 있었겠어. 라디오가 있었겠어. 인터넷이 있었겠어. 남자애들이야 치고 받고 싸우는 재미라도 있었겠지만, 장중보옥, 문파의 어린 아가씨는 적어도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싸매서 키우는 거나 매 한가지잖아. 나 같으면 엄청 심심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일단 여기까지. 뭔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그리고 여자랑 복수는 그게 제일 잘 먹힐 것 같아서, 형이랑도 잘 맞을 것 같고?"
"나랑?"
"형은 너그럽지만, 까다로운 사람이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으니까. 어제 기가 막히더라. 정윤이랑 자는데, 그 정윤이가 형 이야기만 하더라. 나랑 하면서도."
"정윤이? 아, 정연이. 넌 같이 잔 여자 이름도 기억을 못하냐?"
"그게 중요한가 뭐."
두어 시간을 맥주를 마시면서, 시덮잖은 이야기들을 했다. 아이돌 중 누가 예쁘다던지, 테리우스가 나를 더러, 형이 써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소시 중에서 가슴이 큰 멤버여서 그렇다는 둥, 난 개인적으로 큰 가슴을 좋아하지 않는다던지 하는 음담패설, 거기에 저번에 테리우스가 안국동의 밥집에서 밥을 먹다가 팀장이 들어오는 것을 봤는데, 다른 회사 작가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야기를 하면서 뒤에서 엄청 씹었다는 상사욕까지 거칠 게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난 나와 테리우스가 비슷한 성향의 인간이라는 것을 재확인 했다.
쥐포는 진짜로 맛있었다. 난 기름을 둘러서 살짝 튀겨 먹는 쥐포를 좋아해서, 그것을 해먹으려고 부엌에 들어갔고, 그런 내게 테리우스는 저녁밥 준비를 부탁했다. 자기는 해본 적이 없다면서. 자식이 형한테.. 뭐, 나야 부자집 공자님 인생보단 돌쇠나 언년이 인생이었으니까 혼자 차려먹는데도 익숙했다. 냉장고를 열어서 이런 저런 반찬들을 꺼냈는ㄷ, 하나하나가 엄청 맛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갈비찜도 진짜 맛있었는데, 오징어 젓갈을 젓가락으로 집어먹는데, 테리우스가 내 전화기를 들고 왔다.
"형, 전화왔어. 경희씬가본데."
"어."
"여보세요?"
"선배님. 고경희에요. 지금 뭐하고 계세요?"
"테리우스랑 기획회의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에요?"
"선배님, 책 표지 나왔어요. 보내드릴까요?"
"이 밤에 회사에요?"
"아뇨. 우 작가님이 하도 징징거려서 지금 정동진 가는 기차 안이에요. 작가님이 선배님께 전화해보라고 해서요, 솔직히 정신없으셔서 우 작가님 책 개선책은 생각 못하셨죠?"
"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우 작가님께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선배님 책 표지는 아까전에 회사에 들어갔다가 디자인 플라워 차시장이 가져왔더라고요. 아마 증판하면서 표지 바꿀 모양인가봐요. 네이버에 선배님 책들 서평이 올라왔는데, 다 놀랐다. 작품성이 있다 그런 말들이 많아서 회사에서도 기대가 많더라고요."
"그래요. 그런데, 두분 정동진에 숙소는 있는 거예요?"
"아뇨. 그냥 올라온 거에요. 역 근처에 모텔이나 이런데서 자야죠. 선배님 그러면 휴가 끝나고 뵙겠습니다."
전화를 받는 동안, 내 앞에서 오징어 젓갈에 맥주 한 캔을 더 비운, 테리우스가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우연희 작가 신작을 경희씨가 맡았거든. 회귀물을 할 모양인데, 너무 전형적이라서 재미가 없었거든. 내가 한 마디 컨설팅을 해주기로 했는데, 사라 문제랑 겹쳐서 생각을 못했거든. 작품이 잘 진행이 안되니까 돌파구로 정동진에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야. 경희씨랑 둘이서."
"우연희 작가면, 형이랑 동갑인 그 느끼하게 생긴 아줌마잖아. 그래서 어디서 잔대?"
"역 근처 모텔이나 이런 데서 자겠다던데?"
"데리러 가야 하나?"
"왜?"
"마음에 걸리잖아. 형도 좀 그렇지? 역 근처 모텔들이 어떤 곳인지 잘 알잖아. 정동진이라고 다를까."
"니가 불편하지 않겠냐?"
"형이랑 이렇게 둘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여자들이 있으면 더 낫지 뭐. 음... 형이 그 아줌마를 맡아. 경희씨는 별로지만, 그래도 아줌마보다야 낫겠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형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생각일걸. 아마. 밥 먹고, 출발하면 얼추 맞겠다. 형 아까 맥주 한 캔만 마셨지?"
"응."
"그 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이 동네, 관광객도 없는 시즌에 단속 같은 건 없겠지. 아마."
"그렇겠지."
교주인 이찬용은 신의 대리자로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해해서는 안되는 일이었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면서도, 자신의 사람이 되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했던지 용서를 받고, 다음 세상에서의 지위를 보장하는 영생교의 교리는 단순하지만 명쾌해서 어렵지 않게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음 생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었다. 한 때 전국의 지부가 이백개에 이를 정도로 성세를 자랑했었고, 지금도 교단의 재산이 몇 백억대가 아닌 수천억원 대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기사를 본 적도 있었다.
테리우스와 관계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난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피라미드 왕 조희팔이었고, 또 하나는 교주 이찬용이었다. 이 두 사람을 연구한 것은 명백하게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어서, 그 규칙의 대상자들이 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경쟁심을 동시에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력을 하지 않는 일급 사기꾼은 없다. 난 그다지 종교를 신뢰하지 않지만, 종교가 가지는 압도적인 신뢰감을 다른 쪽에도 쓸 수 있다면 좋은 일이 될거라고 생각해 왔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앨범을 가져다 놓고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영생교의 교주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1년 반쯤 징역 6년 정도가 확정판결이 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자세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정말이지 오랜 시간동안 샤워를 한 테리우스가 개운한 얼굴로 나오더니, 냉장고에서 맥주 2캔과 마른 안주를 꺼내왔다.
"형, 한잔 해야지."
"그러자. 나도 목이 마르네. 그런데, 비가 꽤 온다."
"나야. 날짜도 잘 안보고 지내는 사람이니까 큰 사오간은 없는데, 형은 좀 그렇겠다. 휴간데, 피서지에 와서 비나 오고 말이지. 그래도 비 오는 바람에 잘 됐어. 좀 있다가 바다에 내리는 비나 보러가자. 진짜 비는 바다에 내리는 비거든."
테리우스가 구워온 쥐포도 오징어도 엄청 맛있었다.
"와, 역시 부자집은 다르긴 다르구나. 이거 뭐냐? 되게 맛있네."
"형, 내가 아까 전에 우리 아버지 이야기 하다가 왜 그만 뒀는 지 알아?"
"아니."
"난 용기가 없거든. 보통 사람들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으니까, 그걸 포기할 용기가 없거든. 우리 아버진 그냥 보통 사람이거든.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뻥을 치면서 살고 있지. 그런데, 그 것도 오래 하다보니까 진짜로 믿어버리더라고. 자기가 진짜 신인줄 아는 사람이야. 난 아닌 걸 알면서도 이게 좋아서, 내가 누리고 사는 게 좋아서, 포기가 안되더라고."
"내가 니 입장이라도 포기못했을거다. 나도 그런 주의거든."
"알고 있었어?"
"조금전에 파일을 봤다. 니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더라."
"닮았지. 나도 내가 이렇게 닮아갈 줄은 몰랐거든. 이 오징어 말이야. 삼척에 있는 신도가 보내준거야. 우리 집 냉장고에는 저런 게 늘 있거든. 더러워 진짜."
"아버지를 골라서 태어날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지금 아버님은 어디에 계시냐? 혹시 수감 중이시냐?"
"아니. 병원에 계시지. 무슨 재벌 총수도 아니고. 하긴 더러운 짓 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딱히 더럽다고 이야기할 건 아니지 않냐? 속더라도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만 아니겠냐?"
"형, 쉽게 말하지마. 우리 교단에서 일년에 몇 명이나 죽는 줄 알아? 그것도 자살로. 서른 다섯이야. 서른 다섯. 열흘이면 하나씩 가득한 공허감을 안고 죽는 거야. 아버진 죽는 사람들을 가지고도 장사를 하시지."
"때려치우자. 마시고 먹고 일단 책 이야기를 좀 하자. 어차피, 네가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문제가 없잖아. 니가 묵향 같은 걸 썼다고 쳐봐. 그럼 모두 해결나는 거잖아. 살다보면 말이야.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기고,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하는 일도 생겨.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을 땐 말이야. 멈추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기어서라도 손으로 자기 앞 땅을 만지면서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사람만이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는 거야."
시원스레 맥주 캔 하나를 통째로 비워버린 테리우스가 겉으로 보기에도 두꺼워 보이는 자른 쥐포를 집어들더니 질겅질겅 씹었다.
"형, 형은 말이야. 진짜 형같아. 나도 형이 하나 있거든. 아버지 꼬봉이지. 아버지는 자기 세계에 갇혀서, 자기가 진짜로 재림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형은 너무 어릴 때부터 아버질 따라다녀서 그런지, 조금도 이성적인 판단을 못해. 집에서 떨어져 있는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지."
"임마. 식구들은 다 그런거야. 우리 엄마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공부를 더해서 판사라도 되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다니까. 온전하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나이는 다섯 살까지야. 우리 소윤이는 나를 엄청 좋아하지만, 걔도 초등학생만 되도 이런 저런 자기 생각을 할 걸."
"그것도 그렇다. 형, 책 말이야. 형이랑 나랑 공동작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무슨 소리야?"
"같이 책을 내자고. 쓰기는 내가 쓸테니까. 형이 아이디어나 방향을 제시하는 걸 맡아. 형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문장도 좋고, 아이디어도 좋은데,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좀 어렵거든. 알게 모르게 교훈적이고. 그런 건 잘 안먹히잖아. 난 형 책이 빅히트를 못 하는 건, 그 탓이라고 생각하거든. 고리타분하다는 것. 내가 언제나 반절만 성공하는 것은 깊이가 부족해서고. 그러니까, 내가 쉽게 쓰고, 형이 아이디어를 맡으면 뭔가 작품이 하나 나올 것 같지 않아?"
"그럴까?"
"형은 평소랑 같이 기획회의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어차피 하는 일이니까, 인세는 오대오로 하자."
"그래, 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 거야? 여자와 복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형이 예전에 내게 해준 말이 있었잖아. 무협은 호쾌하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길게 쓸 수가 없다고."
"어, 그랬었지. 갇혀 지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형 말을 듣고 생각한 건데, 진짜 심심할 거 같았거든. 그 시대에 뭐가 있었겠어. tv가 있었겠어. 라디오가 있었겠어. 인터넷이 있었겠어. 남자애들이야 치고 받고 싸우는 재미라도 있었겠지만, 장중보옥, 문파의 어린 아가씨는 적어도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싸매서 키우는 거나 매 한가지잖아. 나 같으면 엄청 심심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일단 여기까지. 뭔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그리고 여자랑 복수는 그게 제일 잘 먹힐 것 같아서, 형이랑도 잘 맞을 것 같고?"
"나랑?"
"형은 너그럽지만, 까다로운 사람이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으니까. 어제 기가 막히더라. 정윤이랑 자는데, 그 정윤이가 형 이야기만 하더라. 나랑 하면서도."
"정윤이? 아, 정연이. 넌 같이 잔 여자 이름도 기억을 못하냐?"
"그게 중요한가 뭐."
두어 시간을 맥주를 마시면서, 시덮잖은 이야기들을 했다. 아이돌 중 누가 예쁘다던지, 테리우스가 나를 더러, 형이 써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소시 중에서 가슴이 큰 멤버여서 그렇다는 둥, 난 개인적으로 큰 가슴을 좋아하지 않는다던지 하는 음담패설, 거기에 저번에 테리우스가 안국동의 밥집에서 밥을 먹다가 팀장이 들어오는 것을 봤는데, 다른 회사 작가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야기를 하면서 뒤에서 엄청 씹었다는 상사욕까지 거칠 게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난 나와 테리우스가 비슷한 성향의 인간이라는 것을 재확인 했다.
쥐포는 진짜로 맛있었다. 난 기름을 둘러서 살짝 튀겨 먹는 쥐포를 좋아해서, 그것을 해먹으려고 부엌에 들어갔고, 그런 내게 테리우스는 저녁밥 준비를 부탁했다. 자기는 해본 적이 없다면서. 자식이 형한테.. 뭐, 나야 부자집 공자님 인생보단 돌쇠나 언년이 인생이었으니까 혼자 차려먹는데도 익숙했다. 냉장고를 열어서 이런 저런 반찬들을 꺼냈는ㄷ, 하나하나가 엄청 맛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갈비찜도 진짜 맛있었는데, 오징어 젓갈을 젓가락으로 집어먹는데, 테리우스가 내 전화기를 들고 왔다.
"형, 전화왔어. 경희씬가본데."
"어."
"여보세요?"
"선배님. 고경희에요. 지금 뭐하고 계세요?"
"테리우스랑 기획회의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에요?"
"선배님, 책 표지 나왔어요. 보내드릴까요?"
"이 밤에 회사에요?"
"아뇨. 우 작가님이 하도 징징거려서 지금 정동진 가는 기차 안이에요. 작가님이 선배님께 전화해보라고 해서요, 솔직히 정신없으셔서 우 작가님 책 개선책은 생각 못하셨죠?"
"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우 작가님께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선배님 책 표지는 아까전에 회사에 들어갔다가 디자인 플라워 차시장이 가져왔더라고요. 아마 증판하면서 표지 바꿀 모양인가봐요. 네이버에 선배님 책들 서평이 올라왔는데, 다 놀랐다. 작품성이 있다 그런 말들이 많아서 회사에서도 기대가 많더라고요."
"그래요. 그런데, 두분 정동진에 숙소는 있는 거예요?"
"아뇨. 그냥 올라온 거에요. 역 근처에 모텔이나 이런데서 자야죠. 선배님 그러면 휴가 끝나고 뵙겠습니다."
전화를 받는 동안, 내 앞에서 오징어 젓갈에 맥주 한 캔을 더 비운, 테리우스가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우연희 작가 신작을 경희씨가 맡았거든. 회귀물을 할 모양인데, 너무 전형적이라서 재미가 없었거든. 내가 한 마디 컨설팅을 해주기로 했는데, 사라 문제랑 겹쳐서 생각을 못했거든. 작품이 잘 진행이 안되니까 돌파구로 정동진에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야. 경희씨랑 둘이서."
"우연희 작가면, 형이랑 동갑인 그 느끼하게 생긴 아줌마잖아. 그래서 어디서 잔대?"
"역 근처 모텔이나 이런 데서 자겠다던데?"
"데리러 가야 하나?"
"왜?"
"마음에 걸리잖아. 형도 좀 그렇지? 역 근처 모텔들이 어떤 곳인지 잘 알잖아. 정동진이라고 다를까."
"니가 불편하지 않겠냐?"
"형이랑 이렇게 둘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여자들이 있으면 더 낫지 뭐. 음... 형이 그 아줌마를 맡아. 경희씨는 별로지만, 그래도 아줌마보다야 낫겠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형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생각일걸. 아마. 밥 먹고, 출발하면 얼추 맞겠다. 형 아까 맥주 한 캔만 마셨지?"
"응."
"그 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이 동네, 관광객도 없는 시즌에 단속 같은 건 없겠지. 아마."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