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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립스틱* - 3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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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1:32 조회 79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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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가 멀지 않은 인천의 외곽지대, 굵은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함박눈이었다.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치기도 하지만, 개들은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개들이 눈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물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따금 부둣가에서 울리는 뱃고동소리가 이국적으로 기분을 만든다.



대로변의 다방에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한적한 다방이지만 이따금 몰려드는 손님들이 다방 안을 시끌벅적하게 만든다. 주로 배달을 많이 하기에 손님들이 몰려 나간 다방 안은 조용해졌다. 이진아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쟁반을 들고 손님들이 나가고 난 탁자로 다가섰다. 주승균이 운영하는 전당포를 찾아다니던 이진아는 다방 종업원으로 위장 취업한 것이다. 이진아는 진한 화장에 머리까지 파마를 하고 있었다. 주승균의 전당포는 다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아직 그를 찾아가 보지는 않고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쟁반에 빈 찻잔을 담던 이진아는 TV 화면을 주시했다.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었다. 한동안 화면을 주시하던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어린다. 그녀를 찾는 사연이 담긴 강민우의 편지를 아나운서가 읽고 있었다. 며칠 전에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들었던 사연이었다.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찾으니 연락하라는 것이다. 카운터에 있던 마담이 이진아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얘! 넌 뭐하고 있니? 빨리 빨리 치우고 배달 나갈 준비 않고.”

“알았어요. 금방 치울게요.”



이진아는 손바닥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을 문질렀다. 그리고 부지런히 빈 찻잔을 쟁반위에 담았다. 그때 다방 문이 열리고 여종업원이 보자기에 싼 찻잔과 커피포트를 들고 들어왔다. 여 종업원은 추위에도 허벅지가 들어나는 짧은 스커트를 걸치고 있었다. 여 종업원은 추워서 몸을 웅크리면서도 손에 든 지폐를 마담에게 흔들어 보이며 웃음을 흘린다.



“언니! 티켓 받아 왔어. 전당포 곱슬머리 사장.”

“그 구두쇠가 돌아다니지 않고 웬일로 가게에 붙어 있데!? 조심하고, 시간 내에 들어와.”

“난 가기 싫은데! 아다라시나 영계 있으면 보내라는데.”

“정미는 역시 남자 호리는 재주가 좋아. 너 아니면 누가 가겠니.”



“언니, 지숙이하고 현자는 어디 갔어?”

“티켓 나갔는데 좀 있어야 들어와.”



정미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마담이 비위를 맞춘다. 나이가 삼십대에 가까워 보이는 정미는 젊어 보이려고 몸의 윤곽을 들어낸 옷을 걸치고 있었다. 입맛을 다신 정미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쩌지 난 위험기간인데.”

“콘돔 쓰던지, 약국 갔다가 가.”



“그래도 곱슬머리는 싫단 말이야. 저번에도 어떻게 붙잡고 늘어지는지 지겹단 말이야.”

“하여튼 추워서 옷이나 갈아입고.......”



한 숨을 내쉰 정미가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면 주방 옆의 방으로 들어가다가 쟁반을 들고 오는 이진아와 마주친다. 그리고 이진아의 턱을 손으로 받쳐 들고 들여다본다.



“어머! 애리. 너 울었니?”

“아니, 눈에 뭐가 들어가서.”

“너, 티켓 안 나갈래?”

“계는 아직 멀었어. 갔다가도 퇴짜 맞고 올걸. 손님만 떨어져.”



마담이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던 이진아는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차 배달은 했어도 아직 티켓을 끊고 나가 본적은 없었다.



“어디로 차 배달하는 건데!?”

“어디긴! 티켓 배달말이야.”

“난 아직........”

“한 번 경험 해봐야지. 어쩌려고.......!”



이진아는 모른 척하고 주방으로 쟁반을 들고 들어갔다, 주방 안에 들어간 이진아가 마담의 눈치를 살폈다. 마담과 이진아가 시선이 마주쳤다. 그렇다고 마담은 다른 종업원들과 달리 돈을 미리 당겨쓰지 않은 이진아에게 티켓 나가기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돈을 세면서 마담이 한마디 던졌다.



“그냥 정미가 갔다 오라니까. 전당포 곱슬머리가 그래도 매상 많이 올려주잖아.”

“내가 갈게요.”



전당포라는 말에 이진아는 주방을 나서면서 냉큼 대답을 했다. 그녀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돈을 세던 손을 멈추고 마담이 이진아를 빤히 바라봤다. 옷 갈아입으려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정미도 문턱에 발을 올려놓고 돌아보았다.



“그래! 애리! 너, 잘 생각했다. 이왕 이 생활을 하려면 가봐야지.”

“생각보다 주 사장 배포가 크단다. 넌 어리고 예쁘니까, 잘만 하면 주 사장이 한 몫 단단히 챙겨줄지 알아.”



마담도 이진아를 부추겼다. 가고 싶지 않았던 정미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스커트를 걸치고 있던 이진아는 방으로 들어가서 청바지와 깃에 털이 달린 점퍼를 걸치고 나왔다. 그동안 정미가 커피를 탄 커피포트와 찻잔을 보자기에 싸 놓았다. 이진아의 손에는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마담이 혹시나 해서 이진아에게 충고를 한다.



“너, 고분고분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가는 게 좋아.”

“그런데 너, 손가방은 왜 들고 가니?”



빤히 마라보는 정미가 의아스런 눈빛을 했다. 마담의 시선도 이진아를 향했다. 이진아는 들은 척도 안하고 커피배달 보자기와 손가방을 들고 다방 문을 열고 나갔다. 이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정미가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언니! 제 그냥 가버리는 거 아냐?”

“갈려면 가라지 뭐! 티켓 값은 미리 받았고 돈 물린 것도 없으니 난 손해 없어.”



다방 문을 나선 이진아는 시야를 가리는 눈송이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어 종종 걸음을 했다. 옷깃을 세우고 걸어가서 건물 이층에 있는 전당포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층계를 올라가 출입문을 여니 쇠창살 너머로 곱슬머리에 반팔 티셔츠 차림의 남자 머리가 보였다. 이진아는 목을 길게 늘어트리고 장부를 들여다보는 그가 주승균임을 알 수 있었다.



“사장님! 커피 시키셨죠?”

“넌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어느 다방인데?”

“은하수요. 정미언니가 가보라는데요.”

“하하~! 커피뿐이 아니라, 여자 배달도 시켰는데.”



음흉스러운 눈빛으로 주승균이 쇠창살 너머로 이진아를 쳐다봤다. 이진아는 태연하게 입속에 든 껌을 손가락으로 잡아 늘였다가 풍선을 만들면서 딱딱 소리 나게 씹었다. 그녀는 쇠창살 앞의 좁은 판자에 팔꿈치를 데고 엎드리면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리고 주승균을 행해 얼굴을 디 밀면서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여기 왔잖아요. 되게 성급하시네.”

“하하~! 고거 맹랑하네. 조금만 기다려, 영석이 심부름 보냈으니까.”



“여기서 안 마실 거예요?”

“여기는 좁잖아.”



용두목장에서 봤지만 주승균은 이진아의 변신한 모습을 못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이진아가 쇠창살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석에는 모포가 깔린 군대 막사에서 사용하는 작은 목침대 하나가 있고 전당 잡은 물건들이 진열장에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통로에는 간신히 두 사람 정도 앉을 만큼 협소하였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이진아가 내뱉었다.



“좁기는 뭐가 좁아요.”

“너만 좋다면, 나야 여관비 안 들고 좋지. 마음에 드는데, 네 이름이 뭐냐?”

“애리요!”

“이름도 예쁘네. 영석이 금방 올 건데 오늘은 퇴근시킬게.”



“맛있는 거, 사줄 거예요?”

“한번 안아보고........”



주승균의 말도 떨어지기 전에 전당포 문이 열리고 나이어린 청년이 빵과 유유가 담긴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청년은 머리와 어께에 뭍은 눈을 털어 내며 하얀 입김을 불어냈다. 청년을 힐끔 쳐다본 주승균이 아량을 베풀 듯이 말했다.



“영석아! 눈도 오고 하니 일찍 집에 들어가라.”

“아! 네. 고맙습니다. 지금 가도 될까요?”

“그래! 내가 뒷정리하고 문 닫을게.”



주승균은 같은 고향이라고 해서 믿기에 영석을 데리고 있었다. 영석은 평소에는 주승균이 밖으로만 떠돌기에 꼼짝 못하고 보통 열시까지는 전당포를 지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영석은 희소를 흘리며 들고 있는 봉지를 철창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전당포 문을 열고 나갔다. 주승균이 철창 옆의 작은 쪽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겨 열었다.



“이제 들어와. 어디 배달시킨 것이 맛있나 볼까?”



작은 쪽문은 머리를 숙여 들어가야 할 만큼 낮았다. 실내에는 전기스토브가 있어서 후끈하였다. 주승균이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있는 이유를 알았다. 안으로 들어간 이진아는 책상위에 보따리를 풀었다. 좁은 공간이라 주승균과 나란히 앉아 찻잔에 커피포트에 있는 커피를 붓고 설탕과 크림을 탔다.



금고문을 닫고 다이얼을 돌린 주승균이 돌아앉았다. 커피에는 관심 없이 주승균은 대뜸 이진아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점퍼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티셔츠 밑으로 손을 넣어 맨살을 더듬더니 브래지어를 들추었다. 이진아는 무감각하게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온 손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앗 차가워라! 사장님 커피 들고 손 좀 녹이고 만지세요.”

“네 몸에 손 녹이려고 티켓 끊어 줬거든. 그러지 말고 이리와.”



벌떡 일어난 주승균이 이진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는 이진아를 끌고 가서 작은 목 침대위에 눕혔다. 티셔츠를 벗고 상체를 들어낸 그가 대뜸 이진아의 점퍼를 젖히고 셔츠를 들어 올렸다. 브래지어를 밀어 올린 손이 우악스럽게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젖꼭지를 구슬 돌리듯이 돌리며 이진아의 표정을 살폈다.



“좋으니.......?”

“네, 좋아요.”



차갑고 징그러워 뿌리치고 싶지만 이진아는 태연하게 껌을 씹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다른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고 싶었다. 특히 무슨 교주를 한다는 허문한이 궁금했다. 그러나 잘못했다가는 신분이 들어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젖가슴에 머리를 뭍은 주승균의 혀끝이 젖꼭지를 핥기 시작했다. 간지러우면서도 신경 마디가 짜릿하였다. 젖가슴을 타액으로 적시던 주승균의 손길이 청바지를 끌어 내리려했다. 이진아는 반사적으로 청바지 허리띠를 움켜 주었다. 주승균이 쌍심지를 켜고 내려다보았다.



“너. 싫으면 티켓 값 내놓고 가.”

“우격다짐으로 그러니까. 그렇잖아요.”

“그럼 내가 너한테 봉사하랴. 길거리에 가면 흘린 게 여자야.”



엄포를 놓은 주승균이 청바지를 발끝부터 잡아 당겼다. 팬티만 걸친 이진아의 하복부가 그대로 들어났다. 팬티 끈 속으로 주승균의 손이 불쑥 들어와 음모를 쓰다듬었다. 주승균의 눈빛이 갑자기 게슴츠레해지며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비밀스런 여자의 몸속으로 손가락을 불쑥 밀어 넣었다. 이질감을 느낀 이진아가 허리를 비틀었다. 성감을 느낀 동작으로 여겼는지 주승균이 그녀의 팬티를 벗겨 내려고 했다. 이진아는 목침대 바로 옆의 진열대에 놓인 골프채를 바라봤다. 누군가 전당잡힌 물건일 것이다. 이진아는 다시 벗겨지려는 팬티 끈을 움켜쥐었다.



“사장님! 뭐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너 혹시 달거리 중은 아니겠지!”

“아뇨! 그런 게 아니고, 저 본 기억 없어요?”

“널 어디서 봐?”



“난 사장님 본 기억이 있는데.”

“어디서.........!? 너, 꽤 부리면 국물도 없어.”

“용두목장에서 일했었거든요.”



팬티를 벗기려다가 멈춘 주승균이 이진아의 하복부와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주승균의 손에 의해 팬티는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까만 융단 같은 음모 밑으로 연홍빛갈의 숨겨진 살갗이 들어났다. 이진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주승균을 올려다보았다. 흥분하고 있는 그는 예전과 다른 모습인 이진아를 알아 볼 수가 없어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본 것도 같고......”

“곽 사장님이 허문한 씨한테 뭘 전해주라고 했는데 어디로 가야돼지요?”

“지리산에 가면 천궁교라는 종단이 있어.”



주승균은 무심코 대답을 하며 팬티를 벗겨냈다. 그리고 허겁지겁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어 내렸다. 거친 숨을 흘리는 주승균은 이진아의 몸 위에 올라타고 끄덕거리는 페니스를 손에 움켜쥐었다. 그 순간 이진아는 진열대의 골프채를 힐끗 바라봤다. 발기되어 힘줄까지 돋아난 흉물을 이진아의 보지 속으로 밀어 넣으려던 주승균이 멈칫하였다.



“춘호 형님이.......!?”



이미 곽춘호가 사망한 것을 알고 있던 그는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초신경은 강렬한 욕구에 휘말려 있었다. 여자의 보지에 잇닿아 있는 촉감으로 극도로 흥분해 있는 주승균은 발기된 페니스를 이진아의 보지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페니스 귀두가 보지 입구에 걸쳐 있는 상황에서 깊숙이 넣으려고 주승균은 안간힘을 쓴다. 관자노리에 핏줄이 들어난 그가 중얼거렸다.



“너, 거짓말이지? 형님이 죽었는데, 어떻게......... 헉~!”



순간, 말도 끝내지 못하고 급히 숨을 들이 킨 주승균은 구석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진아가 양발로 그의 가슴을 걷어 찬 것이다. 팬티가 벗겨진 이진아는 번개처럼 일어나 진열대의 골프채를 집었다. 점퍼자락이 팬티가 벗겨진 그녀의 하복부를 덮고 있었다. 전기스토브를 들이 받은 주승균은 펄쩍펄쩍 뛰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버둥거렸다.



“앗, 뜨거. 뜨거! 이런 개 같은 년이. 아 학~!”



일어서려던 그는 다시 책상을 들이받고 구석에 처박혔다. 이진아가 몸을 회전하면서 그의 명치끝의 급소를 돌려 찬 것이다. 골프채를 움켜쥔 이진아가 여 전사처럼 그에게 다가섰다. 원을 그리며 휘둘러진 골프채가 주승균의 머리와 몸에 작렬하였다. 이진아는 사정없이 골프채를 연달아 휘둘렀다. 여자라고 얕잡아 봤던 주승균은 공포를 느꼈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골프채를 잡으려 했다.



“이, 이런 X같은....... 하 악........!”



이진아의 손에 쥔 골프채가 필드위의 공을 치듯이 그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파열음과 함께 그의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비틀거리던 마지막 사력을 다해 버둥거리던 그가 결국 이진아의 손에서 골프채를 빼앗았다. 그러나 눈을 크게 치켜뜬 그는 단발마의 신음을 터트리며 볏단 쓰러지듯이 가슴을 붙들고 주저앉았다.



“헉! 으 윽........”



주승균의 가슴에는 칼이 꽂혀 있었고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진아가 책상위에 있던 과도를 집어 들고 찌른 것이다. 입에서 울컥 피를 토한 주승균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심장이 요동치는 주승균의 눈동자가 크게 동공이 확대되었다. 그의 가슴을 밟고 서서 내려다보는 이진아는 희열을 느꼈다.



“더러운 악마! 네놈들이 짓밟은 어린 소녀를 기억하니?”

“무, 무슨.......!?”

“오 년 전, 광주에서 네놈들이 한 짓을 기억하냐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살아남은 나를 기억하냐고, 이 악마야!”

“........끄르륵.”



목구멍으로 거꾸로 피를 넘기는 소리를 낸 주승균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두리번거리던 이진아는 책상위에 놓인 오디오를 발견했다. 손가방을 열고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오디오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흘러나오는 ‘나부코’의 오페라를 들으며 그녀는 희소를 흘렸다. 춤을 추듯이 어깨와 고개를 흔들며 손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들었다. 축 늘어진 주승균의 입술과 몸에 검은 하트를 그려 넣었다.



바닥에 벗겨서 던져진 팬티와 청바지를 차분하게 입은 이진아는 손가방을 집어 들었다. 철창 옆의 쪽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기어 나온 그녀는 전당포 안을 돌아보았다. 피 비린내와 나부코의 오페라가 흐르는 전당포 안은 음산해 보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전당포를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다방과는 반대편 도로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서울시경의 수사과 사무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형사들과 범죄 용의자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형사들의 고함소리가 시끄러웠다. 수사계장실에는 조 경정과 임 경위가 마주하고 서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임 경위는 팔짱을 끼고 있는 조 경정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연쇄살인인 것 같습니다.”

“인천시에서도 비슷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단 말이지?”



“네, 인천시경의 보고에 따르면 시신에 검은 립스틱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었답니다. 살해수법도 군산 곽춘호와 같이 잔인하게 시신이 난자당했답니다.”

“살해당한 시신의 신원은?”

“사채업을 하는 전당포 주인이랍니다. 범죄자 리스트에도 있는 폭력배 주승균였습니다.”

“종업원이 아침에 발견했는데, 사망한 시간이 전날 밤이라고?”



조 경정이 턱을 받치고 한 바퀴 서성거렸다. 깊은 생각을 할 때면 보이는 조 경정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걸음을 멈춘 조 경정이 회의용 탁자 앞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임 경위도 탁자 앞에 가서 앉았다.



“네.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사장이 일찍 퇴근하라고 해서 전당포를 나갔는데, 그때 커피 배달하는 다방 아가씨가 와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지역의 폭력배 조직은 알아봤데?”

“수사 중이랍니다.”



“다방 아가씨 신원은?”

“종업원으로 들어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마담도 그 아가씨에 대해 잘 모른답니다. 티켓을 끊고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고 사라졌답니다.”

“그렇다면 다방 아가씨가 폭력배 조직과 관계가 있단 말인가!”

“아직은 모르지요. 제 예감으로는.......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뭐가.......!?”



임 경위는 군산 사건 당시부터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었다. 오랫동안 지방근무를 하다가 어렵게 서울로 발령받은 그였다. 섣부른 판단으로 자신의 근무 성적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은 임 경위의 심정이기에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임 경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군산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살해된 후 집안일을 하던 여자가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피해자와 마지막까지 있었던 사람이 다방 여자라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그렇다면 임 경위 생각은 살해 용의자가 여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그뿐만 아닙니다. 혹시 삼 년 전에 경기도 광주에서 있었던 살인사건 기억 하십니까?”

“육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다가 전역한 박민철 사건을 말하는 것이군.”

“네.”



임 경위의 말을 귀담아 듣던 조 경정은 실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좌우로 돌렸다. 조 경정의 피곤한 모습을 바라본 임 경위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하는지 심사숙고했다. 조 경정이 광주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는 듯이 툭 내뱉었다.



“그건 이미 종결된 사건이 아닌가?”

“그런데, 그 당시에도 피해자의 시신에 검은 하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안기부의 강민우씨도 있었습니다.”



“민우가.......!?”

“네! 간첩 용의자라면서 안기부로 넘기라고 지시한 것도 강민우 씨였으니까요.”

“그래! 하여튼 알아보지. 하여튼 현장에 가보고 상부에 보고해야겠어. 차 대기시켜.”



자리에서 일어선 임 경위가 수사계장실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하던 조 경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전화벨 소리와 용의자들을 취조하는 형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수사과 사무실로 나갔다. 피곤이 누적된 조 경정은 양팔을 허리에 짚어 좌우로 흔들고는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시경의 건물 입구에는 경찰차의 조수석에 올라앉은 임 경위가 대기하고 있었다. 경비를 서고 있던 전경이 입구를 빠져나가는 조 경정을 태운 경찰차를 향해 경례를 했다.



아침의 출근길은 며칠 전에 내려 쌓인 눈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먹구름이 낀 흐릿한 날씨는 눈이라도 다시 내릴 것 같다. 방이동 NTIS 로 출근한 강민우는 건물 내의 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옆구리에 찬 호출기음이 울렸다. 액정화면에 찍힌 문자를 보고 심호흡을 하며 멈추어 섰다. ‘오빠! 전화 줘’ 라는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이진아에게서 온 문자가 분명하였고, 지역번호를 봐서는 경기도 지역의 공증전화였다.



빠른 걸음을 옮긴 강민우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내에는 언제나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문경환의 모습이 보였다. 컴퓨터를 마주하고 좌판을 두들기고 있던 문경환이 벌떡 일어났다. 강민우는 문경환이 뭐라고 인사를 하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책상위의 전화기부터 잡아당겨 호출기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책상위에 걸터앉으며 다시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가고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숨소리만 들렸다.



“여보세요. 진아니........!? 여보세요.”



상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아마도 전화 거는 사람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다급해진 강민우는 걸터앉았던 책상위에서 내려와 전화기를 두들겼다.



“여보세요. 진아구나? 나 오빠야.”

“응, 알고 있어. 왜 나를 찾았어?”



“엄마가 너를 찾고 있어. 하여튼 만나자.”

“난 엄마 없으니. 만날 필요 없어

“그러지 말고 일단 만나자. 만나서 얘기해.”

“.........”



“너 얼마나 위험한지 아니?”

“.........”



이진아는 듣고만 있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강민우는 이진아가 전화를 끊으면 영영 다시는 통화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급해졌다.



“너를 억지로 붙잡지는 않아. 말리고 싶지도 않고,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그럼, 단 한번만이야.”

“그래. 네 맘대로 해.”

“여기 부천 한마음마켓인데, 길 건너편의 뉴욕제과점에서 X시에 만나.”



“그래. 어디 아픈 곳은 없니?”

“.........”

“식사는 제때에 하고?”

“오빠! 사랑해.”



그 한마디를 남기고 이진아가 전화를 끊었다. 강민우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길게 한 숨을 쉬었다. 주승균이 인천에서 살해된 것을 조병문 경정으로부터 강민우는 연락을 받았다. 강민우는 즉시 이진아의 보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건의 내막을 자세하게 설명한 조 경정이 경기도 광주에서 이진아가 살해한 박민철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진아를 보호하기 위해 뒷수습을 처리한 일이라서 뜨끔했으나, 강민우는 태연하게 간첩용의자로 조치했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진아의 광적인 보복행위가 어디에서 멈출지 암담하기만 하였다. 무엇보다도 위험에 처한 이진아를 보호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강민우는 CIA의 토마스 박에게 받은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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