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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립스틱* - 4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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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1:34 조회 6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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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한의 말을 들은 홍천녀들이 이진아에게 다가왔다. 홍천녀들은 그녀의 팔을 부축해서 천존궁을 나와 천녀둘의 숙소인 천녀궁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부터 홍천녀들은 이진아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홍천녀들은 이진아를 목욕 시키고 몸단장을 서둘렀다. 그녀를 발가벗기고 몸매가 훤히 들어나 보이는 투명한 드레스만을 걸치게 했다.



이진아는 자신의 사물함에서 손가방을 챙겨들었다. 교주의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소지품을 검사해야 한다. 교주의 신변보호를 위한 규율이다. 홍천녀의 반장격인 중년여인이 이진아의 손가방을 검사하였다. 그러나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이 없기에 그녀에게 되돌려 주었다. 홍천녀들이 그녀를 천존궁의 삼층으로 데리고 갔다.



교주의 기도 의식에 참여했던 이진아도 이미 몇 번 들어와 본 장소이다. 호화스러운 치장과 엷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향불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다. 천존에 대한 의식을 치르는 신선한 곳이라고 하지만, 교주가 은총을 준답시고 처녀들을 겁탈하는 장소였다.



이진아를 홀로 남겨놓고 홍천녀들이 모두 나갔다. 벽에 걸린 눈동자의 벽화가 그녀를 삼킬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음산한 기운이 도는 큰 방에 혼자 남아 있으려니 이진아는 오싹하는 소름이 끼쳤다. 정면의 벽화 밑으로는 긴 제단이 있고 제단 위에는 눈알을 부릅뜬 사대천왕의 큰 석상과 철과 목각으로 만든 십이지신의 조각상이 기괴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이층에서 올라오는 층계의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삼면에 둘러 처진 커튼자락이 흔들거리고 교주 허문한이 불룩한 배를 내밀고 들어왔다. 뒤이어서 붉은 두루마기를 걸친 천후 방순덕이 들어섰다. 침대에 걸터앉았던 이진아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투명한 드레스를 걸친 그녀의 앞가슴과 허벅지 사이의 굴곡이 그대로 들어나 보였다.



방안을 둘러보던 천후의 시선이 이진아를 향했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천후는 안심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진아를 빤히 쳐다보던 교주 허문한이 도포자락을 흔들며 이진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양어깨를 붙들어 일으켜 세웠다.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히고 걸치고 있는 그녀의 드레스를 벗겨냈다. 발가벗겨진 그녀의 알몸을 내려다 보던 교주가 요상한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나 천존님의 독자인 천신이 천존님의 은총을 내리노라. 악마의 손길에 시달리는 너의 영혼을 구제하노니 잠에서 깨어 날 것이다. 네가 잠을 깼으면 뇌에 시동을 걸고 몸을 작동시켜야 천존님의 은총을 받을지어다. 전능자 천존님께서는 그 형상과 모양으로 인간을 위대하고 신비하게 창조하셨다. 고로 전능자 천존님의 위대한 은총을 받아 육체를 작동시키며 행해야 된다. 인간의 육체는 대우주의 축소판이니라. 수천 가지를 할 수 있는 기묘하고 능력 있고 신비한 대기계가 바로 ‘육신’이노니.........”



이진아는 기괴한 기도문을 외우는 교주의 목소리와 방안의 분위기에 영혼마저 흡수당할 것만 같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허벅지 사이를 더듬는 교주의 손길을 의식한다. 두툼한 손바닥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쓰다듬고 올라갔다. 음모를 문지르던 손길은 여자의 예민한 음순을 건드리고 다녔다. 이진아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꿈틀거렸다. 주문을 외우듯이 흘리던 교주의 목소리가 끊어지기에 이진아는 감았던 눈을 떴다.



교주 허문한이 자신이 걸치고 있는 붉은 도포를 벗고 있었다. 속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교주의 알몸이 들어나고 발기된 남성이 기둥처럼 솟아올라 보였다. 음험한 미소를 지은 허문한이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와 앉았다. 두터운 입술에 주먹코가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지하실 당구대 위에서 벌거벗겨진 그녀를 윤간을 하던 사내들 중의 한 남자의 모습이다. 이진아는 양손을 뻗쳐 허문한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헉~! 이년이.........”



갑작스런 공격에 허문한은 이진아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눈알이 벌겋게 충혈 된 교주의 목에 퍼런 핏줄이 돋아났다. 이를 악물은 이진아는 있는 힘을 다해 불거진 핏줄과 힘줄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숨을 쉬지 못하고 컥컥거리던 교주가 침대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재빠르게 침대위에서 뛰어내린 이진아는 제단위에 놓인 철상 두 개를 양손에 거머쥐었다. 허문한은 혓바닥을 내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알이 불거진 허문한의 얼굴은 사대천왕과도 같았다. 이진아는 일어서려는 교주의 뒷머리를 철상으로 내리쳤다.



그때 천궁교 건물 밖에서는 갑자기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지프차와 트럭, 버스 차량들이 천궁교 안으로 들어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어 섰다. 버스와 트럭에서는 무장한 경찰들과 남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건물사이의 광장은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대낮처럼 밝혀졌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천위궁에 있던 남자 신도들이 뛰쳐나왔다.

신도들과 같이 천위궁을 나왔던 홍집사와 청집사는 당황하여 시선을 마주했다.



“뭐야!? 짭새들이잖아! 형님에게 빨리 알려!”

“알았어. 우선 천위대를 시켜 짭새들을 막고 있어.”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은 찢어진 눈매와 애꾸눈이 번쩍 거렸다. 두 집사는 바로 허문한의 심복인 김철오와 황충식이었다. 홍색 점퍼를 걸친 김철오가 천존궁을 행해 달려갔다. 청색 점퍼를 걸친 황충식이 남자 신도들을 선동을 하며 외쳤다.



“악마들이 쳐들어왔다. 모두들 저 놈들을 물리치고 천신님을 보호해야한다.”



천존궁의 입구로 들어선 김철오는 황충식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숨 가쁘게 층계를 뛰어 올라간다. 청 집사의 뒤를 쫓는 그림자가 있었다. 생매장 당하려던 남자를 구해내고 건물 주위에 잠복해 있던 강민우였다. 경찰에게 발각되기 전에 이진아를 구해내야 하는 것이 강민우는 급선무였다. 건물 밖에서는 남자신도들이 함성이 들려왔다.



“악마들을 죽여라.”

“악마들을 처단하자.”

“천신님을 위하여.”



천위대중에 천궁교의 맹신자들은 경찰들을 향해 앞으로 나서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각목과 방방이, 그리고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손에 잡히는 데로 들고 나왔다. 그들 중에는 엽총을 들고 나온 신도도 있지만, 담을 넘어서 도망을 치는 신도도 있었다. 어둠 속에 묻혔던 천궁교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찰과 대치한 남자신도들 간의 격투가 벌어졌다. 천위궁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황충식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져 있었다. 황충식의 손에 쥔 권총의 총구가 경찰의 선두를 겨냥했다.



“탕~!”



신도들과 대치중이던 경찰 한 명이 총소리와 동시에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천녀궁에서 나왔던 여자신도들이 총소리에 놀라서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다. 지프차에서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내려섰다. 대치하고 있는 경찰들 을 진두지휘하던 사복형사가 지프차로 다가갔다. 사복형사는 서울시경의 수사계장 조병문 경정이었고 지프차에서 내려선 남자는 NTIS의 오민국 차장이었다.



“권총까지 소지한 놈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요.”

“길게 끌면 희생자가 많아집니다.”



오민국 차장의 옆에는 NTIS의 전희재 과장과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송나희 실장의 모습도 보인다. 조병문 수사계장이 임춘수 경위에게 지시했다



“되도록이면 인명 피해가 없도록 엄포 사격을 해.”



임춘수 경위가 신도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경찰들 속으로 달려가고 이내 총소리가 산중에 메아리쳤다. 총소리를 듣고 도망가는 신도들도 있지만 더욱 광분하여 날뛰는 신도들도 있다. 황충식의 총구에서도 연달아 불빛이 번쩍거렸다.



“탕, 타당.......!”

“탕, 탕, 탕.........”



연이어 들리는 총소리에 이진아는 흠칫 놀랬다. 그녀 앞에는 허문한이 벌거벗고 쓰러져 있다. 두개골이 깨졌는지 머리에서 붉은 피가 솟구칠 때마다 허문한은 반사적으로 꿈틀거린다. 경찰이 들이닥친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녀가 처치해야할 두 놈이 남아있다. 벗겨졌던 드레스를 입고 그 위에 허문한의 두루마기를 걸쳤다. 손가방 안에서 붉은 립스틱을 꺼내 허문한의 입술을 칠했다. 그리고 낙서를 하듯이 허문한의 몸에 마구 검은 립스틱을 칠했다.



김철오, 황충식 두 집사의 방이 삼층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재빠르게 몸을 돌린 그녀는 커튼 뒤의 방문들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후와 두 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으로 다가가던 그녀는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출입문이 열리며 들어선 것은 권총을 든 홍 집사 김철오였다. 김철오의 시선이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허문한에게 향했다.



“이런 네 년이 경찰 끄나풀 이였구나!?”



시커먼 총구를 의식하고 다급해진 이진아는 제단 위의 조각 형상을 김철오에게 집어 던졌다. 그러나 김철오는 이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일발의 권총소리가 울리고 이진아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그녀는 김철오에게 한발 다가서며 비틀거렸다. 김철오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친 그녀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다시 김철오의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되어 그녀의 이마를 관통했다. 목이 꺾인 이진아는 가물거리는 눈빛으로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총구를 겨냥한 김철오는 쓰러진 이진아에게 다가섰다. 또 다시 총성이 울리고 이진아에게 권총을 겨냥했던 김철오의 동공이 정지되고 급히 숨을 들이켰다.



“헉~!?”



비틀거리는 김철오가 들고 있는 권총을 떨어트렸다. 천천히 쓰러져가는 김철오가 뒤돌아 본 출입구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겨냥하고 그림자처럼 서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를 뒤쫓아 온 강민우였다. 권총을 쥐고 있는 강민우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눈동자를 크게 뜬 김철오가 몸을 비틀며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쓸어져 있는 이진아에게 다가서는 강민우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진아야~! 흐 흑~!”



이진아를 부둥켜안은 강민우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숨을 들이키는 이진아의 얼굴은 머리에서는 솟구치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피가 흘러나올 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반사적으로 들썩거렸다. 그녀는 흐릿해지는 시야 속의 강민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강민우의 얼굴에 피로 물든 손을 뻗었다.



“오빠.......! 사, 사랑해........!”

“진아야! 죽으면 안 돼. 조금만 견뎌. 으 흐 흑.......!”



“오, 오빠를.......만나서.......행복했어.......! 인, 인생은.......연.......극.......”

“으 흐 흑~! 안 돼! 숨을 쉬라고.”



목구멍으로 피를 삼키는 이진아는 웃고 있었다. 출입문이 열리고 경찰과 NTIS 요원들이 들이 닥쳤다. 그들 중에는 조병문 수사계장, 임춘수 경위의 모습도 보였다. 뒤이어 NTIS 요원과 오민국 차장, 전희재 고장, 그리고 송나희가 들어섰다. 오열하던 강민우가 이진아를 들고 일어섰다.



“구급대원 불러! 빨리 구급차. 좀! 진아야! 조금만 참아. 넌 살아야 돼.”



송나희는 이진아를 안고 있는 강민우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강민우는 사람들을 헤치고 출입구로 향했다. 그는 다급하게 이진아를 안고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그러나 끄르륵 하며 이미 마지막 숨을 거두는 이진아의 몸은 축 늘어졌다. 천궁교는 진압되었고 광장에는 양손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신도들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경찰들은 건물을 수색하며 나머지 신도들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구급차를 행해 달려가는 강민우에게 안긴 이진아의 팔이 힘없이 흔들렸다.



다음날 언론은 경찰과 안기부가 동원되어 천궁교 간부들과 신도들을 체포했다는 뉴스와 아울러 연쇄살인범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특종 보도했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연쇄살인범이 20대의 여자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여자 혼자의 몸으로 연쇄살인을 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했다. 연쇄살인의 배후가 있거나 모종의 음모가 있을 거라고 추측이 난무했다.



강민우는 검찰의 호출을 받고 대 검찰청의 취조실에서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와 마주 앉은 사람은 안경을 착용한 대 검찰청의 공안부 부장검사였다. 부장 검사 옆에는 담당 검사가 버티고 서 있다. 강민우는 벌써 반나절을 이진아의 공범여죄로 추궁 받고 있는 것이다. 부장검사는 사건 서류를 넘기며 꼼꼼히 살폈다.



“이해가 안 되는 말이네요. 이진아와는 혈육이 같은 형제도 아니고, 부부사이도 아니면서 오랜 시간동안 같은 집에서 동거를 했다는 것이.......”

“.......”



강민우는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벌써 몇 번째의 같은 질문에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언어로 표기한 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남녀가 한집에 같이 살았다는 것과 인간의 감정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려 해도 그들을 말로 이해시킬 설명이 부족했다.



“이진아의 본명은 곽진경. 이진아는 과연 누구 입니까?”

“그건, 검사님보다 윗선의 정치인들에게 물어 보시오.”



“강민우 씨에게 듣고 싶은 말입니다.”

“때가 되면 말할 것이오. 그걸 밝히는 것이 당신들 책임이 아닙니까?”



강민우가 한 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부장검사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정치세력 멤버라면 부장검사도 이진아에 대한 내막을 알고 있으며 묻는지도 모른다.



“이진아는 왜 살인을 저지른 것 입니까?”

“내가 사건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진아가 살해한 피해자들이 전부 폭력배들이거나 범죄자 출신인데 누구 입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보십니까. 그것도 모르면 나중에 안기부로 찾아오시오. 가르쳐 드릴 수 있으니.”



“어떻게 이진아가 범인들을 알아냈을 가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낸들 알겠습니까.”



“안기부 요원으로서 정보를 제공하거나 이진아를 도와 준 것은 아닙니까?”

“글쎄요. 내가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집에서 살았으니, 모르지요.”



“이진아를 도와 준 것은 사실이지요?”

“도와주려고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이진아가 살해를 하려고 했던 것을 알고 있었고, 살인동기도 알고 있었겠군요.”

“배고파하는 사람의 감정을 아는 것도 잘못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솔직히 그들을 내손으로 처치하지 못 한 것이 실수입니다.”



강민우는 흑사회 조직원들을 처치하고 싶었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부장검사는 당당하게 감정을 시인하는 강민우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강민우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의 감정을 나타냈다고 해서 죄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 이진아가 살해한 사람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그건 안기부 기밀이기도 합니다. 그걸 알고도 첫 번째로 군산에서 살해당한 곽춘호를 방심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이겠지요.”



부장검사는 같은 말을 되묻기도 하고 강민우의 입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어쩌면 강민우를 공범으로 몰고 가려는 취조인지도 모른다. 취조실 문이 열리고 사무원이 부장검사 옆에 있는 검사를 불러냈다. 부장 검사는 다시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질문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리산에 잠복하게 됐습니까? 안기부 내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까.”

“안기부 요원은 지시가 없어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진아가 천궁교와 어떤 관계입니까?”

“모릅니다.”



“그곳에 이진아가 있다는 것과 천궁교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말 할 수 없습니다.”



취조실을 나갔던 검사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부장검사에게 무슨 말인가 귓속말을 했다. 검사는 청와대로부터 강민우를 풀어주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검사로부터 귓속말을 들은 부장검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 있던 서류를 덮어놓고 입맛을 다셨다.



“이 짓도 못해 먹겠구먼.......”

“.........”



“더 할 말이 있습니까?”

“곧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또 연락하게 되면 수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연락 받기 전에 내가 숨겨진 사실들을 밝힐지도 모릅니다.”



부장검사가 강민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나눈 부장검사와 강민우는 취조실을 나섰다. 대 검찰청 입구의 대기실에는 NTIS의 전희재 과장과 송나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민국 차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연락을 했고 비서실장의 지시로 강민우가 풀려 난 것이다. 애틋한 표정인 송나희의 눈동자에는 습기가 배어 있었다.



일주일 후 천궁교의 사건과 연쇄살인범 사건은 의혹을 남기 채 종결되었다. 강민우는 광주 의 극락교를 흐르는 영산강 상류에 서서 있었다. 그는 이진아의 시신을 화장시킨 유골함을 들고 있었다. 이진아의 넋을 달래듯이 숲 속에서 이름 모를 산새가 슬피 운다. 강민우는 지난 시간을 흘러 보내듯이 이진아의 영혼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유골함마저 강물에 띠워 보낸다.



강민우의 옆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는 송나희는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강민우의 어머니 산소에 같이 가서 인사를 드렸다. 강민우는 약속대로 어머니의 산소에 어머니의 유물인 반지를 묻었다. 허문한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병원으로 이송된 김철오도 사망했다.



살아남아서 체포된 우서연의 어머니 방순덕과 황충식은 살인죄와 살인방조죄. 시체유기죄 . 약사법위반죄, 사기죄 등 다양한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천궁교의 독방에 갇혔던 유서연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공포에 떨었다. 결국 정신분열증을 일으킨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여자가 지닌 힘은 여자라는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사로잡는 것과 모성애를 갖는 것이다. 여자는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남자에게 모성애를 느낀다. 지금까지 송나희는 강민우를 남자로 사랑하는 만큼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까지도 보호하고 싶은 감정이었다. 애틋하게 강민우를 바라보던 송나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헛구역질이었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구역질을 참느라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녀는 강민우의 아기를 잉태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강민우에게 사실을 밝히지 못한 그녀는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강민우가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뇨! 점심 먹은 것이 안 좋은가 봐요.”



강민우가 그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주었다. 송나희는 자잘한 눈웃음을 한다. 이진아를 생각하는 강민우는 아직 해결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들어가 있는 진아의 어머니인 이미연이 며칠 후에 한국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민우 자신과 이진아 모녀의 운명을 고통 속에 빠트렸던 장본인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역사는 창조되기도 하지만 반복해서 흘러간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바뀌어도 계절의 변화는 항상 반복해서 이 땅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사람들을 웅크리게 했던 긴 겨울이 물러가고 풀과 나무의 새싹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산과들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열차역이나 버스대합실의 모여든 사람들이 TV를 주시하고 있었다. NXX 방송에서 정치권에 대한 긴급한 중대보도가 있다는 발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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