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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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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6:51 조회 8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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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산행을 한 두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사람의 인적이 드문 것은 처음 이었다. 오랜 만에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힘을 들여 산을 오르는 것 보다 가까운 스키장을 찾는 일에 더 신이 나는 모양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나는 산에 오르다가 눈이 내리면 오랜 만에 추억의 그 산장에 들러 정겨운 톱밥 난로에 몸을 쪼이며,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나 나누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코스를 따라오는 사람도 앞서가는 사람도 왠간히 발견하기가 힘들다. 나는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사람들이 올라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숨을 돌리며, 쉬고 있었다. 저만치 아래 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반가움이 앞서고, 동행이 생겼다는 즐거움에 적막한 산속이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커플이었다. 나처럼 여자 혼자서 산을 타는 것이 아니라 커플. 그것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의…그들도 나와 비슷한 여정을 밟아 왔는지 내가 앉아있는 그루터기 쯤에 멈추어 서서 물을 마신다.



‘오늘은 어째 한가하죠?’



그 남자가 얘기를 꺼낸다.



‘자주 오시나 봐요?’



‘네. 얘가 산 타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요.’



그가 가리키는 여자는 산행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연약해 보이는 체구의 여자 였다. 보기에 두 사람은 지극히 깊은 관계의 연인 처럼 보이고…



‘결혼 하셨나 봐요?’



‘곧 결혼 할 겁니다. 다음 달에.’



남자가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는 여자를 내려다 보면서 얘기했다. 그 두 사람도 나처럼 정상까지는 그렇고, 산장에 들러 하룻밤 쉬어 가려고 길을 떠났다고 했다. 어찌 그리도 같았는지. 나는 변덕스럽게 변하는 산중의 날씨도 그렇지만 곧 이어서 눈이 버지기로 쏟아질 것 같다고도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숨을 몰아 쉬어 가며, 가파른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곳곳에 미처 녹지 못한 눈들이 빙판으로 변해 까딱 잘못하다가는 낙상을 하기 십상 이었다. 게다가 쏟아질 눈을 예고하는 것처럼 산중은 벌써부터 해가 떨어져서 체감온도는 급강하하고 있었고…모두들 곧 이어 눈 앞에 나타날 산장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날이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장까지 가려면 앞으로도 30여분은 더 가야 되는데 어디서 흩뿌리는 것인지도 모르게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 에게 길의 흔적이 눈으로 덮히면 산장을 찾기 힘들어지게 될 터이니 걸음을 재촉하자고 부추 켰다. 그러나,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난 것처럼 그 여자는 남자의 팔에 엉겨 붙다 시피 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다리가 풀리면 곤란한데 라는 걱정이 앞섰다. 순식간에 눈은 퍼 붓듯이 세 사람의 갈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눈썹과 코, 얼굴 주위로 김이 서리면서 녹아 내린 눈으로 인해서 물이 흘러내렸고,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냉한 공기는 눈과 함께 폐를 꼬챙이로 찌르는 것만 같았다. 점차 방한복 위로 어깨에 쌓이는 눈의 무게가 느껴질 정도로 눈은 삽시간에 산속의 행로를 미로처럼 만들고 있었고, 세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만으로 도움이 안되면서도 말없이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산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산 속에서는 해가 일찍 떨어진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은 평소보다 일찍 하산하거나 묵을 곳을 찾는 것에 전면적으로 신경을 쓰는 반면, 나는 우리의 스케줄이 날씨를 무시하고 너무 늦은 시간에 정상을 향하고 있었지 않나 싶은 반성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미 후회해도 소용은 없었고 가까운 목표 지점인 산장에 도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런 상태에서 두어 시간 가다 보면 저체온증 으로 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바닥 날 것이고, 방향감각 까지 잃어버린 다면 그것은 곧바로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눈에 익은 표지판과 아울러 산장으로 들어서는 통나무 계단이 발에 밟혔다. 나는 살았다라고 외치면서 두 사람에게 어서 들어가서 몸을 좀 녹이자고 했다. 두 사람도 안심이 되었는지 아까와는 달리, 없는 기운 이지만 애써 속력을 내어 보는 것이 가상했다. 산장은 의외로 조용했다. 세 사람은 현관에서 눈을 대충 털고 나서 통나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면서 보기에도 푸근한 톱밥 난로가 중앙에 보이고 후끈한 기운이 얼굴을 감싼다.



‘베테랑 이신가 봐요? 산에 대해서 잘 아시는 걸 보면…’



‘아니 뭘요, 그저 산이 좋다 보니 자주 다녀서 그렇죠 뭐. 힘드셨죠? 잘못했다간 길을 잃기 쉬워요. 이런 날씨에는…’



나와 그녀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어깨와 앞머리에 뭉쳐있는 눈을 털어냈다. 산장 안은 따스하게 불이 피워져 있었는데 산장지기 아저씨는 자리에 없었다. 아마도 산장 뒤의 창고에서 밤새 쓸 톱밥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등에 진 쌕을 내려 놓았다. 밥을 해먹을 요량도 아니었기에 세 사람의 등에는 텐트도, 비상식량도 없이 단촐한 짐들 뿐이었다. 우리는 난로 가에 앉을 생각으로 벽쪽에 놓여있던 식탁의 의자를 끌어왔다. 중앙의 흔들 의자는 이 곳 산장지기의 자리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누구도 앉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 신세를 지는 것도 황송한데 주인의 자리를 차고 앉을 안면몰수의 무례한 인생은 세 사람 중에는 없었다.



‘눈이 얼마나 더 올까요?’



‘글쎄요. 밤 사이에 내내 온다고 보면 내일 아침쯤 에는 한 40여 센티, 정도 오지 않을까 싶네요.’



나는 그 남자의 질문을 확인해 볼 생각에 장식 선반 위에 놓인 라디오를 틀었지만 배터리가 없는지, 아니면 전기가 끊어졌는지 작동을 하질 않았다. 이런 깊은 산중에서 TV도 없이, 변변한 라디오 하나 없이 산장 만을 지키며 살아오는 산장지기의 즐거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하기만 했다. 읍내의 사람들은 그랬다. 이 산장지기는 말도 없을 뿐더러 깊은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자신의 얘기를 하는 적도 없어서 그 속내를 짐작하기가 어렵다고 말이다. 다만,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오는 등산객들을 자기 가족처럼 보살펴주는 정성에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를 하고 다녀가고, 그 기억이 그리워 또 찾아가곤 한다는 얘기. 하지만 내 기억에는 내가 이 산장을 찾는 날치고 날씨가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짙은 안개로 뒤 덮여 있거나 오늘처럼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이 산장을 향해서 산을 꼭 타야 했던 것처럼 나는 이곳을 찾았던 기억을 떠 올 릴 수 있었다.



‘여기 아저씨는 어디 가셨을 까요? 이 눈에…’



‘아마, 산장 뒤에 있는 창고에 가시지 않았다면 여기서 조금 윗 쪽에 있는 버섯농장에 가셨을 겁니다. 이 산장을 꾸려나가는 주 된 돈줄 이라죠, 아마. 거기서 키운 하우스 버섯은 읍내에서 비싼 값에 특산물로 팔리거든요. 여기서 멀지 않으니 폭설에 하우스가 내려 앉을까봐 보러 가셨을 겝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뭘요.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 인데요.’



‘아저씨가 오셔야 어떻게 저녁이라도 얻어 먹을 텐데…’



그 여자는 벌써부터 먹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그래서 간사하다는 얘기를 듣는가 보다. 나는 온 몸이 풀려가니 먹을 것 걱정 보다는 밤사이 내려 쌓일 눈이 더 문제였는데…



‘바깥에서 소리가 없는 것을 보니 아저씨는 농장에 올라 가신 게 분명해요. 어차피 내려 오시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 동안 얘기나 하면서 보내죠.’



나는 서성대는 그 커플을 자리에 앉히기 위해 얘기나 하자고 권했다.

세 사람은 벌겋게 달아오른 불 곁에서 난로를 마주하고 앉았다. 밖은 벌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 졌고, 눈은 이제 쏟아 붓는 다는 표현이 맞는 것처럼 온 세상을 뒤 덮어가고 있었다.



‘제가 얘기 하나 할까요?’



그 남자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무슨 얘기를 하는가 하며, 옆에 앉은 여자가 힐끔 쳐다 보았지만 운을 떼는 남자의 얘기를 듣자마자, 아, 그 얘기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아는 동아리 선배가 해준 얘기입니다.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은데, 시간 떼우기 에는 좋을 것 같아서…’



그는 어지간히 몸이 녹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산장을 지키는 산장지기가 있었다고 해요. 사실 여부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동아리 선배가 겪은 일이라고 얘기해서 그러려니 했죠. 그 선배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 동아리 후배 여학생들과 방학을 맞이 해서 산에 올랐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날씨가 그런 대로 좋았는데 갈수록 험해지는 것이 꼭 오늘 같았었나 봐요. 갑자기 덮친 안개로 인해 사방을 분간 할 수도 없어서 길을 잃고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디 선가 소리치는 사람 소리에 모두 다 기운을 얻었다는 군요. 그 소리는 다름아닌 여자 소리 였다고 합니다. 길을 잃고 조난 될 사람이 있는가 하고 산장에서 내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여자 혼자의 몸으로… 선배 일행은 살았다라는 심정으로 바람같이 길을 인도하면서 앞서가는 그녀를 따라서 안개를 헤치며 산장으로 향했다지요.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속에서 그들을 잃어버릴 까봐 계속 소리치면서 앞서가는 그 여자는 정말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들을 앞서가던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어지면서 그들의 앞에는 그렇게 찾고 있던 산장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고, 그 앞에 장승처럼 서있는 산장지기를 만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때까지 자신들을 이끌던 여자가 보이질 않더 라는 것이었습니다. 산장에 도착하고서 앞서가던 남자들은 그 여자의 행방이 궁금해서 그 산장지기에게 물어 보았지만 대답 대신에 이렇게 물었다는 군요.’



‘어떻게요?’



‘그 여자의 발을 보았느냐고요.’



‘발을 보았냐니요?’



‘아무도 그 와중에 그녀를 자세히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대낮에 짙은 안개가 끼었을 뿐이었고, 설마 귀신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산장지기의 말처럼 그녀의 발은 볼 수 없었다고 일행 중에 뒤쳐져 따라오던 한 여자후배가 그랬답니다. 의심도 했었지만 설마 하면서 안개 때문이려니 했는데, 앞서가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순간, 그 후배와 눈이 마주쳤었는데 희미하기는 했지만 두 눈이 충혈된 것처럼 핏빛이었고, 다리는 안개에 싸인 것처럼 공중에 떠서 발이 안 보였다고 합니다. 많이 들어 보셨던 얘기일거에요.’



방 안의 세 사람은 많이 들어 본 이야기 였음에도 머리칼이 쭈빗 곤두서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얘기 하나 할께요.’



나도 질세라 그나마 아는 얘기 한가지를 한다고 운을 띄웠다.



‘제 얘기는 어느 불행한 연인들에 대한 얘기에요. 이것도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 오래 전부터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에요. 그 얘기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눈이 쏟아지거나 아니면 날씨가 궂으면 일어나곤 했다는 걸 보면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 무슨 일이 꼭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죠? 어느 가족이 산을 오르다가 비를 홈빡 맞고서 산장으로 몸을 피했지요. 산장을 지키던 산장지기는 길을 잃을 수도 있는 다른 등산객들을 찾아서 근처의 등산로를 살펴 본다고 나섰고, 가족들은 젖은 옷을 말리면서 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고 하네요.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산장 문이 열리면서 비에 젖은 채, 오돌오돌 떠는 채로 남녀 커플이 산장으로 들어섰지요. 그들은 가족들이 건네주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리자,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건장한 남자와 여자는 얼굴 모습이 아주 닮은 꼴이었다고 하죠? 그래서 가족중의 아버지 되는 분이 물었대요.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혹시 결혼 했느냐고요. 남자는 서로가 약혼한 사이라고 하면서 얼마 있지 않아서 결혼 할 거라고 대답 했대요. 그런데 그 여자가 가족중의 아이에게 먹을 것이 없느냐면서 물었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가방에서 갖고 온 과자며, 쵸컬릿을 꺼내서 주자, 순식간에 게걸스럽게 먹어 치워서 보기에도 민망 했다지요.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고 산장지기가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신기하게도 비가 그치더랍니다. 가족들은 더 이상 날씨가 나빠지기 전에 하산해야 되겠다면서 짐을 챙겼는데,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연인들이 않 보이는 것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같이 내려갈 요량으로 화장실에 간다며 따라간 그 연인들을 찾으러 산장 뒤편에 있는 화장실도 뒤져 보았는데 흔적도 없었대요. 하도 이상해서 산장지기에게 그 간의 얘기를 해주고 두 사람의 행방을 물어보니 산장지기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뭐라고 했는데요?’



‘아이의 가방을 살펴 보았느냐고 말입니다.’



두 사람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얘기를 경청했다.



‘아이의 가방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는 것이었지요. 가방은 산행 전에 묶어 놓은 매듭 그대로 였고 그 무게도 다를 바 없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열어 보았더니 아까 전에 그 여자에게 나누어 주었던 과자며, 쵸컬릿이 뜯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안에는 놀랍게도 아기가 손을 펴고 있는 것 같은 단풍잎이 한 장 들어가 있더랍니다. 산장지기의 말로는 결혼을 약속하고 깊이 사귀던 연인이 부모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산에 들어와 둘이 동반자살을 했는데 여자는 남자의 아이를 갖고 있었고,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날씨가 궂은 날이면 등산객에게 뱃속의 아이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나타난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애기단풍이라고 하는 보통 크기보다 작은 크기의 단풍잎을 흔적으로 남긴다는 얘기였지요.’



나는 그때 산장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온 몸에 눈을 뒤집어 쓰고 나타난 산장지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실내에 들어서기 전에 입구에서 눈을 털어 냈다. 나와 커플 일행은 주인 없는 집에 무단 침입한 사람들 마냥 벌떡 일어서서는 산장지기에게 계면쩍은 표정으로 목례를 하고…산장지기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웃옷을 벗어 벽에 걸고는 자기의 자리인 흔들 의자에 앉았다. 우리들도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의자에 다시 앉았다.



‘불이나 피워야 겠네.’



‘아저씨, 불은 이미 피워져 있어요. 이렇게 따뜻한데…’



나는 산장지기를 쳐다 보며 말했다. 산장지기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구석에 있는 톱밥 양동이에 담겨져 있는 굵은 화목을 몇 덩이를 들고는 난로의 밑을 열었다. 그는 뜨거웁지도 않은지 활활 타오르는 난로의 밑을 열고는 화목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것도 모자라 화목 위에 라이타 기름을 뿌리고는 불을 붙였다. 화목은 원래 있던 불기운 때문이었는지 금새 활활 타올랐고, 이어서 난로의 위에 연결되어 있는 톱밥 통에 톱밥을 하나 가득 채워 넣었다. 그렇게 뜨거운 난로를 쥐면서도 데지 않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아무런 말이 없던 그 산장지기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형준이는 또 왔냐? 색시도 왔구만. 허..참. 교회 다닌 다는 작자들은 뭘 몰라도 한참을 몰라. 저렇게 헤매는 것들 위해 비싼 묘석 말고 천도제나 올려 줄 것이지.’



‘아니,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커플의 얼굴이 소스라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왜 몰라? 언제나 여기에 올 때마다 너희들은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지. 항상 그랬던 것마냥 너희가 죽었을 때처럼, 언제 끝날지는 몰라도 수레바퀴 돌리듯 이 짓거리를 계속할 테니까. 그러게 뱃속의 아이까지 있으면서 죽기는 왜 죽어 가지고…. 쯧쯧…그래도 살고는 싶었나 보지. 죽어가면서도 이 산장에 오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알량한 희망 때문에 너희 것들은 이 지겨운 짓거리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게야.’



산장지기의 눈 앞에 앉아 있는 그 커플은 내가 얘기로만 듣던 그 귀신들 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움찔 했지만 천연덕 스럽게 말씀을 하시는 산장지기의 의연함에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있을 수 있었다.



‘….숙아….너도 이제는 그만 와도 좋으련만…. 내 방금 전에 산너머에 계시는 월공 스님께 너의 천도제를 부탁 드리고 오는 중이다. 이제는 서로가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인데…’



나는 아찔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죽은 사람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멀쩡한 라디오가 켜지지 않던 것처럼, 불도 없었던 난로가 활활 타는 것처럼 보였던 것 하며, 나는 내가 생전에 바라던 모습대로만 보고 싶었던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매일을 그렇게 살았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 기억들은 무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 그럼… 제가…. 죽었다는 말씀….이세요?, 지금 그 말씀은?’



‘내가 너희들에게 얘기해줄까? 너희들은 언제나 이렇게 너희들이 숨기고 싶은, 잊고 싶은 기억들은 깡그리 잊어 먹은 채, 살아 생전, 행복했던 기억만을 가지고 여기에 오는 게야. 너희들은 보통과 같지 않은 삶을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귀신이 되서라도 보통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지. 죽은 것들이나 산것들이나 어쩜 그리도 속내를 감추는 것에 급급한지…내가 너희들의 얘기들을 또 해주랴?’



산장지기는 흔들의자의 반동을 뒤로 하면서 얘기를 꺼냈다.



‘나는 형준이, 너와 네 동생이 올라올 때마다 이 이야기를 기억이 돌아올까 하고 해 주지만 소용이 없더 구나. 다시 내일이 되면 너희들은 아까 발걸음을 시작한 그곳에서 모든 기억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가 봐. 너희는 보기에도 닮아 보이지? 그래, 짐작했겠지만 너희 둘은 친 남매 간이야. 너희들의 시체가 저 용마루 골 입구, 산자락에서 서로 껴 안고 얼어죽은 채, 발견 되고 나서 너희 부모는 달려와서 통곡을 하면서 울부 짖었었지. 그렇게 원하던 것을, 살게 내버려 두면 죽기까지야 했겠느냐 면서…너희 남매를 집에 놔두고 맞벌이에 바빴던 너희 부모는 밤이 늦도록 집에 남겨진 너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겠지. 돈이 뭐길래, 맨 처음에는 셋방살이 면해보려고, 도중에는 전세거리 라도 벌어 볼 요량으로, 나중에는 내 집이 갖고 싶어서라고, 이유야 많고 많았겠지. 나중에는 돈이 사람을 쥐고 흔들어 대면서 자식은 잘 자라겠거니 하는 안이한 믿음에 너희 부모는 밖으로 돌면서 돈 벌기에만 급급했던 것이야. 너와 네 동생은 그런 부모의 믿음 안에서 서로의 육신을 탐하기 위해서 겉으로 보면 믿음직한 자식으로 자라났지. 보란 듯이 좋은 대학에 둘 다 합격하고, 남부럽지 않은 남매로 커 주었으니까. 그러나, 세월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야. 너희가 졸업을 앞두고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형준이와 네 동생은 대학원에 같이 가겠다고 부모에게 앞날의 계획을 밝혔던 것이 화근이었어. 더 이상의 학업은 불필요 하다며, 과년한 네 동생은 결혼하라는 부모의 압력 때문에 선을 볼 수 밖에 없었고, 너는 그 질투심을 이기질 못하고, 네 동생을 임신 시키고야 만 것이지. 너희 두 사람은 그 선에서 그쳤어야 했다. 나도 지나온 과거를 후회 하면서 넘지 말았어야 할 선으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지만 너희들도 그 당시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 아기를 유산시키고 네가 군대를 갔더라면 동생은 자연히 너를 뒤로 하고 결혼을 했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런지 몰라.’



두 사람은 멍하니 산장지기의 얘기를 들으면서 넋을 놓고 있었다. 아까와 다르게 두 사람의 형체는 조금 탁해진 색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흡사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으로 인해 영혼으로서의 존재 의지가 상실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물었다.



‘아저씨, 저의 이름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저도 이 곳에 자주 오나요?’



산장지기는 한 숨을 길게 내 쉬면서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주 오느냐고? 암 자주 오고 말고, 너는 여기에 살고 있었으니까.’



충격적인 얘기였다. 내가 산장에 살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모든 흉악한 놈들 중에서 내가 괴수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혼자 산지가 오래 되었다고 딸을 겁탈한다는 것은 천륜을 거스르는 일인데….순리대로만 살아가는 산과 나무들 보기에도 민망하게 나는 딸을 건드린 나쁜 놈이었어.’



나는 그제서야 내가 어째서 산장지기의 주변 얘기에 대해서 훤한지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언제나 철부지 어린 아이인 줄로만 알았었지. 그 날, 이후로 나는 몰래 너를 훔쳐보는 것에 맛을 들렸지 뭐냐.’



‘그 날, 이후 라뇨?’



‘12살이 넘어가고부터 너는 네 혼자서 목욕을 했지. 마땅한 보일러도 없고, 고작 해야 아궁이와 장작이 전부였던 이 산장에 지금은 이미 보일러를 놓았다만 그 때, 네가 17살이 되던, 어느 겨울 날, 나는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고 말았단다. 바로 너의 목욕하는 모습이었지. 너는 산에서 어릴 적부터 내 손에서 컸기 때문에 사내 아이 같이 억세고, 부끄럼을 모르고 자랐었단다. 내가 목욕을 시켜주면서도 나에게 잠지를 씻겨 달라고 디밀기도 하던 어린 시절과 다르게 나는 커가는 너에게 여자로서의 몸가짐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12살부터는 네 혼자 목욕을 하도록 시켰었다. 나는 네가 목욕을 할 때, 행여 감기라도 들까 봐, 계속해서 밖에서 물을 끓여 부엌 안으로 퍼다 날랐고….그러던 중에 네가 17살 되던 해, 눈이 엄청 쏟아지던 그 겨울 날에 훌쩍 여자로 자라버린 너의 나체를 보게 된 것이지. 나는 꿈속의 네 어미가 돌아왔는가 싶었다. 그 풋풋한 살결하며,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너의 살 냄새,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부엌의 바닥을 청소 할 때 에 남겨져 있던 너의 머리카락과 음모도 나는 버리지 않고 씻어서 모두 모아 두었지. 네가 20살이 되던 해까지 나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너에 대한 환상과 음욕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밤만 되면 너는 나의 꿈속에 나타나서 나의 온몸을 너의 그 싱그러운 육체로 휘젖고 다니고, 나는 그것이 못내 그리워 아침결에 일어나 보면 아랫도리는 온통 풀 죽을 쑤어 놓았고…웃산의 버섯이 몽골몽골 고개를 디밀 때면 그게 꼭 너의 젖 몽우리 같다고 느꼈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점차 짐승이 되어 가고 있었나 보다. 산장에서 멀긴 하지만 읍내의 고등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도회지의 대학교로 나를 훌쩍 떠나가던 밤, 나는 잠들어 있는 너의 방 앞에서 잠든 네 모습을 훔쳐보면서 그 밤이 다 가도록 용두질을 해댔었다. 네가 떠나고 한 동안은 모든 게 잠잠해진 듯 싶었다. 그게 바로 내가 넘지 말았어야 할 경계였지. 내 마음속에 혈육이 아니라 여인네로 자리잡았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네가 방학을 틈타 동아리 선후배 들과 산장에 돌아온 날, 나는 젊은 놈들과 스스럼 없이 몸을 부딪히며, 즐거워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는 눈에 불이 확 당겨졌단다. 그들이 돌아가던 날 밤, 나는 피곤에 지쳐 잠이 든 너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지.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도 잠시, 나는 네가 딸이라는 사실도 잊고서 너의 이불을 가만히 들추었단다. 뽀얀 허벅지가 드러나면서 앙증맞게 자리잡은 팬티. 그 사이로 몇 가닥 삐져 나온 털까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성을 잃고 있었던 게지. 얇은 내의 만을 입고 자는 너의 배꼽은 숨쉬듯이 들썩이고 있었고, 나는 치미는 음욕을 어쩌지 못해 그만 너의 젖을 손으로 움켜쥐고 말았고…. 화들짝 놀라서 깨어나는 너를 나는 마구잡이로 덮쳤다. 지금 생각해도 그러지 말았었어야 했는데…너는 소리치면서 반항하고, 살려달라고 소리소리 쳤지만 첩첩산중에 아무도 없는 산장에 둘만이 있었기에 그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밖에는 내 귀엔 들리질 않았었다. 나는 미친 것이 분명했다. 너의 뺨을 후려 갈기고, 팔로 짓누르고, 아랫도리는 있는 대로 짓밟고 있던 그 모습은 한 마리 미친개라고 밖에는….그저 나만의 환상으로, 그렇게 꿈속의 대상으로만 여겼어야 할 너의 꽃다운 육신을 애비 라는 놈이 젊음을 향한 질투에 눈이 멀어 천륜을 거슬렀으니 말이다. 내가 죽일 놈이야. 매번 얘기한다만 용서 하려므나, 숙아!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눈에서는 눈물도 않 나왔다. 나를 죽음으로 이끈 장본인이 아비였다니…



‘그래서 저는 어떻게 됐지요?’



‘너는 그 밤을 내내 울면서 눈이 퉁퉁 붓도록 문을 잠그고 나와 말을 끊었지. 나는 그제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 왔던지, 방문 앞에서 너에게 울면서 용서를 빌었단다. 오후가 다 지나서 너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나를 용서한다면서 오래도록 목욕을 하더니만 내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면서 나갔지. 그런데 너는 밤이 늦도록 돌아오질 않는 것이었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를 찾아 나섰다. 어디를 뒤져도 찾지 못하고 그 밤이 지나가고, 다음 날 아침, 지서에서 최 순경이 올라왔더구나, 나를 보며, 어디를 같이 가자는 말이었지. 나는 무심코 따라 나섰다. 산장에서 한참을 내려와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곳에 이르러서 나는 그 이유가 무언지를 알게 되었다. 산 중턱의 산장이 겨우 올려다 보이는 위치의 등산로 곁에 있던 오래 된 은행나무에 바로 네가 목을 매단 것이더구나. 나는 하늘이 노래지면서 아무 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사람들에 의해 끌어내려져 바닥에 천으로 덮혀 있던 너를 살펴 보는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는 생각을 했다. 두 눈은 퉁퉁 부은 채로, 흰자위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뻘겋게 피가 맺힌 채로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눈을 치켜 뜬 채로 세상을 버린 너의 마지막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너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그 은행나무를 그루터기만 남기고 베어 버렸지.’



나는 그제서야 어째서 나의 기억이 그 쉬어가던 그루터기에서 시작되었는지 짐작이 갔다. 아비는 이제 할말을 다 했는지 의자에 파묻혀 내내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미움도 느껴지질 않는다. 전혀 딴 사람의 기억처럼 들리는 아비의 고백은 나에게 충격은 줄 지언정,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내가 죽었기 때문 일까? 아비는 잠시 화장실에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로 가의 사람들, 아니 혼령들은 이제 뜨거운 난로의 온기 같은 것은 느껴지질 않는다. 이제는 자신들의 앞에 보이는 것들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보여지는 활동사진 같은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때, 산장의 문이 열리면서 배낭을 맨 젊은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를 보질 못한다.



““야, 내가 뭐랬냐? 저 뜨끈한 난로 봤지? 여기는 언제나 그 아저씨가 있다고 했잖아, 하마터면 눈 속에 얼어 죽을 뻔 했네. 어후, 몸 좀 녹히자. 아 참, 그것 보다도 난 화장실이 급해. 싸겠다, 싸겠어!””



무리들 중에서 제일 호들갑을 떠는 녀석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으…악…..사…사…사람살려! 사…사..사.…람이 목을…맸어……모두들… 와봐! 어서””



나는 역시 아무런 감동이 없다. 내 옆에는 내 아비가 벌써 내 어깨 위에 손을 얻고 내려다 보고 있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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