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콘트롤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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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3:15 조회 830회 댓글 0건본문
오랜만에 글 올려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제 1 부
‘엄마… 다녀왔…’
언제나처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경욱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끝 맺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종이 조각들과 마루바닥으로 된 거실위에 수 없이 찍힌 발자국들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경욱은 자신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으로는 눈 앞에 광경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줌마… 오늘까지는 된다며…’
순간 안방으로부터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경욱은 미친듯 안방쪽으로 달려가 조금 열려져 있는 방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위에 쓰러져 울고 있는 엄마와 그 앞에 한쪽 다리를 구둣발인 채 침대에 걸쳐 능글맞게 웃고 있는 낯선 사내를 보자 경욱은 한 두 걸음을 내달아 그대로 몸을 솟구치더니 이단옆차기로 사내의 턱을 정확히 가격하고는 사내가 침대옆으로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가뿐히 착지하자마자 연속동작으로 몸을 숙이며 돌려차기로 뒤에서 달려들던 또 다른 사내의 복부에 오른발을 깊숙히 찔러넣었다. 윽…하는 외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두번째 사내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보며 경욱은 재빨리 몸을 침대로 돌려 엄마의 손을 끌어 당기며 안방을 벗어나서는 곧바로 현관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현관을 향해 달리던 경욱은 등뒤에서 들리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순간 무언가 뒷머리를 강하게 부딪혀오는 느낌을 받으며 눈 앞이 하얗게 변해갔다.
삼년전, 경욱이 13살일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도 인자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다 천천히 멀어져가자 손을 뻗어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나 그리워하던 아버지인데… 아무말없이 멀어져가는 아버지가 야속하게 느꼈졌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경욱아 일어나… 아빠랑 운동가야지…’
다정한 목소리로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키려던 경욱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라니…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엄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뜨려고 했다. 그런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꾸러기… 그러면 아빠랑 엄마만 간다… 오랜만에 오붓하게 엄마, 아빠만 데이트해야지…’
도대체 무슨 말씀인 지, 어떻게 돌아가신 아빠랑 운동을 가자고 하시는건 지, 엄마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 지금 안일어나면 진짜 아빠랑 엄마만 간다…’
안돼요… 나도 가고 싶어… 나도 갈거야… 경욱은 마음속으로만 외칠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엄마는 벌써 나간것일까? 어느새 정적이 찾아왔고 경욱은 다시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경욱아… 얘가 왜 이렇게 잠만 자… 이제 그만 일어나… 빨리… 일어나…’
엄마가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경욱은 자신이 악몽을 꾼 것이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지만 또다시 무언가 자신의 사지를 누르고 있는 것 같이 꼼짝할 수 없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고 싶은데…
‘경욱아… 아빠야… 아빤 경욱이를 믿어… 사랑한다…’
아빠… 저도 사랑해요… 경욱은 몇 번의 경험으로 이제는 체념한 듯 더이상 몸을 움직이거나 눈을 억지로 뜨려는 노력을 포기한채 마음속으로 조용히 얘기했다.
‘못난 놈… 벌써 포기한게야? 억울하게 죽은 니 애비는 너만 믿고 있는데… 못난 놈!!!’
경욱은 자신의 눈 앞에 갑자기 웬 노인이 나타나 호통을 치자 흠칫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인은 누구지? 아빠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니… 무슨 소리지?’
‘이노~옴… 할애비 얼굴도 몰라봐?’
아… 제사때마다 보아온 사진의 낯익은 얼굴이 눈 앞에 들어오자 경욱은 그제서야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경욱이 다음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또다시 호통이 이어졌다.
‘니 애비는 지금 니 옆에 있는 장가놈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어. 이제 그만 일어나서 니 애비의 원통함을 풀어주거라…’
할아버지… 경욱이 무언가 더 얘기하려는 순간 또다시 눈 앞이 하얗게 변해갔다. 경욱은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무언가 더 얘기하려했고 갑자기 귀가 참을 수 없이 아파오더니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몽롱한 상태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엄청나게 큰소리로 귀를 때렸다.
‘어떻게 됐어?’
‘이미 서류가 변호사 손으로 넘어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 일을 그 따위로밖에 못해? 계집은?’
‘일본쪽에 손이 닿는 애들을 통해 일본으로 넘겼습니다.’
‘확인했어?’
‘네… 배가 떠나는 것까지 확인했답니다.’
‘그나저나 이 자식이 깨어나야 지지던 볶던 뭘 할텐데… 의사는 뭐래?’
‘뇌출혈이 심해 당분간 상태를 지켜봐야 겠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좀 어려울거 같다고…’
‘그러길래 애를 왜 이 지경으로 만들어… 그냥 조용히 서류만 받아오랬더니…’
경욱은 이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인가 기억을 더듬었다. 자꾸만 눈 앞이 하얗게 변하려는 것을 몇번이나 참아내며 드디어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알아냈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그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거 왜 이래? 야… 빨리 의사 데리고 와… 빨리…’
경욱은 머리맡에서 들리는 기계음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귀가 아파왔다. 그리고는 얼마되지 않아 눈이, 또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환청처럼 누군가 달려오는 구두소리가 들려오고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 지는게 느껴졌다. 갑자기 가슴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와 닿자 무거운 눈꺼풀을 조금씩 열며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떼어내려 오른손을 옮기려는데 무언가 물컹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러 시선들이 보였고 눈을 아래로 옮기자 들어올리던 자신의 오른손이 흰가운을 입은 어떤 여자의 가슴께에 가 있는게 보였다.
‘선생님 환자가 눈을 떴어요…’
여자의 입에서 흥분한 듯 고음의 소리가 귓가를 찢어질 듯 파고들자 경욱은 다시 눈앞이 하얗게 변하더니 눈이 감겨왔다. 눈을 부릅뜨며 참아보려 했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경욱이 다시 눈을 뜨며 누군가에 의해 꼭 쥐어져 있는 자신의 왼손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간이 침대에 걸터 앉아 상체를 자신의 침대에 엎드린 채 자신의 왼손을 꼭 쥐고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처음 눈을 떴을때와는 달리 병실에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욱은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인지 알고 싶어졌다. 간신히 왼쪽 손에 힘을 주며 쥐어져 있는 손을 빼내려하자 엎드려 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더니 경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욱아…’
아… 선우였구나. 그랬다. 선우였다. 그런데 왜 선우가 여기에… 경욱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선우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경욱의 눈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경욱아… 내가 보여…’
무슨 말인가 해보려 했지만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눈만 깜빡였다. 선우는 놀란 토끼처럼 눈이 커 지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어디론가 달려갔다. 얼마지나지 않아 갑자기 또 병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인듯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뒤이어 하얀 가운의 간호원과 선우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학생… 내가 보이나? 보여… 대답하기 힘들면 눈을 깜빡여봐…’
경욱이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의사는 무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경욱에게 주문했다.
‘학생… 손을 움직였다고 들었는데 다시 움직일 수 있겠나?’
경욱이 왼손에 힘을 주어 몇 번인가 쥐었다 폈다 하자 의사는 더욱 흥분한 듯 간호원에게 지시하면서 급히 병실밖으로 빠져나갔다.
‘김간호원 환자 바이탈 다시 체크해줘요… 난 CT촬영할 준비해 놓고 다시 환자 데리러 올테니…’
간호원이 경욱의 몸상태를 여기저기 살피는동안 경욱은 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그렁해진 선우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방울져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겨우 열 여섯, 경욱은 선우가 경욱을 사랑한다고 말했을때 그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라고 선우를 설득하면서도 내심 싫지 않았던 기억을 떠 올렸다. 자신을 향한 선우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체하며 지나온 날들이 머릿속을 지나가자 지금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들은 선우의 진심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선우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텐데…
‘김간호원 촬영실로 옮겨야 하니까 좀 도와줘요…’
어느새 들어왔는지 다시 그 의사가 들어와 경욱을 이동식 침대로 옮기고는 어디론가 급히 데려가기 시작했다. 따라 나서는 선우를 제지하는 간호원을 보며 경욱은 침대에 몸을 맡겼다.
검사를 받는 내내 경욱은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느덧 검사를 모두 마쳤는지 경욱은 다시 병실로 옮겨졌고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이미 밤이 되었음을 알수 있었다. 선우는 어디로 갔지? 선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검사를 받으며 점점 잃었던 감각들이 되살아 나고 있다고 느꼈던 건우의 팔에 무언가 따끔하고 찔러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곤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감은 눈위가 환해지는 것을 느끼며 경욱은 천천히 눈을 떴다. 열려진 커튼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형체에 초점을 맞추려고 애를 쓰던 경욱에게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욱아… 잘 잤어?’
무슨 말인가 내 뱉으려 했지만 결국 경욱은 입을 여는데 실패했다.
‘나 알아보겠어? 선우야…’
경욱은 대답대신 눈을 깜빡였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니가 안 깨어나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경욱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것인지…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 너무 알고 싶었으나 입을 열 수 없었기에 계속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선우가 무슨 말이라도 해 주겠지 하는 경욱의 기대는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서는 의사와 간호사에 의해 깨어져 버렸다.
‘의식은 돌아온 것 같은데 아직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돌아보며 말하는 의사의 어깨 넘어로 눈에 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장이사님… 돌아가신 경욱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로 경욱이 태어나기 전부터 20여년간을 같이 대성실업을 키워온 창업멤버이다. 물론 경욱의 아버지가 죽고나자 집안 살림만 하던 경욱 엄마를 대신해 현재까지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해오던 대주주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언제라고 딱히 말씀드릴수는 없습니다만, 의식이 돌아온 것은 확실한 이상 이대로 안정을 취하면서 얼마간만이라도 더 기다려보자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의식이 돌아온 것 만으로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의사인듯한 사람이 다시 고개를 돌려 경욱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경욱은 더이상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떻게 된 것인지 다시 한 번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의사와 장이사가 옆에서 뭐라고 언성을 높여가며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귀에서 웅웅거릴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점점 어지러워 지더니 이내 눈앞이 다시 하얗게 변해갔다.
경욱이 눈을 떴다가 또 무엇인가 기억해내려 노력하면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정신을 잃는 것을 반복한지도 어느덧 한달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잠깐씩이라도 하루에 한번은 꼭 들러 경욱을 보고가는 선우와 가끔씩 들리는 장이사 그리고 자신을 전담하는 지 매일 병실을 지키는 간호원, 그리고 의사… 모든것들이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하루하루가 그렇게 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경욱은 물끄러미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선우가 올 시간이군… 경욱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선우가 병실안으로 들어섰다.
‘안녕… 경욱아 잘 있었지? 오늘은 좀 어때?’
언제나처럼 눈만 껌뻑여 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은 토요일이야… 니가 이렇게 누워지내것도 4주째고… 의사선생님 말씀이 니가 아직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지만 의식이 있는 이상 널 포기하진 않을거래…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최대한 밝은 얼굴로 경욱에게 조잘대기 시작하는 선우를 보며 경욱은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마음속으로 미소를 짓는 자신을 생각했다.
‘참… 오늘은 우리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고 왔어… 그러는 편이 좋을거 같아서… 우리 엄마도 니가 다쳤다니까 걱정하시면서 잘 다녀오라고 하시더라… 이제까지 괜히 속였어…’
엄마… 엄마라구… 엄마는 어떻게 된거지… 경욱은 이제까지 기억해내려고 노력했던 그 무엇인가가 엄마였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모든 상황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디에 계실까? 점점 심해져가는 두통을 참아가며 자신이 이단옆차기를 날리던 상황, 그리고 엄마의 손목을 잡고 바깥으로 달려나가던 상황들이 마치 영화처럼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잠깐 손 좀 씻고 올께’
선우의 목소리가 오버랩이 되었다가는 사라지고 경욱은 한순간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게되자 심한 갈증을 느꼈다.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아 목이 탄다… 탁자위에 놓인 물병에 시선을 던지며 경욱은 어떻게든 일어나 저 물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목이 타 들어가 자신이 곧 죽을것만 같았다. 물… 물… 경욱은 그렇게 속으로 힘겹게 외치고 있었다. 순간 탁자위에 물병이 갑자기 경욱의 눈 앞으로 휘익 하고 날아들더니 눈 앞에서 멈추었다.
제 1 부
‘엄마… 다녀왔…’
언제나처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경욱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끝 맺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종이 조각들과 마루바닥으로 된 거실위에 수 없이 찍힌 발자국들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경욱은 자신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으로는 눈 앞에 광경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줌마… 오늘까지는 된다며…’
순간 안방으로부터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경욱은 미친듯 안방쪽으로 달려가 조금 열려져 있는 방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위에 쓰러져 울고 있는 엄마와 그 앞에 한쪽 다리를 구둣발인 채 침대에 걸쳐 능글맞게 웃고 있는 낯선 사내를 보자 경욱은 한 두 걸음을 내달아 그대로 몸을 솟구치더니 이단옆차기로 사내의 턱을 정확히 가격하고는 사내가 침대옆으로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가뿐히 착지하자마자 연속동작으로 몸을 숙이며 돌려차기로 뒤에서 달려들던 또 다른 사내의 복부에 오른발을 깊숙히 찔러넣었다. 윽…하는 외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두번째 사내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보며 경욱은 재빨리 몸을 침대로 돌려 엄마의 손을 끌어 당기며 안방을 벗어나서는 곧바로 현관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현관을 향해 달리던 경욱은 등뒤에서 들리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순간 무언가 뒷머리를 강하게 부딪혀오는 느낌을 받으며 눈 앞이 하얗게 변해갔다.
삼년전, 경욱이 13살일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도 인자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다 천천히 멀어져가자 손을 뻗어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나 그리워하던 아버지인데… 아무말없이 멀어져가는 아버지가 야속하게 느꼈졌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경욱아 일어나… 아빠랑 운동가야지…’
다정한 목소리로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키려던 경욱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라니…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엄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뜨려고 했다. 그런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꾸러기… 그러면 아빠랑 엄마만 간다… 오랜만에 오붓하게 엄마, 아빠만 데이트해야지…’
도대체 무슨 말씀인 지, 어떻게 돌아가신 아빠랑 운동을 가자고 하시는건 지, 엄마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 지금 안일어나면 진짜 아빠랑 엄마만 간다…’
안돼요… 나도 가고 싶어… 나도 갈거야… 경욱은 마음속으로만 외칠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엄마는 벌써 나간것일까? 어느새 정적이 찾아왔고 경욱은 다시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경욱아… 얘가 왜 이렇게 잠만 자… 이제 그만 일어나… 빨리… 일어나…’
엄마가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경욱은 자신이 악몽을 꾼 것이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지만 또다시 무언가 자신의 사지를 누르고 있는 것 같이 꼼짝할 수 없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고 싶은데…
‘경욱아… 아빠야… 아빤 경욱이를 믿어… 사랑한다…’
아빠… 저도 사랑해요… 경욱은 몇 번의 경험으로 이제는 체념한 듯 더이상 몸을 움직이거나 눈을 억지로 뜨려는 노력을 포기한채 마음속으로 조용히 얘기했다.
‘못난 놈… 벌써 포기한게야? 억울하게 죽은 니 애비는 너만 믿고 있는데… 못난 놈!!!’
경욱은 자신의 눈 앞에 갑자기 웬 노인이 나타나 호통을 치자 흠칫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인은 누구지? 아빠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니… 무슨 소리지?’
‘이노~옴… 할애비 얼굴도 몰라봐?’
아… 제사때마다 보아온 사진의 낯익은 얼굴이 눈 앞에 들어오자 경욱은 그제서야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경욱이 다음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또다시 호통이 이어졌다.
‘니 애비는 지금 니 옆에 있는 장가놈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어. 이제 그만 일어나서 니 애비의 원통함을 풀어주거라…’
할아버지… 경욱이 무언가 더 얘기하려는 순간 또다시 눈 앞이 하얗게 변해갔다. 경욱은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무언가 더 얘기하려했고 갑자기 귀가 참을 수 없이 아파오더니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몽롱한 상태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엄청나게 큰소리로 귀를 때렸다.
‘어떻게 됐어?’
‘이미 서류가 변호사 손으로 넘어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 일을 그 따위로밖에 못해? 계집은?’
‘일본쪽에 손이 닿는 애들을 통해 일본으로 넘겼습니다.’
‘확인했어?’
‘네… 배가 떠나는 것까지 확인했답니다.’
‘그나저나 이 자식이 깨어나야 지지던 볶던 뭘 할텐데… 의사는 뭐래?’
‘뇌출혈이 심해 당분간 상태를 지켜봐야 겠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좀 어려울거 같다고…’
‘그러길래 애를 왜 이 지경으로 만들어… 그냥 조용히 서류만 받아오랬더니…’
경욱은 이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인가 기억을 더듬었다. 자꾸만 눈 앞이 하얗게 변하려는 것을 몇번이나 참아내며 드디어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알아냈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그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거 왜 이래? 야… 빨리 의사 데리고 와… 빨리…’
경욱은 머리맡에서 들리는 기계음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귀가 아파왔다. 그리고는 얼마되지 않아 눈이, 또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환청처럼 누군가 달려오는 구두소리가 들려오고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 지는게 느껴졌다. 갑자기 가슴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와 닿자 무거운 눈꺼풀을 조금씩 열며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떼어내려 오른손을 옮기려는데 무언가 물컹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러 시선들이 보였고 눈을 아래로 옮기자 들어올리던 자신의 오른손이 흰가운을 입은 어떤 여자의 가슴께에 가 있는게 보였다.
‘선생님 환자가 눈을 떴어요…’
여자의 입에서 흥분한 듯 고음의 소리가 귓가를 찢어질 듯 파고들자 경욱은 다시 눈앞이 하얗게 변하더니 눈이 감겨왔다. 눈을 부릅뜨며 참아보려 했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경욱이 다시 눈을 뜨며 누군가에 의해 꼭 쥐어져 있는 자신의 왼손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간이 침대에 걸터 앉아 상체를 자신의 침대에 엎드린 채 자신의 왼손을 꼭 쥐고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처음 눈을 떴을때와는 달리 병실에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욱은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인지 알고 싶어졌다. 간신히 왼쪽 손에 힘을 주며 쥐어져 있는 손을 빼내려하자 엎드려 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더니 경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욱아…’
아… 선우였구나. 그랬다. 선우였다. 그런데 왜 선우가 여기에… 경욱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선우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경욱의 눈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경욱아… 내가 보여…’
무슨 말인가 해보려 했지만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눈만 깜빡였다. 선우는 놀란 토끼처럼 눈이 커 지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어디론가 달려갔다. 얼마지나지 않아 갑자기 또 병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인듯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뒤이어 하얀 가운의 간호원과 선우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학생… 내가 보이나? 보여… 대답하기 힘들면 눈을 깜빡여봐…’
경욱이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의사는 무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경욱에게 주문했다.
‘학생… 손을 움직였다고 들었는데 다시 움직일 수 있겠나?’
경욱이 왼손에 힘을 주어 몇 번인가 쥐었다 폈다 하자 의사는 더욱 흥분한 듯 간호원에게 지시하면서 급히 병실밖으로 빠져나갔다.
‘김간호원 환자 바이탈 다시 체크해줘요… 난 CT촬영할 준비해 놓고 다시 환자 데리러 올테니…’
간호원이 경욱의 몸상태를 여기저기 살피는동안 경욱은 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그렁해진 선우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방울져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겨우 열 여섯, 경욱은 선우가 경욱을 사랑한다고 말했을때 그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라고 선우를 설득하면서도 내심 싫지 않았던 기억을 떠 올렸다. 자신을 향한 선우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체하며 지나온 날들이 머릿속을 지나가자 지금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들은 선우의 진심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선우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텐데…
‘김간호원 촬영실로 옮겨야 하니까 좀 도와줘요…’
어느새 들어왔는지 다시 그 의사가 들어와 경욱을 이동식 침대로 옮기고는 어디론가 급히 데려가기 시작했다. 따라 나서는 선우를 제지하는 간호원을 보며 경욱은 침대에 몸을 맡겼다.
검사를 받는 내내 경욱은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느덧 검사를 모두 마쳤는지 경욱은 다시 병실로 옮겨졌고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이미 밤이 되었음을 알수 있었다. 선우는 어디로 갔지? 선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검사를 받으며 점점 잃었던 감각들이 되살아 나고 있다고 느꼈던 건우의 팔에 무언가 따끔하고 찔러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곤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감은 눈위가 환해지는 것을 느끼며 경욱은 천천히 눈을 떴다. 열려진 커튼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형체에 초점을 맞추려고 애를 쓰던 경욱에게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욱아… 잘 잤어?’
무슨 말인가 내 뱉으려 했지만 결국 경욱은 입을 여는데 실패했다.
‘나 알아보겠어? 선우야…’
경욱은 대답대신 눈을 깜빡였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니가 안 깨어나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경욱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것인지…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 너무 알고 싶었으나 입을 열 수 없었기에 계속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선우가 무슨 말이라도 해 주겠지 하는 경욱의 기대는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서는 의사와 간호사에 의해 깨어져 버렸다.
‘의식은 돌아온 것 같은데 아직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돌아보며 말하는 의사의 어깨 넘어로 눈에 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장이사님… 돌아가신 경욱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로 경욱이 태어나기 전부터 20여년간을 같이 대성실업을 키워온 창업멤버이다. 물론 경욱의 아버지가 죽고나자 집안 살림만 하던 경욱 엄마를 대신해 현재까지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해오던 대주주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언제라고 딱히 말씀드릴수는 없습니다만, 의식이 돌아온 것은 확실한 이상 이대로 안정을 취하면서 얼마간만이라도 더 기다려보자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의식이 돌아온 것 만으로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의사인듯한 사람이 다시 고개를 돌려 경욱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경욱은 더이상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떻게 된 것인지 다시 한 번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의사와 장이사가 옆에서 뭐라고 언성을 높여가며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귀에서 웅웅거릴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점점 어지러워 지더니 이내 눈앞이 다시 하얗게 변해갔다.
경욱이 눈을 떴다가 또 무엇인가 기억해내려 노력하면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정신을 잃는 것을 반복한지도 어느덧 한달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잠깐씩이라도 하루에 한번은 꼭 들러 경욱을 보고가는 선우와 가끔씩 들리는 장이사 그리고 자신을 전담하는 지 매일 병실을 지키는 간호원, 그리고 의사… 모든것들이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하루하루가 그렇게 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경욱은 물끄러미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선우가 올 시간이군… 경욱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선우가 병실안으로 들어섰다.
‘안녕… 경욱아 잘 있었지? 오늘은 좀 어때?’
언제나처럼 눈만 껌뻑여 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은 토요일이야… 니가 이렇게 누워지내것도 4주째고… 의사선생님 말씀이 니가 아직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지만 의식이 있는 이상 널 포기하진 않을거래…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최대한 밝은 얼굴로 경욱에게 조잘대기 시작하는 선우를 보며 경욱은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마음속으로 미소를 짓는 자신을 생각했다.
‘참… 오늘은 우리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고 왔어… 그러는 편이 좋을거 같아서… 우리 엄마도 니가 다쳤다니까 걱정하시면서 잘 다녀오라고 하시더라… 이제까지 괜히 속였어…’
엄마… 엄마라구… 엄마는 어떻게 된거지… 경욱은 이제까지 기억해내려고 노력했던 그 무엇인가가 엄마였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모든 상황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디에 계실까? 점점 심해져가는 두통을 참아가며 자신이 이단옆차기를 날리던 상황, 그리고 엄마의 손목을 잡고 바깥으로 달려나가던 상황들이 마치 영화처럼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잠깐 손 좀 씻고 올께’
선우의 목소리가 오버랩이 되었다가는 사라지고 경욱은 한순간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게되자 심한 갈증을 느꼈다.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아 목이 탄다… 탁자위에 놓인 물병에 시선을 던지며 경욱은 어떻게든 일어나 저 물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목이 타 들어가 자신이 곧 죽을것만 같았다. 물… 물… 경욱은 그렇게 속으로 힘겹게 외치고 있었다. 순간 탁자위에 물병이 갑자기 경욱의 눈 앞으로 휘익 하고 날아들더니 눈 앞에서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