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시리즈(5)철새 남매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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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3:50 조회 1,363회 댓글 0건본문
남매 시리즈-5( 철새 남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 남매가 남매인줄 모른다.
우리는 전국의 축제만 찾아다닌다.
전주<국제영화제> 고성<공룡나라 축제> 충북 음성의<품바 축제>경주의 <한국의 술과 떡 잔치>
제주의<왕 벚꽃 축제>기장의 <기장멸치 축제> 담양의<대나무 축제>함평의<함평 나비 대 축제>
밀양의<아랑제> 김해의<가락문화제> 고양의<꽃 전시회> 영월의<단종 문화제> 하동의<화개장터
벚꽃 축제> 부산<광안리의 어방 축제> 영암의<왕인 문화제> 영덕<강구의 대게 축제> 진해<군항제>
무슨 축제가 그리 많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놀라자 마시라.
위에 열거를 한 각종 축제는 3월에서 5월 사이에 벌어지는 축제 중에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이 좁은 땅 덩어리에 무슨 축제가 그리도 많은지..........
하긴 우리 남매는 이 축제로 인하여 먹고 살지만...........
나는 나의 하나 뿐인 혈육인 누나와 함께 전국의 축제를 전전하며 히파리 혹은 바람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누나?
솔직히 누나가 이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만 누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누나보다 겨우 2분 늦게 세상을 봤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불과 2분 차이에 누구는 누나가 되고 누구는 동생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서양에서는 엄마 자궁에 먼저 착상이 된 것을 기준으로 하기에 뒤에 나온 사람이 형이 되고 누나오빠가 된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세상에 나온 사람이 오빠요 누나며 형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그런 관습에 사로잡힌 것을 나 하나의 목소리로 바로 잡기에는 힘들 것이니 그 부분은 일단 접고 우리 남매의 이야기를 하겠다.
우리 남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여도 우리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는 가족이었다.
아빠는 비록 월급쟁이였고 엄마는 살림만 살았지만 아빠의 벌이만으로도 우리 가정은 행복하였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졸엄을 하기 얼마 전에 아빠는 공장에서 그만 산재사고로 돌아가셨다.
거기부터 우리 가정은 점점 이상한 길로 갔다.
엄마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우리 남매가 중학교 2학년이 되든 해의 초봄부터
우리는 엄마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아저씨와 도망을 갔다고 하였다.
그러자 우리는 시골의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할머니 밑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에 우리는 남매만 남게 되었다.
우리를 보살펴 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살아생전에는 삼촌 고모들이 할머니에게 약간의 생활비를 도움을 주셨기에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과 함께 우리 세 명이 먹고 사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삼촌 고모들의
도움은 없어지고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우리 두 남매가 먹고 살기에는 너무나 턱 없이 부족하였다.
누나는 시골생활을 치우고 죽든 살든 우리가 살던 도회지로 나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시골 할머니 집을 정리하였다.(할 것 말 것도 없었지만......)
거기에는 삼촌도 살고 고모들도 살았기에 어쩌면 살 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처음에 찾아가면 반갑게 대하다가도 몇 칠 계속 머물면 눈칫밥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다시 고모 집으로 갔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삼촌이나 고모 역시 같았다.
누나와 난 한길로 나오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를 한 우리 남매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물론 누나의 경우 여자라고 술집이나 이상한 곳에서 일을 하라고 하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동생이 나와 떨어 질 수 없다고 하였고 그러면 그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가진 돈이 다 떨어져 건물 계단 밑이나 옥상에서 잠을 자야하였고 하루에 한 끼 라면도 감지덕지하며
먹어야 할 지경에 이르자 누나는 나보고는 공부를 하라고 하며 자기는 그런 일자리에서 일을 해 보겠다고 하였다.
난 그런 곳이 몸을 팔고 웃음을 파는 곳이란 것을 알고 격렬하게 반대를 하였고 누나도 나의 뜻에 따라 주었다.
그러던 중에 나이트클럽에서 손님을 데리고 오면 돈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남매는 부근의 건물 옥상에서 숨어 기거를 하면서 나이트클럽 손님을 유치하기 시작을 하였다.
겨우 끼니 걱정은 면 할 수가 있었으나 잠자리는 해결이 안 되어 남의 건물 옥상을 전전하며 잠자리를 해결하여야 하였다.
그러다가 우리가 손님을 데리고 가는 나이트클럽의 기도가 우리에게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으며 홀에서 자라고 하였다.
별을 보며 잠을 자야 하였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아방궁이 따로 없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잠을 자지 시작을 하고 이틀이 지난 날 새벽에 영업을 마친 나이트클럽의 소파에 누나와 난 각각 자리를 잡고 누었다.
그 나이트클럽의 기도나 누나를 구석 진 곳으로 불렀다.
“아~악 싫어요, 싫어! 석진아 누나 살려줘”누나의 비명에 놀라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기도 놈이 누나의 몸을 짓누르고 바지를 벗기려 하였다.
손에 잡히는 것으로 놈의 뒤통수를 갈기고 나는 누나를 데리고 나이트클럽에서 간신히 나 올 수가 있었다.
이제 그 도시에서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기도란 놈은 주먹세계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그들 손에 잡히면 우리 남매는 뼈도 못 추릴 것이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몇 푼 모아둔 돈을 경비로 부산으로 왔다.
철이 여름이라 해수욕장으로 갔고 거기서 우리 남매는 술집이고 민박집의 손님을 유치하는 소위 히빠리를 시작하였다.
벌이도 쏠쏠하였고 거기다가 소득이 하나 있었다.
그건 피서객이 버렸는지 아니면 무슨 일로 그냥 두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별을 안 보고 잠을 잘 수 있는 텐트 하나가 우리 손에 들어 온 것이었다.
거기다가 덤으로 코펠이며 버너 침낭 등도 그대로 있었다.
누나는 나에게 자전거만 하나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난 그게 무슨 말인 줄도 모르고 자전거가 고물상 리어카에 실려 가기만 하며 봤다.
누나의 말처럼 적당한 자전거 두 대를 거의 고물 값에 샀다.
그리고 자전거 열쇄도 샀고 바닷가에 텐트를 칠 만 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고는 일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텐트를 걷어 자전거에 나누어 싣고 민박집 마당 한쪽에 두고 손님을 끌어들였다.
그 일도 여름 한 철 뿐이었다.
다시 누나와 나는 앞이 막막하였다.
누나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정처 없이 달렸다.
밥이 되자 빈터에 텐트를 치고 또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하였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밤이며 추웠다.
하나 뿐인 침낭은 누나에게 주고 맨땅에 누웠다.
“석진아 안 춥니?”누나가 물었다.
“아니 괜찮아”하고 대답은 하였지만 나는 떨고 움츠리고 있었다.
“석진아 침낭 안에 들어와”누나가 떨고 있던 나의 팔을 당겼다.
“아니야 그냥 자”하며 버텼다.
“아이고 덜덜덜”새벽에는 더 추워서 잠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석진아 지금이라도 들어와”누나가 나의 떠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는지 다시 팔을 당기며 말을 하였다.
“애라 모르겠다. 누나 그럼 잠시 실례”도저히 추위를 참을 길이 없어 누나의 침낭 안으로 들어가야 하였다.
좁디좁은 침낭 안에선 누나의 따스한 살결이 그대로 느껴지며 갑자기 누나의 향기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 이르렀다.
누나는 내가 추워서 그런 것으로 알았던지 나를 품안에 안았고 나의 얼굴을 따스한 젖가슴을 느끼기 시작을 하더니
이내 좆이 발기가 되고 말자 나는 나도 모르게 누나의 젖가슴에 손이 갔으나 누나는 나의 손을 거부하자 않았다.
“석진아 흑”누나는 오히려 묘한 신음을 하며 뜨거운 입김을 나에게 토하였다.
그러자 나는 나도 모르게 누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었고 누나는 그런 나의 입술을 거부를 안 하고 빨았다.
안심이 된 나는 욕정이 더 살아났고 나의 손은 겁도 없이 누나의 티 안으로 들어가 낡아 빠진
누나의 부라 안으로 들어가 누나의 젖가슴을 주무르게 되었으나 누나는 거부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손을 밑으로 내려
나의 바지 지퍼를 열고 손을 넣더니 좆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며 나의 입술을 계속 빨았다.
나의 손도 누나의 바지 지퍼를 내렸고 손을 바지 안으로 넣고 누나의 보지 둔덕을 팬티 위로 쓰다듬었다.
“석진아 나 죽겠어 참을 수가 없어 어떻게 하니?”누나가 입술에서 입술을 때며 물었다.
침낭의 지퍼를 활짝 열었다.
그렇게 춥게 느껴만 지건 새벽이었지만 하나도 춥지 않게 느껴졌다.
난 누나의 바지 혁대를 풀고 팬티와 함께 내렸다.
누나는 두 손으로 얼굴만 감싸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누나의 옷을 벗기자 나도 아랫도리를 알몸으로 만들고 누나 몸 위에 올라타고 조심스럽게 다시 침낭의 지퍼를 올리며
좆으로 누나의 따스한 보지 둔덕 감촉을 즐기고 있자 누나는 내가 자기 몸에서 떨어지지 못 하게 두 말로 나의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지퍼를 다 올리고 난 다시 누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었다.
누나가 우리 둘의 몸만 나온 침낭 밖으로 팔을 꺼내 나의 목을 감았다.
난 손을 밑으로 내렸다.
부드러운 누나의 보지 털이 손에 닿았다.
그러나 누나의 보지 털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난 나의 좆을 잡고 누나의 보지 금사이로 살며시 넣고 눌렀다.
“아니야 거 밑에.....”여자의 보지에 좆을 박아 보기는커녕 구경도 못 한 나에게 누나는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밑으로 조금 이동을 시키자 좆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거기야 거기”누나가 나의 얼굴을 외면하고 말을 하였다.
“누나 해 봤어?”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아니 살살 해”누나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응 누나”난 천천히 진입을 시켰다.
“우~~~~~”누나는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많이 아파”넣기를 중단하고 그대로 있으며 물었다.
“참을게 넣어”누나의 목소리는 비장함 그 자체였다.
조금 더 넣었다.
뭔가가 막았다.
그러나 나의 좆을 내 느낌으로 겨우 끝 부분만 들어간 느낌이었다.
“악!”더 힘을 주자 누나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나의 좆은 전체에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많이 아파?”난 걱정스러운 눈으로 누나의 눈물로 얼룩이 진 얼굴을 보며 물었다.
“흑흑흑 괜찮아 이렇게 떠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작자에게 당 할지 모르는데 너에게 먼저 줘 버려 괜찮아 흑흑흑”누나가 울면서 말을 하였다.
“흑흑흑 누나 사랑해 흑흑흑”나도 울면서 우리를 버리고 간 엄마를 원망하였다.
“흑흑흑 그만 울고 어서 해 날이 새면 사람들 올지 몰라”누나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외면을 하였다.
난 그 말에 천천히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지만 나의 몸은 본능에 충실하였다.
누나는 그런 나의 몸놀림에 무척이나 아픈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계속 눈물을 흘리며 외면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누나의 보지는 빡빡하고 뜨거웠다.
난 아주 빠르게 몸을 놀렸다.
누나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외면을 하고 있었다.
“누나 아기는?”막바지에 이르자 임신이란 단어가 떠오르자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
“오늘은 안전 해 안에 싸”누나가 말을 하였다.
그리고 누나의 손이 침낭 안으로 들어갔고 누나가 내 엉덩이를 힘주어 당겼다.
난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아~더 아파”누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하였을 때는 나의 분신이 누나의 보지 안으로 꿈틀대며 들어가고 있는
모양인지 자위를 할 때 좆 물이 나오듯이 누나의 보지 안에 박힌 나의 좆이 스스로 꿈틀대고 있었다.
“됐어? 아님 더 할 거야?”누나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더 해도 돼?”나는 침낭 안에서 손을 빼 누나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이제 내 몸은 석진에 네 것이니 묻지 말고 네 마음대로 해”누나가 웃으며 말을 하였다.
“저...정말이야?”놀라며 묻자
“응 이렇게 됐는데 이제 어떡하니?”누나가 침낭 안에서 손을 빼어 내 볼을 쓰다듬었다.
“누나 고마워”하고 눈물을 흘리자
“바보 울기는 참 이제 누나라고 하지 마”누나가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하였다.
“그럼?”놀라며 천천히 하체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친남매 간에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욕을 할 거야 그러니 이제 난 자기라고 부를게 넌 내 이름을 불러”
누나는 나의 하체를 흔드는 몸놀림에 통증이 다시 오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힘들게 말을 하였다.
“그래도 돼? 누나”하고 묻자
“또 누나래? 다시”누나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렸지만 웃으려고 하였다.
“석희야 내 석희야”난 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누나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포개었다.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던 누나도 두 팔로 나의 목을 끌어안고 혀를 내 입안으로 넣어주었다.
난 누나의 혀를 게걸스럽게 빨면서 하체를 움직였다.
하룻밤 사이에 누나는 누나에서 나의 여자로 변하였고 석희로 변하였다.
전에는 내가 어쩌다가 화가 나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기라도 할라 치면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던 누나가 말이다.
그런 누나가 나의 자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힘차게 하체를 흔들어대자 난 나의 분신이 누나의 보지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누나는 누나가 아닌 나의 자기로 변한 사실을 실감을 할 수가 있었고 그 실감은 더 힘을 나게 만들어주었고
그로 인하여 누나의 여린 보지 안에 박힌 나의 분신은 있는 힘을 다하여 누나 아니 석희의 보지 안에서 움직였다.
두 번째 좆 물을 누나의 보지 안에 뿌렸을 때는 텐트 박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누나의 보지에서 좆을 빼고 밑을 봤을 때는 누나의 보지며 나의 좆에는
누나가 처녀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붉은 피가 떡칠을 하고 있었고 난 휴지로 대충 좆에 묻은
피와 좆 물을 닦고 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가 물수건에 물을 묻혀서 텐트 안으로 들어와 누나의 보지를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누나가 냇가로 세수를 하러 가자 난 냄비에 물을 끓여 라면을 끓였고 우리 남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정하게 라면을 먹고 내가 텐트를 개는 사이에 누나는 다시 냇가로 가서 식기를 설거지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 축제를 하고 있었다.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누나에게 자전거를 지키게 하고 국밥을 팔고 있는 곳으로 가 할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국밥집 아주머니는 한참을 보더니 손님을 데리고 오면 한 명당 얼마간의 돈을 주겠다고 하였다.
난 누나 아니 석희를 데리고 와 함께 국밥집 앞에서 오고가는 축제에 온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 국밥집 말고도 몇 개의 국밥집이 있었지만 누나 아니 석희와 내가 히빠리를 해 주던 그 국밥집은 의자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석희와 난 두툼한 돈을 국밥집 아주머니에게 받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자기들은 지방의 축제를 전전하며 국밥집을 한다고 하면서 다음 행사는 어디어디에서 하는데 올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난 그 아주머니에게 애인과 의논을 하여 보겠다고 하며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국밥집 아주머니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였고 우리 남매는 모처럼 뜨거운 국물에 뜨거운 밥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다.
또 그뿐이 아니었다.
두툼한 돈을 받은 덕에 우리 남매는 텐트가 아닌 따스한 여관 온돌방서 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벌거숭이가 되어 목욕을 하며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었다.
그 눈물을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새로운 돈벌이를 찾은 감격의 눈물이었다.
모처럼의 상쾌한 목욕을 마치자 우리는 방으로 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자기야 해 줘?”누나가 나의 품에 안기며 말을 하였다.
아니 이제 누나가 아니었다.
“괜찮겠어? 누나”나도 모르게 누나란 호칭이 나왔다.
“자기 누나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누나가 나의 볼을 꼬집으며 말을 하였다.
“아차차 누나 나 실수”하고 말을 하였으나 나는 또 누나라고 부르고 말았다.
“그래도 또! 또!”누나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아야 안 그럴게 석희야 아파”난 누나의 몸 위로 올라가며 말을 하였다.
“그래 앞으로 그렇게 부르지 마”누나가 나의 목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응 석희야”난 자연스럽게 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분신을 누나 보지 안에 넣었다.
“아~”누나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많이 아파?”동작을 멈추고 물었다.
“어제 아니 새벽보다는 덜 해”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난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아프면 말 해”그렇게 말을 하며 새벽에 너무 엉겁결에 일어난 일이라 만지지도 못 하였던 누나의 젖가슴을 만졌다.
누나 역시 안정을 찾았는지 나의 가슴을 만졌다.
빠구리를 그도 나와 친남매인 누나와 해서가 아니라 누나가 나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 때야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누나도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천천히 엉덩이를 흔들었다.
흥분이 더 되었다.
난 더 힘차게 찍어 돌렸다.
겨우 세 번째 빠구리였지만 이미 난 빠구리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나 아니 석희야 좋아?”난 누나의 보지 안에 나의 분신을 뿌리며 물었다.
“아직은 하지만 앞으로 좋아지겠지? 안 그래 자기야?”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그래 석희야 이 마음 영원히 변하지 말고 함께 하자”난 하체를 밀착을 시키며 누나의 가슴을 주물렀다.
“그래 자기야 저 세상에 가신 아빠나 할머니도 우릴 이해하실 거야 그치?”누나의 눈에는 또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래 내 사랑 석희야 이제 자자 내일 또 손님 불러 모아야지?”난 누나의 몸에서 내려와 나란히 누우며 말을 하였다.
“자기야 나도 자길 사랑해 이제 자자”누나는 나의 팔을 베개로 삼으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이 방이 새면 우리 남매는 다시 국밥집으로 가서 호객을 할 것이고 따스한 밥이며 돈을 벌 것이고
내일 밤에도 추위에 떨며 텐트 안에서 새우잠을 자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축제의 장소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비록 남들이 알면 손가락질을 할 친남매간의 근친상간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갈구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난 우리 남매에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더럽고 못 된 짓만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남매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탓이냐고!
잘은 몰라도 분명히 사화 탓이요 당신들 탓인걸 알라고...........
우리 남매는 앞으로도 철새처럼 축제를 전전하며 살며 즐길 것이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 남매가 남매인줄 모른다.
우리는 전국의 축제만 찾아다닌다.
전주<국제영화제> 고성<공룡나라 축제> 충북 음성의<품바 축제>경주의 <한국의 술과 떡 잔치>
제주의<왕 벚꽃 축제>기장의 <기장멸치 축제> 담양의<대나무 축제>함평의<함평 나비 대 축제>
밀양의<아랑제> 김해의<가락문화제> 고양의<꽃 전시회> 영월의<단종 문화제> 하동의<화개장터
벚꽃 축제> 부산<광안리의 어방 축제> 영암의<왕인 문화제> 영덕<강구의 대게 축제> 진해<군항제>
무슨 축제가 그리 많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놀라자 마시라.
위에 열거를 한 각종 축제는 3월에서 5월 사이에 벌어지는 축제 중에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이 좁은 땅 덩어리에 무슨 축제가 그리도 많은지..........
하긴 우리 남매는 이 축제로 인하여 먹고 살지만...........
나는 나의 하나 뿐인 혈육인 누나와 함께 전국의 축제를 전전하며 히파리 혹은 바람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누나?
솔직히 누나가 이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만 누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누나보다 겨우 2분 늦게 세상을 봤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불과 2분 차이에 누구는 누나가 되고 누구는 동생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서양에서는 엄마 자궁에 먼저 착상이 된 것을 기준으로 하기에 뒤에 나온 사람이 형이 되고 누나오빠가 된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세상에 나온 사람이 오빠요 누나며 형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그런 관습에 사로잡힌 것을 나 하나의 목소리로 바로 잡기에는 힘들 것이니 그 부분은 일단 접고 우리 남매의 이야기를 하겠다.
우리 남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여도 우리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는 가족이었다.
아빠는 비록 월급쟁이였고 엄마는 살림만 살았지만 아빠의 벌이만으로도 우리 가정은 행복하였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졸엄을 하기 얼마 전에 아빠는 공장에서 그만 산재사고로 돌아가셨다.
거기부터 우리 가정은 점점 이상한 길로 갔다.
엄마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우리 남매가 중학교 2학년이 되든 해의 초봄부터
우리는 엄마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아저씨와 도망을 갔다고 하였다.
그러자 우리는 시골의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할머니 밑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에 우리는 남매만 남게 되었다.
우리를 보살펴 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살아생전에는 삼촌 고모들이 할머니에게 약간의 생활비를 도움을 주셨기에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과 함께 우리 세 명이 먹고 사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삼촌 고모들의
도움은 없어지고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우리 두 남매가 먹고 살기에는 너무나 턱 없이 부족하였다.
누나는 시골생활을 치우고 죽든 살든 우리가 살던 도회지로 나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시골 할머니 집을 정리하였다.(할 것 말 것도 없었지만......)
거기에는 삼촌도 살고 고모들도 살았기에 어쩌면 살 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처음에 찾아가면 반갑게 대하다가도 몇 칠 계속 머물면 눈칫밥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다시 고모 집으로 갔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삼촌이나 고모 역시 같았다.
누나와 난 한길로 나오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를 한 우리 남매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물론 누나의 경우 여자라고 술집이나 이상한 곳에서 일을 하라고 하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동생이 나와 떨어 질 수 없다고 하였고 그러면 그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가진 돈이 다 떨어져 건물 계단 밑이나 옥상에서 잠을 자야하였고 하루에 한 끼 라면도 감지덕지하며
먹어야 할 지경에 이르자 누나는 나보고는 공부를 하라고 하며 자기는 그런 일자리에서 일을 해 보겠다고 하였다.
난 그런 곳이 몸을 팔고 웃음을 파는 곳이란 것을 알고 격렬하게 반대를 하였고 누나도 나의 뜻에 따라 주었다.
그러던 중에 나이트클럽에서 손님을 데리고 오면 돈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남매는 부근의 건물 옥상에서 숨어 기거를 하면서 나이트클럽 손님을 유치하기 시작을 하였다.
겨우 끼니 걱정은 면 할 수가 있었으나 잠자리는 해결이 안 되어 남의 건물 옥상을 전전하며 잠자리를 해결하여야 하였다.
그러다가 우리가 손님을 데리고 가는 나이트클럽의 기도가 우리에게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으며 홀에서 자라고 하였다.
별을 보며 잠을 자야 하였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아방궁이 따로 없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잠을 자지 시작을 하고 이틀이 지난 날 새벽에 영업을 마친 나이트클럽의 소파에 누나와 난 각각 자리를 잡고 누었다.
그 나이트클럽의 기도나 누나를 구석 진 곳으로 불렀다.
“아~악 싫어요, 싫어! 석진아 누나 살려줘”누나의 비명에 놀라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기도 놈이 누나의 몸을 짓누르고 바지를 벗기려 하였다.
손에 잡히는 것으로 놈의 뒤통수를 갈기고 나는 누나를 데리고 나이트클럽에서 간신히 나 올 수가 있었다.
이제 그 도시에서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기도란 놈은 주먹세계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그들 손에 잡히면 우리 남매는 뼈도 못 추릴 것이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몇 푼 모아둔 돈을 경비로 부산으로 왔다.
철이 여름이라 해수욕장으로 갔고 거기서 우리 남매는 술집이고 민박집의 손님을 유치하는 소위 히빠리를 시작하였다.
벌이도 쏠쏠하였고 거기다가 소득이 하나 있었다.
그건 피서객이 버렸는지 아니면 무슨 일로 그냥 두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별을 안 보고 잠을 잘 수 있는 텐트 하나가 우리 손에 들어 온 것이었다.
거기다가 덤으로 코펠이며 버너 침낭 등도 그대로 있었다.
누나는 나에게 자전거만 하나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난 그게 무슨 말인 줄도 모르고 자전거가 고물상 리어카에 실려 가기만 하며 봤다.
누나의 말처럼 적당한 자전거 두 대를 거의 고물 값에 샀다.
그리고 자전거 열쇄도 샀고 바닷가에 텐트를 칠 만 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고는 일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텐트를 걷어 자전거에 나누어 싣고 민박집 마당 한쪽에 두고 손님을 끌어들였다.
그 일도 여름 한 철 뿐이었다.
다시 누나와 나는 앞이 막막하였다.
누나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정처 없이 달렸다.
밥이 되자 빈터에 텐트를 치고 또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하였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밤이며 추웠다.
하나 뿐인 침낭은 누나에게 주고 맨땅에 누웠다.
“석진아 안 춥니?”누나가 물었다.
“아니 괜찮아”하고 대답은 하였지만 나는 떨고 움츠리고 있었다.
“석진아 침낭 안에 들어와”누나가 떨고 있던 나의 팔을 당겼다.
“아니야 그냥 자”하며 버텼다.
“아이고 덜덜덜”새벽에는 더 추워서 잠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석진아 지금이라도 들어와”누나가 나의 떠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는지 다시 팔을 당기며 말을 하였다.
“애라 모르겠다. 누나 그럼 잠시 실례”도저히 추위를 참을 길이 없어 누나의 침낭 안으로 들어가야 하였다.
좁디좁은 침낭 안에선 누나의 따스한 살결이 그대로 느껴지며 갑자기 누나의 향기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 이르렀다.
누나는 내가 추워서 그런 것으로 알았던지 나를 품안에 안았고 나의 얼굴을 따스한 젖가슴을 느끼기 시작을 하더니
이내 좆이 발기가 되고 말자 나는 나도 모르게 누나의 젖가슴에 손이 갔으나 누나는 나의 손을 거부하자 않았다.
“석진아 흑”누나는 오히려 묘한 신음을 하며 뜨거운 입김을 나에게 토하였다.
그러자 나는 나도 모르게 누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었고 누나는 그런 나의 입술을 거부를 안 하고 빨았다.
안심이 된 나는 욕정이 더 살아났고 나의 손은 겁도 없이 누나의 티 안으로 들어가 낡아 빠진
누나의 부라 안으로 들어가 누나의 젖가슴을 주무르게 되었으나 누나는 거부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손을 밑으로 내려
나의 바지 지퍼를 열고 손을 넣더니 좆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며 나의 입술을 계속 빨았다.
나의 손도 누나의 바지 지퍼를 내렸고 손을 바지 안으로 넣고 누나의 보지 둔덕을 팬티 위로 쓰다듬었다.
“석진아 나 죽겠어 참을 수가 없어 어떻게 하니?”누나가 입술에서 입술을 때며 물었다.
침낭의 지퍼를 활짝 열었다.
그렇게 춥게 느껴만 지건 새벽이었지만 하나도 춥지 않게 느껴졌다.
난 누나의 바지 혁대를 풀고 팬티와 함께 내렸다.
누나는 두 손으로 얼굴만 감싸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누나의 옷을 벗기자 나도 아랫도리를 알몸으로 만들고 누나 몸 위에 올라타고 조심스럽게 다시 침낭의 지퍼를 올리며
좆으로 누나의 따스한 보지 둔덕 감촉을 즐기고 있자 누나는 내가 자기 몸에서 떨어지지 못 하게 두 말로 나의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지퍼를 다 올리고 난 다시 누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었다.
누나가 우리 둘의 몸만 나온 침낭 밖으로 팔을 꺼내 나의 목을 감았다.
난 손을 밑으로 내렸다.
부드러운 누나의 보지 털이 손에 닿았다.
그러나 누나의 보지 털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난 나의 좆을 잡고 누나의 보지 금사이로 살며시 넣고 눌렀다.
“아니야 거 밑에.....”여자의 보지에 좆을 박아 보기는커녕 구경도 못 한 나에게 누나는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밑으로 조금 이동을 시키자 좆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거기야 거기”누나가 나의 얼굴을 외면하고 말을 하였다.
“누나 해 봤어?”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아니 살살 해”누나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응 누나”난 천천히 진입을 시켰다.
“우~~~~~”누나는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많이 아파”넣기를 중단하고 그대로 있으며 물었다.
“참을게 넣어”누나의 목소리는 비장함 그 자체였다.
조금 더 넣었다.
뭔가가 막았다.
그러나 나의 좆을 내 느낌으로 겨우 끝 부분만 들어간 느낌이었다.
“악!”더 힘을 주자 누나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나의 좆은 전체에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많이 아파?”난 걱정스러운 눈으로 누나의 눈물로 얼룩이 진 얼굴을 보며 물었다.
“흑흑흑 괜찮아 이렇게 떠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작자에게 당 할지 모르는데 너에게 먼저 줘 버려 괜찮아 흑흑흑”누나가 울면서 말을 하였다.
“흑흑흑 누나 사랑해 흑흑흑”나도 울면서 우리를 버리고 간 엄마를 원망하였다.
“흑흑흑 그만 울고 어서 해 날이 새면 사람들 올지 몰라”누나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외면을 하였다.
난 그 말에 천천히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지만 나의 몸은 본능에 충실하였다.
누나는 그런 나의 몸놀림에 무척이나 아픈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계속 눈물을 흘리며 외면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누나의 보지는 빡빡하고 뜨거웠다.
난 아주 빠르게 몸을 놀렸다.
누나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외면을 하고 있었다.
“누나 아기는?”막바지에 이르자 임신이란 단어가 떠오르자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
“오늘은 안전 해 안에 싸”누나가 말을 하였다.
그리고 누나의 손이 침낭 안으로 들어갔고 누나가 내 엉덩이를 힘주어 당겼다.
난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아~더 아파”누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하였을 때는 나의 분신이 누나의 보지 안으로 꿈틀대며 들어가고 있는
모양인지 자위를 할 때 좆 물이 나오듯이 누나의 보지 안에 박힌 나의 좆이 스스로 꿈틀대고 있었다.
“됐어? 아님 더 할 거야?”누나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더 해도 돼?”나는 침낭 안에서 손을 빼 누나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이제 내 몸은 석진에 네 것이니 묻지 말고 네 마음대로 해”누나가 웃으며 말을 하였다.
“저...정말이야?”놀라며 묻자
“응 이렇게 됐는데 이제 어떡하니?”누나가 침낭 안에서 손을 빼어 내 볼을 쓰다듬었다.
“누나 고마워”하고 눈물을 흘리자
“바보 울기는 참 이제 누나라고 하지 마”누나가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하였다.
“그럼?”놀라며 천천히 하체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친남매 간에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욕을 할 거야 그러니 이제 난 자기라고 부를게 넌 내 이름을 불러”
누나는 나의 하체를 흔드는 몸놀림에 통증이 다시 오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힘들게 말을 하였다.
“그래도 돼? 누나”하고 묻자
“또 누나래? 다시”누나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렸지만 웃으려고 하였다.
“석희야 내 석희야”난 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누나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포개었다.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던 누나도 두 팔로 나의 목을 끌어안고 혀를 내 입안으로 넣어주었다.
난 누나의 혀를 게걸스럽게 빨면서 하체를 움직였다.
하룻밤 사이에 누나는 누나에서 나의 여자로 변하였고 석희로 변하였다.
전에는 내가 어쩌다가 화가 나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기라도 할라 치면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던 누나가 말이다.
그런 누나가 나의 자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힘차게 하체를 흔들어대자 난 나의 분신이 누나의 보지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누나는 누나가 아닌 나의 자기로 변한 사실을 실감을 할 수가 있었고 그 실감은 더 힘을 나게 만들어주었고
그로 인하여 누나의 여린 보지 안에 박힌 나의 분신은 있는 힘을 다하여 누나 아니 석희의 보지 안에서 움직였다.
두 번째 좆 물을 누나의 보지 안에 뿌렸을 때는 텐트 박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누나의 보지에서 좆을 빼고 밑을 봤을 때는 누나의 보지며 나의 좆에는
누나가 처녀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붉은 피가 떡칠을 하고 있었고 난 휴지로 대충 좆에 묻은
피와 좆 물을 닦고 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가 물수건에 물을 묻혀서 텐트 안으로 들어와 누나의 보지를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누나가 냇가로 세수를 하러 가자 난 냄비에 물을 끓여 라면을 끓였고 우리 남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정하게 라면을 먹고 내가 텐트를 개는 사이에 누나는 다시 냇가로 가서 식기를 설거지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 축제를 하고 있었다.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누나에게 자전거를 지키게 하고 국밥을 팔고 있는 곳으로 가 할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국밥집 아주머니는 한참을 보더니 손님을 데리고 오면 한 명당 얼마간의 돈을 주겠다고 하였다.
난 누나 아니 석희를 데리고 와 함께 국밥집 앞에서 오고가는 축제에 온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 국밥집 말고도 몇 개의 국밥집이 있었지만 누나 아니 석희와 내가 히빠리를 해 주던 그 국밥집은 의자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석희와 난 두툼한 돈을 국밥집 아주머니에게 받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자기들은 지방의 축제를 전전하며 국밥집을 한다고 하면서 다음 행사는 어디어디에서 하는데 올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난 그 아주머니에게 애인과 의논을 하여 보겠다고 하며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국밥집 아주머니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였고 우리 남매는 모처럼 뜨거운 국물에 뜨거운 밥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다.
또 그뿐이 아니었다.
두툼한 돈을 받은 덕에 우리 남매는 텐트가 아닌 따스한 여관 온돌방서 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벌거숭이가 되어 목욕을 하며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었다.
그 눈물을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새로운 돈벌이를 찾은 감격의 눈물이었다.
모처럼의 상쾌한 목욕을 마치자 우리는 방으로 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자기야 해 줘?”누나가 나의 품에 안기며 말을 하였다.
아니 이제 누나가 아니었다.
“괜찮겠어? 누나”나도 모르게 누나란 호칭이 나왔다.
“자기 누나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누나가 나의 볼을 꼬집으며 말을 하였다.
“아차차 누나 나 실수”하고 말을 하였으나 나는 또 누나라고 부르고 말았다.
“그래도 또! 또!”누나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아야 안 그럴게 석희야 아파”난 누나의 몸 위로 올라가며 말을 하였다.
“그래 앞으로 그렇게 부르지 마”누나가 나의 목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응 석희야”난 자연스럽게 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분신을 누나 보지 안에 넣었다.
“아~”누나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많이 아파?”동작을 멈추고 물었다.
“어제 아니 새벽보다는 덜 해”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난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을 하였다.
“아프면 말 해”그렇게 말을 하며 새벽에 너무 엉겁결에 일어난 일이라 만지지도 못 하였던 누나의 젖가슴을 만졌다.
누나 역시 안정을 찾았는지 나의 가슴을 만졌다.
빠구리를 그도 나와 친남매인 누나와 해서가 아니라 누나가 나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 때야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누나도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천천히 엉덩이를 흔들었다.
흥분이 더 되었다.
난 더 힘차게 찍어 돌렸다.
겨우 세 번째 빠구리였지만 이미 난 빠구리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나 아니 석희야 좋아?”난 누나의 보지 안에 나의 분신을 뿌리며 물었다.
“아직은 하지만 앞으로 좋아지겠지? 안 그래 자기야?”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그래 석희야 이 마음 영원히 변하지 말고 함께 하자”난 하체를 밀착을 시키며 누나의 가슴을 주물렀다.
“그래 자기야 저 세상에 가신 아빠나 할머니도 우릴 이해하실 거야 그치?”누나의 눈에는 또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래 내 사랑 석희야 이제 자자 내일 또 손님 불러 모아야지?”난 누나의 몸에서 내려와 나란히 누우며 말을 하였다.
“자기야 나도 자길 사랑해 이제 자자”누나는 나의 팔을 베개로 삼으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이 방이 새면 우리 남매는 다시 국밥집으로 가서 호객을 할 것이고 따스한 밥이며 돈을 벌 것이고
내일 밤에도 추위에 떨며 텐트 안에서 새우잠을 자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축제의 장소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비록 남들이 알면 손가락질을 할 친남매간의 근친상간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갈구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난 우리 남매에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더럽고 못 된 짓만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남매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탓이냐고!
잘은 몰라도 분명히 사화 탓이요 당신들 탓인걸 알라고...........
우리 남매는 앞으로도 철새처럼 축제를 전전하며 살며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