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대신에 물받이가 되어 준 의붓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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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3:19 조회 2,990회 댓글 0건본문
참 나란 놈은 지지리도 처복은 없는 놈이다.
최소한 작년 9월 전까지는...........
내 나이 이제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지만 나를 스쳐 지나간 여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 많은 여자들의 공통점이라면 나에게서 돈만 긁어내고 도망을 갔다는 점이고 또 같이 살면서도 관계는 하였지만
하나같이 임신을 거부하여 이제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씁쓸하게 슬하에 자식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긴 얼마 전까지는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호칭이 바뀌어 자기라고 부르기에 나를 이제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나의 인생 편력을 잠시 짚고 넘어 가려고 한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처음으로 결혼을 하였다.
26에 만나 그저 즐기던 사이였는데 그 여자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난 25살이 되든 해에 부모님이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도중에 돌아가셨고 졸지에 가장이 되어
남동생과 단 둘이 살아야 하였지만 다행이 부모님의 보험과 부모님이 저축을 해 둔 제법 많은 돈
그리고 건물과 부모님 역시 할아버지에게 상속을 받은 막대한 토지를 가졌기에 겨우 25살이었지만
남들이 재벌이라고 부를 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었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부탁을 하여도 들어 줄 정도인
그녀의 부모님은 한 8천만 원은 나에겐 남극대륙의 아주 큰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었기에
선뜻 도움을 주자 처갓집에서는 무조건 결혼을 하라고 하여 결혼을 하였지만 막상 결혼을 하자
아내는 돈에 팔려온 몸이라고 하며 자기 부모님만 원망하며 거의 매일을 술독에 빠져 살더니
1년도 넘기지를 못 하고 이혼을 해 달라고 하여 어쩔 방법이 없이 얼마간의 위자료를 주고 이혼을 하여야 하였다.
이렇게 나의 첫 결혼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재벌소리를 듣는 나에게 많은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다시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 여자는 결혼을 하자마자 돈을 밝히기 시작을 하며 부부 관계는 아예 뒷전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몇 만원이면 충분할 물건을 사 와서는 몇 백을 준 명품이라고 하며 돈을 요구하였다.
처음엔 몇 번 거절을 하였다.
그러자 자기가 싫은 것이 아니냐며 투정을 부리자 나는 할 수없이 돈을 주기 시작을 하였다.
일 년 반 동안 그 여자는 나의 주머니에서 물경 이 억 정도의 돈을 빼나간 후에 이혼을 요구하였고 위자료로 일억을 요구하였다.
또 한 번의 쓰라린 이혼을 하여야 하였다.
동생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고 잘 사는데 나는 두 번의 결혼을 하고도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제수씨가 나의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읽고 살아보다가 결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난 제수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다시 한 여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가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다만 한 가지 임신을 천천히 하자는 것이었다.
가정적인 생활을 하기에 믿고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일 년이 지나자 헤어질 것을 요구하였다.
그럼 헤어지자고 하였다.
그러자 일 년을 함께 살았으면 사실혼 관계이니 위자료를 달라고 하였다.
또 한 여자에게 속은 것이었다.
하지만 일 억 정도 줘 봐야 나에게 별 것이 아니기에 주고 헤어졌다.
세 여자에게 도움을 주고 뜯기고 위자료로 제법 많은 돈을 줬지만 나의 재산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아니하였다.
난 다른 사업은 일체 손을 안 대었다.
빌딩 몇 개를 가진 것에서 나오는 월세만 하여도 한 달이면 기천만원이 족히 넘어 그 정도의
지출은 나의 통장에서 별로 표도 안 났고 오히려 자리 좋은 소위 노른자위 땅만 점점 더 늘어가는 지경이었다.
동생?
물론 동생에게도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의 40%를 분배 해 주었다.
동생 역시 나처럼 사업은 안 하고 임대업을 하면서 자신의 소유인 건물 관리만 하였다.
동생은 제수씨와 살면서 내조를 잘 받아 내가 세 여자와 결별을 하였을 때는 나와 막상막하의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나도 착실한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여 동생처럼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부를 더 축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여자에게 돈만 뜯기자 제수씨는 더 혼인을 못 하게 말렸다.
나에게는 많은 여자들이 구름처럼 따라 다녔다.
친구들 말처럼 내가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여자가 따랐으니 말이다.
난 일단 제수씨의 충언처럼 엔조이 수준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즐겼지 혼인은커녕 동거도 안 하였다.
그러나 정에 약한 나는 여자들이 우는 소리만 하면 마음이 약해져 주머니를 열어야하였다.
대게 오 육회만 만나면 여자들은 하나같이 손을 벌렸다.
안쓰러운 마음에서 주머니를 열어 돈을 주면 그 다음 날로 그 여자는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삶 자체가 허무하였다.
그러나 그런 삶은 서른다섯이 되던 해에 까지도 변함없이 계속 되었다.
동생의 재산은 나의 재산을 추월한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였다.
난 처음 동생과 재산을 분배를 할 당시에 비하여 약간 늘었지만 동생은 거의 곱절에 가까운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슬하에 아이도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둬서 제수씨는 자기의 큰아들이나
작은아들 중에 하나를 나에게 양자로 줄 생각이니 후사는 아무 염려 말라고 하면서 마음껏 쓰고 싶은 만큼
돈을 쓰며 엔조이만 하지 적당한 여자를 만나기 전에는 혼인은 물론 동거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서른다섯이 되던 해에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몇 번 만났으나 돈 이야기는 아예 하질 않았다.
심성도 아주 착하였다.
다만 흠이라면 딸아일 혼자 몸으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과 또 이겐 임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왕지사 제수씨가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하였다.
난 제수씨와 상의를 하였다.
딸아이를 둔 여자이니 돈에 미쳐 나의 주머니를 노리며 살진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제수씨가 그 여자를 만났다.
제수씨는 믿을 만한 여자로 보였다며 같이 살지 혼인신고는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다.
제수씨의 충언에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에 난 제수씨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나는 나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예쁜 딸을 둔 아빠가 되었다.
걔가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중학교 2학년이 된 때까지도 마누라는 지극정성으로 살림을 해 주었다.
걔가 3학년에 올라갈 즈음에 그녀가 갑자기 딸을 부탁한다는 쪽지와 딸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졸지에 피라고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이를 내가 맡아 키워야 하였다.
그녀의 소지품 남은 것을 뒤졌다.
그녀는 나와 동거를 하면서 시장을 보고 남은 돈이며 아이의 학자금이며 용돈으로 준 돈 중에 일부며
살림살이 비용을 준 것의 일부를 야금야금 모아 저축을 한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발견이 되었다.
그 정도의 돈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이 해방을 시켜 달라고 하면 안 시켜줄 내가 아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혹인 아이를
나의 혹으로 만들어 버리고 도주를 해 버린 파렴치한 더러운 행동에 분노가 극에 달하였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아이를 피라고 한 방울도 안 섞인 관계이니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만한 것이 제수씨였다.
제수씨에게 상의를 하였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참을 웃더니 동생과 함께 집으로 왔다.
엄마가 도망을 간 것을 아는 아이를 제수씨는 달래었고 난 동생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래 움을 받아야 하였다.
그러더니 제수씨가 갑자기 나의 생년월일을 묻더니 잠시 다녀온다고 하며 나갔다.
한 시간이 지나자 제수씨에게서 동생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나에게 걔의 생년월일과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파렴치하게 자기의 딸아이를 나에게 맡기고 도망을 가면서 남긴 쪽지에 걔의 생년월일과 시가
적혔던 것을 기억하고 휴지통에 버렸던 그 쪽지를 다시 찾아 제수씨에게 불러주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하고 기다리기만 하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자 난 동생과 계속 술을 마셔야 하였다.
한참 후 제수씨가 아주 들뜬 표정으로 나타나더니 철학관에서 나의 사주를 대었더니 나의 과거 여자 편력은
불행한 삶의 연속이었고 걔는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할 업보를 가졌고 걔 사주 역시 나와 함께할 업보를 가진 팔자라고 하는 말만 하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지만 내가 키워야 할 업보를 가졌다기에 어쩔 방법이 없이 난 걔를 키우기 시작을 하였다.
걔는 내가 밖으로 돌며 다른 여자들과 엔조이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간섭은 전혀 안 하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빨래도 하며 투정 한 번 안 부리고 나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자기 엄마가
나에게 지은 죄를 사죄하는 마음이려니 하고 무관심하게 살면서 걔는 중학교 3학년을 마치게 되었다.
졸업을 엄마 안 두고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
무슨 말이냐고 하였더니 고등학교 진학 문제라고 하였다.
난 당연히 대학을 가려면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 한다며 인문계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걔는 여상에 가겠다고 하였다.
난 대학은 물론 원하면 해외유학까지도 보내 줄 것이니 아무 염려 말고 인문계로 가라고 설득을 하였다.
하지만 걔는 한사코 여상을 고집하였다.
걔와 나 사이에 한랭전선이 흘렀다.
몇 칠 후 제수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걔가 원하는 대로 해 주라는 것이었다.
제수씨의 말을 듣고 손해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어쩔 방법이 없이 걔의 여상 진학을 허용하였다.
여상에 진학을 하여서는 단 한 번도 선두를 안 뺏기고 항상 우등생이었다.
그 흔한 학원에 보내 달라고 안 하여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호출을 한다기에 무슨 사고를 치지 않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나를 보자고 한 것은 담임선생님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가 생긴 이래로 처음으로 최고의 명문대학을 넘볼 수 있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하며 3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급을 할 것이며
어떤 요구도 다 들어 줄 것이니 제발 인문계고등학교로 전학만은 안 보낸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무슨 사고를 친 것이 아닌지 걱정을 하고 달려간 학교에서 그도 교장선생님이 나의 손을 잡고 간청을 하자
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나도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무엇인가 걔가 다녔다는 흔적을 남기게 하고 싶다고 하자
교장성생님은 무척 놀라워하며 걔가 자기네 학교를 졸업하여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을 하면
그 자체가 최고의 흔적이라고 하였지만 난 그 자리에서 한사코 성큼 수표로 10억을 기부하며
걔 이름으로 장학 재단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을 하였더니 갑자기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교장실에서 나갔다.
잠시 후 학교 전체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아이들이 한 곳으로 몰려가는 것이 교장실에서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교장선생님과 몇 분의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을 학교 강당이었다.
강당에는 모든 아이들이 무슨 일인지 몰라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고 나 역시 왜 거기로 안내를 받아 가야 하였는지를 몰라 우물쭈물하였다.
교장선생님이 단상으로 올라가더니 걔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단상에 오르는 걔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의 얼굴과 교장선생님의 얼굴만 번갈아 봤다.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단상으로 안내를 하였다.
교장선생님이 만면의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나의 딸아이가 대학에 진학을 할 때까지 계속 자기 학교에 다니기로 하였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겨우 그 일로 모이게 한 것이냐며 불만에 찬 얼굴로 변하며 야유를 하였다.
졸지에 나와 걔는 당황하였다.
그 순간 교장선생님이 야유를 하는 학생들을 항하여 두 손을 올려 자제를 시키고 계속 말을 이었다.
대학에 가고 싶어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여상을 진학을 한 학생들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걔 아버지인 내가 장학기금으로
무려 거액인 10억을 쾌척하게 걔 이름의 장학재단을 설립을 해 달라고 하였다고 하자 아이들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을 하더니
걔 이름을 연호하였고 여기저기서 감격의 울을 소리가 들리자 교장선생님이 나를 마이크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마이크를 넘겼다.
솔직히 돈이 많았지만 진정으로 쓸 곳에는 안 쓰고 엔조이하기 위하여 돈을 마치 물처럼 쓰든 나에게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난 간단하게 걔와 친하게 지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말만 하였다.
옆에서 나의 말을 듣는 걔의 얼굴에는 마치 닭똥 같은 눈물이 마구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조금 모이면 걔 이름으로 만든 장학재단에 돈을 기부하였다.
걔가 이학년 말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을 하였다.
학교에도 비상이 걸렸고 나도 비상이 걸렸다.
나는 의논을 할 상대라고는 제수씨뿐이었다.
제수씨는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니 아무 염려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역시 나의 구세주는 제수씨뿐이었다.
제수씨가 걔를 데리고 몇 번의 외출을 하기 시작을 하더니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제수씨가 걔를 데리고 여행을 잠시 다녀온다고 하더니 일주일 후에 왔다.
다시 성적을 원 상태로 올라갔다.
아니 더 열심히 공부만 하였다.
난 걔가 공부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지장이 주기 싫어 파출부까지 고용을 하였다.
걔는 단호하게 파출부 쓰는 것을 거부하였으나 이번에 역시 제수씨 도움으로 내가 이겨 파출부를 쓰는데 걔도 동의를 하였다.
걔는 잠자는 시간 말고는 책과 씨름을 하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펼치고 밥을 먹었다.
정말이지 극성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작년에 3학년이 되었다.
제법 숙녀티를 내었으나 책과의 씨름은 여전하였다.
그런데 초여름이 되자 나에게 알 듯 모를 듯 묘한 말을 하였다.
아빠하기에 따라서 대학을 가느냐마느냐는 달렸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수능시험 원서를 접수하기 바로 전날 발생을 하고 말았다.
저녁을 차려주고 파출부 아주머니가 가자 밥을 먹으며 원서를 나에게 내밀었다.
“야~우리 순아 결전의 시간이 온 모양이구나, 하하하 자신 있지?”원서를 보며 물었다.
“아빠 일단 밥을 먹고 이야기 해”하며 나의 물음에는 대답을 안 하였다.
머쓱해진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밥을 먹고 나의 방으로 갔다.
“아니 너 이게 뭐니?”한참 후 걔가 팬티와 부라만 한 채로 나의 방으로 그 문제의 원서를 들고 들어왔다.
“이제 이 원서 넣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아빠 하기에 달렸어”걔가 원서를 마치 찢을 기세로 말을 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니?”놀라며 묻자
“아빠 이젠 내가 아빠의 은혜에 보답을 할 시기야 날 받아주면 이 원서 접수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확 찢어지는 수가 있어, 어서 벗겨”나에게 다가와 아주 협박에 가까운 단호한 어조로 말을 하며 그 원서를 찢을 기세였다.
“아니 넌 내 딸이야 딸”하며 소리쳤다.
“흥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것이 어째 딸이야? 어서 날 가져 안 그러면 찢어”원서를 조금 당기며 찢었다.
“자.......잠깐 너희 숙모와 전화 잠시하고”핸드폰을 잡으며 만류를 하였다.
“좋아 어서 해”평소에 걔가 숙모라고 부르던 제수씨에게 전화를 하여 현제 사정을 말 하였다.
“하하하 시숙님 드디어 걔가 결단을 내린 모양이죠? 어쩌나 이제 내일부턴 조카라고 못 부르고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겠죠?
호호호 좋은 밤 되세요. 시숙님 축하해요, 호호호”제수씨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 끊었다.
“됐어요? 찢어 말아”걔가 다시 원서를 조금 찢으며 물었다.
“정말 후회 안 하겠니? 너희 엄마와 살을 붙이고 살았어도.......”하고 말을 흐리자
“그 년이 내 엄마야 화양 년이지”걔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그래도 놀 낳아준 엄마야”난 놀라며 말을 하였다.
“호호호 엄마? 나의 사전에 엄마란 단어는 없어 아빠 아니 자기란 단어밖엔 없어. 이젠 아빠가 아니라 자기야 어서 자기야 날 가져”
내 품에 안긴 걔의 눈에는 걔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을 한다는 사실을 말하였을 때 흘렸던
그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서 나의 파자마를 적시고 있었고 나는 마치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걔를 지그시 끌어안고 있었다.
걔의 손에서 찢기기를 기다리던 원서가 찢기지 않고 방바닥에 뒹굴기 시작을 한 것은 나의 입술이 걔 입술에 포개진 순간이었다.
원서를 찢으려던 걔의 두 팔은 나의 목에 있었다.
“정말 후회 안 하지?”침대로 안고 가며 다시 물었다.
“쉿!”걔는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또 한 손의 손가락을 내 입에 대며 웃었다.
그 전에는 난 단 한 번도 걔를 여자로 생각을 안 하였다.
보듬고 가면서는 여자로 보였다.
언제나 혼자 지내기에 쓸쓸하다고 생각을 하였던 침대 위에 눕혔다.
더럽게 많은 여자들과 엔조이만 하였던 내가 손을 대기에는 아까운 여자였다.
“어서 자기야 응”걔는 콧소리를 내며 두 팔을 벌렸다.
그러나 이미 나의 가운데 다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거부를 하기에는 한계를 넘은지 오래였다.
난 앙증맞은 팬티를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던 아주 깨끗한 보지가 나의 사야에 들어왔다.
“부끄러워 이것도”걔가 손바닥으로 보지를 가리며 브래지어를 가리키곤 등을 돌렸다.
“어서 자가야 어서”호크를 풀고 브래지어를 가슴에서 때내자 환하게 웃으며 다시 팔을 벌렸다.
“그.......그래”난 대답을 하며 파자마를 벗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발기가 된 나의 좆이 어서 저 해맑고 여린 보지에 쑤셔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자기야 나 처음이거든 살살 해 알았지?”내가 걔의 몸 위에 몸을 포개자 내 목에 매달리며 말을 하였다.
“................”할 말이 없었다.
돈 많은 재벌소리를 들으며 떵떵거리며 여러 계집들을 두루 섭렵하며 살았지만 여태껏 숫처녀를 경험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행여 나를 스쳐 지나갔던 많은 다른 여자들처럼
걔도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염려가 아무 말도 못 하게 나의 발목을 잡았다.
“아파 살살”그러나 이미 이성을 잃은 나의 좆을 걔의 보지 구멍을 잘도 찾았다.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엉덩이에 힘을 가하였다.
이미 끝난 것으로 알았던 닭똥 같이 굵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을 하였다.
빡빡 아니 겨우 나의 좆은 걔 보지 구멍으로 들어갔다.
젖가슴을 짚고 상체를 들어 밑을 봤다.
나의 더러운 좆이 들어가 걔의 보지 주변에는 걔가 걔 말처럼 아주 순결한 여자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빠와 딸에서 이상한 관계로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많이 아팠지?”나의 분신을 걔 몸 안에 뿌리고 물수건을 가져와 닦아주며 물었다.
“조금 자기야 이제 나 하고 약속을 해”다 닦아주자 일어나 앉더니 말을 하였다.
“첫째 나 대학에 입학을 하면 입학식 한 다음 날 결혼식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제 다른 여자 안 넘보는 것이며
셋째는 내가 재산이나 탐을 내거 자기에게 붙어먹은 여자라는 소리 듣기 싫으니 최소한 대학을 졸업을 할 때까지는
임신을 안 하기 때?”가랑이가 쓰라린지 간혹 눈을 가랑이 밑으로 두면서도 또박또박 할 말을 다 하였다.
“둘째 셋째는 이해가 되는데 결혼은.........”하고 말을 흐리자
“히히히 자기만 몰랐지? 숙모 아니 이제 뭐라고 불러야지? 연세가 나보다 많아 동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하여간
숙모도 알고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물론 친구들까지 내가 대학에 입학을 하면 자기하고 결혼식을 학교 강당에서
교장선생님 주례로 할 것인데, 호호호 자긴 정말 바보”걔는 그 말을 들으며 황당해 하는 나의 볼을 잡고 흔들며 웃었다.
“..................”할 말이 없었다.
“불쌍하고 더러운 생을 살다 간 엄마도 축복을 해 주겠지?”한참의 침묵을 깨고 걔가 다시 놀라운 말을 하렸다.
“뭐? 뭐라고?”놀라며 물었다.
“자긴 몰랐지? 우리 엄마 죽은 것”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어........언제? 어디서?”놀라며 물었다.
“자기에게 날 맡기고 도망을 가선 그 돈 흥청망청 쓰다가는 마약에 손을 댔고 약값을 구하려고
이 남자 저 남자 품에 안기며 살다가는 작년 연 말에 요양원에 입원을 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숙모하고 갔더니 이미 나를 못 알아 볼 정도로 폐인이 되어 있더니 숙모가 더 환경이 좋은 요양원으로 옮겨주었으나
한 달을 더 버티지 못 하고 죽었어.”걔는 아주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제수씨하고 여행을 간 것이 아니었네?”작년 년 말에 제수씨가 걔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며 집을 비운 것이 생각이 나 물었다.
“응 그때 죽어서 장례를 치러줬어.”아주 담담하게 말을 하며 눈물을 닦고 웃었다.
“아~그랬구나, 내가 알았으면.........”하고 말을 흐리자
“숙모님이 잘 해줬어 아니지 이제 뭐라고 부르지”하며 웃었다.
“딩동~딩동!”걔와 난 함께 나의 침대에서 끌어안고 잠을 잤는데 새벽같이 처임벨이 울려 놀라며 일어나자
“호호호 숙모가 벌써?”걔가 옷을 빨리 입으며 웃었다.
“뭐.......뭐라고?”놀라며 나도 옷을 입었다.
“누구세요?”걔가 매무새를 고치며 물었다.
“순아 아니지 형님 나야 나”제수씨 목소리가 분명하였다.
“형님 신혼초야가 어땠수?”뒤 따라 들어온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거 나만 모르고 당 한 것 아니야?”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자
“어머머 자기 뭐야? 당 했다고?”걔가 나의 팔을 꼬집으며 눈을 흘겼다.
“형수님 앞으로 우리 형님 잘 부탁드려요, 하하하”동생이 웃으며 걔를 형수라고 불렀다.
제수씨와 걔는 동생이 가지고 온 보따리를 주방으로 가지고 가 부산을 떨더니 아침을 거하게 차려주었다.
이틀 후 난 다시 교장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학교로 갔다.
교장선생님은 원칙으로 고등학생들이 학생 신분으로 성관계를 가지면 퇴학이지만 걔의 딱한 사연을 듣고
허락을 해 준 만큼 조심하여 대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대학 입학식 다음 날 학교 강당에서 결혼식을 하게 할 예정이니
허락을 해 달라고 하여 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리 준비를 한 2억이 든 봉투를 장학기금에 보태라고 하였다.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교정을 나서는데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보라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새신랑 절대 우리 순아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기 없기>순아의 교실로 보이는 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난 다짐을 하였다.
절대 전처럼 험하게 안 살며 순아에게 행복만을 주리라고........
그리고 순아는 교장선생님의 바램이요 나의 소망인 최고의 명문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고 입학식을 한 다음 날
예정대로 순아의 모교 강당에서 전교생들과 순아의 동기들 그리고 나의 일가친척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을 모시고
화려한 결혼식을 하였고 참석을 해 준 모든 이들에게 욕을 듣지 않을 정도의 피로연도 해 주었고
축의금으로 들어 온 돈은 전액 순아 이름의 장학재단에 기부를 하고 우리는 때늦은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다녀왔다.
“자기 너무 젊은 물받이를 색시로 뒀다고 부담을 가지면 미워 할 거야, 알지?”우리 순아는 입버릇처럼 자기를 나의 마지막 물받이라고 하며 좋아한다.
최소한 작년 9월 전까지는...........
내 나이 이제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지만 나를 스쳐 지나간 여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 많은 여자들의 공통점이라면 나에게서 돈만 긁어내고 도망을 갔다는 점이고 또 같이 살면서도 관계는 하였지만
하나같이 임신을 거부하여 이제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씁쓸하게 슬하에 자식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긴 얼마 전까지는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호칭이 바뀌어 자기라고 부르기에 나를 이제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나의 인생 편력을 잠시 짚고 넘어 가려고 한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처음으로 결혼을 하였다.
26에 만나 그저 즐기던 사이였는데 그 여자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난 25살이 되든 해에 부모님이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도중에 돌아가셨고 졸지에 가장이 되어
남동생과 단 둘이 살아야 하였지만 다행이 부모님의 보험과 부모님이 저축을 해 둔 제법 많은 돈
그리고 건물과 부모님 역시 할아버지에게 상속을 받은 막대한 토지를 가졌기에 겨우 25살이었지만
남들이 재벌이라고 부를 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었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부탁을 하여도 들어 줄 정도인
그녀의 부모님은 한 8천만 원은 나에겐 남극대륙의 아주 큰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었기에
선뜻 도움을 주자 처갓집에서는 무조건 결혼을 하라고 하여 결혼을 하였지만 막상 결혼을 하자
아내는 돈에 팔려온 몸이라고 하며 자기 부모님만 원망하며 거의 매일을 술독에 빠져 살더니
1년도 넘기지를 못 하고 이혼을 해 달라고 하여 어쩔 방법이 없이 얼마간의 위자료를 주고 이혼을 하여야 하였다.
이렇게 나의 첫 결혼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재벌소리를 듣는 나에게 많은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다시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 여자는 결혼을 하자마자 돈을 밝히기 시작을 하며 부부 관계는 아예 뒷전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몇 만원이면 충분할 물건을 사 와서는 몇 백을 준 명품이라고 하며 돈을 요구하였다.
처음엔 몇 번 거절을 하였다.
그러자 자기가 싫은 것이 아니냐며 투정을 부리자 나는 할 수없이 돈을 주기 시작을 하였다.
일 년 반 동안 그 여자는 나의 주머니에서 물경 이 억 정도의 돈을 빼나간 후에 이혼을 요구하였고 위자료로 일억을 요구하였다.
또 한 번의 쓰라린 이혼을 하여야 하였다.
동생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고 잘 사는데 나는 두 번의 결혼을 하고도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제수씨가 나의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읽고 살아보다가 결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난 제수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다시 한 여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가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다만 한 가지 임신을 천천히 하자는 것이었다.
가정적인 생활을 하기에 믿고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일 년이 지나자 헤어질 것을 요구하였다.
그럼 헤어지자고 하였다.
그러자 일 년을 함께 살았으면 사실혼 관계이니 위자료를 달라고 하였다.
또 한 여자에게 속은 것이었다.
하지만 일 억 정도 줘 봐야 나에게 별 것이 아니기에 주고 헤어졌다.
세 여자에게 도움을 주고 뜯기고 위자료로 제법 많은 돈을 줬지만 나의 재산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아니하였다.
난 다른 사업은 일체 손을 안 대었다.
빌딩 몇 개를 가진 것에서 나오는 월세만 하여도 한 달이면 기천만원이 족히 넘어 그 정도의
지출은 나의 통장에서 별로 표도 안 났고 오히려 자리 좋은 소위 노른자위 땅만 점점 더 늘어가는 지경이었다.
동생?
물론 동생에게도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의 40%를 분배 해 주었다.
동생 역시 나처럼 사업은 안 하고 임대업을 하면서 자신의 소유인 건물 관리만 하였다.
동생은 제수씨와 살면서 내조를 잘 받아 내가 세 여자와 결별을 하였을 때는 나와 막상막하의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나도 착실한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여 동생처럼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부를 더 축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여자에게 돈만 뜯기자 제수씨는 더 혼인을 못 하게 말렸다.
나에게는 많은 여자들이 구름처럼 따라 다녔다.
친구들 말처럼 내가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여자가 따랐으니 말이다.
난 일단 제수씨의 충언처럼 엔조이 수준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즐겼지 혼인은커녕 동거도 안 하였다.
그러나 정에 약한 나는 여자들이 우는 소리만 하면 마음이 약해져 주머니를 열어야하였다.
대게 오 육회만 만나면 여자들은 하나같이 손을 벌렸다.
안쓰러운 마음에서 주머니를 열어 돈을 주면 그 다음 날로 그 여자는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삶 자체가 허무하였다.
그러나 그런 삶은 서른다섯이 되던 해에 까지도 변함없이 계속 되었다.
동생의 재산은 나의 재산을 추월한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였다.
난 처음 동생과 재산을 분배를 할 당시에 비하여 약간 늘었지만 동생은 거의 곱절에 가까운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슬하에 아이도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둬서 제수씨는 자기의 큰아들이나
작은아들 중에 하나를 나에게 양자로 줄 생각이니 후사는 아무 염려 말라고 하면서 마음껏 쓰고 싶은 만큼
돈을 쓰며 엔조이만 하지 적당한 여자를 만나기 전에는 혼인은 물론 동거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서른다섯이 되던 해에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몇 번 만났으나 돈 이야기는 아예 하질 않았다.
심성도 아주 착하였다.
다만 흠이라면 딸아일 혼자 몸으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과 또 이겐 임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왕지사 제수씨가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하였다.
난 제수씨와 상의를 하였다.
딸아이를 둔 여자이니 돈에 미쳐 나의 주머니를 노리며 살진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제수씨가 그 여자를 만났다.
제수씨는 믿을 만한 여자로 보였다며 같이 살지 혼인신고는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다.
제수씨의 충언에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에 난 제수씨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나는 나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예쁜 딸을 둔 아빠가 되었다.
걔가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중학교 2학년이 된 때까지도 마누라는 지극정성으로 살림을 해 주었다.
걔가 3학년에 올라갈 즈음에 그녀가 갑자기 딸을 부탁한다는 쪽지와 딸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졸지에 피라고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이를 내가 맡아 키워야 하였다.
그녀의 소지품 남은 것을 뒤졌다.
그녀는 나와 동거를 하면서 시장을 보고 남은 돈이며 아이의 학자금이며 용돈으로 준 돈 중에 일부며
살림살이 비용을 준 것의 일부를 야금야금 모아 저축을 한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발견이 되었다.
그 정도의 돈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이 해방을 시켜 달라고 하면 안 시켜줄 내가 아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혹인 아이를
나의 혹으로 만들어 버리고 도주를 해 버린 파렴치한 더러운 행동에 분노가 극에 달하였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아이를 피라고 한 방울도 안 섞인 관계이니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만한 것이 제수씨였다.
제수씨에게 상의를 하였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참을 웃더니 동생과 함께 집으로 왔다.
엄마가 도망을 간 것을 아는 아이를 제수씨는 달래었고 난 동생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래 움을 받아야 하였다.
그러더니 제수씨가 갑자기 나의 생년월일을 묻더니 잠시 다녀온다고 하며 나갔다.
한 시간이 지나자 제수씨에게서 동생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나에게 걔의 생년월일과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파렴치하게 자기의 딸아이를 나에게 맡기고 도망을 가면서 남긴 쪽지에 걔의 생년월일과 시가
적혔던 것을 기억하고 휴지통에 버렸던 그 쪽지를 다시 찾아 제수씨에게 불러주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하고 기다리기만 하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자 난 동생과 계속 술을 마셔야 하였다.
한참 후 제수씨가 아주 들뜬 표정으로 나타나더니 철학관에서 나의 사주를 대었더니 나의 과거 여자 편력은
불행한 삶의 연속이었고 걔는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할 업보를 가졌고 걔 사주 역시 나와 함께할 업보를 가진 팔자라고 하는 말만 하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지만 내가 키워야 할 업보를 가졌다기에 어쩔 방법이 없이 난 걔를 키우기 시작을 하였다.
걔는 내가 밖으로 돌며 다른 여자들과 엔조이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간섭은 전혀 안 하고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빨래도 하며 투정 한 번 안 부리고 나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자기 엄마가
나에게 지은 죄를 사죄하는 마음이려니 하고 무관심하게 살면서 걔는 중학교 3학년을 마치게 되었다.
졸업을 엄마 안 두고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
무슨 말이냐고 하였더니 고등학교 진학 문제라고 하였다.
난 당연히 대학을 가려면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 한다며 인문계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걔는 여상에 가겠다고 하였다.
난 대학은 물론 원하면 해외유학까지도 보내 줄 것이니 아무 염려 말고 인문계로 가라고 설득을 하였다.
하지만 걔는 한사코 여상을 고집하였다.
걔와 나 사이에 한랭전선이 흘렀다.
몇 칠 후 제수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걔가 원하는 대로 해 주라는 것이었다.
제수씨의 말을 듣고 손해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어쩔 방법이 없이 걔의 여상 진학을 허용하였다.
여상에 진학을 하여서는 단 한 번도 선두를 안 뺏기고 항상 우등생이었다.
그 흔한 학원에 보내 달라고 안 하여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호출을 한다기에 무슨 사고를 치지 않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나를 보자고 한 것은 담임선생님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가 생긴 이래로 처음으로 최고의 명문대학을 넘볼 수 있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하며 3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급을 할 것이며
어떤 요구도 다 들어 줄 것이니 제발 인문계고등학교로 전학만은 안 보낸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무슨 사고를 친 것이 아닌지 걱정을 하고 달려간 학교에서 그도 교장선생님이 나의 손을 잡고 간청을 하자
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나도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무엇인가 걔가 다녔다는 흔적을 남기게 하고 싶다고 하자
교장성생님은 무척 놀라워하며 걔가 자기네 학교를 졸업하여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을 하면
그 자체가 최고의 흔적이라고 하였지만 난 그 자리에서 한사코 성큼 수표로 10억을 기부하며
걔 이름으로 장학 재단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을 하였더니 갑자기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교장실에서 나갔다.
잠시 후 학교 전체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아이들이 한 곳으로 몰려가는 것이 교장실에서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교장선생님과 몇 분의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을 학교 강당이었다.
강당에는 모든 아이들이 무슨 일인지 몰라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고 나 역시 왜 거기로 안내를 받아 가야 하였는지를 몰라 우물쭈물하였다.
교장선생님이 단상으로 올라가더니 걔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단상에 오르는 걔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의 얼굴과 교장선생님의 얼굴만 번갈아 봤다.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단상으로 안내를 하였다.
교장선생님이 만면의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나의 딸아이가 대학에 진학을 할 때까지 계속 자기 학교에 다니기로 하였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겨우 그 일로 모이게 한 것이냐며 불만에 찬 얼굴로 변하며 야유를 하였다.
졸지에 나와 걔는 당황하였다.
그 순간 교장선생님이 야유를 하는 학생들을 항하여 두 손을 올려 자제를 시키고 계속 말을 이었다.
대학에 가고 싶어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여상을 진학을 한 학생들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걔 아버지인 내가 장학기금으로
무려 거액인 10억을 쾌척하게 걔 이름의 장학재단을 설립을 해 달라고 하였다고 하자 아이들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을 하더니
걔 이름을 연호하였고 여기저기서 감격의 울을 소리가 들리자 교장선생님이 나를 마이크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마이크를 넘겼다.
솔직히 돈이 많았지만 진정으로 쓸 곳에는 안 쓰고 엔조이하기 위하여 돈을 마치 물처럼 쓰든 나에게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난 간단하게 걔와 친하게 지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말만 하였다.
옆에서 나의 말을 듣는 걔의 얼굴에는 마치 닭똥 같은 눈물이 마구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조금 모이면 걔 이름으로 만든 장학재단에 돈을 기부하였다.
걔가 이학년 말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을 하였다.
학교에도 비상이 걸렸고 나도 비상이 걸렸다.
나는 의논을 할 상대라고는 제수씨뿐이었다.
제수씨는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니 아무 염려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역시 나의 구세주는 제수씨뿐이었다.
제수씨가 걔를 데리고 몇 번의 외출을 하기 시작을 하더니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제수씨가 걔를 데리고 여행을 잠시 다녀온다고 하더니 일주일 후에 왔다.
다시 성적을 원 상태로 올라갔다.
아니 더 열심히 공부만 하였다.
난 걔가 공부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지장이 주기 싫어 파출부까지 고용을 하였다.
걔는 단호하게 파출부 쓰는 것을 거부하였으나 이번에 역시 제수씨 도움으로 내가 이겨 파출부를 쓰는데 걔도 동의를 하였다.
걔는 잠자는 시간 말고는 책과 씨름을 하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펼치고 밥을 먹었다.
정말이지 극성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작년에 3학년이 되었다.
제법 숙녀티를 내었으나 책과의 씨름은 여전하였다.
그런데 초여름이 되자 나에게 알 듯 모를 듯 묘한 말을 하였다.
아빠하기에 따라서 대학을 가느냐마느냐는 달렸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수능시험 원서를 접수하기 바로 전날 발생을 하고 말았다.
저녁을 차려주고 파출부 아주머니가 가자 밥을 먹으며 원서를 나에게 내밀었다.
“야~우리 순아 결전의 시간이 온 모양이구나, 하하하 자신 있지?”원서를 보며 물었다.
“아빠 일단 밥을 먹고 이야기 해”하며 나의 물음에는 대답을 안 하였다.
머쓱해진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밥을 먹고 나의 방으로 갔다.
“아니 너 이게 뭐니?”한참 후 걔가 팬티와 부라만 한 채로 나의 방으로 그 문제의 원서를 들고 들어왔다.
“이제 이 원서 넣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아빠 하기에 달렸어”걔가 원서를 마치 찢을 기세로 말을 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니?”놀라며 묻자
“아빠 이젠 내가 아빠의 은혜에 보답을 할 시기야 날 받아주면 이 원서 접수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확 찢어지는 수가 있어, 어서 벗겨”나에게 다가와 아주 협박에 가까운 단호한 어조로 말을 하며 그 원서를 찢을 기세였다.
“아니 넌 내 딸이야 딸”하며 소리쳤다.
“흥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것이 어째 딸이야? 어서 날 가져 안 그러면 찢어”원서를 조금 당기며 찢었다.
“자.......잠깐 너희 숙모와 전화 잠시하고”핸드폰을 잡으며 만류를 하였다.
“좋아 어서 해”평소에 걔가 숙모라고 부르던 제수씨에게 전화를 하여 현제 사정을 말 하였다.
“하하하 시숙님 드디어 걔가 결단을 내린 모양이죠? 어쩌나 이제 내일부턴 조카라고 못 부르고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겠죠?
호호호 좋은 밤 되세요. 시숙님 축하해요, 호호호”제수씨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 끊었다.
“됐어요? 찢어 말아”걔가 다시 원서를 조금 찢으며 물었다.
“정말 후회 안 하겠니? 너희 엄마와 살을 붙이고 살았어도.......”하고 말을 흐리자
“그 년이 내 엄마야 화양 년이지”걔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그래도 놀 낳아준 엄마야”난 놀라며 말을 하였다.
“호호호 엄마? 나의 사전에 엄마란 단어는 없어 아빠 아니 자기란 단어밖엔 없어. 이젠 아빠가 아니라 자기야 어서 자기야 날 가져”
내 품에 안긴 걔의 눈에는 걔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을 한다는 사실을 말하였을 때 흘렸던
그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서 나의 파자마를 적시고 있었고 나는 마치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걔를 지그시 끌어안고 있었다.
걔의 손에서 찢기기를 기다리던 원서가 찢기지 않고 방바닥에 뒹굴기 시작을 한 것은 나의 입술이 걔 입술에 포개진 순간이었다.
원서를 찢으려던 걔의 두 팔은 나의 목에 있었다.
“정말 후회 안 하지?”침대로 안고 가며 다시 물었다.
“쉿!”걔는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또 한 손의 손가락을 내 입에 대며 웃었다.
그 전에는 난 단 한 번도 걔를 여자로 생각을 안 하였다.
보듬고 가면서는 여자로 보였다.
언제나 혼자 지내기에 쓸쓸하다고 생각을 하였던 침대 위에 눕혔다.
더럽게 많은 여자들과 엔조이만 하였던 내가 손을 대기에는 아까운 여자였다.
“어서 자기야 응”걔는 콧소리를 내며 두 팔을 벌렸다.
그러나 이미 나의 가운데 다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거부를 하기에는 한계를 넘은지 오래였다.
난 앙증맞은 팬티를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던 아주 깨끗한 보지가 나의 사야에 들어왔다.
“부끄러워 이것도”걔가 손바닥으로 보지를 가리며 브래지어를 가리키곤 등을 돌렸다.
“어서 자가야 어서”호크를 풀고 브래지어를 가슴에서 때내자 환하게 웃으며 다시 팔을 벌렸다.
“그.......그래”난 대답을 하며 파자마를 벗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발기가 된 나의 좆이 어서 저 해맑고 여린 보지에 쑤셔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자기야 나 처음이거든 살살 해 알았지?”내가 걔의 몸 위에 몸을 포개자 내 목에 매달리며 말을 하였다.
“................”할 말이 없었다.
돈 많은 재벌소리를 들으며 떵떵거리며 여러 계집들을 두루 섭렵하며 살았지만 여태껏 숫처녀를 경험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행여 나를 스쳐 지나갔던 많은 다른 여자들처럼
걔도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염려가 아무 말도 못 하게 나의 발목을 잡았다.
“아파 살살”그러나 이미 이성을 잃은 나의 좆을 걔의 보지 구멍을 잘도 찾았다.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엉덩이에 힘을 가하였다.
이미 끝난 것으로 알았던 닭똥 같이 굵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을 하였다.
빡빡 아니 겨우 나의 좆은 걔 보지 구멍으로 들어갔다.
젖가슴을 짚고 상체를 들어 밑을 봤다.
나의 더러운 좆이 들어가 걔의 보지 주변에는 걔가 걔 말처럼 아주 순결한 여자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빠와 딸에서 이상한 관계로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많이 아팠지?”나의 분신을 걔 몸 안에 뿌리고 물수건을 가져와 닦아주며 물었다.
“조금 자기야 이제 나 하고 약속을 해”다 닦아주자 일어나 앉더니 말을 하였다.
“첫째 나 대학에 입학을 하면 입학식 한 다음 날 결혼식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제 다른 여자 안 넘보는 것이며
셋째는 내가 재산이나 탐을 내거 자기에게 붙어먹은 여자라는 소리 듣기 싫으니 최소한 대학을 졸업을 할 때까지는
임신을 안 하기 때?”가랑이가 쓰라린지 간혹 눈을 가랑이 밑으로 두면서도 또박또박 할 말을 다 하였다.
“둘째 셋째는 이해가 되는데 결혼은.........”하고 말을 흐리자
“히히히 자기만 몰랐지? 숙모 아니 이제 뭐라고 불러야지? 연세가 나보다 많아 동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하여간
숙모도 알고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물론 친구들까지 내가 대학에 입학을 하면 자기하고 결혼식을 학교 강당에서
교장선생님 주례로 할 것인데, 호호호 자긴 정말 바보”걔는 그 말을 들으며 황당해 하는 나의 볼을 잡고 흔들며 웃었다.
“..................”할 말이 없었다.
“불쌍하고 더러운 생을 살다 간 엄마도 축복을 해 주겠지?”한참의 침묵을 깨고 걔가 다시 놀라운 말을 하렸다.
“뭐? 뭐라고?”놀라며 물었다.
“자긴 몰랐지? 우리 엄마 죽은 것”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어........언제? 어디서?”놀라며 물었다.
“자기에게 날 맡기고 도망을 가선 그 돈 흥청망청 쓰다가는 마약에 손을 댔고 약값을 구하려고
이 남자 저 남자 품에 안기며 살다가는 작년 연 말에 요양원에 입원을 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숙모하고 갔더니 이미 나를 못 알아 볼 정도로 폐인이 되어 있더니 숙모가 더 환경이 좋은 요양원으로 옮겨주었으나
한 달을 더 버티지 못 하고 죽었어.”걔는 아주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제수씨하고 여행을 간 것이 아니었네?”작년 년 말에 제수씨가 걔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며 집을 비운 것이 생각이 나 물었다.
“응 그때 죽어서 장례를 치러줬어.”아주 담담하게 말을 하며 눈물을 닦고 웃었다.
“아~그랬구나, 내가 알았으면.........”하고 말을 흐리자
“숙모님이 잘 해줬어 아니지 이제 뭐라고 부르지”하며 웃었다.
“딩동~딩동!”걔와 난 함께 나의 침대에서 끌어안고 잠을 잤는데 새벽같이 처임벨이 울려 놀라며 일어나자
“호호호 숙모가 벌써?”걔가 옷을 빨리 입으며 웃었다.
“뭐.......뭐라고?”놀라며 나도 옷을 입었다.
“누구세요?”걔가 매무새를 고치며 물었다.
“순아 아니지 형님 나야 나”제수씨 목소리가 분명하였다.
“형님 신혼초야가 어땠수?”뒤 따라 들어온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거 나만 모르고 당 한 것 아니야?”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자
“어머머 자기 뭐야? 당 했다고?”걔가 나의 팔을 꼬집으며 눈을 흘겼다.
“형수님 앞으로 우리 형님 잘 부탁드려요, 하하하”동생이 웃으며 걔를 형수라고 불렀다.
제수씨와 걔는 동생이 가지고 온 보따리를 주방으로 가지고 가 부산을 떨더니 아침을 거하게 차려주었다.
이틀 후 난 다시 교장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학교로 갔다.
교장선생님은 원칙으로 고등학생들이 학생 신분으로 성관계를 가지면 퇴학이지만 걔의 딱한 사연을 듣고
허락을 해 준 만큼 조심하여 대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대학 입학식 다음 날 학교 강당에서 결혼식을 하게 할 예정이니
허락을 해 달라고 하여 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리 준비를 한 2억이 든 봉투를 장학기금에 보태라고 하였다.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교정을 나서는데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보라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새신랑 절대 우리 순아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기 없기>순아의 교실로 보이는 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난 다짐을 하였다.
절대 전처럼 험하게 안 살며 순아에게 행복만을 주리라고........
그리고 순아는 교장선생님의 바램이요 나의 소망인 최고의 명문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고 입학식을 한 다음 날
예정대로 순아의 모교 강당에서 전교생들과 순아의 동기들 그리고 나의 일가친척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을 모시고
화려한 결혼식을 하였고 참석을 해 준 모든 이들에게 욕을 듣지 않을 정도의 피로연도 해 주었고
축의금으로 들어 온 돈은 전액 순아 이름의 장학재단에 기부를 하고 우리는 때늦은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다녀왔다.
“자기 너무 젊은 물받이를 색시로 뒀다고 부담을 가지면 미워 할 거야, 알지?”우리 순아는 입버릇처럼 자기를 나의 마지막 물받이라고 하며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