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교향곡 - 6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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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05:23 조회 4,732회 댓글 0건본문
모자들의 교향곡 61부
선생님이 떠나간후 선규는 크나큰 허전함으로 마음한구석이 텅 빈것 같았다. 그녀가 있었을때는 깨닫지 못했었는데 그의 가음속에 생각보다 더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었을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었다. 선생님집을 한번 찾아가 보았으나 아직 아무도 살지않는 집은 그에게 공허함만 안겨주어 심정을 더욱 쓰라리게 만들었다. 마음을 잡아볼려고 기타를 쳐도 한쪽이 비어있는듯한 기분이 들어 예전처럼 연주에 몰두하는것이 힘들 정도였다. 엄마도 그의 우울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선규야, 자니?"
어두운 방안에서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던 때를 회상하던 선규는 엄마의 물음에 힘없이 대답했다.
"안자"
"요새 네가 말이 좀 없는거 같은데 선생님이 떠나셔서 그래?"
"응"
그러자 엄마는 옆으로 돌아누워 그를 응시했다.
"네가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줄은 몰랐다"
"....."
"하긴 너에게 각별히 잘해주셨으니 섭섭하겠지"
"그런가봐. 엄마와 태수엄마말고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셨던 분은 없었거든"
"선생님이 떠나실때 너에게 아무말씀이 없으시든?"
"나중에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서 다시 만나자고 하셨어"
그말을 듣고 엄마는 살며시 그를 안아주었다.
"지금은 네마음이 많이 섭섭하겠지만 선생님말씀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해. 그러면 선생님도 너를 자랑스러워 하실거야"
"엄마는 내곁을 떠나지 않을거지?"
"그럼. 내가 널 놔두고 어딜 가겠니?"
"언제까지나 내옆에 있어줄거야?"
엄마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않고 잠시 그의 머리결을 쓰다듬어주다가 입을 열었다.
"응"
"엄마마저 떠난다면 난 정말 외로워서 살기가 힘들거야"
그소리에 엄마는 그를 가슴품안으로 더욱 끌어안았다.
"내가 옆에서 널 지켜둘테니 안심해"
따듯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은 마음속에 있었던 허전함과 외로움을 채워주고 커다란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는 엄마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고마움과 다행스러움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사랑을 몹시 갈망하게 되어 포근한 젖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일요일날, 명숙은 약국창문으로 이제는 추위가 상당히 수그러들은 바깥을 내리쬐는 햇살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선규가 많이 우울해보이는것으로 보아 선생님이 떠났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은것 같아서 놀랍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는 선생님집에 갔었을때 그냥 음악만 배웠다고 말했었으나 그사이 선생님에게 상당히 정이 들었던 눈치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지난번에 선규가 선생님이 학교를 떠난다고 알려주었을때가 기억났다. 물론 명숙도 아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었던 선생님이 떠난다는데에 무척이나 섭섭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왠지모를 안도감도 드는 것이었다. 지난연말에 문병을 왔었을때 선규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시선이 명숙의 뇌리속에 늘 남아있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이상한 불안감이 들곤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규의 우울함도 예사스럽게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미 떠나신 선생님에게 내가 질투를 했나?]
그생각에 명숙은 쓴웃음을 지으며 도리질을 했다.
[선규가 남한테 정을 못받고 자라서 선생님에게 각별한 정이 들었을수가 있었겠지. 그러고보면 애한테 그렇게나 잘해주신 선생님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데...]
그러자 선규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래서 그가 쓸쓸함과 우울함을 하루빨리 잊을수 있도록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오럴섹스때문에 선규와 한밤중에 난리를 쳤었던게 떠올랐다. 그뒤로 선생님이 떠나신 일도 있고해서 그런지 선규는 그녀에게 그다지 섹스를 요구하지 않았었다. 아들과 섹스를 안할수록 그만큼 죄의식을 덜 가져다 주었으나 그가 이렇게나 심란해 하는데 뭔가를 해주지 않는다는것이 심히 미안하고 엄마로서 책임을 못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너무나 잘 알고있기에 그가 그녀에게 바라는것은 물질적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고민을 하던 명숙은 무심코 길건너 혜영의 집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집에 있겠지?]
곧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명숙은 잠시 약국문을 닫고 혜영의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있다가 손에 고무장갑을 낀 혜영이 문을 열어주었다.
"여긴 왠일이야? 약국은 어떻게 하고"
"점심시긴이고 해서 잠시 문닫고 왔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어서 들어와"
명숙과 같이 들어온 혜영은 고무장갑을 벗고 마실것를 내왔다.
"찬은 별로 없지만 여기서 점심먹고 갈래?"
"그러자. 집에서 혼자먹기도 심심하거든"
"선규는 집에 없어?"
"응. 친구만난다고 나갔어. 태수는 책방에 갔지?"
"응. 나도 혼자 먹어야 됐었는데 마침 잘됐다"
점심을 간단하게 차려먹은 그들은 커피와 과일을 들면서 마주 앉았다.
"태수가 알주일에 하루라도 책방에 나가주니까 편하지?"
"밀린 집안일을 할수가 있어서 좋기는한데 그래도 집에서 공부해 주는게 나한테는 마음이 편하지"
"자식이니까 물론 그렇겠지"
중얼거리며 커피를 마시던 명숙은 잔을 내려놓고 말문을 열었다.
"애들 담임선생님이 떠나신거는 들었지?"
"응. 태수한테서 들었어. 좋으신 분이었는데 섭섭하더라"
"태수는 많이 섭섭해하든?"
"그러지. 애한테 잘 해주셨었나봐. 떠나실때도 우리 사정을 생각하섰는지 다음 담임선생님되실분한테 도 말씀을 하셨대"
"그래?"
속으로 선생님의 마음씀씀이에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혜영이 물었다.
"그래도 제일 섭섭한 사람은 선규겠다. 선생님댁에 자주 찾아뵙고 그랬었잖아"
"응. 그동안 선생님께 정이 많이 들었나봐. 요새 애가 별로 말이 없어"
"저번에 길에서 선생님댁에서 오는 애를 우연히 마주쳤었는데 얼굴이 어두워 보이더라"
"그때 애가 뭐라고 하든?"
"별다른 말은 없었는데 그때 네가 책방에서 했던 말도 있고해서 평소 쾌활하게 보이던 애가 그러니까 이상하더라. 마치 처음보는 애 같았어"
혜영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명숙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태수는 혹시 달라진게 없니?"
"뭐가?"
"너와 이렇게 된다음부터"
"....."
"행동이나 말이 달라진게 없어?"
빨개진 얼굴을 숙이고 있던 혜영은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없는거 같애. 있다면 나한테 더 친근하게 대하는거겠지"
그말을 듣자 저번에 길가에서 혜영과 태수가 연인들처럼 다정히 키스하던게 기억나서 명숙의 얼굴에서도 홍조가 나타났다.
"그게 다야?"
"응"
명숙에게는 혜영과 태수가 암만 생각해도 신기한 사람들로 느껴졌다. 근친상간을 저질렀다하면 무슨 가책이나 충격이 있을법한데 혜영의 얼굴에서는 그러한것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선규에게는 변화가 많니?"
"그냥 내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런거 같애. 저번에 말했었잖아"
"네가 걱정이 많이 되겠다"
아들에 대한 근심이 올라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명숙은 혜영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있잖아, 이런건 묻는다는게 실례라는걸 아는데..."
"뭔데?"
명숙이 차마 말을 못끄내며 우물쭈물하자 혜영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일인데 말을 꺼내다 말어?"
"저기, 잠자리에 관해서 그러는데..."
"....."
"너희들은 그거 해?"
"뭘?..."
"오..오럴말이야"
그러자 혜영의 안색은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입은 커다랗게 벌어졌다. 친구의 그러한 반응에 명숙도 몹시 당황해 하며 황급히 말했다.
"마..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그..그냥 궁금해서....."
"....."
"미..미안해, 혜영아. 원래 남의 그러한 사생활은 묻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실수했어"
창피함으로 어쩔줄을 모르던 혜영은 진정이 됐는지 벌어졌던 입을 다물고 조용히 명숙을 응시했다. 그러나 안면에는 홍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서..선규와 무슨 문제가 있어?"
"선규가 그걸 원하는데 내가 원래부터 그런걸 싫어해서 못하겠어"
"그럼 여지껏 한번도 안했단 말이야?"
"아니. 선규에게는 해주는데 나에게 해주는거는....."
명숙이 말을 못끝내고 고개를 떨구자 혜영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나이에는 호기심이 많을때니까 해보고 싶겠지"
"그럼 너희들은 서로에게 해줘?"
"응"
그저 어렴풋히 짐작만 했던 명숙은 그말을 듣고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태수가 너한테도 해준단 말이야?"
"그래"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이상하지 않냐고"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한다는게 매우 어색하고 창피했으나 혜영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명숙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좀더 구체적인 질문들이 나왔다.
"태수가 그걸 요구했어?"
"그냥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어"
"그럼 네가 먼저 해줬단 말이야?"
"아니. 그애가 먼저"
"안놀랐었어?"
"정신이 없어서 뭐가 뭔지를 몰랐어"
"그다음에는 태수가 해달래?"
"그애는 나한테 불결하다며 거부했는데 내가 억지써서 해줬어"
"뭐?"
"주고 받는건데 나만 받기에는 미안하잖아"
혜영은 몹시 부끄러워 하면서도 말은 또박하게 나왔다. 그말을 듣고 명숙은 어안이 벙벙해서 할말을 잃고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와 저렇게나 정반대냐?]
선규에게 오럴섹스를 해줄때도 무척이나 망설였던게 떠올라서 명숙은 혜영의 말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기엄마를 생각해주는 태수의 헤아림에 혜영이 다시한번 부러웠다.
"태수가 해줄때 좋아?"
"....."
홍조를 가득띤체 명숙의 질문들을 듣고있던 혜영의 안면은 조금씩 굳어져 갔다.
"왜 그렇게 자세한걸 묻는건데? 네얘기 좀 들어보자"
약간 차갑게 들리는 친구의 어조에 명숙은 당혹스러워졌다.
"미..미안해"
"그게 잘 안돼?"
"으..응. 사실은 선규아빠와 있었을때도 싫어서 안했었거든"
"선규에게는 해주면서 그애가 해주는거는 싫다는 말이야?"
"그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그곳을 보고 만진다는게 불쾌해서..."
"이미 보여줄건 다 보여줬는데 뭐가 불쾌해?"
"그냥 내마음이 그래"
"너, 선규를 사랑하긴 사랑하니?"
"무슨말이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애가 원하는걸 네가 싫더라도 들어줄수 있잖아. 더군다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명숙은 그말이 자식를 향한 마음이 부족하다는걸로 들려 모욕감이 들고 기분이 나빠졌다.
"누가 자식을 그런식으로 사랑하니?"
"너와 내가 보통 엄마들과 같니?"
"....."
"이미 저질러진 일이잖아. 오늘당장 선규와 예전으로 돌아갈 자신있어?"
"....."
"선규는 아마 그말을 들으면 반대할테고. 그러니 네가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지, 어떡하겠어?"
"....."
현실적으로 말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명숙은 할말을 잃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자 혜영도 굳어졌던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1년이나 됐는데 선규와 같이 자는게 그렇게 어색하고 싫지는 않을거 아냐. 그렇지?"
"그건 그래"
"어차피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계속 그런식으로 나가면 선규는 불만이 생기겠고 너는 너대로 힘들어지잖아"
"....."
"애들보다는 어른인 우리에게 더 책임이 있는거야. 이왕 이렇게 된거 이 상황에 맞춰가며 자식을 길러야지. 잘못되면 애들이 이상해지는것뿐만 아니라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나빠질수 있어.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너도 네자신을 바꿔봐. 이건 어떻게 보면 남녀관계잖아"
명숙은 놀라움과 감탄의 눈으로 혜영을 쳐다보았다. 혜영이 아들과의 관계를 부모자식이상으로 생각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선규가 원하는것도 정확히 짚어내고 있어서였다.
"넌 어떻게 그런말들을 담담하게 말할수가 있니?"
그러자 혜영은 고개를 돌려 햇볕이 내리쬐는 창문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상태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 그랬잖아. 운명이라고"
말이 끝났어도 혜영이 여전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서 명숙도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방안의 불을 끄고 아들옆에 누운 혜영은 점심때 명숙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곰곰히 회상하고 있었다. 얘기를 나눌때 심적으로 고생하는 친구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지만 명숙이 계속 그녀와 태수와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는것 같아서 은근히 기분이 나빴었다. 그녀와 태수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부부나 애인들처럼 그들 둘만이 간직하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생각되어 불쾌하기만 했었다. 나중에 명숙이 사과하는걸 듣고 그녀의 마음도 풀어졌으나 지금 또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기분이 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또다시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그런걸 말하고 의논할 상대가 나말고 이세상에서 누가 있겠어? 저도 오죽 고민스러웠으면 그랬을까...]
그런생각을 하자 친구와 서로 부부관계에 대해 말을 나눈거 같아서 저도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그러세요?"
"아직 안잤어?"
"네. 오늘 무슨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혜영은 몸을 돌려 어둠속에 있는 태수를 응시했다. 그러자 아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명숙때문에 별안간 태수가 고맙게 여겨졌다.
[하기야 이런일이 일어나면 명숙이처럼 생각해야 정상인데... 이왕 벌어진 일에 내가 잘 적응하게 있게된건 다 태수때문이지]
그러는데 문득 태수가 선규처럼 불만을 느끼는건 없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태수야"
"네?"
"혹시 나한테 불만같은거 있니?"
그러자 태수가 황급히 그녀쪽으로 몸을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나와 이러고 자는거에 대해 만족하냐는 소리야. 성인들도 그러는데 특히 네나이때는 호기심이 왕성할때잖아"
"....."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못알아듣겠어?"
그에게서 아무말이 없어 자세하게 설명해줄려고 하는데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태수의 손이 그녀의 머리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엄마가 절 사랑해주시는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요?"
"아니야. 네가 하고싶어하는게 있으면 말해도 돼"
"없어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태수의 진심어린 대답을 듣고 혜영은 속으로 안도와 기쁨이 넘쳐흘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만족한다는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선규가 저엄마에게 비디오방에 가자고 한것처럼 이상한걸 요구하지도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걸 물어보세요? 엄마는 있으세요?"
"아니야.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거야"
"어디서 부부생활에 불만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셨어요?"
그말에 혜영은 폭소를 터트렸다. 함께 웃던 태수도 그녀의 웃음소리가 수그러들자 혜영을 끌어안고 깊은 키스를 한다음 그녀의 육체를 더듬다가 옷들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2학년으로 올라간 선규와 태수는 이번에는 다른반으로 배정받았다. 1학년때와 마찬가지로 각자반에서 태수는 반장을 맡았고 선규는 부반장이 되었다. 그러나 늘 하듯이 등교는 같이 했지만 하교는 그렇지가 않았다. 태수는 정희경 선생님이 다음담임선생님이 될 사람한테 말을 해준 덕택에 보충수업을 면제받고 신문배달을 하러 일찍 학교를 나올수가 있었으나 선규는 보충수업때문에 저녁이 되서야 집에 올수가 있었다. 남자담임선생님으로 바뀌어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바쁜 공부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희경 선생님으로 인한 선규의 가슴속에 있던 공허함과 허전함은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집에서는 엄마가 예전보다 더 잘해주고 어떤때는 애인처럼 행동해서 이제는 다시 그녀가 그의 마음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태수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문과반에서 공부하게 되어 처음에는 걱정했었지만 엄마는 근심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대해주었다. 유진은 3학년이 되어 조금 바빠진 까닭에 책방에 자주 들리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찾아와 그와 얘기를 나누고 피아노도 함께 치곤 했다. 1년이 넘게 만나서 그런지 태수의 마음속에는 유진을 선규네같이 한가족처럼 편하고 스스럼없이 느껴지게 되었다.
2학년에 들어와 첫번째 기말고사를 치루고 어느 일요일날, 책방을 보고있는데 오랜만에 유진이 찾아왔다. 태수는 반갑게 맞으며 그녀와 얘기를 나눴다.
"누나는 요즘 많이 바쁘나봐요. 보기가 힘드네요. 엄마도 그러시던데"
"3학년에 올라가니까 이것저것 할일이 많아지네. 아주머니는 안녕하시지?"
"네"
"너는 학교생활이 어떠니?"
"똑같아요. 하지만 내년에 고3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하기도 하고요"
"공부 잘하면서 뭐가 불안해? 다 잘 될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자꾸만 불안해하면 신경쓰여 잘될 일도 못되는 법이야"
그말에 태수는 조용한 웃음을 지었다. 유진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용기도 복돋아주고 조언도 해줘서 엄마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고민이 있으면 그녀에게 어려움없이 털어놓곤 했다. 형제가 없던 태수에게 유진은 친누나같이 여겨져 형제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대학에서 직업은 구체적으로 언제 정하게 되요?"
"빨리 할수록 좋겠지. 늦으면 급하게 되서 그냥 아무 회사나 들어가야 하거든"
"그럼 누나는 피아노선생님이 되기로 결심을 굳힌거에요?"
"응. 너는 뭐 할건데?"
"영문과에 갈려고 해요"
"영문과?"
"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요"
"외국어 잘하면 좋지. 교수같은걸 할려고 그래?"
"그냥 이것저것 생각중이에요. 그런데 왜 교수라고 생각했어요?"
"글쎄. 왠지 너에게는 평범한 회사원보다 교수나 학자가 어울리는거 같애"
"그래요?"
"응. 피아노 기르칠때 보니까 넌 그냥 배우기보다는 탐구하는 면이 있더라. 끈질긴 점도 있고. 그래서 뭘 배우고 그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걸 잘 할거 같애"
"저한테 그런면들이 있다는건 몰랐는데..."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가르치는건 누나가 잘 하잖아요"
그리고는 둘이 서로 웃음을 짓고 한동안 얘기를 더 하는데 별안간 문이 열리며 선규가 들어왔다.
"네가 여긴 왠일이냐?"
"이 근처에서 친구들 만났다가 너와 같이 집에 갈려고 왔어. 곧 책방문 닫을 시간이잖아. 그런데 손님이 계시네. 어?"
선규는 그를 쳐다보는 유진을 보고 두눈을 크게 떴다.
"지난번에 여기서 만났던 분이시죠? 태수에게 피아노 가르쳐주고요"
그러자 태수는 선규와 어리둥절해 하는 유진을 번갈아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역시 기억은 잘하는구나. 얘가 저와 제일 친하다는 선규에요. 작년에 여기서 한번 봤었잖아요"
"아. 기타를 잘 치신다는 친구분이시구나. 반가워요"
유진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자 선규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말씀 놓으세요. 태수친구인데요"
"그럴까요?"
"그렇게 하세요, 누나. 저한테 하는거처럼 편하게 말하세요"
태수의 말을 듣고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선규도 옆에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피아노를 잘 가르치시나 봐요. 작년에 음악시험때 보니까 태수가 아주 잘 치던데요"
"태수가 잘 해서 그런거지"
"아니에요. 누나가 아니었으면 제가 어떻게 잘 칠수가 있었겠어요?"
"태수야, 아직도 피아노 쳐?"
"응. 가끔가다"
선규가 알수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유진이 말했다.
"너도 시간되면 태수와 같이 와. 태수에게 기타를 잘 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한번 듣고싶다"
"그럴게요. 그런데 잘 치지도 못하는데 태수가 괜한 말을 했나 보네요"
"갑자기 왠 겸손이냐? 돈주고도 못듣는 연주라면서"
"음악선생님앞에서 어떻게 그러냐? 망신당하면 어쩌라고"
함께 웃던 선규는 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클래식음악만 하는거에요?"
"대중음악도 해"
"선규는 작곡도 할줄 알아요"
"그래?"
태수의 말에 유진은 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고 선규는 쑥스럽게 웃으며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작곡한 곡들이 있어?"
"그냥 장난으로 몇곡을 썼었는데 전부 완성하지는 않았어요. 대단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그럴수 있다는게 어디니?"
고개를 숙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듯한 선규에게 유진은 다시 물었다.
"작곡은 어디서 배웠니?"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 배웠어요"
"아. 음악선생님이라고 그랬지. 그럼 작곡공부는 계속 할거야?"
"아니요. 기본은 터득했으니까 이제는 제가 스스로 써야죠. 작곡도 뭘 창조하는건데 전 자연스럽게 나와야 된다고 믿어요. 누구에게 계속 배운다면 그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저만의 진실한 음악이 나올수가 없잖아요"
유진은 한동안 선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다음 태수와 선규와 좀더 얘기를 나누다가 책방을 떠났다.
유진이 가고난후 태수는 선규와 책방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그누나와는 자주 만나니?"
"유진이누나?"
"응"
"누나도 요즘은 바빠서 자주 못만나"
"서로 안지 오래됐지?"
"응. 1년이 넘었으니까"
"정이 많이 들었겠다"
장부를 챙기던 태수는 그말을 듣고 엷은 웃음을 띄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선규야, 선생님 보고싶니?"
"....."
"정희경 선생님말이야. 너도 선생님한테 정이 많이 들어 있었을거 아니야. 아까 작곡얘기를 할때 선생님 생각하는거 같더라"
잠시 책들을 멍하게 보고있던 선규는 중얼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나에겐 감사한 분이지. 엄마와 너희엄마외에는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잘 해준 사람이 없었거든. 가끔은 보고싶긴한데 떠나신 분을 자꾸 생각해서 뭐해"
말은 그렇게 했어도 태수의 눈에는 선규가 선생님을 그리워 하는것 같고 또한 쓸쓸하게도 보여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나중에 네가 잘되서 한번 선생님뵈러 찾아기면 되잖아. 그리고 네옆에는 아줌마가 계시니까 힘내라"
"그래야지"
계속 중얼거리던 선규는 환한 표정으로 바꾸고 돌아섰다.
"빨리 정리하고 가자. 아줌마가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시겠다"
태수가 웃으며 정리를 계속 하는데 옆에서 잡지들을 치우던 선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X세대라는 말이 자주 나오더라"
태수가 보니 잡지표지에 최근에 인기있는 젊은 가수사진밑에 X세대가수라는 표제가 쓰여져 있었다. 선규는 잡지를 내보이며 못마땅하다는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전까지는 신세대 그러더니 이제는 툭하면 X세대라고 하고. 그냥 젊은 세대, 차세대 이러면 될거 가지고 이런말 쓰면 멋있어 보이나보지?"
"넌 싫어?"
"사방에서 그러니까 짜증난다. 신세대와 X세대가 뭐가 차이나냐? 이거 분명히 외국에서 나온 말을 듣고 그러는걸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서 온 말이라면 유식해 보이는지 알고 아무데서나 쓰잖아"
"맞어. 뜻도 모르고 쓰지"
"넌 X세대가 무슨뜻인지 알어?"
"응. 그건 70년대에 캐나다 사회학자가 지어낸 단어야"
"뭐야? 그럼 옛날에 나온 단어를 가지고 우리는 지금와서 이러는거야?"
"우리나라는 젊은세대들의 의식이 몇년전부터 바꼈잖아. 원래 서양에서는 60년대에 그랬대. 기성세대들이 젊었을때와는 아주 다르게. 그사람들은 국가가 부르면 전쟁터에 나가고 그랬는데 젊은이들은 뭣하러 전쟁에 나가냐고 주장하면서 개인적인 성향으로 변했거든"
"월남전 얘기를 말하는구나"
"응. 자기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스스럼없이 어른들에게 주장을 내새웠대. 사회변화와 일종의 계몽이 온거지. 그런데 70년대는 달랐어"
"어떻게?"
"60년대의 젊은이들은 철학적으로 생각했는데 70년대에 전쟁이 끝나고 아무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때 젊은세대들은 그냥 즐기는거에만 만족했대. 아무생각도 안하고 디스코텍에 가서 춤이나 추고"
"머리에 든거없이 향락주의에 빠져든거구만"
"맞아. 그래서 그당시의 어떤 캐나다 사회학자가 노는것만 찾는 젊은세대들의 작태를 비꼬아서 수학의 미지수 X를 넣어 X세대란 말을 만든거야"
"미지수라... 아무것도 아니라는 한심하다는 소리군"
"그렇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뜻도 모르고 그저 멋있게 들린다고 쓰고있으니.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걸 부추키는 언론도 문제가 많아. 뭘 제대로 알고 말해야될거 아니야"
잡지의 표제를 다시보던 선규는 도리질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맞는 말인거 같애. 요즘의 우리나라 젊은애들도 미팅하고 나이트나 가며 놀기만 하잖아. 그러니 X세대가 맞네"
"네말을 듣고보니 그렇긴 하다"
"이제부터 누가 X세대라 부르면 화내야 되겠다"
둘은 낄낄거리며 웃다가 책방을 마저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초가을이 되어 바람은 조금씩 선선해지고 있었다. 명숙은 약국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반팔에서 길어진 소매로 바뀐걸 보니 가을이 왔다는게 실감났다. 선규가 2학년이 되고난뒤 그동안의 생활은 별탈없이 무난해서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지난 겨울에 혜영의 말을 듣고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선규에게 남자대하는것처럼 노력했었다. 물론 아직까지 근친상간을 한다는 죄의식이 남아있었지만 혜영의 말처럼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을 돌이킬수도 없어서 선규와 그녀 모두가 만족해 하며 사는쪽으로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오럴섹스에 거부감이 사라지지않아 있었고 오르가즘도 오지를 않아 선규와의 성행위에는 벌다를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선규도 달라진 그녀의 태도를 의식해서인지 불평이나 비뚤어짐없이 그녀의 말을 잘들어주어 작년같이 충돌은 없었고 어느때보다 공부에 더 몰두해 있었다. 이렇게 생활하니 별 어려움이 없어서 명숙도 아들과의 관계를 남들만 알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차츰 들게 되었다. 그래서 선규가 대학에 들어가기전까지는 어떤 변화가 없고 이대로 살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바램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약국문을 닫을려고 일어나는데 문이 열리며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
수줍은듯이 웃는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명숙은 숨이 막혀 버렸다. 6년이 넘게 보지를 않았지만 그녀가 한남자로서 유일하게 사랑했었고 결혼해서 함께 살았던 사람이라서 한눈에 알아볼수가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든 흔적들이 있었지만 양복을 말끔히 입고 훤칠한 용모와 깔끔한 인상은 여전했다.
선생님이 떠나간후 선규는 크나큰 허전함으로 마음한구석이 텅 빈것 같았다. 그녀가 있었을때는 깨닫지 못했었는데 그의 가음속에 생각보다 더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었을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었다. 선생님집을 한번 찾아가 보았으나 아직 아무도 살지않는 집은 그에게 공허함만 안겨주어 심정을 더욱 쓰라리게 만들었다. 마음을 잡아볼려고 기타를 쳐도 한쪽이 비어있는듯한 기분이 들어 예전처럼 연주에 몰두하는것이 힘들 정도였다. 엄마도 그의 우울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선규야, 자니?"
어두운 방안에서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던 때를 회상하던 선규는 엄마의 물음에 힘없이 대답했다.
"안자"
"요새 네가 말이 좀 없는거 같은데 선생님이 떠나셔서 그래?"
"응"
그러자 엄마는 옆으로 돌아누워 그를 응시했다.
"네가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줄은 몰랐다"
"....."
"하긴 너에게 각별히 잘해주셨으니 섭섭하겠지"
"그런가봐. 엄마와 태수엄마말고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셨던 분은 없었거든"
"선생님이 떠나실때 너에게 아무말씀이 없으시든?"
"나중에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서 다시 만나자고 하셨어"
그말을 듣고 엄마는 살며시 그를 안아주었다.
"지금은 네마음이 많이 섭섭하겠지만 선생님말씀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해. 그러면 선생님도 너를 자랑스러워 하실거야"
"엄마는 내곁을 떠나지 않을거지?"
"그럼. 내가 널 놔두고 어딜 가겠니?"
"언제까지나 내옆에 있어줄거야?"
엄마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않고 잠시 그의 머리결을 쓰다듬어주다가 입을 열었다.
"응"
"엄마마저 떠난다면 난 정말 외로워서 살기가 힘들거야"
그소리에 엄마는 그를 가슴품안으로 더욱 끌어안았다.
"내가 옆에서 널 지켜둘테니 안심해"
따듯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은 마음속에 있었던 허전함과 외로움을 채워주고 커다란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는 엄마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고마움과 다행스러움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사랑을 몹시 갈망하게 되어 포근한 젖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일요일날, 명숙은 약국창문으로 이제는 추위가 상당히 수그러들은 바깥을 내리쬐는 햇살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선규가 많이 우울해보이는것으로 보아 선생님이 떠났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은것 같아서 놀랍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는 선생님집에 갔었을때 그냥 음악만 배웠다고 말했었으나 그사이 선생님에게 상당히 정이 들었던 눈치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지난번에 선규가 선생님이 학교를 떠난다고 알려주었을때가 기억났다. 물론 명숙도 아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었던 선생님이 떠난다는데에 무척이나 섭섭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왠지모를 안도감도 드는 것이었다. 지난연말에 문병을 왔었을때 선규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시선이 명숙의 뇌리속에 늘 남아있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이상한 불안감이 들곤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규의 우울함도 예사스럽게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미 떠나신 선생님에게 내가 질투를 했나?]
그생각에 명숙은 쓴웃음을 지으며 도리질을 했다.
[선규가 남한테 정을 못받고 자라서 선생님에게 각별한 정이 들었을수가 있었겠지. 그러고보면 애한테 그렇게나 잘해주신 선생님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데...]
그러자 선규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래서 그가 쓸쓸함과 우울함을 하루빨리 잊을수 있도록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오럴섹스때문에 선규와 한밤중에 난리를 쳤었던게 떠올랐다. 그뒤로 선생님이 떠나신 일도 있고해서 그런지 선규는 그녀에게 그다지 섹스를 요구하지 않았었다. 아들과 섹스를 안할수록 그만큼 죄의식을 덜 가져다 주었으나 그가 이렇게나 심란해 하는데 뭔가를 해주지 않는다는것이 심히 미안하고 엄마로서 책임을 못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너무나 잘 알고있기에 그가 그녀에게 바라는것은 물질적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고민을 하던 명숙은 무심코 길건너 혜영의 집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집에 있겠지?]
곧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명숙은 잠시 약국문을 닫고 혜영의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있다가 손에 고무장갑을 낀 혜영이 문을 열어주었다.
"여긴 왠일이야? 약국은 어떻게 하고"
"점심시긴이고 해서 잠시 문닫고 왔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어서 들어와"
명숙과 같이 들어온 혜영은 고무장갑을 벗고 마실것를 내왔다.
"찬은 별로 없지만 여기서 점심먹고 갈래?"
"그러자. 집에서 혼자먹기도 심심하거든"
"선규는 집에 없어?"
"응. 친구만난다고 나갔어. 태수는 책방에 갔지?"
"응. 나도 혼자 먹어야 됐었는데 마침 잘됐다"
점심을 간단하게 차려먹은 그들은 커피와 과일을 들면서 마주 앉았다.
"태수가 알주일에 하루라도 책방에 나가주니까 편하지?"
"밀린 집안일을 할수가 있어서 좋기는한데 그래도 집에서 공부해 주는게 나한테는 마음이 편하지"
"자식이니까 물론 그렇겠지"
중얼거리며 커피를 마시던 명숙은 잔을 내려놓고 말문을 열었다.
"애들 담임선생님이 떠나신거는 들었지?"
"응. 태수한테서 들었어. 좋으신 분이었는데 섭섭하더라"
"태수는 많이 섭섭해하든?"
"그러지. 애한테 잘 해주셨었나봐. 떠나실때도 우리 사정을 생각하섰는지 다음 담임선생님되실분한테 도 말씀을 하셨대"
"그래?"
속으로 선생님의 마음씀씀이에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혜영이 물었다.
"그래도 제일 섭섭한 사람은 선규겠다. 선생님댁에 자주 찾아뵙고 그랬었잖아"
"응. 그동안 선생님께 정이 많이 들었나봐. 요새 애가 별로 말이 없어"
"저번에 길에서 선생님댁에서 오는 애를 우연히 마주쳤었는데 얼굴이 어두워 보이더라"
"그때 애가 뭐라고 하든?"
"별다른 말은 없었는데 그때 네가 책방에서 했던 말도 있고해서 평소 쾌활하게 보이던 애가 그러니까 이상하더라. 마치 처음보는 애 같았어"
혜영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명숙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태수는 혹시 달라진게 없니?"
"뭐가?"
"너와 이렇게 된다음부터"
"....."
"행동이나 말이 달라진게 없어?"
빨개진 얼굴을 숙이고 있던 혜영은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없는거 같애. 있다면 나한테 더 친근하게 대하는거겠지"
그말을 듣자 저번에 길가에서 혜영과 태수가 연인들처럼 다정히 키스하던게 기억나서 명숙의 얼굴에서도 홍조가 나타났다.
"그게 다야?"
"응"
명숙에게는 혜영과 태수가 암만 생각해도 신기한 사람들로 느껴졌다. 근친상간을 저질렀다하면 무슨 가책이나 충격이 있을법한데 혜영의 얼굴에서는 그러한것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선규에게는 변화가 많니?"
"그냥 내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런거 같애. 저번에 말했었잖아"
"네가 걱정이 많이 되겠다"
아들에 대한 근심이 올라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명숙은 혜영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있잖아, 이런건 묻는다는게 실례라는걸 아는데..."
"뭔데?"
명숙이 차마 말을 못끄내며 우물쭈물하자 혜영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일인데 말을 꺼내다 말어?"
"저기, 잠자리에 관해서 그러는데..."
"....."
"너희들은 그거 해?"
"뭘?..."
"오..오럴말이야"
그러자 혜영의 안색은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입은 커다랗게 벌어졌다. 친구의 그러한 반응에 명숙도 몹시 당황해 하며 황급히 말했다.
"마..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그..그냥 궁금해서....."
"....."
"미..미안해, 혜영아. 원래 남의 그러한 사생활은 묻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실수했어"
창피함으로 어쩔줄을 모르던 혜영은 진정이 됐는지 벌어졌던 입을 다물고 조용히 명숙을 응시했다. 그러나 안면에는 홍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서..선규와 무슨 문제가 있어?"
"선규가 그걸 원하는데 내가 원래부터 그런걸 싫어해서 못하겠어"
"그럼 여지껏 한번도 안했단 말이야?"
"아니. 선규에게는 해주는데 나에게 해주는거는....."
명숙이 말을 못끝내고 고개를 떨구자 혜영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나이에는 호기심이 많을때니까 해보고 싶겠지"
"그럼 너희들은 서로에게 해줘?"
"응"
그저 어렴풋히 짐작만 했던 명숙은 그말을 듣고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태수가 너한테도 해준단 말이야?"
"그래"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이상하지 않냐고"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한다는게 매우 어색하고 창피했으나 혜영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명숙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좀더 구체적인 질문들이 나왔다.
"태수가 그걸 요구했어?"
"그냥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어"
"그럼 네가 먼저 해줬단 말이야?"
"아니. 그애가 먼저"
"안놀랐었어?"
"정신이 없어서 뭐가 뭔지를 몰랐어"
"그다음에는 태수가 해달래?"
"그애는 나한테 불결하다며 거부했는데 내가 억지써서 해줬어"
"뭐?"
"주고 받는건데 나만 받기에는 미안하잖아"
혜영은 몹시 부끄러워 하면서도 말은 또박하게 나왔다. 그말을 듣고 명숙은 어안이 벙벙해서 할말을 잃고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와 저렇게나 정반대냐?]
선규에게 오럴섹스를 해줄때도 무척이나 망설였던게 떠올라서 명숙은 혜영의 말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기엄마를 생각해주는 태수의 헤아림에 혜영이 다시한번 부러웠다.
"태수가 해줄때 좋아?"
"....."
홍조를 가득띤체 명숙의 질문들을 듣고있던 혜영의 안면은 조금씩 굳어져 갔다.
"왜 그렇게 자세한걸 묻는건데? 네얘기 좀 들어보자"
약간 차갑게 들리는 친구의 어조에 명숙은 당혹스러워졌다.
"미..미안해"
"그게 잘 안돼?"
"으..응. 사실은 선규아빠와 있었을때도 싫어서 안했었거든"
"선규에게는 해주면서 그애가 해주는거는 싫다는 말이야?"
"그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그곳을 보고 만진다는게 불쾌해서..."
"이미 보여줄건 다 보여줬는데 뭐가 불쾌해?"
"그냥 내마음이 그래"
"너, 선규를 사랑하긴 사랑하니?"
"무슨말이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애가 원하는걸 네가 싫더라도 들어줄수 있잖아. 더군다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명숙은 그말이 자식를 향한 마음이 부족하다는걸로 들려 모욕감이 들고 기분이 나빠졌다.
"누가 자식을 그런식으로 사랑하니?"
"너와 내가 보통 엄마들과 같니?"
"....."
"이미 저질러진 일이잖아. 오늘당장 선규와 예전으로 돌아갈 자신있어?"
"....."
"선규는 아마 그말을 들으면 반대할테고. 그러니 네가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지, 어떡하겠어?"
"....."
현실적으로 말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명숙은 할말을 잃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자 혜영도 굳어졌던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1년이나 됐는데 선규와 같이 자는게 그렇게 어색하고 싫지는 않을거 아냐. 그렇지?"
"그건 그래"
"어차피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계속 그런식으로 나가면 선규는 불만이 생기겠고 너는 너대로 힘들어지잖아"
"....."
"애들보다는 어른인 우리에게 더 책임이 있는거야. 이왕 이렇게 된거 이 상황에 맞춰가며 자식을 길러야지. 잘못되면 애들이 이상해지는것뿐만 아니라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나빠질수 있어.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너도 네자신을 바꿔봐. 이건 어떻게 보면 남녀관계잖아"
명숙은 놀라움과 감탄의 눈으로 혜영을 쳐다보았다. 혜영이 아들과의 관계를 부모자식이상으로 생각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선규가 원하는것도 정확히 짚어내고 있어서였다.
"넌 어떻게 그런말들을 담담하게 말할수가 있니?"
그러자 혜영은 고개를 돌려 햇볕이 내리쬐는 창문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상태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 그랬잖아. 운명이라고"
말이 끝났어도 혜영이 여전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서 명숙도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방안의 불을 끄고 아들옆에 누운 혜영은 점심때 명숙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곰곰히 회상하고 있었다. 얘기를 나눌때 심적으로 고생하는 친구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지만 명숙이 계속 그녀와 태수와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는것 같아서 은근히 기분이 나빴었다. 그녀와 태수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부부나 애인들처럼 그들 둘만이 간직하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생각되어 불쾌하기만 했었다. 나중에 명숙이 사과하는걸 듣고 그녀의 마음도 풀어졌으나 지금 또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기분이 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또다시 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그런걸 말하고 의논할 상대가 나말고 이세상에서 누가 있겠어? 저도 오죽 고민스러웠으면 그랬을까...]
그런생각을 하자 친구와 서로 부부관계에 대해 말을 나눈거 같아서 저도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그러세요?"
"아직 안잤어?"
"네. 오늘 무슨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혜영은 몸을 돌려 어둠속에 있는 태수를 응시했다. 그러자 아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명숙때문에 별안간 태수가 고맙게 여겨졌다.
[하기야 이런일이 일어나면 명숙이처럼 생각해야 정상인데... 이왕 벌어진 일에 내가 잘 적응하게 있게된건 다 태수때문이지]
그러는데 문득 태수가 선규처럼 불만을 느끼는건 없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태수야"
"네?"
"혹시 나한테 불만같은거 있니?"
그러자 태수가 황급히 그녀쪽으로 몸을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나와 이러고 자는거에 대해 만족하냐는 소리야. 성인들도 그러는데 특히 네나이때는 호기심이 왕성할때잖아"
"....."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못알아듣겠어?"
그에게서 아무말이 없어 자세하게 설명해줄려고 하는데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태수의 손이 그녀의 머리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엄마가 절 사랑해주시는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요?"
"아니야. 네가 하고싶어하는게 있으면 말해도 돼"
"없어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태수의 진심어린 대답을 듣고 혜영은 속으로 안도와 기쁨이 넘쳐흘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만족한다는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선규가 저엄마에게 비디오방에 가자고 한것처럼 이상한걸 요구하지도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걸 물어보세요? 엄마는 있으세요?"
"아니야.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거야"
"어디서 부부생활에 불만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셨어요?"
그말에 혜영은 폭소를 터트렸다. 함께 웃던 태수도 그녀의 웃음소리가 수그러들자 혜영을 끌어안고 깊은 키스를 한다음 그녀의 육체를 더듬다가 옷들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2학년으로 올라간 선규와 태수는 이번에는 다른반으로 배정받았다. 1학년때와 마찬가지로 각자반에서 태수는 반장을 맡았고 선규는 부반장이 되었다. 그러나 늘 하듯이 등교는 같이 했지만 하교는 그렇지가 않았다. 태수는 정희경 선생님이 다음담임선생님이 될 사람한테 말을 해준 덕택에 보충수업을 면제받고 신문배달을 하러 일찍 학교를 나올수가 있었으나 선규는 보충수업때문에 저녁이 되서야 집에 올수가 있었다. 남자담임선생님으로 바뀌어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바쁜 공부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희경 선생님으로 인한 선규의 가슴속에 있던 공허함과 허전함은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집에서는 엄마가 예전보다 더 잘해주고 어떤때는 애인처럼 행동해서 이제는 다시 그녀가 그의 마음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태수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문과반에서 공부하게 되어 처음에는 걱정했었지만 엄마는 근심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대해주었다. 유진은 3학년이 되어 조금 바빠진 까닭에 책방에 자주 들리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찾아와 그와 얘기를 나누고 피아노도 함께 치곤 했다. 1년이 넘게 만나서 그런지 태수의 마음속에는 유진을 선규네같이 한가족처럼 편하고 스스럼없이 느껴지게 되었다.
2학년에 들어와 첫번째 기말고사를 치루고 어느 일요일날, 책방을 보고있는데 오랜만에 유진이 찾아왔다. 태수는 반갑게 맞으며 그녀와 얘기를 나눴다.
"누나는 요즘 많이 바쁘나봐요. 보기가 힘드네요. 엄마도 그러시던데"
"3학년에 올라가니까 이것저것 할일이 많아지네. 아주머니는 안녕하시지?"
"네"
"너는 학교생활이 어떠니?"
"똑같아요. 하지만 내년에 고3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하기도 하고요"
"공부 잘하면서 뭐가 불안해? 다 잘 될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자꾸만 불안해하면 신경쓰여 잘될 일도 못되는 법이야"
그말에 태수는 조용한 웃음을 지었다. 유진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용기도 복돋아주고 조언도 해줘서 엄마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고민이 있으면 그녀에게 어려움없이 털어놓곤 했다. 형제가 없던 태수에게 유진은 친누나같이 여겨져 형제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대학에서 직업은 구체적으로 언제 정하게 되요?"
"빨리 할수록 좋겠지. 늦으면 급하게 되서 그냥 아무 회사나 들어가야 하거든"
"그럼 누나는 피아노선생님이 되기로 결심을 굳힌거에요?"
"응. 너는 뭐 할건데?"
"영문과에 갈려고 해요"
"영문과?"
"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요"
"외국어 잘하면 좋지. 교수같은걸 할려고 그래?"
"그냥 이것저것 생각중이에요. 그런데 왜 교수라고 생각했어요?"
"글쎄. 왠지 너에게는 평범한 회사원보다 교수나 학자가 어울리는거 같애"
"그래요?"
"응. 피아노 기르칠때 보니까 넌 그냥 배우기보다는 탐구하는 면이 있더라. 끈질긴 점도 있고. 그래서 뭘 배우고 그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걸 잘 할거 같애"
"저한테 그런면들이 있다는건 몰랐는데..."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가르치는건 누나가 잘 하잖아요"
그리고는 둘이 서로 웃음을 짓고 한동안 얘기를 더 하는데 별안간 문이 열리며 선규가 들어왔다.
"네가 여긴 왠일이냐?"
"이 근처에서 친구들 만났다가 너와 같이 집에 갈려고 왔어. 곧 책방문 닫을 시간이잖아. 그런데 손님이 계시네. 어?"
선규는 그를 쳐다보는 유진을 보고 두눈을 크게 떴다.
"지난번에 여기서 만났던 분이시죠? 태수에게 피아노 가르쳐주고요"
그러자 태수는 선규와 어리둥절해 하는 유진을 번갈아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역시 기억은 잘하는구나. 얘가 저와 제일 친하다는 선규에요. 작년에 여기서 한번 봤었잖아요"
"아. 기타를 잘 치신다는 친구분이시구나. 반가워요"
유진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자 선규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말씀 놓으세요. 태수친구인데요"
"그럴까요?"
"그렇게 하세요, 누나. 저한테 하는거처럼 편하게 말하세요"
태수의 말을 듣고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선규도 옆에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피아노를 잘 가르치시나 봐요. 작년에 음악시험때 보니까 태수가 아주 잘 치던데요"
"태수가 잘 해서 그런거지"
"아니에요. 누나가 아니었으면 제가 어떻게 잘 칠수가 있었겠어요?"
"태수야, 아직도 피아노 쳐?"
"응. 가끔가다"
선규가 알수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유진이 말했다.
"너도 시간되면 태수와 같이 와. 태수에게 기타를 잘 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한번 듣고싶다"
"그럴게요. 그런데 잘 치지도 못하는데 태수가 괜한 말을 했나 보네요"
"갑자기 왠 겸손이냐? 돈주고도 못듣는 연주라면서"
"음악선생님앞에서 어떻게 그러냐? 망신당하면 어쩌라고"
함께 웃던 선규는 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클래식음악만 하는거에요?"
"대중음악도 해"
"선규는 작곡도 할줄 알아요"
"그래?"
태수의 말에 유진은 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고 선규는 쑥스럽게 웃으며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작곡한 곡들이 있어?"
"그냥 장난으로 몇곡을 썼었는데 전부 완성하지는 않았어요. 대단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그럴수 있다는게 어디니?"
고개를 숙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듯한 선규에게 유진은 다시 물었다.
"작곡은 어디서 배웠니?"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 배웠어요"
"아. 음악선생님이라고 그랬지. 그럼 작곡공부는 계속 할거야?"
"아니요. 기본은 터득했으니까 이제는 제가 스스로 써야죠. 작곡도 뭘 창조하는건데 전 자연스럽게 나와야 된다고 믿어요. 누구에게 계속 배운다면 그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저만의 진실한 음악이 나올수가 없잖아요"
유진은 한동안 선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다음 태수와 선규와 좀더 얘기를 나누다가 책방을 떠났다.
유진이 가고난후 태수는 선규와 책방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그누나와는 자주 만나니?"
"유진이누나?"
"응"
"누나도 요즘은 바빠서 자주 못만나"
"서로 안지 오래됐지?"
"응. 1년이 넘었으니까"
"정이 많이 들었겠다"
장부를 챙기던 태수는 그말을 듣고 엷은 웃음을 띄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선규야, 선생님 보고싶니?"
"....."
"정희경 선생님말이야. 너도 선생님한테 정이 많이 들어 있었을거 아니야. 아까 작곡얘기를 할때 선생님 생각하는거 같더라"
잠시 책들을 멍하게 보고있던 선규는 중얼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나에겐 감사한 분이지. 엄마와 너희엄마외에는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잘 해준 사람이 없었거든. 가끔은 보고싶긴한데 떠나신 분을 자꾸 생각해서 뭐해"
말은 그렇게 했어도 태수의 눈에는 선규가 선생님을 그리워 하는것 같고 또한 쓸쓸하게도 보여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나중에 네가 잘되서 한번 선생님뵈러 찾아기면 되잖아. 그리고 네옆에는 아줌마가 계시니까 힘내라"
"그래야지"
계속 중얼거리던 선규는 환한 표정으로 바꾸고 돌아섰다.
"빨리 정리하고 가자. 아줌마가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시겠다"
태수가 웃으며 정리를 계속 하는데 옆에서 잡지들을 치우던 선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X세대라는 말이 자주 나오더라"
태수가 보니 잡지표지에 최근에 인기있는 젊은 가수사진밑에 X세대가수라는 표제가 쓰여져 있었다. 선규는 잡지를 내보이며 못마땅하다는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전까지는 신세대 그러더니 이제는 툭하면 X세대라고 하고. 그냥 젊은 세대, 차세대 이러면 될거 가지고 이런말 쓰면 멋있어 보이나보지?"
"넌 싫어?"
"사방에서 그러니까 짜증난다. 신세대와 X세대가 뭐가 차이나냐? 이거 분명히 외국에서 나온 말을 듣고 그러는걸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서 온 말이라면 유식해 보이는지 알고 아무데서나 쓰잖아"
"맞어. 뜻도 모르고 쓰지"
"넌 X세대가 무슨뜻인지 알어?"
"응. 그건 70년대에 캐나다 사회학자가 지어낸 단어야"
"뭐야? 그럼 옛날에 나온 단어를 가지고 우리는 지금와서 이러는거야?"
"우리나라는 젊은세대들의 의식이 몇년전부터 바꼈잖아. 원래 서양에서는 60년대에 그랬대. 기성세대들이 젊었을때와는 아주 다르게. 그사람들은 국가가 부르면 전쟁터에 나가고 그랬는데 젊은이들은 뭣하러 전쟁에 나가냐고 주장하면서 개인적인 성향으로 변했거든"
"월남전 얘기를 말하는구나"
"응. 자기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스스럼없이 어른들에게 주장을 내새웠대. 사회변화와 일종의 계몽이 온거지. 그런데 70년대는 달랐어"
"어떻게?"
"60년대의 젊은이들은 철학적으로 생각했는데 70년대에 전쟁이 끝나고 아무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때 젊은세대들은 그냥 즐기는거에만 만족했대. 아무생각도 안하고 디스코텍에 가서 춤이나 추고"
"머리에 든거없이 향락주의에 빠져든거구만"
"맞아. 그래서 그당시의 어떤 캐나다 사회학자가 노는것만 찾는 젊은세대들의 작태를 비꼬아서 수학의 미지수 X를 넣어 X세대란 말을 만든거야"
"미지수라... 아무것도 아니라는 한심하다는 소리군"
"그렇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뜻도 모르고 그저 멋있게 들린다고 쓰고있으니.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걸 부추키는 언론도 문제가 많아. 뭘 제대로 알고 말해야될거 아니야"
잡지의 표제를 다시보던 선규는 도리질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맞는 말인거 같애. 요즘의 우리나라 젊은애들도 미팅하고 나이트나 가며 놀기만 하잖아. 그러니 X세대가 맞네"
"네말을 듣고보니 그렇긴 하다"
"이제부터 누가 X세대라 부르면 화내야 되겠다"
둘은 낄낄거리며 웃다가 책방을 마저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초가을이 되어 바람은 조금씩 선선해지고 있었다. 명숙은 약국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반팔에서 길어진 소매로 바뀐걸 보니 가을이 왔다는게 실감났다. 선규가 2학년이 되고난뒤 그동안의 생활은 별탈없이 무난해서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지난 겨울에 혜영의 말을 듣고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선규에게 남자대하는것처럼 노력했었다. 물론 아직까지 근친상간을 한다는 죄의식이 남아있었지만 혜영의 말처럼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을 돌이킬수도 없어서 선규와 그녀 모두가 만족해 하며 사는쪽으로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오럴섹스에 거부감이 사라지지않아 있었고 오르가즘도 오지를 않아 선규와의 성행위에는 벌다를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선규도 달라진 그녀의 태도를 의식해서인지 불평이나 비뚤어짐없이 그녀의 말을 잘들어주어 작년같이 충돌은 없었고 어느때보다 공부에 더 몰두해 있었다. 이렇게 생활하니 별 어려움이 없어서 명숙도 아들과의 관계를 남들만 알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차츰 들게 되었다. 그래서 선규가 대학에 들어가기전까지는 어떤 변화가 없고 이대로 살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바램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약국문을 닫을려고 일어나는데 문이 열리며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
수줍은듯이 웃는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명숙은 숨이 막혀 버렸다. 6년이 넘게 보지를 않았지만 그녀가 한남자로서 유일하게 사랑했었고 결혼해서 함께 살았던 사람이라서 한눈에 알아볼수가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든 흔적들이 있었지만 양복을 말끔히 입고 훤칠한 용모와 깔끔한 인상은 여전했다.